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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 1

Date : 2023. 5. 16. 14:55 Category : 카테고리 없음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21110

가격 : 15,000

반양장본 | 247| 152×225mm

ISBN 979-11-86351-53-6 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www.idomin.com

 

저자 : 전점석

jjseuk@hanmail.net

 

 

 

 

책 소개

 

가고파의 시인은 진정 무엇을 추구했을까?

 

친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보이는

노산 이은상의 이중성은

상상을 훌쩍 뛰어넘은 수준
그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던 노산의 작품이 기교에만 능하고 진실을 외면한 글이 아니길 바라면서 마산에 있는 가고파시비 순례를 시작했다.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이은상 인물 탐구는 흥미진진하였다. 그를 통하여 김성숙, 정인보, 이윤재, 안확, 최남선, 이광수, 조지훈, 안기영, 현제명, 홍난파, 김동진, 박태준, 윤이상 등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쓸 때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종적으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횡적으로 노산이 관계 맺은 인물들이 어떤 분인가를 살펴보았다. 노산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분은 환산 이윤재이고, 해방 후의 어려운 시절에 감싸주신 분은 운암 김성숙이다. 이 두 분은 별도로 정리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이선근, 윤치영과 각별한 관계였다. 이분들과는 체제 내에 적극 참여한 것은 같았으나 그 방식은 서로 달랐다. 일제강점기의 눈부신 활동에서는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했으나 그들과도 다르다.

성장 과정과 학생 시절, 일본 유학 생활과 가족관계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히 살펴보았다. 집필은 충무공, 조선어학회, 친일문제, 국토순례, 대통령과의 관계, 시조, 비문, 노래 그리고 단체 활동 등 아홉 분야로 나누어서 작성했다. 해방 후에 초점을 맞추어 대통령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책을 펴내는 이유는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친일과 항일을 구분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것을 노산은 추구하였다. 그 해답을 다른 곳이 아니라 노산, 스스로에게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작품은 아름답고, 독재 부역은 사실이기 때문에 각각 떼어놓은 상태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과 독재 부역이 하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훌륭한 시조시인이며 청년운동가인 노산이 독재 부역을 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책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너무 노산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분도 있을 거고, 지나치게 좋은 점을 강조한다는 분도 있을 수 있다. 글쓴이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노산의 이중성은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좋은 건 좋다 하고, 나쁜 건 나쁘다고 한다는 원칙이다. 글쓰기는 가치판단과 감정을 가능한 자제하고 사실만을 나열하고자 했다. 이 책은 글쓴이의 독창적인 저서라기보다 기존의 연구 문헌에 의지하면서 노산이 저서를 통해 직접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문학, 문학인과 권력의 바람직한 관계를 생각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되기를 바란다. -서문에서

 

 

 

 

 

 

저자 소개

 

전점석

 

우산(愚山). 1951년 대구 출생. 31년간 몸담았던 YMCA를 퇴직한 후에 20118월부터 경남일보 칼럼 경일포럼을 매월 게재하고 있으며 2018년 수필 이름짓기가 한국작가 제55회 신인작품상을 수상했다. 20205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최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 취재물 공모에 친일·반공·독재, 그 계보의 변신을 추적한다가 가작으로 입선했다. 인물추적 이은상피플파워201712월호부터 201912월호까지 2년간 게재했다. 거창민간인학살사건거창한들신문2019620일부터 6, 제주4·3학살의 박진경 대령에 대해 남해시대2020521일부터 3회 연재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의 기억과 기록201912월호에 5·18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작가2020년 제26호에 1980년의 광주 상무대와 대구 50사단 헌병대,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회보20201월 통권 606호에 80년대 신문을 오려 붙여서 복사하는 교회 청년들, 20204월호에 돌들이 일어나 꽃씨를 뿌리고, 경남도민일보 202228일자에 해안의용군과 해상인민군사건을 게재했다. 20178월 칼럼 분야 회원으로 경남작가회의에, 20194월 한국작가회의에, 201911월 진해문인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20201010일 아름나라가 시행하는 세 번째 아름나라문화상, 2021년 경남민예총 공로상 받았다.

지은 책은 일할 때도 주인, 일하고 나서도 주인(1988), 진주에서 지역운동하기(2002), 창원에서 지역운동하기 1, 2(2011), 친환경 건축이 지구를 살린다(2013), 지속가능한 지역사회(2015), 진해근대문화유산의 재발견(2018). 엮은 책은 인간답게 살자(1985), 자유 상상의 나래를 펴라(2017).

 

 

목차

 

가고파에서 새길론까지 9

 

1. 가고파를 사랑하는 마산시민 15

마산 시내에 있는 가고파시비를 찾아서 17

신중현과 베토벤은 음악만 할 줄 알았던 게 아니다 25

시의 거리에서 맑은 영혼을 담은 시를 만나고 싶다 27

 

2. 한국청년운동협의회 활동과 가고파시비보존결의대회 31

1962, 첫 번째 휴전선 종주를 다녀와서 31

청우회 중앙본부 제2~10대 회장으로 17년간 활동 35

반탁, 반공투쟁으로 8개 청년단체들이 모인 대한청년단 40

1963, 10년 만에 청우회로 부활 44

가고파시비 보존 결의대회의 후원단체인 건국회 46

 

3. 해방 직후 광양건준 부위원장, 호남신문 사장 49

이은상, 광양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 49

전남건국준비위원회 최흥종 위원장, 전남인민위원회 박준규 위원장 52

미군정으로부터 호남신문 관리권을 받은 사장 박준규, 부사장 이은상 56

이은상 사장 취임 이후 친미 성향으로 돌아선 호남신문 59

 

4. 한독당 전남도당 위원장, 여순사건 김지회 신원보증 63

김구의 건국실천원양성소에 강사로 참여 64

여순사건과 한독당 계열의 오동기, 송욱, 이은상 66

여순사건 신원보증문제로 물러난 이은상의 서울, 부산 생활 71

6·25전쟁이 끝난 후 호남신문의 재건을 위해 노력 74

국립 전남대학교 후원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77

 

5. 이승만 단독정부 반대, 민주공화당 입당 거절한 운암 81

바위처럼 서 있는 운암 김성숙을 존경하는 노산 81

운암을 향한 추모시, 추도사와 묘비문, 묘비명도 작성한 노산 86

운암은 민주공화당 입당을 거절, 노산은 창당선언문을 작성 88

지조보다 중요한 노산의 새길론과 강력한 지도자론’ 91

 

6. 이승만 대통령 후보 지지와 4·19학생혁명기념탑 비문 93

이순신 같은 분이라고 이승만 대통령 후보 지지 유세 94

조지훈의 지조론과 천관우의 노산에 대한 실망 98

4·19정신을 계승했다는 박정희 장군에 의해 기념탑 건립 103

피 끓는 젊은이를 노래한 노산의 학생의 노래106

이승만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노산이 쓴 조사를 대독 108

 

7. 이승만 대통령, 김구 주석과 노산 이은상 111

시조 목이 그만 멘다와 헌수송 송가(頌歌)113

계속 대통령 하려고 사사오입 개헌한 이승만을 찬양 117

백범 조가(弔歌) 1949, 백범 추모시조 1950119

3·15를 불상사라고 한 노산 121

 

8. 피어린 六百里, 1962년 첫 번째 휴전선 종주 125

휴전선이 국경선으로 굳어져 가는 600128

휴전선을 다녀온 후 청년운동에 앞장서다 134

노산이 생각하는 분단의 원인과 분단극복 방안 136

 

9. 기원, 1980년 두 번째 휴전선 종주 143

평화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반공청년운동에 매진 145

굳어져 가는 휴전선을 찾은 두 번째 종주 146

이승만 시절 평화통일은 위험한 용공사상 147

평화통일을 말할 수 없던 시절의 북진통일 149

 

10.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현충사를 성역화 153

노산은 충무공기념사업회 1955~61, 1972~82년 회장 153

현충사는 성역화, 탄신일은 국가기념일 157

박정희 역사관은 식민사관에서 이순신의 신격화로 161

박정희 대통령은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합해놓은 인물 166

 

11. 신사임당을 존경하는 박정희와 이은상 169

사임당과 율곡의 영정은 이당 김은호가 그렸다 170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171

무려 6판을 거듭한 사임당과 율곡173

 

12. 영남대학교 설립은 이은상과 이후락의 작품 177

무리한 시설투자로 경영난에 봉착한 청구대학 177

조윤제는 학교문제를 정치권력에게 가져갔다고 힐책 179

같은 날, 각 이사회가 합병을 결의하고, 합동이사회 열어 최종 의결 181

영남대 교가는 이은상과 김동진의 작품 185

 

13. 대통령의 입각 권유를 거부한 사람들 189

3선 개헌을 앞둔 1968, 국민교육헌장 제정 작업에도 참여 189

입각 권유를 거부한 게 유신시대에 저항(?) 194

앞장서서 유신과 유신정권을 찬양한 노산과 문인들 196

1인 독재시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어둠을 밝힌 문인들 198

한글전용정책 수립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활동 200

 

14. 비통한 심정으로 쓴 박정희 대통령 묘비문 205

비통함과 존경을 담은 박정희 대통령 비문과 조가 205

30년 친구 박정희를 위한 시인 구상의 진혼시 209

똑같이 충무공을 존경하는 박정희와 이은상 212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민주공화당 창당선언문 초안 작성 215

노산이 선택한 언론, 교육, 문화 국민운동 218

 

15.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 노산 223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경하하였다 223

이선근, 조병화, 서정주, 김춘수, 이병주, 천금성 225

불과 15개월이었던 국정자문회의 위원 229

 

16. 1947년 대도론과 1961년 새길론 235

노산이 노래하지 않은 강과 산이 없을 정도 235

노산은 대도론에서 좌우익의 폭력을 염려했다 238

친일과 항일을 구별하지 말자는 노산의 새길론240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에게서 배웠다는 새길론243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현실에서는 독재자를 옹호하는 이중성 245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노산의 시비를 돝섬 이외는 모두 둘러보고서 느낀 점은 정말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노산 특히 가고파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2개를 제외하고 모두 노산이 돌아가신 후에 세워진 것이다. 만약 노산이 이렇게 많은 시비가 세워져 있다는 걸 아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분명 고마워하면서 미안하다고 하실 것 같다. 마산 시민들이 자신에게 과분한 사랑을 준다시며 불의에 저항한 3·15를 불상사라고 한 것을 이해해달라고 하실 것 같다.

(27, 시의 거리에서 맑은 영혼을 담은 시를 만나고 싶다)

 

청우회는 박정희 정권의 반공정책을 지지하는 민간단체로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을 때마다 정권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노산은 제2~10대 회장을 연임하면서 1965년부터 1983년까지 17년간 활동하였다. 역대 16명의 회장 중에서 가장 오래 활동하였다. 1975년에는 단체 명칭을 한국청년운동협의회로 바꾸었으며 제1회 반공청년운동 순국자 합동추념제를 시작했다. 이후 건국청년운동협의회(1987), 대한민국건국회(1995)와 대한민국통일건국회(2017)로 이름을 바꾸었다.

(45~46, 1963, 10년 만에 청우회로 부활)

 

광양자치위원회 구성을 협의하고, 위원장 김완근, 부위원장 이은상, 정진무를 선출했다. 노산은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임원 세 사람이 승낙을 받기 위해 노산의 집을 방문하였더니 상임위원 24명 중에서 친일파 몇 명을 교체하자는 등의 수정 제안 몇 가지를 한 뒤 쾌히 승낙하였다고 한다. 노산은 비록 지역민은 아니지만 전국적인 명망가였기 때문에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50, 이은상, 광양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

 

당시 서울에서는 이승만 정권 유지를 위한 반공이데올로기 담론의 형성에 문인들이 앞장서고 있었다. 19481227~28민족정신 앙양 전국문화인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름이 오른 경남, 부산지역 문화인은 이은상을 위시해서 김달진, 김춘수, 김용호, 김상옥, 김용환, 김의환, 유치환, 유치진, 조연현, 최현배, 최인욱, 오종식, 정인섭, 손진태, 이광래, 이정호, 최영해, 오영수, 탁소성, 한형석, 허영균, 설창수 등이었다.

(72, 여순사건 신원보증문제로 물러난 이은상의 서울, 부산 생활)

 

일제강점의 암흑기에 달걀로 바위 치기보다 더 가망 없는 싸움에 수많은 사람들이 떨쳐나섰다는 것을, 그들이 이름 없고, 빛나지도 않으면서 굶어 죽고, 맞아 죽어 가면서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운암을 보면서 노산은 절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87, 운암을 향한 추모시, 추도사와 묘비문, 묘비명도 작성한 노산)

 

판문점에서 벽제관에 이르는 지역에 관한 부분에서 냉전의식을 확실히 볼 수 있다. 명나라 군대가 벽제관에서 일본군에 패배하여 도로 송도로 퇴각하는데 이때 조선의 이덕형이 진군을 주장했다는 내용은 맥아더의 북진론을 지지한 것이다. 벽제관에 관한 글에서 세 개의 다른 역사적 사례를 비교·소개하면서 맥아더의 북진론을 영웅적인 것으로 신화화했다.

(131, 휴전선이 국경선으로 굳어져 가는 600)

 

노산은 기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평화라고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평화는 전쟁 없는 평화가 아니었다. ‘총칼이 아름다운 강산을 더럽힌다는 표현으로 인해 노산이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것 같지만 그가 참여한 청년단체와 청년들에게 행한 연설을 보면 기본적으로 멸공과 북진통일을 이루어야만이 찾아오는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145, 평화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반공청년운동에 매진)

 

노산은 사임당과 율곡에서 사임당에 대해서는 효녀, 착한 아내, 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으며, 율곡에 대해서는 지방관이 되어 지방행정을 쇄신하는 모습을 그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국모의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율곡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박정희의 논리에 합당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정치적 목적이고, 노산은 민족문화 측면이라고 나누어 볼 수도 있다.

(174~175, 무려 6판을 거듭한 사임당과 율곡)

 

박정희 대통령은 이 충무공에 대해 남다른 존경심을 갖고 있던 노산을 찾게 되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친밀해졌다. 노산은 평소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해놓은 인물이라고 말하였다.

(212~213, 똑같이 충무공을 존경하는 박정희와 이은상)

 

77세의 노산은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라는 제목과 새 시대, 새 역사의 지도자상이라는 부제로 글을 썼다. 직책은 민족문화협회 회장이었다. ‘10·26사태 이후 두어 차례나 위급한 고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앞에는 안팎으로 닥쳐오는 난관이 겹겹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모든 여론들이 한결같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223~224,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경하하였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문제적 문인 이은상을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책

 

뛰어난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은 언제나 논란이 따라다니는 문제적 인물이다. 한편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시인임을 앞세우며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아무 잘못이 없는 인물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승만에서 박정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권력의 편에 서서 독재를 옹호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다고 보고 있다. 나아가 그의 문필 활동까지 지배자를 위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논의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이렇게 상반된 주장이 맞부딪히는 지점에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은상을 옹호하든 비판하든 저마다 자기 관점에 맞추어 관련 사실에 대해 해석하면서 자기 얘기만 되풀이하고 마는 것이다.

지역에서 지역운동을 오랫동안 벌여온 전점석 작가의 <노산 이은상과 대통령>은 상반된 주장을 아우르는 한편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노산의 생애 전반을 빠짐없이 폭넓게 살펴봄으로서 그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에 이르고 있다.

해방 직후 전남 광양에 머물던 때부터 광주에서 신문사 사장을 하던 시절의 행적, 여순사건에서 보인 그의 태도는 널리 알려진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6.25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된 그의 정신세계와 이후 반공청년단체 회장 시절의 사상은 새로운 사실로 다가온다.

세종대왕 숭모 활동과 한글전용정책, 이순신 장군 영웅화와 아산 현충사 성역화 사업, 이율곡과 그 어머니 신사임당 선양 사업에 나선 행적도 크게 알려진 것은 아니다. 이런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새롭다. 전문 연구자들은 아는 일이라 해도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이은상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동시에 독재를 찬양했다. 어떤 사람들은 노산을 두고 소신도 줏대도 없이 자기 이해와 편의를 좇는 기회주의자로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점석 작가에 따르면 이은상은 그런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다.

노산 이은상의 이중성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이중성이 노산의 정신세계에서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아무 모순 없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공과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았고 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강력한 지도자라야 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노산 이은상을 비판하든 옹호하든, 전문 연구자이든 일반 애호가이든 그의 진면목을 있는 그대로 보고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한 번 읽어 보시라고 권할 만한 책이다.

 

주제어: 지역, 마산, 가고파, 문화, 김성숙, 정인보, 이윤재, 안확, 최남선, 이광수, 현재명, 홍난파, 김동진, 박태준, 친일, 독재,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순신, 3.15, 4.19, 세종대왕, 신사임당, 이율곡, 휴전선

 

분류: 역사, 지역, 문학,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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