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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3

Date : 2023. 5. 17. 17:14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30401

가격 : 20,000

반양장본 | 400| 152×225mm

ISBN 979-11-86351-58-1 0394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성우제

 
 

 

책 소개

 

떠나온 한국은 멀어져 가고

이민 온 캐나다는 잡히지 않는

불안하기만 한 중간지대에 살지만

양쪽 모두 선명하게 보이는 건 장점

 

<작가의 소개글>

내가 서울 사투리를 쓴대요.”

얼마 전, 직장생활 2년차에 접어든 딸이 말했다. 한국에서 온 또래 친구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저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딸아이는 세 살 때 캐나다로 살러 왔으니, 한국 말을 부모한테서 배웠다.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서울 사투리라고 부르는 것은 예전 서울 말투라는 얘기다. 나도 처음 캐나다에 살러왔을 때, 이곳에서 수십 년 살아온 선배 이민자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외국살이란 한 마디로 이방인의 삶이다. 모든 이의 삶 자체가 불안의 연속일 테지만 이민자의 삶에는 불안의 요소가 하나 더 얹히게 마련이다. ‘~’ 떠 있는 느낌,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지대에 사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나는 캐나다에서는 한국 사람(코리언 캐네디언)이고, 한국에 가면 캐나다 사람이다. 법적 신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내 한국어는 이미 서울 사투리가 되었고 내 영어는 앞으로도 계속 외국인 발음이다. 이민 1세로서 캐나다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캐나다 사람이 될 수 없고, 모국을 떠난 지 오래 되어 정서적으로 더 이상 한국 사람이 아니다. 캐나다는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한국은 점점 더 멀어져간다. 이것이 바로 내 나름대로 알아차린 불안함의 정체였다.

양쪽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중간지대 혹은 경계의 삶은 묘하게 슬프다.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에서 이런저런 정책을 펼쳐가며 나 같은 이민자를 우대해준다 해도 이런 슬픔까지 어루만지지는 못한다. 그것은 이민자의 숙명 같은 것이다. 양쪽의 이방인이 되는 숙명.

그나마 나로서는 다행스러웠던 것이 캐나다에서 사는 삶에 한국의 매체와 독자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독자들은 내가 사는 곳의 삶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에서 발생하는 비슷한 사안을 두고 캐나다 사회는 어떻게 대처하는, 캐나다에 살면서 보면 한국은 어떻게 보이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했다. 나는 전직 기자답게 사실에 근거해 쓰려고 노력했다.

나 같은 사람이 갖는 장점 하나는 양쪽 사회를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중간지대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에는 한국 저녁 뉴스를 보고, 저녁에는 캐나다 저녁 뉴스를 본다. 양쪽을 비교해서 보면 사안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의미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바로 그런 것이다.

-캐나다 이방인, 한국 이방인

 

작가 소개

 

성우제

1963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다. 불문학 연구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논문을 썼다. 프랑스 유학 자금이나 벌자며 어쩌다 시작하게 된 기자 생활에 맛들려(월급도 많았고 기사 작성이 논문 쓰기보다 재미있었다) 그 길로 13년을 논문 대신 기사만 쓰며 보냈다. 박사 공부는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1989년에 창간한 () <시사저널>’(<시사IN> 전신)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다. 문화부에서 11년 동안 일하면서, 미술 음악 문학 등 여러 예술 장르와 문화현실에 관한 기사를 주로 썼다. 영화 담당만 하지 못했다. 누구나 맡고 싶어해서 나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기자로 일하는 와중에 1990년대 중반부터 커피 마니아 행세를 하며 살았다. 한국 커피업계에서는 나를 1세대 마니아라고 불렀다. 그 취미를 살려, 2002년에 이주해온 캐나다 토론토에서 베이커리카페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꾸었었다. 월급쟁이가 자영업자로 변신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말고도 진입 장벽이 하나 더 있었다. 외국이라는 낯선 환경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장벽이었다. 이민 초기는 장벽의 완강함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 정말 운좋게도 은인을 만나 옷가게를 시작했다. 그 가게를 운영하면서 17년째 밥벌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과는 다른 삶을 산다는 이유로, 한국의 여러 매체에서 청탁을 해준 덕분에 캐나다에 살러온 이래 거의 끊이지 않고 글을 써왔다. 2007년 여름 학력위조 사건이 터졌을 때 뉴욕으로 피신한 신정아 씨를 단독 인터뷰하여 <시사IN> 창간호에 제공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 기사로 캐나다에 살면서 특종상을 받았다. 기사나 칼럼이 아닌 창작물도 더러 썼다. 그런 글로, 한국 살 적에는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문학상을 두 차례(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및 산문 부문) 받았다.

<시사IN> 편집위원이며, 3년 전부터는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연구소는 직함이 필요해서 내가 만든 것이다. 그래도 책을 여럿 펴냈으니 연구 활동과 무관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민 초기 캐나다살이를 이야기한 <느리게 가는 버스>, 한국 커피 장인들을 인터뷰해서 엮은 <커피머니메이커>, 한국의 외씨버선길과 제주올레길 완주기 <외씨버선길> <폭삭 속았수다>, 그리고 내 스승들에 관해 적은 <딸깍 열어주다> 등 다섯 권이다.

 

 

차례

 

책을 내며 캐나다 이방인, 한국 이방인 9

 

캐나다 이야기

내가 캐나다로 간 까닭은? 15

캐나다 정부가 이민자 공존을 돕는 이유 21

캐나다의 고용 사다리공채 없이 알바 계약직 정규직 28

매뉴얼 천국의 느림보 문화 36

어린이병원에 기꺼이 기부하는 까닭 39

위험에 처한 아이 모른 척하면 범죄 48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52

공자님 말씀에 충실한 캐나다 대학 55

다름 인정하고 존중하는 서방예의지국 58

성적 1등으로는 졸업생 대표가 될 수 없는 나라 61

캐나다처럼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면 67

천국은 없다장점만 보고 와서 단점도 안고 사는 이민 71

 

동포사회 이야기

한국 사람 조심하세요? 81

한인 요양원’, 정체성 확인시켜주는 디딤돌 88

노는 모임 거의 없는 재미없는 천국 95

캐나다 한국식당은 외국인이 주고객 103

같은 유색이면서 흑인 차별하는 동양계 이민자들 110

해외동포, 모국이 불러주자 꽃이 되었다 116

한국 책 갈증에 오아시스 같은 토론토도서관 119

 

자영업 이야기

자영업 하려면 부터 만들어라 129

나는 왜 복대를 차게 되었나 136

남자도 힘든 주방에 아내를 밀어넣었던 이야기 139

여기서도 자영업자는 오답노트의 주인공 146

단골자처하는 손님치고 진짜 단골은 없다 153

밑지고 판다는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 160

 

일상 이야기

이민 초기 베이커의 추억폴리시 비어 굿” 165

캐나다도 한국처럼 시민들은 현명하다 168

점점 잦아지는 캐나다의 대형 재난 175

웬만하면 바꾸지 않고 오래 쓰는 문화 183

팬데믹 3년에 친절해진 미국 사람 190

캐나다 크리스마스는 가족·파티·선물이 필수 198

담배 끊은 건 뉴욕 화가들 덕분 205

캐나다 주택 오래 살면 맥가이버가 된다 208

김장할 때 무 썰기를 자청한 내력 215

한국 환자가 캐나다 의사 치료해준 이야기 217

 

대중문화 이야기

멀쩡한 모국 LP 보면 왜 마음이 짠해질까? 223

캐나다에서 실감한 K컬처의 초압축 성장 227

딸에게 모국어를 가르쳐준 한류 235

한국이 대단한 줄을 한국 사람만 모른다 242

동포사회와 모국을 이어주는 한국 대중문화 245

BTS로 뉴욕에서 나눈 정담(情談) 252

미나리가 불편하다 255

윤여정의 뼈 있는 수상 소감 263

고교생 딸의 영화 택시운전사관람기 268

 

젠더 이야기

캐나다만의 독특한 남자 서열 273

아들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가 여학생? 276

개저씨소리를 듣지 않는 한 가지 방법 279

토론토와 뉴욕의 지하철 성추행범 퇴치법 285

 

한국 이야기

3년 만에 한국서 만난 기분 좋은 낯섦 291

신천지예수교에 왜 20대 신자가 많을까? 298

사이먼과 노회찬 302

손혜원 똘끼는 어디까지 갈까 305

대학의 인문학 연구가 그리도 우스운가 310

기부도 이젠 젓가락장단 아닌 코인노래방이 주류 316

아버지와 짜장면 322

 

언론 이야기

캐나다 방송은 올림픽보다 패럴림픽이 더 활발 327

대장동 스캔들의 키워드 형님’ 331

쓰나미를 기획하는 양치기 언론 339

언론 부패의 온상 출입기자단’ 343

기자라면 최소한 붙어먹지는 말아야 349

밥 사주는 기자는 믿을 만한 기자다 354

 

문학 이야기

님 웨일스의 아리랑을 능가하는 조선희의 세 여자359

파친코, 재일동포 주인공을 향한 재미동포 작가의 무한한 공감 364

중간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슬픈 모국어’ 371

, 기성세대라는 말도 구리다 378

 

기형도 이야기

대학시절 친절한 기형도시인에게서 받은 편지 383

기형도의 참 좋은 안양 친구들그의 연시 최초 공개한 수리문학회 391

갑자기 생각난 기형도의 원고료 398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이른 아침 출근 시간에 토론토 시내버스를 탔다.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춰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바깥을 내다보니 시각장애인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던 버스 기사가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건너고 있었다.

(17, 내가 캐나다로 간 까닭은?)

 

캐나다 정부는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자기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지속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캐나다 시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한글학교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25, 캐나다 정부가 이민자 정착을 돕는 이유)

 

법도 안 만들고, 있는 법도 안 지키고, 법을 안 지켜도 단속도, 처벌도 안 하는 어른들 탓에 아이들이 희생되는 일이란 없다. 어쩌다가 작은 사고가 난다 해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그러니 캐나다 사회는 느리다. 나는 이 느림보 문화가 점점 더 좋아진다. 사회적으로 노하거나 슬퍼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38, 매뉴얼 천국의 느림보 문화)

 

느슨한 개똥 단속과는 반대로, 시민들을 늘 긴장하게 하는 단속이 있다. 물론 1순위는 시민 안전과 관련한 단속이다. 소화전 앞이나 소방도로에서 실수로라도 위반했다가는 인생이 피곤해질 만큼 가혹한 조처가 따른다. 운 좋게 단속을 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서, 소방서 앞 같은 곳에 주차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54,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 나와 밥벌이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한국 사람들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국 나가는 사람에게 한국 사람 조심하라는 말은 가급적이면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외국에서도 좋은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한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 사기꾼만 조심하면 된다.

(87, 한국 사람 조심하세요?)

 

캐나다가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다 보니 특이한 음식 냄새를 풍길까 봐 서로가 늘 조심하는 편이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도 많다. 한국사람들은 김치에 들어 있는 생마늘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하는데, 요즘은 예전처럼 긴장하지는 않는다. 한국음식에 대한 외국사람들의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K드라마, K팝에 이어 지금은 K푸드까지 뜨고 있는 것이다.

(107, 캐나다 한국식당은 외국인이 주고객)

 

육체노동을 할 수 있는 몸부터 만들어라.”

일단 네가 하려는 업종에 들어가서 최저임금 받으며 일을 해라. 그곳은 너한테 학교나 다름없다. 임금은 장학금이라 생각해라. 돈 받아가며 몸 만들고 일을 배우니 얼마나 좋은 곳이냐.”

(131, 자영업 하려면 부터 만들어라)

 

지하철역 안에 있는 우리 가게 손님들 중에는 물건을 사고팔 때 잠깐 스치는 손끝 느낌만으로도 험한 일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이들이 많다. 대개가 말없이 좋은 손님들이다. 토론토 자영업자인 나로서는 그런 손님들이 마음 편하게 쇼핑하고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가게를 만들었으면 소망을 늘 품고 있다.

(159, 단골자처하는손님치고 진짜 단골은 없다)

 

토론토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온다. 마당에 쌓인 눈을 자주 치워야 하는데, 이 또한 중노동이다. 눈 치우는 일은 낙엽 치우기와 더불어 가장 고되고 힘든 일에 속한다. 눈과 낙엽

을 치우는 일만큼은 온 가족이 달라붙어야 한다. 혼자 했다가는 앓아눕기 십상이다.

(213, 캐나다 주택 오래 살면 맥가이버가 된다)

 

외국에 살러 오면서 모국 음악을 듣겠다며 들고 나왔겠으나, 살기에 바빠 들을 시간이 없어서 음반 상태가 깨끗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오래된 LP음반이 으레 그렇듯이 많이 긁히고 먼지가 쌓여 있었다면 짠한 마음이 덜 했을 것이다. 주인은 연로해서 요양원에 들어갔거나 작고해서, 동백아가씨를 모르는 자식들이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226, 멀쩡한 모국 LP 보면 왜 마음이 짠해질까?)

 

나중에 한국에 보내서 우리말을 배우게 해야겠다고 여기던 차에 신기한 일이 생겨났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말과 글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경로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을 접하고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소녀시대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받아적기 시작했다. 자발적인 한글 공부였다. 한국말을 하고 한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은 또래 팬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을 사는 일이었다.

(231, 캐나다에서 실감한 K컬처의 초압축 성장)

 

거래처의 중국인 사장이 정말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가 있는데, 봤느냐?”고 물었다. 겨울연가라고 했다. “보지 않았다고 했더니 그는 정말이냐?”며 놀라워했다. “볼 생각도 없다고 했더니 그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그는 겨울연가DVD를 불쑥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서 꼭 봐라.” 외국인인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고, 시청을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는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247, 동포사회와 모국을 이어주는 한국 대중문화)

 

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들면서 북미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아시아인 혐오 폭행이 터져나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보자면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 소감이 예사롭지 않다. 혐오와 폭행 위협을 날마다 피부로 느끼는 이곳의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네들은 나 같은 아시아 사람 이름도 정확하게 못 부르지? 그만큼 네들이 아시아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건 아니니? 사실 나는 그게 불만이었는데 오늘은 상을 줬으니까 용서해줄게.”

(265, 윤여정의 뼈 있는 수상 소감)

 

이곳에 서열이 있다는 거 알아?”

캐나다에 살러 온 직후에 만난 어느 선배가 대뜸 나에게 물었다.

서열이라뇨?”

캐나다에는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서열이 있어. 어린이, 여자,

, 강아지, 그다음이 남자야.”

(273, 캐나다만의 독특한 남자 서열)

 

나는 그의 죽음을 접하면서 토론토 유대인 커뮤니티의 사이먼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사이먼이 공급하는 물건은 무조건 싸고 좋다는 믿음은 수십 년 헌신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에서 연유한다. 노회찬의 죽음에 마음 아파하는 우리는 왜 살아생전 그에게 사이먼식의 존경과 신뢰를 보내지 못했을까? 그가 그것을 느끼고 자기의 진정성을 사람들이 알아주리라 믿었더라면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304, 사이먼과 노회찬)

 

패럴림픽 방송이 올림픽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화제가 되는 선수나 메달리스트들을 집중 조명하는 것은 비슷했으나 패럴림픽 방송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올림픽 방송이 스포츠 경쟁에 관심을 두었다면, 패럴림픽 방송은 그것을 뛰어넘어 간극장이나 다름없었다. 장애인 선수 모두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인 만큼 그 이야기를 사전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데 치중했다.

(327, 캐나다 방송은 올림필보다 패럴림픽이 더 활발)

 

공적인 관계에서 사용하는 형님이라는 호칭은 과거 언론계에서 횡행하던 촌지와 그 성격이 유사해 보인다. 촌지나 형님 호칭은 공적인 관계를 내밀한 사적 관계로 만들어버린다. 내밀하면 할수록 결속력은 더 강해진다.

(334, 대장동 스캔들의 키워드, ‘형님’)

 

파친코를 다 읽고 나서, 이 소설이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이유를 내 나름으로 생각했다. 작가 이민진이 일본이 아닌 곳에 사는 한국 이민자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일본 바깥에서 살고 있기에 재일동포들의 처지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 스스로 이민자의 자식이어서, 같은 이민자인 재일동포들의 아픔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370, <파친코> 재일동포 주인공을 향한 재미동포 작가의 무한한 공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22년 이민 생활을 하며 알게 된

흥미로운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를

13년 기자 경력의 필력으로 녹여내

기형도 관련 추억과 시편도 수록

 

22년 전 13년차 기자 성우제는 장애를 가진 자녀 때문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장애인을 캐나다에서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시사잡지 기자 생활을 접고 월급을 모은 돈과 아파트 판 돈을 갖고 캐나다로 날아갔다.

이민이란 몇십 년 살아온 자신의 뿌리를 통째 뽑아서 옮겨가는 존재의 결단이었다. 특히 새로 잔뿌리를 내리지 못한 초기 이민 생활은 새로운 정착과 생존을 위한 고달픈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그로서는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 몸부림은 더욱 절박하였다.

새 나라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몇 안 되는 선택지에서 자영업을 하기로 했다. 펜대나 굴리던 그는 준비 작업으로 음식점에서 알바를 얻어 몸이 으스러지게 일했다. 어떤 날은 끊어질 듯 아픈 허리에 복대를 하고 기어서 출근한 적도 있다. 그러다 좋은 한국인과의 인연으로 먹고살 만하게 되기까지는 <극한직업>에 가까운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먹고살기 바빠도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있게 마련이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캐나다에서는 특별한 사건으로 여겨지곤 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젠더·인종·신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한국에서는 예사이지만 캐나다에서는 범죄였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포용의 사회인 동시에 한 번 정한 원칙은 지위고하를 떠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나라였다. 물론 캐나다라고 좋기만 하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비추면 한국은 아직도 많은 새로 고침이 필요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민 초기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10년 전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모든 분야에 걸친 눈부신 성장이었다. 씨앗은 이미 20년 전에 움텄지만 하필이면 그즈음에 K컬처를 필두로 한꺼번에 뿜어져 나왔다. K팝은 아이에게 모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캐나다 극장가에는 한국 영화가 일상으로 걸렸다. 토론토 한국음식점은 오히려 외국인들로 붐볐으며 K드라마 또한 외국인이 먼저 알고 한국 이민자에게 권하는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어쩌다 한 번씩 모국을 찾아오면 그때마다 이전과 달라진 새로운 낯섦에 묘한 즐거움도 느꼈다.

이런 22년차 캐나다 이민자가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를 펴냈다. 이번에 경남도민일보에서 나온 이 책은 그동안의 생생한 체험이 바탕이어서인지 머리로 쓴 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읽힌다. 캐나다나 이민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의 여러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우리 사회가 출생률 급감에 따른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하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볼 대목도 제시하고 있다. 말미에는 기형도 시인에 대한 추억과 시편도 몇 꼭지 담았는데 문학애호가들에게는 달콤한 샘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주제어 : 문화, 한국, 캐나다, 문학, 인문, 기형도, 영화, 소설, 대중문화, 선진국, 장애인, 원칙, 공존, 정착

 

분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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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5. 12. 30. 17:36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알 수 없는 사용자

 


제목 혜주

부제 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

펴낸날 2016년 1월 1일
가격 13,000원
반양장본 | 428쪽 | 140*214mm
ISBN ISBN  979-11-86351-01-7 (0398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정빈(丁彬)

 

 

책 소개

 

어린 여왕의 손에 흔들리는 조선
가족을 잃고, 권력의 행패를 보다 못한 백성들이 외친다

 

400년 전 조선왕조의 비밀을 품은 책이 마침내 열렸다.
비록(祕錄)은 놀랍게도 조선에 여왕이 있었다 한다.
아버지 광조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어린 혜주(慧主)는 활달하고 솔직하다. 국정을 처리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고 숨겨진 정인(情人)에게 애욕을 표출하기도 한다.

‘백성을 보전치 못하는 무능한 군주는 물러나라!’
혜주가 왕이 된 지 4년, 백성들은 못 살겠다 농성을 벌인다. 그런 백성들을 뒤로한 여왕의 얼굴 뒤편, 400년 전 조선을 만나보자.

 

 

지은이 소개

 

정빈(丁彬)

 

지난 30여 년간 역사 연구와 저술을 해왔다.
더 이상의 작가 소개는 원하지 않았다.

 

 

 

목차

 

1부 잊혀진 세월
지독한 가뭄
비밀상자
오 박사
중시조
돌연한 방문
무언의 다짐

 

2부 회운사의 종소리
춤추는 꽃신
두견차
여시아문
목멱산 심야모의
숭현각(崇賢閣)
야합
급보
특사
빈계토쟁
황소 뿔
육임추간격
49재
밀약
청솔가지

 

3부 애욕의 시간들
면류관
제조상궁
국사
별직
간자(間者)
대비전
3인방
일전불사
남-북파
곡차
연리목
난욕(蘭浴)
방중술
기청제(祈晴祭)
정인(情人)

 

4부 참극의 말로
두물섬
인재(人災)
연좌농성
이간책
괴벽보
단설형(斷舌刑)
정탐서(偵探署)
단골 주막집
미행, 그리고 폭로
대가뭄
장질부사
도끼상소
상가(喪家) 모의
시회(詩會)
거사, 막전막후
출생의 비밀
파멸


5부 기억과 망각

덕종(德宗) 시대
역사 말살
회한
대특종
창엽문(蒼葉門)

 

 

책 속으로


대체 서실에는 무슨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혹시 조상의 미라 같은 걸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송 선생은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대문 열쇠까지 포함해 열쇠 꾸러미의 열쇠는 총 여덟 개. 그 가운데 서실 열쇠가 제일 무뎠다. 평소 사용하지 않아 녹이 슨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열쇠를 돌려본 끝에 송 선생은 겨우 서실 문을 열었다. 창문이 없는 데다 비까지 와서 내부가 어두컴컴했다. 
(P.15)

 

마침내 묘시(卯時)를 알리는 고동이 울자 근정문에서 새 임금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 왕들과는 달리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조선왕조 첫 여왕의 등장이었다.
여왕은 아홉 개의 구슬을 꿴 줄이 매달린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이 줄들로 인해 왕의 시야가 가렸는데 이는 악을 보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면류관 양옆에 달린 작은 솜뭉치는 왕의 귀를 막아 나쁜 말을 듣지 말라는 뜻이다.
여왕은 내시와 상궁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근정전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여왕의 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른편에 자리를 잡고 있던 북파도 이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답도(踏道) 앞에 다다르자 여왕의 눈에 봉황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봉황은 용과 함께 왕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아! 이제 내가 정말 왕이 되는구나!
여왕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변이나 모반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혜명공주로서도 감회가 없지 않았다.
(P.160)

 

괴벽보에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두물섬 수몰사고를 조장했다고 했다. 그 증거로 누군가 두물섬 나룻배를 묶어뒀던 동아줄을 예리하게 자른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마을 전체에 달랑 한 척뿐인 나룻배를 그리 했다면 그건 누군가 주민들을 수장시키려고 작정한 것이나 진배없다.
그러나 의금부는 이에 대한 진상조사는커녕 이기호 도제조 이하 전 관속이 총동원 돼 범인 검거에만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보름이 지나도록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그 와중에 시월 초 또다시 괴벽보가 나붙었다.
이번에는 경복궁 코앞인 광화문 앞 육조거리였다. 신출귀몰한 범인의 행적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새로 나붙은 벽보의 내용이었다.
‘어린 여우가 중놈과 궐에서 놀아나고 있다.’
‘어린 여우’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혜주를 두고 한 것임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그리고 그 소문은 그리 오래지 않아 전국으로 퍼졌다.
궐로도 소문이 퍼지자 대궐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혜주에게 보고하지 못했다. 당사자인 무극은 물론이요, 3인방 가운데 하나인 노천조차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근래 들어 혜주는 날로 성격이 날카로워졌다. 그런 혜주에게 이런 내용을 보고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았다.
(P.298)

 

그 시각 서준기는 뭔가를 열심히 쓰더니 막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 쓴 종이를 거적때기 위에 펼쳐놓았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벌벌 떨며 가까이 가는 것조차 두려워하였다. 서준기가 종이 위에 쓴 것은 ‘주상의 실정(失政) 및 국기문란 7개 죄목(罪目)’이었다. 서준기는 이미 죽을 각오를 한 몸이었다.
一. 법적 근거도 없이 별직, 정탐서 등을 만들어 국법을 농락한 죄
二. 적법한 절차 없이 단설형을 제정하여 권한을 남용한 죄
三. 조선조의 국정방침인 숭유억불 정책을 위반한 죄
四. 두물섬 참사를 사전에 막지 못하고 사후처리를 소홀히 한 죄
五. 내수사 쌀 매점매석 의혹 사건의 재수사를 막은 죄
六. 혜민서의 역병 예방 및 사후조치를 소홀히 한 죄
七. 궐내에 정인(情人)을 끌어들여 음사(淫事)를 일삼은 죄
(P.353)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오래된 종택 제각에 잠들어있던 한 권의 비록(祕錄)
회운사 종소리와 함께 여왕이 깨어난다

 

비밀을 간직한 승려와 상궁 사이에는 은밀한 눈빛이 오가고 숙부를 몰아내 왕좌에 올랐던 광조는 병상을 지키다 세상을 떠난다. 광조와 왕후 사이에 남은 건 혜명공주 하나,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오른 그녀와 곁에 있게 된 한 승려….

<혜주>는 거침없이 읽힌다. 빠른 전개 속에서 개성을 드러내는 인물들 각자의 사연은 탄탄하게 이야기의 밑을 받친다.

소설 <혜주>는 검붉다. 목탁소리, 풍경소리가 들려야 할 절에서 남녀의 숨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의금부 앞마당에서 백성의 혀를 자르는 형이 집행되기도 한다. 순수하고 발랄했던 어린 공주가 폭군 혜주(慧主)로 변해가는 모습을 작가는 충실하게 그려나간다. 조선은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 두물섬이 수몰되는 참사가 벌어지고 역병으로 많은 백성들이 손 쓸 틈 없이 죽어나간다. 그 마지막에는 무엇이 있을지, <혜주>를 끝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주제어: 역사, 여왕, 혜주, 조선
분류: 문학, 소설, 한국소설, 한국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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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5. 3. 1. 11:19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알 수 없는 사용자

 

 

제목 천개의 바람
펴낸날 2015년 1월 25일
가격 10,000원
반양장본 | 136쪽 | 135*215mm
ISBN 979-11-950969-1-6(0381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저자    김유철

 

 

책 소개

시선은 풍경과 일상을 훑다 팽목항에서 멈췄다
흩어진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김유철 시인의 신작 시 80편

맹골수도, 팽목항, 세월호……. 그리고 촛불.
모두를 아프게 한 고통에서 시인도 예외일 수 없었다.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도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가장 사랑하는 순간에 잃어버리고 우리는 바람 속에서 울었다. 하도 서러워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바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불었다.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린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시인은 차마 펑펑 울지 못한 채 시 속에 먹먹함을 녹였다.

김유철 시인은 시들의 집을 지어주는 일은 이번 시집 <천개의 바람>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에게서 나올 시는 아직 남은 듯하지만 이제 시들은 스스로 집을 지을 것이라고….

「천개의 바람」을 포함한 80편의 시에서는 시인의 다양한 정체성이 느껴진다. 노동자로서 종교인으로서 시를 쓰는 ‘나무’로서, 그는 펼쳐지는 상황과 마음속 감정을 넓고 세심하게 포착해 시로 단련한다.
충만한 감수성으로 계절을 느끼고 일상에서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감당하지 못할 슬픔을 견딘다. <천개의 바람>에서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저자 소개

시인 : 김유철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노동자를 거쳐 천주교 수도자로 지냈던 적이 있다.
청소년교육에 한동안 살았다.
<공동선>. <분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글을 쓴다.
이미 시인이면서 아직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
‘나무’라는 덧이름을 쓰는 사람.
‘나무처럼 서 있기. 나무처럼 기다리기. 그냥 나무처럼’.
南無로 새기는 사람.
2008년 경남가톨릭문인협회 신인상. <에세이문예> 신인상.
경남작가회의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추천.
경남민언련 이사와 창원민예총 대표을 했다.
현 경남민예총 부회장.

저서
시집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목차

시인의 말
여는 말 (풍경소리)-도법


靜 / 쉿!

봄 飛
봄길
강물에게
엎드려 듣는 빗소리
물, 마음을 풀다
문신
나무는 통로다
조계산에 깃들여 사는 스님은 봄부터 가을까지 수굿이 밭을 일군다
六何 너머
이유
소풍
체감온도
처음
靜中動
새벽에 귀 기울여

동백과 나
떨어져서 핀 꽃에게 물어보고 싶을 말
그 파도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동백, 맹골수도에 피다


中 / 저울의 추

수도승
도법이 쓰는 시
백팔 촛불을 켜다
구럼비 철조망
그저 흐르게 할 일
햇살은 부활하지 못한다
나는 아직도 그 분의 걸어가는 모습이 보고싶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너
들꽃은 햇볕을 찾아 자리를 옮기지 않듯이
바람이 하는 일
천개의 바람
스승나무
그림 같은 집
시간을 견디며 시를 쓰는 동안
파도는 파도를 일으켰다


뜨거운 물음에 뜨겁게 답했다
아름다운 사람
모순이 아름다운 집


動 / 울림, 떨림,

누구나 소설 몇 권은 쌓고 산다
홀로 맞는 가을이 깊습니다
그리움이 간절한 사람은 먼 곳을 본다
화석이 된 그리움들
슬픔의 뿌리
시간
언덕에 떠 있는 달
가을밀물
가을에는 쉬엄쉬엄 가시라
가을이 나를 품고서
배달되지 않은 편지
넘어가다

별꽃
그대삼아 물어볼 말이 생각났다
천개의 강에 드리운 달
俗離로 가는 길
그대의 얼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성당 종소리


無 / 흩어지다

연잎 닮은 당신에게

무의미
심포항 가는 길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불. 불길.
사람들보다 가까운 우주
나무는 나무에 기댄다
겨울산
겨울 창에 뺨을 대다
기적
그런 날이 있다
힘든 하루
클라라와 프란치스코
장인을 묻고 돌아와
歲暮에는 달도 흔들린다
길에서
거룩한 죽음
하늘이 나를 부르시면
임종게
소풍 그 다음 날

작품 평론-김원

 

 

책 속으로


봄 飛

꽃으로 시작되는 소풍이 얼마나 아름다우랴
적막으로 시작하는 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첫 날갯짓으로 창공을 수놓는 것
그래 우리네 소풍은 봄 飛로구나
-19쪽

 

동백, 맹골수도에 피다

한 송이
한 송이 꽃이 되어
바다 속 동백꽃이 되었습니다
모진 바람에 씻기어도
거센 풍랑이 몰아쳐도
붉은 동백은 피어나듯 임들은 그렇게
바다 속 동백꽃이 되었습니다
떨어져서 피는 꽃이 동백이라 했던가요
통째로 떨어져서 슬픈 꽃이 동백이라 했던가요
한 송이 꽃 속에 온 생명이 담겨 있듯
보고싶다는 외마디 속에
짧았던 인연 온 마음을 담습니다
맹골수도를 동백밭으로 만든 임들
부디,
부디,
안녕
-41쪽

 

시간을 견디며 시를 쓰는 동안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흙길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견뎠습니다
-61쪽

 

힘든 하루

하루 종일 마음이 일렁였다
찬바람은 참나무 잎을 바스락거리게 하고
물기 없는 나무들의 겨드랑사이를 일없이 비비는데
마음은 웬 종일 밀물 들이닥치듯 일렁였다

숙차라고 이름표 붙어진 보이차 종이봉투를 열었다
향은 나오는 듯 안 나오는 듯 했지만 물은 이내 끓었다
끓는 찻물이 끓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아니 찻물은 애씀 없이 제 마음만 애를 태웠다

밀물이 썰물로 바뀌는 여기가 울돌목인가
수도 없이 나타나는 얼굴. 이름. 숨결.
짧은 해는 지려하고 겨울 서쪽은 붉음 없이 어두워지려하는데
밀물과 썰물은 반복했다

다 끓은 찻물이 숙차를 보이차로 만드는 동안
제 마음은 삭풍 지나간 포구나무처럼
적막해졌다
힘든 하루가 갔다
-109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천개의 바람> 출판사 리뷰

시선은 풍경과 일상을 훑다 팽목항에서 멈췄다
시를 밀어내며 야속한 시간을 견딘 시인의 목소리

김유철의 시는 단단하면서 무르다. 읽는 이에게 거칠게 다가오지 않는 본연적인 따스함이 있다. <천개의 바람> 속에는 여기에 그리움이 더해졌다.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린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시인은 차마 펑펑 울지 못한 채 시 속에 먹먹함을 녹였다.

김유철 시인은 신이 주신 계절을 느낀다. 봄이 다가보자 온 천지에 온기가 돈다. 꽃이 맺히고 곳곳에 옅은 연두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시인은 여느 때처럼 펼쳐지는 풍경을 가슴에 담는다. 밭을 일구는 스님의 숙어진 몸짓을 바라본다. 땅 기운을 받아 자라난 나무에서는 정직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시 속에는 묵묵한 일상도 들여다보인다. 노동을 하고 치열하게 사색하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치뤄낸다. 일상 그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 시인은 더 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라졌다. 바람을 분명 내 품에 품었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다. 천지는 순식간에 얼음장으로 변한다. 바람이 떠난 후의 시간은 서럽기 그지없다.
우리 모두가 바닷물에 잠겼다. 입이 굳었고 손,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야속하게 시간은 빨리 달렸다. 새봄이 오고 있지만 우리 걸음은 지난봄에 멈췄다. 시에 그리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모두를 아프게 한 고통에서 시인도 예외일 수 없었다.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도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것이었다.

그날 새벽에도
그곳에 촛불 켜지겠지요

눈이 내리면 좋겠습니다

고마웠었습니다
미안했었습니다
사랑했었습니다

ㅇㅈㄴㅇㅇㄷㅅㄴㄴㅁㅇ.

- 「소풍 그 다음 날」 전문

 

서럽게 한해를 보내도록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 시인은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사랑했다고 말한다.
시 속에서 ‘바람’은 시원하거나 매서운 존재가 아니다. 그저 아무 흔적없이 사라질 뿐이다.
시인은 그래서 붓으로 바람을 새겼다.

 

 

뜨거운 너, 돌아오지 않는 너

바람은 무엇으로 자신이 왔다갔음을 전할까.
바람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것인가.
그 어떤 것으로 바람이 왔던 순간을 잡아챌 수 있으며 그 어떤 말이 바람을 받아 안을 수 있는 것일까.
사라져버린 내 사랑, 이제 바람만이 알아줄 것인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사랑하는 이를 가장 사랑하는 순간에 잃어버리고 우리는 바람 속에서 울었다. 하도 서러워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바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불었다. 

그 바람마다
소리가 있기를

그 바람마다
춤이 있기를

그 바람마다
진정, 바람이 있기를

천개의 바람마다

- 「천개의 바람」 전문

 

김유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천개의 바람> 속에는 우리가 차마 받아들여야 했던 그러나 기어이 보내지 못한 지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들어있다. “엎드려 듣는 빗소리는 너였다”는 바닥 밑에서의 깨달음마저도 사치 같았던 시간들이었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묻고 또 묻고 싶었던 한 마디.

오늘이 지나면
오늘이 지나면
오늘이 지나면

다시 오시나요

- 「떨어져서 핀 꽃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 전문

 

철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는 나의 죽음이 아니다. 너의 죽음이다. 사랑하는 너의 죽음을 살아생전 보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기도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너보다 오래 살아남아 너를 고이 떠나보내 줄 수 있어야 사랑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랑이다. 사랑의 잔혹한 맨얼굴이다. 맹골수도에서 우리가 맞이한 참혹한 사랑의 현재現在다.

-시집 평론(김원) 중에서

 

주제어: 김유철, 천개의바람, 세월호, 팽목항
분류: 문학, 시, 한국 시, 현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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