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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주지' + 3

Date : 2023. 12. 15. 16:39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한글세대를 위한 함안 금라전신록 산책

 

 

제목 한글세대를 위한 함안 금라전신록 산책

펴낸날 2023127

가격 16,000

반양장본 | 168152*225mm

ISBN 979-11-86351-63-5(0390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책 소개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금라전신록

 

금라전신록은 함안이라는 지역을 바탕 삼아 만든 저작물이다. 지역을 중심에 놓은 문집은 조선시대는 물론 고려시대까지 통틀어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흘러가고 지역이 메말라가는 지금의 현실에서 이 책이 지니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금라전신록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행적과 시문은 함안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아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행적들이 적지 않다.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도 풍성하다.

지금 관점으로도 여전히 필요하고 뜻깊은 부분을 먼저 추렸다. 재해석이 가능하거나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만하거나 재미있게 읽힐 거리도 챙겼다.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하고 새롭게 의미를 더하면서 설명과 해설을 입히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1999~2023년 경남도민일보 기자

 

저서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비매품)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

<가야로 가야지-쉽고 재미있는 가야 역사>

 

 

목차

 

머리말_이 좋은 고전을 기억 너머로 보내지 않기 위하여

 

1장 인물

1. 어변갑의 뛰어난 글재주

2. 글솜씨는 뛰어났지만 불행했던 조욱

3. 단종을 위하여 숨어 살았던 조려

4. 조려의 후손은 벼슬을 하지 않았을까?

5. 그러면 고려 충신의 후손은 어떻게 했을까?

6. 2대에 걸친 사랑 이야기

7. 옛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8. 용퇴가 왜 중요할까

9. 선물 받은 귀한 은어를 먹지 않은 이유는

10. 죽을 때 웃을 수 있다면

11. 유머 뒤에 우뚝했던 기개

12. 소년급제는 위험하다

13. 서울 조정에서 사투리를 썼다

14. 소귀에 경 읽기를 한 까닭은

15. 착한 사람은 자기보다 어려도 공경했다

 

2장 느낌과 생각

1. 비둘기 시

2. 달팽이 시

3. 낙방의 씁쓸함

4. 아들의 출세가 기쁜 까닭

5. 늙음을 노래함

6. 자식을 잃은 슬픔

7. 난리통에 고향 생각

8. 가야의 후예라는 뚜렷한 인식

9. 황은이 맞는 걸까?

10. 까마귀가 어리석나 사람이 어리석나

11. 언제나 좋은 물 이야기

 

3장 풍속

1. 천둥번개는 하늘의 경고였다

2. 옛날 결혼과 요즘 결혼은 무엇이 다를까

3. 지금과 달리 흔했던 처가살이

4. 부모님 봉양을 위해 외직을 한다

5. 친인척이 오자 벼슬 자리를 바꾸었다

6. 부모가 죽으면 벼슬을 그만두었다

7. 부자간의 벼슬 바꿔치기

8. 이 정도는 아파야 벼슬을 그만두지

9. 부모 초상에는 몰골이 수척해야 했다

10. 그때도 극심했던 서울 중심주의

11. 배척되지 않는 불교, 까닭은?

 

4장 금라전신록

1. 금라전신록이란 무엇일까?

2. 금라전신록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3. 금라전신록을 왜 편찬했을까?

4. 금라전신록인쇄는 언제 되었을까?

5. 금라전신록에서 금라는 무엇일까?

6. 금라전신록을 편찬한 조임도는

7. 자료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8. 역적 김안로의 글을 전부 실은 까닭은

9. 묘갈명·묘비명·묘지·신도비명 등은 요즘으로 치면 무엇일까?

 

부록 : 금라전신록·하권 목차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바람이 세 차례 거세게 몰아치니 고기가 갑옷으로 변하는데 둘씩 짝을 지으려면 원래 실력이 어금버금해야 하지만그대 이름만 용문 위에 올라도 그만이지.”

이 시는금라전신록집현전 직제학 어변갑 행장에 들어 있다. ‘세 차례 몰아치는 바람은 세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과거 시험 절차를 비유한다. 다음에 나오는 고기()가 갑옷()으로 변한다()’는 한자로 쓰면 바로 어변갑(魚變甲)이 되고, 아래로 이어지는 내용은 바로 그 어변갑이 2등과 큰 격차를 보이며 1등 장원을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의 용문(龍門)은 과거 합격을 뜻한다. (본문 16)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렵고, 죽은 뒤의 세상을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렵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떨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다. 그래서 이렇게 죽음을 앞두고서도 의연했던 옛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성혼(1535~1598)이 친구 조감을 위해 쓴 앞의 묘갈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되새길 만한 내용이다.

죽고 사는 즈음에도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인품이 높고 삶을 대하는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힘쓰고 원한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다.”

(본문 50)

 

동생 집의 불쌍한 비둘기

암컷은 새끼를 사랑하고 수컷은 암컷을 사랑하여

구구하는 것이 주인의 사랑에 보답하는 듯하구나

하루아침에 잇달아 고양이 입에 들어갔네

새장을 소홀히 했으니 누구의 잘못인가

고양이를 탓하겠나 비둘기를 탓하겠나

단속 제대로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지.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동물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둥지를 만들어주고 애지중지 기르던 비둘기가 고양이 먹이가 된 후 느꼈던 안타까움이 잘 드러난 시다.

어변갑이 쓴 이 시에서 구구 하는 것이 주인의 사랑에 보답하는 듯하구나라는 대목을 보면 비둘기를 기르면서 누리는 즐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금은 집에서 기르는 일이 드문 비둘기가 반려동물이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본문 66~67)

 

 

본문에 나오는 는 성혼(1535~1598)이라는 인물이다. 조감의 장인 백인걸을 스승으로 모시고 같은 집에서 다섯 살 많은 조감과 동문수학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적은 글이다.

성혼은 조정견의 아들 조감과 백인걸의 딸이 어떻게 해서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졌는지를 전해주고 있는데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딸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 아버지가 훌륭해서 며느리로 삼았다니 요즘 20~30대가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성혼의 아들과 조감의 딸이 맺어진 사연은 더더욱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성별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양쪽 아버지의 결정만으로 결혼이 성사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데에는 시대 상황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결혼의 주체가 당사자 개인이 아니라 가문이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남자와 여자 개인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게 당연한 세상으로 바뀌었다.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는 결혼이 갖는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본문 104~105)

 

 

옛날에는 부모 초상이 나면 술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삼년 동안 죽만 먹는 것이 기본이었다. 전복죽이나 잣죽 같은 영양이 풍부한 것 말고 쌀을 갈아서 만든 묽은 죽이었다. 몰골이 많이 수척해져야 초상을 제대로 치렀다는 인정을 받았고 본인 역시 도리를 다하려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과 마지막 떠나는 길에 예의를 다하고자 하는 심정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효도인지는 의문이다.

스승 장현광(1554~1637)이 제자 조임도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되새겨볼 만하다. 그는 1622년 어머니 상중이던 조임도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자네의 상례가 중도를 넘어 견디기 힘들다고 들었네. 효성을 다하는 도리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몸을 잘 보존하는 한편으로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선조를 추모하는 일을 길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네.”(본문 124~125)

 

 

함안에는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이라는 책이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시대인 1639년에 함안의 선비 조임도가 갖가지 자료를 모아 묶어낸 책이다. 책의 성격과 내용은 제목 금라전신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먼저 금라는 함안을 가리키는 옛날 별명이다.세종실록 지리지(1452)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그리고고려사(1454)에 이르기까지 아시량(阿尸良아나가야(阿那伽倻함주(咸州사라(沙羅)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별호이다.

전신록에서 은 전해 온다는 것이고 은 믿음직하다는 뜻이며 은 기록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믿음직하게 전해져 오는 기록이 전신록이다. 금라까지 합하면 함안에 전해오는 믿을 만한 기록을 담은 책이금라전신록이다. (본문 136)

 

 

금라전신록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역을 중심에 놓고 여러 인물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주관에 휘둘리거나 감정에 치우쳐 아무 이유 없이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지역사회로부터 곧바로 지적과 외면을 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조임도는 원칙을 정하고 엄격하게 적용해 취사선택을 했다. 서문에 나와 있는데 인물과 문장이 모두 귀중하면 당연히 싣고 인물은 훌륭하지 않아도 문장이 사랑스럽거나 문장은 뛰어나지 않으나 인물이 아까우면 채택했으며 또 인물을 버릴 수 없는 경우는 문장이 전해지지 않아도 그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당성, 어느 누구로부터도 틀렸다는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객관성, 과거와 당대의 훌륭한 인물과 문장을 남김없이 후세로 전달하는 효용성 셋을 두루 아울러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본문 139)

 

 

지역의 수령이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함안의 훌륭한 군수였고함주지의 편찬을 주도한 한강 정구를 보기로 들 수 있다. 그는 1586년 부임하자마자 사람을 시켜서 함안에 있는 훌륭한 인물들의 무덤을 찾아가 다듬도록 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제사까지 올렸다.

박한주는 연산군의 폭정에 충언을 아끼지 않다가 미움을 산 끝에 유배길에 올랐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자신보다 앞서 창녕군수를 지낸 선배인데다가 그 행적과 인품을 존경해서 그 무덤을 찾았다. 이밖에 이교·이원성·다물의 무덤도 찾아가 돌보고 다듬게 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모두 효성이 지극한 효자들이었다.

정구의 이런 행보는 당연히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면서 새로 온 군수는 충성과 효도를 다른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소문도 나게 되고 새로 부임한 고을에서 깍듯하게 예우를 갖추는 예의 바른 인물이라는 평판도 얻을 수 있었다. 정구 군수에게 무덤 참배는 고을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본문 162)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이 좋은 고전을 기억 너머로

보내지 않기 위하여

 

함안이 기록의 고장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함주지·함안총쇄록과 더불어 손꼽히는 것이금라전신록이다.함주지는 수령과 지역 유지들이 함께 편찬한 읍지이고 함안총쇄록은 수령 개인이 기록한 일기이며금라전신록은 함안 출신 인물들의 훌륭한 행적과 뛰어난 시문을 한데 모은 책이다.

 

금라전신록에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아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행적들이 적지 않다.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도 풍성하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금라전신록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과금라전신록에 전해지는 여러 좋은 내용을 함께 알리는 것도 뜻깊은 일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문을 곧이곧대로 옮기기보다는 앞뒤 맥락을 감안하여 좀 더 알기 쉽도록 적절하게 가감첨삭했다. 한문체 특유의 산만하거나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생략한 대목도 적지 않다. 한자는 최대한 적게 쓰려고 했으며 특히 인명은 이나 선생으로 대신 부르는 것을 없애고 모두 이름 석 자로만 표기해 가독성을 높였다.

 

텔레비전 같은 대중 매체 덕분에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대중화되고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에 초점을 맞춘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금라전신록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행적과 시문은 함안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서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주제어: 함안, 역사, 풍속, 금라전신록, 함주지, 함안총쇄록

분류: 함안, 역사, 문화, 지역,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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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6. 14:48 Category : 카테고리 없음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2930

가격 : 15,000

반양장본 | 140| 146*210mm

ISBN 979-11-86351-49-9 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김훤주

pole@idomin.com 010-2926-3543

 

 

 

책 소개

 

잠들어 있는 옛 읍지에

새 삶의 숨결을 불어넣는 책

 

<칠원읍지>는 지금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포함되어 있는 칠원읍과 칠서면·칠북면 등 삼칠 지역을 다룬 책입니다. ‘칠원과 함안은 지금 하나의 군인데 책을 왜 나누어서 썼을까요?’ 1900년대까지만 해도 삼칠 지역은 별도로 독립된 칠원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칠원읍지라는 책이 생겨날 수 있었습니다. 칠원과 함안이 하나로 통합이 된 것은 1908년입니다.

<칠원읍지>는 인물과 역사, 건물과 유적은 물론이고 자연환경과 특산물까지 그야말로 온갖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만물상회 같은 책입니다. 그 때에 비해 세상이 너무 달라져서 지금 사람들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내용들도 많습니다.

<칠원읍지>는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들여다보고 싶어도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안군에서 1997<함안군지>를 펴낼 때 제2권으로 <국역 칠원읍지>를 출간했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너무 먼 이야기였습니다. 옛날 말투가 많은 데다 빠뜨리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를 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물론 <칠원읍지>에 담긴 내용을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고요. <칠원읍지>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칠원읍지>에 이런저런 내용이 담겨 있구나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청소년용으로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를 만들면서 되도록 욕심을 줄였습니다. 내용을 그대로 정확하게 옮겨야 한다는 생각 대신에 <칠원읍지> 가운데 재미있는 사실과 이야기를 골라 담았습니다.

간략해서 아쉽다 싶은 대목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옛 서적의 내용을 조금 보탰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옛날과 지금의 모습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들어가면서중에서

 

저자 소개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출판국장과 환경전문기자로 일하며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펴낸 책으로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이 있다.

 

차례

 

들어가면서 ·········· 8

 

1부 우리는 어떻게 옛날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을까요?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과거를 알 수 있을까요? ·········· 14

조개무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 16

고인돌이 무덤이라는 것을 언제 알게 됐을까요? ·········· 17

귀한 유물이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 18

글로 남겨진 기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 19

가장 오랜 기록이 전하는 칠원과 함안 ·········· 21

물건이나 글을 통해 모든 역사를 다 알 수 있을까요? ·········· 22

기록과 유물 중 어느 쪽이 역사를 이해하기 좋을까요? ·········· 23

우리나라의 기록유산은 얼마나 될까요? ·········· 24

함안은 기록유산의 보물창고 ·········· 25

<함안총쇄록><금라전신록>까지 ·········· 26

옛날과 오늘날의 기록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28

옛날과 오늘날 기록물 내용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 29

 

2<칠원읍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1. <칠원읍지>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 34

2. <칠원읍지>에 담긴 칠원의 옛 이름 ·········· 36

3. <칠원읍지>에 담긴 자연 ·········· 38

경양대 ·········· 38

우질포 ·········· 40

멸포 ·········· 41

서천 ·········· 42

4. <칠원읍지>에 담긴 건축물 ·········· 45

무기연당 ·········· 45

칠원향교 ·········· 50

덕연서원 ·········· 55

향현사 ·········· 56

무산사 ·········· 57

홍포사 ·········· 59

태양서원·청계서원과 충효사 ·········· 61

장춘사 ·········· 62

광심정 ·········· 65

상봉정과 합강정 ·········· 67

5. <칠원읍지>에 담긴 역사유적 ·········· 69

칠원읍성 ·········· 69

선정비 ·········· 71

선정비를 세워준 이유는 ·········· 73

낙동강 뱃놀이 ·········· 74

지금은 사라진 남정자 ·········· 80

 

6. <칠원읍지>에 담긴 색다른 이야기들 ·········· 82

칠원에서 민란이? ·········· 82

막강했던 고을 원님의 권한 ·········· 84

그러면서도 파리목숨이었던 원님 ·········· 85

조선에 이미 근무 평가가 있었다고? ·········· 86

수령의 봉급은 얼마였을까? ·········· 88

조세 싣고 서울 가는 머나먼 뱃길 ·········· 90

칠원에 화전민이 있었다? ·········· 91

나이로 벼슬을 했다 ·········· 92

 

7. <칠원읍지>에 담긴 옛사람들의 효도와 절개 ·········· 96

귀한 음식을 부모님께 올리고 ·········· 97

효자보다 더했던 효부의 효성 ·········· 98

똥 맛보기와 손가락 자르기 ·········· 99

이젠 다리살도 베어내고 ·········· 101

하늘의 도움으로 신인이 나타나니 ·········· 101

호랑이 나타나고 샘물도 솟고 ·········· 102

목숨을 바쳐야 사는 여자들 ·········· 103

왜적에게 도륙당한 형제 부부 ·········· 109

 

8. <칠원읍지>에 담긴 함안의 인물들 ·········· 113

고려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윤환 ·········· 113

서원을 최초로 세운 주세붕 ·········· 115

맑고 욕심 없었던 배세적 ·········· 119

충성 보상을 못 받아도 태연했던 주재성 ·········· 121

자신의 공적을 감춘 의병장 조방 ·········· 123

독립운동자금을 내놓은 주시성 ·········· 125

역전의 용장 제말 장군 ·········· 127

제말 장군의 무덤을 찾아준 어사적 현감 ·········· 131

사랑의 화신 산돌 손양원 ·········· 133

 

마치면서 ·········· 138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흥미롭게도 칠원과 함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에 나란히 등장합니다. 포상팔국 전쟁이 그것입니다. 칠포·골포·고사포(고자국보라국·사물국 등 바닷가의 여덟 나라가 포상팔국인데 그 군사들이 209년 또는 212년에 아라또는 가라를 공격했다는 기사가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나옵니다.

(21. 가장 오랜 기록이 전하는 칠원과 함안)

 

경양대는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칠서취수장 자리의 강가 벼랑에 있습니다. 맞은편에서 보면 깎아지른 모습이 웅장합니다. 옛날에는 낙동강에서 첫손 꼽히는 명승이었는데 경은 멋진 경치를 뜻하고 은 좋은 술을 가리킵니다. 옛날 어른들이 여기 모여 자연을 즐기며 술을 마시곤 했던 모양입니다. <칠원읍지>에는 이곳에서 노닐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43. <칠원읍지>에 담긴 자연)

 

사람들은 이런 무기연당을 두고 전남 담양군의 소쇄원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조선 시대 정원이라고 얘기합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답답하지 않고, 고요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아름다운 전통 정원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50. <칠원읍지>에 담긴 건축물)

 

선정비가 칠원읍 용산리 서남210에 제법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23기입니다. <칠원읍지>에서 선정비가 세워졌다고 적힌 인물을 꼽았더니 모두 22명이었습니다.

선정비 중 글자가 보이지 않는 것은 빼고 <칠원읍지>에서 선정비를 세워준 사람을 찾아봤더니 4명이었습니다. 1659~1661년 현감을 지낸 이시배는 기록은 없지만 선정비는 있어서 이채롭습니다. 선정비가 칠원 만큼 많이 남은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71~72. <칠원읍지>에 담긴 역사유적)

 

임진왜란이 막 끝난 1607127~28일에 있었던 낙동강 뱃놀이는 참여한 인원만도 35명이었으니 당시로서는 대단한 규모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유흥을 즐기는 자리가 아니라 민족 최대의 시련이었던 임진왜란을 이겨낸 위로와 자축의 모임이었습니다.

(77. <칠원읍지>에 담긴 역사유적)

 

칠원현감과 함안군수의 봉급이 같았을까요? 아록위는 함안이 40결로 칠원보다 곱절이 많습니다. 반면 공수위는 함안과 칠원이 모두 15결로 똑같습니다. 땅과 인구가 함안이 넓고 많기 때문에 아록위는 차이가 나고, 수리할 건물과 대접할 관리의 숫자는 비슷해서 공수위가 같았는지, 그 기준을 어떻게 정했는지도 흥미롭습니다.

(88~89. <칠원읍지>에 담긴 색다른 이야기들)

 

열녀의 길은 효자보다 한층 더 급수가 높습니다. 손가락 자르기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아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남편을 위해 아내가 손가락을 잘랐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위해 손가락을 자른 남편 이야기는 <칠원읍지>에 나오지 않아요. 그런 사례가 없었던 걸까요? 있었는데도 적지 않았을까요?

(103~104. <칠원읍지>에 담긴 옛사람들의 효도와 절개)

 

이부익사는 두 부인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뜻입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편 주익창과 주필창은 뒤에 나오는 주세붕 선생의 셋째, 넷째 손자인데 이들 또한 왜적의 창칼에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한 집안에서 네 목숨이 도륙당했습니다. 그나마 이름이 있어 이렇게 기록으로 남았지만 왜적의 창칼에 무참히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112. <칠원읍지>에 담긴 옛사람들의 효도와 절개)

 

주세붕은 생전에 의복이 가난한 선비와 같았고 고기도 좋은 고기는 먹지 않았으며 앉을 때는 털 방석에 앉지 않았고 마구간에는 좋은 말이 없었으며 집도 빌려서 살았다. 봉급이 풍족했지만 입고 먹는 것 이외에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19. <칠원읍지>에 담긴 함안의 인물들)

 

저놈에게 당장 곤장을 쳐라며 다짜고짜 윽박지르는 조선시대 원님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 우리는 그게 조금 장난스럽다 여기면서도 실제 모습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알고 보니 원님의 업무와 책임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139. 마치면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지역의 역사를 찾아주는 보람

 

<칠원읍지>가 건네는 교훈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첫째 기록의 중요함을 일깨워 줍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있었던 일이 없어지지만 기록으로 남기면 역사가 되지요.

또 하나는 옛날 사람들의 삶과 사연이 텔레비전 드라마나 이야기책에는 제멋대로이고 엉망인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았고 가로세로로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가 지금 이만큼 잘 사는 게 어느 순간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린 덕분에 지금 이렇게 가지와 잎이 무성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지금 보고 듣고 겪는 사소한 이야기들도 얼마든지 훌륭한 역사의 기록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는 초··고 학생들을 위한 지역 역사·문화 안내서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자라나는 어린 친구들이 경상남도 함안군 한켠에 자리 잡은 고장 칠원을 이해하고 관심을 갖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주제어: 지역, 자연, 문화, 예술, 건축, 인물, 사회, 주세붕, 윤환, 주재성, 무기연당, 용화산하동범록, 칠원읍지, 함안, 함주지, 손양원, 제말, 경양대, 반구정, 칠원읍성, 홍포사, 칠원민란

 

분류: 역사, 지역,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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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0. 12. 18. 11:44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제목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펴낸날 2020 11월 30

가격 12,000

무선제본 | 144쪽 | 148*210mm

ISBN 979-11-86351-32-1 (0380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책 소개

 

<함주지>를 통해 알아보는 함안의 역사와 옛날 사람들의 삶

 

함주지는 우리 함안의 옛 모습을 담은 조선시대 책이랍니다.

인물과 역사, 건물과 유적, 시문과 설화에서부터 자연환경과특산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함주지라는 이름은 들어서 알고있지만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잘 모르는 학생들을 위한 안내서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함주지내용 가운데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 중심으로 골라 옮겼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함주지에 대해 관심이 생긴 친구들은 좀 더 단계를 높여 접근을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가 함안에 사는 친구들이 함안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면 책을 엮은 보람이라 여기겠습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환경전문기자로 일하며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펴낸 책으로는 따지고 뒤집기의 즐거움과 고달픔〉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경남의 숨은 매력<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가 있습니다.

 

 

 

 

목차

들어가면서

 

1. 우리는 어떻게 옛날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을까요?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과거를 알 수 있을까요?

조개무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고인돌이 무덤이라는 것을 언제 알게 됐을까요?

귀한 유물이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글로 남겨진 기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물건이나 글을 통해 모든 역사를 다 알 수 있을까요?

기록과 유물 중 어느 쪽이 역사를 이해하기 좋을까요?

기록이나 유물을 통해 배우는 역사는 어떤 한계가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기록유산은 얼마나 될까요?

옛날과 오늘날의 기록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옛날에는 어떻게 역사기록을 보관했을까요?

옛날과 오늘날 기록물 내용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2. 함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1. 함주지는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함주지첫 부분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함주지를 만든 한강 정구는 어떤 분일까요?

함주지를 함께 만든 사람들

함주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2. 함주지에 담긴 함안의 산천

함안이 반역의 땅이라고?

기우제 자리로 안성맞춤인 여항산

기우제는 비 올 때까지 지낸다

방어산에 석성과 장군당이 있었다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은 언제 알려졌을까?

낙동강은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남강은 어떻게 불렀을까?

용이 살았다는 아현연

함안천도 이름이 여러 가지였다?

함안읍성 우물이 마르지 않았던 까닭은

쌍안산이 백이산으로 바뀐 사연

그때도 감과 곶감이 특산물이었을까

 

3. 함주지에 담긴 함안의 건축물

백성들이 나서서 함안읍성을 쌓다

명당자리를 알아보고 지은 무진정

함안천에 동산정 낙동강에 합강정

미산 중턱에 원효암과 의상대

향교와 서원

지금은 없어진 역과 원

지금은 없어진 삼우대

 

4. 함주지에 담긴 함안의 역사유적

성산산성에 사람이 살았다

고분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아라왕궁지

 

5. 함주지에 담겨 있는 색다르고 별난 대목

황새가 은혜를 갚다

죄인 아버지를 위해 몸을 던진 노아

유구국에서 들여온 물소를 방목했다

조선시대에 이미 공공의료가

험한 유배지는 어디였을까요?

멀고 먼 서울 가는 길

장날은 언제 생겼을까?

원님의 봉급은 얼마였을까?

원님들은 얼마나 마음대로 할 수 있었을까?

소 두 마리로 사람 목숨을 구하고

옹기장이를 내기로 따왔다

 

6. 함주지에 담겨 있는 삶의 기록

귀한 물건은 부모님께 바치고

똥 맛보기는 기본

호랑이 이야기도 나오고

손가락 자르기, 효도의 결정판

때로 기적도 일어나고

죽은 남편만 바라보며 살았던 여자들

목숨을 바쳐야 사는 여자들

여자들에게 혹독했던 세월

흐뭇한 이야기

 

7. 함주지에 담겨 있는 함안의 인물들

이방실 장군

생육신 조려

고려 충신 조열

고려 충신 이오

고려 충신 조순

부모 위해 벼슬 그만둔 어변갑

북방을 개척한 날아다니는 장군 이호성

연산군의 폭정에 죽음으로 맞선 박한주

함안에서 으뜸가는 효자 이교

부자쌍절각 조준남과 조계선

목숨 바쳐 왜적에 맞선 조종도

왜란과 호란에 모두 출전한 박진영

빼어난 시인 박덕손

 

마치면서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기록과 유물 중 어느 쪽이 역사를 이해하기 좋을까요?

그렇다면 글을 통해 역사를 아는 것과 유물을 보면서 역사를짐작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좋을 것 같나요? 두 가지 다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고요? , 그렇습니다. 유물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어서 굉장히 생생하지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눈으로 보는 힘이 엄청납니다. 반면 기록으로 배우는 역사는 유물로 볼 수 없는 것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몇 년, 몇 월, 몇 일,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짐작이 아니라 기록을 통해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1부 우리는 어떻게 옛날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을까요? 19)

 

 

 

함안은 우리나라 일반 지형과 달리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습니다. 이런 남고북저 지형을 두고 함안을 반역의 고장이라고 하는 말이 있어요. 임금이 있는 북쪽이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이는 지어낸 말일 뿐 사실과는 다릅니다. 함주지에는 오히려 남고북저가 뭐가 문제냐 하는 당당한 태도가 나옵니다.

천지가 한 번 개벽하면서 강과 산이 벌써 정해져 있는데도 한 때 헛된 이름을 빌려 만고의 실제 형상을 어지럽히려 하니 풍수지리설이 그렇게 만들었다.” 실제 생긴 그대로 두면 되지 억지로 만들어 넣을 까닭이 없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오히려 함안은 충신이 많이 나온 고장이지요. 고려시대도 그랬고 조선시대도 그랬습니다. 조순, 조열, 조려, 이오 등 뒤에 가면 이 분들의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2함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35)

 

 

 

함안 하면 사람들은 말이산고분군을 떠올리지요. 그런데 무진정은 말이산고분군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해마다 사월초파일이 되면 낙화놀이가 벌어져 함안은 물론 주변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보통 정자는 산 좋고 물 좋은 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 출신 조삼이 지은 무진정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있지요. 보통 사람들 눈에는 그저 그렇게 보일 수 있는 데서 명당 자리를 찾아내 무진정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함주지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큰길가의 일개 거친 언덕이었고 또 이 고을에서 번화한 자리였다. 하늘이 숨겨둔 땅도 아니고 감추지도 않았다. 오가는 사람이 하루 천만 명이라도 이 경치 좋은 곳에 정자 세울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선생이 한 번 보더니 가시덤불을 베어내고 정자를 이루었다. 옛 길을 옮기고 아름다운 나무를 심으니 길가는 이들이 보고 신선이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정자의 경치는 다함()이 없고() 선생의 즐거움 또한 다함이 없다. 다함이 없음이 모여 무진정 이름이 됐으니 선생의 명성도 더불어 함께 다함이 없다. 선생의 성함은 삼이고 자는 노숙인데 함안군 사람으로 참으로 후덕한 어른이다.”

(2함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59~61)

 

 

 

5일장이 처음 생긴 것은 1700년대 후반입니다.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1587년에 나온 함주지1권은 물론 1740년대에 나온 전집에도 없다가 1840년대 나온 후집에 나타나는 데서도 5일장이 생긴 시기를 짐작할 수 있어요. 함안에서 가장 큰 가야장은 언제 생겼을까요? 전집은커녕 후집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생겼기 때문이지요. 192769일자 동아일보에 신설했다는 기사가있어요. 가야장은 규모가 대단하지요. 함주지에 나오는 평림·방목·군북장은 쪼그라들고 있어요. 이 또한 시대의 흐름이 아닐까요.

(2함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91~92)

 

 

무진정 연못가 부자쌍절각은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기리는 비석입니다. 아버지 조준남은 임진왜란 때 조상 무덤을 파헤치는 왜적을 막지 못했다고 자결한 효자이고 아들 조계선은 정묘호란 때 평안도 의주에서 전사한 충신입니다. 비각 오른편 충노대갑지비는 조계선을 위해 전쟁터까지 따라갔다가 그 유품과 부음을 돌아와 전하고는 주인을 구하지 못해 면목이 없다며 강물에 빠져 죽은 노비 대갑을 기리는 비라고하네요.

조상의 무덤을 지키지 못했다고, 모시는 주인을 구하지 못했다고 목숨을 버리는 일들이 지금 세상에서 보면 더없이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런데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종을 위해 왜 비를 세웠을까요? 그 마음이 갸륵해서? 아마도 다른 종들에게도 너희들도 저렇게 주인에게 충성해라 그런 뜻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부자쌍절각에 비해 충노대갑지비는 많이 초라해 보입니다.

(2함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132)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학생들을 위한 읽기 쉬운 <함주지>

조선시대 책 <함주지>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과거의 삶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함주지>가 만들어진 배경과 의의, 내용을 담았다. 학생들이 읽기 쉽도록 최대한 가볍게 풀어내어 이해하기 쉽게 전달 하였고 현재의 이야기를 보태 옛날과 지금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해설을 덧붙였다.

책에 나오는 함안을 <함주지>를 읽고 아이들과 함께 탐방하며 옛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 보는것도 좋다.

 

 

 

 

 

 

 

주제어: 경남, 함안, 함주지

분류: 역사, 국내, 문화/역사기행, 국내도서>역사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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