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2
-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 2023.05.16
- 홍창신 칼럼집 인생역경대학을 소개합니다 2016.03.09
펴낸 날
펴낸 날 : 2023년 1월 1일
가격 : 20,000원
반양장본 | 359쪽 | 152×225mm
ISBN 979-11-86351-54-3 0312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김주완
kjw1732@gmail.com
책 소개
“이만큼 베푼 사람은 많지만
이만큼 드러내지 않은 이는 없다”
20대 중반부터 50년 넘게 이어온
기대 없이 베풀고 대가 바라지 않는 삶
선한 영향력 절로 넓혀가는 김장하 바이러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삶을 가능하게 했을까
취재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김장하 선생의 허락을 받았느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선생은 허락한 적이 없다. 선생은 그동안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여러 공적인 단체에 몸을 담고 공적인 활동을 해왔다. 따라서 선생은 공인(公人)에 준(準)하는 인물
을 취재하겠다는데, 그것까지 못하게 막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터뷰도 한 적이 없다. 찾아오는 사람을 냉정하게 내치지 못하는 선생의 약점(?)을 공략했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분이 자연스럽게 선생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그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2021년 11월 엠비씨경남 김현지 피디로부터 함께 취재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덕분에 내가 아예 접근하지 못했거나 놓쳤을 것들을 얻어 건진 것도 많았다. 특히 김현지 피디와 강호진 촬영감독, 차선영 작가의 기획력과 섭외력, 취재현장의 순발력에 덕본 게 많다.
‘100명의 김장하, 1000명의 김장하’를 취재 과정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기쁨이었다. 하남칠 교장은 ‘장학금 돌려주기’ 차원에서 모교 학생들에게 오랜 세월 매년 장학금을 주고 있었고, 본문에 등장하진 않지만 명신고 출신 건축가 박범주(1970~) 씨도 문화예술계에 든든한 후원자로 김장하를 닮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등장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이미 ‘김장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많았다. 이런 선순환이 돌고 돌아 김장하 선생이 꿈꾸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취재 과정에서 김현지 피디는 만나는 사람마다 “김장하 선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생불’ ‘보살’ ‘의인’ ‘진정한 어른’ ‘이 시대의 예수’ ‘든든한 뒷배’ ‘시민운동의 비빌 언덕’ ‘호의(好義)와 경의(敬義)의 표본’ ‘남명 조식 선생 같은 분’ ‘모든 것을 품어주는 호수’ 등 다양한 표현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가장 공감했던 표현은 ‘이 시대의 강상호 선생’이었다. 극단현장 고능석 대표가 한 말이었다. 대중적으로 강상호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방송용으로는 별로였겠지만, 호의호식할 수 있는 부자임에도 자신의 재산을 털어 세상의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 편에서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앞장섰다는 점에서 가장 닮은 두 사람이었다.
----작가의 ‘닫는 말’ 중에서
작가 소개
김주완
1964년생.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전무이사로 있던 중 2022년에 정년을 3년 앞당겨 퇴직했다. 경영진으로서 깜냥도 안 될뿐더러 좀 더 긴 호흡으로 깊고 넓은 취재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자로 일할 때 역사와 사람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인생 2막에서는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그동안 롤모델로 삼아왔던 멋진 어른을 첫 탐구대상으로 정했다.
썼던 책으로는 『풍운아 채현국』, 『별난 사람 별난 인생』, 『지역출판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80년대 경남 독재와 맞선 사람들』, 『토호세력의 뿌리』 등이 있다.
차례
여는 말 7
제1부 생애
취재의 시작 17
이어지는 모임 22
삶의 지표를 정해준 할아버지 32
한약업사 시험 합격 42
아버지와 어머니 47
조용한 소년 김장하 51
사천 석거리의 젊은 한약사 60
도시로 나온 남성당한약방 73
문전성시 79
그 남편에 그 아내 90
제2부 전달식 없는 장학금
장학사업의 시작 105
투사가 된 장학생들 118
이어지는 우연과 인연 125
헌법재판관 문형배의 경우 129
무한한 믿음과 지지 148
제3부 학교 설립과 헌납
전 재산을 털어 설립한 고등학교 159
교육부 감사와 세무조사를 받다 162
이 학교의 두 가지 불법행위 166
다 있는데 이사장실만 없는 학교 177
전교조 해직교사가 없었던 이유 183
100억대 학교를 무상헌납한 까닭 192
제4부 공동체를 치유하다
알고 보니 나도 그 돈을 받았네 209
행동하는 시인 박노정과 진주신문 가을문예 215
친일청산과 평등세상을 위하여 232
지역문화공간 토종서점을 살려내고 241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기 위해 244
남강을 지키고 지리산을 살리는 일 250
남명학관 건립 비사(祕史) 256
학대받는 여성을 구조하라 259
여성평등기금과 농민열사 장례비 271
진주정신과 진주문화를 찾아서 274
수십억 남은 재산 기부하고 60년만에 은퇴 279
제5부 김장하의 기질
권력과 정치를 멀리하는 이유 287
감시받고도 빨갱이 콤플렉스가 없는 노인 291
검사의 폭탄주를 거절한 지역유지 307
처음으로 화를 낸 이유 310
제6부 줬으면 그만이지
진정한 보시의 삶이란 321
비방과 험담, 그리고 비판 333
제7부 김장하의 철학
운명을 바꾸며 살자 341
진주정신에 관한 소고 345
생활신조와 인생관 349
닫는 말 353
김장하 선생 약력 357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남성(南星)이라는 그의 호(號)와 남성당한약방이라는 상호의 뜻을 물었다.
“남성이 수를 맡은 별이라고. 목숨 수(壽)자. 남성이 비치는 곳에는 오래 산다는 그런 속설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건데, 남성당을 상호로 쓰고 남성을 아호로도 쓰라고 했어요. 남극노인성이란 별자리를 딴 거지.”
-손자가 오래 살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어주신 겁니까?
“약방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다들 오래 살라는 뜻이지. 또 그 별은 보일 듯 말듯하면서도 그러나 역할은 한다, 앞에 나서지 말고 항상 제 역할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이지요.”
-할아버지가 그런 깊은 뜻을 가지고 지어주셨구나.
“별빛처럼 빛이 아니지만 뭔가 공헌을 하고 있거든. 하지만 공헌했다는 표를 내지 말고 그렇게 살아라….”
(18~20쪽, 취재의 시작)
김장하는 8세에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으며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다. 20세에 사천 석거리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연 후 사실상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27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석거리에 모셔 부양했고, 29세에 자신을 길러준 계모의 장례를 치렀다. 30세에는 홀로 된 아버지를 위해 새어머니를 모셔왔고, 42세에 아버지를 보내고 남은 새어머니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을 팔아 노후를 보장해드렸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아래 동생들을 키우고 시집·장가 보내는 것도 장하의 몫이었다.
(50쪽, 아버지와 어머니)
“장하는 딸과 아들 결혼식에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어요. 그래도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수많은 사람이 하객으로 참석했는데, 축의금을 받는 창구 자체가 없었던 겁니다. 참석한 하객들은 최상의 음식을 대접받았지만, 일부 불쾌하게 여기는 이도 있었죠. 자신은 모든 지인의 경조사에 다 참석해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전달하고도 받지 않으니 ‘돈 있다고 유세하는 거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요.”
(56쪽, 조용한 소년 김장하)
김장하는 1992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을 받게 되었는데 전수식 참석을 거부하여 경남교육청이 난리가 났다. 표면적인 거부 이유는 ‘약방을 비울 수 없어서’였다. 당시 관선 교육감이 ‘내 목이 날아간다’며 사정사정하는 통에 결국 참석은 했으나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화다.
2003년 1월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부산에서 개최한 오찬간담회와 토론회에 1번으로 초청을 받았으나 불참했다. 역시 같은 이유였다. 나도 사람들과 어울려 선생과 몇 번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 시간이 되면 “손님이 기다린다”며 어김없이 일어섰다.
(80~81쪽, 문전성시)
“1987년 2월에 제1회 명신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렸을 때였다. 키가 그리 크지 않으신 아주머니께서 운집한 학부형들의 뒤쪽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까치발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한 교사의 눈에 띄었다. 이사장 부인이셨다.
살며시 다가가 단 위의 자리로 옮기실 것을 권하자 극구 사양하시면서 자기가 여기 온 것을 어디에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셨다. 이윽고 졸업식이 마치자 이사장 부인께서는 조용히 버스를 타러 학교 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남편의 필생 사업인 학교의 첫 졸업식에 와 보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행여 누가 보고 폐를 끼칠까 보아 조심하는 모습에서 그들 가족의 마음 씀이 참으로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92쪽, 그 남편에 그 아내)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저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136쪽, 헌법재판관 문형배의 경우)
개교 초기 잠시 있었기는 했다. 커다란 책상과 명패, 소파 등이 있는 교실 1개 크기의 이사장실이었다. 처음엔 으례히 그런가 보다 하고 거기서 집무를 봤는데, 한 달 정도 지나 보니 학교 시설이 부족한 데다 이사장이 자리를 차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장하는 교장에게 이사장실을 비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양호실로 쓰도록 했다.
특별한 행사나 회의가 있는 날 말고는 학교에 자주 가지도 않았다. 이사회도 교장실에서 열었고, 결재할 일이 있으면 서무실에서 했다. 학교에 갈 때도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갔다. 이사장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학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179쪽, 다 있는데 이사장실만 없는 학교)
“이사장 퇴임식에는 집사람도 같이 참석했거든.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놔버리니까 섭섭하제?’ 하고 물어요. 왜 안 그렇겠어요? 서운하지. 그런데 내가 그때 ‘섭섭할 것 하나도 없다. 우리 둘이 만날 때 빈손이었잖아. 지금 이거 내버려도 우리 먹고 살 만큼 남아 있고, 빚진 게 하나도 없는데 뭘 서운할 게 있나.’ 그랬지.”
-속으로는 서운했지만 사모님한테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죠?
“그렇지.”
(205쪽, 100억대 학교를 무상헌납한 까닭)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 묘역’이 있다. ‘백촌강상호지묘(栢村姜相鎬之墓)’라는 묘비 하나만 있었다. 누가 언제 세웠는지 알 수 없는 묘비였는데, 뒷면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모진 풍진의 세월이 계속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선생님이십니다. 작은 시민이.”
‘작은 시민’이 과연 누굴까 궁금했다. 수소문 끝에 김경현(1966~)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이 1999년에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왠지 이 ‘작은 시민’이 김장하 선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경현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걸 도대체 누구한테 듣고 나에게 확인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누구한테 들었는지 그 이야기부터 좀 해보세요.”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냥 내 느낌이 아무래도….”
끝내 그의 실토(?)를 받아냈다. 내 감이 맞았다. 김장하 선생이었던 것이다.
(236~238쪽, 친일청산과 평등세상을 위하여)
“상담소 이사회에 기금이 1억이 있고, 이 기금을 활용하여 여성들 피난시설을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렇게 의논을 드렸죠.”
“아 좋다고, 시설을 하자, 아주 전폭적으로. 그동안 그런 생각하고 있었냐고, 자기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했냐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호응을 해주셨어요. 다른 이사들이 불평 안 하도록 자기가 방패를 쳐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집을 짓기 힘들 거다. 그
래서 김장하 이사장님 아니었으면 이 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267쪽, 학대받는 여성을 구조하라)
-이 사진도 그렇고, 저 사진에서도 그렇고 김장하 선생은 항상 끄트머리에 있네요?
“잘 보셨네요. 가운데 자리에 이사장님 자리라고 딱 놔두죠? 사양하세요. 여기서도 제일 끝에 앉아계시죠? ‘아유 나 그런데 안 간다’면서 스스로 구석진 자리에 항상 가세요. 사람들이 막 이렇게 모시는 걸 또 굉장히 싫어하세요.”
-그런 것 같네요. 본인이 돋보이는 걸 싫어하는.
“바로 이런 거에요. 참 지적을 잘 하셨는데, 우리한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시려면 가운데 앉으셔야 돼요 하고 자리를 마련해도 안 앉으셔.”
(269쪽, 학대받는 여성을 구조하라)
“버렸으면 미련없이 버려야지. 줬으면 그만이지. 감사패 그거 뭐하려고….”
9일 오후 5시 경상국립대 행사장. 원래 선생은 원치 않았던 자리였다. 하지만 받는 쪽에서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참석한 자리였다. 그래서일까? 행사 내내 선생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지만, 표정은 계속 불편해보였다. 그럼에도 예정된 인사말은 A4 용지 1.2매가량을 꼼꼼히 써오셨다. 그 마지막 대목은 이랬다.
“재단 설립 20여 년이 지난 오늘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은 없고 뒤떨어진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에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고 남은 재산을 경상국립대학교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게 해서 죄송합니다.”
(281~282쪽, 수십억 남은 재산 기부하고 60년만에 은퇴)
“정치인들은 다 옆에 누구를 배석해가지고 몇 시에 언제 어디서 다 이런 식으로 계획을 짜가지고 나오라고 안 하나? 그분은 절대로 거기 나가는 분이 아니고 정치인들 하고는 안 만나는 분이다. 그래서 만나고 싶다면 그냥 한약방으로 찾아가면 된다고 그랬지.”
당시 대통령 후보 보좌역이었던 김성진(1963~ ) 씨는 그런 사실을 보고했고, 노무현 후보는 건너편에 차를 세운 뒤 횡단보도를 건너 남성당한약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약 50분 간 만나고 나온 노무현 후보는 김성진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 좋은 분을 만났네. 정말 좋은 분이다. 정치인을 만나 훈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다.”
훗날 김장하 선생한테 “왜 훈수를 좀 하지 않으셨어요? 희망이나 바람을 이야기해줄 수도 있었잖아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정치 10단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288~289쪽, 권력과 정치를 멀리하는 이유)
앞서 말했듯이 북한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해가 안 된 것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했을 때다. 적어도 김일성 종합대학은 북한에서 최고의 대학이요 세계 100대 대학에 든다니 교수진은 어떻고 시설은 어떠며, 학생들의 열심히 학문 탐구하는 모습이라도 볼 거라 생각했는데 본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안내한 곳은 김정일 위원장의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한 이야기로부터 재학생활 연구활동 및 졸업할 때까지의 전시실을 14실이나 돌고나니 김일성 종합대학의 방문은 끝이다. 서운하기가 말할 수 없다.
이번 방문에서 이북에 계시는 형님의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돌아가자니 마음 한 구석에 또 피가 맺히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북에는 동토의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형제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평양을 떠난다.
(304쪽, 감시받고도 빨갱이 콤플렉스가 없는 노인)
지청장은 굳은 얼굴로 그 잔을 자신이 마셔버렸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검사들이 수군거렸다.
“그래서 술판이 깨져버렸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자리를 피했어야 하는데….”
선생이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옆자리에서는 술 권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선생과 마주 앉은 나도 술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이처럼 김장하는 한 번 결심한 일은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자기 절제력이 대단했다. 아무리 반가운 사람이 찾아와 점심을 먹더라도 약방 근무시간이 되면 딱 끊고 일어선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의 화내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김장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최관경 교수도 그랬고, 이용백 명성한약방 원장도 같은 말을 했다.
“김장하 선생이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화난 것이다.”
(310쪽, 검사의 폭탄주를 거절한 지역유지)
“요새 만 원 어치 봉사를 하면서 고아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백만 원 어치 피알(PR)을 한다든지, 그 봉사의 가치를 되받으려 한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고 봉사를 한다든지, 이런 봉사의 개념에서는 정말 맞지 않는 이 스님의 이야기를 우리는 떠올려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실제 김장하의 삶과 나눔이 이런 걸 철저히 배격하며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대가 없는 나눔, 간섭 없는 지원, 바라는 것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는 보시 이런 걸 실천해온 사람이 김장하였다.
(330쪽, 진정한 보시의 삶이란)
한 군데에 다 주지 말고 1억 원씩 나눠 서른네 곳에 나눠주면 어떨까? 모르겠다. 그 서른네 곳을 선정하는 과정은 더 큰 논란과 비판을 불러오지 않았을까 싶다.
김장하 선생한테 자신에 대한 비방과 헛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도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결과를 보면 알잖아.”
-세월이 증명해주는 거라고요?
“예. 그걸 다 증명하려고, 변명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화를 낼 필요도 없었고, 그냥 참고 견디는 거죠.”
(337쪽, 비방과 험담, 그리고 비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한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나눔과 베풂 이야기
가난 속에 일군 부 아낌없이 내놓은 김장하
언론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김장하
베풀고도 내세우지 않는 자세는 어디에서 연유할까?
그이를 본받으려는 100명, 1000명의 김장하 장학생
『줬으면 그만이지』는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를 취재한 기록이다. 책을 보면 김장하는 보통 사람들은 따라 하기 어려운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한약사로 성공해 대단한 부를 일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선생은 나눔과 베풂을 일상 속에서 실천했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남몰래 장학금을 주었다. 지금까지 선생의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1000명을 웃돈다고 한다.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세운 사학 명신고등학교는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국가에 헌납했고 필생의 사업이었던 한약방을 접을 때도 30억 원이 넘는 자산을 국립경상대에 기부했다. 선생의 지원은 교육뿐 아니라 사회·문화·역사·예술·여성·노동·인권 등 정치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다.
이런 얘기들이 한동안은 소문으로만 떠돌았다. 장학금을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없었다. 형평운동·남성문화재단·진주신문 등 쉽게 노출되는 일조차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커녕 자기 이름이 거명되는 것까지 한사코 꺼렸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줄줄이 널렸는데 정작 베푼 사람은 보이지 않는 이상한 현상은 50년 남짓 이어졌다.
『줬으면 그만이지』는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이기도 하지만 ‘허락받지 못한 취재기’이기도 하다. 김장하 선생은 본인의 정의로운 베풂을 여태 꽁꽁 숨겨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열 배 백 배 뻥튀기해 알리고도 남았을 텐데 선생은 그랬다. 이런 선생이 본인에 대한 취재를 허락했을 리가 만무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전직 기자인 김주완 작가는 허락받지 않은 취재를 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30년 동안 기자로 살았지만 이토록 많은 이들로부터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취재 협조를 받은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선생이 베푼 범위가 넓다 보니 겹치는 인연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정의를 위해 선의로 베푼 것이다 보니 아름답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게 펼쳐지는 취재기는 30년 경력 취재 기자의 남다른 필력이 돋보인다. 본인의 허락이 없었기에 선생의 생애 전체가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이지는 않으나 그래도 이런 정도면 어지간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선생의 기부와 나눔과 베풂도 모든 것을 샅샅이 찾아내지는 않았지만 모자라지 않을 만큼은 담아내었다. 게다가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숨은 이야기도 제법 실려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흥미로워하는 것은 도대체 선생이 왜 그랬을까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열심히 번 돈을 선생은 왜 그렇게 아낌없이 기부하고 나누고 베풀었을까? 그렇게 세상과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내세우고 싶었을 텐데 어떻게 해서 선생은 시종일관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을까?
이 책은 선생의 행적을 제대로 밝혀놓은 것만으로도 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나눔과 베풂을 하면서도 본인은 드러내지 않는 평소 소신과 생활 태도까지 쉽게 풀어놓고 있다. 선생의 소탈한 인간적인 면모와 꾸밈없는 유머감각도 책갈피 여기저기에서 읽은 재미를 더한다.
이런 선생에게 그이를 본받고 배우려는 이들이 100명, 1000명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은 장학생들에게 나에게서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대신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고 했다.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는 선순환, 이른바 ‘김장하 바이러스’다.
주제어 : 지역, 진주, 나눔, 베풂, 문화, 평등, 형평, 여성. 노동, 친일, 반독재, 장학금, 가난, 사천, 장학생, 진주정신, 문학, 명신고등학교
분류: 진주, 역사, 문화, 지역, 장학, 기부
제목 인생역경대학 - 홍창신 칼럼집
펴낸날 2016년 3월 10일
가격 18,000원
반양장본 | 268쪽 | 152*225mm
ISBN 979-11-86351-04-8 (0300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저자 홍창신
책 소개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나고 살아온 저자가 변방에서 본 중앙정치를 예리하게 다룬 칼럼집이다. ‘부정한 선거였다면 무효가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말처럼 너무나 당연한 문제를 야당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고 호통친다. <인생역경대학>이라는 제목대로 학벌주의에 사로잡혀 학력위조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때도 그는 “그까짓 학력 따위에 억압받지 않고 정직하고 당당하게 맞서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한국전쟁 전후의 모습부터 근래까지, 저자가 봐온 진주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진주의료원이나 남강유등축제 등 지역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저자 소개
홍창신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칼럼니스트)
진주에서 태어나 20대에 ‘예그린레코드’를 시작으로 ‘멘드롱따또’, ‘라이브’, ‘섬’ 등의 이름으로 전을 벌여 밥을 먹었다. 진주참여연대 감사, 진주신문 이사,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이사장 등 시민단체에서 일했다.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강좌 ‘영화로 보는 세상’을 잠시 열었고 2011년부터 경남도민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다.
목차
머리말
1부 나의 진주 이야기
못재에서 떠오르는 풍경화 몇 점 / 너우니 / 솔티 / 거꾸로 오른 다솔사 / 사라진 것들에 대하여(극장거리의 추억) / 명천유사
2부 인생역경대학
시민은 항상 헛된 꿈만 꾸는가 / 강준만 그리고 김어준 / 성산아트홀 / 난독증이 뭐예요? / 자위 / 배건네 / 전향 사유 / 할매 열전 / 택배 이야기 / 홍세화 / 우아한 세계 / 인생역경대학 / ‘졸’이 보기에는 / 잠포학교
3부 가장 나쁜 뉴스는 ‘침묵’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 아! 노무현 / 됐고, 뭉쳐라! / 삼보일퍽 / 곽노현을 보며 / 개망초 / 진주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 / 가장 나쁜 뉴스는 ‘침묵’이다 / 오른손과 왼손 / 강기갑 비대위를 주목한다 / 김두관 지사의 출마를 반대한다 / 진주시의 ‘무장애 도시’ 선언을 보며 / 슈스케 / 단일화, 슬기롭게 하라! / 주인이 나설 때다 / 칼 이야기
4부 부정한 선거였다면 무효가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는 얼마나 더 돌아서 가야 하는가 / 100년 역사 무너진 서민 공립 병원 / ‘전쟁’이 어디, 놀이인가 / 까칠한 봄 / 선거철만 지나면 시민은 ‘쫄’이 된다 / ‘국정원 부정’ 은폐 주도하는 언론 / 국정조사 청문후기 / 꼭, ‘충무공동’이어야 하는가 / 손석희를 지켜보며 / 정당해산 심판 청구한 국무회의 / 부정한 선거였다면 무효가 당연하지 않은가 / 손석희를 징계하겠단다 / 강기훈 씨에게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 / ‘육조지’ / 그 벼슬 뉘가 준 것이더냐
5부 누가 ‘그만하라’ 말하는가
승묵이가 돌아왔습니다 / 사랑한 후에 남겨진 것들 / 누가 ‘그만하라’ 말하는가 / 특별법 제대로 만들어라 / 그래, 국민도 모욕감을 느낀다 / 삐라 /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 / 섣달그믐날의 서글픔
6부 이제 니네들이 뒤집어야 한다
시드니에서 부쳐 온 남자들의 이야기 / 그들이 누구인지 기억해야 한다 / 너흰 뭐 먹고 살래? / 쪽지 / 손석희가 해쓱하다 / 아몰랑! / 벌레 / 축구, 락페 그리고 전쟁놀이 / 담을 치는 남강을 보며 / 진주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보며 / 신나는 중계방송 / 장지필 선생을 떠올리며 / 오뚜기를 찬하노라
책 속으로
아침 7시 출근하여 물건 분류해서 10시부터 방울소리 나도록 달려도 늦도록 짐이 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연료비, 전화요금은 본인 부담이다. 대한민국 택배는 접수 후 24시간 이내에 배달해야 한다. 바쁜 김에 시동을 켠 채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간 예외 없이 딱지가 끊긴다. 왜 빨리 갖다 주지 않느냐고 바리바리 전화하고 왜 거둬가지 않느냐고 악을 쓴다. 요즘 사람들 인터넷 좋아해서 손가락 몇 번 토닥거려 ‘고객의 소리’ 란을 메운다. “니네 직원은 왜 그리 불친절하냐?” 시달리다 두 달 만에 손을 든 이 양반 아직도 ‘짐’이 남아있는 꿈을 꾼다는 것이다. (택배 이야기, 80~81쪽)
죄인들이여! ‘인생역경대학’을 졸업했음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까짓 학력 따위에 억압받지 않고 정직하고 당당하게 맞서 살 수 있는 세상이라야 바른 세상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그 갈림길에 그대들이 서 있다. 솔직하고 당당하라! (인생역경대학, 91쪽)
대통령으로 뽑아만 준다면 경제민주화를 통해 일자리를 주고 복지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는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며 그동안 잡것들의 헛짓에 의해 과도하게 편중된 ‘쌀’을 나누는 것으로 국가의 사명을 제대로 하겠다는 고백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운명이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5년을 통해 보았다. 다음 달에 우리가 하는 선택의 결과는 당대를 넘어 후대에 미칠 것임이 자명하다.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줄 때다. (주인이 나설 때다, 146쪽)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그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했다. 속속 드러나는 공무원의 선거개입이, 퇴임 이후 자신의 엄청난 잘못에 대한 면탈 목적으로 경쟁 정파의 낙선을 기도한 전직과 그 수하의 작품이든지 아니면 새 정부 탄생에 공을 세워 출세의 방주에 올라타려는 자발적 부정행위자이든지 말이다. (부정한 선거였다면 무효가 당연하지 않은가, 184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생역경대학>은 저자가 경남도민일보, 진주신문 등에 쓴 칼럼과 진주에 관해 쓴 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이다. 칼럼니스트로서 폭넓은 지식과 식견을 갖춘 저자는 사회 전반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지역민으로서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기억의 저편에 묻힌 옛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다. 동시에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진주의료원 폐쇄에 의문을 제기하고, 유료화한 남강유등축제를 보며 ‘축제의 주인이 누구인가’ 묻는다.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국정원의 부정이나 세월호 사태 때 정부의 허술했던 대응,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환부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댔다. 그러면서 동시에 바른 정치, 바른 언론이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문제가 가득한 사회에 만족하지 않고 “이건 잘못됐다”고 소리치는 저자의 글, 이것이 <인생역경대학>이다.
추천의 글
기자는 견(見)하지 말고 관(觀)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그 속에 숨겨진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 언론에서 관(觀)하는 기자를 보기는 참으로 어렵다.
견(見)이 넘쳐나는 시대에 홍창신 칼럼은 관(觀)하는 글이 뭔지를 보여준다. 그의 칼럼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목마른 사람에게 ‘사이다’였다. 그의 글에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섬세한 시선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스며있다. ‘못재’나 ‘너우니’, ‘솔티’, ‘다솔사’ 등에서 있었던 기억을 풀어 쓴 글을 보면 어떻게 그리 디테일하게 복원, 묘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전쟁 통에 생사를 오르내리는 상황까지도 그토록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는 또한 유명인사들의 학력 위조를 세상 사람들이 다들 비난할 때 “학력 따위에 억압받지 말고, 인생역경대학을 졸업했음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소리친다. 이러한 그의 인생역경대학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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