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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 3

Date : 2023. 5. 16. 11:46 Category : 카테고리 없음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2915

가격 : 18,000

반양장본 | 376| 152*225mm

ISBN 979-11-86351-48-2(0330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0194

www.idomin.com

 

저자 : 김성수

wadans@nate.com, 영국 거주

 
 

책 소개

 

영국으로 한국을 비추고

한국으로 영국을 비추며

우물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길잡이

 

저자 김성수는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영국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서른 가까이 살았고 영국에서 역사를 공부했는데 박사학위는 한국인 함석헌을 주제 받았다. 다시 한국에서는 과거사 진상 규명과 반부패 사회 구현을 임무로 하는 기구들에서 일하다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있다.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한국 이야기를 영국에 비추어 보여주고 영국 이야기를 한국에 비추어 보여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실은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는 방법론이다. 저자가 들고 있는 거울을 따라 책 속을 거닐다 보면 세상을 보는 안목이 좁은 우물을 벗어나 저도 모르게 넓어지고 깊어진다.

 

영국과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먼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인상 깊다. 98일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0대 후반에 공주 신분으로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군용트럭으로 구호품을 전달하고 탄약을 관리했다. 휴식 시간에는 흙바닥에 앉아 타이어를 갈고 엔진을 손질하며 차량을 정비했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대녀였고 인도 왕족의 후손인 인도 소피아 공주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 앞장섰다. 1913년에 영국 수상이 탄 차량을 가로막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영국의회 앞에서 데모를 이끌었으며 대대적인 납세거부운동을 선도했다. 잘못하는 정부에 맞서서 대중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모범을 이미 110년 전에 보여줬다.

한국에는 없을까. 일반 국민은 다 가는 군대를 사회 고위층은 면제 받는 경우가 많았다. 장준하는 그렇지 않았다.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베트남 파병에 반대했지만 파병이 결정되자 을 써서 장남을 참전시켰다. “찬성한 여당 의원도 안 하는 일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남의 귀한 아들을 총알받이로 보내고 내 아들만 안 보낼 수 있나요?”라고 답했다.

 

실패한 전봉준 vs 성공한 크롬웰

한국의 전봉준과 영국의 크롬웰도 같은 혁명가로서 선명하게 대조된다. 전봉준은 외세를 끌어들인 왕 때문에 실패하고 목이 잘렸다. 크롬웰은 외세를 끌어들인 왕을 베고 혁명에 성공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영국은 두툼한 반면 한국은 얄팍하다. 까닭은 무엇일까. 국왕의 목을 자른 경험이 있는 국민과 그런 경험이 없는 국민의 차이는 아닐까.

영국에서는 덕분에 전제왕권이 사라지고 의회가 자리 잡았으며 국민의 권리도 보장되었다. 전봉준이 외세 개입을 막기 위해 관군과 휴전하면서 제출한 폐정개혁안은 다른 길을 걸었다. 노비문서를 태우는 등 신분제의 전면적 폐기는 혁명적이었다. 토지의 평균 분작은 농민의 토지 소유를 지향하는 것이다. 젊은 과부의 재혼을 허락하라는 주장은 참 따뜻한 인간적 호소였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동학혁명군은 일본군에 짓밟혔다.

전봉준이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친일파가 줄어들고 갑질 횡포가 사라지고 성평등지수는 높아지고 양극화는 덜하지 않았을까? 잘못하면 지배층도 목이 잘릴 수 있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좀더 일반화되지 않았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은 그 잊은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는 지적을 상투적이지 않게 만드는 대조였다.

 

세월호 의사자에게 영국처럼 보편 복지가 주어졌다면?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목숨을 잃은 박지영 씨의 사연을 영국의 보편적 복지와 비교 대조한 것은 날카롭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은 1945년 세계대전 탓에 전쟁비용으로 국가 채무가 쌓였는데도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양육 등 보편 복지를 강화했다.

사회복지는 단순히 인도적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국가신인도 강화에도 막대한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복지가 확대되면 국민 개개인이 잠재력을 극대화해 유능한 개인이 될 수 있다. 유능한 개인은 자아실현을 통해 개인도 행복해지고 국가도 그 개인 덕분에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박지영 씨는 부친 사후 생계를 위해 세월호에 몸을 실었다가 참변을 당했다. 대학을 포기하는 대신 무사히 졸업하고 잠재력을 극대화했으면 어땠을까?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헌신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미래의 어느 시점에 나라와 지구촌을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역량을 쏟아붓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도록 보편 복지가 거들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영국과 한국 교복값 차이에 숨어 있던 사회 모순

두 나라 아이들의 서로 다른 옷차림 같은 범상한 차이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눈썰미가 매섭다. 한국 학생은 허드렛일을 할 때 교복을 벗고 다른 옷을 입지만 영국은 교목을 입은 채로 한다.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은 교복값이 비싸고 영국은 일반 옷값의 30%밖에 안 한다. 여기에도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바로 담합이다.

담합은 교복뿐 아니라 독과점 품목에서 소규모 업종까지 전반에 퍼져 있다. 과징금의 경우 서양은 피해액의 300%가 최소이지만 한국은 100%도 아닌 10%가 최대치이다. 서양은 담합을 자본주의 공정경쟁을 파괴하는 중대범죄로 규정하고 강하게 처벌한다. 반면 한국은 소비자를 이중으로 뜯기는 호구로 내몰면서 자구노력조차 봉쇄하고 있다.

 

40대 여성 총리가 오고,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가고

저자는 영국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에 관한 글이 대부분이지만 모국인 한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연상하고 생각하며 썼다면서 한국과 영국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 차분하게 음미하고 사색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어떤 이는 책을 한 권 읽으면서 마음을 울리는 대목을 하나만 얻어도 성공이라 했다. 수십 년 면벽수행한 수행자들의 지고지순한 문장이나 타고난 시인의 벼락같은 시어까지는 아니지만 읽다 보면 최소 한 차례 이상 빛나는 표현을 만날 수 있다.

95일 영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40대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8일에는 70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영국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온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으로 눈길을 끄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영국이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에는 한국인이 잘 모르는 영국 이야기들이 곳곳에 날것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에게 이해하기 어렵고 낯선 것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다. 한국의 문화와 감성을 타고난 저자의 손길과 눈길이 거치면 달라진다. 금세 익숙한 풍경이 되고 바로 입에 딱 맞는 음식이 된다.

 

저자 소개

 

저자: 김성수

 

1960년 서울 출생. 신진공고 자동차과와 한국철도대학을 졸업하고 1981~1989년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했다.

198924일 함석헌이 운명한 날 사표를 제출했다. 1990년 영국으로 유학, 에섹스대학교 역사학과(학사, 석사)를 마치고 셰필드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함석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귀국 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했고 씨알의 소리편집위원과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영국인 아내와 11녀를 두고 영국에 살면서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조사위원, 오마이뉴스영국 통신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문판 함석헌 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조작된 간첩들등을 지었다. 한국전쟁 기간의 민간인학살과 권위주의 정권 아래 의문사를 다룬 책 폭력의 역사20231월 출간될 예정이다.

 

차례

 

책머리에

한국인이 본 영국, 영국인이 본 한국 8

 

1. 나의 스승 이야기

나는 함석헌·김동길에 미친놈이었습니다 14

베개 속 죽은 쥐영국 여의사는 왜 한국에 왔나 25

어느 대박만화가의 말 못 할 고민 37

퀘이커 평화주의자이행우 선생을 보내며 47

 

2. 영국의 정치인

전봉준과 크롬웰을 관통하는 키워드58

이승만 위해 속옷 벗어던지고 논개가 됐다 68

박근혜가 존경한 여인, 그 여인을 공격한 남성 76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남자의 무릎86

 

3. 영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군용트럭 모는 공주님, 좋아할 수밖에 없네 96

군대 보내달라고 한 47세 기자를 아십니까 103

시위 앞장선 인도 소피아 공주 109

 

4. 영국의 코로나

영국의 유명한 부둣가, 이름은 파주길118

왜 한국처럼 안 되지?”코로나 사망 43영국의 고민 126

나는 왜 조작된 간첩들을 쓰게 됐나 134

 

5. 브렉시트는 왜 일어났나?

27년 만의 피살, 영국을 가른 브렉시트142

영국 괴롭히기 그만야당 대표까지 휘청 152

 

6. 영국의 교육과 교복

교과서 없고 숙제도 내 맘대로인기 중학교의 비결 166

한국 교복, 영국 교복보다 비싼 이유 있었네 175

 

7. 국가폭력과 과거청산

총 성능 시험해보려 북한 노인 쐈다182

14명 죽은 사건도 12년 조사했는데… … 196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 난 희망을 잃지 않는다203

총선서 민주당 의석 확대하면 개혁 드라이브 다시 걸어야 216

 

8. 영국에서 본 세월호

한국정부가 학생들을 죽게 놔둬228

외국인들 박근혜, 국민들 분노 잘 모르는 것 같다235

항공사 협박에 맞선 영국 정부 240

세월호 의사자 박지영’, 그가 살았더라면… … 247

세월호 뉴스 본 영국인들 “North Korea인 줄 알았다254

 

9. 장례식과 물대포

한국 가짜 장례식본 외국인들 변태스럽다262

물대포 거부한 영국 경찰, 이유는 전통때문 268

 

10. 영국을 점령한 BTS

“BTS는 영국 소녀를 우울증에서 구해냈다274

영국 대학생들에게 물었다 대체 BTS가 왜 좋아?” 287

 

11. 영국에서 본 국정원 해킹사건

난 증거 삭제한 그의 고백을 믿을 수 없다298

언론인-운동가 해킹 프로그램, 한국 정부도 사용한 정황 있다306

 

12. 가족이란 무엇인가?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랑해요아빠318

아이들은 나를 쪽발이 깜둥이라 불렀다325

 

13. 영국사회 그리고 영국인

아인슈타인 살린 에딩턴,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다 338

우크라 모녀와 함께 사는 영국인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343

40만원에 내집 장만꿈을 가능케 한 비결351

다운증후군 지방의원, 다음 목표는 국회359

나는 왜 영국 시민권자가 되었나? 364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한국과 영국에서 비슷한 세월을 살아온 나로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동양과 서양을 떠나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비슷하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 사회정의의 추구, 그리고 남과 내가 다 같이 행복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11. 영국인이 본 한국, 한국인이 본 영국)

 

북한에 가족이 너무 걱정되고 그립기도 해서 아버지는 어떻게든 북한에 가 볼 심정으로 켈로부대’(미국 극동군사령부가 북한 출신으로 조직한 북파 공작 첩보부대)에 지원하셨답니다. 심사위원 중에 아버지 고향 선배가 있어서 아버지는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면접에 떨어졌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몸 성히 살아 돌아오는 북파공작원이 거의 없어서 그 고향 선배가 탈락시켰답니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저는 오늘 여기에 없을 것입니다. 살다가 실패하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40~41. 어느 대박만화가의 말 못 할 고민)

 

이행우 선생은 달변가가 아니었지만 말씀의 내용은 늘 놀라웠다. 그의 가장 큰 무기가 진실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이름 없이 빛도 없이화려한 무대 뒤에서 남을 위해 조용히 일만 하셨다. 그는 아름다운 진주목걸이를 이어주는 실같은 분이었다.

(53. ‘퀘이커 평화주의자이행우 선생을 보내며)

 

영국 노동당 당수 시절 코빈은 칠레의 정치 망명자이던 부인이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려 하자 일반공립학교에 보낼 것을 주장했다. 결국 이 문제로 갈등이 불거져 이혼까지 했다. 토니 블레어가 수상 시절 자신의 자녀를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에 보내 비판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89.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남자의 무릎’)

 

1차세계대전 기간 중에 소피아 공주는 전쟁 중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해 간호사로 자원봉사를 지원한다. 시크교도인 한 인도 부상병은 인도의 마지막 왕의 딸인 소피아 공주가 간호사 복장을 입고 병상에 누운 자신을 직접 간호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113. 시위 앞장선 인도 소피아 공주)

 

나는 외국인이 영국으로 이민 오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유럽연합은 유럽인들끼리만 서로 큰 혜택을 주고 비유럽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차별한다. 우리는 전 세계인들을 골고루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인끼리만 서로 혜택을 주고 비유럽인을 차별하는 것은 또 다른 식민주의다. 그래서 나는 탈퇴를 선택했다.”

(155. “영국 괴롭히기 그만야당 대표까지 휘청)

 

그 의사와 목수의 연봉은 약 2.5배에서 3배 정도 차이 났다. 영국에선 연봉이 높은 사람은 소득세를 40%까지 내야 하고 아동양육비 등을 전혀 받지 못한다. 반면 연봉이 낮은 사람은 소득세를 20%만 내거나 면제받고 복지혜택을 받는다. 의사 집에는 책이 많고 목수 집에는 나무가 많은 것 외에는 차이점을 찾지 못했다. 또 의사에게서는 우월감 등을 찾아볼 수 없었고, 목수에게서도 열등감을 느낄 수 없었다.

(171. “교과서 없고 숙제도 내 맘대로인기 중학교의 비결)

 

이 참전용사는 1950년 겨울, 두 한국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메모를 읽었는데 아이들의 아버지가 쓴 영어가 정말 웃음이 나올 정도로 엉터리 콩글리시였다. 그러나 이 메모를 60년 동안 간직하고 있는 이 영국인 참전용사에게는 이 종잇조각에 적힌 글이 아주 감동적이었고 이 메모를 보물 다루듯이 했다. 전쟁은 인간의 극악한 면을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전쟁은 또한 인간의 지고한 선도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187~188. “총 성능 시험해보려 북한 노인 쐈다”)

 

영국인들은 한국의 우파 보수주의자들을 이해 못 한다. 우파 보수주의란 민족이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의 우파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민족이 없다. 한국에서는 민족주의자인 조봉암, 장준하 등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함석헌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 한국에서는 좌파들이 오히려 유럽 우파보수주의자들이 기본으로 삼는 민족 문제를 이야기한다.

(207.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 난 희망을 잃지 않는다”)

 

파리7대학의 학부 2~3학년 한국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인상적이었다. 나의 서툰 영어 강의가 얼마나 정확히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00여 학생들이 매우 진지하게 들었고, 현재 북한의 핵개발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이 대학 한국학과에는 한류에 대한 높은 관심 등으로 130명 입학생 모집에 1000여 명이 몰려왔다는 소문도 들었다.

(219. 총선서 민주당 의석 확대하면 개혁 드라이브 다시 걸어야)

 

언론들은 세월호 선장을 비롯해 선원들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점을 들어 안전교육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6개월~1년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던 상황에서 제대로 안전교육이 이뤄졌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 장래가 보장된 넉넉한 마도로스가 아닌 하루살이 같은 생계형 계약직 선장과 선원들에게 돌을 던지고 그들의 직업윤리만 따지는 것이 박 대통령이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일까.

(236. 외국인들 박근혜, 국민들 분노 잘 모르는 것 같다”)

 

학교에선 한국 전쟁과 북한 미사일 외에 한국에 대해서 긍정적인 면을 배운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케이팝을 통해서 한국 문화를 접하고부터 한국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놀라운 면을 많이 배웠다. 나는 몇 년째 케이팝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 영화, , 코미디, 다큐멘터리 등을 닥치는 대로 본다. 그 덕에 한국말도 조금씩 배운다. 언젠가 한국말도 잘하면 좋겠다. 한국말은 듣기 좋고 너무 아름답다. 한복도 인형처럼 참 예쁘다.

(283. “BTS는 영국 소녀를 우울증에서 구해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국정원에서 구입한 스파이웨어는 대북용이지 한국의 민간인 사찰용이 아니라는, 그 중요한 증거를 삭제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말이 안 된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왜 스스로 삭제하나?”

(304. “난 증거 삭제한 그의 고백을 믿을 수 없다”)

 

아내의 외도에도 수상 헤롤드는 1966년 아내가 사망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충실하게 유지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지만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가 외도하여 낳은 혼외자식 사라를 친자식과 함께 차별 없이 키웠다. 사라가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 뒷바라지했다.

(318~319.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랑해요아빠”)

 

딸아이도 동네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어느 날 딸이 학교에서 울면서 집에 왔다. 이유를 물었다. 아이들 여럿이 ○○는 미국 스파이, 고양이 눈깔에 이티라고 놀린단다. 어떤 아이들은 식사시간에 밥을 딸아이 얼굴에 던졌단다. 아빠로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다르게 생긴 것이 무슨 죄인가?”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325~326. “아이들은 나를 쪽발이 깜둥이라 불렀다”)

 

영국정부에서 공정임대료 제도를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부동산 임대료가 과도하게 상승하면 서민생활이 불안해지고, 결국 경제 전반에 악순환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국의 공정임대료제도가 임차인에게만 유리하게 돼 있는 건 아니다. 공정임대료제도는 임대인에게도 일정한 이윤을 보장해준다.

(355. 40만원에 내집 장만꿈을 가능케 한 비결’)

 

선진국은 다 복수국적을 용인하고 있다. 국가 간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복수국적은 경제적으로는 더 많은 투자를 끌어들이고 인구감소도 막는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한국처럼 징병제를 실시하는 대만, 이스라엘, 독일, 핀란드 등도 모두 복수국적을 인정하고 있다. 남북분단이 문제라면 병역을 마치거나 면제받은 남성에게는 복수국적이 당연히 허락되어야 한다.

(372. 나는 왜 영국 시민권자가 되었나?)

 

내가 복수국적을 유지하려는 이유가 한국에 와서 의료혜택을 받으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영국이나 유럽은 미국과는 달리 국가의료제도가 있고 전혀 의료비가 들지 않는다. 한국 방문 시는 의료비가 보장되는 여행자보험을 드니 유사시에도 한국의 납세자들에게도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

(375. 나는 왜 영국 시민권자가 되었나?)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가 몰랐던 영국의 어두운 모습, 그런데

 

한국에 태어났으면 최소 징역을 살았을 영국 과학자

영국이라는 나라의 품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들이 봤을 때 동쪽 끝 극동의 한국에서 온 낯모르는 청년에게 신청한 장학금의 10배인 4000만원을 주는 대목은 놀라웠다. 나중에 들은 그 이유는 더욱 놀라웠다. “많은 한국 젊은이들의 분신 뉴스를 접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이 한국에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당신이 노력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학금을 10배로 준 겁니다.”

또 제1차세계대전 당시 적국 독일 출생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영국 학자 아서 에딩턴이 실험과 검증으로 입중하는 과정도 놀라웠다. ‘이적분자’ ‘이적행위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정부에 지원금을 신청한 에딩턴도 그렇고 그에 설득을 당해서든 어떻든 정치적 고려 없이 지원금을 배정한 정부도 그랬다.

한국 같으면 어땠을까? 저자 김성수의 지적이 없더라도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조선 시대 고종 치하에서는 말할 것도 1950년 한국전쟁기 이승만 치하에서는 더욱더 반역죄로 바로 목이 잘리거나 총살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절이라고 달랐을 것 같지 않고 김영삼 정부 이후 소위 문민화 이후에는 조중동 수구언론의 설레발을 못 견뎌서라도 최소 징역은 살았을 것 같다.

 

한국처럼 학살이 있었던 영국, 한국과 달랐던 것은?

영국을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다른 한편으로 영국에도 저런 야만이 있었구나 하고 보여주는 부분도 있다. 우리만 야만의 세월이 있었던 것은 아니구나 하는 뜻 모를 안도를 안겨주기도 한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에도 학살이 있었고 물대포가 있고 엉터리 조사와 발표도 있었다.

그런데 달랐던 것은 처리 방식이었다.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처리하느냐가 사실은 더 문제였던 것이다. 영국 정부는 14명이 학살된 사건을 3500억 원을 들여 12년 동안 조사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시기 최소 100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민간인학살은 4년 남짓 조사한 다음 정부가 종결을 주장했다. 80년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은 아직 그 진상이 오리무중이다.

물대포 또한 독일에서 거금을 주고 들여와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위험성이 명백하게 드러나자 곧바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사실 흥미롭다기보다는 존경심이 느껴진다. “시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일하는 영국 경찰의 전통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물대포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경찰도 시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일하는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추천의 글

 

쉽고 재미있고 명쾌하다. 제목은 영국 이야기지만, 실은 조금은 더 한국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 영국 생활인이자 역사학자로서 보통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영국 사회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어린 에피소드들을 거울처럼 사용해서, 한국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의 실상을 조명하고 해석한다. 에피소드의 거울들은 사실에 충실하고 정교하다. 군더더기 없는 맑은 거울이다. 한국 사회의 허물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기의 허물을 인식하는 일은 아프고 부끄럽다. 하지만, 묘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실패들을 수습하고자 하는 내공이 고요히 차오름을 느낀다. 함석헌을 일생 큰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온 저자의 내공이 독자의 마음에 부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김도현(목사, ()뿌리의집 대표)

 

저자는 함석헌, 이행우, 안띠아, 잉글, 다문화 가족, 입양인, 장애인, 민주화운동 희생자 등과의 만남에 독자들을 모셔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참여하도록 한다. 전봉준과 크롬웰, 처칠과 이승만, 대처와 박근혜를 함께 만나는 한국과 영국의 대화자리로도 이끈다. 한국과 영국을 비교하며 배우고 바꾸어나갈 수 있도록 공간적 상상력을 북돋아 준다. 독자들은 이런 대화를 통해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의 아름다운 사회를 함께 꿈꾸게 될 것이다.

김거성(문재인정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그날이 오면저자)

 

삶의 긍정적인 면과 희망을 보여주는세련되고 예의바른 한국의 BTS 청년들이 영국 청년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이제 한국의 문화 수준은 국제적인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늙은 제국영국은 여전히 따라잡기 근대화를 달려오느라 숨이 찬 한국에게는 큰 가르침을 주는 선생이다. 한국과 영국을 모두 잘 알고 있는 김성수 박사의 개인사, 그리고 영국에 살면서 한국과 영국을 비교하는 참여 관찰 기록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전쟁과 사회저자)

 

많은 사람들은 영국을 지는 해와 같은 나라로 여긴다. 책에는 영국이라는 기품 있는 저녁노을에 비친 나와 우리의 낯선 모습이 가득하다. 산재 사망률이 한국의 1/25에 불과하고, 내무장관이나 경찰책임자가 물대포 사용을 거부하는 광경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4백만 원을 신청한 장학금이 4천만 원이 나온 사연은 한국의 가슴 아픈 현대사와 노제국 영국의 품격과 책임감이 뜨겁게 만나는 지점이다. 뼛속까지 한국인이지만, 이제 법적으로 영국인이 된 김성수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젊은이들의 분신 때문에 지게 된 큰 빚을 한 글자 한 글자 갚아 가고 있다.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책임편집위원)

 

주제어: 한국사, 역사, 현대사, 함석헌, 김동길, 전봉준, 장준하, 몬테그, 크롬웰, 윈스턴 처칠, 토니 벤, 제레미 코빈, 엘리자베스 여왕, 이승만, 박근혜, 마가렛 대처, 세월호, 국정원

 

분류: 한국사, 영국사, 역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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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5. 17:04 Category : 카테고리 없음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291

가격 : 16,000

반양장본 | 288| 152*225mm

ISBN 979-11-86351-38-3(0380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0194

www.idomin.com

 

저자 : 황명걸 신경림 백낙청 염무웅 등 37

 

 

 

 

책 소개

 

꼰대가 되기 싫은 젊은이를 위한 책

 

노인들을 이해하지 마라.

대신 똑똑히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세상 흐름을 거스르는 철부지 노인들을 향한 느닷없는 일성으로 단박에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한 몸에 받았던 채현국 선생. 본인이 80 노인이면서도 덜떨어진 꼰대노인들의 시대착오를 거침없이 비판했던 늙은 청년 채현국 선생.

이제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1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202142일 영원한 소풍을 떠나기 전날 선생은 본인의 뜻대로 입원 병동에서 자택으로 자신을 옮겨갔다. 목숨을 늘리는 연명 치료를 뒤로 하고 어떤 비감도 없이 삶과 죽음을 담담히 맞아들였다.

돌이켜보면 채현국 선생의 어떤 일갈이나 한 마디 명언 때문에 젊은이들이 뜨거운 호응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선생은 세상과 인생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꿰며 일치시켜온 삶을 살고 있었다. 그 많은 젊은이들이 아무 망설임 없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헌사를 선생께 올렸던 까닭이다.

 

선생은 엄청난 재산을 모았지만 미련 없이 버렸다. 자신을 위해서는 손톱만큼도 쓰지 않고 사회를 위해 일하다가 핍박받는 당대 젊은이들을 위해 물 쓰듯 자기 재산을 썼다. 그것도 남몰래.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일반 분야에서 민주화 등 공익을 위해 활동한 이들 가운데 적어도 1,000명 이상은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

스스로 무소유의 화신이 되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가지에 매이지 않은 구름처럼 살았다. 장삼이사들 틈에 끼여 표나지 않게 살면서 그 장삼이사들의 삶과 정과 놀이에서 달콤한 행복을 느꼈다.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있을 적에는 작업복 차림에 화단에 김매기를 일삼아 학생들조차 한낱 인부로 여겼을 정도로 나 이런 사람이요 뻐기지 않았다.

선생은 오히려 세상이 알아볼까 봐 낮추고 숨기며 살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향기가 천 리에 퍼지듯 세상이 선생을 알아보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상황이 달라지자 선생은 자신의 몸조차 아끼지 않았다. 갖은 질환이 있는데도 요청과 필요가 있는 자리라면 빠지지 않고 가서 거침없는 사자후로 촌철살인을 했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고 죽음은 삶의 연장임을 온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행보였다.

 

선생이 떠난 자리에는 허전함과 아쉬움이 남았다. 아쉬움을 털어내고 허전함을 떨치기 위해 길게는 70년 이상을 함께했던 서른일곱 분의 추억을 모았다. 여기에 이 시대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던 채현국과 그 친구들의 빛바랜 청춘들이 반짝이고 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장면들이 줄줄이 펼쳐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청춘이라서 익숙하고 그때와 지금은 배경이 달라서 낯설기도 하다.

1부는 채현국 선생이 주인공이다. 2·3·4부는 선생보다 먼저 하늘나라 소풍에 들어간 선생의 친구들, 민병산·박이엽·이계익·이구영·조관준·천상병 선생들이 주인공이다. 부록에 담긴 대담과 강좌 두 꼭지는 선생의 살아생전 생각과 말과 행동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나는 늙어도 저따위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다짐하는 청춘이라면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채현국(1935~2021)

1. 일생

일제강점기인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난 채현국 선생은 1960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중앙방송>(현 한국방송) 연출로 입사했다. 하지만 5.16군사쿠데타 세력이 방송을 군사정권의 선전도구로 써먹으려고 하자 석 달 만에 그만뒀다.

이후 아버지가 운영하던 부도 직전의 탄광으로 내려갔다. 강원도 삼척군 도계의 흥국탄광을 일으켜 손꼽히는 광산업체로 키웠다. 한때 조선·화학·해운 등 24개 기업을 운영하며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에 오를 정도로 거부가 됐다.

그러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으로 장기독재를 시작하자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유착하지 않으려면 사업을 접는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이듬해 미련없이 모든 재산을 처분해 동업하던 친구들과 광부들에게 나눠 줬다.

동시에 이전부터 해오던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원을 이어나갔다. 정권에 쫓기는 이들을 숨겨주고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재에 저항하는 이들과 본격적으로 함께했다.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으로 <창작과 비평>의 뒤를 봐주고 가난한 문인과 예술가들을 조건 없이 지원했으며 셋방살이하는 해직기자에게는 집도 사주었다.

1988년 효암고교와 개운중학교를 둔 효암학원의 이사장에 취임한 뒤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무급으로 일했다. 학교 운영에서는 재단이나 이사장이 아닌 교사와 학생을 중심으로 삼았고 자율과 자발성을 앞세웠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조가 결성되면서 문교부는 가입 교사를 해직하라고 지시했지만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

선생은 이렇듯 엄청난 거부였으나 모두 내려놓았다. 권력이나 명예를 탐하는 대신 평생 아래에 머물렀다. 험악한 시대를 살면서 격랑에 휘둘리지도 않았고 속된 욕망에 영혼을 맡기지도 않았다. 성장을 멈추면 꼰대가 되고 계속 성장하면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선생은 진정한 어른이었다.

 

2. 남긴 말씀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자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다 이 세상 거지.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학교는 좋은 학생만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좋은 교사도 길러낼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을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된다. 교사가 제대로 성장하면 그게 학생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사업을 해보니까돈 버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더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돈 쓰는 재미보다 몇 천 배 강한 게 돈 버는 재미. 돈을 벌다 보면 어떻게 하면 더 벌릴지 자꾸 보인다. 그 매력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도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떤 이유로든 사업을 하게 되면 자꾸 끌려드는 거지. 정의고 나발이고, 삶의 목적도 다 부수적이 된다. 이건 중독도 아니고 그냥 신앙이 된다. 돈 버는 게 신앙이 되고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된다. 그래서 , 나로서는 더이상 깜냥이 안 되니, 더 휘말리기 전에 그만둬야지생각했다.”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없다. 한 문제에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다.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

“‘쓴맛이 사는 맛을 묘비명으로 삼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만 새겨두면 솔직하지 못하고 위선자라 할 것 같으니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하고 덧붙여야지. 어떨 때 단맛이냐고? 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고 그런 마음이 서로 통할 때. 그땐 참 달다.”

서른다섯에 당뇨가 나오면서 이가 다 빠졌어요. 그만 처먹으라고 빠진 건데 또 해 넣을 겁니까? 그렇지 않아요? 당뇨는 많이 먹어서 나는 병인데. 이를 안 해 넣었기 때문에 적게 먹어서 이렇게까지 살아있는 겁니다. 해 넣었으면 훨씬 빨리 죽었습니다. 아무래도 잇몸으로 먹으니까 불편할 거 아닙니까. 안 그래도 이렇게 배 나오고 했는데.”

 

저자 소개

 

고은광순(평화어머니회 상임대표), 구중관(소설가), 김낙영(시인), 김보경(낭독은 입문학이다저자), 김운성(소녀상 조각가), 김승환(출판편집인), 김주완(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김철환(대덕잡구 대표), 김태동(전 청와대 경제수석), 남난희(산악인), 노광래(갤러리 씨네 부장), 박구경(시인), 박상희(조각가), 박영현(도예가), 방영웅(소설가), 배평모(소설가), 백낙청(<창작과 비평> 명예편집인), 복기대(인하대 교수), 서승(우석대 동아시아연구소장), 신경림(시인), 염무웅(국립한국문학관 관장), 이기흥(전 서울예술대학 재단 이사장), 이만주(춤비평가), 이상만(소리글쟁이), 이용학(전 효암고 교장), 이종찬(전 국가정보원장), 이진영(이문학회 회우), 임계재(중문학자), 임락경(목사), 전종덕(저술가), 정명숙(산악인), 정상학(전 대구고등법원장), 최규일(전각가), 최정인(섬유공예작가), 최혁배(미국 변호사), 허태수(목사),황명걸(시인) 37

 

목차

 

1

명동, 관철동, 인사동 세 시절_황명걸 9

채현국 선생님을 기리며 할머니 꼰대가 되지 않기를_고은광순 19

라 마르세예즈의 밤_김보경 26

채현국 선생의 존댓말_김운성 31

풍운아 채현국_김주완 33

채현국 선생님께_김철환 38

43년 늦었던 만남, 너무 빨리 끝나다_하제 김태동 41

그때 지리산 종주 이야기_남난희 45

산타와 늙은 청년 채현국_박상희 50

건달 할배와 호빵_달묵 박영현 53

현국이 생각_백낙청 59

마달거사 채현국_복기대 63

한국의 큰 건달채현국 선생_서승 74

채현국 선생 추억_신경림 80

자유인 채현국 선생을 기억하며_염무웅 82

6.25동란이 맺어준 나의 영원한 벗 채현국_이기흥 92

채현국 선생의 파리 시절과 헌시 두 편_이만주 96

못 생겨서 다행이었다_이용학 110

채현국을 생각한다_이종찬 113

스승의 은혜_임락경 116

채 선생님_전종덕 126

징검다리_정명숙 131

영원한 천재 맨발의 마달이_정상학 137

선생님이 떠난 지 1_최규일 139

인사동과 나의 추억_최정인 141

허군, 내 집으로 가세_허태수 144

 

2

거리의 철인_김낙영 149

인사동 그때 그 얼굴 평론가 민병산_김승환 154

기러기 훨훨_방영웅 164

민 선생님 追想 _최혁배 166

 

3

박이엽 선생 생각-인사동에서_박구경 179

박이엽 선생님과 씨칠리아 마부의 노래_임계재 181

늘 앞서가던 멋쟁이 박이엽_황명걸 188

 

4

소년 뱃사공 이계익_구중관 197

노촌 이구영 선생님과 이문학회_이진영 207

알타이하우스와 조관준_이상만 221

평화를 쪼다 날아간 파랑새_배평모 224

 

부록

채현국·채희완 대담 241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268

에필로그 288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채현국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출신으로, 백낙청 명예교수와 함께 <창작과 비평>을 창간한 막후의 산파역이다. 부친의 광산개발로 뒤늦게 부자가 된 그는 혼자만의 부는 값어치가 없다고 여겨 어려운 친구들을 도우니,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친구가 없을 정도였다.

(11. 명동, 관철동, 인사동 세 시절-황명걸)

 

여성동학다큐소설 출판기념회에서 채현국 선생님은 축사를 하시기에 앞서 갑자기 무대 위에 앉은 우리 작가들에게 큰절을 하셨다. 우리도 황망히 일어나 맞절을 드렸다. 상명하복, 위계질서 깨기, 권위주의의 파괴는 나도 주장해온 바이지만 채현국 선생님의 급습(^^)은 과연 선생님다운 것이었다. 백 마디의 축사와 격려사가 이 보다 더 가슴을 파고들 수 있으랴.

(21. 채현국 선생님을 기리며 할머니 꼰대가 되지 않기를-고은광순)

 

주완이 혀~!” 가끔 채현국 선생은 이렇게 나를 불렀다. 무려 28년이나 어린 나에게 이라니. 선생은 나이 어린 사람이라고 하대하지 않았다. 그건 일본 사람들 습관이라는 것이다.

선생은 또한 인류 나이로 치면 젊은이 나이가 노인보다 많다고도 했다. 처음 만나 인터뷰할 땐 나를 선생님이라 칭했다. 그러다 친해지니 이라고까지 불렀던 것이다. 인류 나이로는 내가 선생보다 형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선생은 늘 기존관념과 상식을 뛰어넘었다.

(33. 풍운아 채현국-김주완)

 

문득 43년 지난 1971년 봄이 떠올랐다. 어느 벗을 통해 소개받아 흥국탄광에 가서 일한 3주간이다. 완행열차를 타고 강원도 도계역에 도착하여, 물어물어 찾아가, 노무과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다음날부터 일하였다. 갱에는 못 들어가고, 석탄을 화물차에 싣는 일, 잡석을 인공 비탈 아래로 떨어뜨리는 일 등을 하였다. 월급날도 되지 않았는데, 사무실로 누군가 불러 월급을 주면서,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 탄가루투성이인 작업복 한 벌을 보따리에 넣은 채, 서울로 돌아왔다.

, 그때 탄광의 경영자가 채현국선생님이셨구나!”

(41. 43년 늦었던 만남, 너무 빨리 끝나다-김태동)

 

선생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언제나 또랑또랑한 음성과 유쾌하고 유머 있는 말솜씨에 꼰대스러움이 전혀 없이 좌중을 집중시키는 능력이었다. 더구나 그의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을 보는 시선은 어떤 젊은이보다도 젊었다.

우리의 익숙했던 생각을 역설적으로 바꿔 다른 가치로 세상을 보게 한다. 부드러움 속에 날카로운 지성으로 정의에 반하는 것을 질타하기도 한다. 자신이 노인이면서도 오히려 노인을 믿지 말라라고까지 한다.

(51. 산타와 늙은 청년 채현국-박상희)

 

채 선생님이 평생 기억하는 친구가 몇 분 있다. 박윤배, 천상병, 이선휘, 박이엽, 김재익, 이종찬, 김우중, 서입규 등등이다. 이 중에 가장 아파하는 친구가 김재익과 박윤배였다. 기분이 울적한 날에 김재익과 박윤배 얘기를 종종 하셨는데, 가끔 콧등이 붉어지면서 말씀을 하시곤 했다.

(65. 마달거사 채현국-복기대)

 

그때 채 선생한테 받은 후원금과 필자들에게 지급한 원고료 액수를 또박또박 적어놓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몇천만 원이 될지 모르는데, 돈의 액수도 액수지만 그보다 나름의 역사적 기록이 될 터였다.(하지만 때로는 그런 기록이 유죄의 증거로 악용되던 시대도 있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87. 자유인 채현국 선생을 기억하며-염무웅)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하루 24시간이라는 귀한 선물을 매일매일 차별 없이 받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그중 많은 시간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데 써야만 한다. 하지만 채현국은 한동안 흥국탄광 경영자로서 일했을 때를 빼고는 시간에 쪼들림이 없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해가며 살아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생계를 위해 시간 가난에 쪼들리고 있을 때 그는 흥국탄광 경영을 친구 박윤배(경기중학교생, 대구 피란중학에서 만난 절친) 에게 맡겨 놓고 이 친구, 저 친구 찾아다니며 정신적 멘토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던 진정한 이었고, 부자였고 자유인이었다.

(93. 6.25동란이 맺어준 나의 영원한 벗 채현국)

 

쓴맛이 사는 맛”/ “모든 예술은 남들이 봐 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명석한 그는 쏟아놓느니 경구였고/ 우리말 근원과 생성 분석에 특출났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즐거웠다/ 그는 기록적으로 작은 키였음에도/ 작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거인처럼 보였다.

(108~109. 채현국 선생의 파리 시절과 헌시(獻詩) 두 편-이만주)

 

이렇게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어 평생을 이어졌다. 내가 군에 있을 때나, 기피의 대상인 남산정보기관에 있을 때나 그는 한결같은 독설가로 나를 책망하고 격려하였고, 내가 정계에 입문하여 여의도에서 활동할 때에도 그는 골목 정치, 대로 (大路) 정치를 마음대로 구사하면서 나의 책사역 또는 고문역을 담당하였다. 그가 해설하는 정치구도는 특이했고, 그가 지향하는 목표는 언제나 정의의 편이었다. 엉뚱한 이야기로 장내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파장(罷場)이 되면 그의 말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114. 채현국을 생각한다-이종찬)

 

그 당시 광업소에 있었던 사람들 똑같이 나누어주었어.” 가령 지배인들은 많이 주고 일용근로자는 쬐끔 준 것이 아니고 같이 나누어 주었고, 갈 데 없는 이들은 함께 살도록 공동협업농장을 만들어서 정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들을 지난해 만났었다. 나보다 1~3년 더 아래인 나이였다. 채현국 이사장의 호칭이 사장님, 이사장님이 아니고 그냥 형님이라 부른다. 지금은 이상할 것도 없으나 70년대에 형님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신분 차별을 일찍이 깨신 분이라는 의미다.

(119. 스승의 은혜-임락경)

 

굳이 규정하자면, 국수주의자들도 있고, 좌파 진보 인물들을 포함하여 그 스펙트럼이 무한하였다. 그렇다고 어느 특정 유파의 사람들을 선호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보는 기준은 ○○○ 좋은 사람이야로 표현하시듯이 어떤 생각을 하든 그가 곧은 사람인가였다. 아무리 명성이 높아도 출세만을 위하여 사람을 만나는 이기적인 인물은 쓰레기 취급하셨다.

(127. 채 선생님-전종덕)

 

너희는 돈이 없으니 만원이라도 내라.” 늘 두런두런하시던 선생님들이 어느 날 돈을 모아서 신문사를 만든다고 하셨다. 덕분에 명옥이랑 나는 생일선물로 한겨레 주식을 사서 주며 태어나 처음으로 주주가 되었다. 신문사를 만든다는 일이 얼마나 큰일이었는지 몰랐다. 언론계, 학계, 종교계, 재야 민주화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1987년 창간된 한겨레 신문이 33년이 넘었다. 그 중요한 일을 하는 순간에 그 분들 주변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다.

(134. 징검다리-정명숙)

 

나는 추우나 더우나 맨발로 다니며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말을 하는 마달이를 천재라고 생각했다. 마달이는 철없던 중학교 시절 우리와는 달리 역사를 알고 민족을 알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나쁜 말을 하지 않았던 마달이지만 대구의 유명한 친일파 후손 M군에 대해서만은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대했던 기억이 난다.

(138. 영원한 천재 맨발의 마달이-정상학)

 

채현국 선생은 서정춘 선생과는 동에서 서만큼이나 먼, 그러나 같은 소년과이다. 한 사람은 대놓고 빨치산을 노래하고 한 사람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제일 쎄게 냈던 자본가인데 둘은 묘한 부분에서 닮아있다. 지치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뭉글치도 않았고, 순수한 에너지에 반짝이는 두 눈이 전부, ‘다부짐을 꼭꼭 숨긴 채 허술해 뵈는 매무새까지 닮아있는 두 분이다.

(142. 인사동과 나의 추억-최정인)

 

민병산 선생. 항상 옷차림은 거지꼴이어서 후배들이나 친지들 하고 식당에 가면 거지가 온 줄 알고 출입을 저지당하면서도 무표정이던 인사동의 철인. 그가 인사동에 나타나면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시국담이나 고담준론, 주변잡담 등을 하며 열을 올려도 하루종일 묵묵히 침묵을 지키며 눈을 감고 있던 철인.

누군가 의문이 있어 질문하면 간단 명쾌하게 한마디 하고 다시 눈을 감고 침묵하던 선생이 아마도 우리 시대의 한국판 디오게네스가 아니었을까.

(151. 거리의 철인-김낙영)

 

서예의 일가를 이룬 민병산의 붓글씨 전시회가 사망 두 해 전에 두 번 열렸다. 한 번은 수송동에 있는 신구대학 상설 전시관에서였고 다른 한 번은 돈화문 공간화랑에서였다.

첫 번째 전시회는 표구도 하지 않은 70점에 달하는 작품을 압핀으로 눌러 전시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아는 사람이 구경 오면 전시한 작품 이외에 따로 준비한 작품을 공으로 나눠 주었다. 나도 그 전시회에서 몇 점의 작품을 얻었지만 수많은 인사동의 처자들도 그렇게 작품을 얻었다. 한 번은 지나다 들른 사람이 맹자(孟子)진심장(盡心章)을 오래 쳐다보길래 당장 떼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주는 것이 체질화된 사람이 민병산이다.

(162. 인사동 그때 그 얼굴 평론가 민병산-김승환)

 

회갑 잔치 같은 것을 하면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하시더니 아주 영영 떠나셨구나. 회갑을 바로 내일 두고 오늘 세상을 떠나셨으니 하루도 틀리지 않은 만 육십 년을 채우고 가셨다. 민 선생의 장례는 어느 병원의 영안실에서 치러졌다. 많은 조객들이 찾아왔다. 회갑연이 장례식으로 바뀌어진 셈이다. 그 육신은 화장으로 처리되었고, 유골은 성둘 근교에 있는 절에 모셔졌다.

(165. 기러기 훨훨-방영웅)

 

귀천에 가면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이라 쓰신 글의 목각판이 있었다. 최치원의 시 마지막 구절인데 등전(燈前)’ 두 글자의 모양새는 고국을 향한 그리움에 말 달리듯 하는 모습이다.

우기청호 청경우독(雨奇晴好 晴耕雨讀)같은 글을 목각하면 무척 보기 좋았다. 민 선생님의 생활 자세를 쓰신 것 같아 더욱 친밀감이 느껴진다. 정관자득 정흥무진(靜觀自得 情興無盡)같은 짧은 글귀는 실제로 우리의 정과 흥이 일도록 해주었다.

(174. 민 선생님 추상-최혁배)

 

채현국과 박이엽, 두 어른의 대화는 늘 대조적이었다. 채 선생께서는, 활기 넘치고 거침없이 끌고 나가는 이야기 중에 막힘이 있을 땐, 마치 사전을 찾듯 박이엽 선생께 물어보시곤 하였는데, 가만 듣고만 계시던 박 선생은, 정교하고도 낮은 음성으로 대답을 해주시던 모습을 보았다. 무엇이든 술술 물음에 답하셨다. 마치 체화된 지식의 본산을 보여주시는 듯했다. 그때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웠던 기억이었다.

(179~180. 박이엽 선생 생각-인사동에서-박구경)

 

박이엽 씨는 남편감으로서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 못됐습니다. 돈 생기면 술 마시고 집안은 몰라라 했으니까요. 그러나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평온을 가장한 침착한 그 말씀에 나는 앉은자리에서 몹시 심하게 공감의 고갯짓을 했다.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그동안 야단과 질책에 인색한 박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닌 내 행적의 개념화이기도 했다. 남편의 평가를 그리도 잘하는 아내는 또 얼마나 드물까. 사모님 목메임에 내 눈에서도 뭔가 질척한 것이 주르륵 흘렀다.

(184~185. 박이엽 선생님과 씨칠리아 마부의 노래-임계재)

 

박은국이 필명을 박이엽으로 개명한 것은 방송극을 쓰기 시작하면서였다. 그가 생활을 위해 순수문학을 접고 방송극을 쓰게 된 것은, 함께 문학을 하던 친구로서 섭섭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의 방송극이 단순한 대중 취향에 머물지 않고 격조 있는 본격극의 체통을 지켰음을 감안할 때, 적이 위안이 되는 일이다.

(192. 늘 앞서가던 멋쟁이 박이엽-황명걸)

 

부대에서 빠져나오는 물품을 거래하는 밀수업자들의 장사가 성행했다. 나룻배 사공은 그 장사를 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위스키며 담배를 열 상자 스무 상자 실어다 주었다. 대형 아이스크림 제조기 같은 것도 갖다 주었다. 그렇게 가져온 물건을 받아 잘 은닉해두면 춘천시장 사람들이 차를 가져와 싣고 갔다. 밤을 타고 가져온 물건이 많을 때면 소년 계익은 밤을 타고 마라톤을 해서 20리 길 춘천시장까지 달려가기도 했다.

(202. 소년 뱃사공 이계익-구중관)

 

노촌 선생님의 삶에는 물은 웅덩이를 만나면 반드시 채운 다음에 지나간다는 영과후진(盈科後進)했던 시대가 담겨있다. 어린 시절에는 한학을 공부하던 학생으로, 일제하의 식민지 사회에서는 항일독립운동가로, 해방 후에는 사회주의자로, 6.25전쟁 후에는 잠시 남파공작원으로, 비전향 장기수로 그리고 장기수의 생활을 마치고 나와서 돌아가실 때까지는 통일운동가, 한학자, 선비로 살아가셨다.

(208. 노촌 이구영 선생님과 이문학회-이진영)

 

조관준의 주변에는 문인, 철학자, 언론인, 서예가, 서지학자, 승려 등 별난 사람들이 많았다. 철학 전공인 채현국도 이 집의 단골손님이었다. 청구자 민병산도 이집에 와서 즐겁게 자주 왔다. 방송작가 박이엽, 시인 천상병도 자주 이곳에 온 것으로 안다. 그는 음악광이어서 50년대에 진공관 앰프로 매킨토시를 소유했고, 덴마크제 뱅앤올슨 스피커, 영국산 콰드 오디오 기기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구입한 사람이다.

(222. 알타이하우스와 조관준-이상만)

 

대한민국도 불쌍한 나라이다. 그런데 불쌍한 식구들이 억박적박 어르는 남의 싸움에 군대를 파병하는 불쌍한 나라의 지식인이다. 싸움의 경우를 알 만큼 아는 사람으로서 월남 국민에게 한없는 용서를 빈다는 글이었다. “잘 썼는데 뭘?” 하고 내가 물었다. 숨 한 가닥 내쉴 짬도 없이 천상병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뭣이라꼬? 이 문디이 자슥아! 이 말들은 내가 썼던 말들이 아니라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최모가 있었다. 그가 천상병에게 글을 청탁했다. 시인으로서의 느낌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이었다. 몇 푼 안 되지만 원고료로 막걸리값이라도 하라는 배려가 깔려 있었다. 그 최모 기자가 잘못하면 천상병이 크게 다칠세라, 언턱거리가 될 만한 말들을 순한 말로 수정했던 것이다.

(230. 평화를 쪼다 날아간 파랑새-배평모)

 

놀이라는 말이 소리와 동작이 어울려 있어서. 결국은 우리가 오래된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탈놀이도 들어가고 다양한 놀이가 다 포함되어 있어요. 인제 노래라는 말이 생겨가지고 우리가 쓰고 있으니까. 이럴 때 어떻게 소리의 내용이 노래에 다 충분히 담기느냐 하는 건 우리 글 쓰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소리는 더 오랫동안 사용되었기 때문에 소리에는 더 풍부한 뜻이 담겨있고, ‘놀이라는 데 다 담겨 있는데. 이제 다 죽어버리고 날라리 치는 뜻으로만 된 거라.

(245. 채현국·채희완 대담)

 

지금 나아갈 길이 일과 놀이가 구별이 안 되는 문화가 분명한데. 그리고 지금 교육도 태교만이 아니라 5세 이전의 교육이 굉장히 중요한데, 아직도 교육학계에서 그 중요성을 주장하는 나라를 나는 모릅니다.

그렇게 해 놓으면 자본주의 착취가 절로 못 일어납니다. 놀이 자체가 즐거울뿐더러 일인데. 왜 남을 시킵니까? 내가 하지. 그 즐거움을. 실제로 감옥에서 일 못 나가는 사람들, 몸은 죄수가 되어가지고는 얼마나 일을 하러 가려고 발버둥칩니까? 뻔히 압니다. 왜 우리들이 이렇게 뭐에 지배 당해 가지고 일과 놀이가 이렇도록 가까이하기 힘들도록 분란에 끼어 있는지, 이런 사태를 강요하는 문화로 와 있는지 아주 의심해야 마땅합니다.

(250. 채현국·채희완 대담)

 

더 중요한 것은 공감들이요. 애기들이 같이 있을 때 딴 형제가 울면 두어 달만 된 애부터는 삐죽삐죽 웁니다. 농경생활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 이동문화에서 가지고 있던 일놀이의 합일이 깨지기 시작했듯이. 지금 한 자식만 키우면 그 애기가 언제 공감을 느끼는지, 딴 형제가 울기 때문에 울음을 울던 이 공감 교육이, 교육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어요. 공감적 사태가 절로 감성적인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제 이 기회마저 애기들한테 없다는 것을 주목 안 합니다. 그럼 그 사람은 공감을 어디서 배우죠? 사이코패스라는 이상한 정신병이 이런 공감이 없다 보면 일어날 거 아닙니까? 왜 슬픈지 이치를 알아야 슬픈가? 슬퍼서 슬프지.

(254. 채현국·채희완 대담)

 

술이라는 게 지금처럼 흔해지고 나니까 이제 독이 된 거죠. 너무 대량으로 먹으면 밥도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니 술 같이 귀하던 물건이 이렇게 대량으로 생산되어 가지고 사람을 해치는 거지. 술이 사람을 해치는 게 아니라 대량이 사람을 해칩니다.

사람이라는 건 오만 슬픈 일, 오만 어려운 일, 오만 골치 아픈 일이 다 있을 때, 정말 적은 양의 술이라는 건 얼마나 사람한테 보증적인 보약인데 그것을 전혀 하지 않다니. 술의 문제는 양의 문제입니다. 너무 다량이 공급되면 독약입니다. 완전히. 밥이 독약이듯이.

(258. 채현국·채희완 대담)

 

욕망이 무한한 게 아니라 명예, , 권력이 계속해서 자기 추구를 하는 관성이 붙어요. 욕망은 그렇지 않아요. 실제로 그 사람은 물 한 주전자도 못 마시는데? 그렇잖아요? 물을 어떻게 한 주전자씩 마셔. 이런 큰 컵으로 한 컵 먹으면 두 컵 먹기도 어려운데.

(263. 채현국·채희완 대담)

 

나한테 싫은 일은 남한테 하지 마라. 이거 말고는 정의가 없습니다. 이건 정말 만약 소크라테스를 인용해서 정의라는 소리 하고, 석가모니를 이용해 가지고 정의라는 소리 하고, 공자 이용해서 정의라는 거 전부 다 쌩거짓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정의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함께 지혜롭게 생각해 만들어 가지고 함께 나눠 먹고 하는 쪽이 그게 진짜지 정의하곤 아무 상관도 없어. 정의 개념은 독재자들의 자기 합리화입니다. 지배하는 놈들의 자기 합리화로 정의를 만듭니다. 그 대표 선수가 바로 히틀러야. 다음 더 찜 쪄 먹은 새끼가 스탈린이야.

(265. 채현국·채희완 대담)

 

기억하고 안다는 거는 얼마나 천양지차인데. 그 얼개를 알고, 그 까닭을 알고, 그 모든 걸 이해해야 안다고 하는 거지. 그러나 뭐가 뭐다라고 하는 거는 기억에 지나지 않습니다.

절대로 아는 거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억하는 걸 자꾸 안다고 우기고 살아요. 더구나 실제로 알아봤자 그거 시제는 과거입니다. 아는 순간 이미 과거 시제인데, 고정관념 따로 없습니다. 아는 거 전부가 고정관념입니다.

(272.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자기 독생자를, 예수가 피를 흘려가지고 우리가 다 죄를 씻었는데, 그럼 우리 인간이 예수 죽은 이후에는 악질이 안 나와야 할 거 아닙니까? 근데 왜 악질은 이렇게 더 많습니까? 우리가 신이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276.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제발 미국 이긴다는 말 포기부터 먼저 하십시오. 다민족 국가 이기면 골 아픕니다. 거란족들이 중국 들어가서 거란족 사라지고, 요 금 다 거란 아닙니까. 다민족 국가 먹는 순간에 사라집니다. 청나라, 우리 눈앞에서 청이 사라졌습니다. 중국을 먹어 이겼기 때문에 사라져버렸어.

(279.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저는 그 통일이라는 말 전에 함께 살기같은 말을 하지. ‘통일이라는 말은 분명히 정치 용어입니다. 정부의 통일이거나, 국권의 통일이거나, 국토의 통일이거나, 어쨌든 간에 정치 용어입니다. 굳이 정치 용어 이전에 자연스러운 함께 살기란 우리말이 있는데, 함께 같이 살면 되는 거지,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거지. 통일이라는 말 꼭 쓰는 놈들은 통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안 될 수밖에 없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겁니다. 휴전선에 모든 군인들이 이제부터 안 쏘겠으니 올려면 오고 말려면 마라, 우리는 안 쏜다, 하고 선언해버리면 그만입니다.우리는 안 쏘겠다. 오든 말든 우리는 쏘지는 않겠다. 너거도 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나? 통일이라는 말은 상당히 골치 아픈 우리가 잘 모르는 정치용어입니다.

(281.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평범한 사람일수록 비겁하고, 비루하고, 야비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입니다. 너무 자기 탓하지 마십시오. 인간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진짜 너무 얇지요. 사람에 대한 사랑도, 괄시하고 멸시하고 지배할 줄만 알았지, 정말 인간이 사랑하고 사는 길 이외에는 못 산다는 인식을, 예수가 그렇게 고래고함을 질러도 그거 믿고 따르는 자 몇 안 되거든. 이런 거 잘 생각을 해서 어떻게든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좀 알면, 그래야 또 행복합니다.

(285~286.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여러분 중에 젊은 사람들, 아부지 어무니가 밥 굶게 안 했기 때문에 고마운 걸 모릅니다, 젊은 아이들 탓이 아닙니다. 배가 고파야 아부지 어무니 걱정을 하게 됩니다. 배고픈 아이는 우리 어무이 아부지도 배가 고플 낀데 하면서 생각을 합니다. 먹고 사는 게 아무 걱정이 없으면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아부지 뚜드려 패는 사건 많습니다. 엄마 때리는 놈도 있습니다, 정신병 아니어도. 고마운 줄 모르면 별 일이 다 납니다.

(286.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나처럼 한 80살 되면 죽으면 됩니다. 왜 자꾸 살라고 수술을 받고 왜 그래요? 좀비 될라고 지가 빽 쓰는 겁니다. 실제로 이번에 내가 해보니까, 모든 의학과 약학은 좀비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지 인간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게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내가 이번에 당해보니까 그렇습니다.

(287. 부산무위당학교 강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건달할배 채현국과 친구들>은 말 그대로 시대의 어른채현국과 그 친구들과 함께했던 여러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워하며 쓴 글들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그것이 단순한 회고담이나 추억담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0년대와 그 이전, 그리고 1980년대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이 경험했던 현대사의 장면들이 책의 갈피에 녹아들어 있다. ‘건달할배라는 말이 시사하는 바대로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질곡과 고난의 한 시대를 살아내면서 그 요구와 아픔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대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채현국 선생이 인연을 맺었던 이들의 스펙트럼이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다양하고 광범하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평소 선생이 어떤 이념이나 정치 성향에 매이지 않고 사람됨에 집중한 것과 연결되는 것 같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든 관계없이 얼마나 곧은가가 사람을 보는 기준이었다. 그래서 재벌그룹 총수나 정보기관의 수장, 청와대 수석 비서관이나 이름 높은 문필가에서 변방의 장삼이사까지 두루 임의롭게 사귈 수 있었던 모양이다.

끝자락 부록에 실은 좌담과 강연은 선생이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알려주는 것들이다. 세상의 상식과 고정관념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과 경험과 사고를 바탕으로 삼아 자유로우면서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결론을 끌어내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리 내치고 저리 달리는 발언에서는 선생의 호연지기와 자유분방함도 느껴진다. 70년 지기 백낙청 문학평론가는 그는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완전히 확실치 않은 것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단정적인 발언들이 통쾌할 적이 더 많았으므로 나는 굳이 이견을 내고 다투려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채현국 선생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뱉는 말들이 모두 이치에 맞아야 한다면 스트레스를 얼마나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 어디에도 완전한 것은 없고 사람들이 줏대 있게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고 힘이 되는 말이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주제어: 채현국, 인물, 현대사, 민주화운동, 꼰대, 어른, 쓴맛, 단맛, 민병산, 박이엽, 이구영, 천상병, 이계익, 조관준

분류: 사회과학, 한국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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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5. 16:59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2523

가격 : 15,000

반양장본 | 276| 140*200mm

ISBN 979-11-86351-22-2(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0194

www.idomin.com

 

저자 : 한영순 / 편집자 : 고은광순

 

책 소개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참으로 험한 나날을 살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일제 패망 이후 신생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전쟁과 혁명과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믿기 어렵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숱하게 보고 들으며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굵직굵직한 것만 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랍니다. 먼저 6.25 전쟁 직후 전국 곳곳에서 국민보도연맹을 빙자해서 자행한 최소 10만 명 규모의 민간인 학살을 첫머리에 꼽을 수 있습니다.

19512월 지리산 산골에서 대한민국 정규 군대가 정식 지휘 계통을 통해 명령을 받아 같은 대한민국의 민간인을 마을 단위로 모아놓고 총질해 죽여버린 경남 산청·함양과 거창의 집단 학살 사건은 어떠한가요?

19718월 서해의 외딴 섬 실미도에서 북파 공작을 위해 훈련받던 부대원들이 집단 탈출하여 인천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면서 벌어진 군인·경찰과 민간인·부대원 등 50명가량이 목숨을 잃은 실미도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 독재자 박정희가 살해당한 이후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가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잠재우고 권력을 연장시키기 위해 그해 5월 광주 일대에서 벌였던 엄청난 학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와 같이 좀처럼 믿기 힘든 이런 사건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지배자들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실상을 공개하지 않았고, 그 탓에 길거나 짧은 세월 동안 비밀에 부쳐져 왔다는 것입니다.

805월의 광주 학살은 아주 가까운 시기에 겪은 사건이다 보니 그 봉인이 1982년부터 해제되기 시작했지만, 나머지 사건들은 일러도 1990년대 후반 늦으면 2010년대 전반에도 그 비밀의 빗장이 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사건들은 비밀의 빗장이 대부분 풀렸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드높은 민주 역량이 이룩한 위대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군데 남은 데가 있다면 그것은 경제의 영역일 것입니다.

부정한 지배집단의 정권 장악과 유지 욕심이 만들어낸 이른바 어떻게 조성되어 꾸준히 재생산되어왔는지 이제는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일부 드러난 것처럼 그 돈다발의 규모는 어떻게 현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지? 하고 되물을 정도로 엄청날 것이고 그 내막은 일반인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를 얼룩지게 만든 사건들이 모두 그랬지 않습니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하나같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저자 한영순과 가족이 겪은 일들도 언젠가는 분명한 사실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전모가 조금만 더 밝혀지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의 소재가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저자 소개

 

저자: 한영순

 

1955년 부산 가야동에서 한희승 아버지 백금남 어머니의 일곱 번째 막내딸로 출생.

민주시민연합에서 활동

관청피해자모임 부회장

현 박정희심판국민행동 대표

국민의힘당 서정화 상임고문 24번 고소

전 민주당 박주선 의원 11번 고소

재경부 윤증현 장관 15번 고소

 

편집자: 고은광순

 

1955년 서울 명륜동에서 고주상 아버지 은예동 어머니의 다섯 번째 막내딸로 출생.

이화여대 사회학 전공 중 박정희 긴급조치로 2회 구속.

한의학 전공.

충북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 행복마을만들기 운영위원장.

평화어머니회 상임대표.

 

 

목차

 

추천사 / 8

프롤로그-부모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 18

 

1. 내 부모님

1) 영순아, 커텐 닫아라!-34일 이어진 어머니의 통곡 / 21

2) 아버지는 함흥의 유관순 / 23

3) 부모님은 함흥의 갑부 / 25

4) 해방 후 고향을 떠나다 / 26

5) 6.25 전쟁이 터지자 거제도 군부대 안에 식당 운영 / 27

 

2. 박정희를 만나다

1) 박정희, 부모 앞에 나타나다(1950) / 29

2) 구두를 닦아 아버지 앞에 놓아주던 박정희 / 32

3) 광목치마 자루에 담아서 3년간 건넨 돈 / 33

4)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박정희(1956) / 34

5) 전쟁 통에 후방에서 대통령 될 궁리만 하던 박정희 (1950-1956) / 35

 

3. 어머니의 고난

1) 어쩌다 불고기도 먹었지만 / 38

2) 이후락의 방문 / 40

3) 박정희 선거운동원이 되었던 어머니 / 41

4) 청와대 특사 서정신의 요구 -이민 가라! / 42

5) 김영삼을 만나고 온 어머니 구속되다 / 44

6) 이후락의 지속적이고 위협적인 관리, 발설하면 죽는다 / 46

7) 중앙정보부원은 다 아는 사실-육영수는 박정희가 죽였다 / 49

 

4. 7남매 이야기

1) 장녀 영자 / 56

2) 차녀 영옥 / 59

3) 장남 인채 / 62

4) 삼녀 춘자 / 65

5) 차남 경채 행방불명 / 68

6) 사녀 명순 / 71

7) 오녀 영순-해결사가 되어야만 하는 내 운명 / 73

 

5. 박정희 사망 후에도 소모품으로 이용되는 한춘자

1) 박정희 이후락의 부하, 김종찬의 계획적인 접근 / 78

2) 한춘자, 죽은 자의 고소로 구속되다 / 82

3) 도청되는 한춘자 전화, 찾아오는 하나회 사람들 / 86

4) 밤에 들어와 마약주사를 놓는 그들 / 89

5) 춘자 언니 계좌 수십 수백 개 / 89

6) ‘인감 장사소모품 한춘자의 불행한 호텔살이, 여관살이 / 94

 

6. 구 안기부 요원과 신 국정원 요원의 충돌

1) IMF 여파로 쓰러진 나, 춘자 언니와 생활하다 / 103

2) 구 안기부 요원들의 23천억 원 사기약탈 미수 사건 / 104

3) 23천억 원의 정체를 내게 캐묻는 검사 /106

4) 재떨이로 호텔 유리창을 깨다 / 114

5) 그 와중에 드러난 어마어마한 차명계좌 834/ 115

 

7. 무능한 진보 정부

1) 노력은 하였으나? / 120

2) 혁명적 조치 없이 비자금은 정리되지 않는다 / 120

 

8. 인간말종 흡혈귀 서정화

1) 이 책의 키맨 서정화 / 124

2) 1997년부터 한춘자에게 접근한 한나라당 서정화 의원 / 126

3) 윤증현이 끼어드는 이유 / 127

4) 박주선이 끼어드는 이유 / 130

5) 아버지 돈을 찾을 희망에 들떠 있었던 형제들 / 130

6) 한춘자는 왜 안 주는 건데? / 141

7) 5조 원 먹튀- 미꾸라지 서정화, 박주선, 윤증현 / 142

8) 브로커와 인채 오빠 / 151

9) 협박하는 안기부 3차장 최준택 / 153

10) 한영순, 투사로 변신하다 / 159

 

9. 처절하게 짓밟힌 자구책

1) 채무자(박정희와 관리자들) 쪽 사정 / 165

2) 채권자1(한춘자) 쪽 사정 / 167

3) 채권자2(막내 한영순) 쪽 사정 / 169

4) 이후락, 악착같이 빨대 꽂다 / 170

5) 이후락, 죽기 전까지 만나달라고 여러 차례 사정하다 / 174

6) 2009년 이명박 대통령에게 청원서 낸 후 덮쳐온 죽음의 그림자 / 175

7) 안기부 출신 윤제영 변호사, 우리 청와대 민원 내고 사망 / 177

8) 박주선과의 싸움 / 190

9) 대검찰청 앞 1인 시위 3개월 / 216

 

10. 돈세탁은 이제 그만 통장을 파헤쳐라

1) 재경부는 7조 원의 재가확인서 원본을 공개하라 / 218

2) 한춘자가 죽었다고?- 금감원의 엉뚱한 답변 / 219

3) 영옥 언니 경찰 아들- 번개탄으로 자살 / 221

4) 재단을 통한 돈세탁과 보수우파 키우기 / 223

5) 춘자 언니 최근 근황 / 225

6) 숨긴 돈을 통치자금, 국가비자금이라 말하지 마라 / 232

 

에필로그-순이들의 대담 / 236

제보를 바랍니다 / 262

독재자가 조작한 간첩 사건들 /264

주요 사실 관련 연대표 / 274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박정희는 자기가 대통령이 될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빌려달라고 아버지에게 간청했다. 박정희의 부하 강 대위는 자기 상사의 야망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고 주변에 돈이 많다고 알려진 아버지와 의도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것이다. 아버지는 박

정희와 함께 총포재생창장, 타이어재생창장 및 군 수뇌부하고도 자주 술자리를 하셨다.

- (본문 32, 구두를 닦아 아버지 앞에 놓아주던 박정희)

 

아버지는 흰 광목치마로 만든 커다란 자루에 흰 광목 끈으로 묶은 돈을 담아 1953년부터 한 자루씩 1955년까지 일 년에 한 번씩 세 번을 건넸다고 한다. 박정희는 어머니가 일하시는 사병식당에도 찾아와 사모님 신세 잊지 않겠다고, 깊이 허리를 숙여 여러 차례 인사했다. 함께 술을 마실 때면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서정귀는 기업체 사장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 (본문 33, 광목치마 자루에 담아서 3년간 건넨 돈)

 

1967. 박정희는 재선을 위한 준비에 한참이었다. 두 명의 남자가 소고기를 묵직하게 사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조용히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형제들은 다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박정희가 죽고 나서야 어머니는 그들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이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빌려간 돈을 받으려면 박정희가 다시 대선 승리를 해야 한다며 최대한으로 표를 모아달라고 어머니에게 사정을 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한 번만 더 믿어보라고 하며 다시 대통령이 되어야 원만하게 돈을 줄 수가 있고, 어머니도 편히 돈을 쓸 수가 있다고 했다.

(본문 41, 박정희 선거운동원이 되었던 어머니)

 

어머니가 출소한 지 얼마 안 되어 이후락이 보냈다는 정보부 요원이 찾아왔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어머니에게 빌려간 돈을 셋째 딸인 한춘자 명의의 통장에 넣었다면서 어머니 눈앞에 통장 하나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있기 전에는 통장을 줄 수 없다며 앞으로 어머니의 모든 행동을 중앙정보부에서 감시할 것이니 돈을 받고 싶으면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이며 아무나 만나지 말고 죽은 듯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 돈의 뿌리가 남편 한희승의 돈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자식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것이며 발설할 경우 모두 죽을 것이라고 단단히 협박을 했다.

(본문 47, 이후락의 지속적이고 위협적인 관리, ‘발설하면 죽는다’)

 

춘자 언니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전직 청와대. 전직 재경부, 전직 금감원, 전직 중앙정보부, 안기부 근무자들로 그들은 하나같이 보수정당의 하수인들이고, 그들은 하나같이 춘자 언니 통장의 잔고증명이나 통장거래내역을 가지고 와 보여주며 이 돈은 대통령이 승낙하면 쓸 수 있다. 쓰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주군의 지시에 의해 춘자 언니 인감, 위임장 등을 받아가서 돈을 빼다가 재단에 넣고 그 이익으로 자신들의 몫을 챙기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기 주군이 중앙정보부/국정원 따위의 세도를 가졌다고 해서 아주 시건방지게 내 언니 춘자 언니를 마치 화류계 여성 대하듯 하대하기도 했는데 옆에서 보기에 무척 화가 났다. 언니는 자기 나름의 목적이 있기에 상대가 예의 없이 대해도 돈이 되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꼴 저 꼴 다 감내하며 살고 있다.

(본문 87, 도청되는 한춘자 전화, 찾아오는 하나회 사람들)

 

같은 달 709:20 무렵 서울 은평구 남가좌동 10223에 있는 볼래로 커피숍 앞길에서 피고인 황주연, 박형석, 윤향수, 이창순, 이현우는 위 한춘자의 운전기사인 피해자 김정송에게 조사할 것이 있다며 강제로 서울325341호 승용차 뒷좌석에 태운 후 피고인 박형석이 위 자동차를 운전하며 피고인 황주연과 무전기로 김정송을 달았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리 하나를 잘라 버리겠습니다.”라고 교신을 하고, 피고인 이현우, 윤향수는 위 피해자의 팔을 잡고 고개를 숙이게 한 다음 양옆에 앉아 주먹으로 위 피해자를 때리고, 같은 날 13:30 무렵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서서울호텔 503호실로 위 피해자를 데리고 가서 윤향수, 이창순, 이현우, 김인태는 피해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여 같은 달 811:00 무렵 피고인 이현우는 위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피고인 박형석은 같은 황주연에게 전화로 위 피해자를 감금한 사실을 보고하고, 피고인 황주연은 같은 홍장용에게, 같은 홍장용은 같은 고석주에게 각 이를 보고하고, 다시 위 피해자를 같은 호텔 512호실로 데려간 다음 수건으로 위 피해자의 눈을 가리고, 위 피해자를 상대로 약 2시간 동안 위 한춘자에 대해 조사하면서 피고인 황주연 등은 주먹과 발로 위 피해자의 온몸을 폭행하고, 피고인 박형석, 윤향수, 이현우, 김인태는 피해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여 같은 달 811:00 무렵까지 약 26시간 가량 위 피해자를 감금하였다.

(본문 111~112, 98고단 6654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판결문 일부)

 

첫 만남 당시 서정화는 춘자 언니한테 나는 한동빈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언니는 TV에서 서정화 의원을 보았기에 그가 정치가로서 신분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려고 했단다. 서정화 의원의 보좌관 강홍석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서정화 의원의 지시대로 춘자 언니와 자주 만났고 춘자 언니는 강홍석을 신뢰했기에 많은 정보를 주었다. 언니는 자신의 통장에 돈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돈을 사용하기 위한 재가확인서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힘있는 권력자여야 한다고 믿었기에 서정화 의원의 개입을 반가워했다. 언니는 그의 지시대로 7월에 재경원에 재가확인을 받기 위한 신청서를 접수했다.

얼마 뒤 언니한테 72150억 원 중 51천억 원이 실명전환 되었다며 이에 관한 재가확인서(통장에 돈이 있는 것을 사용해도 좋다고 재정경제원이 허용하는 확인서 *편집자 주)가 인편으로 도착하였다. 재정경제원 실명제팀장 윤증현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재가확인서를 손에 입수한 한춘자는 서정화 의원 보좌관 강홍석이 요구하는 대로 또 다른 문건들을 준비해주었다.

(본문 126~127, 1997년부터 한춘자에게 접근한 한나라당 서정화 의원)

 

그러나 한 달 후면 통장에 들어온다는 돈이 춘자 언니에게는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는 서정화의 보좌관 강홍석, 박주선의 보좌관 김광성, 윤증현의 부하 윤종한 등에게 연락을 해 보았으나 모두 연락두절. 인채 오빠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주군(?) 서정화, 박주선, 윤증현 역시 언니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6~7개월 만에 나타난 하수인(대리인)들은 통장에 돈이 안 들어왔다는 한춘자의 말에 그럴 수가 있냐?’ 하며 함께 놀라는 척하고 해결사로 나설 듯 또다시 한춘자에게 인감증명을 받아갔다. 그리고는 역시 깜깜 무소식. 박주선의 보좌관 김광성은 3년 뒤 사망했다.

(본문 141, 한춘자는 왜 안 주는 건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처음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 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 원고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처럼 믿기지 않는 내용이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거듭 읽어보면서 탄탄한 사실관계와 긴밀하게 이어지는 논리 구조를 나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었다는 한 당사자의 사연과 주장만 있는 게 아니고 가족 등 그와 연관된 다른 인물의 얘기도 어우러져 있었다.

또하나 이것이 사실이 아닌 허구라면 저자 한영순으로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도 생각이 미쳤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재판을 걸면 그 과정에서 허구가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본인이 입을 손해가 클 것이 뻔한데도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여태 봉인돼 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마지막 비밀을 열어젖히는 첫 관문이 될 수 있다. 금융실명제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투명인간이 되어 전국을 떠돌며 우리 경제를 좀먹고 있는 검은돈의 실체는 무엇일까? 악의 꽃을 피우고 시들지 않도록 양분을 공급해온 검은돈의 뿌리는 저자 한영순이 겪은 일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얽혀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장

 

 

추천의 글

 

이 책은 박정희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내려온 정치 비자금 일부를 밝혀 주고, 어떻게 관리되어 왔는 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막대한 정치 비자금의 운용은 수조 단위의 차명계좌들을 필요로 했고, 이를 둘러싼 권력을 지닌 정치인들의 모습이 국정원이나 검찰과의 연계 속에 차분하게 드러난다.

다루고 있는 주제의 특성상 일종의 음모론으로 치부되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인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기에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증빙 자료의 충실함과 더불어 과거 박정희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공식 확인할 수 있는 인물들의 등장이 있기 떄문에 최소한의 객관적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더욱이 지금도 활동 중인 잘 알려진 현역 정치인들을 포함해 유명인들의 실명과 그들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기에 단순한 상상과 허구로 치부할 수 없다.

무엇보다 박정희 비자금 관리를 위한 차명계좌가 800개 이상이며, 100조가 넘는 통장을 가진 사람이 9명이라는 구체적 자료가 차명계좌 주인들의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나름 신빙성이 확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희종(서울대 교수,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상임대표)

 

대한민국은 도약과 추락의 가능성을 동시에 가진 나라이다. 박정희 비자금의 흑역사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며 이를 유지·온존시키는 부패 탈법의 기득권 카르텔의 숨통을 끊어내지 않고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불가능하다. 그들만의 부패 탈법 기득권 카르텔이 천문학적 부동산투기의 저수지와 사금고 역할을 하며 부동산투기공화국으로 만들어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검찰정상화법에 이어 이제는 박정희 비자금의 흑역사를 온 국민 앞에 드러내고 그 흑역사의 패거리들을 국민법정에 세워 국민적 심판과 함께 사법적 단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아 왔던 부패 탈법 기득권 카르텔을 끊어내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온 국민이 이 책을 통하여 지독한 불평등의 현실을 만들어낸 부패 탈법 약탈의 기득권 카르텔의 민낯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깨인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부상하였으면 좋겠다. 특히 현대사의 흑역사를 모르고 자라온 청소년들이 읽고 이들이 주역이 되는 시대의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왜 한국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헬조선의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에 NO 결혼 & NO 출산 파업을 하는 청년들이 꼭 읽고 헬조선을 넘어서기 위해 토론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임진철(직접민주주의마을공화국 전국민회 상임의장)

 

박정희에게 비자금이 있다는 소문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오리무중이었다. 이른바 통치자금이라는 이름의 이 비밀에 싸인 돈이 박정희 사후(死後)에는 누구의 손에 들어가 어떻게 쓰였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 실체의 일부를 우리에게 고발하고 있다. 게다가 이 돈의 핵심은 남의 돈을 강탈한 것이라는 점이다.

책은 생생한 서사(敍事)로 되어 있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누가 주도했으며 무슨 사건들이 이어졌는지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건 한편의 뛰어난 르포 문학이면서 또한 가감 없는 역사의 기록이자 이 시대의 절박한 증언이다. 그건 감출래야 더는 감출 수 없는 박정희, 그리고 그가 휘두른 통치 권력의 야만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그에 더하여 누가 어떤 통곡을 쏟아내야 했는지 절절한 울림을 지니고 있는 저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이게 과연 사실인지 묻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질문이 우리가 원하는 시작이다. 사실인가? 실체가 있단 말인가? 누가 피눈물을 흘렸는가? 어떤 세력들이 이 진실을 은폐하고 계속 침묵 상태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래서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저들에게는.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중한 목소리. 이 목소리는 오늘의 역사가 왜 이렇게 비틀거리고 있는지, 어찌해서 악의 꽃은 시들지 않고 계속 저렇게 자신들을 세상에 과시하면서 번창하고 있는지 그 까닭을 알게 해줄 것이다.

-김민웅(‘촛불승리! 전환행동상임대표. 전 경희대 교수)

 

이 끝이 없는 적폐들과의 싸움을 끝낼 수 있는 표적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책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정의와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용감히 싸우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 주는 이 책을 이 시대의 개혁 시민 여러분들이 부디 많이 읽어주시고 같이 싸워주셨으면 한다.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 어려운 투쟁의 길을 결코 소수가 힘들게 가도록 두고 싶지는 않다. 같이 승리하고 같이 승전보를 울립시다!

-최수연(평범한 민주시민. 개딸)

 

주제어: 한국사, 역사, 현대사, 박정희, 비자금, 육영수, 서정화, 이후락, 윤증현, 박주선, 안기부, 중앙정보부, 중정, 국정원

분류: 한국사, 역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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