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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세대를 위한 함안 금라전신록 산책
제목 한글세대를 위한 함안 금라전신록 산책
펴낸날 2023년 12월 7일
가격 16,000원
반양장본 | 168쪽 | 152*225mm
ISBN 979-11-86351-63-5(0390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책 소개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금라전신록
『금라전신록』은 함안이라는 지역을 바탕 삼아 만든 저작물이다. 지역을 중심에 놓은 문집은 조선시대는 물론 고려시대까지 통틀어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흘러가고 지역이 메말라가는 지금의 현실에서 이 책이 지니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금라전신록』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행적과 시문은 함안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아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행적들이 적지 않다.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도 풍성하다.
지금 관점으로도 여전히 필요하고 뜻깊은 부분을 먼저 추렸다. 재해석이 가능하거나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만하거나 재미있게 읽힐 거리도 챙겼다.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하고 새롭게 의미를 더하면서 설명과 해설을 입히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1999~2023년 경남도민일보 기자
저서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비매품)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
<가야로 가야지-쉽고 재미있는 가야 역사> 등
목차
머리말_이 좋은 고전을 기억 너머로 보내지 않기 위하여
1장 인물
1. 어변갑의 뛰어난 글재주
2. 글솜씨는 뛰어났지만 불행했던 조욱
3. 단종을 위하여 숨어 살았던 조려
4. 조려의 후손은 벼슬을 하지 않았을까?
5. 그러면 고려 충신의 후손은 어떻게 했을까?
6. 2대에 걸친 사랑 이야기
7. 옛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8. 용퇴가 왜 중요할까
9. 선물 받은 귀한 은어를 먹지 않은 이유는
10. 죽을 때 웃을 수 있다면
11. 유머 뒤에 우뚝했던 기개
12. 소년급제는 위험하다
13. 서울 조정에서 사투리를 썼다
14. 소귀에 경 읽기를 한 까닭은
15. 착한 사람은 자기보다 어려도 공경했다
2장 느낌과 생각
1. 비둘기 시
2. 달팽이 시
3. 낙방의 씁쓸함
4. 아들의 출세가 기쁜 까닭
5. 늙음을 노래함
6. 자식을 잃은 슬픔
7. 난리통에 고향 생각
8. 가야의 후예라는 뚜렷한 인식
9. 황은이 맞는 걸까?
10. 까마귀가 어리석나 사람이 어리석나
11. 언제나 좋은 물 이야기
3장 풍속
1. 천둥번개는 하늘의 경고였다
2. 옛날 결혼과 요즘 결혼은 무엇이 다를까
3. 지금과 달리 흔했던 처가살이
4. 부모님 봉양을 위해 외직을 한다
5. 친인척이 오자 벼슬 자리를 바꾸었다
6. 부모가 죽으면 벼슬을 그만두었다
7. 부자간의 벼슬 바꿔치기
8. 이 정도는 아파야 벼슬을 그만두지
9. 부모 초상에는 몰골이 수척해야 했다
10. 그때도 극심했던 서울 중심주의
11. 배척되지 않는 불교, 까닭은?
4장 금라전신록
1. 『금라전신록』이란 무엇일까?
2. 『금라전신록』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3. 『금라전신록』을 왜 편찬했을까?
4. 『금라전신록』 인쇄는 언제 되었을까?
5. 『금라전신록』에서 ‘금라’는 무엇일까?
6. 『금라전신록』을 편찬한 조임도는
7. 자료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8. 역적 김안로의 글을 전부 실은 까닭은
9. 묘갈명·묘비명·묘지·신도비명 등은 요즘으로 치면 무엇일까?
부록 : 『금라전신록』 상·하권 목차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바람이 세 차례 거세게 몰아치니 고기가 갑옷으로 변하는데 둘씩 짝을 지으려면 원래 실력이 어금버금해야 하지만그대 이름만 용문 위에 올라도 그만이지.”
이 시는『금라전신록』의 ‘집현전 직제학 어변갑 행장’에 들어 있다. ‘세 차례 몰아치는 바람’은 세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과거 시험 절차를 비유한다. 다음에 나오는 ‘고기(魚)가 갑옷(甲)으로 변한다(變)’는 한자로 쓰면 바로 어변갑(魚變甲)이 되고, 아래로 이어지는 내용은 바로 그 어변갑이 2등과 큰 격차를 보이며 1등 장원을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의 용문(龍門)은 과거 합격을 뜻한다. (본문 16쪽)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렵고, 죽은 뒤의 세상을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렵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떨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다. 그래서 이렇게 죽음을 앞두고서도 의연했던 옛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성혼(1535~1598년)이 친구 조감을 위해 쓴 앞의 묘갈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되새길 만한 내용이다.
“죽고 사는 즈음에도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인품이 높고 삶을 대하는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힘쓰고 원한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다.”
(본문 50쪽)
동생 집의 불쌍한 비둘기
암컷은 새끼를 사랑하고 수컷은 암컷을 사랑하여
‘구구’ 하는 것이 주인의 사랑에 보답하는 듯하구나
하루아침에 잇달아 고양이 입에 들어갔네
새장을 소홀히 했으니 누구의 잘못인가
고양이를 탓하겠나 비둘기를 탓하겠나
단속 제대로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지.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동물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둥지를 만들어주고 애지중지 기르던 비둘기가 고양이 먹이가 된 후 느꼈던 안타까움이 잘 드러난 시다.
어변갑이 쓴 이 시에서 ‘구구 하는 것이 주인의 사랑에 보답하는 듯하구나’라는 대목을 보면 비둘기를 기르면서 누리는 즐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금은 집에서 기르는 일이 드문 비둘기가 반려동물이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본문 66~67쪽)
본문에 나오는 ‘나’는 성혼(1535~1598년)이라는 인물이다. 조감의 장인 백인걸을 스승으로 모시고 같은 집에서 다섯 살 많은 조감과 동문수학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적은 글이다.
성혼은 조정견의 아들 조감과 백인걸의 딸이 어떻게 해서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졌는지를 전해주고 있는데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딸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 아버지가 훌륭해서 며느리로 삼았다니 요즘 20~30대가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성혼의 아들과 조감의 딸이 맺어진 사연은 더더욱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성별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양쪽 아버지의 결정만으로 결혼이 성사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데에는 시대 상황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결혼의 주체가 당사자 개인이 아니라 가문이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남자와 여자 개인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게 당연한 세상으로 바뀌었다.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는 결혼이 갖는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본문 104~105쪽)
옛날에는 부모 초상이 나면 술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삼년 동안 죽만 먹는 것이 기본이었다. 전복죽이나 잣죽 같은 영양이 풍부한 것 말고 쌀을 갈아서 만든 묽은 죽이었다. 몰골이 많이 수척해져야 초상을 제대로 치렀다는 인정을 받았고 본인 역시 도리를 다하려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과 마지막 떠나는 길에 예의를 다하고자 하는 심정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효도인지는 의문이다.
스승 장현광(1554~1637년)이 제자 조임도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되새겨볼 만하다. 그는 1622년 어머니 상중이던 조임도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자네의 상례가 중도를 넘어 견디기 힘들다고 들었네. 효성을 다하는 도리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몸을 잘 보존하는 한편으로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선조를 추모하는 일을 길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네.”(본문 124~125쪽)
함안에는『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이라는 책이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시대인 1639년에 함안의 선비 조임도가 갖가지 자료를 모아 묶어낸 책이다. 책의 성격과 내용은 제목 ‘금라전신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먼저 ‘금라’는 함안을 가리키는 옛날 별명이다.『세종실록 지리지』(1452년)와『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그리고『고려사』(1454년)에 이르기까지 아시량(阿尸良)·아나가야(阿那伽倻)·함주(咸州)·사라(沙羅)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별호이다.
‘전신록’에서 ‘전’은 전해 온다는 것이고 ‘신’은 믿음직하다는 뜻이며 ‘록’은 기록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믿음직하게 전해져 오는 기록이 전신록이다. 금라까지 합하면 함안에 전해오는 믿을 만한 기록을 담은 책이『금라전신록』이다. (본문 136쪽)
『금라전신록』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역을 중심에 놓고 여러 인물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주관에 휘둘리거나 감정에 치우쳐 아무 이유 없이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지역사회로부터 곧바로 지적과 외면을 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조임도는 원칙을 정하고 엄격하게 적용해 취사선택을 했다. 서문에 나와 있는데 ①인물과 문장이 모두 귀중하면 당연히 싣고 ②인물은 훌륭하지 않아도 문장이 사랑스럽거나 ③문장은 뛰어나지 않으나 인물이 아까우면 채택했으며 또 ④인물을 버릴 수 없는 경우는 문장이 전해지지 않아도 그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당성, 어느 누구로부터도 틀렸다는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객관성, 과거와 당대의 훌륭한 인물과 문장을 남김없이 후세로 전달하는 효용성 셋을 두루 아울러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본문 139쪽)
지역의 수령이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함안의 훌륭한 군수였고『함주지』의 편찬을 주도한 한강 정구를 보기로 들 수 있다. 그는 1586년 부임하자마자 사람을 시켜서 함안에 있는 훌륭한 인물들의 무덤을 찾아가 다듬도록 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제사까지 올렸다.
박한주는 연산군의 폭정에 충언을 아끼지 않다가 미움을 산 끝에 유배길에 올랐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자신보다 앞서 창녕군수를 지낸 선배인데다가 그 행적과 인품을 존경해서 그 무덤을 찾았다. 이밖에 이교·이원성·다물의 무덤도 찾아가 돌보고 다듬게 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모두 효성이 지극한 효자들이었다.
정구의 이런 행보는 당연히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면서 새로 온 군수는 충성과 효도를 다른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소문도 나게 되고 새로 부임한 고을에서 깍듯하게 예우를 갖추는 예의 바른 인물이라는 평판도 얻을 수 있었다. 정구 군수에게 무덤 참배는 고을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본문 162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이 좋은 고전을 기억 너머로
보내지 않기 위하여
함안이 기록의 고장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함주지』·『함안총쇄록』과 더불어 손꼽히는 것이『금라전신록』이다.『함주지』는 수령과 지역 유지들이 함께 편찬한 읍지이고 『함안총쇄록』은 수령 개인이 기록한 일기이며『금라전신록』은 함안 출신 인물들의 훌륭한 행적과 뛰어난 시문을 한데 모은 책이다.
『금라전신록』에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아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행적들이 적지 않다.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도 풍성하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금라전신록』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과『금라전신록』에 전해지는 여러 좋은 내용을 함께 알리는 것도 뜻깊은 일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문을 곧이곧대로 옮기기보다는 앞뒤 맥락을 감안하여 좀 더 알기 쉽도록 적절하게 가감첨삭했다. 한문체 특유의 산만하거나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생략한 대목도 적지 않다. 한자는 최대한 적게 쓰려고 했으며 특히 인명은 ‘공’이나 ‘선생’으로 대신 부르는 것을 없애고 모두 이름 석 자로만 표기해 가독성을 높였다.
텔레비전 같은 대중 매체 덕분에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대중화되고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에 초점을 맞춘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금라전신록』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행적과 시문은 함안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서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주제어: 함안, 역사, 풍속, 금라전신록, 함주지, 함안총쇄록
분류: 함안, 역사, 문화, 지역,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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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로 가야지
제목 가야로 가야지
부제 쉽고 재밌는 가야역사
펴낸날 2023년 9월 25일
가격 18,000원
반양장본 | 248쪽 | 152*225mm
ISBN 979-11-86351-60-4(0391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책 소개
대중적인 언어로 알기 쉽게 정리한
최초의 전체 가야 역사서
2023년 9월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되었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주변국과 공존하면서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해 온 ‘가야’를 잘 보여주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라는 좋은 평가를 받아 오랜 염원 끝에 기다리던 결실을 맺었습니다.
가야의 역사는 책을 통해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찾아 상상력을 펼치면 가야사는 훨씬 실감 나게 살아날 것입니다. 현장 탐방을 할 때 안내서로 활용해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아울러 가야를 알리고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기원도 함께 담았습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장
저서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비매품)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 등
목차
머리말
제1부 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
훑어보기
가야는 이름 부자
대표하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가야의 활동 무대는 어디까지?
가야의 시작은 언제부터?
가야의 역사(전기)
철의 왕국 가야의 탄생
가야의 화폐는 무엇이었을까?
가야 철소재의 인기 비결은
김수로와 석탈해 대결의 의미는?
언제까지나 걸을 순 없었던 꽃길
농수산물도 풍성했던 철의 나라
중국과 일본의 중계기지 가야
고구려의 낙랑·대방군 함락
위기는 기회로, 기회는 위기로
가락국이 지다
가야의 역사(후기)
새롭게 떠오르는 가야
대가야는 어떻게 가락국을 대신했을까?
미니어처 농기구는 어디에 쓰였을까?
대가야의 번성과 쇠락
가라왕 하지의 사신은 어떻게 중국에 갔을까 ?
언제나 넘버투였던 아라가야는 강했다
아라고당회의를 개최하다
가야의 종말
궁금한 이야기
가야 기록이 부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포상팔국은 어디에?
포상팔국은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
과거가 지금에게 건네는 이야기, 순장
순장에도 공식이 있었다
규모가 남다른 대가야의 순장
순장, 그 시작과 끝은
최강 군사력은 어느 가야였을까?
말의 일본 전래와 대가야
말은 화물차다? 장갑차다?
금공품도 전해주고
제2부 가야고분군을 찾아서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봉만큼 신성했던 대성동고분군
무덤 위에 무덤을 만들다
봉분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도
전국 유일 가야 전문 국립김해박물관
쓰레기장을 품은 봉황동 유적
대성동고분군과 짝을 이루는 왕성 자리
대성동과 어깨를 겨룬 양동리
국제 교류의 중심 김해는 항구 부자
조선 도로보다 튼튼했던 가야 도로
가락국에서 가장 신성한 구지봉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의 원래 모습은?
부부인데도 무덤이 떨어져 있는 까닭은?
경상북도 고령군
산성과 왕궁, 그리고 고분군
높이는 그대로인데 지름은 작아지고
공유에서 전유로
신라에서 백제로 다시 신라로
처음엔 아래에 나중엔 위로
무덤에서 웬 음식물이
최초의 왕릉급 제73호분
최초의 석재 대형분 제75호분
가장 크고 도드라진 제5호분
특이한 순장으로 유명한 제30호분
부부 두 쌍이 나란히 제32~35호분
순장이 가장 많은 제44호분
빈 순장곽은 무슨 연유로?
제45호분은 제44호분의 왕비?
불교 수용의 증거 고아리 벽화고분
마지막 왕릉급 고아2리 고분
대가야 흙방울에 담긴 건국신화
새 위계에 걸맞게 건국신화를 새롭게
전라북도 남원시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전라권 최초의 가야계 국가 사적
중국산 청동거울과 백제산 금동신발
다른 가야의 여러 문물도
활발한 교류의 원인은 풍부한 철 생산
여러 우여곡절이 담긴 제36호분
전라권 가야가 처음 확인된 월산리고분군
온전하게 출토된 중국산 제품들
운봉고원 최초의 대가야계 고분은
바뀐 양식과 바뀌지 않은 양식
전라북도 장수군
백두대간 서쪽의 유일한 가야 세력
동촌리고분군의 말편자
장계분지 가야 고분의 집게·망치·모루
운봉고원보다 많은 제철유적
봉수의 종착지는 장계분지
전북 동부 가야의 자율성은 얼마나?
경상남도 합천군
이주민이 주인이 되다, 옥전고분군
신라계와 백제식은 무슨 이유로?
구슬이 지천으로 널린 구슬밭
작지만 다채로운 합천박물관
살기 좋았던 자리, 성산토성
해인사 국사단에 모셔진 정견모주
월광태자는 월광사지를 거닐었을까?
세 사람의 엇갈린 운명, 신라 충신 죽죽비
경상남도 함안군
탁월한 입지 선정, 말이산고분군
질서정연한 무덤은 다 계획된 것
거대한 봉분의 숨은 비결
말이산과 통합된 남문외고분군
딱 봐도 아라가야, 함안박물관
아라가야의 왕성, 가야리 유적
초대형 고대 건물터 당산유적
성산산성은 가야일까, 신라일까?
경상남도 창녕군
두세 집단이 공존한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특징이 많다는 특징
신라와 친하면서 독자성도 지켰다
또 하나의 비화가야 계성고분군
가야 최대 고분이 여기에
순장 소녀 송현이의 환생, 창녕박물관
가야의 여명을 여는 창녕지석묘
경상남도 고성군
이어붙이기로 초대형? 송학동고분군
일본의 오해가 밝혀지다
여러 계통의 유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다
내산리고분군, 해상교역의 주인공들
센 가야 사람들의 자취, 고성박물관
동외동패총과 솔섬 유적
송학동고분군을 지키는 만림산토성
기타 중요 유적
우리 옻칠이 확인된 창원 다호리 고분군
문자 생활의 증거도
2000년 세월에도 온전했던 통나무널
어떻게 살아남았지? 창원 성산패총
일제가 망가뜨린 진주 옥봉·수정봉고분군
백제가 왜 여기에, 의령 중동리고분군
겉은 가야 속은 신라, 양산 북정리고분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산청 전구형왕릉
남강 물길 따라 들어선 산청 생초고분군
임나일본부설을 깨뜨린 운평리고분군
섬진강 서쪽에도 가야가
낙동강 동쪽의 가야 복천동고분군
삼국유사의 그 가야 성산동고분군
신라 지배 아래서도 위세를 유지한 비결
가야 유물 박물관·전시관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경남 김해 가락국의 쇠락은 대성동고분군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가야의 고분이라 하면 우리는 높고 큰 봉분을 떠올리게 됩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봉분은 5세기 초반에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5세기 중반 즈음부터는 밑지름이 40m가 넘는 초대형 고분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가장 앞섰던 김해 가락국의 대성동고분군에는 이런 봉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6세기 전반까지 조성된 묘역이지만 그냥 나지막한 구릉만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고분이 어디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기도 하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때의 가락국 최고위 지배계층에게는 그렇게 크고 높은 무덤을 만들 역량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선 시기 고구려군의 침공이 안겨준 상처가 그만큼 크고 깊었다는 얘기입니다. 대성동고분군의 무덤덤한 무덤들에서 지금 사람들은 한 시절 누렸을 영화의 무상함을 엿보게 됩니다. (본문 38쪽)
눈여겨볼 만한 것으로 순장이 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산 사람을 함께 묻는 풍습을 말합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한반도에서는 가야와 신라에서 확인됩니다. 부여는 순장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실물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신라는 임금이 죽으면 남자와 여자를 5명씩 순장했다는 기록과 함께 실제 순장 사례까지 확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가야는 순장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발굴로 확인된 사례는 가장 많습니다. (본문 61쪽)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자체 생산한 물품뿐만 아니라 왜계, 북방계, 중국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는 바다 물길을 통해 활발하게 이뤄진 국제 교류를 잘 보여줍니다. 이렇듯 무덤에서 나오는 다양한 유물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3세기까지 농·어업 도구는 수입한 것이 대부분이고 분량도 많지 않았지만 4세기 후반에는 자체 제작한 것이 대부분이고 수량도 많아집니다. 낙랑·대방의 소멸과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해양 교역이 어렵게 되자 농업과 어업으로 눈길을 돌렸던 것이지요.
무기와 갑옷·투구와 말갖춤 출토에서도 바뀌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중국·낙랑 계통의 수입품 위주였으나 김해 현지에서 제작한 무기·갑옷·투구·말갖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수량도 늘어나게 됩니다. 자체 역량으로 만들어낸 철제 전투 장비가 많이 출토된다는 것은 가락국이 군사적으로도 강국이었음을 일러줍니다. (본문 88~89쪽)
경북 고령 지산동고분군 제73호분은 5세기 들어 가장 이른 시점에 주산의 줄기능선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가지능선 끝자락에 자리 잡은 지름 22~23m 규모의 대형 무덤입니다. 비슷한 시기의 대형 고분들은 무덤 속 주인공 공간을 모두 석재로 조성했지만, 제73호분은 유일하게 목재를 썼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목재로 만든 가야의 대형분은 김해 가락국의 대성동고분군에 많이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대성동은 봉분이 나지막하고 지산동 제73호분은 높다랗다는 것입니다. 김해 가락국 전성기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대성동 제1호분의 뒤를 잇는 무덤인 것입니다. 이는 대성동고분군의 전통을 대가야에서 계승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동시에 대가야의 번성과 지산동고분군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고분이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114쪽)
전라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야 유적은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입니다. 동네 명칭은 2개지만 서로 딱 붙어 있습니다. 동쪽 인월면 유곡리와 서쪽 아영면 두락리에 걸쳐서 두 봉우리를 끼고 능선을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40기 남짓이 확인됐지만 발굴을 기다리며 풀숲에 뒤덮여 있는 것은 훨씬 더 많습니다.
중심 연대는 5세기 중엽~6세기 초엽으로 대가야권역에서 보자면 합천 다라국의 옥전고분군과 충분히 견줄 만한 상위고분군입니다. 지름 20m 이상인 대형분은 14기인데 30m 이하가 열셋이고 30m 이상도 높은 자리 능선에 하나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20m 이하이며 지름 8m 안팎의 소형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적이 1973년 전라북도기념물로 지정될 때는 백제계나 마한계일 것이라고 대부분 사람들이 짐작을 했습니다. 하지만 1989년 발굴에서 대가야계로 밝혀졌고 이후 가야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2018년입니다. 전라권 가야 유적에서 최초로 국가 사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본문 136~138쪽)
대가야계 고분군은 전북 남원의 운봉고원 말고 장수군의 진안고원에서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동촌리고분군 등에서 확인된 가야계 중대형 고분은 240기를 웃돕니다. 남원에서 확인된 180기보다 많습니다. 시기적으로는 4세기 말엽~6세기 중엽에 해당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진안고원이 백두대간의 서쪽이라는 사실입니다. 남원의 운봉고원은 같은 전북이라도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보면 그 동쪽에 있습니다. 대가야를 비롯한 여러 가야가 있었던 경상도에서 보자면 가야 세력이 백두대간을 넘어 이주·진출한 유일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 가야 고분들은 남원의 운봉고원과도 구분되는 점이 있습니다. 출토되는 유물이 대가야 색채를 뚜렷하게 띠거나 자체 제작된 것도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백제 토기가 함께하는 것이 독특합니다. 반면 다른 가야 집단의 유물은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그들과의 교류·교섭이 적거나 없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본문 152쪽)
경남 합천 옥전고분군은 다라국을 다스리던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조성된 묘역인데 왕릉급 고분은 5세기 초반~6세기 초반에 들어선 것입니다. 처음 무덤은 그보다 훨씬 이른 기원전 1세기 즈음이었습니다. 규모나 유물이 보잘것없었습니다. 권력의 형성과 계층의 분화를 보여주는 최초의 무덤은 4세기 후반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때도 확실하게 구별될 정도는 아니었고 같은 집단 내에서 조금 우월한 정도의 무덤이었습니다.
5세기 초반이 되면 앞 시기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고분이 등장하게 됩니다. 무덤의 내부 구조와 규모, 그리고 유물의 내용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것입니다. 실생활용 말갖춤과 장식용 말갖춤, 금동 고깔모자와 금귀걸이 같은 금동제 공예품 등 기마용 문물과 화려한 장신구가 출토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유물들은 앞선 시기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4세기까지 그 일대에서 살았던 이들의 문물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5세기 초반이면 고구려 광개토왕이 가락국을 공략한 직후입니다. 그때 한반도 남부는 극심한 정세 변동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다른 지역에 살다가 이곳으로 들어온 이주민들이 다라국을 성립시켰습니다. (본문 163쪽)
경남 함안 가야리 유적은 아라가야의 왕성이 발견된 자리입니다. 그동안 글이나 말로만 전해오던 아라가야의 왕궁으로 짐작되는 유적이 나지막한 야산 꼭대기에서 토성에 둘러싸인 채 나타났습니다. 함안 가야리 유적의 토성은 김해의 봉황동 유적 토성이나 합천 옥전고분군의 성산토성과 달리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높이는 최고 8.5m이고 너비는 20~40m인데 같은 시기의 다른 가야 권역에는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합니다. 밑바닥은 암반으로 덮여 있는데 나무기둥을 박았던 구멍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통나무 울타리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던 자리이거나 멀리 망을 보았던 망루, 또는 마루를 높게 설치한 고상 건물의 흔적들입니다. (본문 188~189쪽)
경남 창녕의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가 전성기를 맞기 직전인 5세기 중반부터 멸망 이후인 7세기까지 집중적으로 조성됐습니다. 200년 동안 초대형에서부터 중소형에 이르기까지 1000기 남짓 되는 고분이 들어섰습니다. 200년 동안 1000기라면 해마다 5기씩 봉분을 쌓아올린 셈이니 당시 기술력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닌가요.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교동1·2군과 송현동 3·4군 등 넷으로 구분이 됩니다. 교동은 1군과 2군이 붙어 있지만 송현동은 3군과 4군이 떨어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조성된 것은 5세기 중·후반의 교동2군이고, 교동1군과 송현동3·4군은 6세기 초반부터 동시에 만들어졌습니다.
세력이 비슷한 두세 집단이 공존하면서 교동과 송현동으로 양립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다른 가야고분군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대형 왕릉급 고분이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어서 대형·중대형 고분이 왕릉급을 위성처럼 감싸고 그 주변에 다시 중소형 고분이 여럿 들어서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본문 196~198쪽)
경남 고성의 가야 세력을 소가야라고도 했다는 사실을 두고 대가야(큰 가야)와 반대되는 소가야(작은 가야)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소가야라는 이름은 땅이 좁다거나 힘이 약하다거나 막연하게 그런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고성은 해양 교역을 발판으로 성장한 센 나라였습니다. 교역의 주력 물품은 바로 ‘쇠’였지요.
옛날 사람들은 지명을 한자로 적으면서 뜻을 가져오기도 하고 소리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소(小)가야에서 ‘작다’는 뜻을 가져왔으면 스스로 작은 가야라고 낮추는 형상이 되고 소=쇠라는 소리를 가져왔으면 쇠의 가야가 돼서 나라의 근본 속성을 밝히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사실과 가까울까요? (본문 215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념
가야고분군은 가야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적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함께한 가야 문명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가야 문명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여러 국가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단계를 보여주는 유산입니다.
최근 활발한 발굴을 통해 실체가 드러나면서 가야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편적인 수준에 머무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야의 600년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종합 개설서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풀어놓는 것까지 더할 수 있다면 좀더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개별 지역마다 크고 높은 봉분을 쌓을 수 있었던 배경, 공동체를 지배하고 호령했던 주인공들의 모습, 여러 나라들과 맺었던 관계와 교류가 어떠했는지 등 궁금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습니다.
무엇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문가나 학자가 아니면 읽어내기 어려운 그동안의 가야사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역사애호가로서 의무감 6 궁금증 4로 작업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많은 이들이 가야에 좀더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제어: 가야,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야고분군
분류: 발굴, 고고학, 생태, 환경, 역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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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 날 : 2023년 05월 22일
가격 : 20,000원
반양장본 | 376쪽 | 152×225mm
ISBN 979-11-86351-59-8 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이창우·강찬구
irondumy@idomin.com
책 소개
1974년에 창원공단이 설립된 이후
50년 만에 처음 기록한 휴먼 스토리
뿌리뽑힌 사람들의 아픈 상실의 기억과
뿌리내린 사람들의 벅찬 생성의 기억들
<들어가는 말>
<창원공단의 기억>은 창원기계공업공단(현 창원국가산업단지)에서 울고 웃은 사람들을 추적한 결과물입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 언론사로서 지역민과 공유하고 싶었던 공공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창원시는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로, 산업화의 상징적인 공간 중 하나입니다. 특히 중공업 중심지 창원기계공업공단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그 과정은 산업사·도시사 차원에서 긍정적인 면만 다뤄졌습니다. 흔히 ‘신화’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원주민들이 받았던 고통이나 공장 구석구석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잊혔습니다. 즉, ‘사람’ 이야기가 빠져 있었습니다. 이들이 가진 기억은 그 내용에 따라 창원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할 수도 있는 구술 사료와 같습니다. 지자체·학계·지역 언론계가 공공의 기억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내용이지만, 안타깝게도 이제까지 누구도 이들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지 못했습니다.
공단 건설 과정에서 이주하게 된 원주민 1세대들의 기억을 채록할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기록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공단 건설에 젊음을 바친 옛 기능공들 중 많은 이들이 ‘창원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었습니다.
책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처음은 공단이 들어서기 전 옛 창원지역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밝혔습니다. 수십 곳의 자연마을이 있었지만, 지형적·문화적으로 당시의 생활양식을 대표할 만한 마을 몇 곳을 골랐습니다.
이어서 창원 땅이 공단용지에 수용되면서 원주민들이 반강제로 겪었던 고통을 파헤쳤습니다. 1974년 산업기지개발구역 지정 고시 이후, 동양 최장 8차선 도로였다는 기지대로(현 창원대로)가 깔리기 시작할 때부터 이들은 고향에서 쫓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는 이들에게 바둑판처럼 구획한 이주단지를 제공했지만, 땅을 생명으로 알고 농사일만 알던 사람들이 새로이 들어선 공단도시에서 살아가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전국에서 창원공단으로 모여 이주민의 도시를 만든 기능공들의 삶을 추적했습니다. 원주민들의 한이 서린 땅 위에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어 꿈을 펼친 이야기입니다.
창원 사람들이 창원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 작업이 더 다채롭고 깊은 원주민·기능공 서사를 발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 소개
이창우
역사가 좋아 역사학도의 길을 걸었지만, 생계 고민 끝에 기자가 됐다. 배운 지식으로 제일 쓸모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은 나이에 <경남도민일보>에 입사한 것은 행운이었다. 어느 곳보다 민주적인 소유구조를 가진 언론사이고, 필요한 기사를 제약 없이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에. 경남 사람들의 성원 속에서 보람 있게 일하는 매일이 새롭다.
지역신문 기자의 역할이 현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다. 역사를 배워서인지, 마침 경제부에 발령받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창원공단의 묻혀진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임무를 맡았다. 덕분에 역사학도일 때도 몰랐던 역사의 매력을 안참이다. 부산 출신이지만, 이제 ‘경남사람’이라 말한다.
강찬구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명절에는 울산을 오갔다. 경남은 지도 위에서, 지인의 이야기 속에서만 가까운 곳이었다. 첫 언론사 입사 도전을 <경남도민일보>로 하면서 가까워지나 싶었지만, 실패하고 다시 멀어졌던 경남이다. 그러다 삼십대 중반 늦은 나이에 불현듯 창원에 기자로 오게 됐다. 어쩌다 온 곳에서 본격적인 성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의 삶과 일을 배워나가고 있다.
철학에서 문화연구, 저널리즘으로 분야를 옮기며 학교를 다녔다. 이것저것 고루 흥미를 두는 ‘잘 꽂히는’ 성격이지만 뭘 해내거나 잘하는 건 없다. 양서를 싼 값에 사서 읽지 못하고 쌓아 올리는 것이 취미다.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라는 책에 아주 조금 기여해 놓고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차례
들어가는 말 ― 6
창원산단의 여명, 발전 신화의 빛과 그림자 ― 9
대통령 결단 앞서 지역에서 움튼 중공업화 노력 ― 23
마산 바다 건너 주렁주렁 포도 영글던 ‘귀한’ 땅 ― 31
분지 창원, 역사와 삶 쌓이고 흐른 산과 시내 ― 43
나락모티 갈대밭의 여름, 어제처럼 눈에 선한 ― 59
새 역사에 밀려 멀어진 창원 역사의 큰 줄기 ― 69
국가가 원주민 상처에 포개 얹은 ‘산업 대동맥’ ― 83
문전옥답 헐값에 앗아 만든 첨단산업의 땅 ― 97
포도송이 영글던 곳 붉은 황톳길만 남기고 ― 109
바둑판 구획에 끼워 넣은 원주민의 삶 ― 121
삶터와 생업 잃고 투기 광풍 휘말려 도시 빈민으로 ― 141
실향 아픔에서 끝나지 않았던 이주의 고통 ― 151
하고많은 사연 갈린 길에도 고향 마을 잊지 못하고 ― 159
창원과 원주민 역사 바로 알고 미래 세대 화합하길 ― 169
아픔으로 녹이고 염원으로 깎은 옛 창원의 두 상징 ― 179
듬성듬성 공장 땀 채워 세운 도시에 꿈도 피어나 ― 189
‘닦고 조이고 배우고 익혀’ 창원과 함께 커온 40년 ― 199
성냥갑 아파트에서 나눈 끈끈한 정 ― 207
공장 밖 마산서 낭만과 청춘 보냈던 근대화 기수들 ― 217
문학으로 물은 ‘산단은 무엇인가’ ― 227
부록 1. 창원국가산업단지 약사 ― 234
부록 2. 원주민 마을 편입 약사 ― 238
부록 3. 원주민 마을 유적비 일람 ― 241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창원(당시 창원군)은 30~40여 개 농촌마을만 있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 아스팔트 대로와 거대한 쇳덩이들이 들어섰다. 산업단지라는 국가의 ‘인위(人爲)’는 이곳 주민의 삶과 기억에도 크고 작은 발자취를 남기며 지역의 정체성을 흔들었다. 창원에서 현재를 사는 이들 대부분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다.
(15쪽, 고향에서 밀려난 사람들)
창원산단의 탄생은 지역이 스스로 축적한 역량과 공단 유치 노력, 외국 기업의 판단, 이 모두를 고려한 정부 판단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최 박사는 시야를 좀 더 넓혀보길 주문했다.
(27쪽, ‘위대한 결단’ 아닌 복합 상호작용의 결과)
중·고등학교가 없어 삼귀국민학교(귀곡 소재) 졸업생은 모두 마산으로 진학했다. 귀현 출신 고영조 시인은 “당시 중학교 등록금이 180원이었고, 웅남호 뱃삯은 1원 정도 했다”라며 “하도 배가 고프다 보니, 표를 부둣가에서 파는 빵하고 바꿔 먹고는 배 뒤에 몰래 밧줄을 내려 매달려가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36쪽, ‘섬 아닌 섬’)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대규모 염전이 자리 잡았다. 나락모티 인근 창곡리(현 창곡산단)·덕정리(지금의 대원동)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1945년 9월 9일 미국 해군이 찍은 항공사진을 보면, 광복 즈음 이곳에 넓은 염전이 펼쳐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62쪽, 멱감고 게 줍던 모래톱의 추억)
“상남역이 있는 곳은 면 소재지라 붐볐습니다. 역 남쪽으로 우체국·파출소·양복집·가구점에다 상남초등학교도 있었고, 상남극장이라고 극장도 있는 곳이었지요. 홍등가도 있었던 기억입니다.”
(72쪽, 사람 모여든 ‘핫스팟’)
말뚝이 박힌 곳마다 어김없이 중장비가 들이닥쳤다. 대대로 부쳐 먹던 논마지기든 선조가 잠든 선영(先塋)이든 가리지 않았다. 농민들이 잃은 땅은 삶 그 자체였다.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이주단지로 떠나면서 겪은 고통은 눈부신 도시 발전의 그림자로 남았다.
“딱 우리 집 복판에 말뚝을 박더니…. 왜 그러는지 자세히 가르쳐주지도 않아요. 너희는 알 필요 없다고…. 제일 좋은 논도 평당 1300원, 밭은 200~300원. 그냥 강제수용이에요.”
(84쪽, 창원대로에 얽힌 이야기)
농사짓던 사람들이 논밭만 내주고 재산만 잃었을까. 도 작가는 부모님 이야기를 털어놨다. “농사꾼이던 아버지는 대원동으로 이사 가고 나서도 한동안 연덕 남은 땅에서 배추를 키워 리어카에 싣고 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셨고,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102쪽, ‘지금’이 앗아간 ‘그때’의 풍요)
고 시인은 “초가집들은 힘이 없으니까 불도저가 밀어버리면 금세 붉은 바퀴 자국만 남았는데, 내게는 그 모습이 꼭 우리 영혼이 흘린 피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우리 고모는 막내 사촌을 업고 불도저에 뛰어들었고, 또 어떤 사람은 운전수에게 똥물을 뿌렸다”라며 “지금 같았으면, 화염병이라도 던졌겠지만 그 당시 할 수 있는 저항의 전부였었다”라고 말했다.
(115쪽, ‘뿌리뽑힘’의 기억)
당시 택지 안에 네 가구까지만 짓도록 허용됐는데, 원주민들이 임대를 내려고 지하에도 옥상에도 막 방을 지었거든요. 지금은 벌금 때리고 원상복구 명령 내리는데 옛날에는 바로 행동으로 해버렸던 겁니다. 밤에 다 지어 놓고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못 부쉈기 때문에, 밤에 시멘트 바르고 나면 이불부터 갖다놨지요.”
(131쪽, 공장노동자 월세 받기 ‘특공작전’)
윤 시인은 “1·2·3차에 걸쳐 차례로 토지를 수용하고 이주가 진행됐는데, 그때마다 서울에서 내려온 투기꾼들이 빗자루로 토지를 쓸어담듯 했다”라며 “보상받은 이주민의 30~40%는 투기꾼에게 넘겼을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말했다.
(148쪽, 정착 못 하고 투기꾼에 집터 넘긴 사정)
“당시 중앙동 1번지, 지금 이마트 창원점 옆에 있는 곳이에요. 지도를 보면 주변 다른 곳이 전부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구획이 돼 있는데, 거기만 대각선으로 건물이 서 있어요. 어딘지 정확하진 않은데, 거기 사람들은 이미 이주를 와서 정착한 상태였죠. 그런데 그때 또 시에서 나가라 하는 상황이 된 거라.”
(154쪽, 자리 잡을 만하니 다시 나가라)
“봉림동 이주단지는 40여 개 원주민 자연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향우회도 연덕·창곡·월림 등 다 따로 조직돼 있어. 마을 규모가 작았어도 완암처럼 아직까지 활발하게 모이는 곳이 있고, 동네가 컸어도 단합이 잘 안되는 곳이 있지. 아이들도 향우회에 가입시키고 다른 마을 사람 자녀들과 같이 명절에 공도 차고 했는데, 직접 겪은 추억이 없다 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관심이 옅어져 안타깝기도 해….”
(167쪽, 옛터 유적비에서 추억 더듬어)
“삼원회관이 있는 상남동은 시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집결하는 곳인데 제대로 된 문화공간이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삼원회관을 원주민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창원의 역사와 개발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또 새로운 문화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 되게끔 꾸려나가고 싶습니다.”
(175쪽, 원주민 염원 담은 보금자리 돌려드리고파)
“석재상을 수소문하다 보니 큰 산 밑에 자연석을 무더기로 모아놓은 상인들이 많았습니다. 강원도까지 가서 찾는 중에 마음에 드는 돌이 딱 하나 있었는데, 63빌딩 표지석으로 세우려고 구두 계약된 돌이라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창원기계공단 설립 과정에서 희생된 원주민들 사정, 유허비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한 끝에 마침내 돌을 구할 수 있었죠.”
(180쪽, 종 보고 돌 찾으러 방방곡곡에)
학교 동기 900여 명 중 함께 입사한 사람만 120명이다. 이는 당시 삼성중공업이 창원기계공고와 결연하고 유능한 학생을 미리 선점했기 때문이었다. 실습 장비를 대주거나 졸업 전에 일본어 교육을 하는 등 신경을 쏟다가, 우수한 학생들을 우선 추천받았다. 김 시인은 “다니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학교로 돌아와도 좋다는 조건으로 왔다”라며 “당시 공고 졸업생들이 잘 팔리던 때라 실제로 2번이든 3번이든 학교에서 취직시켜준 사례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195쪽, 첫 발을 디디다)
“월급 많지 숙소 있지, 처음엔 너무 좋았는데 어느 순간 안 되겠는 거야. 하나둘 공부를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동기 98명 중 60명 이상이 전문대나 4년제 대학에 갔어요. 회사(대림자동차)에서 난리가 났죠. 저녁에 잔업을 좀 시켜야 하는데 말이야. 공장장이 학교 보내지 마라고 하게 되죠. 그래도 매주 토요일 되면 ‘과장님 조퇴 좀 시켜주세요’ 하고 안 해주면 월담을 하는 거죠. 그렇게 다음 주 월요일 시말서 쓰고…. 저는 한 40장쯤 썼을 거예요.”
(204쪽, 공장 불이 꺼지면 독서등이 켜지고)
“‘집들이 선물 받은 화장지를 다 쓰면 떠난다’고 농담할 정도로 이사를 자주 했는데, 첫 입주 2년 뒤 17평으로 옮길 때만큼 감동적이었던 적이 없어요. 처음에는 ‘누가 저길 들어가나’ 하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형편 어려운 사람 처지에서는 반송아파트 말고 딱히 갈 곳도 없었죠. 타지에서 창원에 와 정착한 사람 중 절반은 다 반송아파트를 거쳐 갔다고 봐도 될 겁니다.”
(209쪽, 10평 공간, 내 집 마련의 꿈)
이주단지로 쫓겨간 창원 원주민들과의 이질성은 더욱 짙어졌다. 생업을 잃고 기술도 없었던 원주민 대부분은 아파트가 늘어나도 겨우 지어 올린 이주단지 주택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용도 제한으로 묶여 상업 활동도 원활하지 않았다. 이들이 떠올리는 창원공단, 그리고 신도시는 자신들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성이었다.
(213쪽, 아파트 밖 원주민의 기억)
“아주머니께 ‘이번 주 8명’이라고 말씀드리면 동경전자·동경실리콘·한국TC전자 등 회사 작업반장 전화번호를 주거든요. 그러면 대표들끼리 말을 맞춰서 지금 양덕파출소 옆에 있던 삼일다방, 금강다방에서 다 같이 놀고 그랬죠. 휴일에는 밀양 삼랑진 낙동강변 나들이도 갔고, 멀리는 하동 송림 같은 곳으로 1박 2일 단체여행도 떠났습니다.”
(221쪽, 분식집 아주머니가 양쪽 연결)
‘창원공단의 기억’을 묻어두거나 추억거리로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의 기록으로 승화한 문학가들이 있었다. 공단 조성과 발전 과정에서 겪은 개인적이고도 특별한 경험들은 문학의 형태로 방출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들이었다. 원주민·기능공들의 기억이 풍화하는 동안에도 이들의 노력은 역사로 남았다.
(228쪽, 다시 묻는 ‘산단은 무엇인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벌써 남겼어야 할 공공의 기억
창원공단 50년 만에 기록하다
창원공단이 설립된 지 내년이면 만 50년이 된다. 창원공단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는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기업에 이르기까지 숱한 기업들이 무대에 올라 저마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펼쳤다.
국가 시책 차원에서 만들어진 창원공단은 말 그대로 깡촌이었던 원(原) 창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 경남에서 으뜸가는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지렛대 구실을 했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창원으로 와서 크고작은 기업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공업계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젊은이들이었다. 창원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청춘을 보내고 새로운 삶을 일구어 새로운 창원을 만들어가는 한편으로 창원 사람이 되어 갔다.
이렇게 창원공단이 우뚝 서고 개별 공장들이 젊은 노동자들로 채워져 갈 때 그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창원에 터 잡고 살면서 농사를 짓거나 어로 활동을 해오다가 공단 설립과 함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원주민이 바로 그들이다.
그동안 기록되어 온 것은 창원공단의 역사였다. 무슨 기업이 들어섰고 어떤 물건을 만들고 원청과 하청의 관계가 어떠하고 연관산업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고용된 인원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 수치와 도표 또는 통계로 정리되는 역사였다. 그리고 그것은 창원공단과 더불어 울고 웃었던 이들의 사람 이야기는 배제된 역사였다.
5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공단이 만들어질 때 풋풋한 노동자로 공장에 들어섰던 이들은 대부분 70대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집과 논밭을 내어주고 이주했던 원주민들은 그 노동자들보다 연배가 높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역사로 갈무리할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창원공단으로 말미암아 뿌리뽑힌 원주민들과 그 덕분에 뿌리내린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활자로 담았다. 그동안 누구도 하지 않았던 작업이었으므로 사상 최초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그동안 백지로 비어 있던 부분을 채워 창원공단의 역사가 좀더 입체적으로 구성될 수 있게 되었다. 무미건조한 역사에 생생하게 실감되는 내용을 조금이나마 더하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책이 앞으로 좀더 다채롭고 풍부한 서사를 찾아내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제어 : 창원, 마산, 창원공단, 산업화, 원주민, 농경, 이주, 이주민, 기능공, 노동자, 공존, 정착
분류: 한국사, 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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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 날 : 2023년 04월 01일
가격 : 20,000원
반양장본 | 400쪽 | 152×225mm
ISBN 979-11-86351-58-1 0394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성우제
책 소개
떠나온 한국은 멀어져 가고
이민 온 캐나다는 잡히지 않는
불안하기만 한 중간지대에 살지만
양쪽 모두 선명하게 보이는 건 장점
<작가의 소개글>
“내가 서울 사투리를 쓴대요.”
얼마 전, 직장생활 2년차에 접어든 딸이 말했다. 한국에서 온 또래 친구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저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딸아이는 세 살 때 캐나다로 살러 왔으니, 한국 말을 부모한테서 배웠다.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서울 사투리’라고 부르는 것은 ‘예전 서울 말투’라는 얘기다. 나도 처음 캐나다에 살러왔을 때, 이곳에서 수십 년 살아온 선배 이민자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외국살이란 한 마디로 이방인의 삶이다. 모든 이의 삶 자체가 불안의 연속일 테지만 이민자의 삶에는 불안의 요소가 하나 더 얹히게 마련이다. ‘붕~’ 떠 있는 느낌,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지대에 사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나는 캐나다에서는 한국 사람(코리언 캐네디언)이고, 한국에 가면 캐나다 사람이다. 법적 신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내 한국어는 이미 ‘서울 사투리’가 되었고 내 영어는 앞으로도 계속 ‘외국인 발음’이다. 이민 1세로서 캐나다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캐나다 사람이 될 수 없고, 모국을 떠난 지 오래 되어 정서적으로 더 이상 한국 사람이 아니다. 캐나다는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한국은 점점 더 멀어져간다. 이것이 바로 내 나름대로 알아차린 불안함의 정체였다.
양쪽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중간지대 혹은 경계의 삶은 묘하게 슬프다.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에서 이런저런 정책을 펼쳐가며 나 같은 이민자를 우대해준다 해도 이런 슬픔까지 어루만지지는 못한다. 그것은 이민자의 숙명 같은 것이다. 양쪽의 이방인이 되는 숙명.
그나마 나로서는 다행스러웠던 것이 캐나다에서 사는 삶에 한국의 매체와 독자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독자들은 내가 사는 곳의 삶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에서 발생하는 비슷한 사안을 두고 캐나다 사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캐나다에 살면서 보면 한국은 어떻게 보이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했다. 나는 전직 기자답게 사실에 근거해 쓰려고 노력했다.
나 같은 사람이 갖는 장점 하나는 양쪽 사회를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중간지대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에는 한국 저녁 뉴스를 보고, 저녁에는 캐나다 저녁 뉴스를 본다. 양쪽을 비교해서 보면 사안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의미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바로 그런 것이다.
-캐나다 이방인, 한국 이방인
작가 소개
성우제
1963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다. 불문학 연구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논문을 썼다. 프랑스 유학 자금이나 벌자며 어쩌다 시작하게 된 기자 생활에 맛들려(월급도 많았고 기사 작성이 논문 쓰기보다 재미있었다) 그 길로 13년을 논문 대신 기사만 쓰며 보냈다. 박사 공부는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1989년에 창간한 ‘원(原) <시사저널>’(<시사IN> 전신)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다. 문화부에서 11년 동안 일하면서, 미술 음악 문학 등 여러 예술 장르와 ‘문화현실’에 관한 기사를 주로 썼다. 영화 담당만 하지 못했다. 누구나 맡고 싶어해서 나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기자로 일하는 와중에 1990년대 중반부터 커피 마니아 행세를 하며 살았다. 한국 커피업계에서는 나를 1세대 마니아라고 불렀다. 그 취미를 살려, 2002년에 이주해온 캐나다 토론토에서 베이커리카페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꾸었었다. 월급쟁이가 자영업자로 변신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말고도 진입 장벽이 하나 더 있었다. 외국이라는 낯선 환경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장벽이었다. 이민 초기는 장벽의 완강함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 정말 운좋게도 ‘은인’을 만나 옷가게를 시작했다. 그 가게를 운영하면서 17년째 밥벌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과는 ‘다른 삶’을 산다는 이유로, 한국의 여러 매체에서 청탁을 해준 덕분에 캐나다에 살러온 이래 거의 끊이지 않고 글을 써왔다. 2007년 여름 학력위조 사건이 터졌을 때 뉴욕으로 ‘피신’한 신정아 씨를 단독 인터뷰하여 <시사IN> 창간호에 제공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 기사로 캐나다에 살면서 특종상을 받았다. 기사나 칼럼이 아닌 창작물도 더러 썼다. 그런 글로, 한국 살 적에는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문학상을 두 차례(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및 산문 부문) 받았다.
<시사IN> 편집위원이며, 3년 전부터는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연구소’는 직함이 필요해서 내가 만든 것이다. 그래도 책을 여럿 펴냈으니 ‘연구 활동’과 무관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민 초기 캐나다살이를 이야기한 <느리게 가는 버스>, 한국 커피 장인들을 인터뷰해서 엮은 <커피머니메이커>, 한국의 외씨버선길과 제주올레길 완주기 <외씨버선길> <폭삭 속았수다>, 그리고 내 스승들에 관해 적은 <딸깍 열어주다> 등 다섯 권이다.
차례
책을 내며 캐나다 이방인, 한국 이방인 9
캐나다 이야기
내가 캐나다로 간 까닭은? 15
캐나다 정부가 이민자 공존을 돕는 이유 21
캐나다의 고용 사다리…공채 없이 알바 → 계약직 → 정규직 28
매뉴얼 천국의 느림보 문화 36
어린이병원에 기꺼이 기부하는 까닭 39
위험에 처한 아이 모른 척하면 범죄 48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52
공자님 말씀에 충실한 캐나다 대학 55
다름 인정하고 존중하는 서방예의지국 58
성적 1등으로는 졸업생 대표가 될 수 없는 나라 61
캐나다처럼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면 67
‘천국’은 없다…장점만 보고 와서 단점도 안고 사는 이민 71
동포사회 이야기
한국 사람 조심하세요? 81
‘한인 요양원’, 정체성 확인시켜주는 디딤돌 88
노는 모임 거의 없는 재미없는 천국 95
캐나다 한국식당은 외국인이 주고객 103
같은 ‘유색’이면서 흑인 차별하는 동양계 이민자들 110
해외동포, 모국이 불러주자 꽃이 되었다 116
한국 책 갈증에 오아시스 같은 토론토도서관 119
자영업 이야기
자영업 하려면 ‘몸’부터 만들어라 129
나는 왜 복대를 차게 되었나 136
남자도 힘든 주방에 아내를 밀어넣었던 이야기 139
여기서도 자영업자는 오답노트의 주인공 146
‘단골’ 자처하는 손님치고 진짜 단골은 없다 153
밑지고 판다는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 160
일상 이야기
이민 초기 베이커의 추억…“폴리시 비어 굿” 165
캐나다도 한국처럼 시민들은 현명하다 168
점점 잦아지는 캐나다의 대형 재난 175
웬만하면 바꾸지 않고 오래 쓰는 문화 183
팬데믹 3년에 친절해진 미국 사람 190
캐나다 크리스마스는 ‘가족·파티·선물’이 필수 198
담배 끊은 건 뉴욕 화가들 덕분 205
캐나다 주택 오래 살면 맥가이버가 된다 208
김장할 때 무 썰기를 자청한 내력 215
한국 환자가 캐나다 의사 치료해준 이야기 217
대중문화 이야기
멀쩡한 모국 LP 보면 왜 마음이 짠해질까? 223
캐나다에서 실감한 K컬처의 초압축 성장 227
딸에게 모국어를 가르쳐준 한류 235
한국이 대단한 줄을 한국 사람만 모른다 242
동포사회와 모국을 이어주는 한국 대중문화 245
BTS로 뉴욕에서 나눈 정담(情談) 252
난 〈미나리〉가 불편하다 255
윤여정의 뼈 있는 수상 소감 263
고교생 딸의 영화 〈택시운전사〉 관람기 268
젠더 이야기
캐나다만의 독특한 남자 서열 273
아들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가 여학생? 276
‘개저씨’ 소리를 듣지 않는 한 가지 방법 279
토론토와 뉴욕의 지하철 성추행범 퇴치법 285
한국 이야기
3년 만에 한국서 만난 기분 좋은 낯섦 291
신천지예수교에 왜 20대 신자가 많을까? 298
사이먼과 노회찬 302
손혜원 ‘똘끼’는 어디까지 갈까 305
대학의 인문학 연구가 그리도 우스운가 310
기부도 이젠 젓가락장단 아닌 코인노래방이 주류 316
아버지와 짜장면 322
언론 이야기
캐나다 방송은 올림픽보다 패럴림픽이 더 활발 327
대장동 스캔들의 키워드 ‘형님’ 331
쓰나미를 기획하는 양치기 언론 339
언론 부패의 온상 ‘출입기자단’ 343
기자라면 최소한 붙어먹지는 말아야 349
밥 사주는 기자는 믿을 만한 기자다 354
문학 이야기
님 웨일스의 〈아리랑〉을 능가하는 조선희의 〈세 여자〉 359
〈파친코〉, 재일동포 주인공을 향한 재미동포 작가의 무한한 공감 364
중간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슬픈 모국어’ 371
아, 기성세대라는 말도 구리다 378
기형도 이야기
대학시절 ‘친절한 기형도’ 시인에게서 받은 편지 383
기형도의 참 좋은 안양 친구들…그의 연시 최초 공개한 수리문학회 391
갑자기 생각난 기형도의 원고료 398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이른 아침 출근 시간에 토론토 시내버스를 탔다.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춰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바깥을 내다보니 시각장애인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던 버스 기사가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건너고 있었다.
(17쪽, 내가 캐나다로 간 까닭은?)
캐나다 정부는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자기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지속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캐나다 시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한글학교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25쪽, 캐나다 정부가 이민자 정착을 돕는 이유)
법도 안 만들고, 있는 법도 안 지키고, 법을 안 지켜도 단속도, 처벌도 안 하는 어른들 탓에 아이들이 희생되는 일이란 없다. 어쩌다가 작은 사고가 난다 해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그러니 캐나다 사회는 느리다. 나는 이 느림보 문화가 점점 더 좋아진다. 사회적으로 노하거나 슬퍼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38쪽, 매뉴얼 천국의 느림보 문화)
느슨한 개똥 단속과는 반대로, 시민들을 늘 긴장하게 하는 단속이 있다. 물론 1순위는 시민 안전과 관련한 단속이다. 소화전 앞이나 소방도로에서 실수로라도 위반했다가는 인생이 피곤해질 만큼 가혹한 조처가 따른다. 운 좋게 단속을 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서, 소방서 앞 같은 곳에 주차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54쪽,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 나와 밥벌이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한국 사람들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국 나가는 사람에게 “한국 사람 조심하라”는 말은 가급적이면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외국에서도 좋은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한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 사기꾼만 조심하면 된다.
(87쪽, 한국 사람 조심하세요?)
캐나다가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다 보니 특이한 음식 냄새를 풍길까 봐 서로가 늘 조심하는 편이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도 많다. 한국사람들은 김치에 들어 있는 생마늘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하는데, 요즘은 예전처럼 긴장하지는 않는다. 한국음식에 대한 외국사람들의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K드라마, K팝에 이어 지금은 K푸드까지 뜨고 있는 것이다.
(107쪽, 캐나다 한국식당은 외국인이 주고객)
“육체노동을 할 수 있는 몸부터 만들어라.”
“일단 네가 하려는 업종에 들어가서 최저임금 받으며 일을 해라. 그곳은 너한테 학교나 다름없다. 임금은 장학금이라 생각해라. 돈 받아가며 몸 만들고 일을 배우니 얼마나 좋은 곳이냐.”
(131쪽, 자영업 하려면 ‘몸’부터 만들어라)
지하철역 안에 있는 우리 가게 손님들 중에는 물건을 사고팔 때 잠깐 스치는 손끝 느낌만으로도 험한 일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이들이 많다. 대개가 말없이 좋은 손님들이다. 토론토 자영업자인 나로서는 그런 손님들이 마음 편하게 쇼핑하고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가게를 만들었으면 소망을 늘 품고 있다.
(159쪽, ‘단골’ 자처하는손님치고 진짜 단골은 없다)
토론토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온다. 마당에 쌓인 눈을 자주 치워야 하는데, 이 또한 중노동이다. 눈 치우는 일은 낙엽 치우기와 더불어 가장 고되고 힘든 일에 속한다. 눈과 낙엽
을 치우는 일만큼은 온 가족이 달라붙어야 한다. 혼자 했다가는 앓아눕기 십상이다.
(213쪽, 캐나다 주택 오래 살면 맥가이버가 된다)
외국에 살러 오면서 모국 음악을 듣겠다며 들고 나왔겠으나, 살기에 바빠 들을 시간이 없어서 음반 상태가 깨끗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오래된 LP음반이 으레 그렇듯이 많이 긁히고 먼지가 쌓여 있었다면 짠한 마음이 덜 했을 것이다. 주인은 연로해서 요양원에 들어갔거나 작고해서, 〈동백아가씨〉를 모르는 자식들이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226쪽, 멀쩡한 모국 LP 보면 왜 마음이 짠해질까?)
나중에 한국에 보내서 우리말을 배우게 해야겠다고 여기던 차에 신기한 일이 생겨났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말과 글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경로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을 접하고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받아적기 시작했다. 자발적인 한글 공부였다. 한국말을 하고 한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은 또래 팬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을 사는 일이었다.
(231쪽, 캐나다에서 실감한 K컬처의 초압축 성장)
거래처의 중국인 사장이 “정말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가 있는데, 봤느냐?”고 물었다. 〈겨울연가〉라고 했다. “보지 않았다”고 했더니 그는 “정말이냐?”며 놀라워했다. “볼 생각도 없다”고 했더니 그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그는 〈겨울연가〉DVD를 불쑥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서 꼭 봐라.” 외국인인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고, 시청을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는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247쪽, 동포사회와 모국을 이어주는 한국 대중문화)
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들면서 북미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아시아인 혐오 폭행이 터져나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보자면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 소감이 예사롭지 않다. 혐오와 폭행 위협을 날마다 피부로 느끼는 이곳의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네들은 나 같은 아시아 사람 이름도 정확하게 못 부르지? 그만큼 네들이 아시아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건 아니니? 사실 나는 그게 불만이었는데 오늘은 상을 줬으니까 용서해줄게.”
(265쪽, 윤여정의 뼈 있는 수상 소감)
“이곳에 서열이 있다는 거 알아?”
캐나다에 살러 온 직후에 만난 어느 선배가 대뜸 나에게 물었다.
“서열이라뇨?”
“캐나다에는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서열이 있어. 어린이, 여자, 노
인, 강아지, 그다음이 남자야.”
(273쪽, 캐나다만의 독특한 남자 서열)
나는 그의 죽음을 접하면서 토론토 유대인 커뮤니티의 사이먼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사이먼이 공급하는 물건은 무조건 싸고 좋다는 믿음은 수십 년 헌신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에서 연유한다. 노회찬의 죽음에 마음 아파하는 우리는 왜 살아생전 그에게 사이먼식의 존경과 신뢰를 보내지 못했을까? 그가 그것을 느끼고 자기의 진정성을 사람들이 알아주리라 믿었더라면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304쪽, 사이먼과 노회찬)
패럴림픽 방송이 올림픽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화제가 되는 선수나 메달리스트들을 집중 조명하는 것은 비슷했으나 패럴림픽 방송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올림픽 방송이 ‘스포츠 경쟁’에 관심을 두었다면, 패럴림픽 방송은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극장’이나 다름없었다. 장애인 선수 모두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인 만큼 그 이야기를 사전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데 치중했다.
(327쪽, 캐나다 방송은 올림필보다 패럴림픽이 더 활발)
공적인 관계에서 사용하는 ‘형님’이라는 호칭은 과거 언론계에서 횡행하던 ‘촌지’와 그 성격이 유사해 보인다. 촌지나 형님 호칭은 공적인 관계를 내밀한 사적 관계로 만들어버린다. 내밀하면 할수록 결속력은 더 강해진다.
(334쪽, 대장동 스캔들의 키워드, ‘형님’)
〈파친코〉를 다 읽고 나서, 이 소설이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이유를 내 나름으로 생각했다. 작가 이민진이 일본이 아닌 곳에 사는 한국 이민자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일본 바깥에서 살고 있기에 재일동포들의 처지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 스스로 이민자의 자식이어서, 같은 이민자인 재일동포들의 아픔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370쪽, <파친코> 재일동포 주인공을 향한 재미동포 작가의 무한한 공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22년 이민 생활을 하며 알게 된
흥미로운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를
13년 기자 경력의 필력으로 녹여내
기형도 관련 추억과 시편도 수록
22년 전 13년차 기자 성우제는 장애를 가진 자녀 때문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장애인을 캐나다에서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시사잡지 기자 생활을 접고 월급을 모은 돈과 아파트 판 돈을 갖고 캐나다로 날아갔다.
이민이란 몇십 년 살아온 자신의 뿌리를 통째 뽑아서 옮겨가는 존재의 결단이었다. 특히 새로 잔뿌리를 내리지 못한 초기 이민 생활은 새로운 정착과 생존을 위한 고달픈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그로서는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 몸부림은 더욱 절박하였다.
새 나라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몇 안 되는 선택지에서 자영업을 하기로 했다. 펜대나 굴리던 그는 준비 작업으로 음식점에서 ‘알바’를 얻어 몸이 으스러지게 일했다. 어떤 날은 끊어질 듯 아픈 허리에 복대를 하고 기어서 출근한 적도 있다. 그러다 좋은 한국인과의 인연으로 먹고살 만하게 되기까지는 <극한직업>에 가까운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먹고살기 바빠도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있게 마련이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캐나다에서는 특별한 사건으로 여겨지곤 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젠더·인종·신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한국에서는 예사이지만 캐나다에서는 범죄였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포용의 사회인 동시에 한 번 정한 원칙은 지위고하를 떠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나라였다. 물론 캐나다라고 좋기만 하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비추면 한국은 아직도 많은 ‘새로 고침’이 필요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민 초기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10년 전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모든 분야에 걸친 눈부신 성장이었다. 씨앗은 이미 20년 전에 움텄지만 하필이면 그즈음에 K컬처를 필두로 한꺼번에 뿜어져 나왔다. K팝은 아이에게 모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캐나다 극장가에는 한국 영화가 일상으로 걸렸다. 토론토 한국음식점은 오히려 외국인들로 붐볐으며 K드라마 또한 외국인이 먼저 알고 한국 이민자에게 권하는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어쩌다 한 번씩 모국을 찾아오면 그때마다 이전과 달라진 새로운 낯섦에 묘한 즐거움도 느꼈다.
이런 22년차 캐나다 이민자가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를 펴냈다. 이번에 경남도민일보에서 나온 이 책은 그동안의 생생한 체험이 바탕이어서인지 머리로 쓴 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읽힌다. 캐나다나 이민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의 여러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우리 사회가 출생률 급감에 따른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하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볼 대목도 제시하고 있다. 말미에는 기형도 시인에 대한 추억과 시편도 몇 꼭지 담았는데 문학애호가들에게는 달콤한 샘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주제어 : 문화, 한국, 캐나다, 문학, 인문, 기형도, 영화, 소설, 대중문화, 선진국, 장애인, 원칙, 공존, 정착
분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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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 날 : 2023년 03월 01일
가격 : 14,000원
반양장본 | 170쪽 | 152×225mm
ISBN 979-11-86351-56-7 0340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김종욱
책 소개
다가올 미래사회는 4차산업혁명시대
자연생태계는 변화와 혁신의 보물창고
물리학 상식을 기반으로 인문학을 가미하여
미래시대 대비하는 이들에게 길라잡이 자청
<추천의 글>
앞으로 다가올 4차산업혁명시대는 초고속 정보통신기술로 초연결된 혁신적·와해적 적자생존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미국·중국의 패권전쟁을 비롯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등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국우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헤쳐 나갈 명견만리의 지혜는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변화’와 ‘혁신’이며 자연의 생태계에서 배울 수 있다. 생태계는 완벽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이지만, 그 개체들은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진화’라는 자기혁신을 지금 이 순간도 계속하고 있다. <K-사이언스테크노미, 혁신 없이 미래 없다>를 읽으면 과학기술과 글로벌경제, 세계정세가 급변하는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변화에 동참하지 못한 갈라파고스는 아닌지 숙고하게 된다.
-동명대학교 총장 전호환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종속되었던 한계를 넘게 해준 것은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은 강력한 경제력과 힘을 제공해 주는 기반이 되고 있어서 모든 국가들이 그 수준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남다른 전략이 필요한데, <K-사이언스테크노미, 혁신 없이 미래 없다>가 그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어서 무척 반갑다.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기후변화,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더구나 지구환경 관련 지속가능성, 탄소중립 등의 큰 위기에도 봉착해 있다. 진화를 통해 완전한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는 자연생태계를 곱씹으며 과학기술의 방향과 역할을 되짚어보는 혜안과 지침을 이 책은 제공해 줄 것이다.
-(前) 한국전기연구원 원장 최규하
<K-사이언스테크노미, 혁신 없이 미래 없다>는 정확한 물리학 상식을 기반으로 형용적인 적절함이 묻어 있는 인문학을 가미한 융복합적 설명이 잘 배합된 재미있는 서적이다. 저출산, 수도권 집중, 지역소멸, 전쟁, 기후위기, 플라스틱 오염, 세대 갈등 등, 풀기 힘든 많은 사회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어도 그래도 희망을 갖고 하나씩 풀어가는 지구촌의 일원으로서의 가치를 잘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고등학생·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등 미래시대를 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창원대학교 전기전자제어공학부 교수 박민원
작가 소개
김종욱
1962년생. 한국전기연구원 전략정책부장, 전략정책본부장, 시험부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시 종로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90년에 교육부 물리학분야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미시건주립대(MSU) 물리학과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시건주립대 센서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 텍사스 오스틴주립대(UT@Austin)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역임했다.
한국전기연구원에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해서 플라즈마가속기, 전자의료기기, 나노소재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연구부서의 그룹장 및 센터장을 역임하고 인제대학교, 한양대학교(학연산클러스터사업단)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현재는 연구원의 주요연구사업에 대한 미래전략과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지자체와 더불어 지역경제혁신을 위한 신산업 발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 성과물의 홍보 및 대외 협력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 워털루대학(University of Waterloo) 공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창원시 및 부산시 제조업에 인공지능(AI)기술을 접목해 지역경제 혁신을 목적으로 한국전기연구원과 워털루대학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캐 인공지능연구센터사업의 자문역을 맡고 있다.
평소 소신은‘감사하고 사랑하자’다. 늘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겸손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려 애쓴다. 그러나 업무에 있어서는 혁신의 전도사요, 기업가정신에 입각해 ‘도전과 응전’을 과감히 수용한다.
차례
I. 거대한 전환기를 앞둔 한국의 오늘
과학기술과 인간존중 9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현상 13
간과할 수 없는 ‘대프리카’ 현상 17
상상을 초월하는 생존전략 21
과학의 달을 맞이하며 25
갈라파고스를 떠올리며 29
소모적인 ‘브라운 운동’ 33
만추(晩秋)의 상념 37
영화 <양자물리학> 41
‘회복탄력성’을 발휘할 때 44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는데 48
코로나19 이면의 냉혹한 현실 관조할 때 52
우리는 공명(共鳴)하고 있는가? 56
II. 위기를 기회로
자연, 창의와 협업의 배움터 63
산업생태계, 혁신과 경쟁의 장으로 67
카멜레온의 변화가 요청되는 시대 71
도전과 응전의 기해년 75
유비무환의 바우어새 78
도전과 응전, 위기를 기회로 82
선택은 하나, 혁신! 86
산학연 융합생태계 ‘코업(Co-Up)’으로 90
‘섭동(攝動, perturbation)’의 시대 94
한국인의 위기대응 DNA 98
혼돈의 ‘카오스(Chaos)’ 시대 102
가지 않은 길 106
‘백신 보릿고개’를 넘는 공옥이석(攻玉以石) 110
‘코리아 팬덤’ 창조로 세계를 이끌 때 114
III. 새로운 시대를 이끌 진화 코드
한국형 4차산업혁명 가이드 121
5G 이동통신, 4차산업혁명의 젖줄! 125
자율주행차와 공유경제 129
블록체인기술과 가상(암호)화폐 133
미래의 도시, 스마트시티 137
노벨(Nobel)상의 계절 141
누리호, 하늘을 날다 144
에너지 강국으로 가는 길 148
상상(想像), 과학발전의 원동력! 152
역사를 만들 천금 같은 기회 156
‘산업의 쌀’ K-반도체가 나아갈 방향 160
‘황금알을 낳는’ 금세기 연금술 164
‘초격차’ 기술력 확보만이 우리가 살길 168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4차산업혁명시대는 인류를 온전한 이상향의 세계로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을까?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의 인간존엄성 상실이나 폐해는 없는 것인가? 효용성과 편익만을 우선시하며 전광석화(電光石火)의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과학·기술의 속성을 고려할 때, 인류의 문명발전이 오히려 불평등의 기원이 됐다고 주장했던 프랑스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철학적 명제를 깊이 숙고할 시점이다.
(12쪽, 과학기술과 인간존중)
곰이 정말로 미련한 동물일까?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내륙에 서식하는 곰은 겨울잠을 잔다. 춥고 황량한 겨울엔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 비해 몸집이 큰 곰은 생존하기 어렵다. 때문에 먹이가 풍성한 가을에 왕성한 먹이활동을 통해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겨울잠(동면)이라는 고도의 생존전략으로 힘겨운 겨울을 슬기롭게 이겨낸다.
(22쪽, 상상을 초월하는 생존전략)
겨울이 도래할 쯤이면 광합성 기능을 마친 잎이 소모하는 에너지조차도 절약하기 위해 물과 양분의 공급을 차단하는 ‘떨켜층’을 만들어 낙엽을 만든다. 냉엄하지만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기발한 생존전략이 아닐 수 없다. 마주한 상황에 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대자연의 섭리에 마음이 숙연해질 따름이다. 과연 우리 경제는 앞으로 들이닥칠 북풍한설에 온전히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황홀한 가을단풍을 넘어 그 이면을 직시할 때다.
(39~40쪽, 만추(晩秋)의 상념)
‘황제펭귄’의 예를 들어보자. 남극의 ‘황제펭귄’은 영하 40~50℃의 혹한의 날씨를 ‘허들링(huddling)’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지혜롭게 대처한다. ‘허들링’은 황제펭귄들이 중앙으로 동그랗게 모여들어 바람을 막아주고 서로의 체온으로 상대방을 따뜻하게 유지시켜 주는 방법으로, 빽빽하게 무리지어 빙빙 돌면서 어느 정도 체온을 유지한 중앙에 있던 펭귄은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밖에 있던 펭귄이 서서히 무리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모든 펭귄들이 혹한의 날씨를 견딜 수 있게 한다. 그야말로 차원 높은 배려와 상생의 정신이 아닐 수 없다.
(64쪽, 자연, 창의와 협업의 배움터)
우리에겐 다른 나라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위기대응 DNA가 있다. 2IMF 외환위기 때 온 국민이 앞다투어 ‘금 모으기’에 동참했듯이 우리네 삶과 정신 속엔 고통 분담의 DNA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당장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하여 전국에서 달려온 의료진들, 두터운 방호복 너머 땀과 상처로 얼룩진 그들의 환한 미소에서 우리는 숭고한 이타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100쪽, 한국인의 위기대응 DNA)
약 138억 년 전에 발생한 대폭발의 혼돈 상태를 시작으로 우주가 끊임없이 특정 패턴을 가지고 팽창한다는 ‘빅뱅이론’을 굳이 예시하지 않더라도 밤하늘에 걸려있는 수많은 별들은 무질서한 상태로 보이지만 실상은 어느 별 하나 ‘만유인력’이라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정교한 우주질서에 순응하며 움직이고 있다.
(104~105쪽, 혼돈의 ‘카오스(Chaos)’ 시대)
일회용 일반주사기는 사용하고 나서 약 0.058g의 백신이 남은 채 폐기되는데, 낭비되는 백신을 다섯 번 모으면 한 사람에게 투여할 수 있는 양이 된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중소기업에서 백신의 잔량이 거의 없는 ‘최소잔여형(LDS;Low Dead Space)’ 주사기를 개발해 별거 아닌 것 같은 작은 아이디어가 위기 속에 빛을 발하고 있다.
(112~113쪽, ‘백신 보릿고개’를 넘는 공옥이석(攻玉以石))
한국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다른 나라에선 흔치 않은 이타정신으로 한국에 대한 존경심과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이 초격차 첨단기술력과 우수한 가성비를 토대로 K-방산과 SMR 등 K-원전의 성과를 상호호혜의 원칙 하에 동유럽 및 중동, 아세안 등 제3세계로 확산하고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창발적인 한류(韓流)문화를 융합해 ‘코리아 팬덤’을 창조한다면 한국이 이들 나라의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116~117쪽, ‘코리아 팬덤’ 창조로 세계를 이끌 때)
자동차를 소유하는 주된 목적은, 필요한 때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하기 위함이다. 자율주행기술의 완성으로 운전자가 필요 없게 되고 자동차공유경제 플랫폼이 현실화되어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지체 없이 이용할 수 있다면 과연 그때에도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성이 있을지는 곱씹어 볼 일이다.
자율주행차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경제 구도가 소유 중심에서 공유 중심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동차 운전의 주체가 사람에서 인공지능으로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문화 전반의 구도를 바꾸는 혁신시대의 이정표가 될 것이란 점이다.
(131~132쪽, 자율주행차와 공유경제)
우리나라의 대표적 핵융합장치인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는 순수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한 초전도 토카막방식으로 2008년 최초로 플라즈마를 발생시킨 이래로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최근 KSTAR는 플라즈마의 중심 이온 온도를 핵융합반응 온도인 1억℃ 이상에서 1.5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초전도 토카막 핵융합장치 중 세계 최초이며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에 한 발짝 다가선 성과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2021년 11월 KSTAR는 세계 최초로 3만여 번의 실험을 통해 30초 유지에 성공했다. 과학계에선 300초 연속으로 1억도를 유지하면 핵융합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고 보는데 2026년엔 300초를 목표로 하고 있다.
(149~150쪽, 에너지 강국으로 가는 길)
1965년에 만화가 이정문 작가가 발표한 2000년대의 생활상을 그린 미래만화를 보면 <전기자동차>, <태양열 주택>, <청소로봇>, <인터넷 신문>, <휴대용전화>, <인터넷을 활용한 원격학습 및 원격진료> 등 신기할 정도로 현재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적중하였다.
상상력은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다. 상상은 기존의 틀에 얽매지지 않는 유연한 사고, 즉 발상의 전환을 가능케 한다. 작금은 발상의 전환이 요청되는 4차산업혁명시대다. 하루가 멀다고 혁신기술이 등장하고 있으며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승자독식의 시대가 되었다.
(152~155쪽, 상상(想像), 과학발전의 원동력!)
세계적인 석학이자 21세기 지성인 기 소르망Guy Sorman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이 세계지도에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고 강조했다. K-팝, 영화 외에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분야에서 한국이 모범국가로 두드러지면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으며, 한국이 잘해 왔던 개별 분야의 요소들이 일순간 결합되면서 한국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일관성 있는 긍정적 이미지가 형성되었다고 말했다.
(157~158쪽, 역사를 만들 천금 같은 기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자연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문학적 상식과 소양을 바탕으로
물리학을 전공한 현직 과학자가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을 풀어낸 에세이집
<K-사이언스 테크노미, 혁신 없이 미래 없다>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과학기술의 발달은 미리 정해진 방향이 없다. 자칫 잘못하면 대다수 사람에게 해악이 되는 쪽으로 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협업과 배려가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과학기술은 무척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국가 단위로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눈 깜박할 사이에 낙오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고통스럽더라도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이룩해내야 한다.
물리학을 전공한 현직 과학자인 저자 김종욱은 여기서 뜻밖에도 생태계를 이런 것을 배울 수 있는 스승으로 내세운다. 협업하고 배려하는 정신과 창의적으로 혁신하는 지혜를 우리가 바로 옆에서 날마다 마주하는 자연이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제펭귄들은 남극 추운 바다에서 빽빽하게 모여 서로 바람을 막아주고 돌아가면서 체온을 나누는 방법으로 혹한을 이겨낸다. 상생의 협업은 식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가로수로 사랑 받는 메타세쿼이아는 원뿔 모양에다 크기도 비슷해서 모두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다.
생태계의 진화는 변화와 혁신의 경연장이라 할 만하다. 다들 미련하다는 곰은 사실 미련하지 않다. 아주 날쌜 뿐 아니라 먹이가 풍성한 가을에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비축하고 먹을 것이 없는 겨울이 되면 동면을 하는 자체도 생존을 위한 고도의 진화이다.
철마다 달라지는 나무의 한해살이 또한 주변 환경에 맞춘 혁신이다. 사람들은 신록에서 활력을 얻고 단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초록은 왕성한 생산 활동이며 울긋불긋한 낙엽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고 주어진 상황에 최적으로 대응하는 변화이다. 덧붙여 ‘찍찍이’를 발명하는 힌트를 인간에게 제공한 도꼬마리의 갈고리도 씨앗을 퍼뜨리려는 진화의 산물이다.
저자 김종욱이 보기에 이와 같은 창의와 협업, 진화와 혁신을 위한 DNA는 한국인에게 충만해 있다. 백신의 잔량이 거의 없는 ‘최소잔여형’ 주사기 개발과 세계 최초 코로나19 진단키트 상용화 등으로 위기국면에서 더욱 빛을 뿜었다. 금 모으기와 마스크 보내기 등에서 거듭 확인되는 특유의 고통분담과 이타정신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저자는 인문적 상상력을 꿈꾼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추동하고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변화에 합당한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 상상력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재미있게도 1960년대 한국 만화를 보기로 들었다. 거기 나왔던 전기자동차, 태양열주택, 청소로봇, 인터넷신문, 휴대전화, 인터넷 원격학습·진료 등이 현재의 우리 생활과 판박이로 닮아있다는 얘기다.
이 책은 4차산업혁명시대를 제대로 보여준다. 하루가 멀다고 혁신기술이 등장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시대다. 달리 말하면 무한하게 펼쳐지는 온갖 상상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사고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주제어 : 과학, 기술, 경제, 인문, 자연생태계, 문화, 물리학, 갈라파고스, 4차산업혁명, 혁신, 미래, 변화, 진화, 자연, 생태계, 우주
분류: 에세이,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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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비자금 우리 통장에 있어요(1) (0) | 2023.05.15 |
펴낸 날 : 2022년 12월 27일
가격 : 15,000원
반양장본 | 231쪽 | 152×225mm
ISBN 979-11-86351-55-0 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김훤주
책 소개
말이산고분군에서 6.25함안전투까지
핵심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요약정리
임진왜란 영웅 40여 명 대거 소환하고
칠원민란 처음 알리며 별천계곡 숨은 얘기 발굴도
함안의 역사에 관련된 책은 많습니다. 말이산고분군이나 6.25전쟁 함안 전투는 이미 여러 책에서 다루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물 역시 여기저기에 그들의 업적을 적어 놓은 글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한눈에 담을 수 있도록 하면 함안의 역사를 널리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 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사건 가운데에는 잘 알려진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는 칠원민란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내용을 꼼꼼하게 다루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사건을 알리는 것으로도 나름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6.25전쟁 함안 전투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6.25 때 함안에서 그런 전투가 있었다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함안에서 그런 전투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과정을 쉽게 소개하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인물 편에서는 그들의 활약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별로 구분해서 좀 더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벌였던 인물은 가장 가까운 근대 역사라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감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밖에도 함안을 두고 기록의 고장이라고 하는 까닭을 알 수 있는 내용과 지금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는 명소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이런 작업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기록의 고장 함안이라는 명성을 더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머리말에서
작가 소개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출판국장과 환경전문기자로 일하며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함안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쓰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와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가 그것입니다. 이밖에 펴낸 책으로는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비매품)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등이 있습니다.
차례
머리말 7
1. 함안 역사의 첫머리 말이산고분군 9
탁월한 입지 선정 12
오랜 기간 조성된 가야 대표 고분군 13
한반도 최초로 말갑옷이 나온 마갑총 14
‘메이드인아라가야’ 말갑옷 16
금은 장식 고리자루큰칼도 18
계획에 따른 질서정연한 배치 19
아라가야의 순장은 언제부터 21
순장에도 공식이 있었을까 23
순장의 시작과 끝은 24
청동기문화와의 연관성 암각화고분 25
거대한 봉분의 숨은 비결 27
가장 높고 크고 기다란 고분은? 29
남문외고분군, 말이산고분군과 하나가 되다 30
아라가야를 잘 갈무리한 함안박물관 32
불꽃무늬가 새겨진 다양한 토기 34
멋진 산책이 함께하는 말이산고분군 38
2. 아라가야의 왕성이 있었던 가야리 유적 39
3. 국제회의가 열렸던 당산유적 43
4. 신라가 쌓은 아라홍련의 고향 성산산성 47
가야가 쌓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49
신라 목간이 출토된 성산산성 50
700년 잠에서 깨어난 아라홍련 52
5. 고려 시대의 역사 인물 55
홍건적을 물리친 이방실 장군(1298~1362) 57
일찍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윤환(1303~1386) 66
고려 충신 이오 68
고려 충신 조열 71
고려 충신 조순 73
6. 조선 시대의 역사 인물 75
생육신 어계 조려 77
용퇴하고 무진정을 지은 조삼 80
서원을 최초로 세운 주세붕 83
주재성과 무기연당 87
7. 임진왜란 영웅들 95
김언수| 박제인| 박진영| 방흥| 안민| 안신갑| 안황| 안희| 오운| 유숭인| 윤탁연| 이간·이희 형제| 이령| 이만성| 이명호와 동생들| 이숙| 이정| 이집·이분형| 이칭| 이휴복| 정구룡| 제말| 조민도| 조방| 조붕| 조신도| 조응도| 조종도| 조탄| 차천홍·차억세| 황경헌| 동래할멈| 조준남·조계선부자| 주익창·주필창 형제부부
8. 임진왜란 영웅들의 낙동강 뱃놀이 151
전란을 이겨낸 위로와 자축의 모임 153
미래세대까지 함께한 자리 157
지금도 이어지는 그날의 모임 159
9. 칠원에도 민란이 있었다? 161
10. 일제에 맞선 함안의 인물들 165
독립운동자금을 내놓은 주시성 167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대암 이태준 168
사랑의 독립운동가 산돌 손양원 173
노령에도 만세시위에 앞장선 안지호 의사 176
일제 경찰을 응징한 조삼귀 여사 179
11. 경남 최초 최대였던 함안의 3.1만세운동 183
경남 최초 칠북 연개장터의거 185
두 차례 벌어진 대산면 평림 의거 187
칠북면 이룡 의거 187
3000명에 이른 함안읍 의거 188
함안에서 가장 큰 군북 의거 190
네 차례 시위를 벌인 칠원 의거 191
군북공립보통학교 항일시위 192
법수면민 항일시위 193
12.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1950년 함안 전투 195
섬진강을 넘어온 북한군의 기습 197
함안 서부 산악 지대 전투 199
함안 동부 평야 지대 전투 201
마무리는 소규모 근접전으로 203
13. 기록의 고장 함안 205
가장 오래된 읍지 『함주지』 207
유일한 지역 문학·인물사전『금라전신록』 213
조선 후기 함안의 풍물을 담은 『함안총쇄록』 216
14. 한강 정구 놀던 별천계곡 명승지 221
후배 군수들도 즐겨 찾은 자리 223
곳곳에 한강 정구의 자취가 226
후배 군수도 흔적을 남겼고 228
한강을 기리는 뒷사람들의 자취도 230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30년 전 당시에는 동북아시아 전체에서도 이런 실물은 귀한 것이었고, 한반도에서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나타난 것은 함안이 최초였습니다. 앞서 경주·동래·합천 등에서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물고기 비늘 모양의 작은 쇳조각이 출토된 적이 있었는데, 마갑총에서 원형에 가까운 말갑옷이 출토되면서 그것들이 말갑옷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갑총 말갑옷은 이런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지금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6쪽, 함안 역사의 첫머리 말이산고분군)
순장이 없어지는 과정도 차이가 납니다. 가락국은 지배계층이 무너지면서 순장이 줄어들고 사라졌습니다. 순장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서기 400년 침공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반면 아라가야는 지배계층이 건재하고 커다란 고분은 계속 지어지는데도 6세기 초반에 순장이 축소·소멸되었습니다. 순장할 능력은 그대로였지만 해당 지역 공동체에서 순장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갈수록 옅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쪽, 함안 역사의 첫머리 말이산고분군)
왕성에 걸맞은 커다란 규모의 취사 전용 건물터도 확인됐습니다. 길이 11m와 너비 5m에 이르는 기다란 네모꼴인데 암반을 파내어 만들었습니다. 취사 공간임을 알려주는 아궁이와 구들·굴뚝, 물을 담아둘 수 있도록 암반을 파서 만든 구덩이, 그리고 취사용 토기와 그릇받침도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42쪽, 아라가야의 왕성이 있었던 가야리 유적)
당산유적은 2004년 발굴에서 확인됐는데 우리나라에서 고대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던 가장 큰 자리입니다. 전체 길이는 40m이고 너비는 최대 15m에 이르며 면적은 최소한 130평(400㎡) 이상입니다.
2020년 10월 충남 부여에서 발견돼 눈길을 끌었던 사비 백제의 대형 건물지가 가로 12m 세로 7m인 데 견주면 엄청난 크기이고 발굴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45쪽, 국제회의가 열렸던 당산유적)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금세 탁 트인 산성이 나옵니다. 무성했던 숲을 다듬어 만든 둘레길은 가볍게 산책하기에 그만입니다. 굽이마다 멋진 나무들이 보기 좋게 들어서 있습니다. 평상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거리낌 없이 펼쳐지는 함안의 풍경도 일품입니다. 여러 시대의 역사와 유물이 어우러져 있는 성산산성은 이제 가벼운 걸음으로 한 바퀴 둘러보는 즐거움도 갖추고 있습니다.
(53쪽, 신라가 쌓은 아라홍련의 고향 성산산성)
“돌아와 칠원에 있을 때 크게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지경이 되자 윤환은 재산을 풀어 그들을 구제했다. 또 가난한 백성들에게 재물을 빌려주고 받은 증서는 모두 모아서 불태워 버렸다.”
사회지도층일수록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윤환은 700년 전에 이미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굶주리자 곡식을 풀었을 뿐만 아니라 재물을 빌려간 이들의 빚까지 탕감해 주었던 것입니다.
(67쪽, 고려시대의 역사인물)
주세붕이라는 인물을 역사에서 크게 치는 이유는 서원의 설립으로 여태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교육제도가 생겨났다는 데 있습니다. 이 전에는 교육기관이 나라에서 고을마다 하나씩 세운 향교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하고 싶어도 향교 말고는 갈 데가 없어 그만큼 교육의 기회가 적었습니다. 소수서원이 생기면서 전국 모든 고을에서 이를 본받아 서원을 세우게 됩니다. 이를 높게 평가하는 기록이 『명종실록』에 나와 있습니다.
“서원이 옛날에는 없었다. 서원의 설치에 대해서는 전에 들어보지 못했으니, 이는 실로 커다란 결점이었다. 주세붕이 여기에 뜻을 두고 사람들의 비웃고 헐뜯는 것을 무릅쓰고 처음으로 서원을 세웠으니 옛 군자보다 공적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84쪽, 조선시대의 역사인물)
무기연당은 전남 담양군의 소쇄원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조선 시대 정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답답하지 않고, 고요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아름다운 전통 정원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재성은 반란을 진압하는 데에 공을 세운 것도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대신 이렇게 그럴듯한 정원을 꾸며놓고 유유자적 살았다는 것이 더 훌륭할 수도 있습니다.
(92~93쪽, 조선시대의 역사인물)
임진왜란이 끝난 지 4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나 책을 통해서 임진왜란을 경험하다 보니 승전의 장면에 열광하고 두드러진 몇몇 영웅들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찾아 기리고 기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97쪽, 임진왜란 영웅들)
1606년 봄 조선 사신이 화친을 하고 돌아올 때 왜가 잡아간 사람들을 돌려보냈는데 동래 할멈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할멈은 늙은 어머니가 있었는데 난리를 만나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돌아와서 어머니를 찾았더니 할멈과 마찬가지로 왜국으로 잡혀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왜국에 10년 동안 있었는데도 서로 그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던 겁니다. 할멈은 친족들에게 어머니를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남기고 다시 바다를 건너 왜국으로 갔습니다.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다 마침내 어머니와 만나게 됩니다.
(142쪽, 임진왜란 영웅들)
뱃놀이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2022년 함안박물관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했는데, 이 가운데 해방 이후를 보면 이렇습니다. 함안을 중심으로 ‘낙강동범계’라는 모임이 1955년 7월 합강정에서 총회를 하고 조직되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낙동강 뱃놀이를 이어간 이들의 이름과 시를 담은 『낙강동범 계안 부 시집』을 보면 이들의 뱃놀이는 1957년 7월(낙동강)과 1960년 7월(정암강) 등 두 차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여기서도 1607년 임진왜란 영웅들의 유쾌한 뱃놀이는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159~160쪽, 임진왜란 영웅들의 낙동강 뱃놀이)
『고종실록』에 따르면 ‘수천 명’이 모였다고 했는데 당시로서는 칠원에 사는 거의 모두가 결집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비록 일시적이었다 해도 대단한 규모로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큰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칠원민란은 그 이상 구체적으로 밝혀진 부분이 거의 없어서 연구·조사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64쪽, 칠원에도 민란이 있었다?)
조삼귀 여사는 재판과정에서 “내 남편과 내 나라의 원수를 갚았는데 무슨 죄가 있느냐”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는데 어린 아들은 그새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후 한 점 혈육 없이 외롭게 살다가 1948년 4월 15일 세상을 떠났는데 가야읍 관음사 입구에서 말이산고분군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위쪽 왼편에 그 열녀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181쪽, 일제에 맞선 함안의 인물들)
1932년에는 군북공립보통학교에서 3・1독립만세운동 13주년을 맞아 6학년 학생들이 항일시위를 실행했습니다. 2월 29일 정오 4~6학년 대부분과 1~3학년 일부 등 280여 명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학교를 나와 미리 준비한 전단을 뿌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습니다. 장날을 맞아 북적이는 군북시장을 거쳐 군북공원에서 만세삼창을 한 다음 군북역을 지나 신창학교 운동장에서 해산했습니다.
전단에는 ‘조선어 시간을 6시간으로 환원하라, 조선 역사 시간을 배정하라, 식민지 교육과 노역을 금지하라, 학교생활에 자치권을 달라, 나카미츠 교장과 이점용 훈도는 물러가라’는 요구 사항이 적혀 있었습니다.
(192~193쪽, 경남 최초 최대였던 함안의 3.1만세운동)
북한군 제6사단은 7월 24~25일 목포와 여수를 점령해 전라도를 완전히 장악한 다음 28일 섬진강을 건너 하동에 집결하더니 29일 아침 마산으로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군이 31일 진주에 이를 때까지 북한군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군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낙동강 방어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미군의 허를 찌르는 기습이었습니다.
(198쪽,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1950년 함안전투)
『함안읍지』나 『칠원읍지』가 있는데 이것만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종
류의 것들은 조선 말기 중앙 조정의 방침에 따라 만든 것으로 다른 지역에도 이와 비슷한 읍지는 제법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넘어서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기록 유산이 함안에는 무려 세 가지나 됩니다. 『함주지』, 『금라전신록』, 『함안총쇄록』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풍성한 기록물이 남아 있다는 것은 함안으로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더없이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207쪽, 기록의 고장 함안)
오횡묵은 『함안총쇄록』에서 이 양천을 두고 “선생이 명명했다”고 적었습니다. 여기 선생은 두말할 것 없이 한강 정구를 가리킵니다. 정구가 지은 양천은 지금 별천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국어학자들은 음운 변화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양천이 우리말로는 볕+내인
데 이 볕내가 자음접변 때문에 변내 또는 별내로 소리나는 것을 다시 한자로 고정시켜 별천(別川)으로 바뀌었다는 얘기입니다.
(227쪽, 한강 정구 놀던 별천계곡 명승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함안 역사·인물의 보편적인 내용 다루면서도
칠원민란 등 첫 소개, 임진왜란 영웅 중점 발굴,
지금껏 이어지는 낙동강 뱃놀이의 연원도 밝혀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은 말이산고분군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문자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함안 역사의 첫머리가 여기에서 비롯되었고 지금 함안의 정체성도 여기에 기댄 바가 많기 때문입니다.
말이산고분군과 이어지는 가야리유적·당산유적, 성산산성 등은 최근까지 이뤄진 학계의 연구와 발굴 성과를 최대한 반영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산고분군은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지루해질 수 있는 만큼 개별 고분보다는 전체적인 모습과 성격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중요한 고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다른 가야 이야기를 곁들여 아라가야를 좀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분군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시대마다 달라지는 특징적인 내용도 두루 담으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금의 함안이 1500년 전 아라가야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지 더듬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말이산고분군은 왕궁이 있었던 가야리유적이나 국제회의가 열렸던 당산유적과 별개로 떨어져 있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임진왜란이라는 민족 최대의 위기를 맞아 함안 사람들이 무슨 일을 겪고 어떻게 맞섰는지를 최대한 풍부하게 담은 것도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의 특징 가운데 한입니다. 남겨진 기록이 많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기록이 한 줄밖에 되지 않더라도 찾고 살려서 적었습니다. 덕분에 마흔이 넘는 분을 임진왜란 영웅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숨겨진 임진왜란 영웅들은 지금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찾아내고 기록하는 일은 앞으로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통쾌한 승리의 역사와 빛나는 영웅들만 나라를 지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기지 못할 줄 알면서도 두려움에 떨면서도 기꺼이 나섰던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영웅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영웅들의 낙동강 뱃놀이에 얽힌 얘기도 있습니다. 1607년 1월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한강 정구 함안군수 박충후 등 35명이 함안 용화산 아래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함께 어울렸습니다. 전란 직후 전란을 몸소 겪은 이들이 벌인 위로 자축의 뱃놀이였습니다.
당대에 이미 이름이 높았던 이들이 참여하고 중심이 됐던 모임인지라 오랫동안 그 영향력이 이어졌습니다. 1600~1800년대는 물론이고 20세기 들어선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에도 그들을 기리는 뱃놀이가 계속되었습니다.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당시 뱃놀이에 참여한 35명의 후손들은 지금도 해마다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칠원민란은 아마 함안·칠원에 관련된 역사 서술 가운데 최초이지 않나 싶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기록을 나름대로 찾기는 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학계의 연구도 전혀 없다시피 해서 참고할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찾아진 만큼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입니다.
1950년 6.25전쟁 초기 함안전투도 여태까지는 전투 그 자체의 치열함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에서는 당시 그렇게 치열하게 함안전투가 벌어진 배경과 함안전투 승전이 전체 국면에 끼친 영향을 알기 쉽게 밝히고자 했습니다.
이밖에 말미에는 함안이 기록의 고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까닭도 한 꼭지 다루고 최소한 430년 전부터 선조들의 놀이 문화가 겹겹이 쌓여온 별천계곡에 대한 이야기도 따로 떼어 적었습니다. 다들 한 번은 눈길을 줄 만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주제어 : 지역, 함안, 칠원, 말이산고분군, 역사 인물, 문화, 임진왜란, 고려동, 생육신, 성산산성, 일제강점기, 함안전투, 갓뎀산
분류: 함안, 역사, 문화, 지역,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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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 날
펴낸 날 : 2023년 1월 1일
가격 : 20,000원
반양장본 | 359쪽 | 152×225mm
ISBN 979-11-86351-54-3 0312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김주완
kjw1732@gmail.com
책 소개
“이만큼 베푼 사람은 많지만
이만큼 드러내지 않은 이는 없다”
20대 중반부터 50년 넘게 이어온
기대 없이 베풀고 대가 바라지 않는 삶
선한 영향력 절로 넓혀가는 김장하 바이러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삶을 가능하게 했을까
취재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김장하 선생의 허락을 받았느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선생은 허락한 적이 없다. 선생은 그동안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여러 공적인 단체에 몸을 담고 공적인 활동을 해왔다. 따라서 선생은 공인(公人)에 준(準)하는 인물
을 취재하겠다는데, 그것까지 못하게 막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터뷰도 한 적이 없다. 찾아오는 사람을 냉정하게 내치지 못하는 선생의 약점(?)을 공략했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분이 자연스럽게 선생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그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2021년 11월 엠비씨경남 김현지 피디로부터 함께 취재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덕분에 내가 아예 접근하지 못했거나 놓쳤을 것들을 얻어 건진 것도 많았다. 특히 김현지 피디와 강호진 촬영감독, 차선영 작가의 기획력과 섭외력, 취재현장의 순발력에 덕본 게 많다.
‘100명의 김장하, 1000명의 김장하’를 취재 과정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기쁨이었다. 하남칠 교장은 ‘장학금 돌려주기’ 차원에서 모교 학생들에게 오랜 세월 매년 장학금을 주고 있었고, 본문에 등장하진 않지만 명신고 출신 건축가 박범주(1970~) 씨도 문화예술계에 든든한 후원자로 김장하를 닮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등장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이미 ‘김장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많았다. 이런 선순환이 돌고 돌아 김장하 선생이 꿈꾸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취재 과정에서 김현지 피디는 만나는 사람마다 “김장하 선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생불’ ‘보살’ ‘의인’ ‘진정한 어른’ ‘이 시대의 예수’ ‘든든한 뒷배’ ‘시민운동의 비빌 언덕’ ‘호의(好義)와 경의(敬義)의 표본’ ‘남명 조식 선생 같은 분’ ‘모든 것을 품어주는 호수’ 등 다양한 표현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가장 공감했던 표현은 ‘이 시대의 강상호 선생’이었다. 극단현장 고능석 대표가 한 말이었다. 대중적으로 강상호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방송용으로는 별로였겠지만, 호의호식할 수 있는 부자임에도 자신의 재산을 털어 세상의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 편에서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앞장섰다는 점에서 가장 닮은 두 사람이었다.
----작가의 ‘닫는 말’ 중에서
작가 소개
김주완
1964년생.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전무이사로 있던 중 2022년에 정년을 3년 앞당겨 퇴직했다. 경영진으로서 깜냥도 안 될뿐더러 좀 더 긴 호흡으로 깊고 넓은 취재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자로 일할 때 역사와 사람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인생 2막에서는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그동안 롤모델로 삼아왔던 멋진 어른을 첫 탐구대상으로 정했다.
썼던 책으로는 『풍운아 채현국』, 『별난 사람 별난 인생』, 『지역출판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80년대 경남 독재와 맞선 사람들』, 『토호세력의 뿌리』 등이 있다.
차례
여는 말 7
제1부 생애
취재의 시작 17
이어지는 모임 22
삶의 지표를 정해준 할아버지 32
한약업사 시험 합격 42
아버지와 어머니 47
조용한 소년 김장하 51
사천 석거리의 젊은 한약사 60
도시로 나온 남성당한약방 73
문전성시 79
그 남편에 그 아내 90
제2부 전달식 없는 장학금
장학사업의 시작 105
투사가 된 장학생들 118
이어지는 우연과 인연 125
헌법재판관 문형배의 경우 129
무한한 믿음과 지지 148
제3부 학교 설립과 헌납
전 재산을 털어 설립한 고등학교 159
교육부 감사와 세무조사를 받다 162
이 학교의 두 가지 불법행위 166
다 있는데 이사장실만 없는 학교 177
전교조 해직교사가 없었던 이유 183
100억대 학교를 무상헌납한 까닭 192
제4부 공동체를 치유하다
알고 보니 나도 그 돈을 받았네 209
행동하는 시인 박노정과 진주신문 가을문예 215
친일청산과 평등세상을 위하여 232
지역문화공간 토종서점을 살려내고 241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기 위해 244
남강을 지키고 지리산을 살리는 일 250
남명학관 건립 비사(祕史) 256
학대받는 여성을 구조하라 259
여성평등기금과 농민열사 장례비 271
진주정신과 진주문화를 찾아서 274
수십억 남은 재산 기부하고 60년만에 은퇴 279
제5부 김장하의 기질
권력과 정치를 멀리하는 이유 287
감시받고도 빨갱이 콤플렉스가 없는 노인 291
검사의 폭탄주를 거절한 지역유지 307
처음으로 화를 낸 이유 310
제6부 줬으면 그만이지
진정한 보시의 삶이란 321
비방과 험담, 그리고 비판 333
제7부 김장하의 철학
운명을 바꾸며 살자 341
진주정신에 관한 소고 345
생활신조와 인생관 349
닫는 말 353
김장하 선생 약력 357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남성(南星)이라는 그의 호(號)와 남성당한약방이라는 상호의 뜻을 물었다.
“남성이 수를 맡은 별이라고. 목숨 수(壽)자. 남성이 비치는 곳에는 오래 산다는 그런 속설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건데, 남성당을 상호로 쓰고 남성을 아호로도 쓰라고 했어요. 남극노인성이란 별자리를 딴 거지.”
-손자가 오래 살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어주신 겁니까?
“약방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다들 오래 살라는 뜻이지. 또 그 별은 보일 듯 말듯하면서도 그러나 역할은 한다, 앞에 나서지 말고 항상 제 역할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이지요.”
-할아버지가 그런 깊은 뜻을 가지고 지어주셨구나.
“별빛처럼 빛이 아니지만 뭔가 공헌을 하고 있거든. 하지만 공헌했다는 표를 내지 말고 그렇게 살아라….”
(18~20쪽, 취재의 시작)
김장하는 8세에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으며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다. 20세에 사천 석거리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연 후 사실상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27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석거리에 모셔 부양했고, 29세에 자신을 길러준 계모의 장례를 치렀다. 30세에는 홀로 된 아버지를 위해 새어머니를 모셔왔고, 42세에 아버지를 보내고 남은 새어머니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을 팔아 노후를 보장해드렸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아래 동생들을 키우고 시집·장가 보내는 것도 장하의 몫이었다.
(50쪽, 아버지와 어머니)
“장하는 딸과 아들 결혼식에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어요. 그래도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수많은 사람이 하객으로 참석했는데, 축의금을 받는 창구 자체가 없었던 겁니다. 참석한 하객들은 최상의 음식을 대접받았지만, 일부 불쾌하게 여기는 이도 있었죠. 자신은 모든 지인의 경조사에 다 참석해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전달하고도 받지 않으니 ‘돈 있다고 유세하는 거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요.”
(56쪽, 조용한 소년 김장하)
김장하는 1992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을 받게 되었는데 전수식 참석을 거부하여 경남교육청이 난리가 났다. 표면적인 거부 이유는 ‘약방을 비울 수 없어서’였다. 당시 관선 교육감이 ‘내 목이 날아간다’며 사정사정하는 통에 결국 참석은 했으나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화다.
2003년 1월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부산에서 개최한 오찬간담회와 토론회에 1번으로 초청을 받았으나 불참했다. 역시 같은 이유였다. 나도 사람들과 어울려 선생과 몇 번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 시간이 되면 “손님이 기다린다”며 어김없이 일어섰다.
(80~81쪽, 문전성시)
“1987년 2월에 제1회 명신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렸을 때였다. 키가 그리 크지 않으신 아주머니께서 운집한 학부형들의 뒤쪽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까치발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한 교사의 눈에 띄었다. 이사장 부인이셨다.
살며시 다가가 단 위의 자리로 옮기실 것을 권하자 극구 사양하시면서 자기가 여기 온 것을 어디에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셨다. 이윽고 졸업식이 마치자 이사장 부인께서는 조용히 버스를 타러 학교 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남편의 필생 사업인 학교의 첫 졸업식에 와 보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행여 누가 보고 폐를 끼칠까 보아 조심하는 모습에서 그들 가족의 마음 씀이 참으로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92쪽, 그 남편에 그 아내)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저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136쪽, 헌법재판관 문형배의 경우)
개교 초기 잠시 있었기는 했다. 커다란 책상과 명패, 소파 등이 있는 교실 1개 크기의 이사장실이었다. 처음엔 으례히 그런가 보다 하고 거기서 집무를 봤는데, 한 달 정도 지나 보니 학교 시설이 부족한 데다 이사장이 자리를 차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장하는 교장에게 이사장실을 비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양호실로 쓰도록 했다.
특별한 행사나 회의가 있는 날 말고는 학교에 자주 가지도 않았다. 이사회도 교장실에서 열었고, 결재할 일이 있으면 서무실에서 했다. 학교에 갈 때도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갔다. 이사장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학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179쪽, 다 있는데 이사장실만 없는 학교)
“이사장 퇴임식에는 집사람도 같이 참석했거든.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놔버리니까 섭섭하제?’ 하고 물어요. 왜 안 그렇겠어요? 서운하지. 그런데 내가 그때 ‘섭섭할 것 하나도 없다. 우리 둘이 만날 때 빈손이었잖아. 지금 이거 내버려도 우리 먹고 살 만큼 남아 있고, 빚진 게 하나도 없는데 뭘 서운할 게 있나.’ 그랬지.”
-속으로는 서운했지만 사모님한테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죠?
“그렇지.”
(205쪽, 100억대 학교를 무상헌납한 까닭)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 묘역’이 있다. ‘백촌강상호지묘(栢村姜相鎬之墓)’라는 묘비 하나만 있었다. 누가 언제 세웠는지 알 수 없는 묘비였는데, 뒷면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모진 풍진의 세월이 계속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선생님이십니다. 작은 시민이.”
‘작은 시민’이 과연 누굴까 궁금했다. 수소문 끝에 김경현(1966~)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이 1999년에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왠지 이 ‘작은 시민’이 김장하 선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경현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걸 도대체 누구한테 듣고 나에게 확인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누구한테 들었는지 그 이야기부터 좀 해보세요.”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냥 내 느낌이 아무래도….”
끝내 그의 실토(?)를 받아냈다. 내 감이 맞았다. 김장하 선생이었던 것이다.
(236~238쪽, 친일청산과 평등세상을 위하여)
“상담소 이사회에 기금이 1억이 있고, 이 기금을 활용하여 여성들 피난시설을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렇게 의논을 드렸죠.”
“아 좋다고, 시설을 하자, 아주 전폭적으로. 그동안 그런 생각하고 있었냐고, 자기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했냐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호응을 해주셨어요. 다른 이사들이 불평 안 하도록 자기가 방패를 쳐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집을 짓기 힘들 거다. 그
래서 김장하 이사장님 아니었으면 이 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267쪽, 학대받는 여성을 구조하라)
-이 사진도 그렇고, 저 사진에서도 그렇고 김장하 선생은 항상 끄트머리에 있네요?
“잘 보셨네요. 가운데 자리에 이사장님 자리라고 딱 놔두죠? 사양하세요. 여기서도 제일 끝에 앉아계시죠? ‘아유 나 그런데 안 간다’면서 스스로 구석진 자리에 항상 가세요. 사람들이 막 이렇게 모시는 걸 또 굉장히 싫어하세요.”
-그런 것 같네요. 본인이 돋보이는 걸 싫어하는.
“바로 이런 거에요. 참 지적을 잘 하셨는데, 우리한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시려면 가운데 앉으셔야 돼요 하고 자리를 마련해도 안 앉으셔.”
(269쪽, 학대받는 여성을 구조하라)
“버렸으면 미련없이 버려야지. 줬으면 그만이지. 감사패 그거 뭐하려고….”
9일 오후 5시 경상국립대 행사장. 원래 선생은 원치 않았던 자리였다. 하지만 받는 쪽에서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참석한 자리였다. 그래서일까? 행사 내내 선생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지만, 표정은 계속 불편해보였다. 그럼에도 예정된 인사말은 A4 용지 1.2매가량을 꼼꼼히 써오셨다. 그 마지막 대목은 이랬다.
“재단 설립 20여 년이 지난 오늘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은 없고 뒤떨어진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에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고 남은 재산을 경상국립대학교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게 해서 죄송합니다.”
(281~282쪽, 수십억 남은 재산 기부하고 60년만에 은퇴)
“정치인들은 다 옆에 누구를 배석해가지고 몇 시에 언제 어디서 다 이런 식으로 계획을 짜가지고 나오라고 안 하나? 그분은 절대로 거기 나가는 분이 아니고 정치인들 하고는 안 만나는 분이다. 그래서 만나고 싶다면 그냥 한약방으로 찾아가면 된다고 그랬지.”
당시 대통령 후보 보좌역이었던 김성진(1963~ ) 씨는 그런 사실을 보고했고, 노무현 후보는 건너편에 차를 세운 뒤 횡단보도를 건너 남성당한약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약 50분 간 만나고 나온 노무현 후보는 김성진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 좋은 분을 만났네. 정말 좋은 분이다. 정치인을 만나 훈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다.”
훗날 김장하 선생한테 “왜 훈수를 좀 하지 않으셨어요? 희망이나 바람을 이야기해줄 수도 있었잖아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정치 10단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288~289쪽, 권력과 정치를 멀리하는 이유)
앞서 말했듯이 북한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해가 안 된 것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했을 때다. 적어도 김일성 종합대학은 북한에서 최고의 대학이요 세계 100대 대학에 든다니 교수진은 어떻고 시설은 어떠며, 학생들의 열심히 학문 탐구하는 모습이라도 볼 거라 생각했는데 본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안내한 곳은 김정일 위원장의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한 이야기로부터 재학생활 연구활동 및 졸업할 때까지의 전시실을 14실이나 돌고나니 김일성 종합대학의 방문은 끝이다. 서운하기가 말할 수 없다.
이번 방문에서 이북에 계시는 형님의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돌아가자니 마음 한 구석에 또 피가 맺히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북에는 동토의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형제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평양을 떠난다.
(304쪽, 감시받고도 빨갱이 콤플렉스가 없는 노인)
지청장은 굳은 얼굴로 그 잔을 자신이 마셔버렸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검사들이 수군거렸다.
“그래서 술판이 깨져버렸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자리를 피했어야 하는데….”
선생이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옆자리에서는 술 권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선생과 마주 앉은 나도 술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이처럼 김장하는 한 번 결심한 일은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자기 절제력이 대단했다. 아무리 반가운 사람이 찾아와 점심을 먹더라도 약방 근무시간이 되면 딱 끊고 일어선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의 화내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김장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최관경 교수도 그랬고, 이용백 명성한약방 원장도 같은 말을 했다.
“김장하 선생이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화난 것이다.”
(310쪽, 검사의 폭탄주를 거절한 지역유지)
“요새 만 원 어치 봉사를 하면서 고아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백만 원 어치 피알(PR)을 한다든지, 그 봉사의 가치를 되받으려 한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고 봉사를 한다든지, 이런 봉사의 개념에서는 정말 맞지 않는 이 스님의 이야기를 우리는 떠올려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실제 김장하의 삶과 나눔이 이런 걸 철저히 배격하며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대가 없는 나눔, 간섭 없는 지원, 바라는 것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는 보시 이런 걸 실천해온 사람이 김장하였다.
(330쪽, 진정한 보시의 삶이란)
한 군데에 다 주지 말고 1억 원씩 나눠 서른네 곳에 나눠주면 어떨까? 모르겠다. 그 서른네 곳을 선정하는 과정은 더 큰 논란과 비판을 불러오지 않았을까 싶다.
김장하 선생한테 자신에 대한 비방과 헛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도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결과를 보면 알잖아.”
-세월이 증명해주는 거라고요?
“예. 그걸 다 증명하려고, 변명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화를 낼 필요도 없었고, 그냥 참고 견디는 거죠.”
(337쪽, 비방과 험담, 그리고 비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한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나눔과 베풂 이야기
가난 속에 일군 부 아낌없이 내놓은 김장하
언론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김장하
베풀고도 내세우지 않는 자세는 어디에서 연유할까?
그이를 본받으려는 100명, 1000명의 김장하 장학생
『줬으면 그만이지』는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를 취재한 기록이다. 책을 보면 김장하는 보통 사람들은 따라 하기 어려운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한약사로 성공해 대단한 부를 일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선생은 나눔과 베풂을 일상 속에서 실천했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남몰래 장학금을 주었다. 지금까지 선생의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1000명을 웃돈다고 한다.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세운 사학 명신고등학교는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국가에 헌납했고 필생의 사업이었던 한약방을 접을 때도 30억 원이 넘는 자산을 국립경상대에 기부했다. 선생의 지원은 교육뿐 아니라 사회·문화·역사·예술·여성·노동·인권 등 정치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다.
이런 얘기들이 한동안은 소문으로만 떠돌았다. 장학금을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없었다. 형평운동·남성문화재단·진주신문 등 쉽게 노출되는 일조차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커녕 자기 이름이 거명되는 것까지 한사코 꺼렸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줄줄이 널렸는데 정작 베푼 사람은 보이지 않는 이상한 현상은 50년 남짓 이어졌다.
『줬으면 그만이지』는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이기도 하지만 ‘허락받지 못한 취재기’이기도 하다. 김장하 선생은 본인의 정의로운 베풂을 여태 꽁꽁 숨겨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열 배 백 배 뻥튀기해 알리고도 남았을 텐데 선생은 그랬다. 이런 선생이 본인에 대한 취재를 허락했을 리가 만무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전직 기자인 김주완 작가는 허락받지 않은 취재를 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30년 동안 기자로 살았지만 이토록 많은 이들로부터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취재 협조를 받은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선생이 베푼 범위가 넓다 보니 겹치는 인연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정의를 위해 선의로 베푼 것이다 보니 아름답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게 펼쳐지는 취재기는 30년 경력 취재 기자의 남다른 필력이 돋보인다. 본인의 허락이 없었기에 선생의 생애 전체가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이지는 않으나 그래도 이런 정도면 어지간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선생의 기부와 나눔과 베풂도 모든 것을 샅샅이 찾아내지는 않았지만 모자라지 않을 만큼은 담아내었다. 게다가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숨은 이야기도 제법 실려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흥미로워하는 것은 도대체 선생이 왜 그랬을까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열심히 번 돈을 선생은 왜 그렇게 아낌없이 기부하고 나누고 베풀었을까? 그렇게 세상과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내세우고 싶었을 텐데 어떻게 해서 선생은 시종일관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을까?
이 책은 선생의 행적을 제대로 밝혀놓은 것만으로도 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나눔과 베풂을 하면서도 본인은 드러내지 않는 평소 소신과 생활 태도까지 쉽게 풀어놓고 있다. 선생의 소탈한 인간적인 면모와 꾸밈없는 유머감각도 책갈피 여기저기에서 읽은 재미를 더한다.
이런 선생에게 그이를 본받고 배우려는 이들이 100명, 1000명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은 장학생들에게 나에게서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대신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고 했다.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는 선순환, 이른바 ‘김장하 바이러스’다.
주제어 : 지역, 진주, 나눔, 베풂, 문화, 평등, 형평, 여성. 노동, 친일, 반독재, 장학금, 가난, 사천, 장학생, 진주정신, 문학, 명신고등학교
분류: 진주, 역사, 문화, 지역, 장학, 기부
펴낸 날 : 2022년 11월 10일
가격 : 15,000원
반양장본 | 247쪽 | 152×225mm
ISBN 979-11-86351-53-6 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전점석
jjseuk@hanmail.net
책 소개
‘가고파’의 시인은 진정 무엇을 추구했을까?
친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보이는
노산 이은상의 이중성은
상상을 훌쩍 뛰어넘은 수준…
그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던 노산의 작품이 기교에만 능하고 진실을 외면한 글이 아니길 바라면서 마산에 있는 「가고파」 시비 순례를 시작했다.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이은상 인물 탐구는 흥미진진하였다. 그를 통하여 김성숙, 정인보, 이윤재, 안확, 최남선, 이광수, 조지훈, 안기영, 현제명, 홍난파, 김동진, 박태준, 윤이상 등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쓸 때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종적으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횡적으로 노산이 관계 맺은 인물들이 어떤 분인가를 살펴보았다. 노산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분은 환산 이윤재이고, 해방 후의 어려운 시절에 감싸주신 분은 운암 김성숙이다. 이 두 분은 별도로 정리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이선근, 윤치영과 각별한 관계였다. 이분들과는 체제 내에 적극 참여한 것은 같았으나 그 방식은 서로 달랐다. 일제강점기의 눈부신 활동에서는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했으나 그들과도 다르다.
성장 과정과 학생 시절, 일본 유학 생활과 가족관계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히 살펴보았다. 집필은 충무공, 조선어학회, 친일문제, 국토순례, 대통령과의 관계, 시조, 비문, 노래 그리고 단체 활동 등 아홉 분야로 나누어서 작성했다. 해방 후에 초점을 맞추어 대통령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책을 펴내는 이유는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친일과 항일을 구분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것을 노산은 추구하였다. 그 해답을 다른 곳이 아니라 노산, 스스로에게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작품은 아름답고, 독재 부역은 사실이기 때문에 각각 떼어놓은 상태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과 독재 부역이 하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훌륭한 시조시인이며 청년운동가인 노산이 독재 부역을 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책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너무 노산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분도 있을 거고, 지나치게 좋은 점을 강조한다는 분도 있을 수 있다. 글쓴이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노산의 이중성은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좋은 건 좋다 하고, 나쁜 건 나쁘다고 한다는 원칙이다. 글쓰기는 가치판단과 감정을 가능한 자제하고 사실만을 나열하고자 했다. 이 책은 글쓴이의 독창적인 저서라기보다 기존의 연구 문헌에 의지하면서 노산이 저서를 통해 직접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문학, 문학인과 권력의 바람직한 관계를 생각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되기를 바란다. -서문에서
저자 소개
전점석
우산(愚山). 1951년 대구 출생. 31년간 몸담았던 YMCA를 퇴직한 후에 2011년 8월부터 경남일보 칼럼 「경일포럼」을 매월 게재하고 있으며 2018년 수필 「이름짓기」가 한국작가 제55회 신인작품상을 수상했다. 2020년 5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최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 취재물 공모에 「친일·반공·독재, 그 계보의 변신을 추적한다」가 가작으로 입선했다. 「인물추적 이은상」을 《피플파워》 2017년 12월호부터 2019년 12월호까지 2년간 게재했다.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을 《거창한들신문》에 2019년 6월 20일부터 6회, 제주4·3학살의 박진경 대령에 대해 《남해시대》에 2020년 5월 21일부터 3회 연재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의 《기억과 기록》 2019년 12월호에 「5·18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을,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작가》 2020년 제26호에 「1980년의 광주 상무대와 대구 50사단 헌병대」를,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회보』 2020년 1월 통권 606호에 「80년대 신문을 오려 붙여서 복사하는 교회 청년들」을, 《샘》지 2020년 4월호에 「돌들이 일어나 꽃씨를 뿌리고」를, 경남도민일보 2022년 2월 8일자에 「해안의용군과 해상인민군사건」을 게재했다. 2017년 8월 칼럼 분야 회원으로 경남작가회의에, 2019년 4월 한국작가회의에, 2019년 11월 진해문인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2020년 10월 10일 아름나라가 시행하는 세 번째 아름나라문화상, 2021년 경남민예총 공로상 받았다.
지은 책은 『일할 때도 주인, 일하고 나서도 주인』(1988년), 『진주에서 지역운동하기』(2002년), 『창원에서 지역운동하기 1, 2』(2011년), 『친환경 건축이 지구를 살린다』(2013년), 『지속가능한 지역사회』(2015년), 『진해근대문화유산의 재발견』(2018년). 엮은 책은 『인간답게 살자』(1985년), 『자유 상상의 나래를 펴라』(2017년).
목차
「가고파」에서 「새길론」까지 9
1. 「가고파」를 사랑하는 마산시민 15
마산 시내에 있는 「가고파」 시비를 찾아서 17
신중현과 베토벤은 음악만 할 줄 알았던 게 아니다 25
시의 거리에서 맑은 영혼을 담은 시를 만나고 싶다 27
2. 한국청년운동협의회 활동과 가고파시비보존결의대회 31
1962년, 첫 번째 휴전선 종주를 다녀와서 31
청우회 중앙본부 제2대~10대 회장으로 17년간 활동 35
반탁, 반공투쟁으로 8개 청년단체들이 모인 대한청년단 40
1963년, 10년 만에 청우회로 부활 44
「가고파」 시비 보존 결의대회의 후원단체인 건국회 46
3. 해방 직후 광양건준 부위원장, 호남신문 사장 49
이은상, 광양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 49
전남건국준비위원회 최흥종 위원장, 전남인민위원회 박준규 위원장 52
미군정으로부터 호남신문 관리권을 받은 사장 박준규, 부사장 이은상 56
이은상 사장 취임 이후 친미 성향으로 돌아선 호남신문 59
4. 한독당 전남도당 위원장, 여순사건 김지회 신원보증 63
김구의 건국실천원양성소에 강사로 참여 64
여순사건과 한독당 계열의 오동기, 송욱, 이은상 66
여순사건 신원보증문제로 물러난 이은상의 서울, 부산 생활 71
6·25전쟁이 끝난 후 호남신문의 재건을 위해 노력 74
국립 전남대학교 후원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77
5. 이승만 단독정부 반대, 민주공화당 입당 거절한 운암 81
바위처럼 서 있는 운암 김성숙을 존경하는 노산 81
운암을 향한 추모시, 추도사와 묘비문, 묘비명도 작성한 노산 86
운암은 민주공화당 입당을 거절, 노산은 창당선언문을 작성 88
지조보다 중요한 노산의 ‘새길론’과 강력한 ‘지도자론’ 91
6. 이승만 대통령 후보 지지와 4·19학생혁명기념탑 비문 93
이순신 같은 분이라고 이승만 대통령 후보 지지 유세 94
조지훈의 지조론과 천관우의 노산에 대한 실망 98
4·19정신을 계승했다는 박정희 장군에 의해 기념탑 건립 103
피 끓는 젊은이를 노래한 노산의 「학생의 노래」 106
이승만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노산이 쓴 조사를 대독 108
7. 이승만 대통령, 김구 주석과 노산 이은상 111
시조 「목이 그만 멘다」와 헌수송 「송가(頌歌)」 113
계속 대통령 하려고 사사오입 개헌한 이승만을 찬양 117
백범 조가(弔歌) 1949년, 백범 추모시조 1950년 119
3·15를 불상사라고 한 노산 121
8. 「피어린 六百里」, 1962년 첫 번째 휴전선 종주 125
휴전선이 국경선으로 굳어져 가는 600리 128
휴전선을 다녀온 후 청년운동에 앞장서다 134
노산이 생각하는 분단의 원인과 분단극복 방안 136
9. 『기원』, 1980년 두 번째 휴전선 종주 143
평화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반공청년운동에 매진 145
굳어져 가는 휴전선을 찾은 두 번째 종주 146
이승만 시절 평화통일은 위험한 용공사상 147
평화통일을 말할 수 없던 시절의 북진통일 149
10.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현충사를 성역화 153
노산은 충무공기념사업회 1955~61년, 1972~82년 회장 153
현충사는 성역화, 탄신일은 국가기념일 157
박정희 역사관은 식민사관에서 이순신의 신격화로 161
박정희 대통령은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합해놓은 인물 166
11. 신사임당을 존경하는 박정희와 이은상 169
사임당과 율곡의 영정은 이당 김은호가 그렸다 170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171
무려 6판을 거듭한 『사임당과 율곡』 173
12. 영남대학교 설립은 이은상과 이후락의 작품 177
무리한 시설투자로 경영난에 봉착한 청구대학 177
조윤제는 학교문제를 정치권력에게 가져갔다고 힐책 179
같은 날, 각 이사회가 합병을 결의하고, 합동이사회 열어 최종 의결 181
영남대 교가는 이은상과 김동진의 작품 185
13. 대통령의 입각 권유를 거부한 사람들 189
3선 개헌을 앞둔 1968년, 국민교육헌장 제정 작업에도 참여 189
입각 권유를 거부한 게 유신시대에 저항(?) 194
앞장서서 유신과 유신정권을 찬양한 노산과 문인들 196
1인 독재시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어둠을 밝힌 문인들 198
한글전용정책 수립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활동 200
14. 비통한 심정으로 쓴 박정희 대통령 묘비문 205
비통함과 존경을 담은 박정희 대통령 비문과 조가 205
30년 친구 박정희를 위한 시인 구상의 진혼시 209
똑같이 충무공을 존경하는 박정희와 이은상 212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민주공화당 창당선언문 초안 작성 215
노산이 선택한 언론, 교육, 문화 국민운동 218
15.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 노산 223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경하하였다 223
이선근, 조병화, 서정주, 김춘수, 이병주, 천금성 225
불과 1년 5개월이었던 국정자문회의 위원 229
16. 1947년 대도론과 1961년 새길론 235
노산이 노래하지 않은 강과 산이 없을 정도 235
노산은 『대도론』에서 좌우익의 폭력을 염려했다 238
친일과 항일을 구별하지 말자는 노산의 『새길론』 240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에게서 배웠다는 『새길론』 243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현실에서는 독재자를 옹호하는 이중성 245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노산의 시비를 돝섬 이외는 모두 둘러보고서 느낀 점은 정말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노산 특히 「가고파」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2개를 제외하고 모두 노산이 돌아가신 후에 세워진 것이다. 만약 노산이 이렇게 많은 시비가 세워져 있다는 걸 아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분명 고마워하면서 미안하다고 하실 것 같다. 마산 시민들이 자신에게 과분한 사랑을 준다시며 불의에 저항한 3·15를 불상사라고 한 것을 이해해달라고 하실 것 같다.
(27쪽, 시의 거리에서 맑은 영혼을 담은 시를 만나고 싶다)
청우회는 박정희 정권의 반공정책을 지지하는 민간단체로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을 때마다 정권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노산은 제2~10대 회장을 연임하면서 1965년부터 1983년까지 17년간 활동하였다. 역대 16명의 회장 중에서 가장 오래 활동하였다. 1975년에는 단체 명칭을 한국청년운동협의회로 바꾸었으며 제1회 반공청년운동 순국자 합동추념제를 시작했다. 이후 건국청년운동협의회(1987년), 대한민국건국회(1995년)와 대한민국통일건국회(2017년)로 이름을 바꾸었다.
(45~46쪽, 1963년, 10년 만에 청우회로 부활)
광양자치위원회 구성을 협의하고, 위원장 김완근, 부위원장 이은상, 정진무를 선출했다. 노산은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임원 세 사람이 승낙을 받기 위해 노산의 집을 방문하였더니 상임위원 24명 중에서 친일파 몇 명을 교체하자는 등의 수정 제안 몇 가지를 한 뒤 쾌히 승낙하였다고 한다. 노산은 비록 지역민은 아니지만 전국적인 명망가였기 때문에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50쪽, 이은상, 광양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
당시 서울에서는 이승만 정권 유지를 위한 반공이데올로기 담론의 형성에 문인들이 앞장서고 있었다. 1948년 12월 27~28일 「민족정신 앙양 전국문화인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름이 오른 경남, 부산지역 문화인은 이은상을 위시해서 김달진, 김춘수, 김용호, 김상옥, 김용환, 김의환, 유치환, 유치진, 조연현, 최현배, 최인욱, 오종식, 정인섭, 손진태, 이광래, 이정호, 최영해, 오영수, 탁소성, 한형석, 허영균, 설창수 등이었다.
(72쪽, 여순사건 신원보증문제로 물러난 이은상의 서울, 부산 생활)
일제강점의 암흑기에 ‘달걀로 바위 치기보다 더 가망 없는 싸움에 수많은 사람들이 떨쳐나섰다는 것을, 그들이 이름 없고, 빛나지도 않으면서 굶어 죽고, 맞아 죽어 가면서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운암을 보면서 노산은 절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87쪽, 운암을 향한 추모시, 추도사와 묘비문, 묘비명도 작성한 노산)
판문점에서 벽제관에 이르는 지역에 관한 부분에서 냉전의식을 확실히 볼 수 있다. 명나라 군대가 벽제관에서 일본군에 패배하여 도로 송도로 퇴각하는데 이때 조선의 이덕형이 진군을 주장했다는 내용은 맥아더의 북진론을 지지한 것이다. 벽제관에 관한 글에서 세 개의 다른 역사적 사례를 비교·소개하면서 맥아더의 북진론을 영웅적인 것으로 신화화했다.
(131쪽, 휴전선이 국경선으로 굳어져 가는 600리)
노산은 『기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평화’라고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평화는 전쟁 없는 평화가 아니었다. ‘총칼이 아름다운 강산을 더럽힌다’는 표현으로 인해 노산이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것 같지만 그가 참여한 청년단체와 청년들에게 행한 연설을 보면 기본적으로 멸공과 북진통일을 이루어야만이 찾아오는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145쪽, 평화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반공청년운동에 매진)
노산은 『사임당과 율곡』에서 사임당에 대해서는 효녀, 착한 아내, 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으며, 율곡에 대해서는 지방관이 되어 지방행정을 쇄신하는 모습을 그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국모의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율곡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박정희의 논리에 합당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정치적 목적이고, 노산은 민족문화 측면이라고 나누어 볼 수도 있다.
(174~175쪽, 무려 6판을 거듭한 『사임당과 율곡』)
박정희 대통령은 이 충무공에 대해 남다른 존경심을 갖고 있던 노산을 찾게 되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친밀해졌다. 노산은 평소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해놓은 인물’이라고 말하였다.
(212~213쪽, 똑같이 충무공을 존경하는 박정희와 이은상)
77세의 노산은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라는 제목과 ‘새 시대, 새 역사의 지도자상’이라는 부제로 글을 썼다. 직책은 민족문화협회 회장이었다. ‘10·26사태 이후 두어 차례나 위급한 고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앞에는 안팎으로 닥쳐오는 난관이 겹겹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모든 여론들이 한결같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223~224쪽,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경하하였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문제적 문인 이은상을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책
뛰어난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은 언제나 논란이 따라다니는 문제적 인물이다. 한편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시인임을 앞세우며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아무 잘못이 없는 인물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승만에서 박정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권력의 편에 서서 독재를 옹호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다고 보고 있다. 나아가 그의 문필 활동까지 지배자를 위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논의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이렇게 상반된 주장이 맞부딪히는 지점에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은상을 옹호하든 비판하든 저마다 자기 관점에 맞추어 관련 사실에 대해 해석하면서 자기 얘기만 되풀이하고 마는 것이다.
지역에서 지역운동을 오랫동안 벌여온 전점석 작가의 <노산 이은상과 대통령>은 상반된 주장을 아우르는 한편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노산의 생애 전반을 빠짐없이 폭넓게 살펴봄으로서 그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에 이르고 있다.
해방 직후 전남 광양에 머물던 때부터 광주에서 신문사 사장을 하던 시절의 행적, 여순사건에서 보인 그의 태도는 널리 알려진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6.25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된 그의 정신세계와 이후 반공청년단체 회장 시절의 사상은 새로운 사실로 다가온다.
세종대왕 숭모 활동과 한글전용정책, 이순신 장군 영웅화와 아산 현충사 성역화 사업, 이율곡과 그 어머니 신사임당 선양 사업에 나선 행적도 크게 알려진 것은 아니다. 이런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새롭다. 전문 연구자들은 아는 일이라 해도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이은상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동시에 독재를 찬양했다. 어떤 사람들은 노산을 두고 소신도 줏대도 없이 자기 이해와 편의를 좇는 기회주의자로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점석 작가에 따르면 이은상은 그런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다.
노산 이은상의 이중성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이중성이 노산의 정신세계에서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아무 모순 없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공과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았고 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강력한 지도자라야 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노산 이은상을 비판하든 옹호하든, 전문 연구자이든 일반 애호가이든 그의 진면목을 있는 그대로 보고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한 번 읽어 보시라고 권할 만한 책이다.
주제어: 지역, 마산, 가고파, 문화, 김성숙, 정인보, 이윤재, 안확, 최남선, 이광수, 현재명, 홍난파, 김동진, 박태준, 친일, 독재,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순신, 3.15, 4.19, 세종대왕, 신사임당, 이율곡, 휴전선
분류: 역사, 지역, 문학, 정치
펴낸 날 : 2022년 10월 31일
가격 : 14,000원
반양장본 | 242쪽 | 146*210mm
ISBN 979-11-86351-52-9 0312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전희식
책 소개
극단적인 체험이 아니라
일상의 현장을 중심으로
삶의 조건들을 살펴보고
물질문명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 주는 책
『습관 된 나를 넘어』에 대해 작가 전희식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가장 적절한 소개인 것 같습니다. 그대로 옮겨 놓는 것으로 책 소개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모쪼록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건강하고 경쾌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점가를 휩쓰는 영성가 대부분은 바닥까지 추락한 경험이 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불치병을 앓거나 임사체험을 할 정도로 병약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방황의 끝자락을 헤매는 기간이 지루하고 길었습니다. 그들이 바닥을 박차고 부상하는 대목을 접하면 자연스럽게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내 모습과 비교됩니다. 생사를 다투는 절박한 위기를 그리워하는 이 심리. 이건 뭘까요.
뭔가에 접촉하는 순간 긴장하거나 욕심이 일거나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기억 때문입니다. 긴장과 두려움이 자기 생존에 효과가 있었거나 앞으로도 유리하다고 믿는 종류의 기억이 있어서입니다.
감동과 감사가 솟아나는 것도 기억 때문입니다. 기대가 충족되거나 보상이 주어지던 기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억은 경험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세상 만물이 한 몸 평화로 보이는 것도 경험에 토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직접경험, 간접경험, 상상 속의 경험들은 쌓여서 습관이 됩니다. 습관이 되면 쉽고 친숙합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 행동은 습관으로 코딩된 반응입니다. 따라서 우리 현실은 습관 된 경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 ‘습관 된 나를 넘어’는 이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기억으로 코딩된 현실을 재설정하자는 것입니다. 초기화를 한다는 것이지요. 습관은 나이만큼 살아온 삶의 궤적입니다. 어쩌면 전생으로 세세생생 이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넘어보자는 게 이 책입니다.
뭇 자기계발서들처럼 우주원리를 설명하거나 세상살이의 인과를 해명하려 하지 않고 사람살이 숨결을 생생하게 전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제가 겪고 깨친 것을 글로 담았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자 했습니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면 된다면서 번호를 매겨주는 자기계발서들과는 다른 책이 되고자 했습니다.
내가 있는 여기가 어디인가. 글 속에 있는가. 글을 쓰는 곳인가. 쓴 글을 읽는 순간의 이곳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항상 묻고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습관으로 굳어져 있는 자기를 넘어서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자 소개
글: 전희식
1958년에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서울과 인천에서 살다가 시절 인연을 만나 1994년에 농촌으로 내려가서 전북 완주에서 12년 전북 장수에서 16년을 살았다.
요즘은 온 삶 상담과 수련 지도, 농촌 지역 통합 돌봄 일에 집중하고 있다.
쓴 책으로 <똥꽃>(2008. 그물코), <아름다운 후퇴>(2012, 내일을 여는 책), <소농은 혁명이다>(2016. 모시는 사람들),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2016. 한살림) <마음 농사 짓기>(2019, 모시는 사람들) 등이 있으며 곧 <선생님, 식물들도 권리가 있어요?>(2023. 철수와 영희)가 나온다
일러스트: 금한결
고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을 내 꿈을 좇는 시간으로 보내고 싶었다. 오직 나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 내가 원하는 그림,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내 꿈에 확신을 갖기 위해 고등학교 대신 디자이너 일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경험을 쌓으며 3년을 보냈다.
20살,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과를 전공하여 대학교 생활을 하며 내 그림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림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손끝으로 나를 표현하고 내가 생각한 것을 나대로 그려 완성하는 것을 즐긴다.
차례
여는 글
여기는 어딘가 … 6
나를 찾아서
내 헛발질과 주관이라는 허상 … 16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나를 찾다 … 21
나는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가 … 39
숨과 생명
“지구야 숨쉬기 힘들지?” … 54
다가오는 세상 미리 준비해야 … 79
영성 시대라고들 하는데 … 91
밥과 명상
똥이 밥 되는 삶 … 116
두릅 따기와 비옷 두 벌 … 128
같이 먹는 밥 … 146
놀며 일하며
모든 일을 놀이 삼아 … 168
표창장. 받기보다 주기 … 183
기도
내 기도의 세 갈래 … 196
지구를 향한 애도의 시간 … 213
평화의 소녀상과 피에타상 … 225
습관 된 나와 기도로 커 가는 기 (氣) 몸 … 231
닫는 글
습관 탈출속도 … 239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골프장 딸린 호텔이었다. “우리의 밤은 낮보다도 밝다”였다. 폭염과 폭우, 가뭄과 산불이 전 지구를 들쑤시고 있는데 이런 광고판을 버젓이 내걸 수 있는 무감각이 놀랍다. 낮보다도 더 밝은 야간 골프를 치러 가는 사람이 있나 보다. 우리는 지금 뭘 잃고 뭘 거머쥐고 있는가.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맞는가?
(28쪽.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나를 찾다)
뷔페에 가서 적게 먹으면 손해고 많이 먹을수록 왠지 이익일 거라는 극단적 사고가 있어서다. 그래서 평범한 그 시민들은 손에 약을 달고 산다. 종류도 많다. 나이가 많지 않아도 고혈압에 고지혈증, 당뇨에 비만까지 골고루 갖췄다. 걷기가 싫어서 2층도 엘리베이터를 탄다. 늘 운동 부족이라고 걱정하면서 이런 극단적인 선택에 익숙하다.
(48쪽. 나는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가)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은 바로 나다. 결코 주인의 자리를 아무에게나 넘겨버리지 않는 것, 내가 마음 먹은대로 마음과 생각과 말과 손발이 움직이게 하는 것, 내가 마음먹으면 꼭 그렇게 말이 나오고 내가 생각한 그대로 내 행동이 연결되는 삶을 지금 바로 시도해 볼 때다.
(75쪽. “지구야, 숨쉬기 힘들지?”)
새로운 상상이라는 것이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처럼 열대의 사막에 폐쇄된 공간을 만들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 가면서 인공 눈을 뿌려가며 스키를 타는 게 아니라, 자연과 한 몸 의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존재의 신성성을 북돋는 그런 상상이라면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하는 최고의 백신이 되리라 본다.
(90쪽. 다가오는 세상, 미리 대비해야)
‘습관 된 나’는 보통 끈질기지 않다. 몸 세포에 각인된 습관은 자동기계처럼 특정 행동과 감정과 생각을 불러온다.
참 내가 하는 생각은 없다. 참 내가 결정해서 만드는 감정은 없다. 거의 자동화된, 프로그램 된 작동장치에 의한 것들이다. 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바라보며, 관조하는 ‘나’를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면 영화관에 불이 켜진다. 영화의 감동이 여운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산뜻하게 다음 관객들에게 자리를 넘기고 영화관을 나와야 한다.
(100~101쪽. 영성 시대라고들 하는데)
사회적 단식도 좋다. 사회적 단식이란 작은 사회 단위가 모든 것을 멈추는 것이다. 버스도, 택시도, 인터넷도, 전기도, 가스도, 수도도 모두 딱 멈추는 것이다.
지구의 날에 10분 전등 끄기를 하듯이.
모든 걸 딱 멈춰 보면 새로운 경지가 열릴 것이다. 장담한다.
(124쪽. 똥이 밥 되는 삶)
소비를 조장하는 모든 광고를 금해야 한다.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여는 신품 박람회. 당연히 금해야 한다. 국제 조약으로 금해야 한다. 모든 소비와 모든 물질적 풍요는 코로나의 먹잇감이다. 물건 많이 사면 마일리지 주는 행위 못하게 해야 한다. 물건 많이 사면 환경부담금 물려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뭘 먹고 살아?”라고 할지 모른다.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조선시대 왕족보다 더 잘 먹고 잘살고 있다.
(135~136쪽. 두릅 따기와 비옷 두 벌)
이때 사용한 ‘기후 양심’이라는 신조어는 내가 생각해도 참 소중했다. 우리가 신앙적 양심이라거나 작가적 양심이라거나 지식인으로서의 양심 운운하지만 다 헛소리들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기후 양심’을 말한 것이다. ‘기후 양심’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157쪽. 같이 먹는 밥)
“정말 살기 힘들다고 느낄 때가 언제였냐”고 물으니 “세월이 약이여~”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대답 뒤에는 폭소가 뒤따랐다. 카드를 쥐고도 숫자를 읽을 줄 모르는 할머니는 곁에서 학생들이 도와 드렸다. 자식 관련 질문이 나왔는데 “써글놈들이 전화도 안 한다”라고 하여 와르르 웃음보따리가 터졌다.
(170쪽. 모든 일을 놀이 삼아)
남의 소원 빌어주기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거 참 남는 장사로구나 싶었다. 내 소원 빌기를 하면 그 소원은 단 한 사람의 바람이지만 남의 소원 빌어주기를 하면 최소한 참석자 전원이 내 소원도 함께 빌어 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청와대 민원도 서명자가 많으면 더 효과적이라 하지 않던가. 기원자가 많은 소원은 아무래도 하늘(상제, 하나님, 부처님)이 눈길을 먼저 주지 않을까 싶고, 소원이 많이 접수된다고 해서 과부하로 처리 불능에 빠질 리도 없을 것이다.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이니까 말이다.
(184쪽. 표창장, 받기보다 주기)
여럿이 같이 신명 나게 춤추고 놀 때 우리는 착해진다. 합천에 사는 동갑내기 절친 서정홍 시인은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저절로 착해진다고 했다. 그렇게 착해진 시인의 마음 상태가 선연하게 그려진다. 지극한 평화.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고요하면서도 찰랑찰랑 넘치는 뿌듯함. 자신에 대한 그지없는 만족. 이웃과 외부 세계에 대한 흐뭇한 공감. 무엇 하나 눈과 귀에 거슬리는 것 없는 수용 등. 끝없이 떠오른다. 착해진 시인의 마음 상태가 어떤 것인지가. 나는 신나게 춤추고 놀 때 착해지는 걸 경험한다. 놀고 춤추는 것보다 더한 기도가 없다.
(221쪽. 내 기도의 세 갈래)
비닐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나는 기억한다. 플라스틱과 양은 냄비와 석유가 처음 등장할 때도 기억한다. 석유곤로와 석유를 넣은 호롱불은 최고의 인기품목이었다. 시골을 떠도는 남사당패의 가설극장, 콩쿠르대회가 열리면 플라스틱 바가지와 플라스틱 들통이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235쪽. 습관 된 나와 기도로 커가는 기(氣) 몸)
습관의 탈출속도에 이르는 데는 감사와 기적의 시선, 그리고 유머와 기도가 최고의 연료라고 생각한다. 유머나 기도의 가장 큰 효험은 집착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집착하면 탈출속도가 안 난다. 인연 따라 잠시 모였다 흩어지는 세상 원리를 알면 집착은 떨어진다. 절대 고요, 절대 평화의 세계를 보게 된다. 유머와 기도의 힘이다.
(242쪽. 습관탈출속도)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코로나 사태가 풀리면서 2022년 11월 현재 대부분 사람들이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세계 곳곳의 유명 관광지가 다시 붐비고 우리나라도 전국 각지에서 축제가 넘쳐나고 있다. 모두 지나친 소비를 유발하는 것들이다.
인간의 지나친 소비가 지구환경을 악화시켜 코로나19 사태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벌써 잊어버린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에너지·금융·산업 등의 해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탓에 그런 소비가 더욱 극성을 부린다. 자기자신까지 파멸로 몰고 가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한갑질이다.
이런 가운데 전희식 작가의 『습관 된 나를 넘어』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근본적이고 깊이 있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임시 대책에만 매달리지 말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데 대해서도 생각을 모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전환시켜야 근본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코로나로 택배가 폭증해 교통체증이 심해졌으니 물류 전용 지하도로를 만들자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는 향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코로나 사태는 소비를 줄이고 쓰레기를 없애야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설사할 때는 물도 안 먹는 게 좋다. 단식이 명약이다.” 앞으로는 소비 감축, 개발 중지, 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제시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책을 찾아야 한다. 농촌을 살리는 정책이나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갈 수 있는 대책도 나와야 한다. ‘복합오염’ 상태에 빠진 지구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코로나가 안겨준 뜻밖의 선물을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말하자면 거리 두기와 자가 격리로 생긴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해서다. 뜻밖이고 어색한 일이었지만 옛날 성현들이 혼자 있을 때 깨우침을 이루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자기 자신과 직면하면서 내재 된 자기의 참모습을 알게 되는 기회라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받게 된 이와 같은 ‘쉼’을 통해 지나고 보면 별 의미도 없는 일들을 두고 다투거나 대립하며 고민하던 시간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축복이 아니냐고 한다. 방향은 생각도 못 하고 내달리기만 하던 일상을 돌아보는 여유를 누리라고 속삭인다.
추천의 글
작가의 내면에는 생명 존중과 대동공동체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사물이나 사건, 이웃과의 만남에서 작가는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기도와 명상, 꾸준한 수행의 길을 가자고 한다.
밝은 기운과 맑은 몸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서 온 우주로까지 퍼지게 하는 과정과 방법이 너무도 쉽고 단순하다. 누구나 해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이건열(정선군 반천리 행복한 농촌사업 추진위원장)
목암 전희식 선생은 길을 걷는 사람이다. 길 위에서 묻고 대답하기를 농사짓듯이 한다. 이 책은 팔레스티나 땅에서 살던 세례자 요한에게 “당신 누구요?”(요한1.19)라는 세상의 질문에 대한 지금 여기에서의 대답이다.
모두가 대답해야 할 말의 길을 물 흐르는 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귀한 글을 만난 기쁨이 깊고 크다.
김유철(시인, 삶예술연구소 대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가 떠올랐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유스러움을 탐닉해 온 저자의 경험들은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이 시대 물질문명에 종속된 우리의 삶들이 쉼의 미학을 찾아 나서야 하는 지침서입니다. 모두에게 진정한 휴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병태(장수문화원 원장)
어제 퇴근해서 보니 못 보던 차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전화번호도 없이. 그 공간은 등기부 등본상 제 땅입니다. 구석진 데에 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원래 저는 이런 경우 화를 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이유가 있겠지 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은 덕분이겠습니다.
이 책은 하루하루 취재와 마감 일정에 쫓기며 사는 저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가’라는 대목을 새겨봅니다.
이진우(한국농어민신문 기자)
급격하게 위기가 겹쳐오는 세상. 즐겁게 살면서 세상을 유익하게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실천하는 기도로 ‘습관된 나’를 넘어서야 한 걸음씩 밝은 세상을 이룬다는 글들이 술술 읽힌다.
깊고 맑은 옹달샘과 같은 깨우침은 저자의 내공에서 나온다. 글은 쉽고 뜻은 깊다.
김일섭(얼쑤농장. 순콩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상과 논리, 신념과 믿음이 우리를 혼란스럽고 힘들게 한다. 관념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실천하는 것을 토대로 영성의 문제까지 안내한 글은 본래의 우리 모습을 생각하게 하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모든 생명에게 자기 존재의 환희를 느끼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보낸다.
이상갑(거창 샛별중학교 전 교장)
주제어: 환경, 생태, 코로나, 호흡, 자유, 평화, 어머니, 대지, 유머, 기쁨, 놀라움, 감동, 감사, 호흡, 행함, 실천, 기도, 헌신
분류: 자기계발, 영성, 정신, 생태, 수련/수양
펴낸 날 : 2022년 9월 30일
가격 : 15,000원
반양장본 | 140쪽 | 146*210mm
ISBN 979-11-86351-49-9 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김훤주
pole@idomin.com 010-2926-3543
책 소개
잠들어 있는 옛 읍지에
새 삶의 숨결을 불어넣는 책
<칠원읍지>는 지금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포함되어 있는 칠원읍과 칠서면·칠북면 등 삼칠 지역을 다룬 책입니다. ‘칠원과 함안은 지금 하나의 군인데 책을 왜 나누어서 썼을까요?’ 1900년대까지만 해도 삼칠 지역은 별도로 독립된 칠원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칠원읍지〉라는 책이 생겨날 수 있었습니다. 칠원과 함안이 하나로 통합이 된 것은 1908년입니다.
<칠원읍지>는 인물과 역사, 건물과 유적은 물론이고 자연환경과 특산물까지 그야말로 온갖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만물상회 같은 책입니다. 그 때에 비해 세상이 너무 달라져서 지금 사람들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내용들도 많습니다.
<칠원읍지>는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들여다보고 싶어도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안군에서 1997년 <함안군지>를 펴낼 때 제2권으로 <국역 칠원읍지>를 출간했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너무 먼 이야기였습니다. 옛날 말투가 많은 데다 빠뜨리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를 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물론 <칠원읍지>에 담긴 내용을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고요. <칠원읍지>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칠원읍지>에 이런저런 내용이 담겨 있구나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청소년용으로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를 만들면서 되도록 욕심을 줄였습니다. 내용을 그대로 정확하게 옮겨야 한다는 생각 대신에 <칠원읍지> 가운데 재미있는 사실과 이야기를 골라 담았습니다.
간략해서 아쉽다 싶은 대목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옛 서적의 내용을 조금 보탰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옛날과 지금의 모습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들어가면서’ 중에서
저자 소개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출판국장과 환경전문기자로 일하며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펴낸 책으로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이 있다.
차례
들어가면서 ·········· 8
1부 우리는 어떻게 옛날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을까요?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과거를 알 수 있을까요? ·········· 14
조개무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 16
고인돌이 무덤이라는 것을 언제 알게 됐을까요? ·········· 17
귀한 유물이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 18
글로 남겨진 기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 19
가장 오랜 기록이 전하는 칠원과 함안 ·········· 21
물건이나 글을 통해 모든 역사를 다 알 수 있을까요? ·········· 22
기록과 유물 중 어느 쪽이 역사를 이해하기 좋을까요? ·········· 23
우리나라의 기록유산은 얼마나 될까요? ·········· 24
함안은 기록유산의 보물창고 ·········· 25
<함안총쇄록>에 <금라전신록>까지 ·········· 26
옛날과 오늘날의 기록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28
옛날과 오늘날 기록물 내용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 29
2부 <칠원읍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1. <칠원읍지>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 34
2. <칠원읍지>에 담긴 칠원의 옛 이름 ·········· 36
3. <칠원읍지>에 담긴 자연 ·········· 38
경양대 ·········· 38
우질포 ·········· 40
멸포 ·········· 41
서천 ·········· 42
4. <칠원읍지>에 담긴 건축물 ·········· 45
무기연당 ·········· 45
칠원향교 ·········· 50
덕연서원 ·········· 55
향현사 ·········· 56
무산사 ·········· 57
홍포사 ·········· 59
태양서원·청계서원과 충효사 ·········· 61
장춘사 ·········· 62
광심정 ·········· 65
상봉정과 합강정 ·········· 67
5. <칠원읍지>에 담긴 역사유적 ·········· 69
칠원읍성 ·········· 69
선정비 ·········· 71
선정비를 세워준 이유는 ·········· 73
낙동강 뱃놀이 ·········· 74
지금은 사라진 남정자 ·········· 80
6. <칠원읍지>에 담긴 색다른 이야기들 ·········· 82
칠원에서 민란이? ·········· 82
막강했던 고을 원님의 권한 ·········· 84
그러면서도 파리목숨이었던 원님 ·········· 85
조선에 이미 근무 평가가 있었다고? ·········· 86
수령의 봉급은 얼마였을까? ·········· 88
조세 싣고 서울 가는 머나먼 뱃길 ·········· 90
칠원에 화전민이 있었다? ·········· 91
나이로 벼슬을 했다 ·········· 92
7. <칠원읍지>에 담긴 옛사람들의 효도와 절개 ·········· 96
귀한 음식을 부모님께 올리고 ·········· 97
효자보다 더했던 효부의 효성 ·········· 98
똥 맛보기와 손가락 자르기 ·········· 99
이젠 다리살도 베어내고 ·········· 101
하늘의 도움으로 신인이 나타나니 ·········· 101
호랑이 나타나고 샘물도 솟고 ·········· 102
목숨을 바쳐야 사는 여자들 ·········· 103
왜적에게 도륙당한 형제 부부 ·········· 109
8. <칠원읍지>에 담긴 함안의 인물들 ·········· 113
고려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윤환 ·········· 113
서원을 최초로 세운 주세붕 ·········· 115
맑고 욕심 없었던 배세적 ·········· 119
충성 보상을 못 받아도 태연했던 주재성 ·········· 121
자신의 공적을 감춘 의병장 조방 ·········· 123
독립운동자금을 내놓은 주시성 ·········· 125
역전의 용장 제말 장군 ·········· 127
제말 장군의 무덤을 찾아준 어사적 현감 ·········· 131
사랑의 화신 산돌 손양원 ·········· 133
마치면서 ·········· 138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흥미롭게도 칠원과 함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에 나란히 등장합니다. 포상팔국 전쟁이 그것입니다. 칠포·골포·고사포(고자국)·보라국·사물국 등 바닷가의 여덟 나라가 포상팔국인데 그 군사들이 209년 또는 212년에 아라또는 가라를 공격했다는 기사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옵니다.
(21쪽. 가장 오랜 기록이 전하는 칠원과 함안)
경양대는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칠서취수장 자리의 강가 벼랑에 있습니다. 맞은편에서 보면 깎아지른 모습이 웅장합니다. 옛날에는 낙동강에서 첫손 꼽히는 명승이었는데 경’은 멋진 경치를 뜻하고 ‘양’은 좋은 술을 가리킵니다. 옛날 어른들이 여기 모여 자연을 즐기며 술을 마시곤 했던 모양입니다. <칠원읍지>에는 이곳에서 노닐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43쪽. <칠원읍지>에 담긴 자연)
사람들은 이런 무기연당을 두고 전남 담양군의 소쇄원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조선 시대 정원이라고 얘기합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답답하지 않고, 고요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아름다운 전통 정원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50쪽. <칠원읍지>에 담긴 건축물)
선정비가 칠원읍 용산리 서남2길 10에 제법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23기입니다. <칠원읍지>에서 선정비가 세워졌다고 적힌 인물을 꼽았더니 모두 22명이었습니다.
선정비 중 글자가 보이지 않는 것은 빼고 <칠원읍지>에서 선정비를 세워준 사람을 찾아봤더니 4명이었습니다. 1659~1661년 현감을 지낸 이시배는 기록은 없지만 선정비는 있어서 이채롭습니다. 선정비가 칠원 만큼 많이 남은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71~72쪽. <칠원읍지>에 담긴 역사유적)
임진왜란이 막 끝난 1607년 1월 27~28일에 있었던 낙동강 뱃놀이는 참여한 인원만도 35명이었으니 당시로서는 대단한 규모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유흥을 즐기는 자리가 아니라 민족 최대의 시련이었던 임진왜란을 이겨낸 위로와 자축의 모임이었습니다.
(77쪽. <칠원읍지>에 담긴 역사유적)
칠원현감과 함안군수의 봉급이 같았을까요? 아록위는 함안이 40결로 칠원보다 곱절이 많습니다. 반면 공수위는 함안과 칠원이 모두 15결로 똑같습니다. 땅과 인구가 함안이 넓고 많기 때문에 아록위는 차이가 나고, 수리할 건물과 대접할 관리의 숫자는 비슷해서 공수위가 같았는지, 그 기준을 어떻게 정했는지도 흥미롭습니다.
(88~89쪽. <칠원읍지>에 담긴 색다른 이야기들)
열녀의 길은 효자보다 한층 더 급수가 높습니다. 손가락 자르기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아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남편을 위해 아내가 손가락을 잘랐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위해 손가락을 자른 남편 이야기는 <칠원읍지>에 나오지 않아요. 그런 사례가 없었던 걸까요? 있었는데도 적지 않았을까요?
(103~104쪽. <칠원읍지>에 담긴 옛사람들의 효도와 절개)
이부익사는 ‘두 부인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뜻입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편 주익창과 주필창은 뒤에 나오는 주세붕 선생의 셋째, 넷째 손자인데 이들 또한 왜적의 창칼에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한 집안에서 네 목숨이 도륙당했습니다. 그나마 이름이 있어 이렇게 기록으로 남았지만 왜적의 창칼에 무참히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112쪽. <칠원읍지>에 담긴 옛사람들의 효도와 절개)
“주세붕은 생전에 의복이 가난한 선비와 같았고 고기도 좋은 고기는 먹지 않았으며 앉을 때는 털 방석에 앉지 않았고 마구간에는 좋은 말이 없었으며 집도 빌려서 살았다. 봉급이 풍족했지만 입고 먹는 것 이외에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19쪽. <칠원읍지>에 담긴 함안의 인물들)
“저놈에게 당장 곤장을 쳐라”며 다짜고짜 윽박지르는 조선시대 원님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 우리는 그게 조금 장난스럽다 여기면서도 실제 모습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알고 보니 원님의 업무와 책임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139쪽. 마치면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지역의 역사를 찾아주는 보람
<칠원읍지>가 건네는 교훈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첫째 기록의 중요함을 일깨워 줍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있었던 일이 없어지지만 기록으로 남기면 역사가 되지요.
또 하나는 옛날 사람들의 삶과 사연이 텔레비전 드라마나 이야기책에는 제멋대로이고 엉망인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았고 가로세로로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가 지금 이만큼 잘 사는 게 어느 순간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린 덕분에 지금 이렇게 가지와 잎이 무성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지금 보고 듣고 겪는 사소한 이야기들도 얼마든지 훌륭한 역사의 기록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는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지역 역사·문화 안내서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자라나는 어린 친구들이 경상남도 함안군 한켠에 자리 잡은 고장 칠원을 이해하고 관심을 갖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주제어: 지역, 자연, 문화, 예술, 건축, 인물, 사회, 주세붕, 윤환, 주재성, 무기연당, 용화산하동범록, 칠원읍지, 함안, 함주지, 손양원, 제말, 경양대, 반구정, 칠원읍성, 홍포사, 칠원민란
분류: 역사, 지역, 문화
펴낸 날 : 2022년 9월 15일
가격 : 18,000원
반양장본 | 376쪽 | 152*225mm
ISBN 979-11-86351-48-2(0330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0194
www.idomin.com
저자 : 김성수
wadans@nate.com, 영국 거주
책 소개
영국으로 한국을 비추고
한국으로 영국을 비추며
우물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길잡이
저자 김성수는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영국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서른 가까이 살았고 영국에서 역사를 공부했는데 박사학위는 한국인 함석헌을 주제 받았다. 다시 한국에서는 과거사 진상 규명과 반부패 사회 구현을 임무로 하는 기구들에서 일하다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있다.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한국 이야기를 영국에 비추어 보여주고 영국 이야기를 한국에 비추어 보여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실은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는 방법론이다. 저자가 들고 있는 거울을 따라 책 속을 거닐다 보면 세상을 보는 안목이 좁은 우물을 벗어나 저도 모르게 넓어지고 깊어진다.
영국과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먼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인상 깊다. 9월 8일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0대 후반에 공주 신분으로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군용트럭으로 구호품을 전달하고 탄약을 관리했다. 휴식 시간에는 흙바닥에 앉아 타이어를 갈고 엔진을 손질하며 차량을 정비했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대녀였고 인도 왕족의 후손인 인도 소피아 공주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 앞장섰다. 1913년에 영국 수상이 탄 차량을 가로막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영국의회 앞에서 데모를 이끌었으며 대대적인 납세거부운동을 선도했다. 잘못하는 정부에 맞서서 대중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모범을 이미 110년 전에 보여줬다.
한국에는 없을까. 일반 국민은 다 가는 군대를 사회 고위층은 면제 받는 경우가 많았다. 장준하는 그렇지 않았다.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베트남 파병에 반대했지만 파병이 결정되자 ‘빽’을 써서 장남을 참전시켰다. “찬성한 여당 의원도 안 하는 일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남의 귀한 아들을 총알받이로 보내고 내 아들만 안 보낼 수 있나요?”라고 답했다.
실패한 전봉준 vs 성공한 크롬웰
한국의 전봉준과 영국의 크롬웰도 같은 혁명가로서 선명하게 대조된다. 전봉준은 외세를 끌어들인 왕 때문에 실패하고 목이 잘렸다. 크롬웰은 외세를 끌어들인 왕을 베고 혁명에 성공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영국은 두툼한 반면 한국은 얄팍하다. 까닭은 무엇일까. 국왕의 목을 자른 경험이 있는 국민과 그런 경험이 없는 국민의 차이는 아닐까.
영국에서는 덕분에 전제왕권이 사라지고 의회가 자리 잡았으며 국민의 권리도 보장되었다. 전봉준이 외세 개입을 막기 위해 관군과 휴전하면서 제출한 폐정개혁안은 다른 길을 걸었다. 노비문서를 태우는 등 신분제의 전면적 폐기는 혁명적이었다. 토지의 평균 분작은 농민의 토지 소유를 지향하는 것이다. 젊은 과부의 재혼을 허락하라는 주장은 참 따뜻한 인간적 호소였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동학혁명군은 일본군에 짓밟혔다.
전봉준이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친일파가 줄어들고 갑질 횡포가 사라지고 성평등지수는 높아지고 양극화는 덜하지 않았을까? 잘못하면 지배층도 목이 잘릴 수 있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좀더 일반화되지 않았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은 그 잊은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는 지적을 상투적이지 않게 만드는 대조였다.
세월호 의사자에게 영국처럼 보편 복지가 주어졌다면?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목숨을 잃은 박지영 씨의 사연을 영국의 보편적 복지와 비교 대조한 것은 날카롭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은 1945년 세계대전 탓에 전쟁비용으로 국가 채무가 쌓였는데도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양육 등 보편 복지를 강화했다.
사회복지는 단순히 인도적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국가신인도 강화에도 막대한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복지가 확대되면 국민 개개인이 잠재력을 극대화해 유능한 개인이 될 수 있다. 유능한 개인은 자아실현을 통해 개인도 행복해지고 국가도 그 개인 덕분에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박지영 씨는 부친 사후 생계를 위해 세월호에 몸을 실었다가 참변을 당했다. 대학을 포기하는 대신 무사히 졸업하고 잠재력을 극대화했으면 어땠을까?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헌신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미래의 어느 시점에 나라와 지구촌을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역량을 쏟아붓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도록 보편 복지가 거들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영국과 한국 교복값 차이에 숨어 있던 사회 모순
두 나라 아이들의 서로 다른 옷차림 같은 범상한 차이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눈썰미가 매섭다. 한국 학생은 허드렛일을 할 때 교복을 벗고 다른 옷을 입지만 영국은 교목을 입은 채로 한다.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은 교복값이 비싸고 영국은 일반 옷값의 30%밖에 안 한다. 여기에도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바로 담합이다.
담합은 교복뿐 아니라 독과점 품목에서 소규모 업종까지 전반에 퍼져 있다. 과징금의 경우 서양은 피해액의 300%가 최소이지만 한국은 100%도 아닌 10%가 최대치이다. 서양은 담합을 자본주의 공정경쟁을 파괴하는 중대범죄로 규정하고 강하게 처벌한다. 반면 한국은 소비자를 이중으로 뜯기는 호구로 내몰면서 자구노력조차 봉쇄하고 있다.
40대 여성 총리가 오고,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가고
저자는 “영국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에 관한 글이 대부분이지만 모국인 한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연상하고 생각하며 썼다”면서 “한국과 영국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 차분하게 음미하고 사색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어떤 이는 책을 한 권 읽으면서 마음을 울리는 대목을 하나만 얻어도 성공이라 했다. 수십 년 면벽수행한 수행자들의 지고지순한 문장이나 타고난 시인의 벼락같은 시어까지는 아니지만 읽다 보면 최소 한 차례 이상 빛나는 표현을 만날 수 있다.
9월 5일 영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40대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8일에는 70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영국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온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으로 눈길을 끄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영국이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에는 한국인이 잘 모르는 영국 이야기들이 곳곳에 날것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에게 이해하기 어렵고 낯선 것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다. 한국의 문화와 감성을 타고난 저자의 손길과 눈길이 거치면 달라진다. 금세 익숙한 풍경이 되고 바로 입에 딱 맞는 음식이 된다.
저자 소개
저자: 김성수
1960년 서울 출생. 신진공고 자동차과와 한국철도대학을 졸업하고 1981~1989년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했다.
1989년 2월 4일 함석헌이 운명한 날 사표를 제출했다. 1990년 영국으로 유학, 에섹스대학교 역사학과(학사, 석사)를 마치고 셰필드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함석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귀국 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했고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과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영국인 아내와 1남1녀를 두고 영국에 살면서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오마이뉴스》 영국 통신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영문판 《함석헌 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조작된 간첩들》 등을 지었다. 한국전쟁 기간의 민간인학살과 권위주의 정권 아래 의문사를 다룬 책 《폭력의 역사》가 2023년 1월 출간될 예정이다.
차례
책머리에
한국인이 본 영국, 영국인이 본 한국 … 8
1. 나의 스승 이야기
나는 함석헌·김동길에 ‘미친놈’이었습니다 … 14
베개 속 죽은 쥐… 영국 여의사는 왜 한국에 왔나 … 25
어느 ‘대박’ 만화가의 말 못 할 고민 … 37
‘퀘이커 평화주의자’ 이행우 선생을 보내며 … 47
2. 영국의 정치인
전봉준과 크롬웰을 관통하는 ‘키워드’ … 58
이승만 위해 속옷 벗어던지고 논개가 됐다 … 68
박근혜가 존경한 여인, 그 여인을 공격한 남성 … 76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남자의 ‘무릎’ … 86
3. 영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군용트럭 모는 공주님, 좋아할 수밖에 없네 … 96
“군대 보내달라”고 한 47세 기자를 아십니까 … 103
시위 앞장선 인도 소피아 공주 … 109
4. 영국의 코로나
영국의 유명한 부둣가, 이름은 ‘파주길’ … 118
“왜 한국처럼 안 되지?”… ‘코로나 사망 4만3천’ 영국의 고민 … 126
나는 왜 〈조작된 간첩들〉을 쓰게 됐나 … 134
5. 브렉시트는 왜 일어났나?
27년 만의 피살, 영국을 가른 ‘브렉시트’ … 142
“영국 괴롭히기 그만” …야당 대표까지 휘청 … 152
6. 영국의 교육과 교복
“교과서 없고 숙제도 내 맘대로” 인기 중학교의 비결 … 166
한국 교복, 영국 교복보다 비싼 이유 있었네 … 175
7. 국가폭력과 과거청산
“총 성능 시험해보려 북한 노인 쐈다” … 182
14명 죽은 사건도 12년 조사했는데… … 196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 난 희망을 잃지 않는다” … 203
총선서 민주당 의석 확대하면 개혁 드라이브 다시 걸어야 … 216
8. 영국에서 본 세월호
“한국정부가 학생들을 죽게 놔둬” … 228
외국인들 “박근혜, 국민들 분노 잘 모르는 것 같다” … 235
항공사 협박에 맞선 영국 정부 … 240
세월호 의사자 ‘박지영’, 그가 살았더라면… … 247
세월호 뉴스 본 영국인들 “North Korea인 줄 알았다” … 254
9. 장례식과 물대포
한국 ‘가짜 장례식’ 본 외국인들 “변태스럽다” … 262
물대포 거부한 영국 경찰, 이유는 ‘전통’ 때문 … 268
10. 영국을 점령한 BTS
“BTS는 영국 소녀를 우울증에서 구해냈다” … 274
영국 대학생들에게 물었다 “대체 BTS가 왜 좋아?” … 287
11. 영국에서 본 국정원 해킹사건
“난 증거 삭제한 그의 ‘고백’을 믿을 수 없다” … 298
“언론인-운동가 해킹 프로그램, 한국 정부도 사용한 정황 있다” … 306
12. 가족이란 무엇인가?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랑해요… 아빠” … 318
“아이들은 나를 ‘쪽발이 깜둥이’라 불렀다” … 325
13. 영국사회 그리고 영국인
아인슈타인 살린 에딩턴,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다 … 338
우크라 모녀와 함께 사는 영국인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 … 343
월 40만원에 내집 장만… 꿈을 가능케 한 ‘비결’ … 351
다운증후군 지방의원, 다음 목표는 ‘국회’ … 359
나는 왜 영국 시민권자가 되었나? … 364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한국과 영국에서 비슷한 세월을 살아온 나로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동양과 서양을 떠나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비슷하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 사회정의의 추구, 그리고 남과 내가 다 같이 행복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11쪽. 영국인이 본 한국, 한국인이 본 영국)
북한에 가족이 너무 걱정되고 그립기도 해서 아버지는 어떻게든 북한에 가 볼 심정으로 ‘켈로부대’(미국 극동군사령부가 북한 출신으로 조직한 북파 공작 첩보부대)에 지원하셨답니다. 심사위원 중에 아버지 고향 선배가 있어서 아버지는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면접에 떨어졌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몸 성히 살아 돌아오는 북파공작원이 거의 없어서 그 고향 선배가 탈락시켰답니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저는 오늘 여기에 없을 것입니다. 살다가 실패하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40~41쪽. 어느 ‘대박’ 만화가의 말 못 할 고민)
이행우 선생은 달변가가 아니었지만 말씀의 내용은 늘 놀라웠다. 그의 가장 큰 무기가 ‘진실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화려한 무대 뒤에서 남을 위해 조용히 일만 하셨다. 그는 아름다운 ‘진주목걸이를 이어주는 실’ 같은 분이었다.
(53쪽. ‘퀘이커 평화주의자’ 이행우 선생을 보내며)
영국 노동당 당수 시절 코빈은 칠레의 정치 망명자이던 부인이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려 하자 일반공립학교에 보낼 것을 주장했다. 결국 이 문제로 갈등이 불거져 이혼까지 했다. 토니 블레어가 수상 시절 자신의 자녀를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에 보내 비판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89쪽.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남자의 ‘무릎’)
1차세계대전 기간 중에 소피아 공주는 전쟁 중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해 간호사로 자원봉사를 지원한다. 시크교도인 한 인도 부상병은 인도의 마지막 왕의 딸인 소피아 공주가 간호사 복장을 입고 병상에 누운 자신을 직접 간호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113쪽. 시위 앞장선 인도 소피아 공주)
“나는 외국인이 영국으로 이민 오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유럽연합은 유럽인들끼리만 서로 큰 혜택을 주고 비유럽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차별한다. 우리는 전 세계인들을 골고루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인끼리만 서로 혜택을 주고 비유럽인을 차별하는 것은 또 다른 식민주의다. 그래서 나는 탈퇴를 선택했다.”
(155쪽. “영국 괴롭히기 그만” …야당 대표까지 휘청)
그 의사와 목수의 연봉은 약 2.5배에서 3배 정도 차이 났다. 영국에선 연봉이 높은 사람은 소득세를 40%까지 내야 하고 아동양육비 등을 전혀 받지 못한다. 반면 연봉이 낮은 사람은 소득세를 20%만 내거나 면제받고 복지혜택을 받는다. 의사 집에는 책이 많고 목수 집에는 나무가 많은 것 외에는 차이점을 찾지 못했다. 또 의사에게서는 우월감 등을 찾아볼 수 없었고, 목수에게서도 열등감을 느낄 수 없었다.
(171쪽. “교과서 없고 숙제도 내 맘대로” 인기 중학교의 비결)
“이 참전용사는 1950년 겨울, 두 한국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메모를 읽었는데 아이들의 아버지가 쓴 영어가 정말 웃음이 나올 정도로 엉터리 콩글리시였다. 그러나 이 메모를 60년 동안 간직하고 있는 이 영국인 참전용사에게는 이 종잇조각에 적힌 글이 아주 감동적이었고 이 메모를 보물 다루듯이 했다. 전쟁은 인간의 극악한 면을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전쟁은 또한 인간의 지고한 선도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187~188쪽. “총 성능 시험해보려 북한 노인 쐈다”)
영국인들은 한국의 우파 보수주의자들을 이해 못 한다. 우파 보수주의란 민족이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의 우파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민족이 없다. 한국에서는 민족주의자인 조봉암, 장준하 등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함석헌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 한국에서는 좌파들이 오히려 유럽 우파보수주의자들이 기본으로 삼는 민족 문제를 이야기한다.
(207쪽.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 난 희망을 잃지 않는다”)
파리7대학의 학부 2~3학년 한국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인상적이었다. 나의 서툰 영어 강의가 얼마나 정확히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00여 학생들이 매우 진지하게 들었고, 현재 북한의 핵개발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이 대학 한국학과에는 한류에 대한 높은 관심 등으로 130명 입학생 모집에 1000여 명이 몰려왔다는 소문도 들었다.
(219쪽. 총선서 민주당 의석 확대하면 개혁 드라이브 다시 걸어야)
언론들은 세월호 선장을 비롯해 선원들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점을 들어 안전교육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6개월~1년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던 상황에서 제대로 안전교육이 이뤄졌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 장래가 보장된 넉넉한 마도로스가 아닌 하루살이 같은 생계형 계약직 선장과 선원들에게 돌을 던지고 그들의 직업윤리만 따지는 것이 박 대통령이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일까.
(236쪽. 외국인들 “박근혜, 국민들 분노 잘 모르는 것 같다”)
“학교에선 한국 전쟁과 북한 미사일 외에 한국에 대해서 긍정적인 면을 배운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케이팝을 통해서 한국 문화를 접하고부터 한국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놀라운 면을 많이 배웠다. 나는 몇 년째 케이팝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 영화, 쇼, 코미디, 다큐멘터리 등을 닥치는 대로 본다. 그 덕에 한국말도 조금씩 배운다. 언젠가 한국말도 잘하면 좋겠다. 한국말은 듣기 좋고 너무 아름답다. 한복도 인형처럼 참 예쁘다.
(283쪽. “BTS는 영국 소녀를 우울증에서 구해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국정원에서 구입한 스파이웨어는 대북용이지 한국의 민간인 사찰용이 아니라는, 그 중요한 증거를 삭제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말이 안 된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왜 스스로 삭제하나?”
(304쪽. “난 증거 삭제한 그의 ‘고백’을 믿을 수 없다”)
아내의 외도에도 수상 헤롤드는 1966년 아내가 사망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충실하게 유지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지만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가 외도하여 낳은 혼외자식 사라를 친자식과 함께 차별 없이 키웠다. 사라가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 뒷바라지했다.
(318~319쪽.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랑해요… 아빠”)
딸아이도 동네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어느 날 딸이 학교에서 울면서 집에 왔다. 이유를 물었다. 아이들 여럿이 “○○는 미국 스파이, 고양이 눈깔에 이티”라고 놀린단다. 어떤 아이들은 식사시간에 밥을 딸아이 얼굴에 던졌단다. 아빠로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다르게 생긴 것이 무슨 죄인가?”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325~326쪽. “아이들은 나를 ‘쪽발이 깜둥이’라 불렀다”)
영국정부에서 공정임대료 제도를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부동산 임대료가 과도하게 상승하면 서민생활이 불안해지고, 결국 경제 전반에 악순환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국의 공정임대료제도가 임차인에게만 유리하게 돼 있는 건 아니다. 공정임대료제도는 임대인에게도 일정한 이윤을 보장해준다.
(355쪽. 월 40만원에 내집 장만…꿈을 가능케 한 ‘비결’)
선진국은 다 복수국적을 용인하고 있다. 국가 간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복수국적은 경제적으로는 더 많은 투자를 끌어들이고 인구감소도 막는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한국처럼 징병제를 실시하는 대만, 이스라엘, 독일, 핀란드 등도 모두 복수국적을 인정하고 있다. 남북분단이 문제라면 병역을 마치거나 면제받은 남성에게는 복수국적이 당연히 허락되어야 한다.
(372쪽. 나는 왜 영국 시민권자가 되었나?)
내가 복수국적을 유지하려는 이유가 “한국에 와서 의료혜택을 받으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영국이나 유럽은 미국과는 달리 국가의료제도가 있고 전혀 의료비가 들지 않는다. 한국 방문 시는 의료비가 보장되는 여행자보험을 드니 유사시에도 한국의 납세자들에게도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
(375쪽. 나는 왜 영국 시민권자가 되었나?)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가 몰랐던 영국의 어두운 모습, 그런데…
한국에 태어났으면 최소 징역을 살았을 영국 과학자
영국이라는 나라의 품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들이 봤을 때 동쪽 끝 극동의 한국에서 온 낯모르는 청년에게 신청한 장학금의 10배인 4000만원을 주는 대목은 놀라웠다. 나중에 들은 그 이유는 더욱 놀라웠다. “많은 한국 젊은이들의 분신 뉴스를 접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이 한국에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당신이 노력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학금을 10배로 준 겁니다.”
또 제1차세계대전 당시 적국 독일 출생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영국 학자 아서 에딩턴이 실험과 검증으로 입중하는 과정도 놀라웠다. ‘이적분자’ ‘이적행위’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정부에 지원금을 신청한 에딩턴도 그렇고 그에 설득을 당해서든 어떻든 정치적 고려 없이 지원금을 배정한 정부도 그랬다.
한국 같으면 어땠을까? 저자 김성수의 지적이 없더라도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조선 시대 고종 치하에서는 말할 것도 1950년 한국전쟁기 이승만 치하에서는 더욱더 반역죄로 바로 목이 잘리거나 총살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절이라고 달랐을 것 같지 않고 김영삼 정부 이후 소위 문민화 이후에는 조중동 수구언론의 설레발을 못 견뎌서라도 최소 징역은 살았을 것 같다.
한국처럼 학살이 있었던 영국, 한국과 달랐던 것은?
영국을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다른 한편으로 영국에도 저런 야만이 있었구나 하고 보여주는 부분도 있다. 우리만 야만의 세월이 있었던 것은 아니구나 하는 뜻 모를 안도를 안겨주기도 한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에도 학살이 있었고 물대포가 있고 엉터리 조사와 발표도 있었다.
그런데 달랐던 것은 처리 방식이었다.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처리하느냐가 사실은 더 문제였던 것이다. 영국 정부는 14명이 학살된 사건을 3500억 원을 들여 12년 동안 조사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시기 최소 100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민간인학살은 4년 남짓 조사한 다음 정부가 종결을 주장했다. 80년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은 아직 그 진상이 오리무중이다.
물대포 또한 독일에서 거금을 주고 들여와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위험성이 명백하게 드러나자 곧바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사실 흥미롭다기보다는 존경심이 느껴진다. “시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일하는 영국 경찰의 전통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물대포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경찰도 ‘시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일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추천의 글
쉽고 재미있고 명쾌하다. 제목은 ‘영국 이야기’지만, 실은 조금은 더 한국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 영국 생활인이자 역사학자로서 보통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영국 사회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어린 에피소드들을 거울처럼 사용해서, 한국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의 실상을 조명하고 해석한다. 에피소드의 거울들은 사실에 충실하고 정교하다. 군더더기 없는 맑은 거울이다. 한국 사회의 허물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기의 허물을 인식하는 일은 아프고 부끄럽다. 하지만, 묘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실패들을 수습하고자 하는 내공이 고요히 차오름을 느낀다. 함석헌을 일생 큰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온 저자의 내공이 독자의 마음에 부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김도현(목사, (사)뿌리의집 대표)
저자는 함석헌, 이행우, 안띠아, 잉글, 다문화 가족, 입양인, 장애인, 민주화운동 희생자 등과의 만남에 독자들을 모셔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참여하도록 한다. 전봉준과 크롬웰, 처칠과 이승만, 대처와 박근혜를 함께 만나는 ‘한국과 영국의 대화’ 자리로도 이끈다. 한국과 영국을 비교하며 배우고 바꾸어나갈 수 있도록 공간적 상상력을 북돋아 준다. 독자들은 이런 대화를 통해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의 아름다운 사회를 함께 꿈꾸게 될 것이다.
김거성(문재인정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그날이 오면』 저자)
“삶의 긍정적인 면과 희망을 보여주는” 세련되고 예의바른 한국의 BTS 청년들이 영국 청년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이제 한국의 문화 수준은 국제적인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늙은 제국’ 영국은 여전히 ‘따라잡기 근대화’를 달려오느라 숨이 찬 한국에게는 큰 가르침을 주는 선생이다. 한국과 영국을 모두 잘 알고 있는 김성수 박사의 개인사, 그리고 영국에 살면서 한국과 영국을 비교하는 참여 관찰 기록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전쟁과 사회』 저자)
많은 사람들은 영국을 지는 해와 같은 나라로 여긴다. 책에는 영국이라는 기품 있는 저녁노을에 비친 나와 우리의 낯선 모습이 가득하다. 산재 사망률이 한국의 1/25에 불과하고, 내무장관이나 경찰책임자가 물대포 사용을 거부하는 광경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4백만 원을 신청한 장학금이 4천만 원이 나온 사연은 한국의 가슴 아픈 현대사와 노제국 영국의 품격과 책임감이 뜨겁게 만나는 지점이다. 뼛속까지 한국인이지만, 이제 법적으로 영국인이 된 김성수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젊은이들의 분신 때문에 지게 된 큰 빚을 한 글자 한 글자 갚아 가고 있다.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책임편집위원)
주제어: 한국사, 역사, 현대사, 함석헌, 김동길, 전봉준, 장준하, 몬테그, 크롬웰, 윈스턴 처칠, 토니 벤, 제레미 코빈, 엘리자베스 여왕, 이승만, 박근혜, 마가렛 대처, 세월호, 국정원
분류: 한국사, 영국사, 역사/지리
펴낸 날 : 2022년 9월 5일
가격 : 35,000원
반양장본 | 387쪽 | 170*255mm
ISBN 979-11-86351-47-5 9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0194
www.idomin.com
책 소개
일본 고대 서적 연구로 일본 고대 역사의 허구를 밝혀낸 역작
--강단 역사학자 유사 역사학자 모두 엄두 못 냈던 성과
‘임나일본부’는 일본 고대 서적의 기록에 근거를 둔 대표적인 역사 날조 사례이다.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실제 지배했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을 그럴듯한 서술로 포장해 담고 있는 것이 일본 고대 서적이다.
한일 역사학계는 공동으로 임나일본부설은 허구라는 결론을 내리고 또 합의까지 했지만 일본 정부는 교과서에 그런 합의를 반영하지 않고 엉터리 내용을 계속 싣고 있다.
물론 그동안 한일 양국에 축적된 고고학 자료들은 임나일본부설과 상반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신찬성씨록과 일본서기를 비롯한 일본 고대 서적에는 그와 반대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 정부가 잘못된 입장을 고수하는 현실적 근거 가운데 하나가 일본 고대 서적의 역사 서술인 것이다.
일본 고대 서적들은 신화와 사실이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있는 등 난잡하고 뒤죽박죽이어서 그 진위 여부를 명확히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실체를 규명해 보기 위해 발을 들여놓았다가도 상상을 초월하는 미궁과 미로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기 일쑤였던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한 공무원이 일본 고대 인물과 역사 서술의 허구성을 밝혀내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가 적용한 방법론은 단순명쾌했다. 천황을 비롯해 일본 고대사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들이 모두 성씨가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었다. 한 사람이 여러 성씨의 시조는 될 수 있어도 한 성씨의 시조가 여러 사람일 수는 없다는 자명한 원리였다.
경남 함안군청에서 가야사담당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정래 작가는 이 원리에 따라 일본 고대 서적의 근간이 되는 <신찬성씨록>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이 기준에 따라 허구의 인물과 실존 인물로 가려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일본서기와 속일본기, 풍토기, 고사기 같은 다른 일본 고대 서적에 적용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도출됐다. 첫째는 천황 등 일본 고대 역사 서적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후대인에 의해 가공된 가짜 인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전혀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면밀한 검토와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일본서기 등은 위서(僞書)라는 전제 아래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조정래 작가의 이번 결론은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구체적 논증으로 이룩한 성과다.
둘째는 실존이 인정되는 일본 고대 인물은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고 대부분이 근초고왕을 비롯한 백제계 왕가라는 것이다. 일본 천황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한반도의 왕이 왜를 지배했다는 것을 학술적으로 증명해낸 것이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25년 동안 파고든 노력이 소중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로써 임나일본부설은 고고역사학은 물론 문헌역사학에서도 설 땅을 잃고 말았다.
‘일본서기 천황과 임나일본부는 허구’임을 밝히기 위한 25년 세월의 고심에 찬 연구는 이번에 제1권 <신찬성씨록을 통해 본 일본 고대 인물의 정체> 출간으로 처음 빛을 보게 됐다. 작가는 뒤이어 제2권 <일본서기 신대기와 신공황후 신라 정벌의 본질>, 제3권 <일본서기 해석을 통해 본 임나일본부의 허구>를 조만간 발행할 예정으로 있다.
저자 소개
조정래
1964년 경남 함안 출생. 소설가.
함안문인협회, 경남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잊혀간 왕국, 아라〉에 대한 시리즈로 《사라진 뱃사공》, 《옥돌에 얽힌 저주》, 《고분군의 수호자》, 《연꽃 위의 처녀》, 《검은 바다의 소용돌이》를 출판했고 별권으로 《칠지도, 아라홍련을 품다》가 나와 있다.
아라에 대한 고증으로 일본의 고서(古書)를 연구하다 〈일본서기 천황과 임나일본부는 허구〉라는 시리즈로 전체 3권의 학술서를 쓰고 있다. 조만간 출간될 2권과 3권의 제목은 각각 《일본서기 신대기와 신공황후 신라 정벌의 본질》과 《일본서기 해석을 통해 본 임나일본부의 허구》이다.
현재 함안군청 가야사담당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차례
책머리에
결실을 돕는 책이 되길 바라며 ……… 5
제1장 신찬성씨록
1. 신찬성씨록 ……… 12
2. 신찬성씨록의 판본과 성씨 개수 ……… 14
3. 고대 일본 서적의 성씨 ……… 18
4.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 25
5. 성씨와 관련해서 유의할 점 ……… 40
제2장 신찬성씨록의 실존 인물(황별)
1. 시조로 분류된 인물 ……… 46
2. 천어중주존과 근초고왕 ……… 50
3. 언태인신명과 무내숙녜(건내숙녜) ……… 55
4. 대언명 ……… 69
5. 일본무존과 탁석별명, 언좌명 ……… 81
6. 백제왕과 신즐별명, 반충별명, 치순모이우왕 ……… 87
7.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 98
8. 기성진언명과 신전부왕, 고시왕 ……… 121
9. 대대명과 풍성입언명, 다기파세군, 대황전별명 ……… 124
10. 치무언명과 어지별명, 도속별 ……… 127
11. 그 외 황별 인물 ……… 133
제3장 신찬성씨록의 실존 인물(신별)
1. 앞 장에서 이미 확인된 인물 ……… 153
2. 천진언근명 ……… 154
3. 대기귀명과 대국주신 ……… 161
4. 소잔오존 ……… 172
5. 진속혼명과 천아옥근명 ……… 182
6. 천수일명 ……… 183
7. 화란강명 ……… 191
8. 명일명문명과 천향산명, 오십맹신 ……… 192
9. 대명초언명 ……… 197
10. 건반근명과 천어영명 ……… 198
11. 천사대주명(천내팔중사대주신) ……… 199
12. 대폐소저명과 대도여명 ……… 200
13. 소좌능웅명 ……… 201
14. 그 외 신별 인물 ……… 203
제4장 신찬성씨록의 실존 인물(제번과 미정잡성)
1. 한(漢) ……… 231
2. 백제 ……… 248
3. 고려(고구려) ……… 262
4. 신라와 임나 ……… 267
5. 미정잡성 ……… 268
제5장 성씨록 인물 비정에 따른 결론
1. 실존 인물의 최소화 ……… 282
2. 일본 고대 서적의 편찬 시기 ……… 285
3. 일본서기의 편년은 거짓 ……… 287
4. 일본서기 천황의 허구와 그 실체 ……… 313
5. 무내숙녜의 정체와 임나일본부의 허구 ……… 319
6. 최종 결론 ……… 325
부록
신찬성씨록 원본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은 고대 일본의 성씨와 그 시조를 적은 책으로 제52대 차아천황 시절인 815년에 총 30권으로 편찬되었다고 한다.
서문에는 초대천황인 신무가 등극해 국조(國造)와 현주(縣主)가 생겨난 이래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이어오던 성씨가 승보 연간에 제번의 청을 들어 원하는 성을 내려준 후 서로 고귀한 뿌리라고 주장하면서 다툼이 일어나고 이에 만다친왕 등이 고기(古記)와 박관(博觀), 구사(舊史)를 탐구해 신찬성씨록을 편찬했다고 되어 있다.
(12~13쪽. 신찬성씨록)
지금까지의 고고학적인 발굴 성과는 한반도 문명의 일본 유입을 이야기하고 있고 신찬성씨록을 통해서도 그걸 증명할 수 있다.본서를 읽다보면 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일본신의 혈통이라고 주장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14쪽. 신찬성씨록)
한 성씨의 시조가 두 사람 이상일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여러 개 성씨의 시조가 될 수는 있어도 하나의 성씨에 시조가 여러 명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혀 다른 시대에, 전혀 다른 이름이 몇 번이나 나오더라도 같은 성씨의 시조이면 그들은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26쪽.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고사기도 마찬가지다. 경행천황의 계보조에 나오는 길비신의 시조 약건길비진일자와 왜건명의 동국정벌조에 나오는 길비신의 시조 어서우이건일자도 동일인이다.
이이예명기에 나오는 대반련의 시조 천인일명과 신무천황기에 나오는 대반련의 시조 도신명도 역시 동일인물이다.
효소천황기에 나오는 미장련의 시조 오진여증과 효원천황기에 나오는 미장련의 시조 의부나비, 숭신천황기에 나오는 미장련의 시조 의부아마비매, 응신천황기에 나오는 미장련의 시조 건이나타숙녜, 계체천황기에 나오는 미장련의 시조 범련도 모두 같은 인물로서 다섯 번이나 나타나고 있다.
(26~27쪽.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무엇 때문에 이렇게 동일인물을 반복해서 적었을까? 이는 일본서기가 실제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적은 것이 아니라 짧은 역사를 길게 늘이다 보니 한 인물의 활동을 여러 군데 적어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름을 전혀 연관이 되지 않는 시기에 적으면 편년이 거짓임이 바로 탄로 나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창작해서 적은 것이다. 다만 그 사람이 본래 누구라는 것은 알고 있어야 바른 역사를 복원할 수 있기 때문에 성씨의 시조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27~28쪽.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아무개 몇 대손 누구”라는 방식에서 아무개와 누구라는 사람이 모두 실존 인물이라면 대수도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몇 되지 않는 실존 인물로 무수한 가공인물을 만들다 보니 대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으며 아무개와 누구라는 인물이 실제로는 동일인물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아무개가 누구의 후손인 경우도 있다.
(31쪽.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속고왕은 초고왕 또는 근초고왕 중 한 분이고 속고왕을 대왕이라고 했으므로 크다는 의미의 근(近)이 덧붙어져 있는 근초고왕이 된다. 그런데 마침 금부련의 주(註)를 보면 속 앞에 근이 있는 판본이 있다고 해서 속고왕이 근속고왕이 되어 근초고왕인 것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해두고 있다.
즉 신찬성씨록의 속고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제 13대왕, 근초고왕이며 따라서 금부련과 삼선숙녜는 백제 근초고왕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우경제번하 백제의 진야조라는 성씨도 백제국인 속고왕지후로 나와 있어서 역시 근초고왕을 시조로 하고 있다.
(36쪽.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성씨의 시조와 관련해서는 상식 밖의 결론이 나올 때가 있으므로 마음을 열어두어야 한다. 필자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운 결과에 반신반의할 때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40~41쪽. 성씨와 관련해서 유의할 점)
신찬성씨록 제1질(鳥)에는 335개의 성씨가 실려 있다. 제1질에 수록된 성씨에서 시조로 표현된 인물의 숫자는 76명으로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신찬성씨록이 편찬되는 차아천황 이전에 51명의 천황이 있었고 일본서기에 의하면 응신천황만 하더라도 20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했는데 76명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47쪽. 시조로 분류된 인물)
이장낙존과 이장염존이 천하를 다스릴 주인을 낳자고 해서 일신인 천조대신과 월신인 월궁존, 그리고 소잔오존을 탄생시킨다. 이때부터 만물의 시작이었던 근초고왕은 뒤로 물러나고 일신과 월신인 근구수왕, 그리고 소잔오존인 무내숙녜의 이야기가 신대기와 인대기에서 펼쳐진다.
(54쪽. 시조로 분류된 인물)
일본서기를 보면 감미내숙녜가 무내숙녜의 동생인데 위에서 본 것처럼 무내숙녜의 조부인 언태인신명과 동일인이 되는 등 마구잡이로 혈통이 섞여 있는데 여러 이명을 지어서 대수를 늘리다 보니 바르게 정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맞지도 않는 혈통을 줄줄이 이어서
늘어놓은 것이 고사기와 일본서기이기 때문에 편년이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
(56쪽. 언태인신명과 무내숙녜(건내숙녜))
천인일명과 천압일명은 둘 다 아메오시히노미코토로 읽어서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성씨록은 천압일명이 고황산영명의 5세손으로 되어 있지만 구사기 신대본기에는 천인일명이 고황산영존의 아들로 되어 있어서 근초고왕의 아들인 근구수왕임을 알 수 있다.
천인일명과 천압일명이 근구수왕이므로 수식어를 뺀 이름인 일명과 같은 일신도 근구수왕이 되고 일신의 별명인 천조대신, 천조태신도 근구수왕이 된다. 또 일신에게 도신이란 이름을 내려주었으므로 도신도 일신과 같은 근구수왕이다.
(63쪽. 언태인신명과 무내숙녜(건내숙녜))
삼국사기를 보면 근구수왕 10년 2월에 해에 삼중으로 햇무리가 섰고 대궐 안의 큰 나무가 저절로 뽑혔으며 4월에 왕이 죽었다고 나온다. 고사기 왜건명과 근구수왕이 삼중이란 단어에서 일치하고 얼마 후 죽는 것까지 같아서 왜건명 즉 일본무존, 그리고 경행천황까지 근구수왕이다.
(83쪽. 일본무존과 탁석별명, 언좌명)
소아와 종아는 소가로 읽어서 소아석천숙녜와 종아석천숙녜는 동일인이다. 성씨를 보면 앵정, 전중, 소치전 성씨의 시조가 도목숙녜인데 고사기 효원천황기에 소아석하숙녜가 앵정신, 전중신(田中臣) , 소치전신, 소아신 등 7개 성씨의 조로 되어 있어서 도목숙녜는 소아석하숙녜와 동일인이다.
소아석하숙녜는 소가노이시가와노스쿠네로 읽고 소아석천숙녜는 소가노이사가하노스쿠네로 읽어서 대동소이한 발음인데다 하(河)와 천(川)은 의미가 같고 일본어사전의 발음도 같아서 같은 인물이다. 단지 다른 인물로 보이도록 발음을 바꾸었을 뿐이다.
(100~101쪽.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천도근명은 신무천황 즉위전기 무오년조에 일신이 길을 잘 인도해서 내려준 이름인 도신과 같다. 천도근명의 천은 수식어이고 근은 ‘네’로 발음되는데 천아옥명을 천아옥근명으로도 읽는 것처럼 연결음이므로 도만 남아서 도신과 같은 이름이다. 도신, 일신이 근구수왕이었으므로 토도언도 근구수왕이 되고 진언과 추근진언도 근구수왕이다.
(107쪽.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신지진언명은 추근진언을 성씨록 내에서 다시 별명을 지은 것이다. 대화숙녜(풍47) 의 부가 설명에 일본서기와 똑같은 내용을 적고서 신지진언명이라고 했기 때문에 추근진언과 동일인물이고 근구수왕이다. 신지진언명, 추근진언명이 대왜, 대화라는 성씨의 시조가 된 것은 큰 나라 왜국의 왕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즉 백제가 왜를 다스린 것이다.
한편 추근진언이 상앗대(椎橋, 시히사오)의 끝을 주어서 신무천황을 잘 인도했다는 것은 근구수왕과 무내숙녜가 끝없는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겪은 경험을 토대로 무내숙녜가 왜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말한다. 또 근구수왕이 차지했던 왜를 다시 무내숙녜가 이어서 차지했기 때문에 잘 인도했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한 것이다.
이것은 무내숙녜의 왜국이 백제에 병합된 후에 다시 백제가 망하고 697년 일본이 출범할 때 무내숙녜의 후예가 문무천황이 된 것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근구수왕의 계통인 기존 백제왕가 대신 무내숙녜계가 왜를 이은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108쪽.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이토테를 칭찬하면서 본거지를 이소지라고 했으므로 누구나 이토테와 이소지신의 시조를 동일인물로 생각할 텐데 이토테는 무내숙녜, 이소지는 근구수왕이 되어 다른 사람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이토테인 무내숙녜의 땅을 이소지신의 시조인 근구수왕에게 주었다는 표현으로
무내숙녜가 싸움에 져서 본거지를 빼앗겼다는 말이다.
이런 사례는 고사기나 일본서기를 읽을 때 반드시 성씨록을 참조해 숨겨진 실존 인물을 확인한 다음에 문장을 해석해야 하며 그렇지 않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112~113쪽.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근구수왕의 아들이 무내숙녜로 나오므로 후세에 자손들이 선조의 성을 기재하면서 아버지의 성을 아들에게, 또 아들의 성을 아버지에게 적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잘못이 생겼을 수 있다.
아니면 내분을 감추고자 인물까지 뒤죽박죽 섞어서 본래의 사실을 찾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근구수왕이거나 무내숙녜이거나 한반도에서 건너가 왜를 다스린 사실은 변함이 없다.
(119~120쪽.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일본 고대서적의 여러 가공인물을 실존 인물로 대체해 보면 주된 내용이 근구수왕과 무내숙녜의 영토 전쟁이다. 697년 일본이 출범하면서 이들의 후손이 모두 같은 땅에 살게 되었는데 부자지간인 선조의 전쟁이 다시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선조의 전쟁을 은폐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래서 천안하에서 맹약을 한다거나 뱀의 꼬리에서 칼이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로 교묘하게 전쟁을 숨긴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끝없이 늘어놓고 거기에 천황을 덧붙여서 있지도 않았던 왕조를 만든 책이 고사기와 일본서기, 속일본기인데 가짜 역사를 마냥 진짜 역사로 착각할까 봐 성씨의 시조로 같은 인물을 연결시키고 성씨의 시조를 모은 성씨록이라는 보완책까지 만들어
서 진짜 역사를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23쪽. 기성진언명과 신전부왕, 고시왕)
신대紀 8단 일서6에도 대기귀명이 나라를 다스릴 때에 출운국의 오십협협의 해변에 가서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뱁새의 깃으로 만든 옷을 입은 남자가 배를 타고 왔는데 소언명명이라고 했다. 발음이 스쿠나히코나노미코토인데 고사기 효원천황기를 보면 소명일자건저심명이 스쿠나히코타케이고코로노미코토로 읽어서 스쿠나히코가 같기 때문에 같은 인물이다.
(136~137쪽. 그 외 황별 인물)
본래 61명의 인물이 48명으로 줄어들었는데 404개의 성씨에 비하면 거의 십분의 일 수준이다. 황별이 335개 성씨에서 55명으로 줄어든 것보다 더하다. 그만큼 실존으로 비정할 수 있는 인물의 수가 적다는 것이다.
(152쪽. 신찬성씨록의 실존 인물(신별))
황후가 분만할 때 궁중을 다니다가 마구간(廐戶)에 이르러 힘쓰지 않고 황태자를 낳았고 태어날 때부터 말을 했으며 어른이 되어 한꺼번에 열 명의 송사를 처리했고 장래를 잘 알았다고 하고서는 궁의 남쪽 상전에 거주하게 해 상궁구호풍총이태자라 한다고 했다. 상궁태자, 상궁풍총이태자로도 나온다.
마구간은 말을 타고 온 한반도의 지배층을 나타낸다. 아직기가 말을 기른 곳이 판상의 마구간으로 성덕태자하고 연결되어 있으며 신무천황도 말과 연관되어 있다. 당시 왜에 있던 토착민은 말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말 문화에 대해 깊은 경외감을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159쪽. 천진언근명)
무내숙녜가 수많은 이명으로 많은 활약을 하는 것은 그 후손이 다스리던 시기에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만들어진 까닭도 있지만 실제로 부족국가였던 왜를 통일해 중국 사서에 나오는 왜국으로 만든 당사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고대사의 주인공이고 의지의 인물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60쪽. 천진언근명)
천지일모가 옥을 차지했고 옥이 여인으로 변해 결혼한 것은 그 지역을 차지한 것인데 그곳이 소나라이면서 또한 신라이기도 한 것이다. 이 신라는 새로 차지한 땅, 새 나라라는 의
미이므로 경주 신라의 국명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소잔오존이 내려온 신라국의 증시무리, 신라국의 소시머리가 이해된다. 소시머리에서 시는 연결음이라고 했고 모리는 삼림, 숲을 말하므로 소의 삼림, 즉 소의 나라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거기가 신라이므로 소잔오존이 신라국인 소나라에 내려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174쪽. 소잔오존)
무내숙녜인 아라사등을 임나국의 왕으로 삼았다고 했고 성씨록에도 임나국주, 임나국의 주인이 아라사등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임나는 나라라고 인정받을 만큼 일정 기간을 무내숙녜가 통치권을 행사한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임나의 위치를 보면 두 군데가 있다. 먼저 아라사등이 돌아간 곳인데 원래 자기 나라에 있을 때 소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큐슈의 아구누마 즉 웅습국이 되고 큐슈 전체를 임나로 볼 수 있다. 이는 무내숙녜가 왜의 왕이 되었으므로 확실한 임나의 땅이다.
(178~179쪽. 소잔오존)
좌리왕과 함께 좌리금 (左李金) , 좌리기모 (佐利己牟) 등이 나왔는데 김(金)과 기모(己牟)를 같이 코무로 읽는다. 백제에 의한 왜국통치 삼백년사에서는 김(金)을 일본음으로 읽으면 기무 또는 고무가 되므로 기모(己牟)는 김(金)이라고 했다.
좌리(左李)를 사이, 좌리(佐利)를 사리라고 읽는데 이는 신대紀 제8단 일서3에서 호미 (鋤) 를 사히로 읽어서 사이, 사리, 사히는 쇠를 일본음으로 발음한 것이어서 좌리금, 좌리기모는 쇠금을 적은 것이고 좌리왕은 쇠왕, 금왕이라고도 했는데 아주 적절한 의견이다.
왜냐하면 앞서 소잔오존과 소나라 항목에서 소잔오존이 내려간 곳이 신라국이자 소나라이며 서라벌이고 그 주석에 서라벌을 金이 있는 부락, 쇠가 있는 부락이라고 했으므로 쇠왕, 금왕이라고 하면 서라벌의 왕, 신라왕이 되는 것이고 소잔오존, 천일창, 아라사등으로 이어지는 무내숙녜가 금왕까지도 연결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226쪽, 그 외 신별 인물)
민달과 경행, 수인, 윤공, 인현, 서명천황이 근구수왕이고 신무와 응신, 계체, 용명, 인덕, 안강, 숭신, 천지천황이 무내숙녜였으며 현종천황은 침류왕임을 살펴봤다. 따라서 일본서기의 천황체계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고 오로지 가짜 역사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가공인물일 뿐이다.
(313쪽. 일본서기 천황의 허구와 그 실체)
일본서기에 나오는 천황이 어떤 인물을 모티브로 했는지 살펴봤다. 제명은 황극과 동일인물이고 신공황후가 더해져 40명의 실질적 천황 중 근구수왕 9명, 무내숙녜 17명, 침류왕 1명이고 근구수왕과 무내숙녜로 동시에 비정되는 천황이 1명이며 비정이 불가한 천황이 12명이다.
이렇게 일본서기의 천황은 실제 존재하지 않았고 한반도에서 건너간 인물을 모티브로 한 가공인물에 불과하므로 일본서기가 적고 있는 천황 체제라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 그 편년이 거짓이고 천황 체제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일본서기는 읽을 때 아주 주의를 요한다. 무턱대고 일본서기의 편년과 인물을 우리 고대사에 이입하면 얼토당토않은 결과가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318~319쪽. 일본서기 천황의 허구와 그 실체)
임나일본부설 같은 엉터리 학설이 버젓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일본 고대 서적에 대한 우리의 연구가 미진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양국 학계가 임나일본부설을 종식시키기로 발표했을 때 이미 이런 문제를 예견했다. 우리의 손으로 끝내지 않은 것은 언제든지 되돌아올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은 시대 구분에 임나를 넣어 우리를 한 차례 희롱한 바 있다.
우리 국민은 일제의 침략에 분노하고 임나일본부설에 치를 떤다. 하지만 임나일본부설을 넘어서기 위해 진정으로 해야 할 일, 일본의 고서를 연구하는 일은 소홀히 한다. 오히려 잘못된 애국심으로 임나를 이야기만 해도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사람으로 매도하려고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일본 고대 서적을 연구해서 임나일본부설을 이길 수 있는가? 잘못된 애국심이야말로 오히려 일본을 도와주는 것이다.
(324~325쪽. 무내숙녜의 정체와 임나일본부의 허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일본 고대 역사는 우리가 부정만 하면 되는 것일까?
--잘못된 애국심이 일본 돕는 결과 초래
사실 일본서기와 신찬성씨록 등 일본 고대 서적은 그동안 우리나라 고대역사학에서 뜨거운 감자 취급을 받아 왔다. 대학 등 강단 역사학계는 당연히 이들 서적과 인물을 당연히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면밀하고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진위를 판별하고 사실로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반면 이른바 유사 역사학계는 일본 고대 서적은 모조리 위서라는 관점에서 검토할 것도 없이 부정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주장해 왔다.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며 더 나아가 연구까지 하는 것은 친일매국 행위라고 주장해 왔다.
조정래 작가는 임나일본부가 우리를 괴롭히는 괴물이 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임나를 이야기하면 마치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것처럼 여기고 일본 고대 서적을 다루기만 해도 이상한 존재 취급을 하기 때문에 임나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그 때문에 한일고대사의 쟁점을 우리 손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 고대 서적을 연구하면 바로 친일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이런 잘못된 애국심은 대중의 정서까지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임나일본부설을 넘어서려면 반드시 사실을 규명해야 하고 그러려면 일본 고대 서적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연구한 결과가 바로 조정래 작가의 이번 역작 <신찬성씨록을 통해 본 일본 고대 인물의 정체>이다.
<신찬성씨록을 통해 본 일본 고대 인물의 정체>는 한일 고대사의 엇갈리는 쟁점을 밝히고 사실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저작물이다. 일본 고대 서적으로 일본 고대 인물의 허구를 밝히는 최초의 작업이었다. 이런 점에서 강단 역사학계와 유사 역사학계 모두 조정래 작가의 이번 연구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주제어: 조정래, 일본, 임나일본부, 임나, 일본 고대사, 한일 고대사, 일본서기, 신찬성씨록, 속일본기, 고사기, 구사기, 풍토기, 무내숙녜, 근초고왕, 근구수왕, 임나일본부설,
분류: 인문과학, 한국 역사, 일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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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 날 : 2022년 9월 1일
가격 : 16,000원
반양장본 | 288쪽 | 152*225mm
ISBN 979-11-86351-38-3(0380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0194
www.idomin.com
저자 : 황명걸 신경림 백낙청 염무웅 등 37명
책 소개
꼰대가 되기 싫은 젊은이를 위한 책
“노인들을 이해하지 마라.
대신 똑똑히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세상 흐름을 거스르는 철부지 노인들을 향한 느닷없는 일성으로 단박에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한 몸에 받았던 채현국 선생. 본인이 80 노인이면서도 덜떨어진 ‘꼰대’ 노인들의 시대착오를 거침없이 비판했던 늙은 청년 채현국 선생.
이제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1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2021년 4월 2일 영원한 소풍을 떠나기 전날 선생은 본인의 뜻대로 입원 병동에서 자택으로 자신을 옮겨갔다. 목숨을 늘리는 연명 치료를 뒤로 하고 어떤 비감도 없이 삶과 죽음을 담담히 맞아들였다.
돌이켜보면 채현국 선생의 어떤 일갈이나 한 마디 명언 때문에 젊은이들이 뜨거운 호응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선생은 세상과 인생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꿰며 일치시켜온 삶을 살고 있었다. 그 많은 젊은이들이 아무 망설임 없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헌사를 선생께 올렸던 까닭이다.
선생은 엄청난 재산을 모았지만 미련 없이 버렸다. 자신을 위해서는 손톱만큼도 쓰지 않고 사회를 위해 일하다가 핍박받는 당대 젊은이들을 위해 물 쓰듯 자기 재산을 썼다. 그것도 남몰래.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일반 분야에서 민주화 등 공익을 위해 활동한 이들 가운데 적어도 1,000명 이상은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
스스로 무소유의 화신이 되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가지에 매이지 않은 구름처럼 살았다. 장삼이사들 틈에 끼여 표나지 않게 살면서 그 장삼이사들의 삶과 정과 놀이에서 달콤한 행복을 느꼈다.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있을 적에는 작업복 차림에 화단에 김매기를 일삼아 학생들조차 한낱 인부로 여겼을 정도로 나 이런 사람이요 뻐기지 않았다.
선생은 오히려 세상이 알아볼까 봐 낮추고 숨기며 살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향기가 천 리에 퍼지듯 세상이 선생을 알아보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상황이 달라지자 선생은 자신의 몸조차 아끼지 않았다. 갖은 질환이 있는데도 요청과 필요가 있는 자리라면 빠지지 않고 가서 거침없는 사자후로 촌철살인을 했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고 죽음은 삶의 연장임을 온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행보였다.
선생이 떠난 자리에는 허전함과 아쉬움이 남았다. 아쉬움을 털어내고 허전함을 떨치기 위해 길게는 70년 이상을 함께했던 서른일곱 분의 추억을 모았다. 여기에 이 시대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던 채현국과 그 친구들의 빛바랜 청춘들이 반짝이고 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장면들이 줄줄이 펼쳐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청춘이라서 익숙하고 그때와 지금은 배경이 달라서 낯설기도 하다.
제1부는 채현국 선생이 주인공이다. 제2·3·4부는 선생보다 먼저 하늘나라 소풍에 들어간 선생의 친구들, 민병산·박이엽·이계익·이구영·조관준·천상병 선생들이 주인공이다. 부록에 담긴 대담과 강좌 두 꼭지는 선생의 살아생전 생각과 말과 행동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나는 늙어도 저따위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청춘이라면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채현국(1935~2021년)
1. 일생
일제강점기인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난 채현국 선생은 1960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중앙방송>(현 한국방송) 연출로 입사했다. 하지만 5.16군사쿠데타 세력이 방송을 군사정권의 선전도구로 써먹으려고 하자 석 달 만에 그만뒀다.
이후 아버지가 운영하던 부도 직전의 탄광으로 내려갔다. 강원도 삼척군 도계의 흥국탄광을 일으켜 손꼽히는 광산업체로 키웠다. 한때 조선·화학·해운 등 24개 기업을 운영하며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에 오를 정도로 거부가 됐다.
그러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으로 장기독재를 시작하자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유착하지 않으려면 사업을 접는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이듬해 미련없이 모든 재산을 처분해 동업하던 친구들과 광부들에게 나눠 줬다.
동시에 이전부터 해오던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원을 이어나갔다. 정권에 쫓기는 이들을 숨겨주고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재에 저항하는 이들과 본격적으로 함께했다.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으로 <창작과 비평>의 뒤를 봐주고 가난한 문인과 예술가들을 조건 없이 지원했으며 셋방살이하는 해직기자에게는 집도 사주었다.
1988년 효암고교와 개운중학교를 둔 효암학원의 이사장에 취임한 뒤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무급으로 일했다. 학교 운영에서는 재단이나 이사장이 아닌 교사와 학생을 중심으로 삼았고 자율과 자발성을 앞세웠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조가 결성되면서 문교부는 가입 교사를 해직하라고 지시했지만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
선생은 이렇듯 엄청난 거부였으나 모두 내려놓았다. 권력이나 명예를 탐하는 대신 평생 아래에 머물렀다. 험악한 시대를 살면서 격랑에 휘둘리지도 않았고 속된 욕망에 영혼을 맡기지도 않았다. 성장을 멈추면 ‘꼰대’가 되고 계속 성장하면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선생은 진정한 어른이었다.
2. 남긴 말씀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자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다 이 세상 거지.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학교는 좋은 학생만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좋은 교사도 길러낼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을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된다. 교사가 제대로 성장하면 그게 학생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사업을 해보니까… 돈 버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더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돈 쓰는 재미’보다 몇 천 배 강한 게 ‘돈 버는 재미’다. 돈을 벌다 보면 어떻게 하면 더 벌릴지 자꾸 보인다. 그 매력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도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떤 이유로든 사업을 하게 되면 자꾸 끌려드는 거지. 정의고 나발이고, 삶의 목적도 다 부수적이 된다. 이건 중독도 아니고 그냥 ‘신앙’이 된다. 돈 버는 게 신앙이 되고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된다. 그래서 ‘아, 나로서는 더이상 깜냥이 안 되니, 더 휘말리기 전에 그만둬야지’ 생각했다.”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없다. 한 문제에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다.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
“‘쓴맛이 사는 맛’을 묘비명으로 삼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만 새겨두면 솔직하지 못하고 위선자라 할 것 같으니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하고 덧붙여야지. 어떨 때 단맛이냐고? 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고 그런 마음이 서로 통할 때…. 그땐 참 달다.”
“서른다섯에 당뇨가 나오면서 이가 다 빠졌어요. 그만 처먹으라고 빠진 건데 또 해 넣을 겁니까? 그렇지 않아요? 당뇨는 많이 먹어서 나는 병인데…. 이를 안 해 넣었기 때문에 적게 먹어서 이렇게까지 살아있는 겁니다. 해 넣었으면 훨씬 빨리 죽었습니다. 아무래도 잇몸으로 먹으니까 불편할 거 아닙니까. 안 그래도 이렇게 배 나오고 했는데.”
저자 소개
고은광순(평화어머니회 상임대표), 구중관(소설가), 김낙영(시인), 김보경(『낭독은 입문학이다』 저자), 김운성(소녀상 조각가), 김승환(출판편집인), 김주완(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김철환(대덕잡구 대표), 김태동(전 청와대 경제수석), 남난희(산악인), 노광래(갤러리 씨네 부장), 박구경(시인), 박상희(조각가), 박영현(도예가), 방영웅(소설가), 배평모(소설가), 백낙청(<창작과 비평> 명예편집인), 복기대(인하대 교수), 서승(우석대 동아시아연구소장), 신경림(시인), 염무웅(국립한국문학관 관장), 이기흥(전 서울예술대학 재단 이사장), 이만주(춤비평가), 이상만(소리글쟁이), 이용학(전 효암고 교장), 이종찬(전 국가정보원장), 이진영(이문학회 회우), 임계재(중문학자), 임락경(목사), 전종덕(저술가), 정명숙(산악인), 정상학(전 대구고등법원장), 최규일(전각가), 최정인(섬유공예작가), 최혁배(미국 변호사), 허태수(목사),황명걸(시인) 등 37명
목차
제1부
명동, 관철동, 인사동 세 시절_황명걸 9
채현국 선생님을 기리며 할머니 꼰대가 되지 않기를_고은광순 19
‘라 마르세예즈’의 밤_김보경 26
채현국 선생의 존댓말_김운성 31
풍운아 채현국_김주완 33
채현국 선생님께_김철환 38
43년 늦었던 만남, 너무 빨리 끝나다_하제 김태동 41
그때 지리산 종주 이야기_남난희 45
산타와 늙은 청년 채현국_박상희 50
건달 할배와 호빵_달묵 박영현 53
현국이 생각_백낙청 59
마달거사 채현국_복기대 63
‘한국의 큰 건달’ 채현국 선생_서승 74
채현국 선생 추억_신경림 80
자유인 채현국 선생을 기억하며_염무웅 82
6.25동란이 맺어준 나의 영원한 벗 채현국_이기흥 92
채현국 선생의 파리 시절과 헌시 두 편_이만주 96
못 생겨서 다행이었다_이용학 110
채현국을 생각한다_이종찬 113
스승의 은혜_임락경 116
채 선생님_전종덕 126
징검다리_정명숙 131
영원한 천재 맨발의 마달이_정상학 137
선생님이 떠난 지 1년_최규일 139
인사동과 나의 추억_최정인 141
허군, 내 집으로 가세_허태수 144
제2부
거리의 철인_김낙영 149
인사동 그때 그 얼굴 평론가 민병산_김승환 154
기러기 훨훨_방영웅 164
민 선생님 追想 _최혁배 166
제3부
박이엽 선생 생각-인사동에서_박구경 179
박이엽 선생님과 「씨칠리아 마부의 노래」_임계재 181
늘 앞서가던 멋쟁이 박이엽_황명걸 188
제4부
소년 뱃사공 이계익_구중관 197
노촌 이구영 선생님과 이문학회_이진영 207
알타이하우스와 조관준_이상만 221
평화를 쪼다 날아간 파랑새_배평모 224
부록
채현국·채희완 대담 241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268
에필로그 288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채현국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출신으로, 백낙청 명예교수와 함께 <창작과 비평>을 창간한 막후의 산파역이다. 부친의 광산개발로 뒤늦게 부자가 된 그는 혼자만의 부는 값어치가 없다고 여겨 어려운 친구들을 도우니,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친구가 없을 정도였다.
(11쪽. 명동, 관철동, 인사동 세 시절-황명걸)
여성동학다큐소설 출판기념회에서 채현국 선생님은 축사를 하시기에 앞서 갑자기 무대 위에 앉은 우리 작가들에게 큰절을 하셨다. 우리도 황망히 일어나 맞절을 드렸다. 상명하복, 위계질서 깨기, 권위주의의 파괴는 나도 주장해온 바이지만 채현국 선생님의 급습(^^)은 과연 선생님다운 것이었다. 백 마디의 축사와 격려사가 이 보다 더 가슴을 파고들 수 있으랴.
(21쪽. 채현국 선생님을 기리며 할머니 꼰대가 되지 않기를-고은광순)
“주완이 혀~엥!” 가끔 채현국 선생은 이렇게 나를 불렀다. 무려 28년이나 어린 나에게 ‘형’이라니…. 선생은 나이 어린 사람이라고 하대하지 않았다. 그건 일본 사람들 습관이라는 것이다.
선생은 또한 “인류 나이로 치면 젊은이 나이가 노인보다 많다”고도 했다. 처음 만나 인터뷰할 땐 나를 ‘선생님’이라 칭했다. 그러다 친해지니 ‘형’이라고까지 불렀던 것이다. 인류 나이로는 내가 선생보다 형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선생은 늘 기존관념과 상식을 뛰어넘었다.
(33쪽. 풍운아 채현국-김주완)
문득 43년 지난 1971년 봄이 떠올랐다. 어느 벗을 통해 소개받아 흥국탄광에 가서 일한 3주간이다. 완행열차를 타고 강원도 도계역에 도착하여, 물어물어 찾아가, 노무과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다음날부터 일하였다. 갱에는 못 들어가고, 석탄을 화물차에 싣는 일, 잡석을 인공 비탈 아래로 떨어뜨리는 일 등을 하였다. 월급날도 되지 않았는데, 사무실로 누군가 불러 월급을 주면서,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 탄가루투성이인 작업복 한 벌을 보따리에 넣은 채, 서울로 돌아왔다.
“아, 그때 탄광의 경영자가 ‘채현국’ 선생님이셨구나!”
(41쪽. 43년 늦었던 만남, 너무 빨리 끝나다-김태동)
선생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언제나 또랑또랑한 음성과 유쾌하고 유머 있는 말솜씨에 꼰대스러움이 전혀 없이 좌중을 집중시키는 능력이었다. 더구나 그의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을 보는 시선은 어떤 젊은이보다도 젊었다.
우리의 익숙했던 생각을 역설적으로 바꿔 다른 가치로 세상을 보게 한다. 부드러움 속에 날카로운 지성으로 정의에 반하는 것을 질타하기도 한다. 자신이 노인이면서도 오히려 “노인을 믿지 말라”라고까지 한다.
(51쪽. 산타와 늙은 청년 채현국-박상희)
채 선생님이 평생 기억하는 친구가 몇 분 있다. 박윤배, 천상병, 이선휘, 박이엽, 김재익, 이종찬, 김우중, 서입규 등등이다. 이 중에 가장 아파하는 친구가 김재익과 박윤배였다. 기분이 울적한 날에 김재익과 박윤배 얘기를 종종 하셨는데, 가끔 콧등이 붉어지면서 말씀을 하시곤 했다.
(65쪽. 마달거사 채현국-복기대)
그때 채 선생한테 받은 후원금과 필자들에게 지급한 원고료 액수를 또박또박 적어놓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몇천만 원이 될지 모르는데, 돈의 액수도 액수지만 그보다 나름의 역사적 기록이 될 터였다.(하지만 때로는 그런 기록이 유죄의 증거로 악용되던 시대도 있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87쪽. 자유인 채현국 선생을 기억하며-염무웅)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하루 24시간이라는 귀한 선물을 매일매일 차별 없이 받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그중 많은 시간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데 써야만 한다. 하지만 채현국은 한동안 흥국탄광 경영자로서 일했을 때를 빼고는 시간에 쪼들림이 없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해가며 살아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생계를 위해 시간 가난에 쪼들리고 있을 때 그는 흥국탄광 경영을 친구 박윤배(경기중학교생, 대구 피란중학에서 만난 절친) 에게 맡겨 놓고 이 친구, 저 친구 찾아다니며 정신적 멘토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던 진정한 ‘벗’이었고, 부자였고 자유인이었다.
(93쪽. 6.25동란이 맺어준 나의 영원한 벗 채현국)
“쓴맛이 사는 맛”/ “모든 예술은 남들이 봐 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명석한 그는 쏟아놓느니 경구였고/ 우리말 근원과 생성 분석에 특출났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즐거웠다/ 그는 기록적으로 작은 키였음에도/ 작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거인처럼 보였다.
(108~109쪽. 채현국 선생의 파리 시절과 헌시(獻詩) 두 편-이만주)
이렇게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어 평생을 이어졌다. 내가 군에 있을 때나, 기피의 대상인 남산정보기관에 있을 때나 그는 한결같은 독설가로 나를 책망하고 격려하였고, 내가 정계에 입문하여 여의도에서 활동할 때에도 그는 골목 정치, 대로 (大路) 정치를 마음대로 구사하면서 나의 책사역 또는 고문역을 담당하였다. 그가 해설하는 정치구도는 특이했고, 그가 지향하는 목표는 언제나 정의의 편이었다. 엉뚱한 이야기로 장내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파장(罷場)이 되면 그의 말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114쪽. 채현국을 생각한다-이종찬)
“그 당시 광업소에 있었던 사람들 똑같이 나누어주었어.” 가령 지배인들은 많이 주고 일용근로자는 쬐끔 준 것이 아니고 같이 나누어 주었고, 갈 데 없는 이들은 함께 살도록 공동협업농장을 만들어서 정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들을 지난해 만났었다. 나보다 1~3년 더 아래인 나이였다. 채현국 이사장의 호칭이 사장님, 이사장님이 아니고 그냥 형님이라 부른다. 지금은 이상할 것도 없으나 70년대에 형님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신분 차별을 일찍이 깨신 분이라는 의미다.
(119쪽. 스승의 은혜-임락경)
굳이 규정하자면, 국수주의자들도 있고, 좌파 진보 인물들을 포함하여 그 스펙트럼이 무한하였다. 그렇다고 어느 특정 유파의 사람들을 선호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보는 기준은 “○○○ 좋은 사람이야”로 표현하시듯이 어떤 생각을 하든 그가 곧은 사람인가였다. 아무리 명성이 높아도 출세만을 위하여 사람을 만나는 이기적인 인물은 쓰레기 취급하셨다.
(127쪽. 채 선생님-전종덕)
“너희는 돈이 없으니 만원이라도 내라.” 늘 두런두런하시던 선생님들이 어느 날 돈을 모아서 신문사를 만든다고 하셨다. 덕분에 명옥이랑 나는 생일선물로 한겨레 주식을 사서 주며 태어나 처음으로 주주가 되었다. 신문사를 만든다는 일이 얼마나 큰일이었는지 몰랐다. 언론계, 학계, 종교계, 재야 민주화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1987년 창간된 한겨레 신문이 33년이 넘었다. 그 중요한 일을 하는 순간에 그 분들 주변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다.
(134쪽. 징검다리-정명숙)
나는 추우나 더우나 맨발로 다니며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말을 하는 마달이를 천재라고 생각했다. 마달이는 철없던 중학교 시절 우리와는 달리 역사를 알고 민족을 알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나쁜 말을 하지 않았던 마달이지만 대구의 유명한 친일파 후손 M군에 대해서만은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대했던 기억이 난다.
(138쪽. 영원한 천재 맨발의 마달이-정상학)
채현국 선생은 서정춘 선생과는 동에서 서만큼이나 먼, 그러나 같은 ‘소년과’이다. 한 사람은 대놓고 빨치산을 노래하고 한 사람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제일 쎄게 냈던 자본가인데 둘은 묘한 부분에서 닮아있다. 지치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뭉글치도 않았고, 순수한 에너지에 반짝이는 두 눈이 ‘전부’인, ‘다부짐’을 꼭꼭 숨긴 채 허술해 뵈는 매무새까지 닮아있는 두 분이다.
(142쪽. 인사동과 나의 추억-최정인)
민병산 선생. 항상 옷차림은 거지꼴이어서 후배들이나 친지들 하고 식당에 가면 거지가 온 줄 알고 출입을 저지당하면서도 무표정이던 인사동의 철인. 그가 인사동에 나타나면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시국담이나 고담준론, 주변잡담 등을 하며 열을 올려도 하루종일 묵묵히 침묵을 지키며 눈을 감고 있던 철인.
누군가 의문이 있어 질문하면 간단 명쾌하게 한마디 하고 다시 눈을 감고 침묵하던 선생이 아마도 우리 시대의 한국판 디오게네스가 아니었을까….
(151쪽. 거리의 철인-김낙영)
서예의 일가를 이룬 민병산의 붓글씨 전시회가 사망 두 해 전에 두 번 열렸다. 한 번은 수송동에 있는 신구대학 상설 전시관에서였고 다른 한 번은 돈화문 공간화랑에서였다.
첫 번째 전시회는 표구도 하지 않은 70점에 달하는 작품을 압핀으로 눌러 전시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아는 사람이 구경 오면 전시한 작품 이외에 따로 준비한 작품을 공으로 나눠 주었다. 나도 그 전시회에서 몇 점의 작품을 얻었지만 수많은 인사동의 처자들도 그렇게 작품을 얻었다. 한 번은 지나다 들른 사람이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을 오래 쳐다보길래 당장 떼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주는 것이 체질화된 사람이 민병산이다.
(162쪽. 인사동 그때 그 얼굴 평론가 민병산-김승환)
회갑 잔치 같은 것을 하면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하시더니 아주 영영 떠나셨구나. 회갑을 바로 내일 두고 오늘 세상을 떠나셨으니 하루도 틀리지 않은 만 육십 년을 채우고 가셨다. 민 선생의 장례는 어느 병원의 영안실에서 치러졌다. 많은 조객들이 찾아왔다. 회갑연이 장례식으로 바뀌어진 셈이다. 그 육신은 화장으로 처리되었고, 유골은 성둘 근교에 있는 절에 모셔졌다.
(165쪽. 기러기 훨훨-방영웅)
귀천에 가면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이라 쓰신 글의 목각판이 있었다. 최치원의 시 마지막 구절인데 ‘등전(燈前)’ 두 글자의 모양새는 고국을 향한 그리움에 말 달리듯 하는 모습이다.
또 「우기청호 청경우독(雨奇晴好 晴耕雨讀)」같은 글을 목각하면 무척 보기 좋았다. 민 선생님의 생활 자세를 쓰신 것 같아 더욱 친밀감이 느껴진다. 「정관자득 정흥무진(靜觀自得 情興無盡)」 같은 짧은 글귀는 실제로 우리의 정과 흥이 일도록 해주었다.
(174쪽. 민 선생님 추상-최혁배)
채현국과 박이엽, 두 어른의 대화는 늘 대조적이었다. 채 선생께서는, 활기 넘치고 거침없이 끌고 나가는 이야기 중에 막힘이 있을 땐, 마치 사전을 찾듯 박이엽 선생께 물어보시곤 하였는데, 가만 듣고만 계시던 박 선생은, 정교하고도 낮은 음성으로 대답을 해주시던 모습을 보았다. 무엇이든 술술 물음에 답하셨다. 마치 체화된 지식의 본산을 보여주시는 듯했다. 그때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웠던 기억이었다.
(179~180쪽. 박이엽 선생 생각-인사동에서-박구경)
“박이엽 씨는 남편감으로서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 못됐습니다. 돈 생기면 술 마시고 집안은 몰라라 했으니까요. 그러나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평온을 가장한 침착한 그 말씀에 나는 앉은자리에서 몹시 심하게 공감의 고갯짓을 했다.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그동안 야단과 질책에 인색한 박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닌 내 행적의 개념화이기도 했다. 남편의 평가를 그리도 잘하는 아내는 또 얼마나 드물까. 사모님 목메임에 내 눈에서도 뭔가 질척한 것이 주르륵 흘렀다.
(184~185쪽. 박이엽 선생님과 「씨칠리아 마부의 노래」-임계재)
박은국이 필명을 박이엽으로 개명한 것은 방송극을 쓰기 시작하면서였다. 그가 생활을 위해 순수문학을 접고 방송극을 쓰게 된 것은, 함께 문학을 하던 친구로서 섭섭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의 방송극이 단순한 대중 취향에 머물지 않고 격조 있는 본격극의 체통을 지켰음을 감안할 때, 적이 위안이 되는 일이다.
(192쪽. 늘 앞서가던 멋쟁이 박이엽-황명걸)
부대에서 빠져나오는 물품을 거래하는 밀수업자들의 장사가 성행했다. 나룻배 사공은 그 장사를 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위스키며 담배를 열 상자 스무 상자 실어다 주었다. 대형 아이스크림 제조기 같은 것도 갖다 주었다. 그렇게 가져온 물건을 받아 잘 은닉해두면 춘천시장 사람들이 차를 가져와 싣고 갔다. 밤을 타고 가져온 물건이 많을 때면 소년 계익은 밤을 타고 마라톤을 해서 20리 길 춘천시장까지 달려가기도 했다.
(202쪽. 소년 뱃사공 이계익-구중관)
노촌 선생님의 삶에는 ‘물은 웅덩이를 만나면 반드시 채운 다음에 지나간다’는 영과후진(盈科後進)했던 시대가 담겨있다. 어린 시절에는 한학을 공부하던 학생으로, 일제하의 식민지 사회에서는 항일독립운동가로, 해방 후에는 사회주의자로, 6.25전쟁 후에는 잠시 남파공작원으로, 비전향 장기수로 그리고 장기수의 생활을 마치고 나와서 돌아가실 때까지는 통일운동가, 한학자, 선비로 살아가셨다.
(208쪽. 노촌 이구영 선생님과 이문학회-이진영)
조관준의 주변에는 문인, 철학자, 언론인, 서예가, 서지학자, 승려 등 별난 사람들이 많았다. 철학 전공인 채현국도 이 집의 단골손님이었다. 청구자 민병산도 이집에 와서 즐겁게 자주 왔다. 방송작가 박이엽, 시인 천상병도 자주 이곳에 온 것으로 안다. 그는 음악광이어서 50년대에 진공관 앰프로 매킨토시를 소유했고, 덴마크제 뱅앤올슨 스피커, 영국산 콰드 오디오 기기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구입한 사람이다.
(222쪽. 알타이하우스와 조관준-이상만)
“…대한민국도 불쌍한 나라이다. …그런데 불쌍한 식구들이 억박적박 어르는 남의 싸움에 군대를 파병하는 불쌍한 나라의 지식인이다. …싸움의 경우를 알 만큼 아는 사람으로서 월남 국민에게 한없는 용서를 빈다”는 글이었다. “잘 썼는데 뭘?” 하고 내가 물었다. 숨 한 가닥 내쉴 짬도 없이 천상병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뭣이라꼬? 이 문디이 자슥아! …이 말들은 내가 썼던 말들이 아니라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최모가 있었다. 그가 천상병에게 글을 청탁했다. 시인으로서의 느낌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이었다. 몇 푼 안 되지만 원고료로 막걸리값이라도 하라는 배려가 깔려 있었다. 그 최모 기자가 잘못하면 천상병이 크게 다칠세라, 언턱거리가 될 만한 말들을 순한 말로 수정했던 것이다.
(230쪽. 평화를 쪼다 날아간 파랑새-배평모)
‘놀이’라는 말이 소리와 동작이 어울려 있어서. 결국은 우리가 오래된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탈놀이도 들어가고 다양한 놀이가 다 포함되어 있어요. 인제 ‘노래’라는 말이 생겨가지고 우리가 쓰고 있으니까. 이럴 때 어떻게 ‘소리’의 내용이 ‘노래’에 다 충분히 담기느냐 하는 건 우리 글 쓰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소리’는 더 오랫동안 사용되었기 때문에 소리에는 더 풍부한 뜻이 담겨있고, ‘놀이’라는 데 다 담겨 있는데. 이제 다 죽어버리고 날라리 치는 뜻으로만 된 거라.
(245쪽. 채현국·채희완 대담)
지금 나아갈 길이 일과 놀이가 구별이 안 되는 문화가 분명한데. 그리고 지금 교육도 태교만이 아니라 5세 이전의 교육이 굉장히 중요한데, 아직도 교육학계에서 그 중요성을 주장하는 나라를 나는 모릅니다.
그렇게 해 놓으면 자본주의 착취가 절로 못 일어납니다. 놀이 자체가 즐거울뿐더러 일인데. 왜 남을 시킵니까? 내가 하지. 그 즐거움을. 실제로 감옥에서 일 못 나가는 사람들, 몸은 죄수가 되어가지고는 얼마나 일을 하러 가려고 발버둥칩니까? 뻔히 압니다. 왜 우리들이 이렇게 뭐에 지배 당해 가지고 일과 놀이가 이렇도록 가까이하기 힘들도록 분란에 끼어 있는지, 이런 사태를 강요하는 문화로 와 있는지 아주 의심해야 마땅합니다.
(250쪽. 채현국·채희완 대담)
더 중요한 것은 공감들이요. 애기들이 같이 있을 때 딴 형제가 울면 두어 달만 된 애부터는 삐죽삐죽 웁니다. 농경생활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 이동문화에서 가지고 있던 일놀이의 합일이 깨지기 시작했듯이. 지금 한 자식만 키우면 그 애기가 언제 공감을 느끼는지, 딴 형제가 울기 때문에 울음을 울던 이 공감 교육이, 교육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어요. 공감적 사태가 절로 감성적인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제 이 기회마저 애기들한테 없다는 것을 주목 안 합니다. 그럼 그 사람은 공감을 어디서 배우죠? 사이코패스라는 이상한 정신병이 이런 공감이 없다 보면 일어날 거 아닙니까? 왜 슬픈지 이치를 알아야 슬픈가? 슬퍼서 슬프지.
(254쪽. 채현국·채희완 대담)
술이라는 게 지금처럼 흔해지고 나니까 이제 독이 된 거죠. 너무 대량으로 먹으면 밥도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니 술 같이 귀하던 물건이 이렇게 대량으로 생산되어 가지고 사람을 해치는 거지. 술이 사람을 해치는 게 아니라 대량이 사람을 해칩니다.
사람이라는 건 오만 슬픈 일, 오만 어려운 일, 오만 골치 아픈 일이 다 있을 때, 정말 적은 양의 술이라는 건 얼마나 사람한테 보증적인 보약인데 그것을 전혀 하지 않다니. 술의 문제는 양의 문제입니다. 너무 다량이 공급되면 독약입니다. 완전히. 밥이 독약이듯이.
(258쪽. 채현국·채희완 대담)
욕망이 무한한 게 아니라 명예, 돈, 권력이 계속해서 자기 추구를 하는 관성이 붙어요. 욕망은 그렇지 않아요. 실제로 그 사람은 물 한 주전자도 못 마시는데? 그렇잖아요? 물을 어떻게 한 주전자씩 마셔. 이런 큰 컵으로 한 컵 먹으면 두 컵 먹기도 어려운데.
(263쪽. 채현국·채희완 대담)
나한테 싫은 일은 남한테 하지 마라. 이거 말고는 정의가 없습니다. 이건 정말 만약 소크라테스를 인용해서 정의라는 소리 하고, 석가모니를 이용해 가지고 정의라는 소리 하고, 공자 이용해서 정의라는 거 전부 다 쌩거짓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정의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함께 지혜롭게 생각해 만들어 가지고 함께 나눠 먹고 하는 쪽이 그게 진짜지 정의하곤 아무 상관도 없어. 정의 개념은 독재자들의 자기 합리화입니다. 지배하는 놈들의 자기 합리화로 정의를 만듭니다. 그 대표 선수가 바로 히틀러야. 다음 더 찜 쪄 먹은 새끼가 스탈린이야.
(265쪽. 채현국·채희완 대담)
기억하고 안다는 거는 얼마나 천양지차인데. 그 얼개를 알고, 그 까닭을 알고, 그 모든 걸 이해해야 안다고 하는 거지. 그러나 뭐가 뭐다라고 하는 거는 기억에 지나지 않습니다.
절대로 아는 거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억하는 걸 자꾸 안다고 우기고 살아요. 더구나 실제로 알아봤자 그거 시제는 과거입니다. 아는 순간 이미 과거 시제인데, 고정관념 따로 없습니다. 아는 거 전부가 고정관념입니다.
(272쪽.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자기 독생자를, 예수가 피를 흘려가지고 우리가 다 죄를 씻었는데, 그럼 우리 인간이 예수 죽은 이후에는 악질이 안 나와야 할 거 아닙니까? 근데 왜 악질은 이렇게 더 많습니까? 우리가 신이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276쪽.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제발 미국 이긴다는 말 포기부터 먼저 하십시오. 다민족 국가 이기면 골 아픕니다. 거란족들이 중국 들어가서 거란족 사라지고, 요 금 다 거란 아닙니까. 다민족 국가 먹는 순간에 사라집니다. 청나라, 우리 눈앞에서 청이 사라졌습니다. 중국을 먹어 이겼기 때문에 사라져버렸어.
(279쪽.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저는 그 ‘통일’이라는 말 전에 ‘함께 살기’ 같은 말을 하지. ‘통일’이라는 말은 분명히 정치 용어입니다. 정부의 통일이거나, 국권의 통일이거나, 국토의 통일이거나, 어쨌든 간에 정치 용어입니다. 굳이 정치 용어 이전에 자연스러운 ‘함께 살기’란 우리말이 있는데, 함께 같이 살면 되는 거지,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거지. 통일이라는 말 꼭 쓰는 놈들은 통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안 될 수밖에 없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겁니다. 휴전선에 모든 군인들이 이제부터 안 쏘겠으니 올려면 오고 말려면 마라, 우리는 안 쏜다, 하고 선언해버리면 그만입니다.우리는 안 쏘겠다. 오든 말든 우리는 쏘지는 않겠다. 너거도 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나? 통일이라는 말은 상당히 골치 아픈 우리가 잘 모르는 정치용어입니다.
(281쪽.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평범한 사람일수록 비겁하고, 비루하고, 야비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입니다. 너무 자기 탓하지 마십시오. 인간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진짜 너무 얇지요. 사람에 대한 사랑도, 괄시하고 멸시하고 지배할 줄만 알았지, 정말 인간이 사랑하고 사는 길 이외에는 못 산다는 인식을, 예수가 그렇게 고래고함을 질러도 그거 믿고 따르는 자 몇 안 되거든. 이런 거 잘 생각을 해서 어떻게든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좀 알면, 그래야 또 행복합니다.
(285~286쪽.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여러분 중에 젊은 사람들, 아부지 어무니가 밥 굶게 안 했기 때문에 고마운 걸 모릅니다, 젊은 아이들 탓이 아닙니다. 배가 고파야 아부지 어무니 걱정을 하게 됩니다. 배고픈 아이는 우리 어무이 아부지도 배가 고플 낀데 하면서 생각을 합니다. 먹고 사는 게 아무 걱정이 없으면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아부지 뚜드려 패는 사건 많습니다. 엄마 때리는 놈도 있습니다, 정신병 아니어도. 고마운 줄 모르면 별 일이 다 납니다.
(286쪽.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나처럼 한 80살 되면 죽으면 됩니다. 왜 자꾸 살라고 수술을 받고 왜 그래요? 좀비 될라고 지가 빽 쓰는 겁니다. 실제로 이번에 내가 해보니까, 모든 의학과 약학은 좀비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지 인간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게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내가 이번에 당해보니까 그렇습니다.
(287쪽.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건달할배 채현국과 친구들>은 말 그대로 ‘시대의 어른’ 채현국과 그 친구들과 함께했던 여러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워하며 쓴 글들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그것이 단순한 회고담이나 추억담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0년대와 그 이전, 그리고 1980년대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이 경험했던 현대사의 장면들이 책의 갈피에 녹아들어 있다. ‘건달할배’라는 말이 시사하는 바대로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질곡과 고난의 한 시대를 살아내면서 그 요구와 아픔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대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채현국 선생이 인연을 맺었던 이들의 스펙트럼이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다양하고 광범하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평소 선생이 어떤 이념이나 정치 성향에 매이지 않고 ‘사람됨’에 집중한 것과 연결되는 것 같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든 관계없이 얼마나 곧은가가 사람을 보는 기준이었다. 그래서 재벌그룹 총수나 정보기관의 수장, 청와대 수석 비서관이나 이름 높은 문필가에서 변방의 장삼이사까지 두루 임의롭게 사귈 수 있었던 모양이다.
끝자락 부록에 실은 좌담과 강연은 선생이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알려주는 것들이다. 세상의 상식과 고정관념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과 경험과 사고를 바탕으로 삼아 자유로우면서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결론을 끌어내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리 내치고 저리 달리는 발언에서는 선생의 호연지기와 자유분방함도 느껴진다. 70년 지기 백낙청 문학평론가는 “그는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완전히 확실치 않은 것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단정적인 발언들이 통쾌할 적이 더 많았으므로 나는 굳이 이견을 내고 다투려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채현국 선생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뱉는 말들이 모두 이치에 맞아야 한다면 스트레스를 얼마나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 어디에도 완전한 것은 없고 사람들이 줏대 있게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고 힘이 되는 말이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주제어: 채현국, 인물, 현대사, 민주화운동, 꼰대, 어른, 쓴맛, 단맛, 민병산, 박이엽, 이구영, 천상병, 이계익, 조관준
분류: 사회과학, 한국사, 인물
펴낸 날 : 2022년 5월 23일
가격 : 15,000원
반양장본 | 276쪽 | 140*200mm
ISBN 979-11-86351-22-2(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0194
www.idomin.com
저자 : 한영순 / 편집자 : 고은광순
책 소개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참으로 험한 나날을 살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일제 패망 이후 신생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전쟁과 혁명과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믿기 어렵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숱하게 보고 들으며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굵직굵직한 것만 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랍니다. 먼저 6.25 전쟁 직후 전국 곳곳에서 국민보도연맹을 빙자해서 자행한 최소 10만 명 규모의 민간인 학살을 첫머리에 꼽을 수 있습니다.
1951년 2월 지리산 산골에서 대한민국 정규 군대가 정식 지휘 계통을 통해 명령을 받아 같은 대한민국의 민간인을 마을 단위로 모아놓고 총질해 죽여버린 경남 산청·함양과 거창의 집단 학살 사건은 어떠한가요?
1971년 8월 서해의 외딴 섬 실미도에서 북파 공작을 위해 훈련받던 부대원들이 집단 탈출하여 인천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면서 벌어진 군인·경찰과 민간인·부대원 등 50명가량이 목숨을 잃은 실미도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 독재자 박정희가 살해당한 이후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가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잠재우고 권력을 연장시키기 위해 그해 5월 광주 일대에서 벌였던 엄청난 학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와 같이 좀처럼 믿기 힘든 이런 사건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지배자들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실상을 공개하지 않았고, 그 탓에 길거나 짧은 세월 동안 비밀에 부쳐져 왔다는 것입니다.
80년 5월의 광주 학살은 아주 가까운 시기에 겪은 사건이다 보니 그 봉인이 1982년부터 해제되기 시작했지만, 나머지 사건들은 일러도 1990년대 후반 늦으면 2010년대 전반에도 그 비밀의 빗장이 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사건들은 비밀의 빗장이 대부분 풀렸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드높은 민주 역량이 이룩한 위대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군데 남은 데가 있다면 그것은 경제의 영역일 것입니다.
부정한 지배집단의 정권 장악과 유지 욕심이 만들어낸 이른바 어떻게 조성되어 꾸준히 재생산되어왔는지 이제는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일부 드러난 것처럼 그 돈다발의 규모는 어떻게 현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지? 하고 되물을 정도로 엄청날 것이고 그 내막은 일반인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를 얼룩지게 만든 사건들이 모두 그랬지 않습니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하나같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저자 한영순과 가족이 겪은 일들도 언젠가는 분명한 사실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전모가 조금만 더 밝혀지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의 소재가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저자 소개
저자: 한영순
1955년 부산 가야동에서 한희승 아버지 백금남 어머니의 일곱 번째 막내딸로 출생.
민주시민연합에서 활동
관청피해자모임 부회장
현 박정희심판국민행동 대표
국민의힘당 서정화 상임고문 24번 고소
전 민주당 박주선 의원 11번 고소
재경부 윤증현 장관 15번 고소
편집자: 고은광순
1955년 서울 명륜동에서 고주상 아버지 은예동 어머니의 다섯 번째 막내딸로 출생.
이화여대 사회학 전공 중 박정희 긴급조치로 2회 구속.
한의학 전공.
충북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 행복마을만들기 운영위원장.
평화어머니회 상임대표.
목차
추천사 / 8
프롤로그-부모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 18
1. 내 부모님
1) 영순아, 커텐 닫아라!-3박4일 이어진 어머니의 통곡 / 21
2) 아버지는 함흥의 유관순 / 23
3) 부모님은 함흥의 갑부 / 25
4) 해방 후 고향을 떠나다 / 26
5) 6.25 전쟁이 터지자 거제도 군부대 안에 식당 운영 / 27
2. 박정희를 만나다
1) 박정희, 부모 앞에 나타나다(1950) / 29
2) 구두를 닦아 아버지 앞에 놓아주던 박정희 / 32
3) 광목치마 자루에 담아서 3년간 건넨 돈 / 33
4)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박정희(1956) / 34
5) 전쟁 통에 후방에서 대통령 될 궁리만 하던 박정희 (1950-1956) / 35
3. 어머니의 고난
1) 어쩌다 불고기도 먹었지만 / 38
2) 이후락의 방문 / 40
3) 박정희 선거운동원이 되었던 어머니 / 41
4) 청와대 특사 서정신의 요구 -이민 가라! / 42
5) 김영삼을 만나고 온 어머니 구속되다 / 44
6) 이후락의 지속적이고 위협적인 관리, 발설하면 죽는다 / 46
7) 중앙정보부원은 다 아는 사실-육영수는 박정희가 죽였다 / 49
4. 7남매 이야기
1) 장녀 영자 / 56
2) 차녀 영옥 / 59
3) 장남 인채 / 62
4) 삼녀 춘자 / 65
5) 차남 경채 – 행방불명 / 68
6) 사녀 명순 / 71
7) 오녀 영순-해결사가 되어야만 하는 내 운명 / 73
5. 박정희 사망 후에도 소모품으로 이용되는 한춘자
1) 박정희 이후락의 부하, 김종찬의 계획적인 접근 / 78
2) 한춘자, 죽은 자의 고소로 구속되다 / 82
3) 도청되는 한춘자 전화, 찾아오는 하나회 사람들 / 86
4) 밤에 들어와 마약주사를 놓는 그들 / 89
5) 춘자 언니 계좌 수십 수백 개 / 89
6) ‘인감 장사’ 소모품 한춘자의 불행한 호텔살이, 여관살이 / 94
6. 구 안기부 요원과 신 국정원 요원의 충돌
1) IMF 여파로 쓰러진 나, 춘자 언니와 생활하다 / 103
2) 구 안기부 요원들의 2조3천억 원 사기약탈 미수 사건 / 104
3) 2조3천억 원의 정체를 내게 캐묻는 검사 /106
4) 재떨이로 호텔 유리창을 깨다 / 114
5) 그 와중에 드러난 어마어마한 차명계좌 834명 / 115
7. 무능한 진보 정부
1) 노력은 하였으나? / 120
2) 혁명적 조치 없이 비자금은 정리되지 않는다 / 120
8. 인간말종 흡혈귀 서정화
1) 이 책의 키맨 서정화 / 124
2) 1997년부터 한춘자에게 접근한 한나라당 서정화 의원 / 126
3) 윤증현이 끼어드는 이유 / 127
4) 박주선이 끼어드는 이유 / 130
5) 아버지 돈을 찾을 희망에 들떠 있었던 형제들 / 130
6) 한춘자는 왜 안 주는 건데? / 141
7) 5조 원 먹튀- 미꾸라지 서정화, 박주선, 윤증현 / 142
8) 브로커와 인채 오빠 / 151
9) 협박하는 안기부 3차장 최준택 / 153
10) 한영순, 투사로 변신하다 / 159
9. 처절하게 짓밟힌 자구책
1) 채무자(박정희와 관리자들) 쪽 사정 / 165
2) 채권자1(한춘자) 쪽 사정 / 167
3) 채권자2(막내 한영순) 쪽 사정 / 169
4) 이후락, 악착같이 빨대 꽂다 / 170
5) 이후락, 죽기 전까지 만나달라고 여러 차례 사정하다 / 174
6) 2009년 이명박 대통령에게 청원서 낸 후 덮쳐온 죽음의 그림자 / 175
7) 안기부 출신 윤제영 변호사, 우리 청와대 민원 내고 사망 / 177
8) 박주선과의 싸움 / 190
9) 대검찰청 앞 1인 시위 3개월 / 216
10. 돈세탁은 이제 그만 통장을 파헤쳐라
1) 재경부는 7조 원의 재가확인서 원본을 공개하라 / 218
2) 한춘자가 죽었다고?- 금감원의 엉뚱한 답변 / 219
3) 영옥 언니 경찰 아들- 번개탄으로 자살 / 221
4) 재단을 통한 돈세탁과 보수우파 키우기 / 223
5) 춘자 언니 최근 근황 / 225
6) 숨긴 돈을 통치자금, 국가비자금이라 말하지 마라 / 232
에필로그-순이들의 대담 / 236
제보를 바랍니다 / 262
독재자가 조작한 간첩 사건들 /264
주요 사실 관련 연대표 / 274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박정희는 자기가 대통령이 될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빌려달라고 아버지에게 간청했다. 박정희의 부하 강 대위는 자기 상사의 야망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고 주변에 돈이 많다고 알려진 아버지와 의도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것이다. 아버지는 박
정희와 함께 총포재생창장, 타이어재생창장 및 군 수뇌부하고도 자주 술자리를 하셨다.
- (본문 32쪽, 구두를 닦아 아버지 앞에 놓아주던 박정희)
아버지는 흰 광목치마로 만든 커다란 자루에 흰 광목 끈으로 묶은 돈을 담아 1953년부터 한 자루씩 1955년까지 일 년에 한 번씩 세 번을 건넸다고 한다. 박정희는 어머니가 일하시는 사병식당에도 찾아와 사모님 신세 잊지 않겠다고, 깊이 허리를 숙여 여러 차례 인사했다. 함께 술을 마실 때면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서정귀는 기업체 사장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 (본문 33쪽, 광목치마 자루에 담아서 3년간 건넨 돈)
1967년. 박정희는 재선을 위한 준비에 한참이었다. 두 명의 남자가 소고기를 묵직하게 사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조용히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형제들은 다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박정희가 죽고 나서야 어머니는 그들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이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빌려간 돈을 받으려면 박정희가 다시 대선 승리를 해야 한다며 최대한으로 표를 모아달라고 어머니에게 사정을 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한 번만 더 믿어보라고 하며 다시 대통령이 되어야 원만하게 돈을 줄 수가 있고, 어머니도 편히 돈을 쓸 수가 있다고 했다.
(본문 41쪽, 박정희 선거운동원이 되었던 어머니)
어머니가 출소한 지 얼마 안 되어 이후락이 보냈다는 정보부 요원이 찾아왔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어머니에게 빌려간 돈을 셋째 딸인 한춘자 명의의 통장에 넣었다면서 어머니 눈앞에 통장 하나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있기 전에는 통장을 줄 수 없다며 앞으로 어머니의 모든 행동을 중앙정보부에서 감시할 것이니 돈을 받고 싶으면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이며 아무나 만나지 말고 죽은 듯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 돈의 뿌리가 남편 한희승의 돈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자식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것이며 발설할 경우 모두 죽을 것이라고 단단히 협박을 했다.
(본문 47쪽, 이후락의 지속적이고 위협적인 관리, ‘발설하면 죽는다’)
춘자 언니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전직 청와대. 전직 재경부, 전직 금감원, 전직 중앙정보부, 안기부 근무자들로 그들은 하나같이 보수정당의 하수인들이고, 그들은 하나같이 춘자 언니 통장의 잔고증명이나 통장거래내역을 가지고 와 보여주며 “이 돈은 대통령이 승낙하면 쓸 수 있다. 쓰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주군의 지시에 의해 춘자 언니 인감, 위임장 등을 받아가서 돈을 빼다가 재단에 넣고 그 이익으로 자신들의 몫을 챙기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기 주군이 중앙정보부/국정원 따위의 세도를 가졌다고 해서 아주 시건방지게 내 언니 춘자 언니를 마치 화류계 여성 대하듯 하대하기도 했는데 옆에서 보기에 무척 화가 났다. 언니는 자기 나름의 목적이 있기에 상대가 예의 없이 대해도 돈이 되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꼴 저 꼴 다 감내하며 살고 있다.
(본문 87쪽, 도청되는 한춘자 전화, 찾아오는 하나회 사람들)
같은 달 7일 09:20 무렵 서울 은평구 남가좌동 102의 23에 있는 볼래로 커피숍 앞길에서 피고인 황주연, 박형석, 윤향수, 이창순, 이현우는 위 한춘자의 운전기사인 피해자 김정송에게 조사할 것이 있다며 강제로 서울32다5341호 승용차 뒷좌석에 태운 후 피고인 박형석이 위 자동차를 운전하며 피고인 황주연과 무전기로 “김정송을 달았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리 하나를 잘라 버리겠습니다.”라고 교신을 하고, 피고인 이현우, 윤향수는 위 피해자의 팔을 잡고 고개를 숙이게 한 다음 양옆에 앉아 주먹으로 위 피해자를 때리고, 같은 날 13:30 무렵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서서울호텔 503호실로 위 피해자를 데리고 가서 윤향수, 이창순, 이현우, 김인태는 피해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여 같은 달 8일 11:00 무렵 피고인 이현우는 위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피고인 박형석은 같은 황주연에게 전화로 위 피해자를 감금한 사실을 보고하고, 피고인 황주연은 같은 홍장용에게, 같은 홍장용은 같은 고석주에게 각 이를 보고하고, 다시 위 피해자를 같은 호텔 512호실로 데려간 다음 수건으로 위 피해자의 눈을 가리고, 위 피해자를 상대로 약 2시간 동안 위 한춘자에 대해 조사하면서 피고인 황주연 등은 주먹과 발로 위 피해자의 온몸을 폭행하고, 피고인 박형석, 윤향수, 이현우, 김인태는 피해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여 같은 달 8일 11:00 무렵까지 약 26시간 가량 위 피해자를 감금하였다.
(본문 111~112쪽, 98고단 6654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판결문 일부)
첫 만남 당시 서정화는 춘자 언니한테 ‘나는 한동빈’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언니는 TV에서 서정화 의원을 보았기에 그가 정치가로서 신분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려고 했단다. 서정화 의원의 보좌관 강홍석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서정화 의원의 지시대로 춘자 언니와 자주 만났고 춘자 언니는 강홍석을 신뢰했기에 많은 정보를 주었다. 언니는 자신의 통장에 돈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돈을 사용하기 위한 재가확인서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힘있는 권력자여야 한다고 믿었기에 서정화 의원의 개입을 반가워했다. 언니는 그의 지시대로 7월에 재경원에 재가확인을 받기 위한 신청서를 접수했다.
얼마 뒤 언니한테 7조2천150억 원 중 5조1천억 원이 실명전환 되었다며 이에 관한 재가확인서(통장에 돈이 있는 것을 사용해도 좋다고 재정경제원이 허용하는 확인서 *편집자 주)가 인편으로 도착하였다. 재정경제원 실명제팀장 윤증현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재가확인서를 손에 입수한 한춘자는 서정화 의원 보좌관 강홍석이 요구하는 대로 또 다른 문건들을 준비해주었다.
(본문 126~127쪽, 1997년부터 한춘자에게 접근한 한나라당 서정화 의원)
그러나 한 달 후면 통장에 들어온다는 돈이 춘자 언니에게는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는 서정화의 보좌관 강홍석, 박주선의 보좌관 김광성, 윤증현의 부하 윤종한 등에게 연락을 해 보았으나 모두 연락두절. 인채 오빠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주군(?) 서정화, 박주선, 윤증현 역시 언니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6~7개월 만에 나타난 하수인(대리인)들은 통장에 돈이 안 들어왔다는 한춘자의 말에 ‘그럴 수가 있냐?’ 하며 함께 놀라는 척하고 해결사로 나설 듯 또다시 한춘자에게 인감증명을 받아갔다. 그리고는 역시 깜깜 무소식. 박주선의 보좌관 김광성은 3년 뒤 사망했다.
(본문 141쪽, 한춘자는 왜 안 주는 건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처음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 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 원고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처럼 믿기지 않는 내용이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거듭 읽어보면서 탄탄한 사실관계와 긴밀하게 이어지는 논리 구조를 나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었다는 한 당사자의 사연과 주장만 있는 게 아니고 가족 등 그와 연관된 다른 인물의 얘기도 어우러져 있었다.
또하나 이것이 사실이 아닌 허구라면 저자 한영순으로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도 생각이 미쳤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재판을 걸면 그 과정에서 허구가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본인이 입을 손해가 클 것이 뻔한데도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여태 봉인돼 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마지막 비밀을 열어젖히는 첫 관문이 될 수 있다. 금융실명제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투명인간이 되어 전국을 떠돌며 우리 경제를 좀먹고 있는 검은돈의 실체는 무엇일까? 악의 꽃을 피우고 시들지 않도록 양분을 공급해온 검은돈의 뿌리는 저자 한영순이 겪은 일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얽혀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장
추천의 글
이 책은 박정희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내려온 정치 비자금 일부를 밝혀 주고, 어떻게 관리되어 왔는 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막대한 정치 비자금의 운용은 수조 단위의 차명계좌들을 필요로 했고, 이를 둘러싼 권력을 지닌 정치인들의 모습이 국정원이나 검찰과의 연계 속에 차분하게 드러난다.
다루고 있는 주제의 특성상 일종의 음모론으로 치부되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인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기에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증빙 자료의 충실함과 더불어 과거 박정희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공식 확인할 수 있는 인물들의 등장이 있기 떄문에 최소한의 객관적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더욱이 지금도 활동 중인 잘 알려진 현역 정치인들을 포함해 유명인들의 실명과 그들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기에 단순한 상상과 허구로 치부할 수 없다.
무엇보다 박정희 비자금 관리를 위한 차명계좌가 800개 이상이며, 100조가 넘는 통장을 가진 사람이 9명이라는 구체적 자료가 차명계좌 주인들의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나름 신빙성이 확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희종(서울대 교수,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상임대표)
대한민국은 도약과 추락의 가능성을 동시에 가진 나라이다. 박정희 비자금의 흑역사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며 이를 유지·온존시키는 부패 탈법의 기득권 카르텔의 숨통을 끊어내지 않고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불가능하다. 그들만의 부패 탈법 기득권 카르텔이 천문학적 부동산투기의 저수지와 사금고 역할을 하며 부동산투기공화국으로 만들어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검찰정상화법에 이어 이제는 박정희 비자금의 흑역사를 온 국민 앞에 드러내고 그 흑역사의 패거리들을 ‘국민법정’에 세워 국민적 심판과 함께 사법적 단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아 왔던 부패 탈법 기득권 카르텔을 끊어내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온 국민이 이 책을 통하여 지독한 불평등의 현실을 만들어낸 부패 탈법 약탈의 기득권 카르텔의 민낯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깨인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부상하였으면 좋겠다. 특히 현대사의 흑역사를 모르고 자라온 청소년들이 읽고 이들이 주역이 되는 시대의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왜 한국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헬조선의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에 NO 결혼 & NO 출산 파업을 하는 청년들이 꼭 읽고 헬조선을 넘어서기 위해 토론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임진철(직접민주주의마을공화국 전국민회 상임의장)
박정희에게 비자금이 있다는 소문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오리무중이었다. 이른바 통치자금이라는 이름의 이 비밀에 싸인 돈이 박정희 사후(死後)에는 누구의 손에 들어가 어떻게 쓰였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 실체의 일부를 우리에게 고발하고 있다. 게다가 이 돈의 핵심은 남의 돈을 강탈한 것이라는 점이다.
책은 생생한 서사(敍事)로 되어 있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누가 주도했으며 무슨 사건들이 이어졌는지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건 한편의 뛰어난 르포 문학이면서 또한 가감 없는 역사의 기록이자 이 시대의 절박한 증언이다. 그건 감출래야 더는 감출 수 없는 박정희, 그리고 그가 휘두른 통치 권력의 야만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그에 더하여 누가 어떤 통곡을 쏟아내야 했는지 절절한 울림을 지니고 있는 저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이게 과연 사실인지 묻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질문이 우리가 원하는 시작이다. 사실인가? 실체가 있단 말인가? 누가 피눈물을 흘렸는가? 어떤 세력들이 이 진실을 은폐하고 계속 침묵 상태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래서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저들에게는.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중한 목소리’다. 이 목소리는 오늘의 역사가 왜 이렇게 비틀거리고 있는지, 어찌해서 악의 꽃은 시들지 않고 계속 저렇게 자신들을 세상에 과시하면서 번창하고 있는지 그 까닭을 알게 해줄 것이다.
-김민웅(‘촛불승리! 전환행동’ 상임대표. 전 경희대 교수)
이 끝이 없는 적폐들과의 싸움을 끝낼 수 있는 표적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책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정의와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용감히 싸우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 주는 이 책을 이 시대의 개혁 시민 여러분들이 부디 많이 읽어주시고 같이 싸워주셨으면 한다.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 어려운 투쟁의 길을 결코 소수가 힘들게 가도록 두고 싶지는 않다. 같이 승리하고 같이 승전보를 울립시다!
-최수연(평범한 민주시민. 개딸)
주제어: 한국사, 역사, 현대사, 박정희, 비자금, 육영수, 서정화, 이후락, 윤증현, 박주선, 안기부, 중앙정보부, 중정, 국정원
분류: 한국사, 역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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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펴낸 날 : 2022년 4월 26일
가격 : 20,000원
반양장본 | 373쪽 | 152*225mm
ISBN 979-11-86351-46-8(0309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 김훤주
책 소개
여행은 이제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휴일이면 어디로 떠나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인터넷 속에는 맛집이나 유명 장소에 대한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인증샷을 찍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즐깁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더 유익하고~ 좀 더 보람 있는~ 뭐 그런 게 없을까? 싶은 아쉬움을 느껴본 적이 다들 있을 겁니다. 뭔가 조금 더해지면 참 졸을 텐데 싶은 거지요. 책 속에 경남 18개 시·군의 역사와 문화를 꼼꼼하게 담았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지역의 이야기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서 썼습니다.
역사를 딱딱하고 어려운 공부가 아니라 보람 있는 여행의 소재로 삼는 이들이 많아진 추세를 따랐습니다.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역사서이기도 하고 여행객들에게는 경남을 소개하는 여행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여러 모로 두루 도움이 된다면 곰탁곰탁 다니며 발품을 판 보람이라 여길 수 있겠습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현재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장 겸 환경전문기자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 공동대표
펴낸 책
2008년 <습지와 인간>
2012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2016년 <경남의 숨은 매력-역사·문화 스토리텔링>
2018년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2020년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2020년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등
목차
중부
창원시 · 13
진해 · ‘진해’의 원래 주인은 삼진 지역 / 일본 해군의 전승지 / 근대와 현대의 문화유산이 빼곡한 옛 시가지 / 이순신 장군의 빛나는 전승지 /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자취도 / 해양 방위 요충지 웅천읍성과 제포진성
창원· 문화재가 적은 도시 창원 / 덕천리지석묘와 다호리고분군 / 창원읍성과 창원향교 / 국가중요농업유산 창원 단감 / 주남저수지 일대
마산· 고려·몽골연합군의 일본정벌 전진기지 / 마산창과 창동 / 마산헌병분견대 / 마산의 근대 유적들 / 3.15의거 발원지 / 합포성과 회원성 / 기미년 삼진의거와 팔의사 창의탑 / 천년 고찰 의림사
함안군 · 52
아라가야 수장들이 잠든 말이산고분군 / 신라 기록의 보물창고 성산산성 / 함안읍성과 함안향교 / 통일신라 사자석탑과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 아름다운 무기연당 뿌리 깊은 칠원향교 / 작음으로 이룬 무릉도원 장춘사 / 조선 땅에 세운 고려동 유적지
의령군 · 69
홍의장군 곽재우 / 기강나루 전투와 정암진 전투 / 백산 안희제와 호암 이병철 / 한글을 지킨 고루 이극로 / 의병처럼 멋진 나무들 / 퇴계 이황을 모시는 덕곡서원
서부
진주시 · 87
두 번에 걸친 진주성 전투 / 진주성과 촉석루 / 김시민·삼장사·논개 / 농민항쟁의 거점 진주 / 진주상무사·옥봉경로당·형평운동 / 진주향교·청곡사·문산성당·진주교회 / 진주역 차량정비고
사천시 · 105
갯벌에 남은 역사 / 가산창과 가산리석장승 / 사천매향비 / 일제강점기 비행기격납고 / 이순신 장군의 사천해전 / 선진리왜성 사천전투와 조명군총 / 사천성전투와 노량해전의 관계 / 유일한 해양군사유적 대방진굴항 / 다솔사에 안긴 한용운과 김동리 / 삼천포대교와 늑도유적
산청군 · 124
구형왕릉 / 두류산 양단수와 남명의 산천재 / 단속사지 멋진 자리 / 대장경 판각지 단속사 / 남사마을 / 이사재와 유림독립운동기념관 / 산청 민간인 학살사건
하동군 · 143
하동에 남은 최치원의 흔적 / 지리산에서 신선이 된 최치원 / 운암영당과 고운선생 영정 / 전라도와 경상도가 한자리에 / 배드리 위에 들어선 하동읍성 /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 전통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 최참판댁과 조씨고가
남부
고성군 · 161
또 하나의 이름 고자국 / 해상교역의 중심지 고성 / 일제가 송학동고분군을 주목한 까닭은 / 내산리고분군의 주인은 누구일까? / 고성의 고인돌 / 지구의 역사를 간직한 퇴적암 / 남녘 들판 한복판의 북방 기마문화 자취 / 양반 행패 막는 문, 새가 예쁜 자방루 / 운흥사 / 고성의 보물 둠벙
통영시 · 183
삼도수군통제영 / 세병관 / 십이공방 / 주전소 / 통영성 / 이순신 장군의 섬 한산도 / 바다의 땅 통영 / 박경리기념관 / 통영옻칠미술관
거제시 · 199
해상 방위의 요충 거제 / 대마도 정벌과 거제도 수복 / 옥포대첩과 고현성 함락의 관계 / 칠천량해전과 일본의 ‘대륙 진출’ / 원균은 나쁘기만 할까? / 배설은 비겁한 도망자일까? / 통영보다 먼저 통제영이 있었던 거제 / 고현성이 함락돼 옮겨진 기성관 / 전통 성곽의 종합 전시장 / 주민 스스로 쌓아올린 거제 교육의 자취 / 현대까지 이어진 고난의 역사 지심도와 포로수용소
남해군 · 220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 관음포와 이락사 / 왜구를 무찌른 정지 장군의 승전기념탑 / 대장경 판각지와 백제 무덤 / 잘 갈무리된 남해 유배문학 / 자연에 적응하는 인간의 역사
북부
함양군 · 241
최치원과 상림 / 김종직과 선비의 고장 / 박지원과 물레방아 / 정여창 고택과 무덤, 남계서원 / 여권 신장의 상징 허삼둘 가옥 /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 / 선불교의 벽송사와 미래 문화재 서암정사 / 함양 민간인 학살사건
거창군 · 261
거창을 키운 것은 8할이 바위 / 문바위·사선대·분설담·수포동 / 크고 많은 거창의 석불 / 네덜란드식 가옥에 담긴 뜨거운 고장 사랑 / 군 단위 최초의 공립 박물관 / 동계 정온 고택 / 비극의 민간인 학살사건
합천군 · 277
남명 조식 / 뇌룡정과 용암서원 / 합천군 창의사 / 삼가장터3·1만세운동기념탑 /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 대가야 건국신화와 해인사 / 대가야 마지막 태자와 월광사지 / 멋진 유물 가득한 영암사지 / 옥전고분군과 합천박물관 / 합천의 향교
동부
창녕군 · 299
화왕산성을 지킨 곽재우 / 창성부원군 조민수 / 전민변정도감과 신돈 / 가야의 순장소녀 송현이 / 창녕지석묘와 진흥왕척경비 /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창녕석빙고 / 관룡사 / 한강 정구 / 망우정과 여현정
밀양시 · 319
밀양강과 수산제 / 항일독립투쟁과 밀양 / 작원관전투와 작원잔도 / 밀양 사람들에게 각별한 사명대사 / 삼랑창과 삼랑진역급수탑 / 영남루와 월연대 / 예림서원과 밀양향교 / 어디에도 없는 절 표충사
김해시 · 339
수로왕은 몰랐던 ‘금관가야’ / 떨어져 있는 수로왕릉과 허왕후릉 / 대성동고분군과 봉황동유적 / 유적으로 가득한 분성산 / 또다른 항만 유적과 솟대 자리 / 청동기시대의 공동묘지 율하리 유적 / 국립김해박물관 / 봉하마을과 화포천
양산시 · 358
양산을 압도하는 통도사 / 만고 충신 박제상 / 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나루 가야진 / 황산잔도와 용화사 / 북정리고분군과 양산시립박물관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진해 북원로터리에는 6.25전쟁 와중에 해군 장병 등의 성금으로 세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1952년 4월 13일 장군의 탄신일(4월 28일)을 앞두고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과하지 않고 품위 있기로 치자면 북원로터리의 이순신 장군 동상만 한 것이 드물다 싶습니다.
백범 김구와 충무공 이순신은 시대는 달라도 일제와 맞서 목숨 걸고 싸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원로터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백범 김구 선생이 350년 세월을 뛰어넘어 손을 맞잡은 뜻깊은 자리입니다. ‘백범김구친필시비’가 두 분을 이어주는 주인공입니다.
1948년 8월 15일 해방 3주년을 맞아 진해를 찾은 백범은 이순신 장군이 지은 한시 ‘진중음’의 글귀를 써서 남겼습니다.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 선조 임금이 압록강만 건너면 중국 땅인 의주까지 피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왜적을 반드시 무찌르겠다고 맹세한 글귀입니다.
- (본문 22쪽, 창원)
구형왕릉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돌을 쌓아 만든 무덤(적석총)입니다. 비탈진 산기슭을 따라 일곱으로 층을 이룬 가운데 네 번째에는 감실 비슷한 구멍이 있습니다. 전후좌우로 넓게 퍼져 있고 위로도 돌더미가 높다랗게 솟아 있습니다. 신라나 가야의 고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매우 신선한 장면이 될 수 있습니다.
구형왕릉 들머리에 있는 덕양전은 구형왕과 그 왕비를 모시는 전각입니다. 햇살이 바른 자리에 널찍하게 터를 잡고 있어 초라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라 잃은 가락국 임금의 사당이라는 전제 때문인지 보는 이로 하여금 처연한 감정이 들게도 합니다.
백제의 계백 장군처럼 마지막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과 구형왕처럼 모든 것을 접고 항복을 하는 것, 이 두 가지 길 중에 어느 쪽이 최선일까요? 결사 항쟁하다 장렬하게 전사하면 영웅이 됩니다. 반대로 투항을 선택하면 배신과 비겁의 아이콘으로 남게 됩니다.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싸우다 죽으면 멋지게 이름을 남길 수 있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고난과 고초를 고스란히 겪어야 합니다.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형왕은 쿨한 결심을 했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김유신을 비롯한 후손들이 신라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고 공덕을 쌓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 (본문 125쪽, 산청)
거제초등학교 건물은 지역 주민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본관은 전쟁이 끝난 뒤 짓기 시작해 1956년 7월 2층 규모에 교실 16개로 준공됐습니다. 화강암과 붉은 벽돌을 제대로 섞어 활용한 현관은 서양식으로 오래된 대학 건물 같은 장중함이 느껴집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가난한 시절에 널빤지로 얽거나 가마니로 가려도 그만이었지만 거제 사람들은 자식들을 위해 너도나도 품을 냈습니다. 바위를 떼어와 다듬었으며 벽돌을 손수 굽고 옮겨 쌓았던 거지요.
해성중·고등학교도 비슷한 명물을 하나 품고 있습니다. 가톨릭 계열로 1952년 전쟁 중에 세워진 이 학교는 스탠드 위쪽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멋집니다. 똑바로 서 있지 않고 운동장을 향해 구부러져 있는 나무 그늘이 한결같이 스탠드를 덮어주고 있습니다.
굽어 있는 플라타너스에는 학생을 아끼는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미사를 드리거나 행사를 할 때 학생들은 나무그늘 아래에 앉고 선생님은 운동장에 서 있는 모습을 졸업생들은 떠올립니다. 잘 깔린 천연잔디와 플라타너스가 조화를 이룬 교정이 참 아름답습니다.
(본문 215쪽, 거제)
상림 인물공원에는 옛날 선정비도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서 조병갑을 기리는 선정비가 특히 눈에 띕니다. 조병갑은 전라도 고부군수 시절 만석보 물세를 가혹하게 걷는 등의 학정으로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터지도록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선정비에는 유랑민도 어루만지고 조세도 줄여주었으며 봉급을 헐어 관청까지 고쳤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갑오농민전쟁 일곱 해 전인 1887년 세워졌는데 이렇게 선정을 베풀던 사람이 갑자기 악행을 저질렀을 리는 없겠지요. 짐작하자면 아무래도 조병갑이 백성들을 윽박질러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겠지요.
상림에는 조병갑의 아버지 조규순을 위한 선정비도 있습니다. 아들보다 40년 정도 앞에 함양군수를 지냈습니다. 조병갑은 고부군수 시절 충남 태안에 있는 조규순의 선정비각을 짓는다며 1000냥을 뜯어낸 적이 있습니다. 함양에서도 비슷한 일을 벌였을 것 같지 않나요.
조병갑은 고부민란과 동학농민전쟁을 촉발시킨 탐관오리로 지목돼 1894년 유배를 갔다가 이듬해 풀려납니다. 그리고 1898년에 법부 민사국장이 되어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사형 판결문에 판사로 이름을 올립니다. 조병갑의 변신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본문 244쪽, 함양)
귀양에서 돌아온 망우당 곽재우는 첫 승전지 기강나루에서 지척인 도천면 우강마을 강가 언덕에 망우정을 짓고 살았습니다. 육신은 병들고, 글을 쓸 종이 한 장 없고, 입고 나갈 옷 한 벌도 변변찮은 삶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웠습니다.
마지막 남은 망우정조차 다섯 아들에게 남기지 않고 외손녀사위 이도순에게 물려줍니다. 망우정을 가장 잘 지키고 유용하게 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요즘 상식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망우정에는 어진 사람에게 준다는 것을 뜻하는 여현정이라는 현판이 하나 더 달려 있는데 그런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 요임금은 자식이 아닌 순에게 천하를 넘겼고 나는 이 정자를 현자인 이군에게 물려준다. 이를 요순에 견주는 것은 넓은 하늘을 좁은 연못에 비교함과 같으나 마음속 깊은 뜻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자네가 자연을 벗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능히 지킬 수 있겠기에 정자를 내 것으로 삼지 않고 이렇게 준다네.”
곽재우와 마찬가지로 의병 활동을 했던 정인홍은 광해군 아래에서 영의정까지 오르지만 결국 처형을 당했습니다. 반면 곽재우는 전란 이후 되도록 벼슬을 피하며 편안하게 천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곽재우는 삶의 본질을 깨달은 위인이었습니다.
(본문 316쪽, 창녕)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누군가 우리나라를 두고 전 국토가 박물관이고 전시관이라 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오만 군데 널려 있고 수천 년 살아온 문화유산이 눈길 닿는 데마다 놓여 있다는 겁니다. 경남은 더욱 그렇습니다. 지리산을 비롯한 산악과 섬진강·낙동강 같은 물줄기가 어우러지는데다 푸근하고 넉넉한 남해바다까지 함께하는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경남은 이처럼 자연환경이 살기 좋으면서도 아름다워 예로부터 물산이 풍성하고 인심도 좋은 고장이었습니다. 사람이 자연과 어울리며 문화를 만들어내기 알맞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런 때문에 골짜기와 들판 바닷가 고샅마다 사람살이의 자취가 풍성하게 남아 있는 거지요.
경남의 사람 역사 문화를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지역마다 고유한 자연을 바탕으로 삼아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살폈습니다. 읽는 내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지역별로 특색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어 새로운 시각으로 알기 쉽게 구성해 보았습니다.
추천의 글
지역의 특징을 밝히면서 궁금증을 풀어주는 내용으로 누구나 알아보기 쉽게 썼다. 어린이나 청소년, 가족과 사제가 동행하여 같은 주제로 대화하고 토론하며 고루 누리기 딱 좋은 어깨동무가 되는 책이다. 지역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식을 보충하며 휴식과 유희로써 행복을 선물한다.
읽기 어려운 역사 교과서의 한계를 벗어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의 수많은 이야기는 가고 싶도록 만들고 지역의 자랑거리를 지인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도와 자긍심을 부추긴다. 가족끼리 함께 여행하며 공동의 주제로 대화하며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품은 이 책을 권한다.
강정석(마산무학여자중학교 교사)
저자는 방대한 고증과 철저한 답사로 경상도를 재해석한다. 여행자들은 이 책을 통해 경상도를 재발견하게 된다. ‘특급 역사 가이드’ 덕분에 경상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멋진 시간 여행지로 재탄생한다.
고재열(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 여행감독)
선인의 숨결과 흔적을 찾아 치열한 발품을 이어온 저자가 누천년 역사와 문화의 고갱이만을 간추려 씨줄 날줄 정성스레 엮어낸 경남지역 시간여행의 탁월한 길라잡이다. 경남 산천 골골 사람과 사건, 장소에 얽힌 무수한 옛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우리네 삶터에 담긴 문화유산의 가치를 톺아보며 독자 스스로의 자존을 곧추세우게 된다.
황풍년(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월간 <전라도닷컴> 전 발행인)
주제어: 경상남도, 경남, 역사, 문화, 거제, 거창, 고성, 김해, 남해, 밀양, 사천, 산청, 양산, 의령, 진주, 창녕, 창원, 마산, 진해, 통영, 하동, 함안, 함양, 진해, 마산, 3.15의거, 말이산고분군, 충익사, 진주성, 사천만갯벌, 산천재, 하동읍성, 이순신, 옥천사, 박경리, 지심도, 이락사, 유배문학, 박지원, 최치원, 김종직, 분설담, 남명 조식, 곽재우, 삼랑진역급수탑, 국립김해박물관, 용화사
분류: 한국사, 한국문화, 역사/지리,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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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잘피가 돌아왔다 - 운동화 시장 허성무의 창원 미래 보고서
펴낸날 2021년 12월 17일
가격 20,000원
무선제본 | 352쪽 | 152*225
ISBN 9979-11-86351-45-1 (0399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지은이 허성무
책 소개
민주당 최초의 창원시장 허성무의 지난 3년간 여정과 시정 철학, 미래 비전을 담은 책이다.
록밴드 노브레인의 노래 ‘Come on Come on 마산스트리트여’ 가사 중에는 ‘콜라빛 나는 바닷물’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만큼 오염이 심했던 마산만이었다. 저자는 그 노래 대목이 늘 부끄러웠다.
그런 마산 앞바다에 잘피가 돌아왔다. 바닷속에서 휘날리는 잘피 숲을 발견했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잘피가 돌아오고, 은어, 연어, 수달이 돌아오고, 젊은이가 와글와글 모여드는 그런 창원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저자는 자연과 환경을 살리고 한계에 봉착한 제조업 부흥을 위해 탄소 중립, 수소 경제를 주창한다. 그냥 슬로건이 아니라 디테일한 전략과 방향까지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허성무
1963년생. 현재 창원시장이다. 창원군 진전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산중앙고등학교를 거쳐 부산대학교 행정학과를 나왔다. 고시에 뜻을 두고 공무원이 되고자 했으나, 감옥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이후로 평생 ‘사람 사는 세상’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정치가의 길을 걸었다. 청와대 민원제도비서관과 경남도 정무부지사로 일하며 중앙과 지방정부의 행정 경험을 두루 쌓았다.
평소 소신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늘 한발 물러서서 상대의 생각을 들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혁신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을 중시한다.
허성무에게 관성과 표준은 ‘길들여지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다.
『그래도 사람, 36.5』를 썼다.
목차
책을 내면서
추천사
김부겸 국무총리
정세균 제46대 국무총리
최충경 창원상공회의소 11대 회장
이찬원 경남대 환경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제1부 “섬을 팝니다!” - 산정에 서서 바다를 보다
1. 최치원이 뿌린 전설
2. 여섯 개의 달이 뜨는 마을
3.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4. 마산해양신도시 개발의 세 가지 대전제
5. “섬을 팝니다!”
6. 월포해수욕장의 추억
7. “시장이 마산 앞바다에 들어가 수영했대”
8. 잘피가 돌아왔다
9. 은어와 연어
제2부 아! 노무현 - 진리는 아스팔트 위에 있었다
10. 내가 만난 노무현
11. 진리는 아스팔트 위에 있었다
12. 부마민주항쟁
13. 대학 시절
14. 사선을 넘어
15. 골리앗에 맞선 변호인
16. ‘아름다운 시절’ 기후위기의 시작
17. 화석연료의 퇴장과 엔진시대의 종언
제3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여정 - 꽃향기는 천리를 가고, 기술향기는 만리를 간다
18. 창원대로
19. 방산 부활의 꿈
20. 시장을 만난 노조위원장
21. 방산 노동조합협의회
22. 노사는 원팀이다
23. 철을 갖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24. 제니의 새장에서 탄생한 고층빌딩
25. ‘기계를 만드는 기계’를 움직이는 CNC 컨트롤러
26. 수출규제로 시작된 일본의 경제침략
27. 기해왜란
28. 1,075인의 기술독립운동가들
29. 소부장
30. 소재는 국력이다
31. 한국재료연구원, 마침내 독립하다
32. 재료연구원과 노회찬
33. 오래된 인연
34. 결혼기념일과 상공회의소
35. 화향천리(花香千里) 기향만리(技香萬里)
36. 진해, 제2재료연구원을 품에 안다
37. “원천기술, 우리가 책임집니다!”
38. 해답은 현장에 있었다
39. 마더 머신에 머리가 없다면?
40. 창원의 원천기업들
제4부 드레스덴 결의 - 디지털 실크로드의 꿈
41. 드레스덴 결의
42. 혁신에 성공한 도시 ‘엘베강의 플로렌스’
43. 한국사위 드레스덴 시장
44. I-ROAD 첨단산업 생태계
45. 중국을 차이나라고 부르는 까닭
46. 현대판 실크로드 일대일로
47. 진해신항과 해양자주권
48. ‘신남방정책’ 아시아 경제의 심장을 두드리다
49. 신남방으로 가려면 화상들부터 만나라
50. 미증유의 복병 코로나 팬데믹
51. 전인미답의 디지털 실크로드
52. 디지털 로드로 떠나는 예행연습 ‘큐피트’
53. 디지털 사막의 오아시스
54. 배울 게 많은 나라 싱가포르
55. 엔진의 생명 화석연료
56. 궁극의 에너지 인공태양
57. 꿈의 에너지의 새로운 연료는?
58. 수소로부터 찾는 해법
59. 에너지 민주주의는 전쟁도 멈춘다
제5부 수소와 함께하는 미래와의 대화 - 수소산업좌담회에서 나눈 이야기
60. 수소좌담회를 열다
61. 수소는 무한에너지
62. 더운 게 이것 때문이었어?
63. 수소가 키운 감자
64. 물은 미래의 석탄이다
65. 도심의 수소충전소
66. 수소는 친환경인가?
67. 남들 뛸 때 놀면 안 돼
68. 새로운 먹거리들
69. 라인강 언덕에 서다
70. ‘최초’ 타이틀이 갖는 의미
71. 조용한 새벽에 잠 깰 일 없습니다!
72. 수소가 없던 도시에서 수소를 선도하는 도시로
73.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선택
74. 수소산업의 미래를 열다
제6부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 - 인류의 희망은 물에서 나온다
75. 탈원전 정책과 정의로운 전환
76. 그린뉴딜을 선도하는 해상풍력발전
77. RE100은 시대정신
78. 생명이 물에서 온 것처럼 인류의 희망도 물속에 있다
79. 신비의 섬
80. 수소에 이름을 지어준 라부아지에
81. 위대한 후원자
82. 수소산업특별시
83. 세계 최초 블루수소 실증단지를 만들다
84. 소리 없는 공기청정기
85. 해상풍력에서 액화수소 플랜트까지
86. 블루수소에서 그린수소까지
87. 세계는 지금 탄소중립이 대세
88. 탄소중립시대의 대안 SMR
89. SMR은 확실한 게임체인저
90. 내연기관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현대차
91. 수소바이어가 된 시장
92. 공룡의 힘찬 비상을 기원하며
제7부 웰컴 투 창원익스프레스 - 도시의 지도를 바꾸는 새삼스러운 꿈
93. 원래 하나였던 오래된 통합창원의 기록
94. 새삼스러운 꿈
95. 삼성전자의 비밀병기 포트폴리오
96. 웰컴 투 창원익스프레스
97. 청년이 떠나는 이유
98. 떠나는 걱정보다 오게 하는 정책이 중요
99. 스마트팩토리의 원형은 오랜 메모 습관
100. 소 잡지 말고 치즈산업을 키워라
101. 창원공단 지도가 바뀌고 있다
102.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깜짝 조우
103. 무학산을 내려가며
에필로그1 - 다하지 못한 말들
잘피는 공존과 공생의 상징물 / 해가 뜨기 전에 풀을 베야 / 재생에너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어느 도시보다 탄소중립이 절실했던 창원시 / 생명은 소중하다
에필로그2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방탄소년단, 유엔에 서다 / 스마트폰의 충격 / 호모 사피엔스와 메타버스 / 사람이 희망이다 /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감성 / 세계여성인권포럼과 국립자연사박물관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하늘의 뜻이었을까. 내가 돝섬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겠다고 하자 40여 년 전에 사라졌던 잘피가 마산만으로 돌아왔다. 잘피에 관해 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6월 17일 배를 타고 돝섬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잘피부터 살피기 위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로 통하는 박지호 어린이의 손을 잡고 바닷가로 향했다.
“지호야, 잘 봐. 저게 바로 잘피라고 하는 바닷속 식물이란다.”
“와, 정말 신기해요. 저는 잘피를 오늘 처음 보게 되었어요.”
잘피도 그런 지호가 반가웠던지 바닷물 속에서 살랑이며 춤을 추었다. 바다는 충분히 맑고 푸르러 잘피의 동작이 한층 잘 보였다. 어린 지호에게 수십 년 전에 사라졌던 잘피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나는 지호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이 바다를 우리 어른들이 망쳐서 한때 죽음의 바다로 만들었지만, 이제 다시 살려서 생명의 바다로 거듭나고 있단다. 앞으로 다시는 잘피가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 이 바다는 너희들의 바다란다.”
(본문 45쪽)
제가 시장이 될 무렵에 우리 창원시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사실상 10년째 인구도 줄어들고, 경제는 내리막길이고, 사실상 러스트벨트화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미 러스트벨트화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도 그렇게 주장했지만, 러스트벨트를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로 만들어야 하겠다, 이게 저의 핵심공약이었고요. 그러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하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수소산업을 제대로 해야겠다, 수소사회, 수소도시를 만들어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수소라는 에너지를 우리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손쉽게 접하고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수소도시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자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수소차를 중심으로 다양한 수소모빌리티가 많이 보급되고 그것이 자유롭게 이용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들이 그동안 있었고요. 무엇보다 이를 선도할 연구기관이 있어야죠. 그래서 한국자동차연구원 수소모빌리티 본부를 창원에 유치한 겁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유치하려면 돈이 많이 들죠. 땅도 있어야 하고 건물도 지어야 하고, 많은 투자가 됩니다만, 투자하지 않으면 지자체도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 239쪽)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미래 산업경쟁력을 위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소경제가 3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전문가들에 의하면 수소가 화석연료를 대체하면서 30년생 소나무 9,090억 그루가 제거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에 해당하는 약 60억톤을 감축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탄소중립 2050을 목표로 전 세계가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고무적인 전망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전망은 매우 밝다. 전 세계적으로 3,000조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수소는 에너지 비중의 18%를 차지하고 관련 일자리도 3,000만 개가 늘어나게 된다.
(본문 287쪽)
나는 꿈꾼다. 5년 후 2026년의 우리 창원은, 1인당 GRDP가 5만 달러에 이르는 명실상부 선진국 수준이 되었다. 세계 50위권의 기업 하기 좋은 도시로 발돋움했다. 전국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 중에서 당당하게 도시경쟁력 순위 1위로 올라섰다. 인구는 반등하여 100만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 특례시의 재정 규모는 현재 3조2,000억 원 수준에서 6조 원대로 대폭 늘어났다. 수출은 15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성장했다. 기업체 수도 8만7,000개에서 9만 개로 증가했다. 실업률은 4.4%에서 3%대 이하로 낮아졌다. 우리 시 전체 GRDP는 약 40조 원 규모에서 55조 원대로 도약했다.
(본문 209쪽)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은, 부족하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적 공간적인 제약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 점이 지금도 몹시 아쉽다. 이 한 권의 책을 위해 사실은 지난 3년 틈틈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알게 된 훌륭한 제안들은 정책으로 만들어 시정에 반영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이이효재 세계여성인권포럼’과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다. 세계여성인권포럼은 지난 5월 ‘여성정책 좌담회’에서 함께 패널로 참여했던 김경영 경남도의원이 제안했다. 김 의원은 그 이전에 ‘서성동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제안했는데,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터라 강하게 밀어붙여서 결국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이전 시장들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전례가 있어 모두 불가능할 것이라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집창촌이란 것은 가는 사람이나 거기 있는 사람이나 그것을 보는 시민들이나 모두에게 불행이다. ‘사람 중심의 새로운 창원’을 건설하겠다면서 그 정도 각오와 결단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이 자리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본문 349쪽)
추천사
허성무 시장에게는 새로운 미래를 그려내는 탁월한 힘이 있다.
인구 100만 대도시의 미래를 담을 창원특례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도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듯, 창원시도 이제야 자신의 옷을 찾은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주도할 스마트산업, 수소산업, 방위산업도 창원시가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머지않아 그 결실이 창원시민 품에 안길 것이다.
-김부겸(국무총리)
문득 돌아온 것은 잘피가 아니라 허성무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중심 새로운 창원의 미래를 열어가는 그의 진득한 땀방울의 흔적들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이런 허성무 시장의 진심과 열정이 창원시민들의 가슴 속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정세균(제46대 국무총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운동화 시장 허성무의 창원 미래 보고서
사람들은 그를 ‘운동화 시장’이라 부른다.
양복에 운동화,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창원시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서울로 세종으로 수없이 오르내리며 뛰고 뛰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난 3년간 창원 시장직을 맡으며 겪은 고난과 발로 뛰어 따낸 많은 성과들, 그리고 향후 미래도시 창원에 대한 그의 열정과 계획을 담았다.
죽음의 바다였던 마산 앞바다에 바다의 허파라고 불리는 잘피가 돌아오듯, 파란 운동화 끈을 꽉 조여 매고 허성무가 다시 돌아왔다.
마산만 돝섬 앞바다에서 허성무 시장이 직접 수영을 한 날로부터
꼭 1년 5개월이 지난 2021년 11월 13일,
마산만에서 ‘전국 철인3종 경기대회’가 열렸다.
주제어: 허성무, 정치인, 경남창원, 창원시, 창원특례시, 잘피, 수소산업, 수소에너지, 탄소중립
분류: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외교 > 정치인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한국정치사정/정치사 > 한국정치사정/정치사-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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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0년 만의 증언
펴낸날 2021년 11월 17일
비매품
종이책 세트 / 무선제본 / 전 5권
SET ISBN 979-11-86351-37-6 (0409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주소 (우)630-811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38(양덕동)
전화 (055)250-0190
홈페이지 www.idomin.com
블로그 peoplesbooks.tistory.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pepobooks
엮은이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경남유족회
기록자 김주완 이상호 김한규 이춘 한양하 박성경 심일성 한승석 정세리 황라겸
<책 파일 첨부>
70년만의 증언 1권 - 창원 김해편
70년만의 증언 2권 - 진주 사천 남해 하동편
70년만의 증언 3권 - 거제 통영 고성편
70년만의 증언 4권 - 밀양 양산 의령 함안 창녕편
70년만의 증언 5권 - 산청 함양 거창 합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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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동, 다녀올게요 - 바다에서 차밭까지 하동 걷기 여행
펴낸날 2021년 5월 17일
가격 16,000원
무선제본 | 360쪽 | 140*200
ISBN 979-11-86351-36-9 (03980)
펴낸곳 경남도민일보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지은이 이서후
책 소개
바다에서 차밭까지 하동 걷기 여행.
하동 여행은 바닷가에서 시작해 섬진강을 거슬러 평사리 구석구석 새로운 풍경을 찾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평사리를 둘러싼 산등성이가 품은 마을 깊숙이 자리 잡은 따뜻한 풍경들을 만끽했지요. 넉넉한 햇살을 품은 오래된 담벼락에서 위안을 얻고, 바람에 흔들리는 늙은 감나무 꼭대기에 달린 붉은 홍시를 보며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동은 강렬한 단풍이었고, 고적한 차밭이었으며, 우람한 나무 그늘이었습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이서후
10여 년 전 문득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로부터 4년간 오롯이 여행자로 떠돌았다. 지금은 그 경험을 바탕삼아 일상 속 소박한 풍경과 이야기를 발견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인문지리 여행서 시리즈 대한민국 도슨트 여섯 번째 책 『통영』(21세기북스), 경남 남해를 1년간 걸으며 기록한 『남해 바래길』(피플파워), 경남 둘레길을 소개하는 『경남을 걷다』(공저 피플파워), 경남 유·무형 자산에 얽힌 스토리를 담은 『한국 속 경남』(공저 피플파워)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04
1장 하동읍·12
너른 들판 사이 군청에서 / 두꺼비 전설 품은 하동시장 / 하동공원이 품은 하동향교에서
2장 하동읍-적량면 서당마을·26
하동 들판을 눈에 담고 걷는 숲길 / 마을과 마을 사이 고샅을 도는 길
3장 하동 해안길 진교면 진교리~술상마을·38
진교면 민다리 전설 / 깨끗한 갯벌과 잔잔한 바다
4장 하동 해안길 진교면 술상마을~금남면 중평마을·50
며느리 전어길을 따라 / 하동 다도해를 바라보며
5장 하동 해안길 금남면 중평마을~진구지마을·62
중평마을 방파제의 매력 / 진구지, 바다로 길게 뻗은 산등성이
6장 하동 해안길 금남면 구노량~신노량·74
대문 없는 마을 /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 방파제에 서서
7장 하동 해안길 금성면·86
기묘한 바다 풍경 / 바다에서 강의 영역으로
8장 금남면 정기룡 장군길(상) 중평마을·98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 / 중평마을 고인돌 찾기 대작전
9장 금남면 정기룡 장군길(하) 중평마을~금오산·110
정기룡 장군 생가 터를 지나 / 도사의 예언이 담긴 바위 앞 에서
10장 금오산 드라이브(상) 진교면 정동원길~금남편 하삼천 마을·120
정동원길, 국내 최연소 인물길 / 인산인해, 카페 우주총동원 / 하삼천, 돌담이 예쁜 마을
11장 금오산 드라이브(하) 금남면 대송마을~금오산 정상·132
산골마을 덕포, 대송, 대치 / 금오산 정상 가는 세 가지 방법
12장 악양면 평사리(상) 동정호·142
국내 최대 두꺼비 서식지 / 중국 악양과 얼마나 닮았기에 / 선비들의 풍류 가득한 풍경 / 섬진강 변 섯바위
13장 악양면 평사리(하) 평사리 최고 전망대·154
최참판댁 가는 길의 공간감 / 한산사 앞에서 굽어보다
14장 악양면 입석리·164
넉넉한 악양 들판 / 이런 멋진 골목길 갤러리 / 선바위를 찾아서
15장 악양면 정서리·176
멋들어진 차밭과 학교 운동장 / 양지와 음지 사이 머무는 기억들 / 깊고 단아한 고택
16장 악양면 매계리·188
여기가 그 청학동인가? / 산골마을 운치 / 소박한 이상향의 맛
17장 악양면 악양천 제방길·198
우뚝한 산들의 어깨동무를 바라보며 / 상류로 갈수록 더해지는 매력
18장 악양면 동매리·208
작은 동산 큰 운치, 만수대 / 이 멋진 대문채를 보라
19장 악양면 축지리·218
판소리체험관을 아시나요 / 악양에 펼쳐진 주황색 물결 / 바위에 자란 소나무에서 굽어보다
20장 청암면 하동호 둘레길·230
하동댐 위에서 / 하동호 둘레 한 바퀴
21장 옥종면 하동편백자연휴양림·240
재일교포 사업가의 편백 숲 기부 / 온몸으로 맞이하는 편백의 기운 / 벼랑 끝 숙소가 보여주는 절경
22장 옥종면 굳은 신념들·250
정겨운 소나무 숲길을 따라 / 신념과 바꾼 목숨 / 푸르고 푸르다
23장 옥종면 두양리 은행나무·262
두양리 은행나무 / 두방재와 모한재
24장 옥종면 이순신 백의종군로·272
이순신의 여정을 따라 / 강정에서 청수역까지 / 마음을 헤아리다
25장 옥종면 지족당 조지서 유적·282
죽음을 각오한 신념과 강직함 / 묘지가 아닌 묘비 / 큰선비를 기억하는 방법
26장 북천면·292
강직한 선비 정신을 담다 / 역사의 골짜기에서 돌아온 소설가
27장 고전면·304
옛 하동의 중심에서 / 정두수 노래 따라 걷다
28장 양보면·314
최치원 초상화에 담긴 비밀 / 양보면에 숨은 풍경들
29장 화개면 화개동천·326
눈 속에 꽃이 피다 / 가야 일곱 왕자의 성불 / 그리고 화개동천
30장 화개면 차밭길·338
하동에서 시작한 1300년 차 역사 / 차밭 사이로 /차 한잔의 즐거움
에필로그 섬진강·350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진교IC나들목가 있죠? 이 진교가 진교면의 그 진교입니다. 나들목으로 빠져나가면 바로 진교면 소재지입니다. 진교는 남해와 하동을 아우르는 교통 요충지입니다. 그래서 버스터미널이 제법 큽니다. 시간표를 보니까 서울, 진주, 부산, 남해, 창원, 하동 양보면, 하동읍까지 연결되네요. 면 소재지이지만, 편의점도 많고, 큰 마트도 몇 개 있는 게 기본적으로 도시 느낌이 나는 곳입니다.
(3장 하동 해안길 진교면 진교리∼술상마을 中 41쪽)
연막마을까지는 차를 타고 갑니다. 하동 나들목(IC)을 빠져나와 금성면을 방향을 잡으며 어느 순간부터 하동 화력발전소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발전소가 잘 보이는 길가에 잠깐 차를 세웠습니다. 가까이서 본 화력발전소는 비현실적으로 큽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봤네요. 발전소 건물 자체가 너무 커서 안에서 일하는 분들은 같은 공간 안에 있더라도 몇 년 동안 얼굴 한 번 못 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네요.
(7장 하동해안길 금성면 中 89쪽)
금오(金鰲)란 이름은 금자라를 뜻합니다. 백두대간이 남해 바다를 만나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을 표현한 거죠. 금오산도 지리산처럼 여성 산신 설화가 있네요. <하동의 구전설화>에서 ‘금오산에 돌이 많은 이유’란 이야기를 보니 옛날에 지리산, 금오산, 남해 금산을 관장하는 마호 할매가 살았는데, 하동과 남해 사이 다리를 놔주려고 지리산에서 돌무더기를 치마에 싸서 오다가 금오산 정상에서 발을 헛디뎌 정상 아래에 돌을 다 쏟아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금오산 정상 주변에는 돌무더기가 아주 많습니다.
(11장 금오산 드라이브(하) 금남면 대송마을~금오산 정상 中 141쪽)
악양면의 역사는 거의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조선 이후가 마한, 진한, 변한 삼국시대죠. 이때 변한 지역 12국 중 하나인 낙노국이 악양면 지역이었습니다. 이후 악양은 백제와 가야의 영토 분쟁 지역이었다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한다사군韓多沙郡·하동 아래 소다사현小多沙縣이 되죠. 이 소다사현을 향찰식으로 표기하며 악양이란 이름이 나온 것 같습니다. <하동군 지명지>하동문화원, 1999에 나오는 설명을 볼까요.
“악岳은(아기, 애기에서 나온) 소(작다)란 뜻이고, 양陽은 따사롭다에서 접미사 롭다를 뺀 다사를 뜻하므로 소다사를 향찰식으로 표기 한자로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악양이 되었기에 옛 노인들께서 중국 악양의 인경을 한국의 악양에 맞추었고, 그렇게 지역, 지형을 중국의 악양 것을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194쪽)
쉽게 말해 지명이 중국의 유명한 악양과 같아지니 이후에는 중국 악양과 그 주변 지명을 그대로 대입한 것이란 말이겠네요.
(12장 악양면 평사리(상) 동정호 中 147~149쪽)
다시 한참 걷다 보니 새삼 편백 숲이 꽤 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보통 이렇게 높은 나무들이 숲을 이룬 땅에는 풀이 잘 자라지 못합니다. 편백 숲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중에도 햇살을 받아 빛나는 푸른 잎들이 더러 보입니다. 대견하다기보다는 앞서 가을꽃처럼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을꽃이나 편백 숲에서 외롭게 자라는 식물들은 나는 식물이고 조건이 되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운다, 이 간단한 의식뿐입니다. 아니 의식이라고 할 수도 없겠네요. 그저 간단한 자연법칙이라고 합시다.
(21장 옥종면 하동편백자연휴양림中 246쪽)
차밭을 다원이라고 합니다. 하동에 다원이 크거나 작거나 다 그러모으면 한 300곳 정도 된다고 합니다. 화개면에 하동에서 제일 차밭이 많습니다. 하동군 문화관광 누리집에는 ‘다원 8경’이라고 중요한 다원 8곳을 선정해 소개해 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동 차 시배지를 포함해 명원다원, 고려다원, 도심다원, 쌍계야생다원, 차공간, 매암다원, 정금차밭입니다. 사실 이곳들만 돌아다녀도 하동 차밭 구경은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이 중에 악양면 매암다원을 빼면 모두 화개면에 있습니다.
(30장 화개면 차밭길中 343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경남 여행 전문가 경남도민일보 이서후 기자가 하동 곳곳을 1년 동안 다니며 마주한 풍경과 마을, 사람, 그리고 그 속에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담은 하동 인문 여행서입니다.
풍부한 사진과 감성 가득한 이야기가 하동을 더욱 가깝고 친근하게 안내합니다. 책과 함께 다니다 보면 풍경 속에서 저절로 위로와 치유를 얻을 수 있는 행복한 하동 여행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주제어: 하동, 경남, 하동여행
분류: 여행>여행에세이
여행>국내여행>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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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뮤직 파라디소 –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
펴낸날 2021년 3월 15일
가격 19,000원
무선제본 | 392쪽 | 152*225mm
ISBN 979-11-86351-34-5 (0368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지은이 심광도
책 소개
『뮤직 파라디소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는 영화음악 칼럼니스트인 심광도가 《경남도민일보》에 3년 동안 연재한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를 보완하여 완성시킨 역작이다. 이 책은 명작 영화에 대한 소개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클래식 음악을 함께 맛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클래식 음악은 영화에 등장해 관객에게 잊지 못한 감동을 선사하며 영화를 빛나게 하는 디저트와 같은 존재다.
이 책에 실린 49편의 글은 이탈리아 작곡가 알레그리로부터 시작해 스탠리 마이어까지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알려준다. 독자들은 바로크 음악부터 시작하여 고전주의 음악, 낭만주의 음악, 현대음악까지 다채롭게 펼쳐지는 클래식 음악의 향연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와 클래식 음악을 한번에 감상하려는 독자의 기대 욕망은 이 책으로 100% 만족될 것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심광도
오랫동안 아마추어 애호가로서 음악과 함께했다. 영화음악을 사랑하던 학창시절, 우연히 만난 영화 《아마데우스》로 클래식에 입문하여 현재는 CD 3000여 장과 LP 1만여 장을 보유 중이다. 그동안 축적해 왔던 음악적 소스와 소양을 나누고자 2018년 1월 MusicParadiso 음악 감상실을 열어 현재 400여 명의 회원과 함께 음악 나누기를 실천하고 있다. 부산 KNN라디오 ‘추억의 LP’ 코너 패널을 맡아 진행하였으며, 현재는 마산 MBC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경남도민일보》에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를 2018년 5월부터 연재 중이며, 이를 기초로 외부와 감상실 회원을 위한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목차
책 머리에
01 일그러진 진주 바로크와 고전
천지창조를 타고 흐르던 신비로운 음악 𐄁15
- 영화 〈불의 전차〉 / 알레그리 〈미제레레〉
크리스마스에 전해진 음악 선물 ·23
- 영화 〈나 홀로 집에〉 / 코렐리 〈크리스마스 협주곡〉
추위에 떨며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을 향해 ·31
- 영화 〈올드보이〉 / 비발디 〈사계〉
시간으로도 지울 수 없는 절대 상처 ·39
-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헨델 〈메시아〉
인간으로의 그 근본, 그리고 음악의 시작 ·49
- 영화 〈스윙 키즈〉 / 바흐 〈평균율 클라이버곡집〉 1권 중 ‘전주곡’
도시 속의 사랑, 쓸쓸하게 혹은 찬란하게 ·57
- 영화 〈접속〉 / 바흐 〈미뉴에트 G장조〉
바흐, 음악으로 인류를 구하다 ·65
-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악으로 드리는 기도 ·73
- 영화 〈검은 사제들〉 / 바흐 칸타타 BWV140 〈눈 뜨라 부르는 소리 있어〉
너의 평범함을 사하노라 ·79
- 영화 〈아마데우스〉 / 모차르트 〈레퀴엠〉
부드러운 산들바람을 타고 온 자유 ·87
- 영화 〈쇼생크 탈출〉 / 모차르트 〈편지의 이중창〉
02 신에게서 인간으로, 낭만주의
마음속의 진심을 전하는 굳건한 신념의 소리 ·99
- 영화 〈킹스 스피치〉 / 베토벤 〈교향곡 7번〉
감정은 사치인가? ·105
- 영화 〈이퀼리브리엄〉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피아노에 앉은 천재의 현란한 핑거링 ·113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
악마가 가르쳐 준 복수의 가락 ·121
- 영화 〈친절한 금자씨〉 /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치오〉
사과하고 화해하세요 ·129
-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 / 로시니 〈나는야 이 거리의 만능일꾼〉
천재의 곁을 지키는 자들 ·135
- 영화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 / 슈베르트 〈송어〉
첨단의 기술이 만들어 낸 결정체, 하지만 미완성 ·141
-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터〉 /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147
-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 슈베르트 〈세레나데〉
사랑하는 이들의 약속이란 ·155
- 영화 〈쎄시봉〉 / 도니제티 〈남 몰래 흘리는 눈물〉
미로도 길이야 ·163
- 영화 〈배심원들〉 / 베를리오즈 〈헝가리 행진곡〉
폭력, 그 우매한 공포에 단호히 저항하다 ·171
- 영화 〈적과의 동침〉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사랑하는 이가 그리워, 벽을 건너다 ·179
- 영화 〈트루먼 쇼〉 /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
편견 받고 있다는 편견 ·185
- 영화 〈그린 북〉 / 쇼팽 〈연습곡〉 중 ‘겨울바람’
절뚝거리는 리듬, 꺼져 내리는 세상 ·193
- 영화 〈더 페이버릿〉 / 슈만 〈피아노 5중주〉
사랑의 악몽 ·199
- 영화 〈마담 싸이코〉 / 리스트 〈사랑의 꿈〉
인생은 아름다운가? ·205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 오펜바흐 〈뱃노래〉
빈으로부터 전해 오는 인사 ·213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채플린, 장면을 지휘하다 ·221
- 영화 〈위대한 독재자〉 / 브람스 〈헝가리 무곡〉
사랑은 길들일 수 없는 한 마리 새 ·229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비제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
편견을 넘어, 날아라 빌리 ·237
- 영화 〈빌리 엘리어트〉 /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중 ‘정경’
03 새로운 음악을 향한 도전, 후기낭만과 민족주의
아, 이 불행한 세계를 위한 아름다운 밤이여! ·247
- 영화 〈히든 아이덴티티〉 / 생상스 〈죽음의 무도〉
나의 본향, 그리운 그곳 ·255
- 영화 〈암살〉 /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네가 돌아온다면 ·263
- 영화 〈하모니〉 / 그리그 〈솔베이그의 노래〉
그렇게 집시는 바이올린을 들고 태어난다 ·271
- 영화 〈쿵푸 허슬〉 / 사라사테 〈찌고이네르바이젠〉
불로써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리니 ·279
- 영화 〈리베라 메〉 / 포레 〈레퀴엠〉 중 ‘리베라 메’
처절하고도 슬픈 희극, 끝나다 ·287
- 영화 〈로마 위드 러브〉 / 레온카발로 〈의상을 입어라〉
그건 그 신발을 지금 신고 있기 때문이야 ·295
-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 엘가 〈사랑의 인사〉
누구도 잠들 수 없는 베이징의 밤 ·301
-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 푸치니 〈투란도트〉 중 ‘Nessun dorma’
Fly me to the moon ·309
- 영화 〈오션스 일레븐〉 / 드뷔시 〈달빛〉
장엄한 승리의 순간에 들려오는 웅혼한 찬가 ·315
- 영화 〈다이하드 2〉 /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다시’가 아닌 ‘새로운’ 날갯짓을 향한 응원가 ·321
- 영화 〈버드맨〉 / 말러 〈교향곡 9번〉 &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최면처럼 반복되는 선율, 마침내 폭발하다 ·331
- 영화 〈밀정〉 / 라벨 〈볼레로〉
쓰러질 때까지 춤추다 잠들다 ·339
- 영화 〈유스〉 /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든 선택의 순간이 기회였음을 ·347
- 영화 〈미스터 노바디〉 / 에릭 사티 〈짐노페디〉
꾹꾹 눌러 다져진 슬픔 ·355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 빌라 로보스 〈브라질풍의 바흐〉
회색 빛 도시 속의 작은 새 ·363
- 영화 〈맨하탄〉 / 조지 거쉰 〈랩소디 인 블루〉
음악이 데려다 놓은 미지의 그곳 ·369
- 영화 〈허드서커 대리인〉 / 하차투리안 〈스파르타쿠스〉 중 ‘아다지오’
죽음마저 초월하는 징글맞은 인연 ·375
-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 쇼스타코비치 ‘왈츠 2’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선율 ·385
- 영화 〈디어 헌터〉 / 스탠리 마이어스 〈카바티나〉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것들로 무엇이 있을까? 그동안 건네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담아 보내던, 그 마음만큼이나 예뻤던 카드. 이불 속에 숨어 기다리다 스르륵 잠이 들어 깨어보면 가진 양말 중 가장 큰 것을 꺼내었음에도 그 안을 가득 채웠던, 희한하게도 며칠전 아빠가 ‘뭐 받고 싶어?’ 하며 물었을 때 분명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귓속말로 속삭였던 크리스마스 선물. 이러한 추억들과 함께 우리의 세포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캐럴이란 ‘크리스마스에 불려지는 종교성을 띤 민요적 선율’을 총칭하는 것으로 소박하면서도 따라 부르기 쉬우며, 대체로 밝은 분위기인 것이 특징이다.
(01 일그러진 진주 바로크와 고전-크리스마스에 전해진 음악 선물 中 25쪽)
보랏빛과 핏빛이 감도는 영상으로 우리의 시각을 무겁게 누르는 영화 <올드 보이>. 하지만 여기서 단연 고개를 돌리고픈 하나를 뽑으라면 오대수가 자신을 감금했던 자의 이를 하나씩 뽑는 장면일 것이다. 이때 “1년에 하나씩”이라던 오대수의 대사는 온몸의 세포를 얼어붙게 하는데, 이러한 잔인한 장면에서 사용된 음악이 행복의 기운 가득한 바로크 음악이라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기발하다.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사계>(Quattro Stagioni) 중 ‘겨울’ 1악장, 이 곡은 이후 복수를 위해 찾아 온 감금사업자가 자신이 당한 그대로 오대수의 이를 뽑으려는 장면에서도 사용되었으니 ‘발치 테마’라고나 할까.
(01 일그러진 진주 바로크와 고전-추위에 떨며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을 향해 中 33쪽)
영화에 등장하는 클래식을 소개하며 <아마데우스>(Amadeus)를 재료로 삼는다면 명백한 반칙이다. 모차르트의 일생을 다룬 영화이니 그 시작과 끝을 관통하며 아름다운 음악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해갈 수도 없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클래식과 가까워지고 싶은 이라면 누구든 처음으로 놓아야 할 작품이기 때문이다. 1985년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 총 8개 상을 수상하며 전기 영화에 있어 걸작의 반열에 오른 <아마데우스>, 영화는 평범한 음악가의 천재 음악가를 향한 선망과 질투, 그리고 단지 이에 그치지 않아 신이 선택한 그를 서서히 파멸시켜 나가는 과정을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옛 영광은 사라지고 노쇠한 몸덩이만 남은 ‘살리에리’(Antonio Salieri), 30년을 넘도록 죄책감에 시달려오던 그는 ‘모차르트’에게 용서를 빌며 자살을 시도하고, 이때 ‘모차르트’(W. A. Mozart)의 <교향곡 25번>(Symphony No.25 in g minor)의 1악장이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01 일그러진 진주 바로크와 고전-너의 평범함을 사하노라 中 77쪽)
슈베르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인 ‘슈베르티아데’ (Schubertiade), 그의 창작을 도우며 후원하기 위한 그곳에는 가곡 <송어>를 포함, 수많은 곡을 초연해 준 포글이 있었으며 당시 그는 빈 국립오페라단의 유명한 바리톤임에도 무명에 불과했던 슈베르트의 가곡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천재 화가 ‘슈빈트’(Schwind,), 그 또한 그 모임의 일원이었으며 “매일 한 수저의 음악이 필요하다”라고 했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던 그는 슈베르트의 초상화와 연주 장면을 작품으로 남기며 그의 음악에 지지를 표한다. 그렇게 그곳엔 시인들이 있어 슈베르트로 하여금 악상을 떠오르게 만든 멋진 시를 제공하였을 것이며 가난하여 오선지조차 살 수 없었던 그에게 오선지를 사다 주거나 그려준 많은 친구들 또한 함께였던 것이다. 홈즈에게 왓슨이 있듯 슈베르트에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의 재능 또한 대단하였으나 더 나은 재능을 가진 이가 그것을 마음껏 펼치는데 있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준 동료이자 친구들. 하여 이제 내용도 없이 자신의 이름만을 알리기에 바쁜 이들, 자신보다 나은 것을 보면 칭찬할 줄 모르고 음해하며 시기하기에 급급한 이들에게 슈베르트의 친구이자 천재화가 ‘슈빈트’가 했던 말을 들려주려 한다.
“나의 그림 중 가장 큰 가치를 지닌 것은 슈베르트를 위해 그린 오선지였다.”
(02 신에게서 인간으로, 낭만주의-천재의 곁을 지키는 자들 中 138~139쪽)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SF 장르에 있어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다. CG가 없던 시절 구현한 우주의 풍광이 경이롭고, 100가지 해석이 가능한 철학적 내용과 열린 결말이 그러하며,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불멸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음악을 빼 놓을 수 없다.
마치 블랙홀에 빠진 듯 어둠으로 가득 채운 화면과 함께 불협화음으로 어지러운 소리를 제법 오래 견뎌야지 영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빛이 있기 이전의, 아무것도 없는, 없는 것조차 없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면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경이로운 자연과 그곳에서 다른 생명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인류의 조상들. 오직 생존과 번식만이 전부인 시절임에도 부류가 나뉘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인 물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도 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 앞에 나타난 신비로운 물체, 이 검은 육각기둥(Monolith, 모노리스)은 분명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제 그것과 접촉한 유인원들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채집으로 생활하던 그들은 사냥을 통한 육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물 웅덩이를 차지한 이들을 찾아가 응징하고 폭력으로 그곳을 다시 빼앗는다.
(02 신에게서 인간으로, 낭만주의-빈으로부터 전해 오는 인사 中 213~214쪽)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상으로 쓰여진 시(詩)다. 언어를 펼치지 않고 함축함으로 그 의미를 오히려 더욱 확대시키는 마법 같은 문학이 시(詩)이 듯 영화는 대사를 자제하고 클로즈업과 같은 화면적 기교 또한 아끼지만 그랬기에 대사 한 줄, 장면 하나가 더욱 큰 의미를 지닌 채 다가오는 것이다. 흐름에 중요치 않은 설정들은 모두 지워냈기에 담백하고 깊으며, 소소한 듯 현실적이기에 주는 슬픔이 날리지 않고 꾹꾹 다져져 큰 여운을 남긴다.
(03 새로운 음악을 향한 도전, 후기낭만과 민족주의-꾹꾹 눌러 다져진 슬픔 中 355~356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뮤직 파라디소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는 제1부에서 바로크 음악과 고전주의 음악을, 제2부에서 낭만주의 음악을, 제3부에서 후기 낭만주의 음악과 현대음악이 등장하는 영화를 소개한다.
클래식 음악은 영화에서 어떤 효과를 보여주었을까? 심광도는 영화 음악이 영화의 장면에서 어떤 효과를 발산하며 관객에게 다가오는지 예리한 시각으로 설명한다. 영화에 등장한 클래식 음악을 만든 작곡가와 음악의 뒷이야기는 무엇일까?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그리그, 도니제티, 드보르작, 드뷔시, 라벨, 라흐마니노프, 레온카발로, 로시니, 리스트, 말러, 모차르트, 바흐, 베를리오즈, 베토벤, 브람스, 비발디, 비제, 빌라 로보스, 사라사테, 생상스, 쇼스타코비치, 쇼팽, 슈만, 슈베르트, 스탠리 마이어스, 스트라빈스키, 시벨리우스, 알레그리, 에릭 사티, 엘가, 오펜바흐.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조지 거쉰, 차이코프스키, 코렐리, 파가니니, 포레, 푸치니, 하차투리안, 헨델의 걸작 음악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작곡가만이 아니라 다소 낯설은 작곡가의 음악도 소개하고 있다. 음악의 종류도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소나타, 무곡, 오페라 등 다양하다.
저자는 소개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한 지휘자,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오페라 가수 등이 남긴 당대 최고의 명음반도 친절하게 소개한다. 카라얀, 아바도, 정경화, 파파로티 등이 연주한 명음반에 대한 소개는 음악 독자들에게 충실한 음반 안내서 역할을 한다. 심광도는 오랫동안 LP음악감상실을 실제로 운영하면서 쌓은 음악 내공을 이 부분에서 유감없이 보여준다. 저자가 추천한 명연주의 음반을 듣고 있다 보면 영화의 감동을 다시 한번 재현하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다. 영화 평론과 음악 평론을 겸비한 이 책은 영화 관객과 음악 애호가들 모두에게 추천하는 도서이다. 특히 클래식음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저자 심광도는 음악이 지닌 뒷 야야기를 들려주며 해당 영화에 접근하는 새로운 길을 깊은 울림으로 전달한다
주제어: 영화, 클래식음악, 작곡가, 바로크, 낭만주의, 고전주의
분류:
예술/대중문화 > 음악 > 대중음악 > 영화음악
예술/대중문화 > 예술일반 > 예술사 > 음악사
예술/대중문화 > 음악 > 성악/가곡 >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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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남 동네여행
펴낸날 2020년 12월 11일
가격 16,000원
무선제본 | 268쪽 | 152*225mm
ISBN 979-11-86351-33-8(03980)
펴낸곳 경남도민일보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지은이 이서후 · 김민지 · 김해수 · 최석환
책 소개
경남 곳곳에 숨은 색다른 동네 이야기
<경남도민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경남지역 18개 시군의 동네와 그 가치를 발견하는 책을 썼다. 거창하지 않지만 소소한 즐거움, 일상의 소중함, 우리 동네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우리 지역 동네 문화의 스토리텔링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 동네를 이야기하길 바라는 바람과 함께다.
책은 한 지역의 동네를 좀 더 깊게 경험해본다는 콘셉트다. 온라인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오프라인의 감성과 경험, 색다른 체험과 공감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특별하다.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독립서점, 카페, 식당 등 작지만 개성 있는 공간들이 은근하게 인기다. 개성과 취향을 공유하고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 소비 경향이 확대되는 분위기와 결을 같이한다. 유명 관광지와는 다른 소소한 동네 여행의 즐거움을 함께 느껴볼 수 있게 구성했다.
저자 소개
<경남도민일보> 문화부
이서후 · 김민지 · 김해수 · 최석환 기자
목차
머리말
01.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조용한 주택가 문화공간서 잔잔한 여유를
사파동에서 만난 사람들
02. 통영시 봉평동
요즘 대세 아랫마을과 예스러운 윗마을 공존
봉평동에서 만난 사람들
03. 산청군 원지
걷기만 해도 기분 좋은 강변에 젊은 감각은 덤
원지에서 만난 사람들
04. 진주시 망경동
세월 머금은 골목길에 사람 향기 물씬
망경동에서 만난 사람들
05. 김해시 봉황동
‘신의 거리’라 불리던 곳 ‘힙’한 감성 입고 활기
봉황동에서 만난 사람들
06. 창녕군 우포늪
광활한 습지 위 감성 충전할 문화 공간이 콕콕
우포늪에서 만난 사람들
07. 밀양시 내일동·내이동
가야시대 흔적부터 항일 운동 역사가 발 아래에
내일·내이동에서 만난 사람들
08. 창원시 진해구 군항마을
한국 근현대 100년 역사 발 닿는 거리마다 숨쉬네
진해에서 만난 사람들
09.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
다시 태어난 도심 골목, 세월 흔적 정겨워라
창동에서 만난 사람들
10. 사천시 삼천포 해안
그리움 품은 항구변 아기자기한 매력이 넘실
삼천포에서 만난 사람들
11. 거제시 거제면
난개발 피한 마을, 시간의 발자국 오롯이
거제면에서 만난 사람들
12. 함양군 지곡면
고택 멋에 반하고 정겨운 일상에 취하고
개평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13. 양산시 물금읍
시골·도심 함께 하는 이 마을에 즐거움도 아기자기
물금읍에서 만난 사람들
14. 함안군 함안면
선비들 거닐던 무진정 연못가 고요한 풍경 여전
함안면에서 만난 사람들
15.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멸치만 떠올리면 섭섭… 젊은 취향 입은 옛 거리
지족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16. 합천군 용주면
고령 박씨 집성촌엔 화백도 반한 풍경이
용주면에서 만난 사람들
17. 고성군 동해면
고대역사 잠든 뭍에 없는 듯 조용한 고인돌 하나
동해면에서 만난 사람들
18. 의령군 정곡면 장내마을
마음 걸림 없이 걷는 길 그곳이 바로 명당
정곡면에서 만난 사람들
19. 진주시 문산읍
기차소리 저문 곳 유유히 걷다
문산읍에서 만난 사람들
20.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
도심 속 카페골... 풍미 유혹
도계동에서 만난 사람들
21. 통영시 정량동
걸어가는 나폴리 새단장
정량동에서 만난 사람들
22. 김해시 관동동
율하천 문화공간… 가야유적 공원서 ‘꿀휴식’
관동동에서 만난 사람들
23. 거창군 거창읍
거창 발전 자양분 된 헌신
거창읍에서 만난 사람들
24. 하동군 악양면
가을 끝자락에 앉아 쉬어가는 하루
악양면에서 만난 사람들
25. 남해군 남해읍
마을 지키는 고목 아래 젊은 감성 활기
남해읍에서 만난 사람들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통영 미륵산 등산로 가는 길에 있는 봉평동이 최근 통영 여행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전혁림미술관과 봄날의 책방을 중심으로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주변으로 아기자기하고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들이 속속 생기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등산객이 오가던 봉수로가 어느새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예쁜 거리로 변신했다.
봉평동의 옛 지명은 봉수동烽燧洞, 토박이말로는 봉숫골인데, 봉수가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여기서 봉수는 미륵산에 있는 봉수대를 말한다. 주민들에게는 이 봉숫골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통영 봉숫골은 4월이면 벚나무 가로수가 꽃망울을 터뜨려 벚꽃터널 이 장관을 이루는 명소다. 용화사거리에서 시작해 봉평주공아파트 지나 용화사 주차장까지 600m 정도 되는 벚나무 길을 따라 걸어봤다.
(2. 통영시 봉평동 中 26쪽)
최근 망경동에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바로 2020년 4월 문을 연 한옥 카페 은안재 덕분이다.
은안재는 은혜롭고 편안한 집이라는 뜻으로 남은숙(31·사진) 대표가 1954년 지어진 집을 카페로 고쳤다. 한옥과 일본식 건축 양식이 섞인 이곳은 손님이 발 내딛는 순간부터 사진을 찍게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옛 감성이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가 한몫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남 대표는 남자친구가 있는 진주에 레트로복고 감성이 묻어나는 카페를 차리고 싶었다. 여러 동네를 수소문하다 망경동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촉석루가 보이고 오래된 집들이 많아 할머니 집에 온 것 처럼 편안했다”며 “7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이 집을 새롭게 리모델링하기보다는 그대로 보존하며 역사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4. 진주시 망경동 中 52쪽)
우포생태체험장에서 다시 차로 5분을 달려 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있는 우포시조문학관을 찾았다. 우포늪 4개 습지 중에서 목포늪 한쪽에 있는 2층 건물이다. 원래는 우포늪 보전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온 환경단체 ‘푸른우포사람들’ 사무실 건물이다. 물론 지금도 1층은 사무실로 쓰고 있고, 2층을 문학관으로 쓰고 있다.
2016년 처음 개관할 때는 이우걸문학관이었다. 창녕에서 태어나 40여 년 현대시조의 길을 개척한 이우걸 시조시인 이름을 붙였다. 우포시조문학관으로 바꾼 지금도 관장은 이우걸 시인이 맡고 있다. 문학관에는 이우걸 시인이 낸 책들과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또 시인이 쓰는 조그만 작업실도 있다. 작은 문학관이지만, 매년 여름의 끝자락이면 입구 나무 그늘서 운치 있게 우포시조문학제가 열린다. 우포늪에서 가까운 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산토끼노래동산을 둘러봐도 좋다. 국민 동요 ‘산토끼’ 발상지가 창녕인데 이를 주제로 만든 공원이다. 이곳은 아이들하고 가면 즐거운 게 많다.
(6. 창녕군 우포늪 中 67쪽)
오래되고 낡은 골목은 그 자체로 어떤 문화적인 힘이 있다. 바래고 갈라진 틈새마다 삶의 손때와 땀내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지난한 삶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은 골목여행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부분 골목은 도시재생으로 예쁘게 꾸며졌다. 이런 골목 사이를 돌아 다니며 하는 추억 여행도 좋지만, 문득 들어선 낡은 소골목에서 오랜 삶의 손때와 땀내를 만나는 일도 나름 즐겁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136번지 앞. 이곳은 한때 중고생들이 몰래 담뱃불을 비벼끄던, 창동의 어두운 뒷골목이었다. 골목 입구를 가로지른 2층 집은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남저 이우식(1891~1966) 선생이 살던 곳이다. 몇 년 전 골목에 뉴질랜드 카페 리빙앤기빙이 들어서며 새삼 밝고 운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9.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 中 94쪽)
카페 정미소는 옛 정미소 본연의 느낌을 살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은 빨간 쌀 승강기와 석발기, 군데군데 놓여있는 인테리어 소품에서 카페 주인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 대표에게 삼천포의 매력을 물었다. 그는 “자연풍광이 너무 이쁘다”며 “산, 바다, 들이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고 개인적으로 바닷가 쪽을 좋아하는데 낙조가 아름다운 실안해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향은 그가 그림을 그리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 대표는 “아무래도 자연을 보고 자랐으니까 자연스럽게 동양화를 전공하지 않았나 생각이든다”며 “그동안 섬이나 바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왔고 이걸 어떻게 작업으로 풀지는 작가로서 과제다”고 말했다.
(10. 사천시 삼천포 해안 中 107쪽)
하덕마을은 풍경을 화폭에 담은 산수화처럼 빼어나다. 악양 십이경十二景 중 하나다. 예로부터 마을 앞 옥산玉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맑은 안개가 저녁에 지는 햇빛에 청홍색靑紅色이 영롱했다.
현재는 골목마다 예술작품으로 물들었다. 악양의 화가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정서운 어르신을 기리고자 야생차를 주제로 만든 마을 골목 갤러리인 ‘하덕마을 섬등갤러리’다. 섬등은 육지나 섬처럼 여겨지는 곳을 지칭하는 하동의 지역말이다. 골목 갤러리에는 경계를 아울러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이 만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 밖에도 최참판댁 입구에서부터 하덕마을까지 이어지는 길 곳곳에 ‘2018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설치된 다양한 미술작품도 있다. 이 중 빈집에 설치된 이정형 작가의 ‘비치다’라는 작품이 눈에 띈다. 빈집이 되기 전 이곳은 약방, 구멍가게, 만화방, 나락가마니를 쌓아두었던 창고
였다. 다른 지역 벽화마을과 달리 한적하고 작품이 뻔하지 않아 좋다.
(24. 하동군 악양면 中 249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변화하는 동네 풍경과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마스크 착용은 필수, 온라인과 비대면 활동이 대세가 됐다. 그리고 이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가 낳은 의미 있는 변화 중 하나는 ‘동네의 재발견’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원거리 이동과 대형 실내 공간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동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동네 가게를 방문하고 지역 화폐로 결재하는 사람이 늘고 우리 지역에서 나는 로컬 푸드를 찾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고 거래와 동네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는 우리가 사는 동네와 동네 문화, 동네 사람들에 주목했다. 이제 동네가 브랜드고 브랜드가 된 동네가 지역 발전을 이끈다.
동네에는 지형, 역사, 사람에 따라 동네 특유의 분위기가 발산된다. 그게 곧 동네 문화다.
동네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터줏대감처럼 동네를 지켜온 사람들, 도시에서 시골 동네로 이사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 책은 변화하는 동네 풍경과 더불어 동네를 지키는 사람들,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제어: 경남, 동네, 경남여행, 경남동네여행, 비대면여행, 경남카페, 동네가게
분류: 여행>여행에세이
여행>국내여행>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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