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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파워가 낸 책' + 61

Date : 2023. 12. 15. 16:39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한글세대를 위한 함안 금라전신록 산책

 

 

제목 한글세대를 위한 함안 금라전신록 산책

펴낸날 2023127

가격 16,000

반양장본 | 168152*225mm

ISBN 979-11-86351-63-5(0390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책 소개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금라전신록

 

금라전신록은 함안이라는 지역을 바탕 삼아 만든 저작물이다. 지역을 중심에 놓은 문집은 조선시대는 물론 고려시대까지 통틀어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흘러가고 지역이 메말라가는 지금의 현실에서 이 책이 지니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금라전신록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행적과 시문은 함안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아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행적들이 적지 않다.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도 풍성하다.

지금 관점으로도 여전히 필요하고 뜻깊은 부분을 먼저 추렸다. 재해석이 가능하거나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만하거나 재미있게 읽힐 거리도 챙겼다.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하고 새롭게 의미를 더하면서 설명과 해설을 입히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1999~2023년 경남도민일보 기자

 

저서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비매품)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

<가야로 가야지-쉽고 재미있는 가야 역사>

 

 

목차

 

머리말_이 좋은 고전을 기억 너머로 보내지 않기 위하여

 

1장 인물

1. 어변갑의 뛰어난 글재주

2. 글솜씨는 뛰어났지만 불행했던 조욱

3. 단종을 위하여 숨어 살았던 조려

4. 조려의 후손은 벼슬을 하지 않았을까?

5. 그러면 고려 충신의 후손은 어떻게 했을까?

6. 2대에 걸친 사랑 이야기

7. 옛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8. 용퇴가 왜 중요할까

9. 선물 받은 귀한 은어를 먹지 않은 이유는

10. 죽을 때 웃을 수 있다면

11. 유머 뒤에 우뚝했던 기개

12. 소년급제는 위험하다

13. 서울 조정에서 사투리를 썼다

14. 소귀에 경 읽기를 한 까닭은

15. 착한 사람은 자기보다 어려도 공경했다

 

2장 느낌과 생각

1. 비둘기 시

2. 달팽이 시

3. 낙방의 씁쓸함

4. 아들의 출세가 기쁜 까닭

5. 늙음을 노래함

6. 자식을 잃은 슬픔

7. 난리통에 고향 생각

8. 가야의 후예라는 뚜렷한 인식

9. 황은이 맞는 걸까?

10. 까마귀가 어리석나 사람이 어리석나

11. 언제나 좋은 물 이야기

 

3장 풍속

1. 천둥번개는 하늘의 경고였다

2. 옛날 결혼과 요즘 결혼은 무엇이 다를까

3. 지금과 달리 흔했던 처가살이

4. 부모님 봉양을 위해 외직을 한다

5. 친인척이 오자 벼슬 자리를 바꾸었다

6. 부모가 죽으면 벼슬을 그만두었다

7. 부자간의 벼슬 바꿔치기

8. 이 정도는 아파야 벼슬을 그만두지

9. 부모 초상에는 몰골이 수척해야 했다

10. 그때도 극심했던 서울 중심주의

11. 배척되지 않는 불교, 까닭은?

 

4장 금라전신록

1. 금라전신록이란 무엇일까?

2. 금라전신록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3. 금라전신록을 왜 편찬했을까?

4. 금라전신록인쇄는 언제 되었을까?

5. 금라전신록에서 금라는 무엇일까?

6. 금라전신록을 편찬한 조임도는

7. 자료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8. 역적 김안로의 글을 전부 실은 까닭은

9. 묘갈명·묘비명·묘지·신도비명 등은 요즘으로 치면 무엇일까?

 

부록 : 금라전신록·하권 목차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바람이 세 차례 거세게 몰아치니 고기가 갑옷으로 변하는데 둘씩 짝을 지으려면 원래 실력이 어금버금해야 하지만그대 이름만 용문 위에 올라도 그만이지.”

이 시는금라전신록집현전 직제학 어변갑 행장에 들어 있다. ‘세 차례 몰아치는 바람은 세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과거 시험 절차를 비유한다. 다음에 나오는 고기()가 갑옷()으로 변한다()’는 한자로 쓰면 바로 어변갑(魚變甲)이 되고, 아래로 이어지는 내용은 바로 그 어변갑이 2등과 큰 격차를 보이며 1등 장원을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의 용문(龍門)은 과거 합격을 뜻한다. (본문 16)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렵고, 죽은 뒤의 세상을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렵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떨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다. 그래서 이렇게 죽음을 앞두고서도 의연했던 옛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성혼(1535~1598)이 친구 조감을 위해 쓴 앞의 묘갈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되새길 만한 내용이다.

죽고 사는 즈음에도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인품이 높고 삶을 대하는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힘쓰고 원한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다.”

(본문 50)

 

동생 집의 불쌍한 비둘기

암컷은 새끼를 사랑하고 수컷은 암컷을 사랑하여

구구하는 것이 주인의 사랑에 보답하는 듯하구나

하루아침에 잇달아 고양이 입에 들어갔네

새장을 소홀히 했으니 누구의 잘못인가

고양이를 탓하겠나 비둘기를 탓하겠나

단속 제대로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지.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동물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둥지를 만들어주고 애지중지 기르던 비둘기가 고양이 먹이가 된 후 느꼈던 안타까움이 잘 드러난 시다.

어변갑이 쓴 이 시에서 구구 하는 것이 주인의 사랑에 보답하는 듯하구나라는 대목을 보면 비둘기를 기르면서 누리는 즐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금은 집에서 기르는 일이 드문 비둘기가 반려동물이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본문 66~67)

 

 

본문에 나오는 는 성혼(1535~1598)이라는 인물이다. 조감의 장인 백인걸을 스승으로 모시고 같은 집에서 다섯 살 많은 조감과 동문수학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적은 글이다.

성혼은 조정견의 아들 조감과 백인걸의 딸이 어떻게 해서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졌는지를 전해주고 있는데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딸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 아버지가 훌륭해서 며느리로 삼았다니 요즘 20~30대가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성혼의 아들과 조감의 딸이 맺어진 사연은 더더욱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성별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양쪽 아버지의 결정만으로 결혼이 성사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데에는 시대 상황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결혼의 주체가 당사자 개인이 아니라 가문이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남자와 여자 개인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게 당연한 세상으로 바뀌었다.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는 결혼이 갖는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본문 104~105)

 

 

옛날에는 부모 초상이 나면 술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삼년 동안 죽만 먹는 것이 기본이었다. 전복죽이나 잣죽 같은 영양이 풍부한 것 말고 쌀을 갈아서 만든 묽은 죽이었다. 몰골이 많이 수척해져야 초상을 제대로 치렀다는 인정을 받았고 본인 역시 도리를 다하려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과 마지막 떠나는 길에 예의를 다하고자 하는 심정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효도인지는 의문이다.

스승 장현광(1554~1637)이 제자 조임도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되새겨볼 만하다. 그는 1622년 어머니 상중이던 조임도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자네의 상례가 중도를 넘어 견디기 힘들다고 들었네. 효성을 다하는 도리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몸을 잘 보존하는 한편으로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선조를 추모하는 일을 길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네.”(본문 124~125)

 

 

함안에는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이라는 책이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시대인 1639년에 함안의 선비 조임도가 갖가지 자료를 모아 묶어낸 책이다. 책의 성격과 내용은 제목 금라전신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먼저 금라는 함안을 가리키는 옛날 별명이다.세종실록 지리지(1452)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그리고고려사(1454)에 이르기까지 아시량(阿尸良아나가야(阿那伽倻함주(咸州사라(沙羅)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별호이다.

전신록에서 은 전해 온다는 것이고 은 믿음직하다는 뜻이며 은 기록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믿음직하게 전해져 오는 기록이 전신록이다. 금라까지 합하면 함안에 전해오는 믿을 만한 기록을 담은 책이금라전신록이다. (본문 136)

 

 

금라전신록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역을 중심에 놓고 여러 인물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주관에 휘둘리거나 감정에 치우쳐 아무 이유 없이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지역사회로부터 곧바로 지적과 외면을 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조임도는 원칙을 정하고 엄격하게 적용해 취사선택을 했다. 서문에 나와 있는데 인물과 문장이 모두 귀중하면 당연히 싣고 인물은 훌륭하지 않아도 문장이 사랑스럽거나 문장은 뛰어나지 않으나 인물이 아까우면 채택했으며 또 인물을 버릴 수 없는 경우는 문장이 전해지지 않아도 그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당성, 어느 누구로부터도 틀렸다는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객관성, 과거와 당대의 훌륭한 인물과 문장을 남김없이 후세로 전달하는 효용성 셋을 두루 아울러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본문 139)

 

 

지역의 수령이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함안의 훌륭한 군수였고함주지의 편찬을 주도한 한강 정구를 보기로 들 수 있다. 그는 1586년 부임하자마자 사람을 시켜서 함안에 있는 훌륭한 인물들의 무덤을 찾아가 다듬도록 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제사까지 올렸다.

박한주는 연산군의 폭정에 충언을 아끼지 않다가 미움을 산 끝에 유배길에 올랐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자신보다 앞서 창녕군수를 지낸 선배인데다가 그 행적과 인품을 존경해서 그 무덤을 찾았다. 이밖에 이교·이원성·다물의 무덤도 찾아가 돌보고 다듬게 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모두 효성이 지극한 효자들이었다.

정구의 이런 행보는 당연히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면서 새로 온 군수는 충성과 효도를 다른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소문도 나게 되고 새로 부임한 고을에서 깍듯하게 예우를 갖추는 예의 바른 인물이라는 평판도 얻을 수 있었다. 정구 군수에게 무덤 참배는 고을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본문 162)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이 좋은 고전을 기억 너머로

보내지 않기 위하여

 

함안이 기록의 고장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함주지·함안총쇄록과 더불어 손꼽히는 것이금라전신록이다.함주지는 수령과 지역 유지들이 함께 편찬한 읍지이고 함안총쇄록은 수령 개인이 기록한 일기이며금라전신록은 함안 출신 인물들의 훌륭한 행적과 뛰어난 시문을 한데 모은 책이다.

 

금라전신록에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아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행적들이 적지 않다.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도 풍성하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금라전신록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과금라전신록에 전해지는 여러 좋은 내용을 함께 알리는 것도 뜻깊은 일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문을 곧이곧대로 옮기기보다는 앞뒤 맥락을 감안하여 좀 더 알기 쉽도록 적절하게 가감첨삭했다. 한문체 특유의 산만하거나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생략한 대목도 적지 않다. 한자는 최대한 적게 쓰려고 했으며 특히 인명은 이나 선생으로 대신 부르는 것을 없애고 모두 이름 석 자로만 표기해 가독성을 높였다.

 

텔레비전 같은 대중 매체 덕분에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대중화되고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에 초점을 맞춘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금라전신록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행적과 시문은 함안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서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주제어: 함안, 역사, 풍속, 금라전신록, 함주지, 함안총쇄록

분류: 함안, 역사, 문화, 지역,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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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12. 15. 16:37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가야로 가야지

 

 

제목 가야로 가야지
부제 쉽고 재밌는 가야역사

펴낸날 2023925

가격 18,000

반양장본 | 248152*225mm

ISBN 979-11-86351-60-4(0391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책 소개

 

대중적인 언어로 알기 쉽게 정리한

최초의 전체 가야 역사서

 

20239월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되었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주변국과 공존하면서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해 온 가야를 잘 보여주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라는 좋은 평가를 받아 오랜 염원 끝에 기다리던 결실을 맺었습니다.

 

가야의 역사는 책을 통해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찾아 상상력을 펼치면 가야사는 훨씬 실감 나게 살아날 것입니다. 현장 탐방을 할 때 안내서로 활용해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아울러 가야를 알리고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기원도 함께 담았습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장

저서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비매품)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

 

 

 

목차

 

머리말

 

1부 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

훑어보기

가야는 이름 부자

대표하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가야의 활동 무대는 어디까지?

가야의 시작은 언제부터?

 

가야의 역사(전기)

철의 왕국 가야의 탄생

가야의 화폐는 무엇이었을까?

가야 철소재의 인기 비결은

김수로와 석탈해 대결의 의미는?

언제까지나 걸을 순 없었던 꽃길

농수산물도 풍성했던 철의 나라

중국과 일본의 중계기지 가야

고구려의 낙랑·대방군 함락

위기는 기회로, 기회는 위기로

가락국이 지다

 

가야의 역사(후기)

새롭게 떠오르는 가야

대가야는 어떻게 가락국을 대신했을까?

미니어처 농기구는 어디에 쓰였을까?

대가야의 번성과 쇠락

가라왕 하지의 사신은 어떻게 중국에 갔을까 ?

언제나 넘버투였던 아라가야는 강했다

아라고당회의를 개최하다

가야의 종말

 

궁금한 이야기

가야 기록이 부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포상팔국은 어디에?

포상팔국은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

과거가 지금에게 건네는 이야기, 순장

순장에도 공식이 있었다

규모가 남다른 대가야의 순장

순장, 그 시작과 끝은

최강 군사력은 어느 가야였을까?

말의 일본 전래와 대가야

말은 화물차다? 장갑차다?

금공품도 전해주고

 

 

 

2부 가야고분군을 찾아서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봉만큼 신성했던 대성동고분군

무덤 위에 무덤을 만들다

봉분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도

전국 유일 가야 전문 국립김해박물관

쓰레기장을 품은 봉황동 유적

대성동고분군과 짝을 이루는 왕성 자리

대성동과 어깨를 겨룬 양동리

국제 교류의 중심 김해는 항구 부자

조선 도로보다 튼튼했던 가야 도로

가락국에서 가장 신성한 구지봉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의 원래 모습은?

부부인데도 무덤이 떨어져 있는 까닭은?

 

경상북도 고령군

산성과 왕궁, 그리고 고분군

높이는 그대로인데 지름은 작아지고

공유에서 전유로

신라에서 백제로 다시 신라로

처음엔 아래에 나중엔 위로

무덤에서 웬 음식물이

최초의 왕릉급 제73호분

최초의 석재 대형분 제75호분

가장 크고 도드라진 제5호분

특이한 순장으로 유명한 제30호분

부부 두 쌍이 나란히 제32~35호분

순장이 가장 많은 제44호분

빈 순장곽은 무슨 연유로?

45호분은 제44호분의 왕비?

불교 수용의 증거 고아리 벽화고분

마지막 왕릉급 고아2리 고분

대가야 흙방울에 담긴 건국신화

새 위계에 걸맞게 건국신화를 새롭게

전라북도 남원시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전라권 최초의 가야계 국가 사적

중국산 청동거울과 백제산 금동신발

다른 가야의 여러 문물도

활발한 교류의 원인은 풍부한 철 생산

여러 우여곡절이 담긴 제36호분

전라권 가야가 처음 확인된 월산리고분군

온전하게 출토된 중국산 제품들

운봉고원 최초의 대가야계 고분은

바뀐 양식과 바뀌지 않은 양식

 

전라북도 장수군

백두대간 서쪽의 유일한 가야 세력

동촌리고분군의 말편자

장계분지 가야 고분의 집게·망치·모루

운봉고원보다 많은 제철유적

봉수의 종착지는 장계분지

전북 동부 가야의 자율성은 얼마나?

 

경상남도 합천군

이주민이 주인이 되다, 옥전고분군

신라계와 백제식은 무슨 이유로?

구슬이 지천으로 널린 구슬밭

작지만 다채로운 합천박물관

살기 좋았던 자리, 성산토성

해인사 국사단에 모셔진 정견모주

월광태자는 월광사지를 거닐었을까?

세 사람의 엇갈린 운명, 신라 충신 죽죽비

 

경상남도 함안군

탁월한 입지 선정, 말이산고분군

질서정연한 무덤은 다 계획된 것

거대한 봉분의 숨은 비결

말이산과 통합된 남문외고분군

딱 봐도 아라가야, 함안박물관

아라가야의 왕성, 가야리 유적

초대형 고대 건물터 당산유적

성산산성은 가야일까, 신라일까?

 

경상남도 창녕군

두세 집단이 공존한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특징이 많다는 특징

신라와 친하면서 독자성도 지켰다

또 하나의 비화가야 계성고분군

가야 최대 고분이 여기에

순장 소녀 송현이의 환생, 창녕박물관

가야의 여명을 여는 창녕지석묘

 

경상남도 고성군

이어붙이기로 초대형? 송학동고분군

일본의 오해가 밝혀지다

여러 계통의 유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다

내산리고분군, 해상교역의 주인공들

센 가야 사람들의 자취, 고성박물관

동외동패총과 솔섬 유적

송학동고분군을 지키는 만림산토성

 

기타 중요 유적

우리 옻칠이 확인된 창원 다호리 고분군

문자 생활의 증거도

2000년 세월에도 온전했던 통나무널

어떻게 살아남았지? 창원 성산패총

일제가 망가뜨린 진주 옥봉·수정봉고분군

백제가 왜 여기에, 의령 중동리고분군

겉은 가야 속은 신라, 양산 북정리고분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산청 전구형왕릉

남강 물길 따라 들어선 산청 생초고분군

임나일본부설을 깨뜨린 운평리고분군

섬진강 서쪽에도 가야가

낙동강 동쪽의 가야 복천동고분군

삼국유사의 그 가야 성산동고분군

신라 지배 아래서도 위세를 유지한 비결

 

가야 유물 박물관·전시관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경남 김해 가락국의 쇠락은 대성동고분군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가야의 고분이라 하면 우리는 높고 큰 봉분을 떠올리게 됩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봉분은 5세기 초반에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5세기 중반 즈음부터는 밑지름이 40m가 넘는 초대형 고분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가장 앞섰던 김해 가락국의 대성동고분군에는 이런 봉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6세기 전반까지 조성된 묘역이지만 그냥 나지막한 구릉만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고분이 어디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기도 하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때의 가락국 최고위 지배계층에게는 그렇게 크고 높은 무덤을 만들 역량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선 시기 고구려군의 침공이 안겨준 상처가 그만큼 크고 깊었다는 얘기입니다. 대성동고분군의 무덤덤한 무덤들에서 지금 사람들은 한 시절 누렸을 영화의 무상함을 엿보게 됩니다. (본문 38)

 

눈여겨볼 만한 것으로 순장이 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산 사람을 함께 묻는 풍습을 말합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한반도에서는 가야와 신라에서 확인됩니다. 부여는 순장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실물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신라는 임금이 죽으면 남자와 여자를 5명씩 순장했다는 기록과 함께 실제 순장 사례까지 확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가야는 순장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발굴로 확인된 사례는 가장 많습니다. (본문 61)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자체 생산한 물품뿐만 아니라 왜계, 북방계, 중국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는 바다 물길을 통해 활발하게 이뤄진 국제 교류를 잘 보여줍니다. 이렇듯 무덤에서 나오는 다양한 유물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3세기까지 농·어업 도구는 수입한 것이 대부분이고 분량도 많지 않았지만 4세기 후반에는 자체 제작한 것이 대부분이고 수량도 많아집니다. 낙랑·대방의 소멸과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해양 교역이 어렵게 되자 농업과 어업으로 눈길을 돌렸던 것이지요.

무기와 갑옷·투구와 말갖춤 출토에서도 바뀌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중국·낙랑 계통의 수입품 위주였으나 김해 현지에서 제작한 무기·갑옷·투구·말갖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수량도 늘어나게 됩니다. 자체 역량으로 만들어낸 철제 전투 장비가 많이 출토된다는 것은 가락국이 군사적으로도 강국이었음을 일러줍니다. (본문 88~89)

 

경북 고령 지산동고분군 제73호분은 5세기 들어 가장 이른 시점에 주산의 줄기능선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가지능선 끝자락에 자리 잡은 지름 22~23m 규모의 대형 무덤입니다. 비슷한 시기의 대형 고분들은 무덤 속 주인공 공간을 모두 석재로 조성했지만, 73호분은 유일하게 목재를 썼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목재로 만든 가야의 대형분은 김해 가락국의 대성동고분군에 많이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대성동은 봉분이 나지막하고 지산동 제73호분은 높다랗다는 것입니다. 김해 가락국 전성기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대성동 제1호분의 뒤를 잇는 무덤인 것입니다. 이는 대성동고분군의 전통을 대가야에서 계승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동시에 대가야의 번성과 지산동고분군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고분이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114)

 

전라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야 유적은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입니다. 동네 명칭은 2개지만 서로 딱 붙어 있습니다. 동쪽 인월면 유곡리와 서쪽 아영면 두락리에 걸쳐서 두 봉우리를 끼고 능선을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40기 남짓이 확인됐지만 발굴을 기다리며 풀숲에 뒤덮여 있는 것은 훨씬 더 많습니다.

중심 연대는 5세기 중엽~6세기 초엽으로 대가야권역에서 보자면 합천 다라국의 옥전고분군과 충분히 견줄 만한 상위고분군입니다. 지름 20m 이상인 대형분은 14기인데 30m 이하가 열셋이고 30m 이상도 높은 자리 능선에 하나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20m 이하이며 지름 8m 안팎의 소형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적이 1973년 전라북도기념물로 지정될 때는 백제계나 마한계일 것이라고 대부분 사람들이 짐작을 했습니다. 하지만 1989년 발굴에서 대가야계로 밝혀졌고 이후 가야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2018년입니다. 전라권 가야 유적에서 최초로 국가 사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본문 136~138)

 

대가야계 고분군은 전북 남원의 운봉고원 말고 장수군의 진안고원에서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동촌리고분군 등에서 확인된 가야계 중대형 고분은 240기를 웃돕니다. 남원에서 확인된 180기보다 많습니다. 시기적으로는 4세기 말엽~6세기 중엽에 해당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진안고원이 백두대간의 서쪽이라는 사실입니다. 남원의 운봉고원은 같은 전북이라도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보면 그 동쪽에 있습니다. 대가야를 비롯한 여러 가야가 있었던 경상도에서 보자면 가야 세력이 백두대간을 넘어 이주·진출한 유일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 가야 고분들은 남원의 운봉고원과도 구분되는 점이 있습니다. 출토되는 유물이 대가야 색채를 뚜렷하게 띠거나 자체 제작된 것도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백제 토기가 함께하는 것이 독특합니다. 반면 다른 가야 집단의 유물은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그들과의 교류·교섭이 적거나 없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본문 152)

 

경남 합천 옥전고분군은 다라국을 다스리던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조성된 묘역인데 왕릉급 고분은 5세기 초반~6세기 초반에 들어선 것입니다. 처음 무덤은 그보다 훨씬 이른 기원전 1세기 즈음이었습니다. 규모나 유물이 보잘것없었습니다. 권력의 형성과 계층의 분화를 보여주는 최초의 무덤은 4세기 후반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때도 확실하게 구별될 정도는 아니었고 같은 집단 내에서 조금 우월한 정도의 무덤이었습니다.

5세기 초반이 되면 앞 시기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고분이 등장하게 됩니다. 무덤의 내부 구조와 규모, 그리고 유물의 내용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것입니다. 실생활용 말갖춤과 장식용 말갖춤, 금동 고깔모자와 금귀걸이 같은 금동제 공예품 등 기마용 문물과 화려한 장신구가 출토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유물들은 앞선 시기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4세기까지 그 일대에서 살았던 이들의 문물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5세기 초반이면 고구려 광개토왕이 가락국을 공략한 직후입니다. 그때 한반도 남부는 극심한 정세 변동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다른 지역에 살다가 이곳으로 들어온 이주민들이 다라국을 성립시켰습니다. (본문 163)

 

경남 함안 가야리 유적은 아라가야의 왕성이 발견된 자리입니다. 그동안 글이나 말로만 전해오던 아라가야의 왕궁으로 짐작되는 유적이 나지막한 야산 꼭대기에서 토성에 둘러싸인 채 나타났습니다. 함안 가야리 유적의 토성은 김해의 봉황동 유적 토성이나 합천 옥전고분군의 성산토성과 달리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높이는 최고 8.5m이고 너비는 20~40m인데 같은 시기의 다른 가야 권역에는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합니다. 밑바닥은 암반으로 덮여 있는데 나무기둥을 박았던 구멍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통나무 울타리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던 자리이거나 멀리 망을 보았던 망루, 또는 마루를 높게 설치한 고상 건물의 흔적들입니다. (본문 188~189)

 

경남 창녕의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가 전성기를 맞기 직전인 5세기 중반부터 멸망 이후인 7세기까지 집중적으로 조성됐습니다. 200년 동안 초대형에서부터 중소형에 이르기까지 1000기 남짓 되는 고분이 들어섰습니다. 200년 동안 1000기라면 해마다 5기씩 봉분을 쌓아올린 셈이니 당시 기술력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닌가요.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교동1·2군과 송현동 3·4군 등 넷으로 구분이 됩니다. 교동은 1군과 2군이 붙어 있지만 송현동은 3군과 4군이 떨어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조성된 것은 5세기 중·후반의 교동2군이고, 교동1군과 송현동3·4군은 6세기 초반부터 동시에 만들어졌습니다.

세력이 비슷한 두세 집단이 공존하면서 교동과 송현동으로 양립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다른 가야고분군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대형 왕릉급 고분이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어서 대형·중대형 고분이 왕릉급을 위성처럼 감싸고 그 주변에 다시 중소형 고분이 여럿 들어서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본문 196~198)

 

경남 고성의 가야 세력을 소가야라고도 했다는 사실을 두고 대가야(큰 가야)와 반대되는 소가야(작은 가야)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소가야라는 이름은 땅이 좁다거나 힘이 약하다거나 막연하게 그런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고성은 해양 교역을 발판으로 성장한 센 나라였습니다. 교역의 주력 물품은 바로 였지요.

옛날 사람들은 지명을 한자로 적으면서 뜻을 가져오기도 하고 소리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가야에서 작다는 뜻을 가져왔으면 스스로 작은 가야라고 낮추는 형상이 되고 소=쇠라는 소리를 가져왔으면 쇠의 가야가 돼서 나라의 근본 속성을 밝히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사실과 가까울까요? (본문 215)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념

 

가야고분군은 가야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적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함께한 가야 문명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가야 문명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여러 국가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단계를 보여주는 유산입니다.

 

최근 활발한 발굴을 통해 실체가 드러나면서 가야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편적인 수준에 머무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야의 600년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종합 개설서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풀어놓는 것까지 더할 수 있다면 좀더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개별 지역마다 크고 높은 봉분을 쌓을 수 있었던 배경, 공동체를 지배하고 호령했던 주인공들의 모습, 여러 나라들과 맺었던 관계와 교류가 어떠했는지 등 궁금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습니다.

 

무엇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문가나 학자가 아니면 읽어내기 어려운 그동안의 가야사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역사애호가로서 의무감 6 궁금증 4로 작업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많은 이들이 가야에 좀더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제어: 가야,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야고분군

분류: 발굴, 고고학, 생태, 환경, 역사, 한국사

,
Date : 2023. 5. 23. 13:51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30522

가격 : 20,000

반양장본 | 376| 152×225mm

ISBN 979-11-86351-59-8 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이창우·강찬구

irondumy@idomin.com

 

 

 

책 소개

 

1974년에 창원공단이 설립된 이후

50년 만에 처음 기록한 휴먼 스토리

뿌리뽑힌 사람들의 아픈 상실의 기억과

뿌리내린 사람들의 벅찬 생성의 기억들

 

<들어가는 말>

<창원공단의 기억>은 창원기계공업공단(현 창원국가산업단지)에서 울고 웃은 사람들을 추적한 결과물입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 언론사로서 지역민과 공유하고 싶었던 공공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창원시는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로, 산업화의 상징적인 공간 중 하나입니다. 특히 중공업 중심지 창원기계공업공단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그 과정은 산업사·도시사 차원에서 긍정적인 면만 다뤄졌습니다. 흔히 신화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원주민들이 받았던 고통이나 공장 구석구석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잊혔습니다. , ‘사람이야기가 빠져 있었습니다. 이들이 가진 기억은 그 내용에 따라 창원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할 수도 있는 구술 사료와 같습니다. 지자체·학계·지역 언론계가 공공의 기억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내용이지만, 안타깝게도 이제까지 누구도 이들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지 못했습니다.

공단 건설 과정에서 이주하게 된 원주민 1세대들의 기억을 채록할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기록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공단 건설에 젊음을 바친 옛 기능공들 중 많은 이들이 창원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었습니다.

책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처음은 공단이 들어서기 전 옛 창원지역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밝혔습니다. 수십 곳의 자연마을이 있었지만, 지형적·문화적으로 당시의 생활양식을 대표할 만한 마을 몇 곳을 골랐습니다.

이어서 창원 땅이 공단용지에 수용되면서 원주민들이 반강제로 겪었던 고통을 파헤쳤습니다. 1974년 산업기지개발구역 지정 고시 이후, 동양 최장 8차선 도로였다는 기지대로(현 창원대로)가 깔리기 시작할 때부터 이들은 고향에서 쫓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는 이들에게 바둑판처럼 구획한 이주단지를 제공했지만, 땅을 생명으로 알고 농사일만 알던 사람들이 새로이 들어선 공단도시에서 살아가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전국에서 창원공단으로 모여 이주민의 도시를 만든 기능공들의 삶을 추적했습니다. 원주민들의 한이 서린 땅 위에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어 꿈을 펼친 이야기입니다.

창원 사람들이 창원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 작업이 더 다채롭고 깊은 원주민·기능공 서사를 발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 소개

 

이창우

역사가 좋아 역사학도의 길을 걸었지만, 생계 고민 끝에 기자가 됐다. 배운 지식으로 제일 쓸모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은 나이에 <경남도민일보>에 입사한 것은 행운이었다. 어느 곳보다 민주적인 소유구조를 가진 언론사이고, 필요한 기사를 제약 없이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에. 경남 사람들의 성원 속에서 보람 있게 일하는 매일이 새롭다.

지역신문 기자의 역할이 현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다. 역사를 배워서인지, 마침 경제부에 발령받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창원공단의 묻혀진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임무를 맡았다. 덕분에 역사학도일 때도 몰랐던 역사의 매력을 안참이다. 부산 출신이지만, 이제 경남사람이라 말한다.

 

강찬구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명절에는 울산을 오갔다. 경남은 지도 위에서, 지인의 이야기 속에서만 가까운 곳이었다. 첫 언론사 입사 도전을 <경남도민일보>로 하면서 가까워지나 싶었지만, 실패하고 다시 멀어졌던 경남이다. 그러다 삼십대 중반 늦은 나이에 불현듯 창원에 기자로 오게 됐다. 어쩌다 온 곳에서 본격적인 성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의 삶과 일을 배워나가고 있다.

철학에서 문화연구, 저널리즘으로 분야를 옮기며 학교를 다녔다. 이것저것 고루 흥미를 두는 잘 꽂히는성격이지만 뭘 해내거나 잘하는 건 없다. 양서를 싼 값에 사서 읽지 못하고 쌓아 올리는 것이 취미다.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라는 책에 아주 조금 기여해 놓고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차례

 

들어가는 말 ― 6

창원산단의 여명, 발전 신화의 빛과 그림자   9

대통령 결단 앞서 지역에서 움튼 중공업화 노력   23

마산 바다 건너 주렁주렁 포도 영글던 귀한  31

분지 창원, 역사와 삶 쌓이고 흐른 산과 시내   43

나락모티 갈대밭의 여름, 어제처럼 눈에 선한   59

새 역사에 밀려 멀어진 창원 역사의 큰 줄기   69

국가가 원주민 상처에 포개 얹은 산업 대동맥  83

문전옥답 헐값에 앗아 만든 첨단산업의 땅   97

포도송이 영글던 곳 붉은 황톳길만 남기고   109

바둑판 구획에 끼워 넣은 원주민의 삶   121

삶터와 생업 잃고 투기 광풍 휘말려 도시 빈민으로   141

실향 아픔에서 끝나지 않았던 이주의 고통   151

하고많은 사연 갈린 길에도 고향 마을 잊지 못하고   159

창원과 원주민 역사 바로 알고 미래 세대 화합하길   169

아픔으로 녹이고 염원으로 깎은 옛 창원의 두 상징   179

듬성듬성 공장 땀 채워 세운 도시에 꿈도 피어나   189

닦고 조이고 배우고 익혀창원과 함께 커온 40   199

성냥갑 아파트에서 나눈 끈끈한 정   207

공장 밖 마산서 낭만과 청춘 보냈던 근대화 기수들   217

문학으로 물은 산단은 무엇인가   227

부록 1. 창원국가산업단지 약사   234

부록 2. 원주민 마을 편입 약사   238

부록 3. 원주민 마을 유적비 일람   241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창원(당시 창원군)30~40여 개 농촌마을만 있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 아스팔트 대로와 거대한 쇳덩이들이 들어섰다. 산업단지라는 국가의 인위(人爲)’는 이곳 주민의 삶과 기억에도 크고 작은 발자취를 남기며 지역의 정체성을 흔들었다. 창원에서 현재를 사는 이들 대부분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다.

(15, 고향에서 밀려난 사람들)

 

창원산단의 탄생은 지역이 스스로 축적한 역량과 공단 유치 노력, 외국 기업의 판단, 이 모두를 고려한 정부 판단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최 박사는 시야를 좀 더 넓혀보길 주문했다.

(27, 위대한 결단아닌 복합 상호작용의 결과)

 

·고등학교가 없어 삼귀국민학교(귀곡 소재) 졸업생은 모두 마산으로 진학했다. 귀현 출신 고영조 시인은 당시 중학교 등록금이 180원이었고, 웅남호 뱃삯은 1원 정도 했다라며 하도 배가 고프다 보니, 표를 부둣가에서 파는 빵하고 바꿔 먹고는 배 뒤에 몰래 밧줄을 내려 매달려가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36, ‘섬 아닌 섬)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대규모 염전이 자리 잡았다. 나락모티 인근 창곡리(현 창곡산단덕정리(지금의 대원동)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194599일 미국 해군이 찍은 항공사진을 보면, 광복 즈음 이곳에 넓은 염전이 펼쳐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62, 멱감고 게 줍던 모래톱의 추억)

 

상남역이 있는 곳은 면 소재지라 붐볐습니다. 역 남쪽으로 우체국·파출소·양복집·가구점에다 상남초등학교도 있었고, 상남극장이라고 극장도 있는 곳이었지요. 홍등가도 있었던 기억입니다.”

(72, 사람 모여든 핫스팟)

 

말뚝이 박힌 곳마다 어김없이 중장비가 들이닥쳤다. 대대로 부쳐 먹던 논마지기든 선조가 잠든 선영(先塋)이든 가리지 않았다. 농민들이 잃은 땅은 삶 그 자체였다.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이주단지로 떠나면서 겪은 고통은 눈부신 도시 발전의 그림자로 남았다.

딱 우리 집 복판에 말뚝을 박더니. 왜 그러는지 자세히 가르쳐주지도 않아요. 너희는 알 필요 없다고. 제일 좋은 논도 평당 1300, 밭은 200~300. 그냥 강제수용이에요.”

(84, 창원대로에 얽힌 이야기)

 

농사짓던 사람들이 논밭만 내주고 재산만 잃었을까. 도 작가는 부모님 이야기를 털어놨다. “농사꾼이던 아버지는 대원동으로 이사 가고 나서도 한동안 연덕 남은 땅에서 배추를 키워 리어카에 싣고 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셨고,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102, 지금이 앗아간 그때의 풍요)

 

고 시인은 초가집들은 힘이 없으니까 불도저가 밀어버리면 금세 붉은 바퀴 자국만 남았는데, 내게는 그 모습이 꼭 우리 영혼이 흘린 피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우리 고모는 막내 사촌을 업고 불도저에 뛰어들었고, 또 어떤 사람은 운전수에게 똥물을 뿌렸다라며 지금 같았으면, 화염병이라도 던졌겠지만 그 당시 할 수 있는 저항의 전부였었다라고 말했다.

(115, 뿌리뽑힘의 기억)

 

당시 택지 안에 네 가구까지만 짓도록 허용됐는데, 원주민들이 임대를 내려고 지하에도 옥상에도 막 방을 지었거든요. 지금은 벌금 때리고 원상복구 명령 내리는데 옛날에는 바로 행동으로 해버렸던 겁니다. 밤에 다 지어 놓고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못 부쉈기 때문에, 밤에 시멘트 바르고 나면 이불부터 갖다놨지요.”

(131, 공장노동자 월세 받기 특공작전)

 

윤 시인은 “1·2·3차에 걸쳐 차례로 토지를 수용하고 이주가 진행됐는데, 그때마다 서울에서 내려온 투기꾼들이 빗자루로 토지를 쓸어담듯 했다라며 보상받은 이주민의 30~40%는 투기꾼에게 넘겼을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말했다.

(148, 정착 못 하고 투기꾼에 집터 넘긴 사정)

 

당시 중앙동 1번지, 지금 이마트 창원점 옆에 있는 곳이에요. 지도를 보면 주변 다른 곳이 전부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구획이 돼 있는데, 거기만 대각선으로 건물이 서 있어요. 어딘지 정확하진 않은데, 거기 사람들은 이미 이주를 와서 정착한 상태였죠. 그런데 그때 또 시에서 나가라 하는 상황이 된 거라.”

(154, 자리 잡을 만하니 다시 나가라)

 

봉림동 이주단지는 40여 개 원주민 자연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향우회도 연덕·창곡·월림 등 다 따로 조직돼 있어. 마을 규모가 작았어도 완암처럼 아직까지 활발하게 모이는 곳이 있고, 동네가 컸어도 단합이 잘 안되는 곳이 있지. 아이들도 향우회에 가입시키고 다른 마을 사람 자녀들과 같이 명절에 공도 차고 했는데, 직접 겪은 추억이 없다 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관심이 옅어져 안타깝기도 해.”

(167, 옛터 유적비에서 추억 더듬어)

 

삼원회관이 있는 상남동은 시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집결하는 곳인데 제대로 된 문화공간이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삼원회관을 원주민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창원의 역사와 개발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또 새로운 문화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 되게끔 꾸려나가고 싶습니다.”

(175, 원주민 염원 담은 보금자리 돌려드리고파)

 

석재상을 수소문하다 보니 큰 산 밑에 자연석을 무더기로 모아놓은 상인들이 많았습니다. 강원도까지 가서 찾는 중에 마음에 드는 돌이 딱 하나 있었는데, 63빌딩 표지석으로 세우려고 구두 계약된 돌이라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창원기계공단 설립 과정에서 희생된 원주민들 사정, 유허비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한 끝에 마침내 돌을 구할 수 있었죠.”

(180, 종 보고 돌 찾으러 방방곡곡에)

 

학교 동기 900여 명 중 함께 입사한 사람만 120명이다. 이는 당시 삼성중공업이 창원기계공고와 결연하고 유능한 학생을 미리 선점했기 때문이었다. 실습 장비를 대주거나 졸업 전에 일본어 교육을 하는 등 신경을 쏟다가, 우수한 학생들을 우선 추천받았다. 김 시인은 다니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학교로 돌아와도 좋다는 조건으로 왔다라며 당시 공고 졸업생들이 잘 팔리던 때라 실제로 2번이든 3번이든 학교에서 취직시켜준 사례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195, 첫 발을 디디다)

 

월급 많지 숙소 있지, 처음엔 너무 좋았는데 어느 순간 안 되겠는 거야. 하나둘 공부를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동기 98명 중 60명 이상이 전문대나 4년제 대학에 갔어요. 회사(대림자동차)에서 난리가 났죠. 저녁에 잔업을 좀 시켜야 하는데 말이야. 공장장이 학교 보내지 마라고 하게 되죠. 그래도 매주 토요일 되면 과장님 조퇴 좀 시켜주세요하고 안 해주면 월담을 하는 거죠. 그렇게 다음 주 월요일 시말서 쓰고. 저는 한 40장쯤 썼을 거예요.”

(204, 공장 불이 꺼지면 독서등이 켜지고)

 

“‘집들이 선물 받은 화장지를 다 쓰면 떠난다고 농담할 정도로 이사를 자주 했는데, 첫 입주 2년 뒤 17평으로 옮길 때만큼 감동적이었던 적이 없어요. 처음에는 누가 저길 들어가나하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형편 어려운 사람 처지에서는 반송아파트 말고 딱히 갈 곳도 없었죠. 타지에서 창원에 와 정착한 사람 중 절반은 다 반송아파트를 거쳐 갔다고 봐도 될 겁니다.”

(209, 10평 공간, 내 집 마련의 꿈)

 

이주단지로 쫓겨간 창원 원주민들과의 이질성은 더욱 짙어졌다. 생업을 잃고 기술도 없었던 원주민 대부분은 아파트가 늘어나도 겨우 지어 올린 이주단지 주택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용도 제한으로 묶여 상업 활동도 원활하지 않았다. 이들이 떠올리는 창원공단, 그리고 신도시는 자신들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성이었다.

(213, 아파트 밖 원주민의 기억)

 

아주머니께 이번 주 8이라고 말씀드리면 동경전자·동경실리콘·한국TC전자 등 회사 작업반장 전화번호를 주거든요. 그러면 대표들끼리 말을 맞춰서 지금 양덕파출소 옆에 있던 삼일다방, 금강다방에서 다 같이 놀고 그랬죠. 휴일에는 밀양 삼랑진 낙동강변 나들이도 갔고, 멀리는 하동 송림 같은 곳으로 12일 단체여행도 떠났습니다.”

(221, 분식집 아주머니가 양쪽 연결)

 

창원공단의 기억을 묻어두거나 추억거리로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의 기록으로 승화한 문학가들이 있었다. 공단 조성과 발전 과정에서 겪은 개인적이고도 특별한 경험들은 문학의 형태로 방출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들이었다. 원주민·기능공들의 기억이 풍화하는 동안에도 이들의 노력은 역사로 남았다.

(228, 다시 묻는 산단은 무엇인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벌써 남겼어야 할 공공의 기억

창원공단 50년 만에 기록하다

 

창원공단이 설립된 지 내년이면 만 50년이 된다. 창원공단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는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기업에 이르기까지 숱한 기업들이 무대에 올라 저마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펼쳤다.

국가 시책 차원에서 만들어진 창원공단은 말 그대로 깡촌이었던 원() 창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 경남에서 으뜸가는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지렛대 구실을 했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창원으로 와서 크고작은 기업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공업계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젊은이들이었다. 창원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청춘을 보내고 새로운 삶을 일구어 새로운 창원을 만들어가는 한편으로 창원 사람이 되어 갔다.

이렇게 창원공단이 우뚝 서고 개별 공장들이 젊은 노동자들로 채워져 갈 때 그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창원에 터 잡고 살면서 농사를 짓거나 어로 활동을 해오다가 공단 설립과 함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원주민이 바로 그들이다.

그동안 기록되어 온 것은 창원공단의 역사였다. 무슨 기업이 들어섰고 어떤 물건을 만들고 원청과 하청의 관계가 어떠하고 연관산업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고용된 인원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 수치와 도표 또는 통계로 정리되는 역사였다. 그리고 그것은 창원공단과 더불어 울고 웃었던 이들의 사람 이야기는 배제된 역사였다.

5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공단이 만들어질 때 풋풋한 노동자로 공장에 들어섰던 이들은 대부분 70대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집과 논밭을 내어주고 이주했던 원주민들은 그 노동자들보다 연배가 높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역사로 갈무리할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창원공단으로 말미암아 뿌리뽑힌 원주민들과 그 덕분에 뿌리내린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활자로 담았다. 그동안 누구도 하지 않았던 작업이었으므로 사상 최초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그동안 백지로 비어 있던 부분을 채워 창원공단의 역사가 좀더 입체적으로 구성될 수 있게 되었다. 무미건조한 역사에 생생하게 실감되는 내용을 조금이나마 더하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책이 앞으로 좀더 다채롭고 풍부한 서사를 찾아내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제어 : 창원, 마산, 창원공단, 산업화, 원주민, 농경, 이주, 이주민, 기능공, 노동자, 공존, 정착

분류: 한국사, 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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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7. 17:14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30401

가격 : 20,000

반양장본 | 400| 152×225mm

ISBN 979-11-86351-58-1 0394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성우제

 
 

 

책 소개

 

떠나온 한국은 멀어져 가고

이민 온 캐나다는 잡히지 않는

불안하기만 한 중간지대에 살지만

양쪽 모두 선명하게 보이는 건 장점

 

<작가의 소개글>

내가 서울 사투리를 쓴대요.”

얼마 전, 직장생활 2년차에 접어든 딸이 말했다. 한국에서 온 또래 친구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저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딸아이는 세 살 때 캐나다로 살러 왔으니, 한국 말을 부모한테서 배웠다.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서울 사투리라고 부르는 것은 예전 서울 말투라는 얘기다. 나도 처음 캐나다에 살러왔을 때, 이곳에서 수십 년 살아온 선배 이민자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외국살이란 한 마디로 이방인의 삶이다. 모든 이의 삶 자체가 불안의 연속일 테지만 이민자의 삶에는 불안의 요소가 하나 더 얹히게 마련이다. ‘~’ 떠 있는 느낌,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지대에 사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나는 캐나다에서는 한국 사람(코리언 캐네디언)이고, 한국에 가면 캐나다 사람이다. 법적 신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내 한국어는 이미 서울 사투리가 되었고 내 영어는 앞으로도 계속 외국인 발음이다. 이민 1세로서 캐나다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캐나다 사람이 될 수 없고, 모국을 떠난 지 오래 되어 정서적으로 더 이상 한국 사람이 아니다. 캐나다는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한국은 점점 더 멀어져간다. 이것이 바로 내 나름대로 알아차린 불안함의 정체였다.

양쪽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중간지대 혹은 경계의 삶은 묘하게 슬프다.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에서 이런저런 정책을 펼쳐가며 나 같은 이민자를 우대해준다 해도 이런 슬픔까지 어루만지지는 못한다. 그것은 이민자의 숙명 같은 것이다. 양쪽의 이방인이 되는 숙명.

그나마 나로서는 다행스러웠던 것이 캐나다에서 사는 삶에 한국의 매체와 독자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독자들은 내가 사는 곳의 삶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에서 발생하는 비슷한 사안을 두고 캐나다 사회는 어떻게 대처하는, 캐나다에 살면서 보면 한국은 어떻게 보이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했다. 나는 전직 기자답게 사실에 근거해 쓰려고 노력했다.

나 같은 사람이 갖는 장점 하나는 양쪽 사회를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중간지대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에는 한국 저녁 뉴스를 보고, 저녁에는 캐나다 저녁 뉴스를 본다. 양쪽을 비교해서 보면 사안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의미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바로 그런 것이다.

-캐나다 이방인, 한국 이방인

 

작가 소개

 

성우제

1963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다. 불문학 연구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논문을 썼다. 프랑스 유학 자금이나 벌자며 어쩌다 시작하게 된 기자 생활에 맛들려(월급도 많았고 기사 작성이 논문 쓰기보다 재미있었다) 그 길로 13년을 논문 대신 기사만 쓰며 보냈다. 박사 공부는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1989년에 창간한 () <시사저널>’(<시사IN> 전신)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다. 문화부에서 11년 동안 일하면서, 미술 음악 문학 등 여러 예술 장르와 문화현실에 관한 기사를 주로 썼다. 영화 담당만 하지 못했다. 누구나 맡고 싶어해서 나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기자로 일하는 와중에 1990년대 중반부터 커피 마니아 행세를 하며 살았다. 한국 커피업계에서는 나를 1세대 마니아라고 불렀다. 그 취미를 살려, 2002년에 이주해온 캐나다 토론토에서 베이커리카페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꾸었었다. 월급쟁이가 자영업자로 변신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말고도 진입 장벽이 하나 더 있었다. 외국이라는 낯선 환경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장벽이었다. 이민 초기는 장벽의 완강함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 정말 운좋게도 은인을 만나 옷가게를 시작했다. 그 가게를 운영하면서 17년째 밥벌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과는 다른 삶을 산다는 이유로, 한국의 여러 매체에서 청탁을 해준 덕분에 캐나다에 살러온 이래 거의 끊이지 않고 글을 써왔다. 2007년 여름 학력위조 사건이 터졌을 때 뉴욕으로 피신한 신정아 씨를 단독 인터뷰하여 <시사IN> 창간호에 제공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 기사로 캐나다에 살면서 특종상을 받았다. 기사나 칼럼이 아닌 창작물도 더러 썼다. 그런 글로, 한국 살 적에는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문학상을 두 차례(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및 산문 부문) 받았다.

<시사IN> 편집위원이며, 3년 전부터는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연구소는 직함이 필요해서 내가 만든 것이다. 그래도 책을 여럿 펴냈으니 연구 활동과 무관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민 초기 캐나다살이를 이야기한 <느리게 가는 버스>, 한국 커피 장인들을 인터뷰해서 엮은 <커피머니메이커>, 한국의 외씨버선길과 제주올레길 완주기 <외씨버선길> <폭삭 속았수다>, 그리고 내 스승들에 관해 적은 <딸깍 열어주다> 등 다섯 권이다.

 

 

차례

 

책을 내며 캐나다 이방인, 한국 이방인 9

 

캐나다 이야기

내가 캐나다로 간 까닭은? 15

캐나다 정부가 이민자 공존을 돕는 이유 21

캐나다의 고용 사다리공채 없이 알바 계약직 정규직 28

매뉴얼 천국의 느림보 문화 36

어린이병원에 기꺼이 기부하는 까닭 39

위험에 처한 아이 모른 척하면 범죄 48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52

공자님 말씀에 충실한 캐나다 대학 55

다름 인정하고 존중하는 서방예의지국 58

성적 1등으로는 졸업생 대표가 될 수 없는 나라 61

캐나다처럼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면 67

천국은 없다장점만 보고 와서 단점도 안고 사는 이민 71

 

동포사회 이야기

한국 사람 조심하세요? 81

한인 요양원’, 정체성 확인시켜주는 디딤돌 88

노는 모임 거의 없는 재미없는 천국 95

캐나다 한국식당은 외국인이 주고객 103

같은 유색이면서 흑인 차별하는 동양계 이민자들 110

해외동포, 모국이 불러주자 꽃이 되었다 116

한국 책 갈증에 오아시스 같은 토론토도서관 119

 

자영업 이야기

자영업 하려면 부터 만들어라 129

나는 왜 복대를 차게 되었나 136

남자도 힘든 주방에 아내를 밀어넣었던 이야기 139

여기서도 자영업자는 오답노트의 주인공 146

단골자처하는 손님치고 진짜 단골은 없다 153

밑지고 판다는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 160

 

일상 이야기

이민 초기 베이커의 추억폴리시 비어 굿” 165

캐나다도 한국처럼 시민들은 현명하다 168

점점 잦아지는 캐나다의 대형 재난 175

웬만하면 바꾸지 않고 오래 쓰는 문화 183

팬데믹 3년에 친절해진 미국 사람 190

캐나다 크리스마스는 가족·파티·선물이 필수 198

담배 끊은 건 뉴욕 화가들 덕분 205

캐나다 주택 오래 살면 맥가이버가 된다 208

김장할 때 무 썰기를 자청한 내력 215

한국 환자가 캐나다 의사 치료해준 이야기 217

 

대중문화 이야기

멀쩡한 모국 LP 보면 왜 마음이 짠해질까? 223

캐나다에서 실감한 K컬처의 초압축 성장 227

딸에게 모국어를 가르쳐준 한류 235

한국이 대단한 줄을 한국 사람만 모른다 242

동포사회와 모국을 이어주는 한국 대중문화 245

BTS로 뉴욕에서 나눈 정담(情談) 252

미나리가 불편하다 255

윤여정의 뼈 있는 수상 소감 263

고교생 딸의 영화 택시운전사관람기 268

 

젠더 이야기

캐나다만의 독특한 남자 서열 273

아들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가 여학생? 276

개저씨소리를 듣지 않는 한 가지 방법 279

토론토와 뉴욕의 지하철 성추행범 퇴치법 285

 

한국 이야기

3년 만에 한국서 만난 기분 좋은 낯섦 291

신천지예수교에 왜 20대 신자가 많을까? 298

사이먼과 노회찬 302

손혜원 똘끼는 어디까지 갈까 305

대학의 인문학 연구가 그리도 우스운가 310

기부도 이젠 젓가락장단 아닌 코인노래방이 주류 316

아버지와 짜장면 322

 

언론 이야기

캐나다 방송은 올림픽보다 패럴림픽이 더 활발 327

대장동 스캔들의 키워드 형님’ 331

쓰나미를 기획하는 양치기 언론 339

언론 부패의 온상 출입기자단’ 343

기자라면 최소한 붙어먹지는 말아야 349

밥 사주는 기자는 믿을 만한 기자다 354

 

문학 이야기

님 웨일스의 아리랑을 능가하는 조선희의 세 여자359

파친코, 재일동포 주인공을 향한 재미동포 작가의 무한한 공감 364

중간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슬픈 모국어’ 371

, 기성세대라는 말도 구리다 378

 

기형도 이야기

대학시절 친절한 기형도시인에게서 받은 편지 383

기형도의 참 좋은 안양 친구들그의 연시 최초 공개한 수리문학회 391

갑자기 생각난 기형도의 원고료 398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이른 아침 출근 시간에 토론토 시내버스를 탔다.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춰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바깥을 내다보니 시각장애인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던 버스 기사가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건너고 있었다.

(17, 내가 캐나다로 간 까닭은?)

 

캐나다 정부는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자기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지속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캐나다 시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한글학교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25, 캐나다 정부가 이민자 정착을 돕는 이유)

 

법도 안 만들고, 있는 법도 안 지키고, 법을 안 지켜도 단속도, 처벌도 안 하는 어른들 탓에 아이들이 희생되는 일이란 없다. 어쩌다가 작은 사고가 난다 해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그러니 캐나다 사회는 느리다. 나는 이 느림보 문화가 점점 더 좋아진다. 사회적으로 노하거나 슬퍼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38, 매뉴얼 천국의 느림보 문화)

 

느슨한 개똥 단속과는 반대로, 시민들을 늘 긴장하게 하는 단속이 있다. 물론 1순위는 시민 안전과 관련한 단속이다. 소화전 앞이나 소방도로에서 실수로라도 위반했다가는 인생이 피곤해질 만큼 가혹한 조처가 따른다. 운 좋게 단속을 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서, 소방서 앞 같은 곳에 주차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54,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 나와 밥벌이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한국 사람들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국 나가는 사람에게 한국 사람 조심하라는 말은 가급적이면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외국에서도 좋은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한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 사기꾼만 조심하면 된다.

(87, 한국 사람 조심하세요?)

 

캐나다가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다 보니 특이한 음식 냄새를 풍길까 봐 서로가 늘 조심하는 편이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도 많다. 한국사람들은 김치에 들어 있는 생마늘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하는데, 요즘은 예전처럼 긴장하지는 않는다. 한국음식에 대한 외국사람들의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K드라마, K팝에 이어 지금은 K푸드까지 뜨고 있는 것이다.

(107, 캐나다 한국식당은 외국인이 주고객)

 

육체노동을 할 수 있는 몸부터 만들어라.”

일단 네가 하려는 업종에 들어가서 최저임금 받으며 일을 해라. 그곳은 너한테 학교나 다름없다. 임금은 장학금이라 생각해라. 돈 받아가며 몸 만들고 일을 배우니 얼마나 좋은 곳이냐.”

(131, 자영업 하려면 부터 만들어라)

 

지하철역 안에 있는 우리 가게 손님들 중에는 물건을 사고팔 때 잠깐 스치는 손끝 느낌만으로도 험한 일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이들이 많다. 대개가 말없이 좋은 손님들이다. 토론토 자영업자인 나로서는 그런 손님들이 마음 편하게 쇼핑하고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가게를 만들었으면 소망을 늘 품고 있다.

(159, 단골자처하는손님치고 진짜 단골은 없다)

 

토론토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온다. 마당에 쌓인 눈을 자주 치워야 하는데, 이 또한 중노동이다. 눈 치우는 일은 낙엽 치우기와 더불어 가장 고되고 힘든 일에 속한다. 눈과 낙엽

을 치우는 일만큼은 온 가족이 달라붙어야 한다. 혼자 했다가는 앓아눕기 십상이다.

(213, 캐나다 주택 오래 살면 맥가이버가 된다)

 

외국에 살러 오면서 모국 음악을 듣겠다며 들고 나왔겠으나, 살기에 바빠 들을 시간이 없어서 음반 상태가 깨끗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오래된 LP음반이 으레 그렇듯이 많이 긁히고 먼지가 쌓여 있었다면 짠한 마음이 덜 했을 것이다. 주인은 연로해서 요양원에 들어갔거나 작고해서, 동백아가씨를 모르는 자식들이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226, 멀쩡한 모국 LP 보면 왜 마음이 짠해질까?)

 

나중에 한국에 보내서 우리말을 배우게 해야겠다고 여기던 차에 신기한 일이 생겨났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말과 글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경로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을 접하고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소녀시대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받아적기 시작했다. 자발적인 한글 공부였다. 한국말을 하고 한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은 또래 팬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을 사는 일이었다.

(231, 캐나다에서 실감한 K컬처의 초압축 성장)

 

거래처의 중국인 사장이 정말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가 있는데, 봤느냐?”고 물었다. 겨울연가라고 했다. “보지 않았다고 했더니 그는 정말이냐?”며 놀라워했다. “볼 생각도 없다고 했더니 그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그는 겨울연가DVD를 불쑥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서 꼭 봐라.” 외국인인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고, 시청을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는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247, 동포사회와 모국을 이어주는 한국 대중문화)

 

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들면서 북미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아시아인 혐오 폭행이 터져나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보자면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 소감이 예사롭지 않다. 혐오와 폭행 위협을 날마다 피부로 느끼는 이곳의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네들은 나 같은 아시아 사람 이름도 정확하게 못 부르지? 그만큼 네들이 아시아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건 아니니? 사실 나는 그게 불만이었는데 오늘은 상을 줬으니까 용서해줄게.”

(265, 윤여정의 뼈 있는 수상 소감)

 

이곳에 서열이 있다는 거 알아?”

캐나다에 살러 온 직후에 만난 어느 선배가 대뜸 나에게 물었다.

서열이라뇨?”

캐나다에는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서열이 있어. 어린이, 여자,

, 강아지, 그다음이 남자야.”

(273, 캐나다만의 독특한 남자 서열)

 

나는 그의 죽음을 접하면서 토론토 유대인 커뮤니티의 사이먼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사이먼이 공급하는 물건은 무조건 싸고 좋다는 믿음은 수십 년 헌신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에서 연유한다. 노회찬의 죽음에 마음 아파하는 우리는 왜 살아생전 그에게 사이먼식의 존경과 신뢰를 보내지 못했을까? 그가 그것을 느끼고 자기의 진정성을 사람들이 알아주리라 믿었더라면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304, 사이먼과 노회찬)

 

패럴림픽 방송이 올림픽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화제가 되는 선수나 메달리스트들을 집중 조명하는 것은 비슷했으나 패럴림픽 방송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올림픽 방송이 스포츠 경쟁에 관심을 두었다면, 패럴림픽 방송은 그것을 뛰어넘어 간극장이나 다름없었다. 장애인 선수 모두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인 만큼 그 이야기를 사전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데 치중했다.

(327, 캐나다 방송은 올림필보다 패럴림픽이 더 활발)

 

공적인 관계에서 사용하는 형님이라는 호칭은 과거 언론계에서 횡행하던 촌지와 그 성격이 유사해 보인다. 촌지나 형님 호칭은 공적인 관계를 내밀한 사적 관계로 만들어버린다. 내밀하면 할수록 결속력은 더 강해진다.

(334, 대장동 스캔들의 키워드, ‘형님’)

 

파친코를 다 읽고 나서, 이 소설이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이유를 내 나름으로 생각했다. 작가 이민진이 일본이 아닌 곳에 사는 한국 이민자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일본 바깥에서 살고 있기에 재일동포들의 처지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 스스로 이민자의 자식이어서, 같은 이민자인 재일동포들의 아픔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370, <파친코> 재일동포 주인공을 향한 재미동포 작가의 무한한 공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22년 이민 생활을 하며 알게 된

흥미로운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를

13년 기자 경력의 필력으로 녹여내

기형도 관련 추억과 시편도 수록

 

22년 전 13년차 기자 성우제는 장애를 가진 자녀 때문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장애인을 캐나다에서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시사잡지 기자 생활을 접고 월급을 모은 돈과 아파트 판 돈을 갖고 캐나다로 날아갔다.

이민이란 몇십 년 살아온 자신의 뿌리를 통째 뽑아서 옮겨가는 존재의 결단이었다. 특히 새로 잔뿌리를 내리지 못한 초기 이민 생활은 새로운 정착과 생존을 위한 고달픈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그로서는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 몸부림은 더욱 절박하였다.

새 나라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몇 안 되는 선택지에서 자영업을 하기로 했다. 펜대나 굴리던 그는 준비 작업으로 음식점에서 알바를 얻어 몸이 으스러지게 일했다. 어떤 날은 끊어질 듯 아픈 허리에 복대를 하고 기어서 출근한 적도 있다. 그러다 좋은 한국인과의 인연으로 먹고살 만하게 되기까지는 <극한직업>에 가까운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먹고살기 바빠도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있게 마련이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캐나다에서는 특별한 사건으로 여겨지곤 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젠더·인종·신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한국에서는 예사이지만 캐나다에서는 범죄였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포용의 사회인 동시에 한 번 정한 원칙은 지위고하를 떠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나라였다. 물론 캐나다라고 좋기만 하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비추면 한국은 아직도 많은 새로 고침이 필요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민 초기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10년 전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모든 분야에 걸친 눈부신 성장이었다. 씨앗은 이미 20년 전에 움텄지만 하필이면 그즈음에 K컬처를 필두로 한꺼번에 뿜어져 나왔다. K팝은 아이에게 모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캐나다 극장가에는 한국 영화가 일상으로 걸렸다. 토론토 한국음식점은 오히려 외국인들로 붐볐으며 K드라마 또한 외국인이 먼저 알고 한국 이민자에게 권하는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어쩌다 한 번씩 모국을 찾아오면 그때마다 이전과 달라진 새로운 낯섦에 묘한 즐거움도 느꼈다.

이런 22년차 캐나다 이민자가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를 펴냈다. 이번에 경남도민일보에서 나온 이 책은 그동안의 생생한 체험이 바탕이어서인지 머리로 쓴 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읽힌다. 캐나다나 이민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의 여러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우리 사회가 출생률 급감에 따른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하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볼 대목도 제시하고 있다. 말미에는 기형도 시인에 대한 추억과 시편도 몇 꼭지 담았는데 문학애호가들에게는 달콤한 샘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주제어 : 문화, 한국, 캐나다, 문학, 인문, 기형도, 영화, 소설, 대중문화, 선진국, 장애인, 원칙, 공존, 정착

 

분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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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7. 17:12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30301

가격 : 14,000

반양장본 | 170| 152×225mm

ISBN 979-11-86351-56-7 0340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김종욱

 

 

 

 

책 소개

 

다가올 미래사회는 4차산업혁명시대

자연생태계는 변화와 혁신의 보물창고

 

물리학 상식을 기반으로 인문학을 가미하여

미래시대 대비하는 이들에게 길라잡이 자청

 

<추천의 글>

앞으로 다가올 4차산업혁명시대는 초고속 정보통신기술로 초연결된 혁신적·와해적 적자생존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미국·중국의 패권전쟁을 비롯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등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국우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헤쳐 나갈 명견만리의 지혜는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변화혁신이며 자연의 생태계에서 배울 수 있다. 생태계는 완벽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이지만, 그 개체들은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진화라는 자기혁신을 지금 이 순간도 계속하고 있다. <K-사이언스테크노미, 혁신 없이 미래 없다>를 읽으면 과학기술과 글로벌경제, 세계정세가 급변하는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변화에 동참하지 못한 갈라파고스는 아닌지 숙고하게 된다.

-동명대학교 총장 전호환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종속되었던 한계를 넘게 해준 것은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은 강력한 경제력과 힘을 제공해 주는 기반이 되고 있어서 모든 국가들이 그 수준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남다른 전략이 필요한데, <K-사이언스테크노미, 혁신 없이 미래 없다>가 그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어서 무척 반갑다.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기후변화,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더구나 지구환경 관련 지속가능성, 탄소중립 등의 큰 위기에도 봉착해 있다. 진화를 통해 완전한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는 자연생태계를 곱씹으며 과학기술의 방향과 역할을 되짚어보는 혜안과 지침을 이 책은 제공해 줄 것이다.

-() 한국전기연구원 원장 최규하

 

<K-사이언스테크노미, 혁신 없이 미래 없다> 정확한 물리학 상식을 기반으로 형용적인 적절함이 묻어 있는 인문학을 가미한 융복합적 설명이 잘 배합된 재미있는 서적이다. 저출산, 수도권 집중, 지역소멸, 전쟁, 기후위기, 플라스틱 오염, 세대 갈등 등, 풀기 힘든 많은 사회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어도 그래도 희망을 갖고 하나씩 풀어가는 지구촌의 일원으로서의 가치를 잘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고등학생·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등 미래시대를 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창원대학교 전기전자제어공학부 교수 박민원

 

 

작가 소개

 

김종욱

 

1962년생. 한국전기연구원 전략정책부장, 전략정책본부장, 시험부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시 종로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90년에 교육부 물리학분야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미시건주립대(MSU) 물리학과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시건주립대 센서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 텍사스 오스틴주립대(UT@Austin)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역임했다.

 

한국전기연구원에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해서 플라즈마가속기, 전자의료기기, 나노소재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연구부서의 그룹장 및 센터장을 역임하고 인제대학교, 한양대학교(학연산클러스터사업단)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현재는 연구원의 주요연구사업에 대한 미래전략과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지자체와 더불어 지역경제혁신을 위한 신산업 발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 성과물의 홍보 및 대외 협력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 워털루대학(University of Waterloo) 공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창원시 및 부산시 제조업에 인공지능(AI)기술을 접목해 지역경제 혁신을 목적으로 한국전기연구원과 워털루대학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캐 인공지능연구센터사업의 자문역을 맡고 있다.

 

평소 소신은감사하고 사랑하자. 늘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겸손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려 애쓴다. 그러나 업무에 있어서는 혁신의 전도사요, 기업가정신에 입각해 도전과 응전을 과감히 수용한다.

 

 

차례

 

I. 거대한 전환기를 앞둔 한국의 오늘

 

과학기술과 인간존중 9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현상 13

간과할 수 없는 대프리카현상 17

상상을 초월하는 생존전략 21

과학의 달을 맞이하며 25

갈라파고스를 떠올리며 29

소모적인 브라운 운동’ 33

만추(晩秋)의 상념 37

영화 <양자물리학> 41

회복탄력성을 발휘할 때 44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는데 48

코로나19 이면의 냉혹한 현실 관조할 때 52

우리는 공명(共鳴)하고 있는가? 56

 

II. 위기를 기회로

 

자연, 창의와 협업의 배움터 63

산업생태계, 혁신과 경쟁의 장으로 67

카멜레온의 변화가 요청되는 시대 71

도전과 응전의 기해년 75

유비무환의 바우어새 78

도전과 응전, 위기를 기회로 82

선택은 하나, 혁신! 86

산학연 융합생태계 코업(Co-Up)’으로 90

섭동(攝動, perturbation)’의 시대 94

한국인의 위기대응 DNA 98

혼돈의 카오스(Chaos)’ 시대 102

가지 않은 길 106

백신 보릿고개를 넘는 공옥이석(攻玉以石) 110

코리아 팬덤창조로 세계를 이끌 때 114

 

III. 새로운 시대를 이끌 진화 코드

 

한국형 4차산업혁명 가이드 121

5G 이동통신, 4차산업혁명의 젖줄! 125

자율주행차와 공유경제 129

블록체인기술과 가상(암호)화폐 133

미래의 도시, 스마트시티 137

노벨(Nobel)상의 계절 141

누리호, 하늘을 날다 144

에너지 강국으로 가는 길 148

상상(想像), 과학발전의 원동력! 152

역사를 만들 천금 같은 기회 156

산업의 쌀’ K-반도체가 나아갈 방향 160

황금알을 낳는금세기 연금술 164

초격차기술력 확보만이 우리가 살길 168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4차산업혁명시대는 인류를 온전한 이상향의 세계로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을까?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의 인간존엄성 상실이나 폐해는 없는 것인가? 효용성과 편익만을 우선시하며 전광석화(電光石火)의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과학·기술의 속성을 고려할 때, 인류의 문명발전이 오히려 불평등의 기원이 됐다고 주장했던 프랑스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철학적 명제를 깊이 숙고할 시점이다.

(12, 과학기술과 인간존중)

 

곰이 정말로 미련한 동물일까?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내륙에 서식하는 곰은 겨울잠을 잔다. 춥고 황량한 겨울엔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 비해 몸집이 큰 곰은 생존하기 어렵다. 때문에 먹이가 풍성한 가을에 왕성한 먹이활동을 통해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겨울잠(동면)이라는 고도의 생존전략으로 힘겨운 겨울을 슬기롭게 이겨낸다.

(22, 상상을 초월하는 생존전략)

 

겨울이 도래할 쯤이면 광합성 기능을 마친 잎이 소모하는 에너지조차도 절약하기 위해 물과 양분의 공급을 차단하는 떨켜층을 만들어 낙엽을 만든다. 냉엄하지만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기발한 생존전략이 아닐 수 없다. 마주한 상황에 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대자연의 섭리에 마음이 숙연해질 따름이다. 과연 우리 경제는 앞으로 들이닥칠 북풍한설에 온전히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황홀한 가을단풍을 넘어 그 이면을 직시할 때다.

(39~40, 만추(晩秋)의 상념)

 

황제펭귄의 예를 들어보자. 남극의 황제펭귄은 영하 40~50의 혹한의 날씨를 허들링(huddling)’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지혜롭게 대처한다. ‘허들링은 황제펭귄들이 중앙으로 동그랗게 모여들어 바람을 막아주고 서로의 체온으로 상대방을 따뜻하게 유지시켜 주는 방법으로, 빽빽하게 무리지어 빙빙 돌면서 어느 정도 체온을 유지한 중앙에 있던 펭귄은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밖에 있던 펭귄이 서서히 무리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모든 펭귄들이 혹한의 날씨를 견딜 수 있게 한다. 그야말로 차원 높은 배려와 상생의 정신이 아닐 수 없다.

(64, 자연, 창의와 협업의 배움터)

 

우리에겐 다른 나라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위기대응 DNA가 있다. 2IMF 외환위기 때 온 국민이 앞다투어 금 모으기에 동참했듯이 우리네 삶과 정신 속엔 고통 분담의 DNA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당장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하여 전국에서 달려온 의료진들, 두터운 방호복 너머 땀과 상처로 얼룩진 그들의 환한 미소에서 우리는 숭고한 이타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100, 한국인의 위기대응 DNA)

 

138억 년 전에 발생한 대폭발의 혼돈 상태를 시작으로 우주가 끊임없이 특정 패턴을 가지고 팽창한다는 빅뱅이론을 굳이 예시하지 않더라도 밤하늘에 걸려있는 수많은 별들은 무질서한 상태로 보이지만 실상은 어느 별 하나 만유인력이라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정교한 우주질서에 순응하며 움직이고 있다.

(104~105, 혼돈의 카오스(Chaos)’ 시대)

 

일회용 일반주사기는 사용하고 나서 약 0.058g의 백신이 남은 채 폐기되는데, 낭비되는 백신을 다섯 번 모으면 한 사람에게 투여할 수 있는 양이 된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중소기업에서 백신의 잔량이 거의 없는 최소잔여형(LDS;Low Dead Space)’ 주사기를 개발해 별거 아닌 것 같은 작은 아이디어가 위기 속에 빛을 발하고 있다.

(112~113, ‘백신 보릿고개를 넘는 공옥이석(攻玉以石))

 

한국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다른 나라에선 흔치 않은 이타정신으로 한국에 대한 존경심과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이 초격차 첨단기술력과 우수한 가성비를 토대로 K-방산과 SMR K-원전의 성과를 상호호혜의 원칙 하에 동유럽 및 중동, 아세안 등 제3세계로 확산하고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창발적인 한류(韓流)문화를 융합해 코리아 팬덤을 창조한다면 한국이 이들 나라의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116~117, ‘코리아 팬덤창조로 세계를 이끌 때)

 

자동차를 소유하는 주된 목적은, 필요한 때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하기 위함이다. 자율주행기술의 완성으로 운전자가 필요 없게 되고 자동차공유경제 플랫폼이 현실화되어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지체 없이 이용할 수 있다면 과연 그때에도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성이 있을지는 곱씹어 볼 일이다.

자율주행차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경제 구도가 소유 중심에서 공유 중심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동차 운전의 주체가 사람에서 인공지능으로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문화 전반의 구도를 바꾸는 혁신시대의 이정표가 될 것이란 점이다.

(131~132, 자율주행차와 공유경제)

 

우리나라의 대표적 핵융합장치인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는 순수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한 초전도 토카막방식으로 2008년 최초로 플라즈마를 발생시킨 이래로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최근 KSTAR는 플라즈마의 중심 이온 온도를 핵융합반응 온도인 1이상에서 1.5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초전도 토카막 핵융합장치 중 세계 최초이며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에 한 발짝 다가선 성과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202111KSTAR는 세계 최초로 3만여 번의 실험을 통해 30초 유지에 성공했다. 과학계에선 300초 연속으로 1억도를 유지하면 핵융합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고 보는데 2026년엔 300초를 목표로 하고 있다.

(149~150, 에너지 강국으로 가는 길)

 

1965년에 만화가 이정문 작가가 발표한 2000년대의 생활상을 그린 미래만화를 보면 <전기자동차>, <태양열 주택>, <청소로봇>, <인터넷 신문>, <휴대용전화>, <인터넷을 활용한 원격학습 및 원격진료> 등 신기할 정도로 현재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적중하였다.

상상력은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다. 상상은 기존의 틀에 얽매지지 않는 유연한 사고, 즉 발상의 전환을 가능케 한다. 작금은 발상의 전환이 요청되는 4차산업혁명시대다. 하루가 멀다고 혁신기술이 등장하고 있으며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승자독식의 시대가 되었다.

(152~155, 상상(想像), 과학발전의 원동력!)

 

세계적인 석학이자 21세기 지성인 기 소르망Guy Sorman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이 세계지도에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고 강조했다. K-, 영화 외에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분야에서 한국이 모범국가로 두드러지면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으며, 한국이 잘해 왔던 개별 분야의 요소들이 일순간 결합되면서 한국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일관성 있는 긍정적 이미지가 형성되었다고 말했다.

(157~158, 역사를 만들 천금 같은 기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자연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문학적 상식과 소양을 바탕으로

물리학을 전공한 현직 과학자가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을 풀어낸 에세이집

 

<K-사이언스 테크노미, 혁신 없이 미래 없다>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과학기술의 발달은 미리 정해진 방향이 없다. 자칫 잘못하면 대다수 사람에게 해악이 되는 쪽으로 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협업과 배려가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과학기술은 무척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국가 단위로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눈 깜박할 사이에 낙오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고통스럽더라도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이룩해내야 한다.

물리학을 전공한 현직 과학자인 저자 김종욱은 여기서 뜻밖에도 생태계를 이런 것을 배울 수 있는 스승으로 내세운다. 협업하고 배려하는 정신과 창의적으로 혁신하는 지혜를 우리가 바로 옆에서 날마다 마주하는 자연이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제펭귄들은 남극 추운 바다에서 빽빽하게 모여 서로 바람을 막아주고 돌아가면서 체온을 나누는 방법으로 혹한을 이겨낸다. 상생의 협업은 식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가로수로 사랑 받는 메타세쿼이아는 원뿔 모양에다 크기도 비슷해서 모두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다.

생태계의 진화는 변화와 혁신의 경연장이라 할 만하다. 다들 미련하다는 곰은 사실 미련하지 않다. 아주 날쌜 뿐 아니라 먹이가 풍성한 가을에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비축하고 먹을 것이 없는 겨울이 되면 동면을 하는 자체도 생존을 위한 고도의 진화이다.

철마다 달라지는 나무의 한해살이 또한 주변 환경에 맞춘 혁신이다. 사람들은 신록에서 활력을 얻고 단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초록은 왕성한 생산 활동이며 울긋불긋한 낙엽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고 주어진 상황에 최적으로 대응하는 변화이다. 덧붙여 찍찍이를 발명하는 힌트를 인간에게 제공한 도꼬마리의 갈고리도 씨앗을 퍼뜨리려는 진화의 산물이다.

저자 김종욱이 보기에 이와 같은 창의와 협업, 진화와 혁신을 위한 DNA는 한국인에게 충만해 있다. 백신의 잔량이 거의 없는 최소잔여형주사기 개발과 세계 최초 코로나19 진단키트 상용화 등으로 위기국면에서 더욱 빛을 뿜었다. 금 모으기와 마스크 보내기 등에서 거듭 확인되는 특유의 고통분담과 이타정신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저자는 인문적 상상력을 꿈꾼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추동하고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변화에 합당한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 상상력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재미있게도 1960년대 한국 만화를 보기로 들었다. 거기 나왔던 전기자동차, 태양열주택, 청소로봇, 인터넷신문, 휴대전화, 인터넷 원격학습·진료 등이 현재의 우리 생활과 판박이로 닮아있다는 얘기다.

이 책은 4차산업혁명시대를 제대로 보여준다. 하루가 멀다고 혁신기술이 등장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시대다. 달리 말하면 무한하게 펼쳐지는 온갖 상상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사고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주제어 : 과학, 기술, 경제, 인문, 자연생태계, 문화, 물리학, 갈라파고스, 4차산업혁명, 혁신, 미래, 변화, 진화, 자연, 생태계, 우주

 

분류: 에세이,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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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7. 17:11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21227

가격 : 15,000

반양장본 | 231| 152×225mm

ISBN 979-11-86351-55-0 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김훤주

 

 

 

책 소개

 

말이산고분군에서 6.25함안전투까지

핵심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요약정리

 

임진왜란 영웅 40여 명 대거 소환하고

칠원민란 처음 알리며 별천계곡 숨은 얘기 발굴도

 

함안의 역사에 관련된 책은 많습니다. 말이산고분군이나 6.25전쟁 함안 전투는 이미 여러 책에서 다루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물 역시 여기저기에 그들의 업적을 적어 놓은 글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한눈에 담을 수 있도록 하면 함안의 역사를 널리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 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사건 가운데에는 잘 알려진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는 칠원민란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내용을 꼼꼼하게 다루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사건을 알리는 것으로도 나름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6.25전쟁 함안 전투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6.25 때 함안에서 그런 전투가 있었다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함안에서 그런 전투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과정을 쉽게 소개하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인물 편에서는 그들의 활약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별로 구분해서 좀 더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벌였던 인물은 가장 가까운 근대 역사라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감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밖에도 함안을 두고 기록의 고장이라고 하는 까닭을 알 수 있는 내용과 지금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는 명소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이런 작업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기록의 고장 함안이라는 명성을 더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머리말에서

 

작가 소개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출판국장과 환경전문기자로 일하며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함안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쓰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가 그것입니다. 이밖에 펴낸 책으로는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비매품)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등이 있습니다.

 

차례

 

머리말 7

 

 

1. 함안 역사의 첫머리 말이산고분군 9

탁월한 입지 선정 12

오랜 기간 조성된 가야 대표 고분군 13

한반도 최초로 말갑옷이 나온 마갑총 14

메이드인아라가야말갑옷 16

금은 장식 고리자루큰칼도 18

계획에 따른 질서정연한 배치 19

아라가야의 순장은 언제부터 21

순장에도 공식이 있었을까 23

순장의 시작과 끝은 24

청동기문화와의 연관성 암각화고분 25

거대한 봉분의 숨은 비결 27

가장 높고 크고 기다란 고분은? 29

남문외고분군, 말이산고분군과 하나가 되다 30

아라가야를 잘 갈무리한 함안박물관 32

불꽃무늬가 새겨진 다양한 토기 34

멋진 산책이 함께하는 말이산고분군 38

 

2. 아라가야의 왕성이 있었던 가야리 유적 39

 

3. 국제회의가 열렸던 당산유적 43

 

4. 신라가 쌓은 아라홍련의 고향 성산산성 47

가야가 쌓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49

신라 목간이 출토된 성산산성 50

700년 잠에서 깨어난 아라홍련 52

5. 고려 시대의 역사 인물 55

홍건적을 물리친 이방실 장군(1298~1362) 57

일찍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윤환(1303~1386) 66

고려 충신 이오 68

고려 충신 조열 71

고려 충신 조순 73

 

6. 조선 시대의 역사 인물 75

생육신 어계 조려 77

용퇴하고 무진정을 지은 조삼 80

서원을 최초로 세운 주세붕 83

주재성과 무기연당 87

 

7. 임진왜란 영웅들 95

김언수| 박제인| 박진영| 방흥| 안민| 안신갑| 안황| 안희| 오운| 유숭인| 윤탁연| 이간·이희 형제| 이령| 이만성| 이명호와 동생들| 이숙| 이정| 이집·이분형| 이칭| 이휴복| 정구룡| 제말| 조민도| 조방| 조붕| 조신도| 조응도| 조종도| 조탄| 차천홍·차억세| 황경헌| 동래할멈| 조준남·조계선부자| 주익창·주필창 형제부부

 

8. 임진왜란 영웅들의 낙동강 뱃놀이 151

전란을 이겨낸 위로와 자축의 모임 153

미래세대까지 함께한 자리 157

지금도 이어지는 그날의 모임 159

 

9. 칠원에도 민란이 있었다? 161

 

10. 일제에 맞선 함안의 인물들 165

독립운동자금을 내놓은 주시성 167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대암 이태준 168

사랑의 독립운동가 산돌 손양원 173

노령에도 만세시위에 앞장선 안지호 의사 176

일제 경찰을 응징한 조삼귀 여사 179

 

11. 경남 최초 최대였던 함안의 3.1만세운동 183

경남 최초 칠북 연개장터의거 185

두 차례 벌어진 대산면 평림 의거 187

칠북면 이룡 의거 187

3000명에 이른 함안읍 의거 188

함안에서 가장 큰 군북 의거 190

네 차례 시위를 벌인 칠원 의거 191

군북공립보통학교 항일시위 192

법수면민 항일시위 193

 

12.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1950년 함안 전투 195

섬진강을 넘어온 북한군의 기습 197

함안 서부 산악 지대 전투 199

함안 동부 평야 지대 전투 201

마무리는 소규모 근접전으로 203

 

13. 기록의 고장 함안 205

가장 오래된 읍지 함주지207

유일한 지역 문학·인물사전금라전신록213

조선 후기 함안의 풍물을 담은 함안총쇄록216

 

14. 한강 정구 놀던 별천계곡 명승지 221

후배 군수들도 즐겨 찾은 자리 223

곳곳에 한강 정구의 자취가 226

후배 군수도 흔적을 남겼고 228

한강을 기리는 뒷사람들의 자취도 230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30년 전 당시에는 동북아시아 전체에서도 이런 실물은 귀한 것이었고, 한반도에서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나타난 것은 함안이 최초였습니다. 앞서 경주·동래·합천 등에서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물고기 비늘 모양의 작은 쇳조각이 출토된 적이 있었는데, 마갑총에서 원형에 가까운 말갑옷이 출토되면서 그것들이 말갑옷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갑총 말갑옷은 이런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지금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6, 함안 역사의 첫머리 말이산고분군)

 

순장이 없어지는 과정도 차이가 납니다. 가락국은 지배계층이 무너지면서 순장이 줄어들고 사라졌습니다. 순장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서기 400년 침공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반면 아라가야는 지배계층이 건재하고 커다란 고분은 계속 지어지는데도 6세기 초반에 순장이 축소·소멸되었습니다. 순장할 능력은 그대로였지만 해당 지역 공동체에서 순장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갈수록 옅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 함안 역사의 첫머리 말이산고분군)

 

왕성에 걸맞은 커다란 규모의 취사 전용 건물터도 확인됐습니다. 길이 11m와 너비 5m에 이르는 기다란 네모꼴인데 암반을 파내어 만들었습니다. 취사 공간임을 알려주는 아궁이와 구들·굴뚝, 물을 담아둘 수 있도록 암반을 파서 만든 구덩이, 그리고 취사용 토기와 그릇받침도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42, 아라가야의 왕성이 있었던 가야리 유적)

 

당산유적은 2004년 발굴에서 확인됐는데 우리나라에서 고대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던 가장 큰 자리입니다. 전체 길이는 40m이고 너비는 최대 15m에 이르며 면적은 최소한 130(400) 이상입니다.

202010월 충남 부여에서 발견돼 눈길을 끌었던 사비 백제의 대형 건물지가 가로 12m 세로 7m인 데 견주면 엄청난 크기이고 발굴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45, 국제회의가 열렸던 당산유적)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금세 탁 트인 산성이 나옵니다. 무성했던 숲을 다듬어 만든 둘레길은 가볍게 산책하기에 그만입니다. 굽이마다 멋진 나무들이 보기 좋게 들어서 있습니다. 평상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거리낌 없이 펼쳐지는 함안의 풍경도 일품입니다. 여러 시대의 역사와 유물이 어우러져 있는 성산산성은 이제 가벼운 걸음으로 한 바퀴 둘러보는 즐거움도 갖추고 있습니다.

(53, 신라가 쌓은 아라홍련의 고향 성산산성)

 

돌아와 칠원에 있을 때 크게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지경이 되자 윤환은 재산을 풀어 그들을 구제했다. 또 가난한 백성들에게 재물을 빌려주고 받은 증서는 모두 모아서 불태워 버렸다.”

사회지도층일수록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윤환은 700년 전에 이미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굶주리자 곡식을 풀었을 뿐만 아니라 재물을 빌려간 이들의 빚까지 탕감해 주었던 것입니다.

(67, 고려시대의 역사인물)

 

주세붕이라는 인물을 역사에서 크게 치는 이유는 서원의 설립으로 여태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교육제도가 생겨났다는 데 있습니다. 이 전에는 교육기관이 나라에서 고을마다 하나씩 세운 향교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하고 싶어도 향교 말고는 갈 데가 없어 그만큼 교육의 기회가 적었습니다. 소수서원이 생기면서 전국 모든 고을에서 이를 본받아 서원을 세우게 됩니다. 이를 높게 평가하는 기록이 명종실록에 나와 있습니다.

서원이 옛날에는 없었다. 서원의 설치에 대해서는 전에 들어보지 못했으니, 이는 실로 커다란 결점이었다. 주세붕이 여기에 뜻을 두고 사람들의 비웃고 헐뜯는 것을 무릅쓰고 처음으로 서원을 세웠으니 옛 군자보다 공적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84, 조선시대의 역사인물)

 

무기연당은 전남 담양군의 소쇄원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조선 시대 정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답답하지 않고, 고요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아름다운 전통 정원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재성은 반란을 진압하는 데에 공을 세운 것도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대신 이렇게 그럴듯한 정원을 꾸며놓고 유유자적 살았다는 것이 더 훌륭할 수도 있습니다.

(92~93, 조선시대의 역사인물)

 

임진왜란이 끝난 지 4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나 책을 통해서 임진왜란을 경험하다 보니 승전의 장면에 열광하고 두드러진 몇몇 영웅들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찾아 기리고 기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97, 임진왜란 영웅들)

 

1606년 봄 조선 사신이 화친을 하고 돌아올 때 왜가 잡아간 사람들을 돌려보냈는데 동래 할멈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할멈은 늙은 어머니가 있었는데 난리를 만나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돌아와서 어머니를 찾았더니 할멈과 마찬가지로 왜국으로 잡혀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왜국에 10년 동안 있었는데도 서로 그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던 겁니다. 할멈은 친족들에게 어머니를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남기고 다시 바다를 건너 왜국으로 갔습니다.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다 마침내 어머니와 만나게 됩니다.

(142, 임진왜란 영웅들)

 

뱃놀이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2022년 함안박물관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했는데, 이 가운데 해방 이후를 보면 이렇습니다. 함안을 중심으로 낙강동범계라는 모임이 19557월 합강정에서 총회를 하고 조직되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낙동강 뱃놀이를 이어간 이들의 이름과 시를 담은 낙강동범 계안 부 시집을 보면 이들의 뱃놀이는 19577(낙동강)19607(정암강) 등 두 차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여기서도 1607년 임진왜란 영웅들의 유쾌한 뱃놀이는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159~160, 임진왜란 영웅들의 낙동강 뱃놀이)

 

고종실록에 따르면 수천 명이 모였다고 했는데 당시로서는 칠원에 사는 거의 모두가 결집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비록 일시적이었다 해도 대단한 규모로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큰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칠원민란은 그 이상 구체적으로 밝혀진 부분이 거의 없어서 연구·조사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64, 칠원에도 민란이 있었다?)

 

조삼귀 여사는 재판과정에서 내 남편과 내 나라의 원수를 갚았는데 무슨 죄가 있느냐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는데 어린 아들은 그새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후 한 점 혈육 없이 외롭게 살다가 1948415일 세상을 떠났는데 가야읍 관음사 입구에서 말이산고분군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위쪽 왼편에 그 열녀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181, 일제에 맞선 함안의 인물들)

 

1932년에는 군북공립보통학교에서 31독립만세운동 13주년을 맞아 6학년 학생들이 항일시위를 실행했습니다. 229일 정오 4~6학년 대부분과 1~3학년 일부 등 280여 명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학교를 나와 미리 준비한 전단을 뿌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습니다. 장날을 맞아 북적이는 군북시장을 거쳐 군북공원에서 만세삼창을 한 다음 군북역을 지나 신창학교 운동장에서 해산했습니다.

전단에는 조선어 시간을 6시간으로 환원하라, 조선 역사 시간을 배정하라, 식민지 교육과 노역을 금지하라, 학교생활에 자치권을 달라, 나카미츠 교장과 이점용 훈도는 물러가라는 요구 사항이 적혀 있었습니다.

(192~193, 경남 최초 최대였던 함안의 3.1만세운동)

 

북한군 제6사단은 724~25일 목포와 여수를 점령해 전라도를 완전히 장악한 다음 28일 섬진강을 건너 하동에 집결하더니 29일 아침 마산으로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군이 31일 진주에 이를 때까지 북한군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군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낙동강 방어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미군의 허를 찌르는 기습이었습니다.

(198,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1950년 함안전투)

 

함안읍지칠원읍지가 있는데 이것만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종

류의 것들은 조선 말기 중앙 조정의 방침에 따라 만든 것으로 다른 지역에도 이와 비슷한 읍지는 제법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넘어서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기록 유산이 함안에는 무려 세 가지나 됩니다. 함주지, 금라전신록, 함안총쇄록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풍성한 기록물이 남아 있다는 것은 함안으로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더없이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207, 기록의 고장 함안)

 

오횡묵은 함안총쇄록에서 이 양천을 두고 선생이 명명했다고 적었습니다. 여기 선생은 두말할 것 없이 한강 정구를 가리킵니다. 정구가 지은 양천은 지금 별천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국어학자들은 음운 변화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양천이 우리말로는 볕+내인

데 이 볕내가 자음접변 때문에 변내 또는 별내로 소리나는 것을 다시 한자로 고정시켜 별천(別川)으로 바뀌었다는 얘기입니다.

(227, 한강 정구 놀던 별천계곡 명승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함안 역사·인물의 보편적인 내용 다루면서도

칠원민란 등 첫 소개, 임진왜란 영웅 중점 발굴,

지금껏 이어지는 낙동강 뱃놀이의 연원도 밝혀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은 말이산고분군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문자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함안 역사의 첫머리가 여기에서 비롯되었고 지금 함안의 정체성도 여기에 기댄 바가 많기 때문입니다.

말이산고분군과 이어지는 가야리유적·당산유적, 성산산성 등은 최근까지 이뤄진 학계의 연구와 발굴 성과를 최대한 반영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산고분군은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지루해질 수 있는 만큼 개별 고분보다는 전체적인 모습과 성격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중요한 고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다른 가야 이야기를 곁들여 아라가야를 좀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분군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시대마다 달라지는 특징적인 내용도 두루 담으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금의 함안이 1500년 전 아라가야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지 더듬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말이산고분군은 왕궁이 있었던 가야리유적이나 국제회의가 열렸던 당산유적과 별개로 떨어져 있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임진왜란이라는 민족 최대의 위기를 맞아 함안 사람들이 무슨 일을 겪고 어떻게 맞섰는지를 최대한 풍부하게 담은 것도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의 특징 가운데 한입니다. 남겨진 기록이 많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기록이 한 줄밖에 되지 않더라도 찾고 살려서 적었습니다. 덕분에 마흔이 넘는 분을 임진왜란 영웅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숨겨진 임진왜란 영웅들은 지금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찾아내고 기록하는 일은 앞으로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통쾌한 승리의 역사와 빛나는 영웅들만 나라를 지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기지 못할 줄 알면서도 두려움에 떨면서도 기꺼이 나섰던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영웅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영웅들의 낙동강 뱃놀이에 얽힌 얘기도 있습니다. 16071월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한강 정구 함안군수 박충후 등 35명이 함안 용화산 아래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함께 어울렸습니다. 전란 직후 전란을 몸소 겪은 이들이 벌인 위로 자축의 뱃놀이였습니다.

당대에 이미 이름이 높았던 이들이 참여하고 중심이 됐던 모임인지라 오랫동안 그 영향력이 이어졌습니다. 1600~1800년대는 물론이고 20세기 들어선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에도 그들을 기리는 뱃놀이가 계속되었습니다.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당시 뱃놀이에 참여한 35명의 후손들은 지금도 해마다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칠원민란은 아마 함안·칠원에 관련된 역사 서술 가운데 최초이지 않나 싶습니다. 조선왕조실록등 여러 기록을 나름대로 찾기는 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학계의 연구도 전혀 없다시피 해서 참고할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찾아진 만큼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입니다.

19506.25전쟁 초기 함안전투도 여태까지는 전투 그 자체의 치열함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에서는 당시 그렇게 치열하게 함안전투가 벌어진 배경과 함안전투 승전이 전체 국면에 끼친 영향을 알기 쉽게 밝히고자 했습니다.

이밖에 말미에는 함안이 기록의 고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까닭도 한 꼭지 다루고 최소한 430년 전부터 선조들의 놀이 문화가 겹겹이 쌓여온 별천계곡에 대한 이야기도 따로 떼어 적었습니다. 다들 한 번은 눈길을 줄 만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주제어 : 지역, 함안, 칠원, 말이산고분군, 역사 인물, 문화, 임진왜란, 고려동, 생육신, 성산산성, 일제강점기, 함안전투, 갓뎀산

 

분류: 함안, 역사, 문화, 지역,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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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5. 17:53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295

가격 : 35,000

반양장본 | 387| 170*255mm

ISBN 979-11-86351-47-5 9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0194

www.idomin.com

 

 

책 소개

 

일본 고대 서적 연구로 일본 고대 역사의 허구를 밝혀낸 역작

--강단 역사학자 유사 역사학자 모두 엄두 못 냈던 성과

 

임나일본부는 일본 고대 서적의 기록에 근거를 둔 대표적인 역사 날조 사례이다.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실제 지배했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을 그럴듯한 서술로 포장해 담고 있는 것이 일본 고대 서적이다.

한일 역사학계는 공동으로 임나일본부설은 허구라는 결론을 내리고 또 합의까지 했지만 일본 정부는 교과서에 그런 합의를 반영하지 않고 엉터리 내용을 계속 싣고 있다.

물론 그동안 한일 양국에 축적된 고고학 자료들은 임나일본부설과 상반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신찬성씨록과 일본서기를 비롯한 일본 고대 서적에는 그와 반대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 정부가 잘못된 입장을 고수하는 현실적 근거 가운데 하나가 일본 고대 서적의 역사 서술인 것이다.

일본 고대 서적들은 신화와 사실이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있는 등 난잡하고 뒤죽박죽이어서 그 진위 여부를 명확히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실체를 규명해 보기 위해 발을 들여놓았다가도 상상을 초월하는 미궁과 미로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기 일쑤였던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한 공무원이 일본 고대 인물과 역사 서술의 허구성을 밝혀내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가 적용한 방법론은 단순명쾌했다. 천황을 비롯해 일본 고대사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들이 모두 성씨가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었다. 한 사람이 여러 성씨의 시조는 될 수 있어도 한 성씨의 시조가 여러 사람일 수는 없다는 자명한 원리였다.

경남 함안군청에서 가야사담당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정래 작가는 이 원리에 따라 일본 고대 서적의 근간이 되는 <신찬성씨록>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이 기준에 따라 허구의 인물과 실존 인물로 가려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일본서기와 속일본기, 풍토기, 고사기 같은 다른 일본 고대 서적에 적용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도출됐다. 첫째는 천황 등 일본 고대 역사 서적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후대인에 의해 가공된 가짜 인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전혀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면밀한 검토와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일본서기 등은 위서(僞書)라는 전제 아래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조정래 작가의 이번 결론은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구체적 논증으로 이룩한 성과다.

둘째는 실존이 인정되는 일본 고대 인물은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고 대부분이 근초고왕을 비롯한 백제계 왕가라는 것이다. 일본 천황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한반도의 왕이 왜를 지배했다는 것을 학술적으로 증명해낸 것이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25년 동안 파고든 노력이 소중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로써 임나일본부설은 고고역사학은 물론 문헌역사학에서도 설 땅을 잃고 말았다.

일본서기 천황과 임나일본부는 허구임을 밝히기 위한 25년 세월의 고심에 찬 연구는 이번에 제1<신찬성씨록을 통해 본 일본 고대 인물의 정체> 출간으로 처음 빛을 보게 됐다. 작가는 뒤이어 제2<일본서기 신대기와 신공황후 신라 정벌의 본질>, 3<일본서기 해석을 통해 본 임나일본부의 허구>를 조만간 발행할 예정으로 있다.

 

 

 

저자 소개

 

조정래

1964년 경남 함안 출생. 소설가.

함안문인협회, 경남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잊혀간 왕국, 아라에 대한 시리즈로 사라진 뱃사공, 옥돌에 얽힌 저주, 고분군의 수호자, 연꽃 위의 처녀, 검은 바다의 소용돌이를 출판했고 별권으로 칠지도, 아라홍련을 품다가 나와 있다.

아라에 대한 고증으로 일본의 고서(古書)를 연구하다 일본서기 천황과 임나일본부는 허구라는 시리즈로 전체 3권의 학술서를 쓰고 있다. 조만간 출간될 2권과 3권의 제목은 각각 일본서기 신대기와 신공황후 신라 정벌의 본질일본서기 해석을 통해 본 임나일본부의 허구이다.

현재 함안군청 가야사담당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차례

 

책머리에

결실을 돕는 책이 되길 바라며 ……… 5

 

1장 신찬성씨록

1. 신찬성씨록 ……… 12

2. 신찬성씨록의 판본과 성씨 개수 ……… 14

3. 고대 일본 서적의 성씨 ……… 18

4.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 25

5. 성씨와 관련해서 유의할 점 ……… 40

 

2장 신찬성씨록의 실존 인물(황별)

1. 시조로 분류된 인물 ……… 46

2. 천어중주존과 근초고왕 ……… 50

3. 언태인신명과 무내숙녜(건내숙녜) ……… 55

4. 대언명 ……… 69

5. 일본무존과 탁석별명, 언좌명 ……… 81

6. 백제왕과 신즐별명, 반충별명, 치순모이우왕 ……… 87

7.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 98

8. 기성진언명과 신전부왕, 고시왕 ……… 121

9. 대대명과 풍성입언명, 다기파세군, 대황전별명 ……… 124

10. 치무언명과 어지별명, 도속별 ……… 127

11. 그 외 황별 인물 ……… 133

 

3장 신찬성씨록의 실존 인물(신별)

1. 앞 장에서 이미 확인된 인물 ……… 153

2. 천진언근명 ……… 154

3. 대기귀명과 대국주신 ……… 161

4. 소잔오존 ……… 172

5. 진속혼명과 천아옥근명 ……… 182

6. 천수일명 ……… 183

7. 화란강명 ……… 191

8. 명일명문명과 천향산명, 오십맹신 ……… 192

9. 대명초언명 ……… 197

10. 건반근명과 천어영명 ……… 198

11. 천사대주명(천내팔중사대주신) ……… 199

12. 대폐소저명과 대도여명 ……… 200

13. 소좌능웅명 ……… 201

14. 그 외 신별 인물 ……… 203

 

4장 신찬성씨록의 실존 인물(제번과 미정잡성)

1. () ……… 231

2. 백제 ……… 248

3. 고려(고구려) ……… 262

4. 신라와 임나 ……… 267

5. 미정잡성 ……… 268

 

5장 성씨록 인물 비정에 따른 결론

1. 실존 인물의 최소화 ……… 282

2. 일본 고대 서적의 편찬 시기 ……… 285

3. 일본서기의 편년은 거짓 ……… 287

4. 일본서기 천황의 허구와 그 실체 ……… 313

5. 무내숙녜의 정체와 임나일본부의 허구 ……… 319

6. 최종 결론 ……… 325

 

부록

신찬성씨록 원본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은 고대 일본의 성씨와 그 시조를 적은 책으로 제52대 차아천황 시절인 815년에 총 30권으로 편찬되었다고 한다.

서문에는 초대천황인 신무가 등극해 국조(國造)와 현주(縣主)가 생겨난 이래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이어오던 성씨가 승보 연간에 제번의 청을 들어 원하는 성을 내려준 후 서로 고귀한 뿌리라고 주장하면서 다툼이 일어나고 이에 만다친왕 등이 고기(古記)와 박관(博觀), 구사(舊史)를 탐구해 신찬성씨록을 편찬했다고 되어 있다.

(12~13. 신찬성씨록)

 

지금까지의 고고학적인 발굴 성과는 한반도 문명의 일본 유입을 이야기하고 있고 신찬성씨록을 통해서도 그걸 증명할 수 있다.본서를 읽다보면 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일본신의 혈통이라고 주장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14. 신찬성씨록)

 

한 성씨의 시조가 두 사람 이상일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여러 개 성씨의 시조가 될 수는 있어도 하나의 성씨에 시조가 여러 명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혀 다른 시대에, 전혀 다른 이름이 몇 번이나 나오더라도 같은 성씨의 시조이면 그들은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26.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고사기도 마찬가지다. 경행천황의 계보조에 나오는 길비신의 시조 약건길비진일자와 왜건명의 동국정벌조에 나오는 길비신의 시조 어서우이건일자도 동일인이다.

이이예명기에 나오는 대반련의 시조 천인일명과 신무천황기에 나오는 대반련의 시조 도신명도 역시 동일인물이다.

효소천황기에 나오는 미장련의 시조 오진여증과 효원천황기에 나오는 미장련의 시조 의부나비, 숭신천황기에 나오는 미장련의 시조 의부아마비매, 응신천황기에 나오는 미장련의 시조 건이나타숙녜, 계체천황기에 나오는 미장련의 시조 범련도 모두 같은 인물로서 다섯 번이나 나타나고 있다.

(26~27.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무엇 때문에 이렇게 동일인물을 반복해서 적었을까? 이는 일본서기가 실제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적은 것이 아니라 짧은 역사를 길게 늘이다 보니 한 인물의 활동을 여러 군데 적어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름을 전혀 연관이 되지 않는 시기에 적으면 편년이 거짓임이 바로 탄로 나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창작해서 적은 것이다. 다만 그 사람이 본래 누구라는 것은 알고 있어야 바른 역사를 복원할 수 있기 때문에 성씨의 시조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27~28.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아무개 몇 대손 누구라는 방식에서 아무개와 누구라는 사람이 모두 실존 인물이라면 대수도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몇 되지 않는 실존 인물로 무수한 가공인물을 만들다 보니 대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으며 아무개와 누구라는 인물이 실제로는 동일인물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아무개가 누구의 후손인 경우도 있다.

(31.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속고왕은 초고왕 또는 근초고왕 중 한 분이고 속고왕을 대왕이라고 했으므로 크다는 의미의 근()이 덧붙어져 있는 근초고왕이 된다. 그런데 마침 금부련의 주()를 보면 속 앞에 근이 있는 판본이 있다고 해서 속고왕이 근속고왕이 되어 근초고왕인 것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해두고 있다.

즉 신찬성씨록의 속고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제 13대왕, 근초고왕이며 따라서 금부련과 삼선숙녜는 백제 근초고왕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우경제번하 백제의 진야조라는 성씨도 백제국인 속고왕지후로 나와 있어서 역시 근초고왕을 시조로 하고 있다.

(36. 고대 일본 서적의 등장인물)

 

성씨의 시조와 관련해서는 상식 밖의 결론이 나올 때가 있으므로 마음을 열어두어야 한다. 필자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운 결과에 반신반의할 때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40~41. 성씨와 관련해서 유의할 점)

 

신찬성씨록 제1()에는 335개의 성씨가 실려 있다. 1질에 수록된 성씨에서 시조로 표현된 인물의 숫자는 76명으로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신찬성씨록이 편찬되는 차아천황 이전에 51명의 천황이 있었고 일본서기에 의하면 응신천황만 하더라도 20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했는데 76명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47. 시조로 분류된 인물)

 

이장낙존과 이장염존이 천하를 다스릴 주인을 낳자고 해서 일신인 천조대신과 월신인 월궁존, 그리고 소잔오존을 탄생시킨다. 이때부터 만물의 시작이었던 근초고왕은 뒤로 물러나고 일신과 월신인 근구수왕, 그리고 소잔오존인 무내숙녜의 이야기가 신대기와 인대기에서 펼쳐진다.

(54. 시조로 분류된 인물)

 

일본서기를 보면 감미내숙녜가 무내숙녜의 동생인데 위에서 본 것처럼 무내숙녜의 조부인 언태인신명과 동일인이 되는 등 마구잡이로 혈통이 섞여 있는데 여러 이명을 지어서 대수를 늘리다 보니 바르게 정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맞지도 않는 혈통을 줄줄이 이어서

늘어놓은 것이 고사기와 일본서기이기 때문에 편년이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

(56. 언태인신명과 무내숙녜(건내숙녜))

 

천인일명과 천압일명은 둘 다 아메오시히노미코토로 읽어서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성씨록은 천압일명이 고황산영명의 5세손으로 되어 있지만 구사기 신대본기에는 천인일명이 고황산영존의 아들로 되어 있어서 근초고왕의 아들인 근구수왕임을 알 수 있다.

천인일명과 천압일명이 근구수왕이므로 수식어를 뺀 이름인 일명과 같은 일신도 근구수왕이 되고 일신의 별명인 천조대신, 천조태신도 근구수왕이 된다. 또 일신에게 도신이란 이름을 내려주었으므로 도신도 일신과 같은 근구수왕이다.

(63. 언태인신명과 무내숙녜(건내숙녜))

 

 

삼국사기를 보면 근구수왕 102월에 해에 삼중으로 햇무리가 섰고 대궐 안의 큰 나무가 저절로 뽑혔으며 4월에 왕이 죽었다고 나온다. 고사기 왜건명과 근구수왕이 삼중이란 단어에서 일치하고 얼마 후 죽는 것까지 같아서 왜건명 즉 일본무존, 그리고 경행천황까지 근구수왕이다.

(83. 일본무존과 탁석별명, 언좌명)

 

소아와 종아는 소가로 읽어서 소아석천숙녜와 종아석천숙녜는 동일인이다. 성씨를 보면 앵정, 전중, 소치전 성씨의 시조가 도목숙녜인데 고사기 효원천황기에 소아석하숙녜가 앵정신, 전중신(田中臣) , 소치전신, 소아신 등 7개 성씨의 조로 되어 있어서 도목숙녜는 소아석하숙녜와 동일인이다.

소아석하숙녜는 소가노이시가와노스쿠네로 읽고 소아석천숙녜는 소가노이사가하노스쿠네로 읽어서 대동소이한 발음인데다 하()와 천()은 의미가 같고 일본어사전의 발음도 같아서 같은 인물이다. 단지 다른 인물로 보이도록 발음을 바꾸었을 뿐이다.

(100~101.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천도근명은 신무천황 즉위전기 무오년조에 일신이 길을 잘 인도해서 내려준 이름인 도신과 같다. 천도근명의 천은 수식어이고 근은 로 발음되는데 천아옥명을 천아옥근명으로도 읽는 것처럼 연결음이므로 도만 남아서 도신과 같은 이름이다. 도신, 일신이 근구수왕이었으므로 토도언도 근구수왕이 되고 진언과 추근진언도 근구수왕이다.

(107.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신지진언명은 추근진언을 성씨록 내에서 다시 별명을 지은 것이다. 대화숙녜(47) 의 부가 설명에 일본서기와 똑같은 내용을 적고서 신지진언명이라고 했기 때문에 추근진언과 동일인물이고 근구수왕이다. 신지진언명, 추근진언명이 대왜, 대화라는 성씨의 시조가 된 것은 큰 나라 왜국의 왕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즉 백제가 왜를 다스린 것이다.

한편 추근진언이 상앗대(椎橋, 시히사오)의 끝을 주어서 신무천황을 잘 인도했다는 것은 근구수왕과 무내숙녜가 끝없는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겪은 경험을 토대로 무내숙녜가 왜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말한다. 또 근구수왕이 차지했던 왜를 다시 무내숙녜가 이어서 차지했기 때문에 잘 인도했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한 것이다.

이것은 무내숙녜의 왜국이 백제에 병합된 후에 다시 백제가 망하고 697년 일본이 출범할 때 무내숙녜의 후예가 문무천황이 된 것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근구수왕의 계통인 기존 백제왕가 대신 무내숙녜계가 왜를 이은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108.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이토테를 칭찬하면서 본거지를 이소지라고 했으므로 누구나 이토테와 이소지신의 시조를 동일인물로 생각할 텐데 이토테는 무내숙녜, 이소지는 근구수왕이 되어 다른 사람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이토테인 무내숙녜의 땅을 이소지신의 시조인 근구수왕에게 주었다는 표현으로

무내숙녜가 싸움에 져서 본거지를 빼앗겼다는 말이다.

이런 사례는 고사기나 일본서기를 읽을 때 반드시 성씨록을 참조해 숨겨진 실존 인물을 확인한 다음에 문장을 해석해야 하며 그렇지 않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112~113.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근구수왕의 아들이 무내숙녜로 나오므로 후세에 자손들이 선조의 성을 기재하면서 아버지의 성을 아들에게, 또 아들의 성을 아버지에게 적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잘못이 생겼을 수 있다.

아니면 내분을 감추고자 인물까지 뒤죽박죽 섞어서 본래의 사실을 찾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근구수왕이거나 무내숙녜이거나 한반도에서 건너가 왜를 다스린 사실은 변함이 없다.

(119~120. 기성왕과 식장언인대형기성명, 비고유모수미명)

 

일본 고대서적의 여러 가공인물을 실존 인물로 대체해 보면 주된 내용이 근구수왕과 무내숙녜의 영토 전쟁이다. 697년 일본이 출범하면서 이들의 후손이 모두 같은 땅에 살게 되었는데 부자지간인 선조의 전쟁이 다시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선조의 전쟁을 은폐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래서 천안하에서 맹약을 한다거나 뱀의 꼬리에서 칼이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로 교묘하게 전쟁을 숨긴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끝없이 늘어놓고 거기에 천황을 덧붙여서 있지도 않았던 왕조를 만든 책이 고사기와 일본서기, 속일본기인데 가짜 역사를 마냥 진짜 역사로 착각할까 봐 성씨의 시조로 같은 인물을 연결시키고 성씨의 시조를 모은 성씨록이라는 보완책까지 만들어

서 진짜 역사를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23. 기성진언명과 신전부왕, 고시왕)

 

신대8단 일서6에도 대기귀명이 나라를 다스릴 때에 출운국의 오십협협의 해변에 가서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뱁새의 깃으로 만든 옷을 입은 남자가 배를 타고 왔는데 소언명명이라고 했다. 발음이 스쿠나히코나노미코토인데 고사기 효원천황기를 보면 소명일자건저심명이 스쿠나히코타케이고코로노미코토로 읽어서 스쿠나히코가 같기 때문에 같은 인물이다.

(136~137. 그 외 황별 인물)

 

본래 61명의 인물이 48명으로 줄어들었는데 404개의 성씨에 비하면 거의 십분의 일 수준이다. 황별이 335개 성씨에서 55명으로 줄어든 것보다 더하다. 그만큼 실존으로 비정할 수 있는 인물의 수가 적다는 것이다.

(152. 신찬성씨록의 실존 인물(신별))

 

황후가 분만할 때 궁중을 다니다가 마구간(廐戶)에 이르러 힘쓰지 않고 황태자를 낳았고 태어날 때부터 말을 했으며 어른이 되어 한꺼번에 열 명의 송사를 처리했고 장래를 잘 알았다고 하고서는 궁의 남쪽 상전에 거주하게 해 상궁구호풍총이태자라 한다고 했다. 상궁태자, 상궁풍총이태자로도 나온다.

마구간은 말을 타고 온 한반도의 지배층을 나타낸다. 아직기가 말을 기른 곳이 판상의 마구간으로 성덕태자하고 연결되어 있으며 신무천황도 말과 연관되어 있다. 당시 왜에 있던 토착민은 말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말 문화에 대해 깊은 경외감을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159. 천진언근명)

 

무내숙녜가 수많은 이명으로 많은 활약을 하는 것은 그 후손이 다스리던 시기에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만들어진 까닭도 있지만 실제로 부족국가였던 왜를 통일해 중국 사서에 나오는 왜국으로 만든 당사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고대사의 주인공이고 의지의 인물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60. 천진언근명)

 

천지일모가 옥을 차지했고 옥이 여인으로 변해 결혼한 것은 그 지역을 차지한 것인데 그곳이 소나라이면서 또한 신라이기도 한 것이다. 이 신라는 새로 차지한 땅, 새 나라라는 의

미이므로 경주 신라의 국명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소잔오존이 내려온 신라국의 증시무리, 신라국의 소시머리가 이해된다. 소시머리에서 시는 연결음이라고 했고 모리는 삼림, 숲을 말하므로 소의 삼림, 즉 소의 나라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거기가 신라이므로 소잔오존이 신라국인 소나라에 내려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174. 소잔오존)

 

무내숙녜인 아라사등을 임나국의 왕으로 삼았다고 했고 성씨록에도 임나국주, 임나국의 주인이 아라사등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임나는 나라라고 인정받을 만큼 일정 기간을 무내숙녜가 통치권을 행사한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임나의 위치를 보면 두 군데가 있다. 먼저 아라사등이 돌아간 곳인데 원래 자기 나라에 있을 때 소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큐슈의 아구누마 즉 웅습국이 되고 큐슈 전체를 임나로 볼 수 있다. 이는 무내숙녜가 왜의 왕이 되었으므로 확실한 임나의 땅이다.

(178~179. 소잔오존)

 

좌리왕과 함께 좌리금 (左李金) , 좌리기모 (佐利己牟) 등이 나왔는데 김()과 기모(己牟)를 같이 코무로 읽는다. 백제에 의한 왜국통치 삼백년사에서는 김()을 일본음으로 읽으면 기무 또는 고무가 되므로 기모(己牟)는 김()이라고 했다.

좌리(左李)를 사이, 좌리(佐利)를 사리라고 읽는데 이는 신대8단 일서3에서 호미 () 를 사히로 읽어서 사이, 사리, 사히는 쇠를 일본음으로 발음한 것이어서 좌리금, 좌리기모는 쇠금을 적은 것이고 좌리왕은 쇠왕, 금왕이라고도 했는데 아주 적절한 의견이다.

왜냐하면 앞서 소잔오존과 소나라 항목에서 소잔오존이 내려간 곳이 신라국이자 소나라이며 서라벌이고 그 주석에 서라벌을 이 있는 부락, 쇠가 있는 부락이라고 했으므로 쇠왕, 금왕이라고 하면 서라벌의 왕, 신라왕이 되는 것이고 소잔오존, 천일창, 아라사등으로 이어지는 무내숙녜가 금왕까지도 연결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226, 그 외 신별 인물)

 

민달과 경행, 수인, 윤공, 인현, 서명천황이 근구수왕이고 신무와 응신, 계체, 용명, 인덕, 안강, 숭신, 천지천황이 무내숙녜였으며 현종천황은 침류왕임을 살펴봤다. 따라서 일본서기의 천황체계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고 오로지 가짜 역사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가공인물일 뿐이다.

(313. 일본서기 천황의 허구와 그 실체)

 

일본서기에 나오는 천황이 어떤 인물을 모티브로 했는지 살펴봤다. 제명은 황극과 동일인물이고 신공황후가 더해져 40명의 실질적 천황 중 근구수왕 9, 무내숙녜 17, 침류왕 1명이고 근구수왕과 무내숙녜로 동시에 비정되는 천황이 1명이며 비정이 불가한 천황이 12명이다.

이렇게 일본서기의 천황은 실제 존재하지 않았고 한반도에서 건너간 인물을 모티브로 한 가공인물에 불과하므로 일본서기가 적고 있는 천황 체제라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 그 편년이 거짓이고 천황 체제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일본서기는 읽을 때 아주 주의를 요한다. 무턱대고 일본서기의 편년과 인물을 우리 고대사에 이입하면 얼토당토않은 결과가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318~319. 일본서기 천황의 허구와 그 실체)

임나일본부설 같은 엉터리 학설이 버젓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일본 고대 서적에 대한 우리의 연구가 미진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양국 학계가 임나일본부설을 종식시키기로 발표했을 때 이미 이런 문제를 예견했다. 우리의 손으로 끝내지 않은 것은 언제든지 되돌아올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은 시대 구분에 임나를 넣어 우리를 한 차례 희롱한 바 있다.

우리 국민은 일제의 침략에 분노하고 임나일본부설에 치를 떤다. 하지만 임나일본부설을 넘어서기 위해 진정으로 해야 할 일, 일본의 고서를 연구하는 일은 소홀히 한다. 오히려 잘못된 애국심으로 임나를 이야기만 해도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사람으로 매도하려고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일본 고대 서적을 연구해서 임나일본부설을 이길 수 있는가? 잘못된 애국심이야말로 오히려 일본을 도와주는 것이다.

(324~325. 무내숙녜의 정체와 임나일본부의 허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일본 고대 역사는 우리가 부정만 하면 되는 것일까?

--잘못된 애국심이 일본 돕는 결과 초래

 

사실 일본서기와 신찬성씨록 등 일본 고대 서적은 그동안 우리나라 고대역사학에서 뜨거운 감자 취급을 받아 왔다. 대학 등 강단 역사학계는 당연히 이들 서적과 인물을 당연히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면밀하고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진위를 판별하고 사실로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반면 이른바 유사 역사학계는 일본 고대 서적은 모조리 위서라는 관점에서 검토할 것도 없이 부정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주장해 왔다.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며 더 나아가 연구까지 하는 것은 친일매국 행위라고 주장해 왔다.

조정래 작가는 임나일본부가 우리를 괴롭히는 괴물이 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임나를 이야기하면 마치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것처럼 여기고 일본 고대 서적을 다루기만 해도 이상한 존재 취급을 하기 때문에 임나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그 때문에 한일고대사의 쟁점을 우리 손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 고대 서적을 연구하면 바로 친일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이런 잘못된 애국심은 대중의 정서까지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임나일본부설을 넘어서려면 반드시 사실을 규명해야 하고 그러려면 일본 고대 서적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연구한 결과가 바로 조정래 작가의 이번 역작 <신찬성씨록을 통해 본 일본 고대 인물의 정체>이다.

<신찬성씨록을 통해 본 일본 고대 인물의 정체>는 한일 고대사의 엇갈리는 쟁점을 밝히고 사실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저작물이다. 일본 고대 서적으로 일본 고대 인물의 허구를 밝히는 최초의 작업이었다. 이런 점에서 강단 역사학계와 유사 역사학계 모두 조정래 작가의 이번 연구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주제어: 조정래, 일본, 임나일본부, 임나, 일본 고대사, 한일 고대사, 일본서기, 신찬성씨록, 속일본기, 고사기, 구사기, 풍토기, 무내숙녜, 근초고왕, 근구수왕, 임나일본부설,

분류: 인문과학, 한국 역사, 일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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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5. 16:59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2523

가격 : 15,000

반양장본 | 276| 140*200mm

ISBN 979-11-86351-22-2(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0194

www.idomin.com

 

저자 : 한영순 / 편집자 : 고은광순

 

책 소개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참으로 험한 나날을 살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일제 패망 이후 신생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전쟁과 혁명과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믿기 어렵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숱하게 보고 들으며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굵직굵직한 것만 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랍니다. 먼저 6.25 전쟁 직후 전국 곳곳에서 국민보도연맹을 빙자해서 자행한 최소 10만 명 규모의 민간인 학살을 첫머리에 꼽을 수 있습니다.

19512월 지리산 산골에서 대한민국 정규 군대가 정식 지휘 계통을 통해 명령을 받아 같은 대한민국의 민간인을 마을 단위로 모아놓고 총질해 죽여버린 경남 산청·함양과 거창의 집단 학살 사건은 어떠한가요?

19718월 서해의 외딴 섬 실미도에서 북파 공작을 위해 훈련받던 부대원들이 집단 탈출하여 인천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면서 벌어진 군인·경찰과 민간인·부대원 등 50명가량이 목숨을 잃은 실미도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 독재자 박정희가 살해당한 이후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가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잠재우고 권력을 연장시키기 위해 그해 5월 광주 일대에서 벌였던 엄청난 학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와 같이 좀처럼 믿기 힘든 이런 사건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지배자들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실상을 공개하지 않았고, 그 탓에 길거나 짧은 세월 동안 비밀에 부쳐져 왔다는 것입니다.

805월의 광주 학살은 아주 가까운 시기에 겪은 사건이다 보니 그 봉인이 1982년부터 해제되기 시작했지만, 나머지 사건들은 일러도 1990년대 후반 늦으면 2010년대 전반에도 그 비밀의 빗장이 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사건들은 비밀의 빗장이 대부분 풀렸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드높은 민주 역량이 이룩한 위대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군데 남은 데가 있다면 그것은 경제의 영역일 것입니다.

부정한 지배집단의 정권 장악과 유지 욕심이 만들어낸 이른바 어떻게 조성되어 꾸준히 재생산되어왔는지 이제는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일부 드러난 것처럼 그 돈다발의 규모는 어떻게 현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지? 하고 되물을 정도로 엄청날 것이고 그 내막은 일반인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를 얼룩지게 만든 사건들이 모두 그랬지 않습니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하나같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저자 한영순과 가족이 겪은 일들도 언젠가는 분명한 사실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전모가 조금만 더 밝혀지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의 소재가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저자 소개

 

저자: 한영순

 

1955년 부산 가야동에서 한희승 아버지 백금남 어머니의 일곱 번째 막내딸로 출생.

민주시민연합에서 활동

관청피해자모임 부회장

현 박정희심판국민행동 대표

국민의힘당 서정화 상임고문 24번 고소

전 민주당 박주선 의원 11번 고소

재경부 윤증현 장관 15번 고소

 

편집자: 고은광순

 

1955년 서울 명륜동에서 고주상 아버지 은예동 어머니의 다섯 번째 막내딸로 출생.

이화여대 사회학 전공 중 박정희 긴급조치로 2회 구속.

한의학 전공.

충북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 행복마을만들기 운영위원장.

평화어머니회 상임대표.

 

 

목차

 

추천사 / 8

프롤로그-부모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 18

 

1. 내 부모님

1) 영순아, 커텐 닫아라!-34일 이어진 어머니의 통곡 / 21

2) 아버지는 함흥의 유관순 / 23

3) 부모님은 함흥의 갑부 / 25

4) 해방 후 고향을 떠나다 / 26

5) 6.25 전쟁이 터지자 거제도 군부대 안에 식당 운영 / 27

 

2. 박정희를 만나다

1) 박정희, 부모 앞에 나타나다(1950) / 29

2) 구두를 닦아 아버지 앞에 놓아주던 박정희 / 32

3) 광목치마 자루에 담아서 3년간 건넨 돈 / 33

4)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박정희(1956) / 34

5) 전쟁 통에 후방에서 대통령 될 궁리만 하던 박정희 (1950-1956) / 35

 

3. 어머니의 고난

1) 어쩌다 불고기도 먹었지만 / 38

2) 이후락의 방문 / 40

3) 박정희 선거운동원이 되었던 어머니 / 41

4) 청와대 특사 서정신의 요구 -이민 가라! / 42

5) 김영삼을 만나고 온 어머니 구속되다 / 44

6) 이후락의 지속적이고 위협적인 관리, 발설하면 죽는다 / 46

7) 중앙정보부원은 다 아는 사실-육영수는 박정희가 죽였다 / 49

 

4. 7남매 이야기

1) 장녀 영자 / 56

2) 차녀 영옥 / 59

3) 장남 인채 / 62

4) 삼녀 춘자 / 65

5) 차남 경채 행방불명 / 68

6) 사녀 명순 / 71

7) 오녀 영순-해결사가 되어야만 하는 내 운명 / 73

 

5. 박정희 사망 후에도 소모품으로 이용되는 한춘자

1) 박정희 이후락의 부하, 김종찬의 계획적인 접근 / 78

2) 한춘자, 죽은 자의 고소로 구속되다 / 82

3) 도청되는 한춘자 전화, 찾아오는 하나회 사람들 / 86

4) 밤에 들어와 마약주사를 놓는 그들 / 89

5) 춘자 언니 계좌 수십 수백 개 / 89

6) ‘인감 장사소모품 한춘자의 불행한 호텔살이, 여관살이 / 94

 

6. 구 안기부 요원과 신 국정원 요원의 충돌

1) IMF 여파로 쓰러진 나, 춘자 언니와 생활하다 / 103

2) 구 안기부 요원들의 23천억 원 사기약탈 미수 사건 / 104

3) 23천억 원의 정체를 내게 캐묻는 검사 /106

4) 재떨이로 호텔 유리창을 깨다 / 114

5) 그 와중에 드러난 어마어마한 차명계좌 834/ 115

 

7. 무능한 진보 정부

1) 노력은 하였으나? / 120

2) 혁명적 조치 없이 비자금은 정리되지 않는다 / 120

 

8. 인간말종 흡혈귀 서정화

1) 이 책의 키맨 서정화 / 124

2) 1997년부터 한춘자에게 접근한 한나라당 서정화 의원 / 126

3) 윤증현이 끼어드는 이유 / 127

4) 박주선이 끼어드는 이유 / 130

5) 아버지 돈을 찾을 희망에 들떠 있었던 형제들 / 130

6) 한춘자는 왜 안 주는 건데? / 141

7) 5조 원 먹튀- 미꾸라지 서정화, 박주선, 윤증현 / 142

8) 브로커와 인채 오빠 / 151

9) 협박하는 안기부 3차장 최준택 / 153

10) 한영순, 투사로 변신하다 / 159

 

9. 처절하게 짓밟힌 자구책

1) 채무자(박정희와 관리자들) 쪽 사정 / 165

2) 채권자1(한춘자) 쪽 사정 / 167

3) 채권자2(막내 한영순) 쪽 사정 / 169

4) 이후락, 악착같이 빨대 꽂다 / 170

5) 이후락, 죽기 전까지 만나달라고 여러 차례 사정하다 / 174

6) 2009년 이명박 대통령에게 청원서 낸 후 덮쳐온 죽음의 그림자 / 175

7) 안기부 출신 윤제영 변호사, 우리 청와대 민원 내고 사망 / 177

8) 박주선과의 싸움 / 190

9) 대검찰청 앞 1인 시위 3개월 / 216

 

10. 돈세탁은 이제 그만 통장을 파헤쳐라

1) 재경부는 7조 원의 재가확인서 원본을 공개하라 / 218

2) 한춘자가 죽었다고?- 금감원의 엉뚱한 답변 / 219

3) 영옥 언니 경찰 아들- 번개탄으로 자살 / 221

4) 재단을 통한 돈세탁과 보수우파 키우기 / 223

5) 춘자 언니 최근 근황 / 225

6) 숨긴 돈을 통치자금, 국가비자금이라 말하지 마라 / 232

 

에필로그-순이들의 대담 / 236

제보를 바랍니다 / 262

독재자가 조작한 간첩 사건들 /264

주요 사실 관련 연대표 / 274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박정희는 자기가 대통령이 될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빌려달라고 아버지에게 간청했다. 박정희의 부하 강 대위는 자기 상사의 야망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고 주변에 돈이 많다고 알려진 아버지와 의도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것이다. 아버지는 박

정희와 함께 총포재생창장, 타이어재생창장 및 군 수뇌부하고도 자주 술자리를 하셨다.

- (본문 32, 구두를 닦아 아버지 앞에 놓아주던 박정희)

 

아버지는 흰 광목치마로 만든 커다란 자루에 흰 광목 끈으로 묶은 돈을 담아 1953년부터 한 자루씩 1955년까지 일 년에 한 번씩 세 번을 건넸다고 한다. 박정희는 어머니가 일하시는 사병식당에도 찾아와 사모님 신세 잊지 않겠다고, 깊이 허리를 숙여 여러 차례 인사했다. 함께 술을 마실 때면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서정귀는 기업체 사장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 (본문 33, 광목치마 자루에 담아서 3년간 건넨 돈)

 

1967. 박정희는 재선을 위한 준비에 한참이었다. 두 명의 남자가 소고기를 묵직하게 사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조용히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형제들은 다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박정희가 죽고 나서야 어머니는 그들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이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빌려간 돈을 받으려면 박정희가 다시 대선 승리를 해야 한다며 최대한으로 표를 모아달라고 어머니에게 사정을 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한 번만 더 믿어보라고 하며 다시 대통령이 되어야 원만하게 돈을 줄 수가 있고, 어머니도 편히 돈을 쓸 수가 있다고 했다.

(본문 41, 박정희 선거운동원이 되었던 어머니)

 

어머니가 출소한 지 얼마 안 되어 이후락이 보냈다는 정보부 요원이 찾아왔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어머니에게 빌려간 돈을 셋째 딸인 한춘자 명의의 통장에 넣었다면서 어머니 눈앞에 통장 하나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있기 전에는 통장을 줄 수 없다며 앞으로 어머니의 모든 행동을 중앙정보부에서 감시할 것이니 돈을 받고 싶으면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이며 아무나 만나지 말고 죽은 듯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 돈의 뿌리가 남편 한희승의 돈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자식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것이며 발설할 경우 모두 죽을 것이라고 단단히 협박을 했다.

(본문 47, 이후락의 지속적이고 위협적인 관리, ‘발설하면 죽는다’)

 

춘자 언니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전직 청와대. 전직 재경부, 전직 금감원, 전직 중앙정보부, 안기부 근무자들로 그들은 하나같이 보수정당의 하수인들이고, 그들은 하나같이 춘자 언니 통장의 잔고증명이나 통장거래내역을 가지고 와 보여주며 이 돈은 대통령이 승낙하면 쓸 수 있다. 쓰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주군의 지시에 의해 춘자 언니 인감, 위임장 등을 받아가서 돈을 빼다가 재단에 넣고 그 이익으로 자신들의 몫을 챙기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기 주군이 중앙정보부/국정원 따위의 세도를 가졌다고 해서 아주 시건방지게 내 언니 춘자 언니를 마치 화류계 여성 대하듯 하대하기도 했는데 옆에서 보기에 무척 화가 났다. 언니는 자기 나름의 목적이 있기에 상대가 예의 없이 대해도 돈이 되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꼴 저 꼴 다 감내하며 살고 있다.

(본문 87, 도청되는 한춘자 전화, 찾아오는 하나회 사람들)

 

같은 달 709:20 무렵 서울 은평구 남가좌동 10223에 있는 볼래로 커피숍 앞길에서 피고인 황주연, 박형석, 윤향수, 이창순, 이현우는 위 한춘자의 운전기사인 피해자 김정송에게 조사할 것이 있다며 강제로 서울325341호 승용차 뒷좌석에 태운 후 피고인 박형석이 위 자동차를 운전하며 피고인 황주연과 무전기로 김정송을 달았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리 하나를 잘라 버리겠습니다.”라고 교신을 하고, 피고인 이현우, 윤향수는 위 피해자의 팔을 잡고 고개를 숙이게 한 다음 양옆에 앉아 주먹으로 위 피해자를 때리고, 같은 날 13:30 무렵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서서울호텔 503호실로 위 피해자를 데리고 가서 윤향수, 이창순, 이현우, 김인태는 피해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여 같은 달 811:00 무렵 피고인 이현우는 위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피고인 박형석은 같은 황주연에게 전화로 위 피해자를 감금한 사실을 보고하고, 피고인 황주연은 같은 홍장용에게, 같은 홍장용은 같은 고석주에게 각 이를 보고하고, 다시 위 피해자를 같은 호텔 512호실로 데려간 다음 수건으로 위 피해자의 눈을 가리고, 위 피해자를 상대로 약 2시간 동안 위 한춘자에 대해 조사하면서 피고인 황주연 등은 주먹과 발로 위 피해자의 온몸을 폭행하고, 피고인 박형석, 윤향수, 이현우, 김인태는 피해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여 같은 달 811:00 무렵까지 약 26시간 가량 위 피해자를 감금하였다.

(본문 111~112, 98고단 6654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판결문 일부)

 

첫 만남 당시 서정화는 춘자 언니한테 나는 한동빈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언니는 TV에서 서정화 의원을 보았기에 그가 정치가로서 신분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려고 했단다. 서정화 의원의 보좌관 강홍석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서정화 의원의 지시대로 춘자 언니와 자주 만났고 춘자 언니는 강홍석을 신뢰했기에 많은 정보를 주었다. 언니는 자신의 통장에 돈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돈을 사용하기 위한 재가확인서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힘있는 권력자여야 한다고 믿었기에 서정화 의원의 개입을 반가워했다. 언니는 그의 지시대로 7월에 재경원에 재가확인을 받기 위한 신청서를 접수했다.

얼마 뒤 언니한테 72150억 원 중 51천억 원이 실명전환 되었다며 이에 관한 재가확인서(통장에 돈이 있는 것을 사용해도 좋다고 재정경제원이 허용하는 확인서 *편집자 주)가 인편으로 도착하였다. 재정경제원 실명제팀장 윤증현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재가확인서를 손에 입수한 한춘자는 서정화 의원 보좌관 강홍석이 요구하는 대로 또 다른 문건들을 준비해주었다.

(본문 126~127, 1997년부터 한춘자에게 접근한 한나라당 서정화 의원)

 

그러나 한 달 후면 통장에 들어온다는 돈이 춘자 언니에게는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는 서정화의 보좌관 강홍석, 박주선의 보좌관 김광성, 윤증현의 부하 윤종한 등에게 연락을 해 보았으나 모두 연락두절. 인채 오빠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주군(?) 서정화, 박주선, 윤증현 역시 언니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6~7개월 만에 나타난 하수인(대리인)들은 통장에 돈이 안 들어왔다는 한춘자의 말에 그럴 수가 있냐?’ 하며 함께 놀라는 척하고 해결사로 나설 듯 또다시 한춘자에게 인감증명을 받아갔다. 그리고는 역시 깜깜 무소식. 박주선의 보좌관 김광성은 3년 뒤 사망했다.

(본문 141, 한춘자는 왜 안 주는 건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처음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 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 원고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처럼 믿기지 않는 내용이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거듭 읽어보면서 탄탄한 사실관계와 긴밀하게 이어지는 논리 구조를 나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었다는 한 당사자의 사연과 주장만 있는 게 아니고 가족 등 그와 연관된 다른 인물의 얘기도 어우러져 있었다.

또하나 이것이 사실이 아닌 허구라면 저자 한영순으로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도 생각이 미쳤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재판을 걸면 그 과정에서 허구가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본인이 입을 손해가 클 것이 뻔한데도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여태 봉인돼 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마지막 비밀을 열어젖히는 첫 관문이 될 수 있다. 금융실명제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투명인간이 되어 전국을 떠돌며 우리 경제를 좀먹고 있는 검은돈의 실체는 무엇일까? 악의 꽃을 피우고 시들지 않도록 양분을 공급해온 검은돈의 뿌리는 저자 한영순이 겪은 일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얽혀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장

 

 

추천의 글

 

이 책은 박정희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내려온 정치 비자금 일부를 밝혀 주고, 어떻게 관리되어 왔는 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막대한 정치 비자금의 운용은 수조 단위의 차명계좌들을 필요로 했고, 이를 둘러싼 권력을 지닌 정치인들의 모습이 국정원이나 검찰과의 연계 속에 차분하게 드러난다.

다루고 있는 주제의 특성상 일종의 음모론으로 치부되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인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기에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증빙 자료의 충실함과 더불어 과거 박정희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공식 확인할 수 있는 인물들의 등장이 있기 떄문에 최소한의 객관적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더욱이 지금도 활동 중인 잘 알려진 현역 정치인들을 포함해 유명인들의 실명과 그들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기에 단순한 상상과 허구로 치부할 수 없다.

무엇보다 박정희 비자금 관리를 위한 차명계좌가 800개 이상이며, 100조가 넘는 통장을 가진 사람이 9명이라는 구체적 자료가 차명계좌 주인들의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나름 신빙성이 확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희종(서울대 교수,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상임대표)

 

대한민국은 도약과 추락의 가능성을 동시에 가진 나라이다. 박정희 비자금의 흑역사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며 이를 유지·온존시키는 부패 탈법의 기득권 카르텔의 숨통을 끊어내지 않고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불가능하다. 그들만의 부패 탈법 기득권 카르텔이 천문학적 부동산투기의 저수지와 사금고 역할을 하며 부동산투기공화국으로 만들어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검찰정상화법에 이어 이제는 박정희 비자금의 흑역사를 온 국민 앞에 드러내고 그 흑역사의 패거리들을 국민법정에 세워 국민적 심판과 함께 사법적 단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아 왔던 부패 탈법 기득권 카르텔을 끊어내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온 국민이 이 책을 통하여 지독한 불평등의 현실을 만들어낸 부패 탈법 약탈의 기득권 카르텔의 민낯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깨인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부상하였으면 좋겠다. 특히 현대사의 흑역사를 모르고 자라온 청소년들이 읽고 이들이 주역이 되는 시대의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왜 한국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헬조선의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에 NO 결혼 & NO 출산 파업을 하는 청년들이 꼭 읽고 헬조선을 넘어서기 위해 토론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임진철(직접민주주의마을공화국 전국민회 상임의장)

 

박정희에게 비자금이 있다는 소문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오리무중이었다. 이른바 통치자금이라는 이름의 이 비밀에 싸인 돈이 박정희 사후(死後)에는 누구의 손에 들어가 어떻게 쓰였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 실체의 일부를 우리에게 고발하고 있다. 게다가 이 돈의 핵심은 남의 돈을 강탈한 것이라는 점이다.

책은 생생한 서사(敍事)로 되어 있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누가 주도했으며 무슨 사건들이 이어졌는지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건 한편의 뛰어난 르포 문학이면서 또한 가감 없는 역사의 기록이자 이 시대의 절박한 증언이다. 그건 감출래야 더는 감출 수 없는 박정희, 그리고 그가 휘두른 통치 권력의 야만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그에 더하여 누가 어떤 통곡을 쏟아내야 했는지 절절한 울림을 지니고 있는 저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이게 과연 사실인지 묻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질문이 우리가 원하는 시작이다. 사실인가? 실체가 있단 말인가? 누가 피눈물을 흘렸는가? 어떤 세력들이 이 진실을 은폐하고 계속 침묵 상태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래서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저들에게는.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중한 목소리. 이 목소리는 오늘의 역사가 왜 이렇게 비틀거리고 있는지, 어찌해서 악의 꽃은 시들지 않고 계속 저렇게 자신들을 세상에 과시하면서 번창하고 있는지 그 까닭을 알게 해줄 것이다.

-김민웅(‘촛불승리! 전환행동상임대표. 전 경희대 교수)

 

이 끝이 없는 적폐들과의 싸움을 끝낼 수 있는 표적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책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정의와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용감히 싸우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 주는 이 책을 이 시대의 개혁 시민 여러분들이 부디 많이 읽어주시고 같이 싸워주셨으면 한다.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 어려운 투쟁의 길을 결코 소수가 힘들게 가도록 두고 싶지는 않다. 같이 승리하고 같이 승전보를 울립시다!

-최수연(평범한 민주시민. 개딸)

 

주제어: 한국사, 역사, 현대사, 박정희, 비자금, 육영수, 서정화, 이후락, 윤증현, 박주선, 안기부, 중앙정보부, 중정, 국정원

분류: 한국사, 역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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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5. 16:56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제목 :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펴낸 날 : 2022426

가격 : 20,000

반양장본 | 373| 152*225mm

ISBN 979-11-86351-46-8(0309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 김훤주

 

 

책 소개

 

여행은 이제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휴일이면 어디로 떠나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인터넷 속에는 맛집이나 유명 장소에 대한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인증샷을 찍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즐깁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더 유익하고~ 좀 더 보람 있는~ 뭐 그런 게 없을까? 싶은 아쉬움을 느껴본 적이 다들 있을 겁니다. 뭔가 조금 더해지면 참 졸을 텐데 싶은 거지요. 책 속에 경남 18개 시·군의 역사와 문화를 꼼꼼하게 담았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지역의 이야기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서 썼습니다.

역사를 딱딱하고 어려운 공부가 아니라 보람 있는 여행의 소재로 삼는 이들이 많아진 추세를 따랐습니다.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역사서이기도 하고 여행객들에게는 경남을 소개하는 여행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여러 모로 두루 도움이 된다면 곰탁곰탁 다니며 발품을 판 보람이라 여길 수 있겠습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현재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장 겸 환경전문기자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 공동대표

 

펴낸 책

2008<습지와 인간>

2012<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2016<경남의 숨은 매력-역사·문화 스토리텔링>

2018<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2020<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2020<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목차

 

중부

창원시 · 13

진해 · ‘진해의 원래 주인은 삼진 지역 / 일본 해군의 전승지 / 근대와 현대의 문화유산이 빼곡한 옛 시가지 / 이순신 장군의 빛나는 전승지 /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자취도 / 해양 방위 요충지 웅천읍성과 제포진성

창원· 문화재가 적은 도시 창원 / 덕천리지석묘와 다호리고분군 / 창원읍성과 창원향교 / 국가중요농업유산 창원 단감 / 주남저수지 일대

마산· 고려·몽골연합군의 일본정벌 전진기지 / 마산창과 창동 / 마산헌병분견대 / 마산의 근대 유적들 / 3.15의거 발원지 / 합포성과 회원성 / 기미년 삼진의거와 팔의사 창의탑 / 천년 고찰 의림사

 

함안군 · 52

아라가야 수장들이 잠든 말이산고분군 / 신라 기록의 보물창고 성산산성 / 함안읍성과 함안향교 / 통일신라 사자석탑과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 아름다운 무기연당 뿌리 깊은 칠원향교 / 작음으로 이룬 무릉도원 장춘사 / 조선 땅에 세운 고려동 유적지

 

의령군 · 69

홍의장군 곽재우 / 기강나루 전투와 정암진 전투 / 백산 안희제와 호암 이병철 / 한글을 지킨 고루 이극로 / 의병처럼 멋진 나무들 / 퇴계 이황을 모시는 덕곡서원

 

서부

진주시 · 87

두 번에 걸친 진주성 전투 / 진주성과 촉석루 / 김시민·삼장사·논개 / 농민항쟁의 거점 진주 / 진주상무사·옥봉경로당·형평운동 / 진주향교·청곡사·문산성당·진주교회 / 진주역 차량정비고

 

사천시 · 105

갯벌에 남은 역사 / 가산창과 가산리석장승 / 사천매향비 / 일제강점기 비행기격납고 / 이순신 장군의 사천해전 / 선진리왜성 사천전투와 조명군총 / 사천성전투와 노량해전의 관계 / 유일한 해양군사유적 대방진굴항 / 다솔사에 안긴 한용운과 김동리 / 삼천포대교와 늑도유적

 

산청군 · 124

구형왕릉 / 두류산 양단수와 남명의 산천재 / 단속사지 멋진 자리 / 대장경 판각지 단속사 / 남사마을 / 이사재와 유림독립운동기념관 / 산청 민간인 학살사건

 

하동군 · 143

하동에 남은 최치원의 흔적 / 지리산에서 신선이 된 최치원 / 운암영당과 고운선생 영정 / 전라도와 경상도가 한자리에 / 배드리 위에 들어선 하동읍성 /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 전통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 최참판댁과 조씨고가

 

남부

고성군 · 161

또 하나의 이름 고자국 / 해상교역의 중심지 고성 / 일제가 송학동고분군을 주목한 까닭은 / 내산리고분군의 주인은 누구일까? / 고성의 고인돌 / 지구의 역사를 간직한 퇴적암 / 남녘 들판 한복판의 북방 기마문화 자취 / 양반 행패 막는 문, 새가 예쁜 자방루 / 운흥사 / 고성의 보물 둠벙

 

통영시 · 183

삼도수군통제영 / 세병관 / 십이공방 / 주전소 / 통영성 / 이순신 장군의 섬 한산도 / 바다의 땅 통영 / 박경리기념관 / 통영옻칠미술관

 

거제시 · 199

해상 방위의 요충 거제 / 대마도 정벌과 거제도 수복 / 옥포대첩과 고현성 함락의 관계 / 칠천량해전과 일본의 대륙 진출’ / 원균은 나쁘기만 할까? / 배설은 비겁한 도망자일까? / 통영보다 먼저 통제영이 있었던 거제 / 고현성이 함락돼 옮겨진 기성관 / 전통 성곽의 종합 전시장 / 주민 스스로 쌓아올린 거제 교육의 자취 / 현대까지 이어진 고난의 역사 지심도와 포로수용소

 

남해군 · 220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 관음포와 이락사 / 왜구를 무찌른 정지 장군의 승전기념탑 / 대장경 판각지와 백제 무덤 / 잘 갈무리된 남해 유배문학 / 자연에 적응하는 인간의 역사

 

북부

함양군 · 241

최치원과 상림 / 김종직과 선비의 고장 / 박지원과 물레방아 / 정여창 고택과 무덤, 남계서원 / 여권 신장의 상징 허삼둘 가옥 /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 / 선불교의 벽송사와 미래 문화재 서암정사 / 함양 민간인 학살사건

 

거창군 · 261

거창을 키운 것은 8할이 바위 / 문바위·사선대·분설담·수포동 / 크고 많은 거창의 석불 / 네덜란드식 가옥에 담긴 뜨거운 고장 사랑 / 군 단위 최초의 공립 박물관 / 동계 정온 고택 / 비극의 민간인 학살사건

 

합천군 · 277

남명 조식 / 뇌룡정과 용암서원 / 합천군 창의사 / 삼가장터3·1만세운동기념탑 /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 대가야 건국신화와 해인사 / 대가야 마지막 태자와 월광사지 / 멋진 유물 가득한 영암사지 / 옥전고분군과 합천박물관 / 합천의 향교

 

동부

창녕군 · 299

화왕산성을 지킨 곽재우 / 창성부원군 조민수 / 전민변정도감과 신돈 / 가야의 순장소녀 송현이 / 창녕지석묘와 진흥왕척경비 /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창녕석빙고 / 관룡사 / 한강 정구 / 망우정과 여현정

 

밀양시 · 319

밀양강과 수산제 / 항일독립투쟁과 밀양 / 작원관전투와 작원잔도 / 밀양 사람들에게 각별한 사명대사 / 삼랑창과 삼랑진역급수탑 / 영남루와 월연대 / 예림서원과 밀양향교 / 어디에도 없는 절 표충사

 

김해시 · 339

수로왕은 몰랐던 금관가야’ / 떨어져 있는 수로왕릉과 허왕후릉 / 대성동고분군과 봉황동유적 / 유적으로 가득한 분성산 / 또다른 항만 유적과 솟대 자리 / 청동기시대의 공동묘지 율하리 유적 / 국립김해박물관 / 봉하마을과 화포천

 

양산시 · 358

양산을 압도하는 통도사 / 만고 충신 박제상 / 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나루 가야진 / 황산잔도와 용화사 / 북정리고분군과 양산시립박물관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진해 북원로터리에는 6.25전쟁 와중에 해군 장병 등의 성금으로 세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1952413일 장군의 탄신일(428)을 앞두고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과하지 않고 품위 있기로 치자면 북원로터리의 이순신 장군 동상만 한 것이 드물다 싶습니다.

백범 김구와 충무공 이순신은 시대는 달라도 일제와 맞서 목숨 걸고 싸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원로터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백범 김구 선생이 350년 세월을 뛰어넘어 손을 맞잡은 뜻깊은 자리입니다. ‘백범김구친필시비가 두 분을 이어주는 주인공입니다.

1948815일 해방 3주년을 맞아 진해를 찾은 백범은 이순신 장군이 지은 한시 진중음의 글귀를 써서 남겼습니다.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 선조 임금이 압록강만 건너면 중국 땅인 의주까지 피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왜적을 반드시 무찌르겠다고 맹세한 글귀입니다.

- (본문 22, 창원)

 

구형왕릉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돌을 쌓아 만든 무덤(적석총)입니다. 비탈진 산기슭을 따라 일곱으로 층을 이룬 가운데 네 번째에는 감실 비슷한 구멍이 있습니다. 전후좌우로 넓게 퍼져 있고 위로도 돌더미가 높다랗게 솟아 있습니다. 신라나 가야의 고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매우 신선한 장면이 될 수 있습니다.

구형왕릉 들머리에 있는 덕양전은 구형왕과 그 왕비를 모시는 전각입니다. 햇살이 바른 자리에 널찍하게 터를 잡고 있어 초라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라 잃은 가락국 임금의 사당이라는 전제 때문인지 보는 이로 하여금 처연한 감정이 들게도 합니다.

백제의 계백 장군처럼 마지막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과 구형왕처럼 모든 것을 접고 항복을 하는 것, 이 두 가지 길 중에 어느 쪽이 최선일까요? 결사 항쟁하다 장렬하게 전사하면 영웅이 됩니다. 반대로 투항을 선택하면 배신과 비겁의 아이콘으로 남게 됩니다.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싸우다 죽으면 멋지게 이름을 남길 수 있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고난과 고초를 고스란히 겪어야 합니다.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형왕은 쿨한 결심을 했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김유신을 비롯한 후손들이 신라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고 공덕을 쌓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 (본문 125, 산청)

 

거제초등학교 건물은 지역 주민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본관은 전쟁이 끝난 뒤 짓기 시작해 195672층 규모에 교실 16개로 준공됐습니다. 화강암과 붉은 벽돌을 제대로 섞어 활용한 현관은 서양식으로 오래된 대학 건물 같은 장중함이 느껴집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가난한 시절에 널빤지로 얽거나 가마니로 가려도 그만이었지만 거제 사람들은 자식들을 위해 너도나도 품을 냈습니다. 바위를 떼어와 다듬었으며 벽돌을 손수 굽고 옮겨 쌓았던 거지요.

해성중·고등학교도 비슷한 명물을 하나 품고 있습니다. 가톨릭 계열로 1952년 전쟁 중에 세워진 이 학교는 스탠드 위쪽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멋집니다. 똑바로 서 있지 않고 운동장을 향해 구부러져 있는 나무 그늘이 한결같이 스탠드를 덮어주고 있습니다.

굽어 있는 플라타너스에는 학생을 아끼는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미사를 드리거나 행사를 할 때 학생들은 나무그늘 아래에 앉고 선생님은 운동장에 서 있는 모습을 졸업생들은 떠올립니다. 잘 깔린 천연잔디와 플라타너스가 조화를 이룬 교정이 참 아름답습니다.

(본문 215, 거제)

 

상림 인물공원에는 옛날 선정비도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서 조병갑을 기리는 선정비가 특히 눈에 띕니다. 조병갑은 전라도 고부군수 시절 만석보 물세를 가혹하게 걷는 등의 학정으로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터지도록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선정비에는 유랑민도 어루만지고 조세도 줄여주었으며 봉급을 헐어 관청까지 고쳤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갑오농민전쟁 일곱 해 전인 1887년 세워졌는데 이렇게 선정을 베풀던 사람이 갑자기 악행을 저질렀을 리는 없겠지요. 짐작하자면 아무래도 조병갑이 백성들을 윽박질러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겠지요.

상림에는 조병갑의 아버지 조규순을 위한 선정비도 있습니다. 아들보다 40년 정도 앞에 함양군수를 지냈습니다. 조병갑은 고부군수 시절 충남 태안에 있는 조규순의 선정비각을 짓는다며 1000냥을 뜯어낸 적이 있습니다. 함양에서도 비슷한 일을 벌였을 것 같지 않나요.

조병갑은 고부민란과 동학농민전쟁을 촉발시킨 탐관오리로 지목돼 1894년 유배를 갔다가 이듬해 풀려납니다. 그리고 1898년에 법부 민사국장이 되어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사형 판결문에 판사로 이름을 올립니다. 조병갑의 변신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본문 244, 함양)

 

귀양에서 돌아온 망우당 곽재우는 첫 승전지 기강나루에서 지척인 도천면 우강마을 강가 언덕에 망우정을 짓고 살았습니다. 육신은 병들고, 글을 쓸 종이 한 장 없고, 입고 나갈 옷 한 벌도 변변찮은 삶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웠습니다.

마지막 남은 망우정조차 다섯 아들에게 남기지 않고 외손녀사위 이도순에게 물려줍니다. 망우정을 가장 잘 지키고 유용하게 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요즘 상식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망우정에는 어진 사람에게 준다는 것을 뜻하는 여현정이라는 현판이 하나 더 달려 있는데 그런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 요임금은 자식이 아닌 순에게 천하를 넘겼고 나는 이 정자를 현자인 이군에게 물려준다. 이를 요순에 견주는 것은 넓은 하늘을 좁은 연못에 비교함과 같으나 마음속 깊은 뜻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자네가 자연을 벗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능히 지킬 수 있겠기에 정자를 내 것으로 삼지 않고 이렇게 준다네.”

곽재우와 마찬가지로 의병 활동을 했던 정인홍은 광해군 아래에서 영의정까지 오르지만 결국 처형을 당했습니다. 반면 곽재우는 전란 이후 되도록 벼슬을 피하며 편안하게 천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곽재우는 삶의 본질을 깨달은 위인이었습니다.

(본문 316, 창녕)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누군가 우리나라를 두고 전 국토가 박물관이고 전시관이라 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오만 군데 널려 있고 수천 년 살아온 문화유산이 눈길 닿는 데마다 놓여 있다는 겁니다. 경남은 더욱 그렇습니다. 지리산을 비롯한 산악과 섬진강·낙동강 같은 물줄기가 어우러지는데다 푸근하고 넉넉한 남해바다까지 함께하는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경남은 이처럼 자연환경이 살기 좋으면서도 아름다워 예로부터 물산이 풍성하고 인심도 좋은 고장이었습니다. 사람이 자연과 어울리며 문화를 만들어내기 알맞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런 때문에 골짜기와 들판 바닷가 고샅마다 사람살이의 자취가 풍성하게 남아 있는 거지요.

경남의 사람 역사 문화를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지역마다 고유한 자연을 바탕으로 삼아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살폈습니다. 읽는 내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지역별로 특색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어 새로운 시각으로 알기 쉽게 구성해 보았습니다.

 

 

추천의 글

 

지역의 특징을 밝히면서 궁금증을 풀어주는 내용으로 누구나 알아보기 쉽게 썼다. 어린이나 청소년, 가족과 사제가 동행하여 같은 주제로 대화하고 토론하며 고루 누리기 딱 좋은 어깨동무가 되는 책이다. 지역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식을 보충하며 휴식과 유희로써 행복을 선물한다.

읽기 어려운 역사 교과서의 한계를 벗어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의 수많은 이야기는 가고 싶도록 만들고 지역의 자랑거리를 지인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도와 자긍심을 부추긴다. 가족끼리 함께 여행하며 공동의 주제로 대화하며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품은 이 책을 권한다.

강정석(마산무학여자중학교 교사)

 

저자는 방대한 고증과 철저한 답사로 경상도를 재해석한다. 여행자들은 이 책을 통해 경상도를 재발견하게 된다. ‘특급 역사 가이드덕분에 경상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멋진 시간 여행지로 재탄생한다.

고재열(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 여행감독)

 

선인의 숨결과 흔적을 찾아 치열한 발품을 이어온 저자가 누천년 역사와 문화의 고갱이만을 간추려 씨줄 날줄 정성스레 엮어낸 경남지역 시간여행의 탁월한 길라잡이다. 경남 산천 골골 사람과 사건, 장소에 얽힌 무수한 옛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우리네 삶터에 담긴 문화유산의 가치를 톺아보며 독자 스스로의 자존을 곧추세우게 된다.

황풍년(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월간 <전라도닷컴> 전 발행인)

 

 

주제어: 경상남도, 경남, 역사, 문화, 거제, 거창, 고성, 김해, 남해, 밀양, 사천, 산청, 양산, 의령, 진주, 창녕, 창원, 마산, 진해, 통영, 하동, 함안, 함양, 진해, 마산, 3.15의거, 말이산고분군, 충익사, 진주성, 사천만갯벌, 산천재, 하동읍성, 이순신, 옥천사, 박경리, 지심도, 이락사, 유배문학, 박지원, 최치원, 김종직, 분설담, 남명 조식, 곽재우, 삼랑진역급수탑, 국립김해박물관, 용화사

분류: 한국사, 한국문화, 역사/지리,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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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1. 12. 20. 13:51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잘피가 돌아왔다

 

제목 잘피가 돌아왔다 - 운동화 시장 허성무의 창원 미래 보고서

펴낸날 20211217

가격 20,000

무선제본 | 352쪽 | 152*225

ISBN 9979-11-86351-45-1 (0399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허성무

 

 

 

 

책 소개

민주당 최초의 창원시장 허성무의 지난 3년간 여정과 시정 철학, 미래 비전을 담은 책이다.

록밴드 노브레인의 노래 ‘Come on Come on 마산스트리트여가사 중에는 콜라빛 나는 바닷물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만큼 오염이 심했던 마산만이었다. 저자는 그 노래 대목이 늘 부끄러웠다.

그런 마산 앞바다에 잘피가 돌아왔다. 바닷속에서 휘날리는 잘피 숲을 발견했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잘피가 돌아오고, 은어, 연어, 수달이 돌아오고, 젊은이가 와글와글 모여드는 그런 창원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저자는 자연과 환경을 살리고 한계에 봉착한 제조업 부흥을 위해 탄소 중립, 수소 경제를 주창한다. 그냥 슬로건이 아니라 디테일한 전략과 방향까지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허성무

1963년생. 현재 창원시장이다. 창원군 진전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산중앙고등학교를 거쳐 부산대학교 행정학과를 나왔다. 고시에 뜻을 두고 공무원이 되고자 했으나, 감옥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이후로 평생 사람 사는 세상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정치가의 길을 걸었다. 청와대 민원제도비서관과 경남도 정무부지사로 일하며 중앙과 지방정부의 행정 경험을 두루 쌓았다.

 

평소 소신은 역지사지(易地思之). 늘 한발 물러서서 상대의 생각을 들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혁신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을 중시한다.

 

허성무에게 관성과 표준은 길들여지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다.

그래도 사람, 36.5를 썼다.

 

 

 

 

 

목차

 

책을 내면서

 

추천사

김부겸 국무총리

정세균 제46대 국무총리

최충경 창원상공회의소 11대 회장

이찬원 경남대 환경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1섬을 팝니다!” - 산정에 서서 바다를 보다

1. 최치원이 뿌린 전설

2. 여섯 개의 달이 뜨는 마을

3.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4. 마산해양신도시 개발의 세 가지 대전제

5. “섬을 팝니다!”

6. 월포해수욕장의 추억

7. “시장이 마산 앞바다에 들어가 수영했대

8. 잘피가 돌아왔다

9. 은어와 연어

 

2부 아! 노무현 - 진리는 아스팔트 위에 있었다

10. 내가 만난 노무현

11. 진리는 아스팔트 위에 있었다

12. 부마민주항쟁

13. 대학 시절

14. 사선을 넘어

15. 골리앗에 맞선 변호인

16. ‘아름다운 시절기후위기의 시작

17. 화석연료의 퇴장과 엔진시대의 종언

 

3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여정 - 꽃향기는 천리를 가고, 기술향기는 만리를 간다

18. 창원대로

19. 방산 부활의 꿈

20. 시장을 만난 노조위원장

21. 방산 노동조합협의회

22. 노사는 원팀이다

23. 철을 갖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24. 제니의 새장에서 탄생한 고층빌딩

25. ‘기계를 만드는 기계를 움직이는 CNC 컨트롤러

26. 수출규제로 시작된 일본의 경제침략

27. 기해왜란

28. 1,075인의 기술독립운동가들

29. 소부장

30. 소재는 국력이다

31. 한국재료연구원, 마침내 독립하다

32. 재료연구원과 노회찬

33. 오래된 인연

34. 결혼기념일과 상공회의소

35. 화향천리(花香千里) 기향만리(技香萬里)

36. 진해, 2재료연구원을 품에 안다

37. “원천기술, 우리가 책임집니다!”

38. 해답은 현장에 있었다

39. 마더 머신에 머리가 없다면?

40. 창원의 원천기업들

 

4부 드레스덴 결의 - 디지털 실크로드의 꿈

41. 드레스덴 결의

42. 혁신에 성공한 도시 엘베강의 플로렌스

43. 한국사위 드레스덴 시장

44. I-ROAD 첨단산업 생태계

45. 중국을 차이나라고 부르는 까닭

46. 현대판 실크로드 일대일로

47. 진해신항과 해양자주권

48. ‘신남방정책아시아 경제의 심장을 두드리다

49. 신남방으로 가려면 화상들부터 만나라

50. 미증유의 복병 코로나 팬데믹

51. 전인미답의 디지털 실크로드

52. 디지털 로드로 떠나는 예행연습 큐피트

53. 디지털 사막의 오아시스

54. 배울 게 많은 나라 싱가포르

55. 엔진의 생명 화석연료

56. 궁극의 에너지 인공태양

57. 꿈의 에너지의 새로운 연료는?

58. 수소로부터 찾는 해법

59. 에너지 민주주의는 전쟁도 멈춘다

 

5부 수소와 함께하는 미래와의 대화 - 수소산업좌담회에서 나눈 이야기

60. 수소좌담회를 열다

61. 수소는 무한에너지

62. 더운 게 이것 때문이었어?

63. 수소가 키운 감자

64. 물은 미래의 석탄이다

65. 도심의 수소충전소

66. 수소는 친환경인가?

67. 남들 뛸 때 놀면 안 돼

68. 새로운 먹거리들

69. 라인강 언덕에 서다

70. ‘최초타이틀이 갖는 의미

71. 조용한 새벽에 잠 깰 일 없습니다!

72. 수소가 없던 도시에서 수소를 선도하는 도시로

73.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선택

74. 수소산업의 미래를 열다

 

6부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 - 인류의 희망은 물에서 나온다

75. 탈원전 정책과 정의로운 전환

76. 그린뉴딜을 선도하는 해상풍력발전

77. RE100은 시대정신

78. 생명이 물에서 온 것처럼 인류의 희망도 물속에 있다

79. 신비의 섬

80. 수소에 이름을 지어준 라부아지에

81. 위대한 후원자

82. 수소산업특별시

83. 세계 최초 블루수소 실증단지를 만들다

84. 소리 없는 공기청정기

85. 해상풍력에서 액화수소 플랜트까지

86. 블루수소에서 그린수소까지

87. 세계는 지금 탄소중립이 대세

88. 탄소중립시대의 대안 SMR

89. SMR은 확실한 게임체인저

90. 내연기관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현대차

91. 수소바이어가 된 시장

92. 공룡의 힘찬 비상을 기원하며

 

7부 웰컴 투 창원익스프레스 - 도시의 지도를 바꾸는 새삼스러운 꿈

93. 원래 하나였던 오래된 통합창원의 기록

94. 새삼스러운 꿈

95. 삼성전자의 비밀병기 포트폴리오

96. 웰컴 투 창원익스프레스

97. 청년이 떠나는 이유

98. 떠나는 걱정보다 오게 하는 정책이 중요

99. 스마트팩토리의 원형은 오랜 메모 습관

100. 소 잡지 말고 치즈산업을 키워라

101. 창원공단 지도가 바뀌고 있다

102.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깜짝 조우

103. 무학산을 내려가며

 

에필로그1 - 다하지 못한 말들

잘피는 공존과 공생의 상징물 / 해가 뜨기 전에 풀을 베야 / 재생에너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어느 도시보다 탄소중립이 절실했던 창원시 / 생명은 소중하다

 

에필로그2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방탄소년단, 유엔에 서다 / 스마트폰의 충격 / 호모 사피엔스와 메타버스 / 사람이 희망이다 /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감성 / 세계여성인권포럼과 국립자연사박물관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하늘의 뜻이었을까. 내가 돝섬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겠다고 하자 40여 년 전에 사라졌던 잘피가 마산만으로 돌아왔다. 잘피에 관해 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617일 배를 타고 돝섬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잘피부터 살피기 위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로 통하는 박지호 어린이의 손을 잡고 바닷가로 향했다.

지호야, 잘 봐. 저게 바로 잘피라고 하는 바닷속 식물이란다.”

, 정말 신기해요. 저는 잘피를 오늘 처음 보게 되었어요.”

잘피도 그런 지호가 반가웠던지 바닷물 속에서 살랑이며 춤을 추었다. 바다는 충분히 맑고 푸르러 잘피의 동작이 한층 잘 보였다. 어린 지호에게 수십 년 전에 사라졌던 잘피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나는 지호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이 바다를 우리 어른들이 망쳐서 한때 죽음의 바다로 만들었지만, 이제 다시 살려서 생명의 바다로 거듭나고 있단다. 앞으로 다시는 잘피가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 이 바다는 너희들의 바다란다.”

(본문 45)

 

제가 시장이 될 무렵에 우리 창원시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사실상 10년째 인구도 줄어들고, 경제는 내리막길이고, 사실상 러스트벨트화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미 러스트벨트화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도 그렇게 주장했지만, 러스트벨트를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로 만들어야 하겠다, 이게 저의 핵심공약이었고요. 그러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하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수소산업을 제대로 해야겠다, 수소사회, 수소도시를 만들어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수소라는 에너지를 우리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손쉽게 접하고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수소도시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자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수소차를 중심으로 다양한 수소모빌리티가 많이 보급되고 그것이 자유롭게 이용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들이 그동안 있었고요. 무엇보다 이를 선도할 연구기관이 있어야죠. 그래서 한국자동차연구원 수소모빌리티 본부를 창원에 유치한 겁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유치하려면 돈이 많이 들죠. 땅도 있어야 하고 건물도 지어야 하고, 많은 투자가 됩니다만, 투자하지 않으면 지자체도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 239)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미래 산업경쟁력을 위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소경제가 3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전문가들에 의하면 수소가 화석연료를 대체하면서 30년생 소나무 9,090억 그루가 제거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에 해당하는 약 60억톤을 감축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탄소중립 2050을 목표로 전 세계가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고무적인 전망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전망은 매우 밝다. 전 세계적으로 3,000조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수소는 에너지 비중의 18%를 차지하고 관련 일자리도 3,000만 개가 늘어나게 된다.

(본문 287)

 

나는 꿈꾼다. 5년 후 2026년의 우리 창원은, 1인당 GRDP5만 달러에 이르는 명실상부 선진국 수준이 되었다. 세계 50위권의 기업 하기 좋은 도시로 발돋움했다. 전국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 중에서 당당하게 도시경쟁력 순위 1위로 올라섰다. 인구는 반등하여 100만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 특례시의 재정 규모는 현재 32,000억 원 수준에서 6조 원대로 대폭 늘어났다. 수출은 15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성장했다. 기업체 수도 87,000개에서 9만 개로 증가했다. 실업률은 4.4%에서 3%대 이하로 낮아졌다. 우리 시 전체 GRDP는 약 40조 원 규모에서 55조 원대로 도약했다.

(본문 209)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은, 부족하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적 공간적인 제약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 점이 지금도 몹시 아쉽다. 이 한 권의 책을 위해 사실은 지난 3년 틈틈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알게 된 훌륭한 제안들은 정책으로 만들어 시정에 반영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이이효재 세계여성인권포럼국립자연사박물관유치다. 세계여성인권포럼은 지난 5여성정책 좌담회에서 함께 패널로 참여했던 김경영 경남도의원이 제안했다. 김 의원은 그 이전에 서성동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제안했는데,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터라 강하게 밀어붙여서 결국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이전 시장들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전례가 있어 모두 불가능할 것이라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집창촌이란 것은 가는 사람이나 거기 있는 사람이나 그것을 보는 시민들이나 모두에게 불행이다. ‘사람 중심의 새로운 창원을 건설하겠다면서 그 정도 각오와 결단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이 자리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본문 349)

 
 
 
 

추천사

 

허성무 시장에게는 새로운 미래를 그려내는 탁월한 힘이 있다.

인구 100만 대도시의 미래를 담을 창원특례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도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듯, 창원시도 이제야 자신의 옷을 찾은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주도할 스마트산업, 수소산업, 방위산업도 창원시가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머지않아 그 결실이 창원시민 품에 안길 것이다.

-김부겸(국무총리)

 

문득 돌아온 것은 잘피가 아니라 허성무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중심 새로운 창원의 미래를 열어가는 그의 진득한 땀방울의 흔적들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이런 허성무 시장의 진심과 열정이 창원시민들의 가슴 속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정세균(46대 국무총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운동화 시장 허성무의 창원 미래 보고서

 

사람들은 그를 운동화 시장이라 부른다.

양복에 운동화,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창원시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서울로 세종으로 수없이 오르내리며 뛰고 뛰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난 3년간 창원 시장직을 맡으며 겪은 고난과 발로 뛰어 따낸 많은 성과들, 그리고 향후 미래도시 창원에 대한 그의 열정과 계획을 담았다.

 

죽음의 바다였던 마산 앞바다에 바다의 허파라고 불리는 잘피가 돌아오듯, 파란 운동화 끈을 꽉 조여 매고 허성무가 다시 돌아왔다.

 

마산만 돝섬 앞바다에서 허성무 시장이 직접 수영을 한 날로부터

15개월이 지난 20211113,

마산만에서 전국 철인3종 경기대회가 열렸다.

 

 

주제어: 허성무, 정치인, 경남창원, 창원시, 창원특례시, 잘피, 수소산업, 수소에너지, 탄소중립

분류: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외교 > 정치인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한국정치사정/정치사 > 한국정치사정/정치사-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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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1. 11. 24. 10:52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70년 만의 증언

 

 

제목 70년 만의 증언

펴낸날  2021년 11월 17일

비매품

종이책 세트 / 무선제본 / 전 5권 

SET ISBN 979-11-86351-37-6 (0409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주소 (우)630-811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38(양덕동)
전화 (055)250-0190

홈페이지 www.idomin.com
블로그 peoplesbooks.tistory.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pepobooks

 

엮은이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경남유족회
기록자 김주완 이상호 김한규 이춘 한양하 박성경 심일성 한승석 정세리 황라겸

 

 

<책 파일 첨부>

70년만의 증언 1권 - 창원 김해편

70년만의증언1_김해창원편_.pdf
5.12MB

 

 

 

70년만의 증언 2권 - 진주 사천 남해 하동편

70년만의 증언2_진주사천남해하동편.pdf
5.74MB

 

 

70년만의 증언 3권 - 거제 통영 고성편

70년만의 증언3_거제통영고성편.pdf
4.10MB

 

 

 

70년만의 증언 4권 - 밀양 양산 의령 함안 창녕편

70년만의 증언4_밀양_양산_의령_함안_창녕편.pdf
5.04MB

 

 

 

 

70년만의 증언 5권 - 산청 함양 거창 합천편

70년만의 증언5_산청_함양_거창_합천편.pdf
4.95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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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1. 5. 18. 15:47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하동, 다녀올게요

 

 

제목 하동, 다녀올게요 - 바다에서 차밭까지 하동 걷기 여행

펴낸날 2021년 5월 17일

가격 16,000

무선제본 | 360쪽 | 140*200

ISBN 979-11-86351-36-9 (03980)

펴낸곳 경남도민일보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이서후

 

 

 

 

책 소개

바다에서 차밭까지 하동 걷기 여행.

하동 여행은 바닷가에서 시작해 섬진강을 거슬러 평사리 구석구석 새로운 풍경을 찾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평사리를 둘러싼 산등성이가 품은 마을 깊숙이 자리 잡은 따뜻한 풍경들을 만끽했지요. 넉넉한 햇살을 품은 오래된 담벼락에서 위안을 얻고, 바람에 흔들리는 늙은 감나무 꼭대기에 달린 붉은 홍시를 보며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동은 강렬한 단풍이었고, 고적한 차밭이었으며, 우람한 나무 그늘이었습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이서후

10여 년 전 문득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로부터 4년간 오롯이 여행자로 떠돌았다. 지금은 그 경험을 바탕삼아 일상 속 소박한 풍경과 이야기를 발견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인문지리 여행서 시리즈 대한민국 도슨트 여섯 번째 책 『통영』(21세기북스), 경남 남해를 1년간 걸으며 기록한 『남해 바래길』(피플파워), 경남 둘레길을 소개하는 『경남을 걷다』(공저 피플파워), 경남 유·무형 자산에 얽힌 스토리를 담은 『한국 속 경남』(공저 피플파워)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04

 

1장 하동읍·12
너른 들판 사이 군청에서 / 두꺼비 전설 품은 하동시장 / 하동공원이 품은 하동향교에서

 

2장 하동읍-적량면 서당마을·26
하동 들판을 눈에 담고 걷는 숲길 / 마을과 마을 사이 고샅을 도는 길

 

3장 하동 해안길 진교면 진교리~술상마을·38
진교면 민다리 전설 / 깨끗한 갯벌과 잔잔한 바다

 

4장 하동 해안길 진교면 술상마을~금남면 중평마을·50
며느리 전어길을 따라 / 하동 다도해를 바라보며

 

5장 하동 해안길 금남면 중평마을~진구지마을·62
중평마을 방파제의 매력 / 진구지, 바다로 길게 뻗은 산등성이

 

6장 하동 해안길 금남면 구노량~신노량·74
대문 없는 마을 /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 방파제에 서서

 

7장 하동 해안길 금성면·86
기묘한 바다 풍경 / 바다에서 강의 영역으로

 

8장 금남면 정기룡 장군길(상) 중평마을·98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 / 중평마을 고인돌 찾기 대작전

 

9장 금남면 정기룡 장군길(하) 중평마을~금오산·110
정기룡 장군 생가 터를 지나 / 도사의 예언이 담긴 바위 앞 에서

 

10장 금오산 드라이브(상) 진교면 정동원길~금남편 하삼천 마을·120
정동원길, 국내 최연소 인물길 / 인산인해, 카페 우주총동원 / 하삼천, 돌담이 예쁜 마을

 

11장 금오산 드라이브(하) 금남면 대송마을~금오산 정상·132
산골마을 덕포, 대송, 대치 / 금오산 정상 가는 세 가지 방법

 

12장 악양면 평사리(상) 동정호·142
국내 최대 두꺼비 서식지 / 중국 악양과 얼마나 닮았기에 / 선비들의 풍류 가득한 풍경 / 섬진강 변 섯바위

 

13장 악양면 평사리(하) 평사리 최고 전망대·154
최참판댁 가는 길의 공간감 / 한산사 앞에서 굽어보다

 

14장 악양면 입석리·164
넉넉한 악양 들판 / 이런 멋진 골목길 갤러리 / 선바위를 찾아서

 

15장 악양면 정서리·176
멋들어진 차밭과 학교 운동장 / 양지와 음지 사이 머무는 기억들 / 깊고 단아한 고택

 

16장 악양면 매계리·188
여기가 그 청학동인가? / 산골마을 운치 / 소박한 이상향의 맛

 

17장 악양면 악양천 제방길·198
우뚝한 산들의 어깨동무를 바라보며 / 상류로 갈수록 더해지는 매력

 

18장 악양면 동매리·208
작은 동산 큰 운치, 만수대 / 이 멋진 대문채를 보라

 

19장 악양면 축지리·218
판소리체험관을 아시나요 / 악양에 펼쳐진 주황색 물결 / 바위에 자란 소나무에서 굽어보다

 

20장 청암면 하동호 둘레길·230
하동댐 위에서 / 하동호 둘레 한 바퀴

 

21장 옥종면 하동편백자연휴양림·240
재일교포 사업가의 편백 숲 기부 / 온몸으로 맞이하는 편백의 기운 / 벼랑 끝 숙소가 보여주는 절경

 

22장 옥종면 굳은 신념들·250
정겨운 소나무 숲길을 따라 / 신념과 바꾼 목숨 / 푸르고 푸르다

 

23장 옥종면 두양리 은행나무·262
두양리 은행나무 / 두방재와 모한재

 

24장 옥종면 이순신 백의종군로·272
이순신의 여정을 따라 / 강정에서 청수역까지 / 마음을 헤아리다

 

25장 옥종면 지족당 조지서 유적·282
죽음을 각오한 신념과 강직함 / 묘지가 아닌 묘비 / 큰선비를 기억하는 방법

 

26장 북천면·292
강직한 선비 정신을 담다 / 역사의 골짜기에서 돌아온 소설가

 

27장 고전면·304
옛 하동의 중심에서 / 정두수 노래 따라 걷다

 

28장 양보면·314
최치원 초상화에 담긴 비밀 / 양보면에 숨은 풍경들

 

29장 화개면 화개동천·326
눈 속에 꽃이 피다 / 가야 일곱 왕자의 성불 / 그리고 화개동천

 

30장 화개면 차밭길·338
하동에서 시작한 1300년 차 역사 / 차밭 사이로 /차 한잔의 즐거움

 

에필로그 섬진강·350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진교IC나들목가 있죠? 이 진교가 진교면의 그 진교입니다. 나들목으로 빠져나가면 바로 진교면 소재지입니다. 진교는 남해와 하동을 아우르는 교통 요충지입니다. 그래서 버스터미널이 제법 큽니다. 시간표를 보니까 서울, 진주, 부산, 남해, 창원, 하동 양보면, 하동읍까지 연결되네요. 면 소재지이지만, 편의점도 많고, 큰 마트도 몇 개 있는 게 기본적으로 도시 느낌이 나는 곳입니다.
(3장 하동 해안길 진교면 진교리∼술상마을 中 41쪽)


연막마을까지는 차를 타고 갑니다. 하동 나들목(IC)을 빠져나와 금성면을 방향을 잡으며 어느 순간부터 하동 화력발전소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발전소가 잘 보이는 길가에 잠깐 차를 세웠습니다. 가까이서 본 화력발전소는 비현실적으로 큽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봤네요. 발전소 건물 자체가 너무 커서 안에서 일하는 분들은 같은 공간 안에 있더라도 몇 년 동안 얼굴 한 번 못 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네요.
(7장 하동해안길 금성면 中 89쪽)



금오(金鰲)란 이름은 금자라를 뜻합니다. 백두대간이 남해 바다를 만나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을 표현한 거죠. 금오산도 지리산처럼 여성 산신 설화가 있네요. <하동의 구전설화>에서 ‘금오산에 돌이 많은 이유’란 이야기를 보니 옛날에 지리산, 금오산, 남해 금산을 관장하는 마호 할매가 살았는데, 하동과 남해 사이 다리를 놔주려고 지리산에서 돌무더기를 치마에 싸서 오다가 금오산 정상에서 발을 헛디뎌 정상 아래에 돌을 다 쏟아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금오산 정상 주변에는 돌무더기가 아주 많습니다.
(11장 금오산 드라이브(하) 금남면 대송마을~금오산 정상 中 141쪽)


악양면의 역사는 거의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조선 이후가 마한, 진한, 변한 삼국시대죠. 이때 변한 지역 12국 중 하나인 낙노국이 악양면 지역이었습니다. 이후 악양은 백제와 가야의 영토 분쟁 지역이었다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한다사군韓多沙郡·하동 아래 소다사현小多沙縣이 되죠. 이 소다사현을 향찰식으로 표기하며 악양이란 이름이 나온 것 같습니다. <하동군 지명지>하동문화원, 1999에 나오는 설명을 볼까요.
“악岳은(아기, 애기에서 나온) 소(작다)란 뜻이고, 양陽은 따사롭다에서 접미사 롭다를 뺀 다사를 뜻하므로 소다사를 향찰식으로 표기 한자로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악양이 되었기에 옛 노인들께서 중국 악양의 인경을 한국의 악양에 맞추었고, 그렇게 지역, 지형을 중국의 악양 것을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194쪽)
쉽게 말해 지명이 중국의 유명한 악양과 같아지니 이후에는 중국 악양과 그 주변 지명을 그대로 대입한 것이란 말이겠네요.
(12장 악양면 평사리(상) 동정호 中 147~149쪽)


다시 한참 걷다 보니 새삼 편백 숲이 꽤 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보통 이렇게 높은 나무들이 숲을 이룬 땅에는 풀이 잘 자라지 못합니다. 편백 숲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중에도 햇살을 받아 빛나는 푸른 잎들이 더러 보입니다. 대견하다기보다는 앞서 가을꽃처럼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을꽃이나 편백 숲에서 외롭게 자라는 식물들은 나는 식물이고 조건이 되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운다, 이 간단한 의식뿐입니다. 아니 의식이라고 할 수도 없겠네요. 그저 간단한 자연법칙이라고 합시다.
(21장 옥종면 하동편백자연휴양림中 246쪽)


차밭을 다원이라고 합니다. 하동에 다원이 크거나 작거나 다 그러모으면 한 300곳 정도 된다고 합니다. 화개면에 하동에서 제일 차밭이 많습니다. 하동군 문화관광 누리집에는 ‘다원 8경’이라고 중요한 다원 8곳을 선정해 소개해 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동 차 시배지를 포함해 명원다원, 고려다원, 도심다원, 쌍계야생다원, 차공간, 매암다원, 정금차밭입니다. 사실 이곳들만 돌아다녀도 하동 차밭 구경은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이 중에 악양면 매암다원을 빼면 모두 화개면에 있습니다.
(30장 화개면 차밭길中 343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경남 여행 전문가 경남도민일보 이서후 기자가 하동 곳곳을 1년 동안 다니며 마주한 풍경과 마을, 사람, 그리고 그 속에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담은 하동 인문 여행서입니다. 
풍부한 사진과 감성 가득한 이야기가 하동을 더욱 가깝고 친근하게 안내합니다. 책과 함께 다니다 보면 풍경 속에서 저절로 위로와 치유를 얻을 수 있는 행복한 하동 여행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주제어: 하동, 경남, 하동여행
분류: 여행>여행에세이
      여행>국내여행>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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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1. 3. 18. 14:02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뮤직 파라디소

 

 

 

제목 뮤직 파라디소 –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

펴낸날 2021315

가격 19,000

무선제본 | 392쪽 | 152*225mm

ISBN 979-11-86351-34-5 (0368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심광도

 

 

 

 

책 소개

뮤직 파라디소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는 영화음악 칼럼니스트인 심광도가 경남도민일보3년 동안 연재한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를 보완하여 완성시킨 역작이다. 이 책은 명작 영화에 대한 소개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클래식 음악을 함께 맛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클래식 음악은 영화에 등장해 관객에게 잊지 못한 감동을 선사하며 영화를 빛나게 하는 디저트와 같은 존재다.

이 책에 실린 49편의 글은 이탈리아 작곡가 알레그리로부터 시작해 스탠리 마이어까지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알려준다. 독자들은 바로크 음악부터 시작하여 고전주의 음악, 낭만주의 음악, 현대음악까지 다채롭게 펼쳐지는 클래식 음악의 향연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와 클래식 음악을 한번에 감상하려는 독자의 기대 욕망은 이 책으로 100% 만족될 것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심광도

오랫동안 아마추어 애호가로서 음악과 함께했다. 영화음악을 사랑하던 학창시절, 우연히 만난 영화 아마데우스로 클래식에 입문하여 현재는 CD 3000여 장과 LP 1만여 장을 보유 중이다. 그동안 축적해 왔던 음악적 소스와 소양을 나누고자 20181MusicParadiso 음악 감상실을 열어 현재 400여 명의 회원과 함께 음악 나누기를 실천하고 있다. 부산 KNN라디오 추억의 LP’ 코너 패널을 맡아 진행하였으며, 현재는 마산 MBC라디오 정오의 희망곡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경남도민일보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20185월부터 연재 중이며, 이를 기초로 외부와 감상실 회원을 위한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목차

 

책 머리에

 

01 일그러진 진주 바로크와 고전

천지창조를 타고 흐르던 신비로운 음악 𐄁15

- 영화 불의 전차/ 알레그리 미제레레

크리스마스에 전해진 음악 선물 ·23

- 영화 나 홀로 집에/ 코렐리 크리스마스 협주곡

추위에 떨며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을 향해 ·31

- 영화 올드보이/ 비발디 사계

시간으로도 지울 수 없는 절대 상처 ·39

-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헨델 메시아

인간으로의 그 근본, 그리고 음악의 시작 ·49

- 영화 스윙 키즈/ 바흐 평균율 클라이버곡집1권 중 전주곡

도시 속의 사랑, 쓸쓸하게 혹은 찬란하게 ·57

- 영화 접속/ 바흐 미뉴에트 G장조

바흐, 음악으로 인류를 구하다 ·65

-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악으로 드리는 기도 ·73

- 영화 검은 사제들/ 바흐 칸타타 BWV140 눈 뜨라 부르는 소리 있어

너의 평범함을 사하노라 ·79

- 영화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레퀴엠

부드러운 산들바람을 타고 온 자유 ·87

- 영화 쇼생크 탈출/ 모차르트 편지의 이중창

 

02 신에게서 인간으로, 낭만주의

마음속의 진심을 전하는 굳건한 신념의 소리 ·99

- 영화 킹스 스피치/ 베토벤 교향곡 7

감정은 사치인가? ·105

- 영화 이퀼리브리엄/ 베토벤 교향곡 9합창

피아노에 앉은 천재의 현란한 핑거링 ·113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

악마가 가르쳐 준 복수의 가락 ·121

- 영화 친절한 금자씨/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치오

사과하고 화해하세요 ·129

-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 로시니 나는야 이 거리의 만능일꾼

천재의 곁을 지키는 자들 ·135

- 영화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 슈베르트 송어

첨단의 기술이 만들어 낸 결정체, 하지만 미완성 ·141

-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터/ 슈베르트 교향곡 8미완성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147

-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슈베르트 세레나데

사랑하는 이들의 약속이란 ·155

- 영화 쎄시봉/ 도니제티 남 몰래 흘리는 눈물

미로도 길이야 ·163

- 영화 배심원들/ 베를리오즈 헝가리 행진곡

폭력, 그 우매한 공포에 단호히 저항하다 ·171

- 영화 적과의 동침/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사랑하는 이가 그리워, 벽을 건너다 ·179

- 영화 트루먼 쇼/ 쇼팽 피아노협주곡 1

편견 받고 있다는 편견 ·185

- 영화 그린 북/ 쇼팽 연습곡겨울바람

절뚝거리는 리듬, 꺼져 내리는 세상 ·193

- 영화 더 페이버릿/ 슈만 피아노 5중주

사랑의 악몽 ·199

- 영화 마담 싸이코/ 리스트 사랑의 꿈

인생은 아름다운가? ·205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오펜바흐 뱃노래

빈으로부터 전해 오는 인사 ·213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요한 슈트라우스 2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채플린, 장면을 지휘하다 ·221

- 영화 위대한 독재자/ 브람스 헝가리 무곡

사랑은 길들일 수 없는 한 마리 새 ·229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비제 오페라 카르멘하바네라

편견을 넘어, 날아라 빌리 ·237

- 영화 빌리 엘리어트/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정경

 

03 새로운 음악을 향한 도전, 후기낭만과 민족주의

, 이 불행한 세계를 위한 아름다운 밤이여! ·247

- 영화 히든 아이덴티티/ 생상스 죽음의 무도

나의 본향, 그리운 그곳 ·255

- 영화 암살/ 드보르자크 교향곡 9신세계로부터

네가 돌아온다면 ·263

- 영화 하모니/ 그리그 솔베이그의 노래

그렇게 집시는 바이올린을 들고 태어난다 ·271

- 영화 쿵푸 허슬/ 사라사테 찌고이네르바이젠

불로써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리니 ·279

- 영화 리베라 메/ 포레 레퀴엠리베라 메

처절하고도 슬픈 희극, 끝나다 ·287

- 영화 로마 위드 러브/ 레온카발로 의상을 입어라

그건 그 신발을 지금 신고 있기 때문이야 ·295

-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엘가 사랑의 인사

누구도 잠들 수 없는 베이징의 밤 ·301

-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푸치니 투란도트‘Nessun dorma’

Fly me to the moon ·309

- 영화 오션스 일레븐/ 드뷔시 달빛

장엄한 승리의 순간에 들려오는 웅혼한 찬가 ·315

- 영화 다이하드 2/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다시가 아닌 새로운날갯짓을 향한 응원가 ·321

- 영화 버드맨/ 말러 교향곡 9&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

최면처럼 반복되는 선율, 마침내 폭발하다 ·331

- 영화 밀정/ 라벨 볼레로

쓰러질 때까지 춤추다 잠들다 ·339

- 영화 유스/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든 선택의 순간이 기회였음을 ·347

- 영화 미스터 노바디/ 에릭 사티 짐노페디

꾹꾹 눌러 다져진 슬픔 ·355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빌라 로보스 브라질풍의 바흐

회색 빛 도시 속의 작은 새 ·363

- 영화 맨하탄/ 조지 거쉰 랩소디 인 블루

음악이 데려다 놓은 미지의 그곳 ·369

- 영화 허드서커 대리인/ 하차투리안 스파르타쿠스아다지오

죽음마저 초월하는 징글맞은 인연 ·375

-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쇼스타코비치 왈츠 2’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선율 ·385

- 영화 디어 헌터/ 스탠리 마이어스 카바티나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것들로 무엇이 있을까? 그동안 건네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담아 보내던, 그 마음만큼이나 예뻤던 카드. 이불 속에 숨어 기다리다 스르륵 잠이 들어 깨어보면 가진 양말 중 가장 큰 것을 꺼내었음에도 그 안을 가득 채웠던, 희한하게도 며칠전 아빠가 뭐 받고 싶어?’ 하며 물었을 때 분명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귓속말로 속삭였던 크리스마스 선물. 이러한 추억들과 함께 우리의 세포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캐럴이란 크리스마스에 불려지는 종교성을 띤 민요적 선율을 총칭하는 것으로 소박하면서도 따라 부르기 쉬우며, 대체로 밝은 분위기인 것이 특징이다.

(01 일그러진 진주 바로크와 고전-크리스마스에 전해진 음악 선물 25)

 

 

보랏빛과 핏빛이 감도는 영상으로 우리의 시각을 무겁게 누르는 영화 <올드 보이>. 하지만 여기서 단연 고개를 돌리고픈 하나를 뽑으라면 오대수가 자신을 감금했던 자의 이를 하나씩 뽑는 장면일 것이다. 이때 “1년에 하나씩이라던 오대수의 대사는 온몸의 세포를 얼어붙게 하는데, 이러한 잔인한 장면에서 사용된 음악이 행복의 기운 가득한 바로크 음악이라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기발하다.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사계>(Quattro Stagioni) 겨울’ 1악장, 이 곡은 이후 복수를 위해 찾아 온 감금사업자가 자신이 당한 그대로 오대수의 이를 뽑으려는 장면에서도 사용되었으니 발치 테마라고나 할까.

(01 일그러진 진주 바로크와 고전-추위에 떨며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을 향해 33)

 

 

영화에 등장하는 클래식을 소개하며 <아마데우스>(Amadeus)를 재료로 삼는다면 명백한 반칙이다. 모차르트의 일생을 다룬 영화이니 그 시작과 끝을 관통하며 아름다운 음악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해갈 수도 없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클래식과 가까워지고 싶은 이라면 누구든 처음으로 놓아야 할 작품이기 때문이다. 1985년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 총 8개 상을 수상하며 전기 영화에 있어 걸작의 반열에 오른 <아마데우스>, 영화는 평범한 음악가의 천재 음악가를 향한 선망과 질투, 그리고 단지 이에 그치지 않아 신이 선택한 그를 서서히 파멸시켜 나가는 과정을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옛 영광은 사라지고 노쇠한 몸덩이만 남은 살리에리’(Antonio Salieri), 30년을 넘도록 죄책감에 시달려오던 그는 모차르트에게 용서를 빌며 자살을 시도하고, 이때 모차르트’(W. A. Mozart)<교향곡 25>(Symphony No.25 in g minor)1악장이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01 일그러진 진주 바로크와 고전-너의 평범함을 사하노라 77)

 

 

슈베르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인 슈베르티아데’ (Schubertiade), 그의 창작을 도우며 후원하기 위한 그곳에는 가곡 <송어>를 포함, 수많은 곡을 초연해 준 포글이 있었으며 당시 그는 빈 국립오페라단의 유명한 바리톤임에도 무명에 불과했던 슈베르트의 가곡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천재 화가 슈빈트’(Schwind,), 그 또한 그 모임의 일원이었으며 매일 한 수저의 음악이 필요하다라고 했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던 그는 슈베르트의 초상화와 연주 장면을 작품으로 남기며 그의 음악에 지지를 표한다. 그렇게 그곳엔 시인들이 있어 슈베르트로 하여금 악상을 떠오르게 만든 멋진 시를 제공하였을 것이며 가난하여 오선지조차 살 수 없었던 그에게 오선지를 사다 주거나 그려준 많은 친구들 또한 함께였던 것이다. 홈즈에게 왓슨이 있듯 슈베르트에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의 재능 또한 대단하였으나 더 나은 재능을 가진 이가 그것을 마음껏 펼치는데 있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준 동료이자 친구들. 하여 이제 내용도 없이 자신의 이름만을 알리기에 바쁜 이들, 자신보다 나은 것을 보면 칭찬할 줄 모르고 음해하며 시기하기에 급급한 이들에게 슈베르트의 친구이자 천재화가 슈빈트가 했던 말을 들려주려 한다.

나의 그림 중 가장 큰 가치를 지닌 것은 슈베르트를 위해 그린 오선지였다.”

(02 신에게서 인간으로, 낭만주의-천재의 곁을 지키는 자들 138~139)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SF 장르에 있어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다. CG가 없던 시절 구현한 우주의 풍광이 경이롭고, 100가지 해석이 가능한 철학적 내용과 열린 결말이 그러하며,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불멸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음악을 빼 놓을 수 없다.

마치 블랙홀에 빠진 듯 어둠으로 가득 채운 화면과 함께 불협화음으로 어지러운 소리를 제법 오래 견뎌야지 영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빛이 있기 이전의, 아무것도 없는, 없는 것조차 없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면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경이로운 자연과 그곳에서 다른 생명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인류의 조상들. 오직 생존과 번식만이 전부인 시절임에도 부류가 나뉘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인 물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도 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 앞에 나타난 신비로운 물체, 이 검은 육각기둥(Monolith, 모노리스)은 분명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제 그것과 접촉한 유인원들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채집으로 생활하던 그들은 사냥을 통한 육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물 웅덩이를 차지한 이들을 찾아가 응징하고 폭력으로 그곳을 다시 빼앗는다.

(02 신에게서 인간으로, 낭만주의-빈으로부터 전해 오는 인사 213~214)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상으로 쓰여진 시(). 언어를 펼치지 않고 함축함으로 그 의미를 오히려 더욱 확대시키는 마법 같은 문학이 시()이 듯 영화는 대사를 자제하고 클로즈업과 같은 화면적 기교 또한 아끼지만 그랬기에 대사 한 줄, 장면 하나가 더욱 큰 의미를 지닌 채 다가오는 것이다. 흐름에 중요치 않은 설정들은 모두 지워냈기에 담백하고 깊으며, 소소한 듯 현실적이기에 주는 슬픔이 날리지 않고 꾹꾹 다져져 큰 여운을 남긴다.

(03 새로운 음악을 향한 도전, 후기낭만과 민족주의-꾹꾹 눌러 다져진 슬픔 355~356)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뮤직 파라디소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는 제1부에서 바로크 음악과 고전주의 음악을, 2부에서 낭만주의 음악을, 3부에서 후기 낭만주의 음악과 현대음악이 등장하는 영화를 소개한다.

클래식 음악은 영화에서 어떤 효과를 보여주었을까? 심광도는 영화 음악이 영화의 장면에서 어떤 효과를 발산하며 관객에게 다가오는지 예리한 시각으로 설명한다. 영화에 등장한 클래식 음악을 만든 작곡가와 음악의 뒷이야기는 무엇일까?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그리그, 도니제티, 드보르작, 드뷔시, 라벨, 라흐마니노프, 레온카발로, 로시니, 리스트, 말러, 모차르트, 바흐, 베를리오즈, 베토벤, 브람스, 비발디, 비제, 빌라 로보스, 사라사테, 생상스, 쇼스타코비치, 쇼팽, 슈만, 슈베르트, 스탠리 마이어스, 스트라빈스키, 시벨리우스, 알레그리, 에릭 사티, 엘가, 오펜바흐. 요한 슈트라우스 2, 조지 거쉰, 차이코프스키, 코렐리, 파가니니, 포레, 푸치니, 하차투리안, 헨델의 걸작 음악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작곡가만이 아니라 다소 낯설은 작곡가의 음악도 소개하고 있다. 음악의 종류도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소나타, 무곡, 오페라 등 다양하다.

저자는 소개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한 지휘자,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오페라 가수 등이 남긴 당대 최고의 명음반도 친절하게 소개한다. 카라얀, 아바도, 정경화, 파파로티 등이 연주한 명음반에 대한 소개는 음악 독자들에게 충실한 음반 안내서 역할을 한다. 심광도는 오랫동안 LP음악감상실을 실제로 운영하면서 쌓은 음악 내공을 이 부분에서 유감없이 보여준다. 저자가 추천한 명연주의 음반을 듣고 있다 보면 영화의 감동을 다시 한번 재현하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다. 영화 평론과 음악 평론을 겸비한 이 책은 영화 관객과 음악 애호가들 모두에게 추천하는 도서이다. 특히 클래식음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저자 심광도는 음악이 지닌 뒷 야야기를 들려주며 해당 영화에 접근하는 새로운 길을 깊은 울림으로 전달한다

 

 

 

주제어: 영화, 클래식음악, 작곡가, 바로크, 낭만주의, 고전주의

분류:

예술/대중문화 > 음악 > 대중음악 > 영화음악

예술/대중문화 > 예술일반 > 예술사 > 음악사

예술/대중문화 > 음악 > 성악/가곡 >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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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0. 12. 23. 10:47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제목 경남 동네여행

펴낸날 2020년 12월 11일

가격 16,000원

무선제본 | 268쪽 | 152*225mm

ISBN 979-11-86351-33-8(03980)

펴낸곳 경남도민일보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이서후 · 김민지 · 김해수 · 최석환

 

 

 

 

책 소개

경남 곳곳에 숨은 색다른 동네 이야기

<경남도민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경남지역 18개 시군의 동네와 그 가치를 발견하는 책을 썼다. 거창하지 않지만 소소한 즐거움, 일상의 소중함, 우리 동네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우리 지역 동네 문화의 스토리텔링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 동네를 이야기하길 바라는 바람과 함께다.
책은 한 지역의 동네를 좀 더 깊게 경험해본다는 콘셉트다. 온라인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오프라인의 감성과 경험, 색다른 체험과 공감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특별하다.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독립서점, 카페, 식당 등 작지만 개성 있는 공간들이 은근하게 인기다. 개성과 취향을 공유하고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 소비 경향이 확대되는 분위기와 결을 같이한다. 유명 관광지와는 다른 소소한 동네 여행의 즐거움을 함께 느껴볼 수 있게 구성했다.

 

저자 소개

<경남도민일보> 문화부
이서후 · 김민지 · 김해수 · 최석환 기자

 

 

목차

머리말 

01.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조용한 주택가 문화공간서 잔잔한 여유를
사파동에서 만난 사람들

02. 통영시 봉평동  
요즘 대세 아랫마을과 예스러운 윗마을 공존
봉평동에서 만난 사람들

03. 산청군 원지  
걷기만 해도 기분 좋은 강변에 젊은 감각은 덤
원지에서 만난 사람들

04. 진주시 망경동  
세월 머금은 골목길에 사람 향기 물씬
망경동에서 만난 사람들

05. 김해시 봉황동 
‘신의 거리’라 불리던 곳 ‘힙’한 감성 입고 활기
봉황동에서 만난 사람들

06. 창녕군 우포늪  
광활한 습지 위 감성 충전할 문화 공간이 콕콕
우포늪에서 만난 사람들

07. 밀양시 내일동·내이동  
가야시대 흔적부터 항일 운동 역사가 발 아래에
내일·내이동에서 만난 사람들

08. 창원시 진해구 군항마을  
한국 근현대 100년 역사 발 닿는 거리마다 숨쉬네
진해에서 만난 사람들

09.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 
다시 태어난 도심 골목, 세월 흔적 정겨워라
창동에서 만난 사람들

10. 사천시 삼천포 해안  
그리움 품은 항구변 아기자기한 매력이 넘실
삼천포에서 만난 사람들

11. 거제시 거제면 
난개발 피한 마을, 시간의 발자국 오롯이
거제면에서 만난 사람들

12. 함양군 지곡면 
고택 멋에 반하고 정겨운 일상에 취하고
개평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13. 양산시 물금읍 
시골·도심 함께 하는 이 마을에 즐거움도 아기자기
물금읍에서 만난 사람들

14. 함안군 함안면 
선비들 거닐던 무진정 연못가 고요한 풍경 여전
함안면에서 만난 사람들

15.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멸치만 떠올리면 섭섭… 젊은 취향 입은 옛 거리
지족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16. 합천군 용주면 
고령 박씨 집성촌엔 화백도 반한 풍경이
용주면에서 만난 사람들

17. 고성군 동해면 
고대역사 잠든 뭍에 없는 듯 조용한 고인돌 하나
동해면에서 만난 사람들

18. 의령군 정곡면 장내마을 
마음 걸림 없이 걷는 길 그곳이 바로 명당
정곡면에서 만난 사람들

19. 진주시 문산읍  
기차소리 저문 곳 유유히 걷다
문산읍에서 만난 사람들

20.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 
도심 속 카페골... 풍미 유혹
도계동에서 만난 사람들

21. 통영시 정량동  
걸어가는 나폴리 새단장
정량동에서 만난 사람들

22. 김해시 관동동  
율하천 문화공간… 가야유적 공원서 ‘꿀휴식’
관동동에서 만난 사람들

23. 거창군 거창읍  
거창 발전 자양분 된 헌신
거창읍에서 만난 사람들

24. 하동군 악양면  
가을 끝자락에 앉아 쉬어가는 하루
악양면에서 만난 사람들

25. 남해군 남해읍  
마을 지키는 고목 아래 젊은 감성 활기
남해읍에서 만난 사람들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통영 미륵산 등산로 가는 길에 있는 봉평동이 최근 통영 여행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전혁림미술관과 봄날의 책방을 중심으로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주변으로 아기자기하고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들이 속속 생기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등산객이 오가던 봉수로가 어느새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예쁜 거리로 변신했다.
봉평동의 옛 지명은 봉수동烽燧洞, 토박이말로는 봉숫골인데, 봉수가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여기서 봉수는 미륵산에 있는 봉수대를 말한다. 주민들에게는 이 봉숫골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통영 봉숫골은 4월이면 벚나무 가로수가 꽃망울을 터뜨려 벚꽃터널 이 장관을 이루는 명소다. 용화사거리에서 시작해 봉평주공아파트 지나 용화사 주차장까지 600m 정도 되는 벚나무 길을 따라 걸어봤다.
(2. 통영시 봉평동 中 26쪽)


최근 망경동에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바로 2020년 4월 문을 연 한옥 카페 은안재 덕분이다.
은안재는 은혜롭고 편안한 집이라는 뜻으로 남은숙(31·사진) 대표가 1954년 지어진 집을 카페로 고쳤다. 한옥과 일본식 건축 양식이 섞인 이곳은 손님이 발 내딛는 순간부터 사진을 찍게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옛 감성이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가 한몫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남 대표는 남자친구가 있는 진주에 레트로복고 감성이 묻어나는 카페를 차리고 싶었다. 여러 동네를 수소문하다 망경동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촉석루가 보이고 오래된 집들이 많아 할머니 집에 온 것 처럼 편안했다”며 “7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이 집을 새롭게 리모델링하기보다는 그대로 보존하며 역사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4. 진주시 망경동 中 52쪽)


우포생태체험장에서 다시 차로 5분을 달려 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있는 우포시조문학관을 찾았다. 우포늪 4개 습지 중에서 목포늪 한쪽에 있는 2층 건물이다. 원래는 우포늪 보전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온 환경단체 ‘푸른우포사람들’ 사무실 건물이다. 물론 지금도 1층은 사무실로 쓰고 있고, 2층을 문학관으로 쓰고 있다.
2016년 처음 개관할 때는 이우걸문학관이었다. 창녕에서 태어나 40여 년 현대시조의 길을 개척한 이우걸 시조시인 이름을 붙였다. 우포시조문학관으로 바꾼 지금도 관장은 이우걸 시인이 맡고 있다. 문학관에는 이우걸 시인이 낸 책들과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또 시인이 쓰는 조그만 작업실도 있다. 작은 문학관이지만, 매년 여름의 끝자락이면 입구 나무 그늘서 운치 있게 우포시조문학제가 열린다. 우포늪에서 가까운 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산토끼노래동산을 둘러봐도 좋다. 국민 동요 ‘산토끼’ 발상지가 창녕인데 이를 주제로 만든 공원이다. 이곳은 아이들하고 가면 즐거운 게 많다.
(6. 창녕군 우포늪 中 67쪽)


오래되고 낡은 골목은 그 자체로 어떤 문화적인 힘이 있다. 바래고 갈라진 틈새마다 삶의 손때와 땀내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지난한 삶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은 골목여행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부분 골목은 도시재생으로 예쁘게 꾸며졌다. 이런 골목 사이를 돌아 다니며 하는 추억 여행도 좋지만, 문득 들어선 낡은 소골목에서 오랜 삶의 손때와 땀내를 만나는 일도 나름 즐겁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136번지 앞. 이곳은 한때 중고생들이 몰래 담뱃불을 비벼끄던, 창동의 어두운 뒷골목이었다. 골목 입구를 가로지른 2층 집은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남저 이우식(1891~1966) 선생이 살던 곳이다. 몇 년 전 골목에 뉴질랜드 카페 리빙앤기빙이 들어서며 새삼 밝고 운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9.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 中 94쪽)


카페 정미소는 옛 정미소 본연의 느낌을 살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은 빨간 쌀 승강기와 석발기, 군데군데 놓여있는 인테리어 소품에서 카페 주인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 대표에게 삼천포의 매력을 물었다. 그는 “자연풍광이 너무 이쁘다”며 “산, 바다, 들이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고 개인적으로 바닷가 쪽을 좋아하는데 낙조가 아름다운 실안해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향은 그가 그림을 그리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 대표는 “아무래도 자연을 보고 자랐으니까 자연스럽게 동양화를 전공하지 않았나 생각이든다”며 “그동안 섬이나 바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왔고 이걸 어떻게 작업으로 풀지는 작가로서 과제다”고 말했다.
(10. 사천시 삼천포 해안 中 107쪽)


하덕마을은 풍경을 화폭에 담은 산수화처럼 빼어나다. 악양 십이경十二景 중 하나다. 예로부터 마을 앞 옥산玉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맑은 안개가 저녁에 지는 햇빛에 청홍색靑紅色이 영롱했다.
현재는 골목마다 예술작품으로 물들었다. 악양의 화가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정서운 어르신을 기리고자 야생차를 주제로 만든 마을 골목 갤러리인 ‘하덕마을 섬등갤러리’다. 섬등은 육지나 섬처럼 여겨지는 곳을 지칭하는 하동의 지역말이다. 골목 갤러리에는 경계를 아울러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이 만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 밖에도 최참판댁 입구에서부터 하덕마을까지 이어지는 길 곳곳에 ‘2018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설치된 다양한 미술작품도 있다. 이 중 빈집에 설치된 이정형 작가의 ‘비치다’라는 작품이 눈에 띈다. 빈집이 되기 전 이곳은 약방, 구멍가게, 만화방, 나락가마니를 쌓아두었던 창고
였다. 다른 지역 벽화마을과 달리 한적하고 작품이 뻔하지 않아 좋다.
(24. 하동군 악양면 中 249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변화하는 동네 풍경과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마스크 착용은 필수, 온라인과 비대면 활동이 대세가 됐다. 그리고 이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가 낳은 의미 있는 변화 중 하나는 ‘동네의 재발견’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원거리 이동과 대형 실내 공간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동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동네 가게를 방문하고 지역 화폐로 결재하는 사람이 늘고 우리 지역에서 나는 로컬 푸드를 찾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고 거래와 동네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는 우리가 사는 동네와 동네 문화, 동네 사람들에 주목했다. 이제 동네가 브랜드고 브랜드가 된 동네가 지역 발전을 이끈다.
동네에는 지형, 역사, 사람에 따라 동네 특유의 분위기가 발산된다. 그게 곧 동네 문화다.
동네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터줏대감처럼 동네를 지켜온 사람들, 도시에서 시골 동네로 이사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 책은 변화하는 동네 풍경과 더불어 동네를 지키는 사람들,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제어: 경남, 동네, 경남여행, 경남동네여행, 비대면여행, 경남카페, 동네가게
분류: 여행>여행에세이
       여행>국내여행>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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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0. 12. 18. 11:44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제목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펴낸날 2020 11월 30

가격 12,000

무선제본 | 144쪽 | 148*210mm

ISBN 979-11-86351-32-1 (0380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책 소개

 

<함주지>를 통해 알아보는 함안의 역사와 옛날 사람들의 삶

 

함주지는 우리 함안의 옛 모습을 담은 조선시대 책이랍니다.

인물과 역사, 건물과 유적, 시문과 설화에서부터 자연환경과특산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함주지라는 이름은 들어서 알고있지만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잘 모르는 학생들을 위한 안내서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함주지내용 가운데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 중심으로 골라 옮겼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함주지에 대해 관심이 생긴 친구들은 좀 더 단계를 높여 접근을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가 함안에 사는 친구들이 함안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면 책을 엮은 보람이라 여기겠습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환경전문기자로 일하며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펴낸 책으로는 따지고 뒤집기의 즐거움과 고달픔〉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경남의 숨은 매력<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가 있습니다.

 

 

 

 

목차

들어가면서

 

1. 우리는 어떻게 옛날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을까요?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과거를 알 수 있을까요?

조개무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고인돌이 무덤이라는 것을 언제 알게 됐을까요?

귀한 유물이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글로 남겨진 기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물건이나 글을 통해 모든 역사를 다 알 수 있을까요?

기록과 유물 중 어느 쪽이 역사를 이해하기 좋을까요?

기록이나 유물을 통해 배우는 역사는 어떤 한계가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기록유산은 얼마나 될까요?

옛날과 오늘날의 기록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옛날에는 어떻게 역사기록을 보관했을까요?

옛날과 오늘날 기록물 내용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2. 함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1. 함주지는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함주지첫 부분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함주지를 만든 한강 정구는 어떤 분일까요?

함주지를 함께 만든 사람들

함주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2. 함주지에 담긴 함안의 산천

함안이 반역의 땅이라고?

기우제 자리로 안성맞춤인 여항산

기우제는 비 올 때까지 지낸다

방어산에 석성과 장군당이 있었다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은 언제 알려졌을까?

낙동강은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남강은 어떻게 불렀을까?

용이 살았다는 아현연

함안천도 이름이 여러 가지였다?

함안읍성 우물이 마르지 않았던 까닭은

쌍안산이 백이산으로 바뀐 사연

그때도 감과 곶감이 특산물이었을까

 

3. 함주지에 담긴 함안의 건축물

백성들이 나서서 함안읍성을 쌓다

명당자리를 알아보고 지은 무진정

함안천에 동산정 낙동강에 합강정

미산 중턱에 원효암과 의상대

향교와 서원

지금은 없어진 역과 원

지금은 없어진 삼우대

 

4. 함주지에 담긴 함안의 역사유적

성산산성에 사람이 살았다

고분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아라왕궁지

 

5. 함주지에 담겨 있는 색다르고 별난 대목

황새가 은혜를 갚다

죄인 아버지를 위해 몸을 던진 노아

유구국에서 들여온 물소를 방목했다

조선시대에 이미 공공의료가

험한 유배지는 어디였을까요?

멀고 먼 서울 가는 길

장날은 언제 생겼을까?

원님의 봉급은 얼마였을까?

원님들은 얼마나 마음대로 할 수 있었을까?

소 두 마리로 사람 목숨을 구하고

옹기장이를 내기로 따왔다

 

6. 함주지에 담겨 있는 삶의 기록

귀한 물건은 부모님께 바치고

똥 맛보기는 기본

호랑이 이야기도 나오고

손가락 자르기, 효도의 결정판

때로 기적도 일어나고

죽은 남편만 바라보며 살았던 여자들

목숨을 바쳐야 사는 여자들

여자들에게 혹독했던 세월

흐뭇한 이야기

 

7. 함주지에 담겨 있는 함안의 인물들

이방실 장군

생육신 조려

고려 충신 조열

고려 충신 이오

고려 충신 조순

부모 위해 벼슬 그만둔 어변갑

북방을 개척한 날아다니는 장군 이호성

연산군의 폭정에 죽음으로 맞선 박한주

함안에서 으뜸가는 효자 이교

부자쌍절각 조준남과 조계선

목숨 바쳐 왜적에 맞선 조종도

왜란과 호란에 모두 출전한 박진영

빼어난 시인 박덕손

 

마치면서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기록과 유물 중 어느 쪽이 역사를 이해하기 좋을까요?

그렇다면 글을 통해 역사를 아는 것과 유물을 보면서 역사를짐작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좋을 것 같나요? 두 가지 다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고요? , 그렇습니다. 유물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어서 굉장히 생생하지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눈으로 보는 힘이 엄청납니다. 반면 기록으로 배우는 역사는 유물로 볼 수 없는 것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몇 년, 몇 월, 몇 일,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짐작이 아니라 기록을 통해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1부 우리는 어떻게 옛날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을까요? 19)

 

 

 

함안은 우리나라 일반 지형과 달리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습니다. 이런 남고북저 지형을 두고 함안을 반역의 고장이라고 하는 말이 있어요. 임금이 있는 북쪽이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이는 지어낸 말일 뿐 사실과는 다릅니다. 함주지에는 오히려 남고북저가 뭐가 문제냐 하는 당당한 태도가 나옵니다.

천지가 한 번 개벽하면서 강과 산이 벌써 정해져 있는데도 한 때 헛된 이름을 빌려 만고의 실제 형상을 어지럽히려 하니 풍수지리설이 그렇게 만들었다.” 실제 생긴 그대로 두면 되지 억지로 만들어 넣을 까닭이 없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오히려 함안은 충신이 많이 나온 고장이지요. 고려시대도 그랬고 조선시대도 그랬습니다. 조순, 조열, 조려, 이오 등 뒤에 가면 이 분들의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2함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35)

 

 

 

함안 하면 사람들은 말이산고분군을 떠올리지요. 그런데 무진정은 말이산고분군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해마다 사월초파일이 되면 낙화놀이가 벌어져 함안은 물론 주변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보통 정자는 산 좋고 물 좋은 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 출신 조삼이 지은 무진정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있지요. 보통 사람들 눈에는 그저 그렇게 보일 수 있는 데서 명당 자리를 찾아내 무진정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함주지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큰길가의 일개 거친 언덕이었고 또 이 고을에서 번화한 자리였다. 하늘이 숨겨둔 땅도 아니고 감추지도 않았다. 오가는 사람이 하루 천만 명이라도 이 경치 좋은 곳에 정자 세울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선생이 한 번 보더니 가시덤불을 베어내고 정자를 이루었다. 옛 길을 옮기고 아름다운 나무를 심으니 길가는 이들이 보고 신선이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정자의 경치는 다함()이 없고() 선생의 즐거움 또한 다함이 없다. 다함이 없음이 모여 무진정 이름이 됐으니 선생의 명성도 더불어 함께 다함이 없다. 선생의 성함은 삼이고 자는 노숙인데 함안군 사람으로 참으로 후덕한 어른이다.”

(2함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59~61)

 

 

 

5일장이 처음 생긴 것은 1700년대 후반입니다.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1587년에 나온 함주지1권은 물론 1740년대에 나온 전집에도 없다가 1840년대 나온 후집에 나타나는 데서도 5일장이 생긴 시기를 짐작할 수 있어요. 함안에서 가장 큰 가야장은 언제 생겼을까요? 전집은커녕 후집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생겼기 때문이지요. 192769일자 동아일보에 신설했다는 기사가있어요. 가야장은 규모가 대단하지요. 함주지에 나오는 평림·방목·군북장은 쪼그라들고 있어요. 이 또한 시대의 흐름이 아닐까요.

(2함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91~92)

 

 

무진정 연못가 부자쌍절각은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기리는 비석입니다. 아버지 조준남은 임진왜란 때 조상 무덤을 파헤치는 왜적을 막지 못했다고 자결한 효자이고 아들 조계선은 정묘호란 때 평안도 의주에서 전사한 충신입니다. 비각 오른편 충노대갑지비는 조계선을 위해 전쟁터까지 따라갔다가 그 유품과 부음을 돌아와 전하고는 주인을 구하지 못해 면목이 없다며 강물에 빠져 죽은 노비 대갑을 기리는 비라고하네요.

조상의 무덤을 지키지 못했다고, 모시는 주인을 구하지 못했다고 목숨을 버리는 일들이 지금 세상에서 보면 더없이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런데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종을 위해 왜 비를 세웠을까요? 그 마음이 갸륵해서? 아마도 다른 종들에게도 너희들도 저렇게 주인에게 충성해라 그런 뜻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부자쌍절각에 비해 충노대갑지비는 많이 초라해 보입니다.

(2함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132)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학생들을 위한 읽기 쉬운 <함주지>

조선시대 책 <함주지>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과거의 삶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함주지>가 만들어진 배경과 의의, 내용을 담았다. 학생들이 읽기 쉽도록 최대한 가볍게 풀어내어 이해하기 쉽게 전달 하였고 현재의 이야기를 보태 옛날과 지금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해설을 덧붙였다.

책에 나오는 함안을 <함주지>를 읽고 아이들과 함께 탐방하며 옛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 보는것도 좋다.

 

 

 

 

 

 

 

주제어: 경남, 함안, 함주지

분류: 역사, 국내, 문화/역사기행, 국내도서>역사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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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0. 11. 23. 15:02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제목 80년대 경남 독재와 맞선 사람들

펴낸날 20201120

가격 15,000

반양장본 | 280| 145*210mm

ISBN 979-11-86351-31-4 (0391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주완

 

 

 

 

책 소개

87년 경남에서 벌어진 항쟁은 전국적으로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국제축구경기가 중단되는 과정이 생중계로 통해 전국에 방송된 마산의 6·10시위와 남해고속도로 점거 및 LPG차량 탈취 시위로 전국에 혁명적 흥분을 불러일으켰던 진주 6·17시위는 6월항쟁의 열기를 가열·확산시킨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후 서울의 시각에서 씌어진 6월항쟁 기록물들은 이 두 가지 시위에 대해 하나의 에피소드이외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지역의 관점에서 지역사람들이 6월항쟁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80년대 경남의 각 부문별 민주화운동과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단체의 억압과 저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경남의 기록이긴 하지만, 서울 이외에도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역사기록물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주완

1990년 기자 노릇을 시작해 31년째 이러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출판미디어국장, 전무이사를 했고 블로그와 유튜브도 운영 중이다.

<토호세력의 뿌리>,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 <김주완이 만난 열두 명의 고집 인생>, <풍운아 채현국>, <별난사람 별난 인생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들> 등 책을 썼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80년 짧았던 민주화의 봄

짧았던 민주화의 봄

마산 이어 진주의 남강도하작전

5·175·18로 짓밟힌 꿈

노동자들도 나섰지만

 

2| 80~83년 대학가의 암중모색

70년대와 80년대의 만남

대학가 학습소모임들의 물밑 모색

지도휴학·강제징집·제적

반정부 유인물 살포사건

 

3| 80년대 중반 농민·문화운동 결합

농민운동의 태동

가톨릭농민회의 투쟁

농민운동과 문화운동의 결합

한국 농민운동의 산 증인 정현찬 씨

 

4| 84년 학원자율화 투쟁

대학에 상주하던 사복경찰들

제적생 복교와 학원자율화 투쟁

총학생회 부활, 결국 85년으로

 

5| 85년 총학생회 부활과 학생운동

 

6| 87년 이전의 노동운동

일본인들에게 점령된 마산

지식인과 노동자들의 만남

현장에서 단련된 학출노출

문성현과 이석행 운명의 만남

 

7| 87년 이전의 지역 재야운동

허진수 씨, 부마항쟁 세대로 6월항쟁에도 참여

 

8| 87년 이전의 교육·여성운동

교육민주화운동

대학교수의 시국선언

여성운동

학생운동권 출신 조창래 교사

82Y중등교육자협 김용택 교사

 

9| ‘아부저항으로 갈라진 문인들

문학운동

마당극 운동

대안언론 운동

 

10| 항쟁의 시작, 86년 투쟁

막 올린 민주헌법 쟁취투쟁

경남 4개 대학 연합 시위

공개 투쟁조직의 출범

겨울방학에도 계속된 투쟁

창원대 지하 운동권조재석씨

 

11| 박종철의 죽음과 2·7국민추모회

2·7 국민추도회로 항쟁 점화

지역언론의 눈물겨운 정권 옹호

 

12| 873월에서 4·13까지

873·4월의 언론보도

마산·창원·진주, 그리고 거창에서

진주 대아고 학생들의 고교민주화 투쟁

 

13| ‘4·13호헌후 지역유지들은 뭘 했을까

항쟁 불타오르는데 꽃씨 뿌리기 행사?

반상회 열어 호헌조치 정당화 안간힘

총장들, 교수 시국선언 탄압 혈안

문인들 권력 아부성 결의문 채택

가든파티에다 룸살롱 폭탄주 파티까지

 

14| 6월 항쟁의 전운

줄 잇는 4·13호헌 규탄 집회

정권과 학교당국의 결탁

천주교 신부와 수녀들의 투쟁

학교당국의 또 다른 꼼수

 

15| 신부 목사 약사 교수 교사 문화인들의 참여

기독교 목사들 삭발·단식

약사와 대학교수·교사·문화인도 동참

 

16| “6·10 대회를 막아라

6월초 경남국본결성

문교부의 치졸한 시위 저지 전략

내무·법무장관의 대국민 협박

대회 저지에 민간인까지 동원

 

17| 6·10 대회 막이 오르다

도내 각 대학 사전집회

진주·진해·거창에서도 독자 집회

아침부터 진해 6·10 시가행진이 벌어진 까닭

 

18| 6·10 대회의 주요 타격대상은?

국제축구경기 중단, 국내외 관심

알아서 기는 지역신문 보도

독재에 빌붙은 기관 집중 타격

 

19| 4·19 이후 진주 최대 시위항쟁 재점화

공무원 6명이 농민 1명 감시

항쟁의 거점, 마산에서 진주로

4·19 이후 최대의 시위

진주시내는 해방구

 

20| 경찰 과잉진압이 부른 고속도로 점거

경남대 유장근 교수도 경찰에 연행

창원전문대생도 학내문제로 농성

15일 진주 시위에 놀란 경찰

사상 초유 고속도로 점거 시위

 

21| 세계를 놀라게 한 고속도로 가스차 탈취 시위

태도 달라지기 시작한 경남신문

경상대생의 가스차 탈취

마산·창원도 산발 시위 계속

전국 놀라게 한 가스차 탈취 충격

 

22| LPG가스차 위에서 횃불 들고 "죽자! 죽자!"

러닝셔츠로 횃불 만들어

경찰의 기습작전 배경은

전국 시위 격화 계기 제공

진주교대에서도 시위

 

23| ‘군부 개입설긴장 속 6·26 총궐기 임박

진주교대·인제대·마산간전도 시위 동참

6·26 총궐기를 준비하다 전국 시위 격화 계기 제공

군부 개입 가능성 보도 눈길

 

24| 경남의 6·26 대행진

마산 2, 진주 2만 거리 장악

진해·김해·거창에서도

경찰이 깡패들에게 얻어맞은 사연

 

25| 6·29선언 그 후

6·29 항복선언 직전 경찰의 폭력

이후에도 계속된 경찰의 폭력 진압

지역언론 민주화에 대한 열망

 

등장인물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전두환 정권의 폭압통치가 한창이던 1982, 매서운 찬바람이 휘몰아치던 겨울 언덕에 서서민주화의 싹을 틔우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부마항쟁 세대였던 주대환, 박진해, 서익진, 박영주, 이태수 등이 만든 <마산문화>가 그것이다. 1980년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이어진 광주학살, 816만 명 이상을 체포, 감금했던 삼청교육대 지옥훈련 등으로 온 사회가 꽁꽁 얼어붙어 있던 시절이었다.

82년 말 발간된 부정기간행물 <마산문화> 1겨울 언덕에 서서80년대 최초의 노동소설 수출자유지역의 하루최순임, 본명은 주식회사 삼미의 고경엽, 비판적 시인 이선관의 시세계를 소개한 이선관 시론박진해, 문화운동의 현황을 짚은 마산 동신제와 지신밟기박진해, ‘마산연극의 흐름박영주, ‘마산의 청년문학 동인활동이재업, 그리고 민족·민주주의·민족해방운동서익진, ‘알제리 민족해방전쟁김종철, ‘니카라구아에서의 해방전쟁번역물 등 당시로선 불온하고도 위험한 글들이 실려 있다.

(2| 80~83년 대학가의 암중모색34)

 

 

 

송기원이라는 소설가 선배를 잘못 만난 탓이지요. 75년 중앙대 문예창작과 재학 시절, 그 선배가 시키는 대로 유신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집회현장에서 읽었다가 경찰에 잡혀갔지요.”

거창 갈릴리교회 유성일 목사는 거창YMCA 출신인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과 함께 70·80년대 거창지역 농민운동과 각종 사회운동의 산파이자 핵심이었고, 또한 거점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유신반대 시위와 관련, 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당하고 한신대로 진로를 바꿔 신학을 공부한 후 80년 정찬용 씨와 인연으로 거창에 정착하게 됐다.

그는 표만수·정쌍은 등 농민운동 핵심인물들과 함께 농민회를 만들고 지역운동을 확장시켜 나가면서 농촌지역으로는 드물게 876월항쟁 시위를 주도했다.

86년 갈릴리교회를 설립한 후 어린이집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며 지역최초로 탁아운동을 시작했으며, 20197월 작고했다.

(3| 80년대 중반 농민·문화운동 결합 48)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이라는 시다. 3·15마산의거 직후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추모시 <베고니아 꽃잎처럼이나>를 발표하기도 했던 김춘수였지만, 전두환 독재의 총칼 앞에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통영 출신으로 통영중학교 교사를 지냈고, 마산의 민족자산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허당 명도석 선생의 사위이기도 한 그는 광주학살을 자행하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 일당과 함께 민정당 창당발기인 15명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그 덕에 11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낸다.

(9| ‘아부저항으로 갈라진 문인들 103)

 

 

 

15일 자 사회면은 개헌논의 빙자 불법행동 엄단, 김 법무 지시 전국 공안검사 비상근무체제 돌입, 중범자엔 법정최고형 구형이란 기사가 나왔는데, 그 옆에는 봄맞이 대청소라는 제목으로 사진이 실려 있다. 비상한 시국에 비해 참으로 한가롭게 여겨지는 풍경이었다.

17일 사회면에 보도된 꽃씨 뿌리기 시범행사도 그랬다. 당시 경남도지사였던 조익래를 비롯한 도단위 기관장과 도청·창원시청 직원 550여 명이 창원시청과 중앙로터리변에서 백일홍과 맨드라미·봉선화 등 꽃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았다는 기사였다.

22일에는 급진좌경 의식화 오염방지 주력이라는 무시무시한 기사 옆에 <경남신문> 박정명 사장이 진해 이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회장 이상인로부터 진해군항제 행사에 대한 협조와 성원에 감사하는 표시로 감사패를 받았다는 기사와 사진이 실려 있다.

(13| ‘4·13호헌후 지역유지들은 뭘 했을까 151~152)

 

 

 

하지만 진주와 진해, 그리고 거창에서도 나름대로 독자적인 소규모 집회가 열렸다. 진주의 경우 경상대 학생들과 별도로 통일민주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농성과 집회를 열었던 것이다.

다음은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경남신문 기자의 메모이다.

진주시 통일민주당 경남 제3지구당 당사에서 국민 합의 반대하는 호헌 철폐, 행동하는 국민 앞에 박종철은 부활한다는 유인물 살포와 함께 상오 1040분께 옥외방송이 시작됐고, 하오 240분께 경찰 병력이 투입돼 일부 당원이 연행됐으며, 그 주변은 삼엄한 경찰의 경비가 펼쳐졌다. 하오 330분께 경찰은 당사 옥외스피커를 철거하고 연행당원을 훈방시켰다.”

이 메모는 진해 상황에 대해서도 오전 11시 여좌동 여좌성당 허성학 신부와 신도 50여 명이 ‘4·13조치 철회하라는 내용의 피킷을 들고 시내를 거쳐 성당에 입장했다고 전하고 있다.

(17| 6·10 대회 막이 오르다 187~188)

 

 

 

마침내 15일이 밝았다. 이날은 4·19혁명 이후 진주에서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날이었다. 80년 봄 남강 도하 작전때도 대규모 거리시위가 있었지만, 그땐 시민들과 결합하지 못한 학생들만의 저항으로 끝났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미리 계획된 대로 아침 9시부터 각 단과대별로 집결하기 시작한 학생들은 3000~5000여 명을 헤아렸다. 이들은 수업과 기말고사를 전면거부하고 시내 진출을 시작했다. 대형 태극기를 든 공대생을 선두로 정문과 후문을 돌파한 학생들은 오전 1130분쯤 새벼리와 대동중공업을 지나 구호를 외치며 진주역 사거리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1000여 명이 약식집회를 마치고 시내로 진입할 무렵에는 이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군중이 불어나 있었다.

(19| 4·19 이후 진주 최대 시위항쟁 재점화 213)

 

 

 

17일 경상대생들의 두 번째 고속도로 점거와 LPG 운반트럭 탈취사건은 다음날 대부분의 전국언론에 머리기사로 보도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특히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상황 판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경찰 간부 장충남 씨(현 남해군수)“15일 진주시위 이후 16·17일에는 진주에 가장 많은 경찰이 배치됐다. 울산에 있던 경찰력도 왔는데, 모두 8개 중대쯤 되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이 경찰관은 그런 상황에서 17LPG 차량 탈취사건이 일어났으니 난리가 났다. 청와대에서도 전화가 걸려와 상황을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석간인 <경남신문>에 앞서 서울지역 신문들은 조간에서부터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1면 톱으로 남해고속도 3시간 장악 - 경상대생들 마~진 열차도 한때 막아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사회면에도 지방시위 갈수록 격렬-진주 LP 가스차 2대 폭파 위협기사와 사진을 톱으로 올렸다.

(21| 세계를 놀라게 한 고속도로 가스차 탈취 시위 236)

 

 

 

오후 725분 구경꾼들 용마공원(200), 제비산(150), 로얄호텔(50), 인근 빌딩 옥상 등에 분산 관망 중. ‘’ ‘민심은 떠났다’ ‘최루탄 쏘지마라’.”

오후 935, 월남다리 옆 명성예식장 부근서 사복경찰에 연행 중이던 학생 2명 시민들이 탈취, 전경과 시민 시비 소란.”

오후 10, 코아 앞 시위대 경찰 최루탄 발사로 해산. 창동 일대 시위대가 거의 점거. 규모 15. 학생보다 시민 수 많다.”

오후 1110, 양덕, 산호1, 회원 등 파출소 노인 동원 음주 파티 벌여 투석 막고 있다.”

위의 인용문들은 87626일 경남신문 취재기자들의 전화 보고를 시간대별로 메모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렇듯 이미 민심은 독재정권을 떠난 듯 했다. 학생이 연행되면 시민이 달려들어 구출했고, 시위대 중 학생보다 시민의 수가 많았다. 경찰도 시위대를 진압할 힘을 잃었다. 시위대의 투석을 막기 위해 노인들을 파출소에 불러 음주파티를 열어주는 웃지 못할 상황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여온 <경남신문>도 이날 시위에 대해서는 다음날 1면과 사회면 머리기사로 비교적 상세히 시위 소식을 전했다.

(24| 경남의 6·26 대행진 257)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김태리 하정우 강동원 등이 출연한 영화 <1987>이 개봉되면서 많은 사람, 특히 1987년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도 2016~2017 촛불혁명이 80년대의 폭압적인 대국민 감시체제 하에서도 독재권력에 저항해온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시대의 한 부분적 단면을 보여줄 뿐 전체를 담지 못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전국 몇몇 대도시에서도 항쟁이 있었다는 것을 몇 개의 사진으로 보여주지만,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상황은 대부분 생략되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6월항쟁의 결정적 도화선이 된 것은 맞지만, 자칫 영화만 보면 그것만이 항쟁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착각할 우려도 있다.

이 책은 서울이 아닌 경남지역에서 1980년대 독재에 저항한 사람들의 기록이다. 책은 또한 1987년 유월항쟁 뿐 아니라 1979년 부마민주항쟁과 박정희의 사망, 전두환의 등장과 권력 찬탈, 19805월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학생과 시민 등 각 부문별 저항이 어떻게 조직되고 발전해왔는지를 살피고 있다.

특히 경남은 당시 부산과 더불어 1987614일 서울 명동성당 농성이 해산되면서 소강상태였던 시위에 기름을 붓는 15~18일 시위로 전국에 충격을 줬다. 이는 전국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에도 크게 보되었다. 이후 전국의 시위가 더 확산되었음은 물론이다.

 

 

 

 

 

 

 

 

주제어: 민주화운동, 6월항쟁, 경남6월항쟁, 부마민주항쟁, 군사독재

분류: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역사 > 테마로 보는 역사 > 혁명사

       사회과학 > 한국정치사정/정치사 > 전두환정부/노태우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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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0. 6. 11. 14:35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학살된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제목 학살된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펴낸날 2020620

가격 17,000

반양장본 | 302| 152*225mm

ISBN 979-11-86351-29-1(0309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엮은이 한국전쟁전후진주민간인피학살자유족회

기록자 김주완 김한규 한양하 백은숙 박성경

 

 

책 소개

진주 민간인 학살 유족 증언록

히틀러와 나치의 유태인학살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작 대한민국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학살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들어서야 비로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족하고, 부분적으로 진실규명이 이뤄졌지만, 아직도 많은 미신청인들이 남아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이미 70대가 된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이승만 정권의 보도연맹원 학살의 실상과 유족들의 아픈 삶을 기록했다.

 

 

 

저자 소개

*진주유족회 증언록편찬위원회

위원장 정연조

위원 김현국 이증식 정영우

       강병현 정효갑 김용호

       김승일 전영철 김상길

 

*진주유족회 증언채록팀

팀장 김주완

팀원 김한규 햔양하

       백은숙 박성경

 

 

 

목차

발간사

증언자 강병현

증언자 강성헌

증언자 김상길

증언자 김순달

증언자 김승일

증언자 김형자

증언자 문병근

증언자 박남숙

증언자 백자야

증언자 이주택

증언자 이증식

증언자 장호수

증언자 장호조

증언자 정병표

증언자 정연조

증언자 정영자

증언자 황양이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자라면서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시게 되었는지 알게 된 나이는 몇 살 때인가요? 알고 난 뒤에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된 나이는 너댓 살쯤 됐을 거예요. 다른 집에는 아버지가 있는데 왜 난 없을까 생각했지. 엄마한테 물으면 애들은 알 것 없다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혼자서는 안 풀리는 문제였던 거죠. 그리고 다른 집에는 논도 많이 있고, 산도 있고, 밭도 있고 가을 되면 곡식도 거두어들이는데, 왜 우리집은 아무것도 없을까.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였지.

근데 좀 크고 보니까, 큰집에서 우리가 분가할 때 아무것도 안 줬다는 걸 알게 되었지. 내가 어느 정도 커가지고 서울 갔다가 내려와서 큰아버지 큰어머니, 할머니께 분가할 때 우리 아버지 밑으로 논 두마지기 있었다는데 왜 안주시느냐, 주십시오, 이랬더니, 이제 자기들도 자식들 공부시키고 장가보내고 없다는 거죠. 그래도 줄 건 줘야 할 것 아니냐 이러면서 한바탕 싸우고 진주로 이사를 들어와 버렸어요.

(본문 13)

 

 

 

역사에서 보면 정의는 항상 이겼습니다.

때로는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진실은 밝혀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 때문에 이 나이에라도 밝혀보자 싶어 밝히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개인사를 이렇게 털어놓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이 사건의 진실규명과 아버지를 비롯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회복,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억울하게 가신 넋들을 위로하고 살아남아서 고통스러웠던 유족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남은 여생이나마 마음 편히 살다 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직도 실체를 밝히지 못한, 불법적 살인에 참여한 이들의 가슴속 불안과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본문 24)

 

 

 

-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학살당하셨는지 알고 계신 내용을 말씀해주세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아무 죄없이 갔다고 해요. 엄마 따라 밭에나 논에나 갈 때 위에 마을 구장이 열 살 정도 많은데, 길에서 만나면 그 할배가 우리 엄마한테 인사를 45도로 굽혀서 하는 걸 봤어요. 우리 엄마는 새파란 나이였는데도, 인사를 받기는커녕 고개를 홱 돌려버렸어요. 지나가고 나면 더런 놈 나한테 인사를 해? 저놈이 들어가지고 죄 없는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죄 없는 사람들 도장 받아가서 다 죽게 만들었다고. 지는 도망 나와삐고, 인사가 뭣이고 더런 놈이랬어요. 논이나 밭에 따라갈 때 그 아저씨가 자주 만나지더라고. 위에 마을이거든요. 저는 그 나이 든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엄마가 이상하고 나빠 보였어요. 볼 때마다 그래서 엄마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되었어요. 엄마가 그 사람만 보면 이를 갈더라고. 그때는 자세한 사연을 몰랐고, 나중에 제가 처녀 때에야 그 사연을 들었어요.

(본문 107~108)

 

 

 

박남숙 유족의 아버지 박사근불(당시 28) 씨는 진주 본성동에서 철공장을 했다. 육이오 나던 해 7월 초 새벽에 사복 경찰이 권총을 들이대면서 박사근불이 나오라고 해서 체포해 간 후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같이 살던 작은아버지 박문우 씨는 형님이 대한청년단에서 근무하고 새벽에 들어왔다고 했다. 박남숙 씨의 이모가 당시 교도관이어서 아버지 옷을 이모 편으로 전달하곤 했으며, 아버지가 트럭에 실려 가기 전 이모에게 우리 숙이가 보고 싶다고 했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경찰에 이마를 맞아 이모가 속치마를 뜯어 이마에 매어주었다고 한다.

사람을 실은 트럭이 명석면 용산리로 갔다는 것을 이모 편으로 듣고, 할머니, 어머니, 고모부가 시신을 찾으러 갔으나 비가 오는 데다가 시신은 찾을 수 없었고 고랑에는 핏물이 흘렀다고 한다.

(본문 126)

 

 

 

 

-정병표씨는 아버지가 그렇게 학살로 돌아가셨다는 걸 언제 아셨습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세 살 됐을 때지. 그 당시에는 이것저것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고.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저희 어머님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해줬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그 당시 고통이 심해가지고 (아버지가 나가서 학살되기 이전에) 밤이면 누군가 나타나서 사람을 찾고 하니까 숨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리고, 아버지가. 그래서 (그걸 봐왔던 어머니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충격이 커 놓으니까 어머니 혼자서만 감추어 놓고 있고 이야기를 안 해주는 거라. (밤이면 누군가 아버지를 찾으러 온 기억 때문에 어머니가 충격이 커서.)

그래 이제 엄마보고 아버지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한 번 내가 딱 물어봤어. ‘좀 있으면 알게 될 거다이 말이 끝이었어요.

(본문 222~223)

 

 

 

 

지가 안 겪어보면 아무도 모른다. 지가 겪어봐야 그렇게 살았다 싶으지. 아무도 모르기로. 대통령이 공약을 했다 하더만, 이거 해결해준다고. 나라가 이리 시끄러운데 해결이 되겠나. 그런데 뭐 광주니 어디니 샀는 거는 자꾸 보상 주고 그런다매. 그런데 모르지. 내 평생에 될 건가 안 될 건가 몰라도 만약에 못 하고 죽으면 내가 너무 억울하다. 진주시장이 (위령공원 장소를) 어디라고 확실히 정해는 안줘도 해준다고 약속을 했다 하대. 기대는 하지만 그 기대가 설 것인지 어그러질 것인지는 모르지. 딱히 할 말도 없다. 서러운 거 그거는 말로 다 못하겠다. 다문 얼마라도 보상받고 위령제 지내는 그거라도 있으면 내가 풀고 죽겠는데 그것도 못보고 죽으면 너무너무 한이 많을 것 같아.

(본문 295)

 

 

 

 

 

 

추천글

아버지를 누가 어떻게 지시하여 왜 죽였는지 알지 못하는 아들 딸들의 기막힌 이야기.

그리고 좌익 가족으로 몰려 평생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사회적 낙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진주지역 보도연맹 관련 피학살자들과 유족들의 기막힌 사연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다시 되새김질합니다. 살아있었다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수많은 청년의 억울한 죽음을 우리 모두 기억하여 유족들에게도 위로가 되고 구멍 난 현대사가 바르게 채워지기를 기대합니다.

- 김동춘(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성공회대 교수)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희생자들의 자식들도 이제 70대 노인이 되었다. 아버지가 보도연맹원이란 이유로 끌려가 대한민국 군경에게 무참히 학살당할 때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유복자가 만 70세다. 이들 1세대 유족이 모두 숨지고 나면 더 이상 민간인학살의 역사를 증언해줄 이들도 사라지게 된다.

기억은 언젠가 잊히기 마련이지만 기록은 역사가 된다.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의 아픔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아이가 빨갱이 자식이란 낙인과 연좌제의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온 가슴 아픈 이야기가 펼쳐진다.

뒤늦게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접하고 유족회 활동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찾아 각성해나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주제어: 한국근현대사, 민간인학살, 진주민간인학살, 민간인학살증언집, 보도연맹

분류: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한국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국내도서 > 역사 > 테마로 보는 역사 >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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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0. 6. 2. 10:36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제목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펴낸날  2020525
가격 20,000

반양장본 | 300| 152*225mm

 

 

 

ISBN 979-11-86351-28-4 (0390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조현열

 

 

 

 

 

책 소개

 

 

옛 군수가 기록한 함안의 역사 유산을 찾아서

 

부임지마다 기록을 남겼던 수령 오횡묵은 경남 함안군수로 재임하던 시절에도 <함안총쇄록>을 남겼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객관 정황에다 본인의 느낌까지 섞어가면서 수령의 하루하루를 기록하였다.

 

이 책은 오횡묵이 기록한 함안의 지형과 명소, 시설, 그리고 각종 모임과 행사가 이뤄진 장소를 일일이 답사하며 130년 전의 모습을 더듬었다.

 

책에 나오는 함안 곳곳을 탐방하며 조선시대 원님의 풍류와 행적, 당시 백성의 삶을 떠올려보기에도 좋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문화학교추진단 단장

갱상도문화공동체 대표

 

*지은이: 조현열

1960년 경남 함안 출생

경남도민일보 자치행정2부 부장

 

 

목차

 

 

1.들어가면서

기록유산이 넘쳐나는 함안

제작에서 활용까지 기록의 달인 오횡묵

각본 없이 반전이 거듭되는 <함안총쇄록>

살아 움직이는 기록을 위하여

 

 

2.관아 건물과 공간의 재구성

군수 부임 행차

수령의 읍터 몸소 살펴보기

새 군수의 조영

 

 

3.함안 읍성의 130년 전 모습

무너지지 않은 지과정 남쪽 성벽

사라진 현교와 새로 생긴 서문

새뜻한 동문루, 남루한 남문루

올라가 즐겨 놀았던 남쪽 성곽

실무적으로 쓰인 동문

높다란 데 자리한 북장대

 

 

4.함안 읍성의 지금 모습은

그윽하고 포근한 마른해자

명문 각석도 눈에 띄고

산지는 성벽도 대체로 온전

대문 너머 담장으로 남은 남문~동문

연못 앞에 노거수 우뚝한 북쪽 성벽

가장 심각하게 망가진 구간은?

명문 각석 사라진 남문터 서쪽

해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산지 읍성부터 원형 회복을

 

 

5.성산산성

목간의 최대 보물창고

기적 같이 환생한 고려시대 연꽃

오횡묵의 기록과 유리건판 사진

일제도 관심 갖고 고적 지정

군수가 백성 골탕 먹인 자리

산성 가는 산길을 아무도 몰랐다니

옛날 군사요충을 이제는 새 랜드마크로

 

 

6.세시풍속 : 복날과 정월대보름

복날에 팥죽을 먹다

팥죽을 먹었던 까닭은

복날에는 곤드레만드레?

지금은 사라진 함안의 줄다리기

줄다리기 승패에 목숨을 걸다

달밤에 줄다리기를?

같은 풍물이라도 대접이 달라

 

 

7.세시풍속 : 섣달그믐과 봄

섣달그믐밤 뜬 눈으로 밤을 새다

관아에서 푸닥거리를 하다

섣달그믐밤에 귀신 묻는 놀이를

경남 오광대의 시원 매귀희

3월의 마지막 날 봄을 보내는 낭만적인 전춘

재인 놀음 보면서도 봄을 보내고

 

 

8.함안대군물

진을 치고 전투까지 연출하는 대군물

왕비 탄신 대군물은 흥청망청

천총의 몰골은 염라대왕도 웃을 정도

원님 덕에 나팔 불고

민폐가 염려되어 중지했던 대군물

우스우면서도 눈물겨운 장면들

함안대군물의 출현을 기다리며

 

 

9.자이선·연처초연, 되살려 내고픈 그때 그 명승지

갈라터진 돌등에 새겨진 전임 군수의 행적

황폐해진 경관을 새로 단장하다

높고 또 넓게 켜켜이 쌓인 바위

함께 어울리는 열린 광장

자이선의 숨은 흔적을 찾아서

심복이 새긴 일곱 글자도

아직 못 찾은 글자들

 

 

10. 입곡 숲안마을 연계 골짜기

옥사를 피하여 입곡마을로

대접이 좋았어도 마음은 불편하고

청희당에 머물다 옮겨간 모희재

바위에 새긴 연계 두 글자

세상 넘기 어려웠던 보릿고개

평범한 백성과 아름다운 인연도

오탁수로 질병을 다스리고

산천은 간 곳 없고 건물은 그대로

오탁수 자리도 확인되고

 

 

11.낙화놀이

성 위에 오르지 못한 첫 번째 사월초파일

자이선에서 맞은 세 번째 사월초파일

붉기는 꽃 같고 밝기는 별 같다네

장터와 읍성 말고도 불놀이를

새롭게 전승된 함안낙화놀이

지역 주민 스스로 이룩한 재연과 전승

 

 

12. 관노들의 파업

한 섬이 12말도 되고 8말도 되는 비결

10년 전 장부까지 조사하고

밥줄 끊어진 관노들의 파업

파업을 맞은 오횡묵의 대처는

파업에 숨은 배후가 있었으니

파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빗줄기 맞으며 엿새 동안 석고대죄

 

 

13. 군수의 파업

엄청나게 떼어먹은 조세

대책이 없는 조세를 받아들이려니

웃통 벗고 화살 맞기

마산창에서 걷은 한 해 조세

곤장 소리 가득한 납세 현장

질질 끄는 양반 vs 문을 닫는 군수

군수의 일관된 뚝심 vs 양반의 소소한 저항

생일날 깔끔한 마무리

함안 백성보다 착한 백성이 없다

 

 

14. 한 손에는 매 한 손 에는 꿀

형벌은 갈수록 고달프게

죄인에게도 꿀물을 내려주고

진휼에 스며든 부정을 뿌리 뽑고

개별 구휼은 장터가 안성맞춤

활쏘기 시합장도 나누는 자리로

능멸하고 깔보는 데는 단호하게

원님 코앞에서 벌어진 노름

 

 

15. 검암마을이 품은 자연과 인물

너른 들판에서 받은 상쾌한 첫인상

함안에서 처음 천렵을 누린 자리

동네가 크다 보니 인물도 나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그 선조

여간 가깝지 않았던 이용순

고려에 의리를 다한 조순도 검암에

충순당 정려각과 조순 장군비

충순당의 고조부를 기리는 동산정

 

 

16. 가뭄 속 단 비 같았던 무진정

부임하는 날 보았던 무진정

주세붕의 눈에 비친 최초 모습

오횡묵이 본 달라진 무진정

무진정에서 보낸 즐거운 한때

권학을 위한 잔치를 무진정에서

군수 떠나가는 전별연도 무진정

봇짐장수 대회도 무진정에서

무진정은 무진정 이수정은 이수정

 

17. 한강 정구 놀던 별천계곡

한강 정구와 지역 선비들의 합작품 <함주지>

한강이 놀았던 별천계곡

오횡묵이 놀았던 별천계곡

시집도 묶어내고 글자도 새기고

한강을 기리는 다른 각자들

경현대까지 더해져서

 

 

18. 사랑 독차지한 원효암·의상대

오횡묵이 치성을 들였던 자리

오횡묵의 눈에 비친 원효암·의상대

일반 백성들에게도 각별했던

함안에 하나뿐이었던 절간

원효암 주지스님은 허풍을 떨고

인연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19. 기우제는 비 올 때 까지

어느 날 보니 문득 가뭄이

몰래 쓴 무덤부터 파내고

첫 기우제는 사직단에서

나머지 기우제는 영험이 있는 데서

자이선에서는 비공식 기우제를

마지막 기우제에 비는 제대로 내리고

빌지 않아도 내리는 비

그래도 고맙게 풍년이 들어

 

 

20. 기우제 지낸 자리 지금 모습은

기우제 효력은 신통찮았고

모두 어려울 때는 고르게가 최선

금품도 주면서 관폐 줄이기도

기우제 자리는 지금 어디일까

주물진은 풍탄 나루

기록 풍부한 벽사단(와룡정)

험하고 높은 여항산

 

 

21. 습지 정경 속 제방과 보

오횡묵이 그린 습지 경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마을 쪽에만 있었던 옛날 제방

함안천에 남아 있는 옛날 제방

함안읍성을 있게 만든 가칭 금천방죽

혹시 오횡묵이 고생했던 그 제방?

술과 북어와 담배를 풀며 보() 공사도

 

 

22. 객사는 없어졌지만 향교는 남아

객사 전패에 부임 인사를 올리고

제사 지내는 제물을 살피던 자리

시나브로 없어진 파산관과 태평루

공자 알현은 부임 사흘째에

강학과 시험을 치르던 향교

한 달 두 차례 객사·향교 들러야 했던 오횡묵

여전한 은행나무 살아남은 대성전

 

 

23. 그때도 감·수박·연꽃이 명산이었을까

감은 그때도 함안 곳곳에

아래로 베풀고 위로 바치고

받을 때는 청렴을 생각하고

일제강점기에도 대단했던

함안 수박의 명성은?

함안에 연꽃이 없다고 했으나

네 가지 서양 채소도 기르고

 

 

24. 머물러 달라는 만인산

보내는 아쉬움 선정비

1만 명 이름을 수놓은 만인산

만인산 선물에 담긴 뜻은

선정비는 헤어지는 아쉬움을

오횡묵이 찾은 마지막 함안 명승

떠나는 원님인데도 군악 의장을

 

 

 

 

 

 

 

 

책 속으로

 

함안읍성은 1510년 경상도에서 삼포왜란이 터졌을 때 처음 쌓았고 1555년 전라도에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고쳐 쌓았다. 오횡묵이 함안군수를 지낸 때는 이로부터 330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읍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889421일 부임 행로에 읍성이 나온다.

“(무진정 방향에서 오면) 지과정 오른편서쪽이 읍성이다. 북문은 오래 전에 무너졌고 지과정 남쪽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동문은 절반쯤 가운데 우뚝 섰는데 파동루(巴東樓)라는 현판이 달렸다. 성 위에 남녀가 빽빽하게 서서 구경하는데 사람성(人城)이라 할 만하였다. 남문 밖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곡성(曲城)으로 들어가니 파남루(巴南樓)현판이 걸렸다.”

(본문 30)

 

 

합안읍성에서 산지는 상당한 정도로 원래 모습이 유지되고 있었다. 경관을 조금만 정비하고 관리하면 훌륭한 생태역사탐방자원으로 새로 태어날 것 같았다. 성벽과 해자 안팎을 무성하게 뒤덮은 수풀과 흙더미를 일단 걷어내는 것이다. 성산산성은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석축도 느낌이 있었지만 마른해자가 특히 색달랐다. 아무 데서나 쉽게 볼 수 없는 유적이기 때문이겠지만 그 부드럽고 유연한 모습이 왠지 좋았다. 성벽과 마른해자의 나란한 동행과 조화로움도 은근히 감흥을 일으켰다.

최헌섭 원장은 지금 성벽은 100년 넘는 세월을 지나면서 안정화되었기 때문에 수풀과 흙더미를 제거해도 무너지지 않는다이렇게만 정리해도 곧바로 130년 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거리가 1킬로미터 안팎으로 적당하고 가파른 비탈도 없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산길이다. 조금만 손질을 하면 느낌도 산뜻하고 역사유적도 누릴 수 있는 산책로 하나가 새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본문 50~51)

 

 

정월대보름에는 다른 세시풍속도 있었다. 으뜸은 예나 이제나 달맞이였다.

달맞이영월지유(迎月之遊)는 없는 마을이 없다. 계수나무 그림자(계영桂影)가 동쪽에서 나오자 늙은 농부들이 서로 축하하며 모두 금년에는 반드시 풍년이 들 징조라고 한다.”(1890. 1. 15)

조금 뒤에 얼음처럼 맑고 차가운 달이 올라왔다. 계수나무 그림자가 원만하면서 짙은 황색이었다. 모두들 근년에 정월대보름 달을 처음 보았으니 마땅히 제일 좋은 징험이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한 해 전 정원대보름은 날이 흐렸었다. 그래서 달맞이를 할 수 없었다.

액을 쫓고 복을 부른다는 명목으로 정월대보름 전후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풍물을 놀고 금품을 받는 일은 요즘에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 마을 단위 모임이 주체인데 이렇게 모은 금품은 대개 공동 경비로 사용된다.

(본문 73~74)

 

 

 

초파일 불놀이에서 등불이 먼저일까, 불꽃이 먼저일까? 그야 두말할 것도 없이 종교행사로 시작되었으니 등불이 먼저다. 그러면 불꽃은 왜 생겨났을까? 등불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서인지 아무래도 좀 밋밋하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익숙해지면 색다르고 멋진 다른 것을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등불을 뛰어넘는 재미거리로 생겨난 불꽃이 이번에는 거리를 벗어나 산으로 올라가 고도를 높임으로써 또다른 차원으로 나아갔다. 오횡묵이 적은대로 나뭇가지와 바위절벽에 내걸려 바람이 부는 데 따라 흔들리며 빛났던 것이다. 지금 되살려 시도해보아도 좋을 새로운 경관의 창출이라 할 수 있겠다.

(본문 127)

 

 

오횡묵보다 300년 가량 앞선 시기에 함안에서 군수를 지낸 한강 정구(寒岡 鄭逑 1543~1620)라는 인물이 있다.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 모두에게서 배웠고 따로 한강 학파를 이룰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다. 역대 함안군수 가운데 인품과 학문이 가장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함안 사람들은 지금도 한강 정구를 많이 기억하고 높이 받들고 있다.

정구는 <함주지咸州誌>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1586~88년 함안군수로 있으면서 지역 역량을 끌어모아 <함주지>를 편찬했던 것이다. 함안의 산천과 인물·문화·산물을 담은 <함주지>는 지금껏 남아 있는 우리나라 읍지(邑誌) 가운데 가장 오래된 보물이다.

(본문 200)

 

 

 

가뭄이 두 달 동안 지루하게 이어지니 들판과 습지가 모두 벌겋게 타버렸고 지금 농사 형편은 참혹하여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횡묵은 생각 이상으로 영리했다. 공문을 보내고 곧바로 전공(前功)이 아깝고 인사(人事)를 다하지 않았으니 내가 또 따로 제사를 지내겠다고 하였다. 아전들이 명부(冥府)가 반응이 없을 수 있다며 반대하는데도 나는 할 뿐이고 하늘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느냐며 밀어붙였다. 이런 계산이 있었지 싶다. ‘스무 날 넘게 기우제를 지냈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는 데 들인 공력이 헛수고가 되었으니 안타깝다. 달리 보면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았으니 이제 때가 되지 않았을까? 조금 더 빌면 비를 만날 수도 있겠구나. 내리지 않아도 손해는 아니지. 백성들한테 그만큼 애썼다는 인상은 심어줄 수 있으니.’

오횡묵은 이어 경건하게 정성을 들이는 예식은 사람들이 함께해야 하니 내가 홀로 삼헌(三獻)을 하는 대신 다음은 재임이 다음은 공형이 하는 식으로 하자고 하였다. 재임은 향교 임원이니 지역 양반들이고 공형은 삼반관속이므로 고을 아전들이다. 이는 제사에 세 번 술잔을 올리는 삼헌에서 초헌·아헌·종헌을 수령·양반·아전이 저마다 나누어서 하자는 얘기다. 수령 단독이 아니라 양반과 아전까지 공동으로 주관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본문 232~233)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함안총쇄록을 통해 알아본

조선시대 함안의 역사와 마을을 다스린 원님의 이야기.

 

부임지마다 기록을 남겼던 수령 오횡묵은 경남 함안군수로 재임하던 시절에도 <함안총쇄록>을 남겼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객관 정황에다 본인의 느낌까지 섞어가면서 수령의 하루하루를 기록하였다.

 

이 책은 오횡묵이 기록한 함안의 지형과 명소, 시설, 그리고 각종 모임과 행사가 이뤄진 장소를 일일이 답사하며 130년 전의 모습을 더듬었다.

 

왕조시대 이야기라 자칫 고루하지 않을까 싶지만 오히려 발랄하거나 발칙한 에피소드도 곳곳에 등장한다.

 

아메리카 인디언만 끈질기게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줄 알았는데 130년 전에는 우리도 그랬다. 군수 오횡묵은 가뭄으로 논밭이 타들어 가자 하루걸러 한 번씩 한 달 동안 15차례 하늘에 빌었다.

 

군수도 파업하고 관노도 파업을 했다. 군수는 양반과 아전이 말을 듣지 않고 묵은 조세를 제대로 내지 않자 문을 닫아걸었다. 관노는 조세를 규정대로 줄이자 자기네 콩고물이 없어진다며 일손을 놓았다.

 

누정이나 명승을 찾아 시를 짓고 노닐었지만 단순히 놀이인 것만은 아니었다. 군수의 권위를 높이고 지역사회에 질서를 세우면서 학문도 권장하는 행정 행위였다. 그렇지만 무진정이 양반 전용 놀이터는 아니었다. 봇짐장수(褓商)들이 1000명 넘게 모여 대회를 연 적도 있다.

 

선물 받은 벌꿀과 딸기를 동헌에 있던 모든 아전·사령·손님은 물론 일반 백성과 죄인까지 고루 나누었다. 형틀에서 볼기짝이 드러난 상태에서도 기쁜 기색으로 이를 우물우물 삼키는 모습에 군수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었다.

 

이렇듯 책은 조선시대 함안군수가 고을을 다스린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금 함안 곳곳을 탐방하며 숨은 역사와 과거 모습을 독자의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재구성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제어: 함안, 함안총쇄록, 경남함안, 조선시대, 조선시대군수, 함안답사

분류: 역사, 국내, 문화/역사기행, 국내여행>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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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0. 3. 11. 18:03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지방에 산다는 것> 이일균 지음

 

제목 지방에 산다는 것

펴낸날 2020228
가격 13,000
반양장본 | 264| 145*210mm

ISBN 979-11-86351-27-7 (0333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이일균

 

 

 

 

 

책 소개

 

지방에서 산다는 게

점점 더 위축되는 세상입니다.

 

 

전국 땅덩어리의 11%를 갓 넘는 수도권에는 인구 절반이 몰려 산다. 입시를 앞둔 학교에서는 줄곧 ‘in서울을 주입하고, 학생들은 그 대열에서 빠지면 낙오된 것처럼 느낀다.

어렵게 자녀를 서울로 보내도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경비 때문에 뼈가 빠진다. 게다가 사회적·문화적 소외는 또 어떤가?

책은 이런 한국사회의 현실을 진단하고 극복방안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고 있다.

 

 

 

 

 

 

저자 소개

 

 

*지은이: 이일균

 

1965년 부산 출생. 마산고, 경상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1995년 진주신문, 2000년부터 경남도민일보 기자.

2016년 이후 4년간 지방분권 기획취재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서울과 수도권에 대비한 지방소외 문제를 더욱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기록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지방 사람들조차도 서울·수도권 집중을 대부분 용인하는 현실에서 그런 고민과 실천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권력과 돈, 사람은 속성상 집중될 수밖에 없어.”

그러나 아주 드물게 고집스런 분들을 만났다.

지방에 사람이 사는데 서울에 다 빼앗겨? 싸워야지!”

지방자치, 주민자치, 아파트자치. 자치를 입으로만 해선 안 돼. 권력과 돈을 나눠야 제대로 자치를 하지!?”

지방소외 문제에 대해 지방 사람들이 좀 더 생각이 많아져야 한다.

지방에 대해 더 똑똑해져야 한다. 이 책이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

 

 

 

 

목차

 

 

1장 들어가는 말

문득 바라본 시카고 플랭

지방에 산다는 것

지역으로 온 대통령

지역 소외

 

 

2장 지역여행

용어 정리

지역 실태

역주행

지방 소멸

지역민 인식실태

지방이 웃는다

 

 

3장 왜 지방분권인가

2020년 지방분권

국가에서 지역공동체로

왜 지금인가

대통령 분권의지 위축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문재인 정부 자치재정 강화 방안

자치행정권

지방의회

주민자치

자치경찰제

지방분권을 위해 우리는 뭘 하나

 

 

4장 지방분권 현장

창원시 시민자치학교

용지동 주민자치회

노산동 주민자치회

사상 첫 주민총회

웅남동 주민총회

지방분권 운동가

이창용 대표의 강의

전국 일꾼들

 

 

5장 지방분권과 사회혁신

사회혁신은 또 뭐야?

전국 사회혁신 사례

경남에 온 사회혁신

김경수 지사 그만둬도 사회혁신?

아직 어색한 마을공동체

지방분권과 사회혁신 접점

 

 

6장 지방분권운동 보완점

지방분권으로 지방소멸을 못 막는다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

두 주장의 차이

 

 

7장 나오는 말

 

 

 

 

 

 

 

책 속으로

 

방이란 용어를 이렇게 지역을 왜곡시키는 의미로 이해하는게 주관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객관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20154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국회의원은지방분권법을 지역분권법으로 바꾸는 것은 지역 주권회복의 선언이 될 것이라며 지방분권법(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지역분권법으로 바꾸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법률용어부터 지방 대신 지역으로 바꿔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그해 10월 강원도의회는 강원도 지방분권 촉진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심의하면서 지역으로, ‘지방분권지역분권24 지방에 산다는 것로 모두 바꿨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전 지방분권으로 쓰던 것을 출범 이후 자치분권 로드맵처럼 관련 용어를 자치분권으로 공식화했습니다.

(본문 23~24)

 

20186, 당시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안창희 공동회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지방분권에서 주민자치가 핵심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은 비중이10%도 안돼요.”

도내 읍면동별 주민자치회 조직률이 80%가 넘어요. 형태는 갖춰져 가는데 문제는 기능과 예산입니다. 읍면동 사무소 하부기관 비슷해요. 주민자치위원을 읍면동장이 임명할 정도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우선, 지금 읍면동 주민자치위원들이 하는 일을 볼까요. 아시겠지만, 이들은 읍면동별 주민자치센터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합니다. 기타색소폰, 에어로빅, 한글공부, 붓글씨.1999년 주민자치위원회가 처음 생길 때 취지와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생활상의 불편, 민원, 이런 과제를 읍면동사무소에서 수렴하고 이를 시군에 건의하기 위해 생겼습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동 주민자치위원장이기도 했던 안창희 공동회장이 실상을 설명했습니다.

(본문 108~109)

 

당신은 지금 분권을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지금 지역민들은 지방분권 실현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지역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지방분권을 쓰면서, 막연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고민 많이 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제가 사는 경남에서 진행되는 분권 움직임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참여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경남도청 내 자치분권팀장, 지방분권경남연대 대표자, 학계 전문가와 인터뷰를 통해 각각 어떤 현안과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때가 20187월이었습니다. 당시 경남도청 자치분권팀 성수영 팀장은 언론 역할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본문 124~125)

 

창원시는 주민자치회 설치운영 조례 제18조에 관련 규정을 두었습니다. 각 읍면동별 주민자치회 위원 수의 3배수 이상입니다. 성주동은 위원이 24명이니까, 주민 72명이 참석하면 총회가 성사되는 것입니다. , 서울시 조례에는 각 동별 주민의 0.5% 이상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민총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민들은 누구일까요? 서울시나 창원시는 각 읍면동별로 알아서 하게끔 했습니다. 임 회장은 서울 도봉구 창5동은 만 18세 이상으로, 방학2동은 만 13세 이상이라고 전했습니다. 자신이 속한 창원 성주동은 만18세 이상으로 정했다는군요.

주로 다루는 안건은 무엇일까요? 창원시는 조례에서 각 읍면동 행정사무에 대한 의견, 다음 연도 자치계획안 수립 등으로 정했습니다. 이미 총회를 하고 있는 서울에서는 더욱 구체적인데, 지난6월 총회 때 성동구 마장동과 용답동은 각각 족구장 설치와 초등학교 강당 건축을 주 안건으로 다뤘다는군요.

(본문 160~161)

 

제가 하나,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경남에서 도지사가 바뀌어도 사회혁신 사업은 계속 될까요? ‘사회혁신이라는 의제의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건데요. 이는 경상남도주민자치회가어렵게 뿌리를 내린 주민자치를 강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슨 사회혁신이냐?”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통합니다. 경남 당사자들보다, 사회혁신 전문가들 의견부터 들었습니다. 윤석인 희망제작소 이사의 답은 이렇습니다.

지구가 존속하는 한 사회 문제는 계속 될 거고 이를 해결할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려면 사회혁신이 계속 갈 수밖에 없다. 지금 지구는 가장 크게 기후변화와 전반적 양극화문제를 안고 있다. 게다가 일자리문제는 더해질 수밖에 없다. 고용 없는 성장이 전 지구사회 문제가 됐다. 사회와 환경, 경제를 세 축으로 하는 지속가능발전 개념(이 개념이 나오기 전에는 경제발전, 경제계획 측면이 중점이었다.)이 영속하듯 사회혁신도 계속 간다. 그래서 미국에는 최근 그린 뉴딜정책이 나왔다. 젊은 의원 한명이 쫙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다.”

(본문 210~211)

 

 

나는 왜 지방분권” “지방분권하는 걸까? 이 책 원고를 정리하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다른 기자들 잘 안 다루는 분야를 나 혼자 줄곧 다룬다는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일까? 남들처럼 대학진학 때‘in서울을 노렸지만 실패했던 데 따른 근원적 불만, 열등감의 발로일까?

둘 다 맞다 싶었습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생각하고 있고, 저 역시 열등감이 자존감을 앞서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기자생활 20년이 되던 2016년까지 지방문제를 특별히 다루진 않았습니다.

,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지방이 있으면 중앙이 있는 거지

능력 되는 놈 서울 가는 거지. 거기에 사람, , 권력 다 모이는 것 당연한 거고!”

그러려니 하고 살았습니다. 그 무렵 경남 땅에 홍준표가 나타났고, 안상수가 나타났습니다. 보수정당 대표를 지낸 막강한 인지도를 업고 홍준표는 2012년에 경남도지사가, 안상수는 2014년에 창원시장이 됐습니다. 아주 간단히!

(본문 260~261)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지난 5년간 천착해온 지방의 현실과 자치·분권 현장 추적기.

책을 쓰게 된 동기는 2016년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이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난 여기 경남에 하방(下放) 온거야!”

그는 틈만 나면 하방” “하방하는데, 그 말이 그렇게 싫었다. 중국 왕조 때 처음 나왔고, 문화대혁명 시기 때에 많이 쓰였던 이 말은 전형적인 중앙집권적 사고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걸 지방자치단체장이란 양반이 예사롭게 쓰다니, 한심하다 싶었다.

홍 지사의 망언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금 나라 안팎을 봐라. 천하대란의 시대 아니냐. 나라 안은 정치대란, 사회대란, 경제대란을 겪고 있다. 나라 밖을 보자. 북한은 핵 개발로 북핵대란을 일으킬 참이다. 중국과 미국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사드대란을 겪었다. 나라 안팎이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런데 무슨 지방분권, 지방자치냐?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맞서야 한다.”

그냥 한심하다고만 넘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해 지방분권 관점에서 본 홍준표 도정이라는 기획취재를 했고, 직접 지방분권운동에 가담하는 계기가 됐다.

책은 그 과정에서 저자가 보고 듣고 느낀 지방 소외와 그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치와 분권의 방향을 담았다.

 

 

 

 

주제어: 지방분권, 지방자치, 지방분권운동, 지방, 도시, 사회혁신, 사회적공동체

분류: 도시 사회학, 사회 정치, 사회문화,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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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9. 12. 26. 13:30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열린사회희망연대 20주년 기념 백서 <친일 친독재가 어깨 펴고 사는 나라>

 

 

제목 친일 친독재가 어깨 펴고 사는 나라

펴낸날 2019년 12월 23일
가격 25,000원
무선제본 | 432쪽 | 190*260mm

ISBN 979-11-86351-25-3 (0306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열린사회희망연대 20주년 기념 백서 편찬위원회

엮은이 김영만

 

 

 

 

책 소개

 

'친일 문제는
결코 과거사가 아니다'

 

친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며 역사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는 단 한 번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제대로
처단하고 치욕의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다.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가 강제로 해체된 통한의 역사 속에서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은 반공, 친미주의자로
둔갑하고, 친독재 세력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교육, 법조계 등 사회
전 부분에서 의기양양하고 기세등등하게 행세해 왔다.
바로 이들이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와 사회제도를 왜곡하면서 국가와 각종 사회조직을 운영하고 통치해온 결과,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수많은 모순과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과 후유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민중들이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고 있다.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친일 친독재 청산운동 기록이 창원의 지역사를 연구하는
분들과 관심 있는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열린사회희망연대 20년을 돌아보는 백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저자 소개

 

*지은이: 열린사회희망연대

1999년 마산(현 창원)에서 설립된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열린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참 세상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연대 활동을 목적으로 한다. 다음은 열린사회희망연대의 사업 내용.
1) 친일청산과 역사정의 실현 사업 2) 4.11민주항쟁과 김주열열사기념사업 3) 한반도 평화실현 사업 4) 기타 본회의 목적에 맞는 사업

 

*엮은이: 김영만

1980년대 초 마산 수출자유지역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상담·교육을 계기로 평생 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초대 회장을 비롯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경남본부, 열린사회희망연대,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친일청산 시민행동연대, 3·15 정신계승 시민단체 연대회의, 박근혜퇴진경남운동본부,적폐청산과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 창원시 민주주의전당 건립추진위 등이 그가 직접 창립하거나 대표자를 맡은 단체들이다.

다양한 단체 이름으로 표현되었지만 그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는 민주, 평화, 그리고 역사바로세우기다. 일흔넷의 나이에 백서편찬 위원장을 맡아 이 책을 엮은 것도 친일 친독재에 유린되어온 우리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차례

간사 | 열린사회희망연대 20년을 돌아보며
축사 | 뿌리 깊은 나무
화보 | 열린사회희망연대가 걸어온 길

 

제1부 친일 친독재 청산 20년,수없이 듣고 수없이 답한 11문 11답

 

 

제2부 독재자의 품속으로 가고파라 가고파, 이은상
1장 이은상 관련 성명서, 기자회견문, 논평
·이은상 기념관 건립 재고를 촉구하며
·시대의 곡학아세(曲學阿世), 이은상 기념사업을 반대한다
·3·15의거와 이은상은 공존할 수 없다
·마산시는 이은상 문학관 국고지원 신청을 즉각 취소하라
·이은상기념관 건립반대 24시간 1인 시위를 시작하며
·마산문학관 건립에 대한 희망연대의 입장
·이은상 논란에 대한 우리의 입장
·3·15정신과 노산문학관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

·마산시장 후보들의 마산문학관에 대한 견해에 분노한다
·3·15를 유린하는 은상이샘을 즉각 철거하라
·마산시의회와 정상철 의원은 마산시민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라 1
·마산시의회와 정상철 의원은 마산시민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라 2
·마산문학관에 전시해야 하는 이은상 관련 자료 1차 기증에 부쳐
·마산시의회 상임위의 마산문학관 명칭 통과를 환영하며
·제 46주년 3·15를 맞이하여, 3·15는 통곡한다. 은상이샘 철거하라
·‘은상이샘’ 그대로 두고, 민주성지 웬 말인가
·(사)3·15의거기념사업회 회장은 이은상 관련 망언을 즉각 철회하고 시민 앞에 사죄하라
·민주성지(民主聖地)마산이 될 것인가, 민주욕지(民主辱知)마산이 될 것인가
·3·15기념비 옆 은상이샘 철거운동 연대를 제안하며
·마산시의회는 이은상을 선택할 것인가, 3·15를 선택 할 것인가
·창원시의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재생이냐, 도시혼란이냐
·이은상은 마산의 자랑이 아니라 수치다. 마산역 광장 이은상 시비 즉각 철거하라
·이은상측은 지금이라도 시민과 국민 앞에 조건 없이 사죄하고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라
·한국철도공사는 허인수 마산역장을 해임하고 마산역 광장 이은상 시비를 즉각 철거하라
·가고파 문인들은 마산역 이은상 시비 철거에 앞장서라
·(사)3·15의거기념사업회는 이제라도 정정당당하게 노산 이은상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사)3·15의거기념사업회 변승기회장의 이은상 관련 발언 망언인가, 헛소문인가? 즉각 공개 해명하라
·한국철도공사 정창영 사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3·15의거 모독한 이은상시인 시비철거 문제에 철도공사는 적극 나서야 한다
·4·19혁명 53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이은상 시비를 철거하는 우리의 입장
·이은상 시조선집 출판기념회의 망언잔치를 규탄한다
·마산역 광장 이은상 시비 문제해결을 위한 공개제안
·마산역 광장 이은상 시비 문제해결을 위한 중재를 종결하며
·안상수 시장은 민주성지 창원의 3􀉾15정신을 훼손한 이은상 기념사업을 즉각 중단하라
·시민대동제를 주최하는 재경마산향인 호소문에 대한 우리의 입장
·시민대동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
·독재찬양 이은상, 일제찬양 김동진, 동상건립 계획을 즉각 취소하라
·친일, 친독재보다 더 심각한 안상수 시장의 발언을 규탄한다
·3·15기념비 가로막은 화단과 은상이샘을 당장 철거하고 이은상 가고파 거리 조성 즉각 중단하라
·창원시는 3·15의거 기념비 주변 소공원화 조성사업(안)을 즉각 폐기하고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사업계획을 수립하라
·은상이샘을 당장 철거하라
·안상수 시장은 은상이샘 철거 불가 방침을 철회하고 3·15의거 모독하는 은상이샘 당장 철거하라
·우리는 창원시에 은상이샘과 관련한 공개토론을 제안한다
·허위조작으로 밝혀진 ‘은상이샘’, 창원시는 사죄하고 철거하라
·허성무 시장의 이은상 관련 발언에 대한 우리의 입장
2장 ‘은상이샘’의 진위 논쟁 공개토론회 자료 및 마산문학관 명칭 확정
·은상이샘, 진짜인가 가짜인가?
·은상이샘 관련 토론회를 열면서
·주제발표 : 은새미는 있었고 은상이샘은 없었다
부록1. 이은상은 3·15, 4·11을 폄훼하고 마산시민을 모독했다
부록2. 이은상의 친독재 경력
부록3, 제111회 마산시의회 본회의회의록 제2호(‘마산문학관’ 운영조례안)

 


제3부 대국민 사기극‘선구자’ 조두남
1장 조두남 관련 성명서, 기자회견문, 논평
·조두남기념관 개관준비 중단 및 조두남선생 친일행적 진상조사를 촉구한다
·조두남기념관 개관을 강행하는 마산시와 마산시의회를 규탄한다
·조두남기념관 개관을 강행하려는 마산시와 마산시의회를 규탄을 지지한다
·조두남기념관 반대와 연행자 석방을 요구한다·조두남기념관 개관 사태 성명서
·조두남기념관 개관을 강행한 마산시와 시의회를 규탄한다
·황철곤 마산시장이 검찰에 낸 탄원서
·마산시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황철곤 시장은 시민들의 정당한 정보공개 요청에 즉각 응하라
·조두남기념관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
·조두남기념관 사건을 바라보며
·조두남기념관 사태 관련 구속자를 석방하라
·마산 조두남기념관 개관 관련 입장 및 구속자 석방 촉구 성명서
·조두남기념관 사태와 관련된 구속자를 석방해야 한다
·조두남기념관 반대, 연행자의 즉시 석방을 요구한다
·시민위원회 결정을 수용하며
·이은상, 조두남기념관 명칭 폐기와 변경을 환영하며
·황철곤 마산시장의 담화문에 대해
·마산시장에게 다시 한번 당부한다
·마산시의회의 ‘조두남기념관 설치 및 운영조례’ 개정안 부결에 대해
·‘조두남기념관 설치 및 운영조례’ 개정안을 부결시키고 친일, 친독재를 옹호하는 마산시의회를 규탄한다
·친일잔재 청산 없는 '마산음악관' 개관을 강력히 반대한다
·친일파 조두남 수록 교재 즉각 수거하고 폐기하라!
·조두남기념관 관련 유족이 마산시에 제출한 건의서에 대한 논평
·창원시는 마산음악관의 선구자 관련 설치물과 조두남 형상을 즉각 철거하라
·창원시의 조두남, 선구자 기념물 철거 및 마산음악관 운영에 관한 우리의 입장

 

2장 조두남기념관 관련 공동조사 및 마산음악관 명칭 확정
·조두남기념관 관련 공동조사단 중간보고
·조두남기념관 관련 공동조사단(친일의혹) 최종결과 보고서
·별첨 자료
·‘시민위원회 보도자료’ 발표문 전문


부록1. 표절 악보 (님과 함께)
부록2. 거짓으로 밝혀진 조두남과 윤해영의 상봉 장면
부록3. 조두남기념관 개관사태로 인한 경찰의 공소사실

 

 

 

제4부 친일이 죄가 되지 않는‘이원수 문학관'

1장 이원수 관련 성명서, 기자회견문, 논평
·친일작가 이원수 기념사업에 시민 혈세를 지원하는 창원시장은 각성하라
·박완수 시장은 친일작가 이원수 기념사업지원을 즉각 중단하라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 입장에 대한 반박
·창원시는 친일작가 이원수 기념사업에 시민의 혈세지원을 즉각 중단하라
·친일부역자 혈세지원, 여론수렴이 웬 말이냐
·박완수 시장님! 이런 정신으로 독도를 지킬 수 있나요
·이원수 기념사업을 찬성하는 경남아동문학가협회의 입장을 듣고
·아동문학가 이원수의 딸 이정옥씨의 사죄 발언에 대해
·창원시는 이원수 기념사업 지원을 전면 중단하고 시의회는 친일인사 지원 금지 조례를 제정하라
·창원시는 친일작가 이원수 문학탐방로 계획을 즉각 취소하라
2장 이원수의 친일 작품들
·보리밭에서-젊은 농부의 노래
·낙하산-방공비행대회에서(落下傘-防空飛行大會에서)
·농촌아동과 아동문화-승전(戰􄭟) 신춘(新春)에 농촌(農村)의 벗에게 부치는 편지
·지원병(志願兵)을 보내며
·고도(古都)감회- 부여신궁어조영(扶餘神宮御造營) 봉사작업에 다녀와서

 

 

제5부 ‘수’의 비적은 흉악범인가, 독립군인가? 유치환은 누구를 꾸짖었나
1장 유치환 관련 성명서, 기자회견문, 논평
·통영 중앙 우체국을 청마 우체국으로 개명하는 것을 반대한다
·청마 유치환 법정 공방 - 통영 문예단체􀉾유족 기자회견에 대해
·유치환 친일의혹 진상규명 공동조사단을 구성하자
·항일독립선열들을 기리고 천일청산을 위한 3보1배를 시작하며
·고유문 | 3보1배 마산 행사를 마치면서
·3보1배 통영행사를 시작하며
·진의장 통영시장님께, ‘청마유치환 친일진상규명 토론회’ 개최를 공개 요청하며
·문화관광부 장관은 민원 공문서 분실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즉각적인 후속조치를
·친일작가 유치환의 기념사업을 즉각 철회하라
·학생의 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촉구하는 유치환 기념사업 중단
·친일문인 유치환 기념사업에 시민혈세 지원을 즉각 중지하라

 

2장 유치환의 친일 작품들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
·수(首)
·북두성(北斗星)

 

 

 

제6부 박정희, 장지연, 남인수, 반야월 그리고 친일기념사업
1장 친일기념사업 관련 성명서, 기자회견문, 논평
·박정희를 찬양하는 기념관 건립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친일 문제는 결코 과거사가 아니다
·마산시의회의 ‘대마도의 날’ 조례 제정에 대한 우리의 입장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발표를 환영하며
·대한민국은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일 수 없다. 친일인사들의 각종 기념사업을 즉각 중단, 폐지하라
·우리는 더 이상 장지연을 독립운동가로 대접할 수 없다
·경상남도는 장지연묘소 문화재 지정을 즉각 철회하라
·장지연 등의 서훈 취소 결정에 대한 우리의 입장
·‘남인수가요제’ 명칭 즉각 폐지하라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사 명단발표를 환영한다
·경상남도 관광 진흥 마스트플랜의 명인선정은 문화관광자원이 아니라 도민갈등 자원이다
·박완수 시장은 친일음악가 반야월을 기념하는‘노래비 공원조성사업’을 즉각 철회하라

 

2장 친일청산 관련 자료
·친일청산 시민행동연대 준비위원회 단체목적 및 계획
·경남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친일인사들의 각종 기념사업 현황

 

발문
백서 발간 뒷이야기

 

 

 

 

 

 

 

 

 

 

책 속으로

 

생계형 친일이라는 단어가 좀 생경스럽게 들리는 말이기는 하지만 가족들의 생계 때문이든 자신의 목숨 때문이든 감히
일제에 저항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조선 백성들을 그 누구도 친일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경남에서 기념관이나 기념행사로 말썽이 된 사람 중 이은상(마산)은 친독재로 따로 논하기로 하고, 아동문학가 이원수(창원), 문학평론가 조연현(함안), 작곡가 조두남(마산), 박시춘(밀양), 가수 남인수(진주), 반야월(마산), 극작가 유치진(통영), 시인 유치환(통영, 거제), 화가 김은호(진주), 언론인 장지연(마산) 등이다. 그들은 모두 문화예술 활동으로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대동아성전 등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락전쟁을 미화하고 찬양하며 조선의 청년들을 일제의 총알받이 지원병으로 나설 것을 독려하고 선동함으로써 일제에 협력한 자들이다.
(제1부 | 친일 친독재 청산 20년, 수없이 듣고 수없이 답한 11문 11답中 51쪽)

 

 

 

우리가 처음 노산문학관을 반대할 때 이은상은 친일혐의와 독재부역 사실이 있다고 했다. 혐의는 혐의인 채로 아직 해소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동안의 논쟁과정에서 결코 친일의혹만을 집중 거론한 바 없다. 왜냐하면 이은상의 친독재 행적과 315모독 관련자료와 증거들만으로 노산문학관은 이미 불가한 일인데 구태여 친일의혹까지 들먹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은상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라는 이유는 문학관 명칭을 바꾸는데 어떤 명분도 변수도 될 수 없다. 이런 주장은 마치 변이 묻은 오른손은 등 뒤로 감추고 오줌 묻은 왼손만 펴 보이며 내 손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고 큰소리치는 꼴이다. 우리는 일부 문인들이 이런 식으로 이은상 논란의 핵심을 왜곡하고 오도하는 재주에 놀라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2| 독재자의 품속으로 가고파라 가고파, 이은상 123)

 

 

지난 94, 우리는 마산 YMCA 아침논단에서 허성무 시장이 시정목표를 중심으로 강연하는 도중 이은상에 대한 발언 내용을 언론보도를 통해 듣고 아연실색을 했다.전후 맥락으로 보아 이은상에 대해 반대만 하는 사람들 때문에 창원시가 소중한 이은상을 잃어버렸다고 발언한 것 같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허성무 시장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아마 허 시장의 이런 오해는 잊을만 하면 되풀이되는 이은상 기념사업 반대 여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은상기념사업이 번번이 반대에 부딪혀 저지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오히려 매번 묵살당한 것은 반대측의 목소리다. 이은상 기념사업은 창원시(마산시)와 이은상을 추앙하는 문인들(이하 이추문)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늘 소리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2| 독재자의 품속으로 가고파라 가고파, 이은상 191)

 

 

지난 94, 우리는 마산 YMCA 아침논단에서 허성무 시장이 시정목표를 중심으로 강연하는 도중 이은상에 대한 발언 내용을 언론보도를 통해 듣고 아연실색을 했다.전후 맥락으로 보아 이은상에 대해 반대만 하는 사람들 때문에 창원시가 소중한 이은상을 잃어버렸다고 발언한 것 같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허성무 시장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아마 허 시장의 이런 오해는 잊을만 하면 되풀이되는 이은상 기념사업 반대 여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은상기념사업이 번번이 반대에 부딪혀 저지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오히려 매번 묵살당한 것은 반대측의 목소리다. 이은상 기념사업은 창원시(마산시)와 이은상을 추앙하는 문인들(이하 이추문)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늘 소리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2| 독재자의 품속으로 가고파라 가고파, 이은상 191)

 

 

마산시는 조두남 선생의 친일의혹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가칭) 조두남 친일의혹 조사특별위원회를 즉시 구성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특위의 구성은 조사의 공정성 논란을 막기 위해 마산시 담당공무원, 조두남 선생의 유족 또는 제자, 시민단체 관계자, 근현대사 전공 연구원들로 구성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마산시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기념관 공사가 이미 완공 되었다는 이유로 기념관 개관을 밀어붙인다면 전 국민의 비난과 마산시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산시의 기념사업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덧붙이자면, 현재 조두남기념관이 건립된 장소 인근에 마산 315의거의 희생자 김주열 시신 인양 지점이 있다. 그동안 본 단체에서 조두남기념관과 인접한 거리를 김주열거리로 제정해 줄 것을 2년 연속 건의한 바 있으나 마산시와 시의회로부터 간단하게 묵살 당해 왔다.

(3| 대국민 사기극 선구자조두남 256)

 

 

시민위원회는 이번 조사과정에서 아무리 위대한 음악이나 문학이라 하더라도 역사의 망각이나 침묵을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의 진실 앞에서는 오히려 겸허하게 머리 숙이는 자세야말로 우리에게 사랑과 감동을 주는 음악과 문학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 점에서 조두남과 노산의 절대가치에만 매달리는 차원을 넘어 두 사람 예술의 보편적 가치가 시민 모두의 공유 자산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야만 시민의 사랑 속에 조두남과 노산의 업적이 용해되어 큰 자리를 차지하는 역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조두남과 노산의 예술적 절대가치만 고집하고, 시민 사랑이 따라오라고 외친다면 지난날 얼룩졌던 역사의 기록들이 두 사람의 음악성과 문학성까지 훼손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음을 밝히는 바이다.

(3| 대국민 사기극 선구자조두남 316)

 

 

일제에 항거한 수많은 순국선열은 오직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하나뿐인 목숨마저 바쳐가며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혹은 거칠고 낯선 외국 땅에서 혹독한 일제의 총칼에 쓰러져 갔다.

우리 민족은 불과 반세기 전에 36년 동안이나 일제에 강점당한 치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해방 또한 우리 손으로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세계를 향해 당당한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수많은 항일애국지사의 흘린 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다 우리나라는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아니, 민족반역자들이 존경받고 기념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상한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5| ‘의 비적은 흉악범인가, 독립군인가? 유치환은 누구를 꾸짖었나 371)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열린사회희망연대는 경남에서 가장 치열하게, 거의 독보적으로 친일 친독재 청산운동을 해온 시민단체다. 독재권력에 아부하여 문화권력을 누려온 이은상의 이름을 팔아 이은상기념관을 시민의 세금으로 건립하려던 일부 기득권 문인단체의 시도를 막아냈고, 친일행적이 뚜렷한 조두남의 이름을 건 조두남음악관도 무산시켰다.

이외에도 이원수, 유치환, 장지연, 남인수 등 친일인사들의 기념사업을 저지하거나 중단시키기 위해 지난 20년간 가장 앞장서 싸워왔다.

하지만 토착왜구 기회주의 세력은 호시탐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 친일 친독재 세력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 이에 그동안 시민사회가 왜, 어떻게 친일 친독재 청산운동을 해왔는지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고자 지난 20년에 걸친 역사투쟁을 책으로 엮었다.

경남 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금도 진행 중인 친일 친독재 청산운동에도 열린사회희망연대의 이 기록이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추천의 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여기저기에서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 지역에서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친일·친독재 작가들의 기념관, 기념행사가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힙니다.

친일은 그때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하는 상황논리와 인격은 아주 훌륭했다는 어른들의 증언으로 어린 학생들의 역사관과 가치관에 혼란을 심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린사회희망연대 백서 발간은 매우 시급한 사업이 된 것입니다.

임경란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대표

 

친일과 친독재 뿌리는 기회주의에 있습니다.

힘을 가진 자, 권력이 있는 곳에 빌붙는 기회주의자들에게서 친일과 친독재를 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적폐 청산, 검찰 개혁, 사법 개혁이란, 바로 힘과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자들과의 싸움입니다.

백남해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주제어: 열린사회희망연대; 친일; 친독재; 한국사; 친일파; 친독재

분류: 국내도서>역사와문화>한국사>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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