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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7

Date : 2023. 12. 15. 16:39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한글세대를 위한 함안 금라전신록 산책

 

 

제목 한글세대를 위한 함안 금라전신록 산책

펴낸날 2023127

가격 16,000

반양장본 | 168152*225mm

ISBN 979-11-86351-63-5(0390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책 소개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금라전신록

 

금라전신록은 함안이라는 지역을 바탕 삼아 만든 저작물이다. 지역을 중심에 놓은 문집은 조선시대는 물론 고려시대까지 통틀어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흘러가고 지역이 메말라가는 지금의 현실에서 이 책이 지니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금라전신록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행적과 시문은 함안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아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행적들이 적지 않다.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도 풍성하다.

지금 관점으로도 여전히 필요하고 뜻깊은 부분을 먼저 추렸다. 재해석이 가능하거나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만하거나 재미있게 읽힐 거리도 챙겼다.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하고 새롭게 의미를 더하면서 설명과 해설을 입히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1999~2023년 경남도민일보 기자

 

저서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비매품)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

<가야로 가야지-쉽고 재미있는 가야 역사>

 

 

목차

 

머리말_이 좋은 고전을 기억 너머로 보내지 않기 위하여

 

1장 인물

1. 어변갑의 뛰어난 글재주

2. 글솜씨는 뛰어났지만 불행했던 조욱

3. 단종을 위하여 숨어 살았던 조려

4. 조려의 후손은 벼슬을 하지 않았을까?

5. 그러면 고려 충신의 후손은 어떻게 했을까?

6. 2대에 걸친 사랑 이야기

7. 옛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8. 용퇴가 왜 중요할까

9. 선물 받은 귀한 은어를 먹지 않은 이유는

10. 죽을 때 웃을 수 있다면

11. 유머 뒤에 우뚝했던 기개

12. 소년급제는 위험하다

13. 서울 조정에서 사투리를 썼다

14. 소귀에 경 읽기를 한 까닭은

15. 착한 사람은 자기보다 어려도 공경했다

 

2장 느낌과 생각

1. 비둘기 시

2. 달팽이 시

3. 낙방의 씁쓸함

4. 아들의 출세가 기쁜 까닭

5. 늙음을 노래함

6. 자식을 잃은 슬픔

7. 난리통에 고향 생각

8. 가야의 후예라는 뚜렷한 인식

9. 황은이 맞는 걸까?

10. 까마귀가 어리석나 사람이 어리석나

11. 언제나 좋은 물 이야기

 

3장 풍속

1. 천둥번개는 하늘의 경고였다

2. 옛날 결혼과 요즘 결혼은 무엇이 다를까

3. 지금과 달리 흔했던 처가살이

4. 부모님 봉양을 위해 외직을 한다

5. 친인척이 오자 벼슬 자리를 바꾸었다

6. 부모가 죽으면 벼슬을 그만두었다

7. 부자간의 벼슬 바꿔치기

8. 이 정도는 아파야 벼슬을 그만두지

9. 부모 초상에는 몰골이 수척해야 했다

10. 그때도 극심했던 서울 중심주의

11. 배척되지 않는 불교, 까닭은?

 

4장 금라전신록

1. 금라전신록이란 무엇일까?

2. 금라전신록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3. 금라전신록을 왜 편찬했을까?

4. 금라전신록인쇄는 언제 되었을까?

5. 금라전신록에서 금라는 무엇일까?

6. 금라전신록을 편찬한 조임도는

7. 자료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8. 역적 김안로의 글을 전부 실은 까닭은

9. 묘갈명·묘비명·묘지·신도비명 등은 요즘으로 치면 무엇일까?

 

부록 : 금라전신록·하권 목차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바람이 세 차례 거세게 몰아치니 고기가 갑옷으로 변하는데 둘씩 짝을 지으려면 원래 실력이 어금버금해야 하지만그대 이름만 용문 위에 올라도 그만이지.”

이 시는금라전신록집현전 직제학 어변갑 행장에 들어 있다. ‘세 차례 몰아치는 바람은 세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과거 시험 절차를 비유한다. 다음에 나오는 고기()가 갑옷()으로 변한다()’는 한자로 쓰면 바로 어변갑(魚變甲)이 되고, 아래로 이어지는 내용은 바로 그 어변갑이 2등과 큰 격차를 보이며 1등 장원을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의 용문(龍門)은 과거 합격을 뜻한다. (본문 16)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렵고, 죽은 뒤의 세상을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렵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떨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다. 그래서 이렇게 죽음을 앞두고서도 의연했던 옛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성혼(1535~1598)이 친구 조감을 위해 쓴 앞의 묘갈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되새길 만한 내용이다.

죽고 사는 즈음에도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인품이 높고 삶을 대하는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힘쓰고 원한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다.”

(본문 50)

 

동생 집의 불쌍한 비둘기

암컷은 새끼를 사랑하고 수컷은 암컷을 사랑하여

구구하는 것이 주인의 사랑에 보답하는 듯하구나

하루아침에 잇달아 고양이 입에 들어갔네

새장을 소홀히 했으니 누구의 잘못인가

고양이를 탓하겠나 비둘기를 탓하겠나

단속 제대로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지.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동물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둥지를 만들어주고 애지중지 기르던 비둘기가 고양이 먹이가 된 후 느꼈던 안타까움이 잘 드러난 시다.

어변갑이 쓴 이 시에서 구구 하는 것이 주인의 사랑에 보답하는 듯하구나라는 대목을 보면 비둘기를 기르면서 누리는 즐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금은 집에서 기르는 일이 드문 비둘기가 반려동물이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본문 66~67)

 

 

본문에 나오는 는 성혼(1535~1598)이라는 인물이다. 조감의 장인 백인걸을 스승으로 모시고 같은 집에서 다섯 살 많은 조감과 동문수학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적은 글이다.

성혼은 조정견의 아들 조감과 백인걸의 딸이 어떻게 해서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졌는지를 전해주고 있는데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딸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 아버지가 훌륭해서 며느리로 삼았다니 요즘 20~30대가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성혼의 아들과 조감의 딸이 맺어진 사연은 더더욱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성별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양쪽 아버지의 결정만으로 결혼이 성사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데에는 시대 상황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결혼의 주체가 당사자 개인이 아니라 가문이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남자와 여자 개인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게 당연한 세상으로 바뀌었다.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는 결혼이 갖는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본문 104~105)

 

 

옛날에는 부모 초상이 나면 술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삼년 동안 죽만 먹는 것이 기본이었다. 전복죽이나 잣죽 같은 영양이 풍부한 것 말고 쌀을 갈아서 만든 묽은 죽이었다. 몰골이 많이 수척해져야 초상을 제대로 치렀다는 인정을 받았고 본인 역시 도리를 다하려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과 마지막 떠나는 길에 예의를 다하고자 하는 심정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효도인지는 의문이다.

스승 장현광(1554~1637)이 제자 조임도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되새겨볼 만하다. 그는 1622년 어머니 상중이던 조임도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자네의 상례가 중도를 넘어 견디기 힘들다고 들었네. 효성을 다하는 도리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몸을 잘 보존하는 한편으로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선조를 추모하는 일을 길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네.”(본문 124~125)

 

 

함안에는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이라는 책이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시대인 1639년에 함안의 선비 조임도가 갖가지 자료를 모아 묶어낸 책이다. 책의 성격과 내용은 제목 금라전신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먼저 금라는 함안을 가리키는 옛날 별명이다.세종실록 지리지(1452)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그리고고려사(1454)에 이르기까지 아시량(阿尸良아나가야(阿那伽倻함주(咸州사라(沙羅)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별호이다.

전신록에서 은 전해 온다는 것이고 은 믿음직하다는 뜻이며 은 기록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믿음직하게 전해져 오는 기록이 전신록이다. 금라까지 합하면 함안에 전해오는 믿을 만한 기록을 담은 책이금라전신록이다. (본문 136)

 

 

금라전신록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역을 중심에 놓고 여러 인물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주관에 휘둘리거나 감정에 치우쳐 아무 이유 없이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지역사회로부터 곧바로 지적과 외면을 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조임도는 원칙을 정하고 엄격하게 적용해 취사선택을 했다. 서문에 나와 있는데 인물과 문장이 모두 귀중하면 당연히 싣고 인물은 훌륭하지 않아도 문장이 사랑스럽거나 문장은 뛰어나지 않으나 인물이 아까우면 채택했으며 또 인물을 버릴 수 없는 경우는 문장이 전해지지 않아도 그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당성, 어느 누구로부터도 틀렸다는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객관성, 과거와 당대의 훌륭한 인물과 문장을 남김없이 후세로 전달하는 효용성 셋을 두루 아울러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본문 139)

 

 

지역의 수령이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함안의 훌륭한 군수였고함주지의 편찬을 주도한 한강 정구를 보기로 들 수 있다. 그는 1586년 부임하자마자 사람을 시켜서 함안에 있는 훌륭한 인물들의 무덤을 찾아가 다듬도록 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제사까지 올렸다.

박한주는 연산군의 폭정에 충언을 아끼지 않다가 미움을 산 끝에 유배길에 올랐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자신보다 앞서 창녕군수를 지낸 선배인데다가 그 행적과 인품을 존경해서 그 무덤을 찾았다. 이밖에 이교·이원성·다물의 무덤도 찾아가 돌보고 다듬게 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모두 효성이 지극한 효자들이었다.

정구의 이런 행보는 당연히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면서 새로 온 군수는 충성과 효도를 다른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소문도 나게 되고 새로 부임한 고을에서 깍듯하게 예우를 갖추는 예의 바른 인물이라는 평판도 얻을 수 있었다. 정구 군수에게 무덤 참배는 고을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본문 162)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이 좋은 고전을 기억 너머로

보내지 않기 위하여

 

함안이 기록의 고장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함주지·함안총쇄록과 더불어 손꼽히는 것이금라전신록이다.함주지는 수령과 지역 유지들이 함께 편찬한 읍지이고 함안총쇄록은 수령 개인이 기록한 일기이며금라전신록은 함안 출신 인물들의 훌륭한 행적과 뛰어난 시문을 한데 모은 책이다.

 

금라전신록에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아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행적들이 적지 않다. 가슴에 새겨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도 풍성하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금라전신록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과금라전신록에 전해지는 여러 좋은 내용을 함께 알리는 것도 뜻깊은 일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문을 곧이곧대로 옮기기보다는 앞뒤 맥락을 감안하여 좀 더 알기 쉽도록 적절하게 가감첨삭했다. 한문체 특유의 산만하거나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생략한 대목도 적지 않다. 한자는 최대한 적게 쓰려고 했으며 특히 인명은 이나 선생으로 대신 부르는 것을 없애고 모두 이름 석 자로만 표기해 가독성을 높였다.

 

텔레비전 같은 대중 매체 덕분에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대중화되고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에 초점을 맞춘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금라전신록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행적과 시문은 함안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서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주제어: 함안, 역사, 풍속, 금라전신록, 함주지, 함안총쇄록

분류: 함안, 역사, 문화, 지역,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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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12. 15. 16:37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가야로 가야지

 

 

제목 가야로 가야지
부제 쉽고 재밌는 가야역사

펴낸날 2023925

가격 18,000

반양장본 | 248152*225mm

ISBN 979-11-86351-60-4(0391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책 소개

 

대중적인 언어로 알기 쉽게 정리한

최초의 전체 가야 역사서

 

20239월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되었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주변국과 공존하면서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해 온 가야를 잘 보여주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라는 좋은 평가를 받아 오랜 염원 끝에 기다리던 결실을 맺었습니다.

 

가야의 역사는 책을 통해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찾아 상상력을 펼치면 가야사는 훨씬 실감 나게 살아날 것입니다. 현장 탐방을 할 때 안내서로 활용해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아울러 가야를 알리고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기원도 함께 담았습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장

저서

<습지와 인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비매품)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재미있는 우리 칠원읍지> <함안에 담긴 역사와 인물>

 

 

 

목차

 

머리말

 

1부 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

훑어보기

가야는 이름 부자

대표하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가야의 활동 무대는 어디까지?

가야의 시작은 언제부터?

 

가야의 역사(전기)

철의 왕국 가야의 탄생

가야의 화폐는 무엇이었을까?

가야 철소재의 인기 비결은

김수로와 석탈해 대결의 의미는?

언제까지나 걸을 순 없었던 꽃길

농수산물도 풍성했던 철의 나라

중국과 일본의 중계기지 가야

고구려의 낙랑·대방군 함락

위기는 기회로, 기회는 위기로

가락국이 지다

 

가야의 역사(후기)

새롭게 떠오르는 가야

대가야는 어떻게 가락국을 대신했을까?

미니어처 농기구는 어디에 쓰였을까?

대가야의 번성과 쇠락

가라왕 하지의 사신은 어떻게 중국에 갔을까 ?

언제나 넘버투였던 아라가야는 강했다

아라고당회의를 개최하다

가야의 종말

 

궁금한 이야기

가야 기록이 부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포상팔국은 어디에?

포상팔국은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

과거가 지금에게 건네는 이야기, 순장

순장에도 공식이 있었다

규모가 남다른 대가야의 순장

순장, 그 시작과 끝은

최강 군사력은 어느 가야였을까?

말의 일본 전래와 대가야

말은 화물차다? 장갑차다?

금공품도 전해주고

 

 

 

2부 가야고분군을 찾아서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봉만큼 신성했던 대성동고분군

무덤 위에 무덤을 만들다

봉분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도

전국 유일 가야 전문 국립김해박물관

쓰레기장을 품은 봉황동 유적

대성동고분군과 짝을 이루는 왕성 자리

대성동과 어깨를 겨룬 양동리

국제 교류의 중심 김해는 항구 부자

조선 도로보다 튼튼했던 가야 도로

가락국에서 가장 신성한 구지봉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의 원래 모습은?

부부인데도 무덤이 떨어져 있는 까닭은?

 

경상북도 고령군

산성과 왕궁, 그리고 고분군

높이는 그대로인데 지름은 작아지고

공유에서 전유로

신라에서 백제로 다시 신라로

처음엔 아래에 나중엔 위로

무덤에서 웬 음식물이

최초의 왕릉급 제73호분

최초의 석재 대형분 제75호분

가장 크고 도드라진 제5호분

특이한 순장으로 유명한 제30호분

부부 두 쌍이 나란히 제32~35호분

순장이 가장 많은 제44호분

빈 순장곽은 무슨 연유로?

45호분은 제44호분의 왕비?

불교 수용의 증거 고아리 벽화고분

마지막 왕릉급 고아2리 고분

대가야 흙방울에 담긴 건국신화

새 위계에 걸맞게 건국신화를 새롭게

전라북도 남원시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전라권 최초의 가야계 국가 사적

중국산 청동거울과 백제산 금동신발

다른 가야의 여러 문물도

활발한 교류의 원인은 풍부한 철 생산

여러 우여곡절이 담긴 제36호분

전라권 가야가 처음 확인된 월산리고분군

온전하게 출토된 중국산 제품들

운봉고원 최초의 대가야계 고분은

바뀐 양식과 바뀌지 않은 양식

 

전라북도 장수군

백두대간 서쪽의 유일한 가야 세력

동촌리고분군의 말편자

장계분지 가야 고분의 집게·망치·모루

운봉고원보다 많은 제철유적

봉수의 종착지는 장계분지

전북 동부 가야의 자율성은 얼마나?

 

경상남도 합천군

이주민이 주인이 되다, 옥전고분군

신라계와 백제식은 무슨 이유로?

구슬이 지천으로 널린 구슬밭

작지만 다채로운 합천박물관

살기 좋았던 자리, 성산토성

해인사 국사단에 모셔진 정견모주

월광태자는 월광사지를 거닐었을까?

세 사람의 엇갈린 운명, 신라 충신 죽죽비

 

경상남도 함안군

탁월한 입지 선정, 말이산고분군

질서정연한 무덤은 다 계획된 것

거대한 봉분의 숨은 비결

말이산과 통합된 남문외고분군

딱 봐도 아라가야, 함안박물관

아라가야의 왕성, 가야리 유적

초대형 고대 건물터 당산유적

성산산성은 가야일까, 신라일까?

 

경상남도 창녕군

두세 집단이 공존한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특징이 많다는 특징

신라와 친하면서 독자성도 지켰다

또 하나의 비화가야 계성고분군

가야 최대 고분이 여기에

순장 소녀 송현이의 환생, 창녕박물관

가야의 여명을 여는 창녕지석묘

 

경상남도 고성군

이어붙이기로 초대형? 송학동고분군

일본의 오해가 밝혀지다

여러 계통의 유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다

내산리고분군, 해상교역의 주인공들

센 가야 사람들의 자취, 고성박물관

동외동패총과 솔섬 유적

송학동고분군을 지키는 만림산토성

 

기타 중요 유적

우리 옻칠이 확인된 창원 다호리 고분군

문자 생활의 증거도

2000년 세월에도 온전했던 통나무널

어떻게 살아남았지? 창원 성산패총

일제가 망가뜨린 진주 옥봉·수정봉고분군

백제가 왜 여기에, 의령 중동리고분군

겉은 가야 속은 신라, 양산 북정리고분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산청 전구형왕릉

남강 물길 따라 들어선 산청 생초고분군

임나일본부설을 깨뜨린 운평리고분군

섬진강 서쪽에도 가야가

낙동강 동쪽의 가야 복천동고분군

삼국유사의 그 가야 성산동고분군

신라 지배 아래서도 위세를 유지한 비결

 

가야 유물 박물관·전시관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경남 김해 가락국의 쇠락은 대성동고분군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가야의 고분이라 하면 우리는 높고 큰 봉분을 떠올리게 됩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봉분은 5세기 초반에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5세기 중반 즈음부터는 밑지름이 40m가 넘는 초대형 고분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가장 앞섰던 김해 가락국의 대성동고분군에는 이런 봉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6세기 전반까지 조성된 묘역이지만 그냥 나지막한 구릉만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고분이 어디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기도 하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때의 가락국 최고위 지배계층에게는 그렇게 크고 높은 무덤을 만들 역량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선 시기 고구려군의 침공이 안겨준 상처가 그만큼 크고 깊었다는 얘기입니다. 대성동고분군의 무덤덤한 무덤들에서 지금 사람들은 한 시절 누렸을 영화의 무상함을 엿보게 됩니다. (본문 38)

 

눈여겨볼 만한 것으로 순장이 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산 사람을 함께 묻는 풍습을 말합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한반도에서는 가야와 신라에서 확인됩니다. 부여는 순장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실물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신라는 임금이 죽으면 남자와 여자를 5명씩 순장했다는 기록과 함께 실제 순장 사례까지 확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가야는 순장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발굴로 확인된 사례는 가장 많습니다. (본문 61)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자체 생산한 물품뿐만 아니라 왜계, 북방계, 중국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는 바다 물길을 통해 활발하게 이뤄진 국제 교류를 잘 보여줍니다. 이렇듯 무덤에서 나오는 다양한 유물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3세기까지 농·어업 도구는 수입한 것이 대부분이고 분량도 많지 않았지만 4세기 후반에는 자체 제작한 것이 대부분이고 수량도 많아집니다. 낙랑·대방의 소멸과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해양 교역이 어렵게 되자 농업과 어업으로 눈길을 돌렸던 것이지요.

무기와 갑옷·투구와 말갖춤 출토에서도 바뀌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중국·낙랑 계통의 수입품 위주였으나 김해 현지에서 제작한 무기·갑옷·투구·말갖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수량도 늘어나게 됩니다. 자체 역량으로 만들어낸 철제 전투 장비가 많이 출토된다는 것은 가락국이 군사적으로도 강국이었음을 일러줍니다. (본문 88~89)

 

경북 고령 지산동고분군 제73호분은 5세기 들어 가장 이른 시점에 주산의 줄기능선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가지능선 끝자락에 자리 잡은 지름 22~23m 규모의 대형 무덤입니다. 비슷한 시기의 대형 고분들은 무덤 속 주인공 공간을 모두 석재로 조성했지만, 73호분은 유일하게 목재를 썼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목재로 만든 가야의 대형분은 김해 가락국의 대성동고분군에 많이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대성동은 봉분이 나지막하고 지산동 제73호분은 높다랗다는 것입니다. 김해 가락국 전성기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대성동 제1호분의 뒤를 잇는 무덤인 것입니다. 이는 대성동고분군의 전통을 대가야에서 계승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동시에 대가야의 번성과 지산동고분군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고분이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114)

 

전라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야 유적은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입니다. 동네 명칭은 2개지만 서로 딱 붙어 있습니다. 동쪽 인월면 유곡리와 서쪽 아영면 두락리에 걸쳐서 두 봉우리를 끼고 능선을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40기 남짓이 확인됐지만 발굴을 기다리며 풀숲에 뒤덮여 있는 것은 훨씬 더 많습니다.

중심 연대는 5세기 중엽~6세기 초엽으로 대가야권역에서 보자면 합천 다라국의 옥전고분군과 충분히 견줄 만한 상위고분군입니다. 지름 20m 이상인 대형분은 14기인데 30m 이하가 열셋이고 30m 이상도 높은 자리 능선에 하나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20m 이하이며 지름 8m 안팎의 소형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적이 1973년 전라북도기념물로 지정될 때는 백제계나 마한계일 것이라고 대부분 사람들이 짐작을 했습니다. 하지만 1989년 발굴에서 대가야계로 밝혀졌고 이후 가야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2018년입니다. 전라권 가야 유적에서 최초로 국가 사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본문 136~138)

 

대가야계 고분군은 전북 남원의 운봉고원 말고 장수군의 진안고원에서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동촌리고분군 등에서 확인된 가야계 중대형 고분은 240기를 웃돕니다. 남원에서 확인된 180기보다 많습니다. 시기적으로는 4세기 말엽~6세기 중엽에 해당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진안고원이 백두대간의 서쪽이라는 사실입니다. 남원의 운봉고원은 같은 전북이라도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보면 그 동쪽에 있습니다. 대가야를 비롯한 여러 가야가 있었던 경상도에서 보자면 가야 세력이 백두대간을 넘어 이주·진출한 유일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 가야 고분들은 남원의 운봉고원과도 구분되는 점이 있습니다. 출토되는 유물이 대가야 색채를 뚜렷하게 띠거나 자체 제작된 것도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백제 토기가 함께하는 것이 독특합니다. 반면 다른 가야 집단의 유물은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그들과의 교류·교섭이 적거나 없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본문 152)

 

경남 합천 옥전고분군은 다라국을 다스리던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조성된 묘역인데 왕릉급 고분은 5세기 초반~6세기 초반에 들어선 것입니다. 처음 무덤은 그보다 훨씬 이른 기원전 1세기 즈음이었습니다. 규모나 유물이 보잘것없었습니다. 권력의 형성과 계층의 분화를 보여주는 최초의 무덤은 4세기 후반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때도 확실하게 구별될 정도는 아니었고 같은 집단 내에서 조금 우월한 정도의 무덤이었습니다.

5세기 초반이 되면 앞 시기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고분이 등장하게 됩니다. 무덤의 내부 구조와 규모, 그리고 유물의 내용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것입니다. 실생활용 말갖춤과 장식용 말갖춤, 금동 고깔모자와 금귀걸이 같은 금동제 공예품 등 기마용 문물과 화려한 장신구가 출토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유물들은 앞선 시기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4세기까지 그 일대에서 살았던 이들의 문물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5세기 초반이면 고구려 광개토왕이 가락국을 공략한 직후입니다. 그때 한반도 남부는 극심한 정세 변동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다른 지역에 살다가 이곳으로 들어온 이주민들이 다라국을 성립시켰습니다. (본문 163)

 

경남 함안 가야리 유적은 아라가야의 왕성이 발견된 자리입니다. 그동안 글이나 말로만 전해오던 아라가야의 왕궁으로 짐작되는 유적이 나지막한 야산 꼭대기에서 토성에 둘러싸인 채 나타났습니다. 함안 가야리 유적의 토성은 김해의 봉황동 유적 토성이나 합천 옥전고분군의 성산토성과 달리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높이는 최고 8.5m이고 너비는 20~40m인데 같은 시기의 다른 가야 권역에는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합니다. 밑바닥은 암반으로 덮여 있는데 나무기둥을 박았던 구멍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통나무 울타리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던 자리이거나 멀리 망을 보았던 망루, 또는 마루를 높게 설치한 고상 건물의 흔적들입니다. (본문 188~189)

 

경남 창녕의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가 전성기를 맞기 직전인 5세기 중반부터 멸망 이후인 7세기까지 집중적으로 조성됐습니다. 200년 동안 초대형에서부터 중소형에 이르기까지 1000기 남짓 되는 고분이 들어섰습니다. 200년 동안 1000기라면 해마다 5기씩 봉분을 쌓아올린 셈이니 당시 기술력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닌가요.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교동1·2군과 송현동 3·4군 등 넷으로 구분이 됩니다. 교동은 1군과 2군이 붙어 있지만 송현동은 3군과 4군이 떨어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조성된 것은 5세기 중·후반의 교동2군이고, 교동1군과 송현동3·4군은 6세기 초반부터 동시에 만들어졌습니다.

세력이 비슷한 두세 집단이 공존하면서 교동과 송현동으로 양립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다른 가야고분군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대형 왕릉급 고분이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어서 대형·중대형 고분이 왕릉급을 위성처럼 감싸고 그 주변에 다시 중소형 고분이 여럿 들어서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본문 196~198)

 

경남 고성의 가야 세력을 소가야라고도 했다는 사실을 두고 대가야(큰 가야)와 반대되는 소가야(작은 가야)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소가야라는 이름은 땅이 좁다거나 힘이 약하다거나 막연하게 그런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고성은 해양 교역을 발판으로 성장한 센 나라였습니다. 교역의 주력 물품은 바로 였지요.

옛날 사람들은 지명을 한자로 적으면서 뜻을 가져오기도 하고 소리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가야에서 작다는 뜻을 가져왔으면 스스로 작은 가야라고 낮추는 형상이 되고 소=쇠라는 소리를 가져왔으면 쇠의 가야가 돼서 나라의 근본 속성을 밝히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사실과 가까울까요? (본문 215)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념

 

가야고분군은 가야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적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함께한 가야 문명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가야 문명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여러 국가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단계를 보여주는 유산입니다.

 

최근 활발한 발굴을 통해 실체가 드러나면서 가야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편적인 수준에 머무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야의 600년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종합 개설서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풀어놓는 것까지 더할 수 있다면 좀더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개별 지역마다 크고 높은 봉분을 쌓을 수 있었던 배경, 공동체를 지배하고 호령했던 주인공들의 모습, 여러 나라들과 맺었던 관계와 교류가 어떠했는지 등 궁금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습니다.

 

무엇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문가나 학자가 아니면 읽어내기 어려운 그동안의 가야사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역사애호가로서 의무감 6 궁금증 4로 작업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많은 이들이 가야에 좀더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제어: 가야,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야고분군

분류: 발굴, 고고학, 생태, 환경, 역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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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5. 16:59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펴낸 날 : 2022523

가격 : 15,000

반양장본 | 276| 140*200mm

ISBN 979-11-86351-22-2(0391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90, 0194

www.idomin.com

 

저자 : 한영순 / 편집자 : 고은광순

 

책 소개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참으로 험한 나날을 살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일제 패망 이후 신생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전쟁과 혁명과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믿기 어렵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숱하게 보고 들으며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굵직굵직한 것만 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랍니다. 먼저 6.25 전쟁 직후 전국 곳곳에서 국민보도연맹을 빙자해서 자행한 최소 10만 명 규모의 민간인 학살을 첫머리에 꼽을 수 있습니다.

19512월 지리산 산골에서 대한민국 정규 군대가 정식 지휘 계통을 통해 명령을 받아 같은 대한민국의 민간인을 마을 단위로 모아놓고 총질해 죽여버린 경남 산청·함양과 거창의 집단 학살 사건은 어떠한가요?

19718월 서해의 외딴 섬 실미도에서 북파 공작을 위해 훈련받던 부대원들이 집단 탈출하여 인천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면서 벌어진 군인·경찰과 민간인·부대원 등 50명가량이 목숨을 잃은 실미도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 독재자 박정희가 살해당한 이후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가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잠재우고 권력을 연장시키기 위해 그해 5월 광주 일대에서 벌였던 엄청난 학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와 같이 좀처럼 믿기 힘든 이런 사건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지배자들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실상을 공개하지 않았고, 그 탓에 길거나 짧은 세월 동안 비밀에 부쳐져 왔다는 것입니다.

805월의 광주 학살은 아주 가까운 시기에 겪은 사건이다 보니 그 봉인이 1982년부터 해제되기 시작했지만, 나머지 사건들은 일러도 1990년대 후반 늦으면 2010년대 전반에도 그 비밀의 빗장이 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사건들은 비밀의 빗장이 대부분 풀렸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드높은 민주 역량이 이룩한 위대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군데 남은 데가 있다면 그것은 경제의 영역일 것입니다.

부정한 지배집단의 정권 장악과 유지 욕심이 만들어낸 이른바 어떻게 조성되어 꾸준히 재생산되어왔는지 이제는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일부 드러난 것처럼 그 돈다발의 규모는 어떻게 현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지? 하고 되물을 정도로 엄청날 것이고 그 내막은 일반인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를 얼룩지게 만든 사건들이 모두 그랬지 않습니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하나같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저자 한영순과 가족이 겪은 일들도 언젠가는 분명한 사실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전모가 조금만 더 밝혀지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의 소재가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저자 소개

 

저자: 한영순

 

1955년 부산 가야동에서 한희승 아버지 백금남 어머니의 일곱 번째 막내딸로 출생.

민주시민연합에서 활동

관청피해자모임 부회장

현 박정희심판국민행동 대표

국민의힘당 서정화 상임고문 24번 고소

전 민주당 박주선 의원 11번 고소

재경부 윤증현 장관 15번 고소

 

편집자: 고은광순

 

1955년 서울 명륜동에서 고주상 아버지 은예동 어머니의 다섯 번째 막내딸로 출생.

이화여대 사회학 전공 중 박정희 긴급조치로 2회 구속.

한의학 전공.

충북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 행복마을만들기 운영위원장.

평화어머니회 상임대표.

 

 

목차

 

추천사 / 8

프롤로그-부모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 18

 

1. 내 부모님

1) 영순아, 커텐 닫아라!-34일 이어진 어머니의 통곡 / 21

2) 아버지는 함흥의 유관순 / 23

3) 부모님은 함흥의 갑부 / 25

4) 해방 후 고향을 떠나다 / 26

5) 6.25 전쟁이 터지자 거제도 군부대 안에 식당 운영 / 27

 

2. 박정희를 만나다

1) 박정희, 부모 앞에 나타나다(1950) / 29

2) 구두를 닦아 아버지 앞에 놓아주던 박정희 / 32

3) 광목치마 자루에 담아서 3년간 건넨 돈 / 33

4)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박정희(1956) / 34

5) 전쟁 통에 후방에서 대통령 될 궁리만 하던 박정희 (1950-1956) / 35

 

3. 어머니의 고난

1) 어쩌다 불고기도 먹었지만 / 38

2) 이후락의 방문 / 40

3) 박정희 선거운동원이 되었던 어머니 / 41

4) 청와대 특사 서정신의 요구 -이민 가라! / 42

5) 김영삼을 만나고 온 어머니 구속되다 / 44

6) 이후락의 지속적이고 위협적인 관리, 발설하면 죽는다 / 46

7) 중앙정보부원은 다 아는 사실-육영수는 박정희가 죽였다 / 49

 

4. 7남매 이야기

1) 장녀 영자 / 56

2) 차녀 영옥 / 59

3) 장남 인채 / 62

4) 삼녀 춘자 / 65

5) 차남 경채 행방불명 / 68

6) 사녀 명순 / 71

7) 오녀 영순-해결사가 되어야만 하는 내 운명 / 73

 

5. 박정희 사망 후에도 소모품으로 이용되는 한춘자

1) 박정희 이후락의 부하, 김종찬의 계획적인 접근 / 78

2) 한춘자, 죽은 자의 고소로 구속되다 / 82

3) 도청되는 한춘자 전화, 찾아오는 하나회 사람들 / 86

4) 밤에 들어와 마약주사를 놓는 그들 / 89

5) 춘자 언니 계좌 수십 수백 개 / 89

6) ‘인감 장사소모품 한춘자의 불행한 호텔살이, 여관살이 / 94

 

6. 구 안기부 요원과 신 국정원 요원의 충돌

1) IMF 여파로 쓰러진 나, 춘자 언니와 생활하다 / 103

2) 구 안기부 요원들의 23천억 원 사기약탈 미수 사건 / 104

3) 23천억 원의 정체를 내게 캐묻는 검사 /106

4) 재떨이로 호텔 유리창을 깨다 / 114

5) 그 와중에 드러난 어마어마한 차명계좌 834/ 115

 

7. 무능한 진보 정부

1) 노력은 하였으나? / 120

2) 혁명적 조치 없이 비자금은 정리되지 않는다 / 120

 

8. 인간말종 흡혈귀 서정화

1) 이 책의 키맨 서정화 / 124

2) 1997년부터 한춘자에게 접근한 한나라당 서정화 의원 / 126

3) 윤증현이 끼어드는 이유 / 127

4) 박주선이 끼어드는 이유 / 130

5) 아버지 돈을 찾을 희망에 들떠 있었던 형제들 / 130

6) 한춘자는 왜 안 주는 건데? / 141

7) 5조 원 먹튀- 미꾸라지 서정화, 박주선, 윤증현 / 142

8) 브로커와 인채 오빠 / 151

9) 협박하는 안기부 3차장 최준택 / 153

10) 한영순, 투사로 변신하다 / 159

 

9. 처절하게 짓밟힌 자구책

1) 채무자(박정희와 관리자들) 쪽 사정 / 165

2) 채권자1(한춘자) 쪽 사정 / 167

3) 채권자2(막내 한영순) 쪽 사정 / 169

4) 이후락, 악착같이 빨대 꽂다 / 170

5) 이후락, 죽기 전까지 만나달라고 여러 차례 사정하다 / 174

6) 2009년 이명박 대통령에게 청원서 낸 후 덮쳐온 죽음의 그림자 / 175

7) 안기부 출신 윤제영 변호사, 우리 청와대 민원 내고 사망 / 177

8) 박주선과의 싸움 / 190

9) 대검찰청 앞 1인 시위 3개월 / 216

 

10. 돈세탁은 이제 그만 통장을 파헤쳐라

1) 재경부는 7조 원의 재가확인서 원본을 공개하라 / 218

2) 한춘자가 죽었다고?- 금감원의 엉뚱한 답변 / 219

3) 영옥 언니 경찰 아들- 번개탄으로 자살 / 221

4) 재단을 통한 돈세탁과 보수우파 키우기 / 223

5) 춘자 언니 최근 근황 / 225

6) 숨긴 돈을 통치자금, 국가비자금이라 말하지 마라 / 232

 

에필로그-순이들의 대담 / 236

제보를 바랍니다 / 262

독재자가 조작한 간첩 사건들 /264

주요 사실 관련 연대표 / 274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박정희는 자기가 대통령이 될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빌려달라고 아버지에게 간청했다. 박정희의 부하 강 대위는 자기 상사의 야망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고 주변에 돈이 많다고 알려진 아버지와 의도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것이다. 아버지는 박

정희와 함께 총포재생창장, 타이어재생창장 및 군 수뇌부하고도 자주 술자리를 하셨다.

- (본문 32, 구두를 닦아 아버지 앞에 놓아주던 박정희)

 

아버지는 흰 광목치마로 만든 커다란 자루에 흰 광목 끈으로 묶은 돈을 담아 1953년부터 한 자루씩 1955년까지 일 년에 한 번씩 세 번을 건넸다고 한다. 박정희는 어머니가 일하시는 사병식당에도 찾아와 사모님 신세 잊지 않겠다고, 깊이 허리를 숙여 여러 차례 인사했다. 함께 술을 마실 때면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서정귀는 기업체 사장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 (본문 33, 광목치마 자루에 담아서 3년간 건넨 돈)

 

1967. 박정희는 재선을 위한 준비에 한참이었다. 두 명의 남자가 소고기를 묵직하게 사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조용히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형제들은 다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박정희가 죽고 나서야 어머니는 그들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이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빌려간 돈을 받으려면 박정희가 다시 대선 승리를 해야 한다며 최대한으로 표를 모아달라고 어머니에게 사정을 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한 번만 더 믿어보라고 하며 다시 대통령이 되어야 원만하게 돈을 줄 수가 있고, 어머니도 편히 돈을 쓸 수가 있다고 했다.

(본문 41, 박정희 선거운동원이 되었던 어머니)

 

어머니가 출소한 지 얼마 안 되어 이후락이 보냈다는 정보부 요원이 찾아왔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어머니에게 빌려간 돈을 셋째 딸인 한춘자 명의의 통장에 넣었다면서 어머니 눈앞에 통장 하나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있기 전에는 통장을 줄 수 없다며 앞으로 어머니의 모든 행동을 중앙정보부에서 감시할 것이니 돈을 받고 싶으면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이며 아무나 만나지 말고 죽은 듯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 돈의 뿌리가 남편 한희승의 돈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자식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것이며 발설할 경우 모두 죽을 것이라고 단단히 협박을 했다.

(본문 47, 이후락의 지속적이고 위협적인 관리, ‘발설하면 죽는다’)

 

춘자 언니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전직 청와대. 전직 재경부, 전직 금감원, 전직 중앙정보부, 안기부 근무자들로 그들은 하나같이 보수정당의 하수인들이고, 그들은 하나같이 춘자 언니 통장의 잔고증명이나 통장거래내역을 가지고 와 보여주며 이 돈은 대통령이 승낙하면 쓸 수 있다. 쓰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주군의 지시에 의해 춘자 언니 인감, 위임장 등을 받아가서 돈을 빼다가 재단에 넣고 그 이익으로 자신들의 몫을 챙기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기 주군이 중앙정보부/국정원 따위의 세도를 가졌다고 해서 아주 시건방지게 내 언니 춘자 언니를 마치 화류계 여성 대하듯 하대하기도 했는데 옆에서 보기에 무척 화가 났다. 언니는 자기 나름의 목적이 있기에 상대가 예의 없이 대해도 돈이 되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꼴 저 꼴 다 감내하며 살고 있다.

(본문 87, 도청되는 한춘자 전화, 찾아오는 하나회 사람들)

 

같은 달 709:20 무렵 서울 은평구 남가좌동 10223에 있는 볼래로 커피숍 앞길에서 피고인 황주연, 박형석, 윤향수, 이창순, 이현우는 위 한춘자의 운전기사인 피해자 김정송에게 조사할 것이 있다며 강제로 서울325341호 승용차 뒷좌석에 태운 후 피고인 박형석이 위 자동차를 운전하며 피고인 황주연과 무전기로 김정송을 달았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리 하나를 잘라 버리겠습니다.”라고 교신을 하고, 피고인 이현우, 윤향수는 위 피해자의 팔을 잡고 고개를 숙이게 한 다음 양옆에 앉아 주먹으로 위 피해자를 때리고, 같은 날 13:30 무렵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서서울호텔 503호실로 위 피해자를 데리고 가서 윤향수, 이창순, 이현우, 김인태는 피해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여 같은 달 811:00 무렵 피고인 이현우는 위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피고인 박형석은 같은 황주연에게 전화로 위 피해자를 감금한 사실을 보고하고, 피고인 황주연은 같은 홍장용에게, 같은 홍장용은 같은 고석주에게 각 이를 보고하고, 다시 위 피해자를 같은 호텔 512호실로 데려간 다음 수건으로 위 피해자의 눈을 가리고, 위 피해자를 상대로 약 2시간 동안 위 한춘자에 대해 조사하면서 피고인 황주연 등은 주먹과 발로 위 피해자의 온몸을 폭행하고, 피고인 박형석, 윤향수, 이현우, 김인태는 피해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여 같은 달 811:00 무렵까지 약 26시간 가량 위 피해자를 감금하였다.

(본문 111~112, 98고단 6654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판결문 일부)

 

첫 만남 당시 서정화는 춘자 언니한테 나는 한동빈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언니는 TV에서 서정화 의원을 보았기에 그가 정치가로서 신분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려고 했단다. 서정화 의원의 보좌관 강홍석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서정화 의원의 지시대로 춘자 언니와 자주 만났고 춘자 언니는 강홍석을 신뢰했기에 많은 정보를 주었다. 언니는 자신의 통장에 돈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돈을 사용하기 위한 재가확인서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힘있는 권력자여야 한다고 믿었기에 서정화 의원의 개입을 반가워했다. 언니는 그의 지시대로 7월에 재경원에 재가확인을 받기 위한 신청서를 접수했다.

얼마 뒤 언니한테 72150억 원 중 51천억 원이 실명전환 되었다며 이에 관한 재가확인서(통장에 돈이 있는 것을 사용해도 좋다고 재정경제원이 허용하는 확인서 *편집자 주)가 인편으로 도착하였다. 재정경제원 실명제팀장 윤증현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재가확인서를 손에 입수한 한춘자는 서정화 의원 보좌관 강홍석이 요구하는 대로 또 다른 문건들을 준비해주었다.

(본문 126~127, 1997년부터 한춘자에게 접근한 한나라당 서정화 의원)

 

그러나 한 달 후면 통장에 들어온다는 돈이 춘자 언니에게는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는 서정화의 보좌관 강홍석, 박주선의 보좌관 김광성, 윤증현의 부하 윤종한 등에게 연락을 해 보았으나 모두 연락두절. 인채 오빠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주군(?) 서정화, 박주선, 윤증현 역시 언니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6~7개월 만에 나타난 하수인(대리인)들은 통장에 돈이 안 들어왔다는 한춘자의 말에 그럴 수가 있냐?’ 하며 함께 놀라는 척하고 해결사로 나설 듯 또다시 한춘자에게 인감증명을 받아갔다. 그리고는 역시 깜깜 무소식. 박주선의 보좌관 김광성은 3년 뒤 사망했다.

(본문 141, 한춘자는 왜 안 주는 건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처음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 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 원고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처럼 믿기지 않는 내용이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거듭 읽어보면서 탄탄한 사실관계와 긴밀하게 이어지는 논리 구조를 나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었다는 한 당사자의 사연과 주장만 있는 게 아니고 가족 등 그와 연관된 다른 인물의 얘기도 어우러져 있었다.

또하나 이것이 사실이 아닌 허구라면 저자 한영순으로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도 생각이 미쳤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재판을 걸면 그 과정에서 허구가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본인이 입을 손해가 클 것이 뻔한데도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여태 봉인돼 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마지막 비밀을 열어젖히는 첫 관문이 될 수 있다. 금융실명제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투명인간이 되어 전국을 떠돌며 우리 경제를 좀먹고 있는 검은돈의 실체는 무엇일까? 악의 꽃을 피우고 시들지 않도록 양분을 공급해온 검은돈의 뿌리는 저자 한영순이 겪은 일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얽혀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장

 

 

추천의 글

 

이 책은 박정희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내려온 정치 비자금 일부를 밝혀 주고, 어떻게 관리되어 왔는 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막대한 정치 비자금의 운용은 수조 단위의 차명계좌들을 필요로 했고, 이를 둘러싼 권력을 지닌 정치인들의 모습이 국정원이나 검찰과의 연계 속에 차분하게 드러난다.

다루고 있는 주제의 특성상 일종의 음모론으로 치부되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인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기에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증빙 자료의 충실함과 더불어 과거 박정희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공식 확인할 수 있는 인물들의 등장이 있기 떄문에 최소한의 객관적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더욱이 지금도 활동 중인 잘 알려진 현역 정치인들을 포함해 유명인들의 실명과 그들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기에 단순한 상상과 허구로 치부할 수 없다.

무엇보다 박정희 비자금 관리를 위한 차명계좌가 800개 이상이며, 100조가 넘는 통장을 가진 사람이 9명이라는 구체적 자료가 차명계좌 주인들의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나름 신빙성이 확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희종(서울대 교수,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상임대표)

 

대한민국은 도약과 추락의 가능성을 동시에 가진 나라이다. 박정희 비자금의 흑역사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며 이를 유지·온존시키는 부패 탈법의 기득권 카르텔의 숨통을 끊어내지 않고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불가능하다. 그들만의 부패 탈법 기득권 카르텔이 천문학적 부동산투기의 저수지와 사금고 역할을 하며 부동산투기공화국으로 만들어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검찰정상화법에 이어 이제는 박정희 비자금의 흑역사를 온 국민 앞에 드러내고 그 흑역사의 패거리들을 국민법정에 세워 국민적 심판과 함께 사법적 단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아 왔던 부패 탈법 기득권 카르텔을 끊어내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온 국민이 이 책을 통하여 지독한 불평등의 현실을 만들어낸 부패 탈법 약탈의 기득권 카르텔의 민낯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깨인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부상하였으면 좋겠다. 특히 현대사의 흑역사를 모르고 자라온 청소년들이 읽고 이들이 주역이 되는 시대의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왜 한국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헬조선의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에 NO 결혼 & NO 출산 파업을 하는 청년들이 꼭 읽고 헬조선을 넘어서기 위해 토론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임진철(직접민주주의마을공화국 전국민회 상임의장)

 

박정희에게 비자금이 있다는 소문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오리무중이었다. 이른바 통치자금이라는 이름의 이 비밀에 싸인 돈이 박정희 사후(死後)에는 누구의 손에 들어가 어떻게 쓰였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 실체의 일부를 우리에게 고발하고 있다. 게다가 이 돈의 핵심은 남의 돈을 강탈한 것이라는 점이다.

책은 생생한 서사(敍事)로 되어 있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누가 주도했으며 무슨 사건들이 이어졌는지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건 한편의 뛰어난 르포 문학이면서 또한 가감 없는 역사의 기록이자 이 시대의 절박한 증언이다. 그건 감출래야 더는 감출 수 없는 박정희, 그리고 그가 휘두른 통치 권력의 야만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그에 더하여 누가 어떤 통곡을 쏟아내야 했는지 절절한 울림을 지니고 있는 저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이게 과연 사실인지 묻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질문이 우리가 원하는 시작이다. 사실인가? 실체가 있단 말인가? 누가 피눈물을 흘렸는가? 어떤 세력들이 이 진실을 은폐하고 계속 침묵 상태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래서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저들에게는.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중한 목소리. 이 목소리는 오늘의 역사가 왜 이렇게 비틀거리고 있는지, 어찌해서 악의 꽃은 시들지 않고 계속 저렇게 자신들을 세상에 과시하면서 번창하고 있는지 그 까닭을 알게 해줄 것이다.

-김민웅(‘촛불승리! 전환행동상임대표. 전 경희대 교수)

 

이 끝이 없는 적폐들과의 싸움을 끝낼 수 있는 표적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책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정의와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용감히 싸우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 주는 이 책을 이 시대의 개혁 시민 여러분들이 부디 많이 읽어주시고 같이 싸워주셨으면 한다.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 어려운 투쟁의 길을 결코 소수가 힘들게 가도록 두고 싶지는 않다. 같이 승리하고 같이 승전보를 울립시다!

-최수연(평범한 민주시민. 개딸)

 

주제어: 한국사, 역사, 현대사, 박정희, 비자금, 육영수, 서정화, 이후락, 윤증현, 박주선, 안기부, 중앙정보부, 중정, 국정원

분류: 한국사, 역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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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 5. 15. 16:56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제목 : 쉽고 재미있는 경남의 숨은 매력
펴낸 날 : 2022426

가격 : 20,000

반양장본 | 373| 152*225mm

ISBN 979-11-86351-46-8(03090)

 

펴낸 곳 :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 김훤주

 

 

책 소개

 

여행은 이제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휴일이면 어디로 떠나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인터넷 속에는 맛집이나 유명 장소에 대한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인증샷을 찍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즐깁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더 유익하고~ 좀 더 보람 있는~ 뭐 그런 게 없을까? 싶은 아쉬움을 느껴본 적이 다들 있을 겁니다. 뭔가 조금 더해지면 참 졸을 텐데 싶은 거지요. 책 속에 경남 18개 시·군의 역사와 문화를 꼼꼼하게 담았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지역의 이야기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서 썼습니다.

역사를 딱딱하고 어려운 공부가 아니라 보람 있는 여행의 소재로 삼는 이들이 많아진 추세를 따랐습니다.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역사서이기도 하고 여행객들에게는 경남을 소개하는 여행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여러 모로 두루 도움이 된다면 곰탁곰탁 다니며 발품을 판 보람이라 여길 수 있겠습니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현재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장 겸 환경전문기자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 공동대표

 

펴낸 책

2008<습지와 인간>

2012<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2016<경남의 숨은 매력-역사·문화 스토리텔링>

2018<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2020<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2020<재미있는 우리 함주지>

 

 

목차

 

중부

창원시 · 13

진해 · ‘진해의 원래 주인은 삼진 지역 / 일본 해군의 전승지 / 근대와 현대의 문화유산이 빼곡한 옛 시가지 / 이순신 장군의 빛나는 전승지 /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자취도 / 해양 방위 요충지 웅천읍성과 제포진성

창원· 문화재가 적은 도시 창원 / 덕천리지석묘와 다호리고분군 / 창원읍성과 창원향교 / 국가중요농업유산 창원 단감 / 주남저수지 일대

마산· 고려·몽골연합군의 일본정벌 전진기지 / 마산창과 창동 / 마산헌병분견대 / 마산의 근대 유적들 / 3.15의거 발원지 / 합포성과 회원성 / 기미년 삼진의거와 팔의사 창의탑 / 천년 고찰 의림사

 

함안군 · 52

아라가야 수장들이 잠든 말이산고분군 / 신라 기록의 보물창고 성산산성 / 함안읍성과 함안향교 / 통일신라 사자석탑과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 아름다운 무기연당 뿌리 깊은 칠원향교 / 작음으로 이룬 무릉도원 장춘사 / 조선 땅에 세운 고려동 유적지

 

의령군 · 69

홍의장군 곽재우 / 기강나루 전투와 정암진 전투 / 백산 안희제와 호암 이병철 / 한글을 지킨 고루 이극로 / 의병처럼 멋진 나무들 / 퇴계 이황을 모시는 덕곡서원

 

서부

진주시 · 87

두 번에 걸친 진주성 전투 / 진주성과 촉석루 / 김시민·삼장사·논개 / 농민항쟁의 거점 진주 / 진주상무사·옥봉경로당·형평운동 / 진주향교·청곡사·문산성당·진주교회 / 진주역 차량정비고

 

사천시 · 105

갯벌에 남은 역사 / 가산창과 가산리석장승 / 사천매향비 / 일제강점기 비행기격납고 / 이순신 장군의 사천해전 / 선진리왜성 사천전투와 조명군총 / 사천성전투와 노량해전의 관계 / 유일한 해양군사유적 대방진굴항 / 다솔사에 안긴 한용운과 김동리 / 삼천포대교와 늑도유적

 

산청군 · 124

구형왕릉 / 두류산 양단수와 남명의 산천재 / 단속사지 멋진 자리 / 대장경 판각지 단속사 / 남사마을 / 이사재와 유림독립운동기념관 / 산청 민간인 학살사건

 

하동군 · 143

하동에 남은 최치원의 흔적 / 지리산에서 신선이 된 최치원 / 운암영당과 고운선생 영정 / 전라도와 경상도가 한자리에 / 배드리 위에 들어선 하동읍성 /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 전통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 최참판댁과 조씨고가

 

남부

고성군 · 161

또 하나의 이름 고자국 / 해상교역의 중심지 고성 / 일제가 송학동고분군을 주목한 까닭은 / 내산리고분군의 주인은 누구일까? / 고성의 고인돌 / 지구의 역사를 간직한 퇴적암 / 남녘 들판 한복판의 북방 기마문화 자취 / 양반 행패 막는 문, 새가 예쁜 자방루 / 운흥사 / 고성의 보물 둠벙

 

통영시 · 183

삼도수군통제영 / 세병관 / 십이공방 / 주전소 / 통영성 / 이순신 장군의 섬 한산도 / 바다의 땅 통영 / 박경리기념관 / 통영옻칠미술관

 

거제시 · 199

해상 방위의 요충 거제 / 대마도 정벌과 거제도 수복 / 옥포대첩과 고현성 함락의 관계 / 칠천량해전과 일본의 대륙 진출’ / 원균은 나쁘기만 할까? / 배설은 비겁한 도망자일까? / 통영보다 먼저 통제영이 있었던 거제 / 고현성이 함락돼 옮겨진 기성관 / 전통 성곽의 종합 전시장 / 주민 스스로 쌓아올린 거제 교육의 자취 / 현대까지 이어진 고난의 역사 지심도와 포로수용소

 

남해군 · 220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 관음포와 이락사 / 왜구를 무찌른 정지 장군의 승전기념탑 / 대장경 판각지와 백제 무덤 / 잘 갈무리된 남해 유배문학 / 자연에 적응하는 인간의 역사

 

북부

함양군 · 241

최치원과 상림 / 김종직과 선비의 고장 / 박지원과 물레방아 / 정여창 고택과 무덤, 남계서원 / 여권 신장의 상징 허삼둘 가옥 /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 / 선불교의 벽송사와 미래 문화재 서암정사 / 함양 민간인 학살사건

 

거창군 · 261

거창을 키운 것은 8할이 바위 / 문바위·사선대·분설담·수포동 / 크고 많은 거창의 석불 / 네덜란드식 가옥에 담긴 뜨거운 고장 사랑 / 군 단위 최초의 공립 박물관 / 동계 정온 고택 / 비극의 민간인 학살사건

 

합천군 · 277

남명 조식 / 뇌룡정과 용암서원 / 합천군 창의사 / 삼가장터3·1만세운동기념탑 /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 대가야 건국신화와 해인사 / 대가야 마지막 태자와 월광사지 / 멋진 유물 가득한 영암사지 / 옥전고분군과 합천박물관 / 합천의 향교

 

동부

창녕군 · 299

화왕산성을 지킨 곽재우 / 창성부원군 조민수 / 전민변정도감과 신돈 / 가야의 순장소녀 송현이 / 창녕지석묘와 진흥왕척경비 /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창녕석빙고 / 관룡사 / 한강 정구 / 망우정과 여현정

 

밀양시 · 319

밀양강과 수산제 / 항일독립투쟁과 밀양 / 작원관전투와 작원잔도 / 밀양 사람들에게 각별한 사명대사 / 삼랑창과 삼랑진역급수탑 / 영남루와 월연대 / 예림서원과 밀양향교 / 어디에도 없는 절 표충사

 

김해시 · 339

수로왕은 몰랐던 금관가야’ / 떨어져 있는 수로왕릉과 허왕후릉 / 대성동고분군과 봉황동유적 / 유적으로 가득한 분성산 / 또다른 항만 유적과 솟대 자리 / 청동기시대의 공동묘지 율하리 유적 / 국립김해박물관 / 봉하마을과 화포천

 

양산시 · 358

양산을 압도하는 통도사 / 만고 충신 박제상 / 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나루 가야진 / 황산잔도와 용화사 / 북정리고분군과 양산시립박물관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진해 북원로터리에는 6.25전쟁 와중에 해군 장병 등의 성금으로 세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1952413일 장군의 탄신일(428)을 앞두고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과하지 않고 품위 있기로 치자면 북원로터리의 이순신 장군 동상만 한 것이 드물다 싶습니다.

백범 김구와 충무공 이순신은 시대는 달라도 일제와 맞서 목숨 걸고 싸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원로터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백범 김구 선생이 350년 세월을 뛰어넘어 손을 맞잡은 뜻깊은 자리입니다. ‘백범김구친필시비가 두 분을 이어주는 주인공입니다.

1948815일 해방 3주년을 맞아 진해를 찾은 백범은 이순신 장군이 지은 한시 진중음의 글귀를 써서 남겼습니다.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 선조 임금이 압록강만 건너면 중국 땅인 의주까지 피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왜적을 반드시 무찌르겠다고 맹세한 글귀입니다.

- (본문 22, 창원)

 

구형왕릉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돌을 쌓아 만든 무덤(적석총)입니다. 비탈진 산기슭을 따라 일곱으로 층을 이룬 가운데 네 번째에는 감실 비슷한 구멍이 있습니다. 전후좌우로 넓게 퍼져 있고 위로도 돌더미가 높다랗게 솟아 있습니다. 신라나 가야의 고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매우 신선한 장면이 될 수 있습니다.

구형왕릉 들머리에 있는 덕양전은 구형왕과 그 왕비를 모시는 전각입니다. 햇살이 바른 자리에 널찍하게 터를 잡고 있어 초라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라 잃은 가락국 임금의 사당이라는 전제 때문인지 보는 이로 하여금 처연한 감정이 들게도 합니다.

백제의 계백 장군처럼 마지막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과 구형왕처럼 모든 것을 접고 항복을 하는 것, 이 두 가지 길 중에 어느 쪽이 최선일까요? 결사 항쟁하다 장렬하게 전사하면 영웅이 됩니다. 반대로 투항을 선택하면 배신과 비겁의 아이콘으로 남게 됩니다.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싸우다 죽으면 멋지게 이름을 남길 수 있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고난과 고초를 고스란히 겪어야 합니다.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형왕은 쿨한 결심을 했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김유신을 비롯한 후손들이 신라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고 공덕을 쌓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 (본문 125, 산청)

 

거제초등학교 건물은 지역 주민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본관은 전쟁이 끝난 뒤 짓기 시작해 195672층 규모에 교실 16개로 준공됐습니다. 화강암과 붉은 벽돌을 제대로 섞어 활용한 현관은 서양식으로 오래된 대학 건물 같은 장중함이 느껴집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가난한 시절에 널빤지로 얽거나 가마니로 가려도 그만이었지만 거제 사람들은 자식들을 위해 너도나도 품을 냈습니다. 바위를 떼어와 다듬었으며 벽돌을 손수 굽고 옮겨 쌓았던 거지요.

해성중·고등학교도 비슷한 명물을 하나 품고 있습니다. 가톨릭 계열로 1952년 전쟁 중에 세워진 이 학교는 스탠드 위쪽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멋집니다. 똑바로 서 있지 않고 운동장을 향해 구부러져 있는 나무 그늘이 한결같이 스탠드를 덮어주고 있습니다.

굽어 있는 플라타너스에는 학생을 아끼는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미사를 드리거나 행사를 할 때 학생들은 나무그늘 아래에 앉고 선생님은 운동장에 서 있는 모습을 졸업생들은 떠올립니다. 잘 깔린 천연잔디와 플라타너스가 조화를 이룬 교정이 참 아름답습니다.

(본문 215, 거제)

 

상림 인물공원에는 옛날 선정비도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서 조병갑을 기리는 선정비가 특히 눈에 띕니다. 조병갑은 전라도 고부군수 시절 만석보 물세를 가혹하게 걷는 등의 학정으로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터지도록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선정비에는 유랑민도 어루만지고 조세도 줄여주었으며 봉급을 헐어 관청까지 고쳤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갑오농민전쟁 일곱 해 전인 1887년 세워졌는데 이렇게 선정을 베풀던 사람이 갑자기 악행을 저질렀을 리는 없겠지요. 짐작하자면 아무래도 조병갑이 백성들을 윽박질러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겠지요.

상림에는 조병갑의 아버지 조규순을 위한 선정비도 있습니다. 아들보다 40년 정도 앞에 함양군수를 지냈습니다. 조병갑은 고부군수 시절 충남 태안에 있는 조규순의 선정비각을 짓는다며 1000냥을 뜯어낸 적이 있습니다. 함양에서도 비슷한 일을 벌였을 것 같지 않나요.

조병갑은 고부민란과 동학농민전쟁을 촉발시킨 탐관오리로 지목돼 1894년 유배를 갔다가 이듬해 풀려납니다. 그리고 1898년에 법부 민사국장이 되어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사형 판결문에 판사로 이름을 올립니다. 조병갑의 변신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본문 244, 함양)

 

귀양에서 돌아온 망우당 곽재우는 첫 승전지 기강나루에서 지척인 도천면 우강마을 강가 언덕에 망우정을 짓고 살았습니다. 육신은 병들고, 글을 쓸 종이 한 장 없고, 입고 나갈 옷 한 벌도 변변찮은 삶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웠습니다.

마지막 남은 망우정조차 다섯 아들에게 남기지 않고 외손녀사위 이도순에게 물려줍니다. 망우정을 가장 잘 지키고 유용하게 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요즘 상식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망우정에는 어진 사람에게 준다는 것을 뜻하는 여현정이라는 현판이 하나 더 달려 있는데 그런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 요임금은 자식이 아닌 순에게 천하를 넘겼고 나는 이 정자를 현자인 이군에게 물려준다. 이를 요순에 견주는 것은 넓은 하늘을 좁은 연못에 비교함과 같으나 마음속 깊은 뜻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자네가 자연을 벗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능히 지킬 수 있겠기에 정자를 내 것으로 삼지 않고 이렇게 준다네.”

곽재우와 마찬가지로 의병 활동을 했던 정인홍은 광해군 아래에서 영의정까지 오르지만 결국 처형을 당했습니다. 반면 곽재우는 전란 이후 되도록 벼슬을 피하며 편안하게 천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곽재우는 삶의 본질을 깨달은 위인이었습니다.

(본문 316, 창녕)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누군가 우리나라를 두고 전 국토가 박물관이고 전시관이라 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오만 군데 널려 있고 수천 년 살아온 문화유산이 눈길 닿는 데마다 놓여 있다는 겁니다. 경남은 더욱 그렇습니다. 지리산을 비롯한 산악과 섬진강·낙동강 같은 물줄기가 어우러지는데다 푸근하고 넉넉한 남해바다까지 함께하는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경남은 이처럼 자연환경이 살기 좋으면서도 아름다워 예로부터 물산이 풍성하고 인심도 좋은 고장이었습니다. 사람이 자연과 어울리며 문화를 만들어내기 알맞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런 때문에 골짜기와 들판 바닷가 고샅마다 사람살이의 자취가 풍성하게 남아 있는 거지요.

경남의 사람 역사 문화를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지역마다 고유한 자연을 바탕으로 삼아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살폈습니다. 읽는 내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지역별로 특색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어 새로운 시각으로 알기 쉽게 구성해 보았습니다.

 

 

추천의 글

 

지역의 특징을 밝히면서 궁금증을 풀어주는 내용으로 누구나 알아보기 쉽게 썼다. 어린이나 청소년, 가족과 사제가 동행하여 같은 주제로 대화하고 토론하며 고루 누리기 딱 좋은 어깨동무가 되는 책이다. 지역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식을 보충하며 휴식과 유희로써 행복을 선물한다.

읽기 어려운 역사 교과서의 한계를 벗어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의 수많은 이야기는 가고 싶도록 만들고 지역의 자랑거리를 지인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도와 자긍심을 부추긴다. 가족끼리 함께 여행하며 공동의 주제로 대화하며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품은 이 책을 권한다.

강정석(마산무학여자중학교 교사)

 

저자는 방대한 고증과 철저한 답사로 경상도를 재해석한다. 여행자들은 이 책을 통해 경상도를 재발견하게 된다. ‘특급 역사 가이드덕분에 경상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멋진 시간 여행지로 재탄생한다.

고재열(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 여행감독)

 

선인의 숨결과 흔적을 찾아 치열한 발품을 이어온 저자가 누천년 역사와 문화의 고갱이만을 간추려 씨줄 날줄 정성스레 엮어낸 경남지역 시간여행의 탁월한 길라잡이다. 경남 산천 골골 사람과 사건, 장소에 얽힌 무수한 옛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우리네 삶터에 담긴 문화유산의 가치를 톺아보며 독자 스스로의 자존을 곧추세우게 된다.

황풍년(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월간 <전라도닷컴> 전 발행인)

 

 

주제어: 경상남도, 경남, 역사, 문화, 거제, 거창, 고성, 김해, 남해, 밀양, 사천, 산청, 양산, 의령, 진주, 창녕, 창원, 마산, 진해, 통영, 하동, 함안, 함양, 진해, 마산, 3.15의거, 말이산고분군, 충익사, 진주성, 사천만갯벌, 산천재, 하동읍성, 이순신, 옥천사, 박경리, 지심도, 이락사, 유배문학, 박지원, 최치원, 김종직, 분설담, 남명 조식, 곽재우, 삼랑진역급수탑, 국립김해박물관, 용화사

분류: 한국사, 한국문화, 역사/지리,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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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0. 6. 2. 10:36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쏭이얌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제목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펴낸날  2020525
가격 20,000

반양장본 | 300| 152*225mm

 

 

 

ISBN 979-11-86351-28-4 (0390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김훤주 조현열

 

 

 

 

 

책 소개

 

 

옛 군수가 기록한 함안의 역사 유산을 찾아서

 

부임지마다 기록을 남겼던 수령 오횡묵은 경남 함안군수로 재임하던 시절에도 <함안총쇄록>을 남겼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객관 정황에다 본인의 느낌까지 섞어가면서 수령의 하루하루를 기록하였다.

 

이 책은 오횡묵이 기록한 함안의 지형과 명소, 시설, 그리고 각종 모임과 행사가 이뤄진 장소를 일일이 답사하며 130년 전의 모습을 더듬었다.

 

책에 나오는 함안 곳곳을 탐방하며 조선시대 원님의 풍류와 행적, 당시 백성의 삶을 떠올려보기에도 좋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훤주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문화학교추진단 단장

갱상도문화공동체 대표

 

*지은이: 조현열

1960년 경남 함안 출생

경남도민일보 자치행정2부 부장

 

 

목차

 

 

1.들어가면서

기록유산이 넘쳐나는 함안

제작에서 활용까지 기록의 달인 오횡묵

각본 없이 반전이 거듭되는 <함안총쇄록>

살아 움직이는 기록을 위하여

 

 

2.관아 건물과 공간의 재구성

군수 부임 행차

수령의 읍터 몸소 살펴보기

새 군수의 조영

 

 

3.함안 읍성의 130년 전 모습

무너지지 않은 지과정 남쪽 성벽

사라진 현교와 새로 생긴 서문

새뜻한 동문루, 남루한 남문루

올라가 즐겨 놀았던 남쪽 성곽

실무적으로 쓰인 동문

높다란 데 자리한 북장대

 

 

4.함안 읍성의 지금 모습은

그윽하고 포근한 마른해자

명문 각석도 눈에 띄고

산지는 성벽도 대체로 온전

대문 너머 담장으로 남은 남문~동문

연못 앞에 노거수 우뚝한 북쪽 성벽

가장 심각하게 망가진 구간은?

명문 각석 사라진 남문터 서쪽

해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산지 읍성부터 원형 회복을

 

 

5.성산산성

목간의 최대 보물창고

기적 같이 환생한 고려시대 연꽃

오횡묵의 기록과 유리건판 사진

일제도 관심 갖고 고적 지정

군수가 백성 골탕 먹인 자리

산성 가는 산길을 아무도 몰랐다니

옛날 군사요충을 이제는 새 랜드마크로

 

 

6.세시풍속 : 복날과 정월대보름

복날에 팥죽을 먹다

팥죽을 먹었던 까닭은

복날에는 곤드레만드레?

지금은 사라진 함안의 줄다리기

줄다리기 승패에 목숨을 걸다

달밤에 줄다리기를?

같은 풍물이라도 대접이 달라

 

 

7.세시풍속 : 섣달그믐과 봄

섣달그믐밤 뜬 눈으로 밤을 새다

관아에서 푸닥거리를 하다

섣달그믐밤에 귀신 묻는 놀이를

경남 오광대의 시원 매귀희

3월의 마지막 날 봄을 보내는 낭만적인 전춘

재인 놀음 보면서도 봄을 보내고

 

 

8.함안대군물

진을 치고 전투까지 연출하는 대군물

왕비 탄신 대군물은 흥청망청

천총의 몰골은 염라대왕도 웃을 정도

원님 덕에 나팔 불고

민폐가 염려되어 중지했던 대군물

우스우면서도 눈물겨운 장면들

함안대군물의 출현을 기다리며

 

 

9.자이선·연처초연, 되살려 내고픈 그때 그 명승지

갈라터진 돌등에 새겨진 전임 군수의 행적

황폐해진 경관을 새로 단장하다

높고 또 넓게 켜켜이 쌓인 바위

함께 어울리는 열린 광장

자이선의 숨은 흔적을 찾아서

심복이 새긴 일곱 글자도

아직 못 찾은 글자들

 

 

10. 입곡 숲안마을 연계 골짜기

옥사를 피하여 입곡마을로

대접이 좋았어도 마음은 불편하고

청희당에 머물다 옮겨간 모희재

바위에 새긴 연계 두 글자

세상 넘기 어려웠던 보릿고개

평범한 백성과 아름다운 인연도

오탁수로 질병을 다스리고

산천은 간 곳 없고 건물은 그대로

오탁수 자리도 확인되고

 

 

11.낙화놀이

성 위에 오르지 못한 첫 번째 사월초파일

자이선에서 맞은 세 번째 사월초파일

붉기는 꽃 같고 밝기는 별 같다네

장터와 읍성 말고도 불놀이를

새롭게 전승된 함안낙화놀이

지역 주민 스스로 이룩한 재연과 전승

 

 

12. 관노들의 파업

한 섬이 12말도 되고 8말도 되는 비결

10년 전 장부까지 조사하고

밥줄 끊어진 관노들의 파업

파업을 맞은 오횡묵의 대처는

파업에 숨은 배후가 있었으니

파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빗줄기 맞으며 엿새 동안 석고대죄

 

 

13. 군수의 파업

엄청나게 떼어먹은 조세

대책이 없는 조세를 받아들이려니

웃통 벗고 화살 맞기

마산창에서 걷은 한 해 조세

곤장 소리 가득한 납세 현장

질질 끄는 양반 vs 문을 닫는 군수

군수의 일관된 뚝심 vs 양반의 소소한 저항

생일날 깔끔한 마무리

함안 백성보다 착한 백성이 없다

 

 

14. 한 손에는 매 한 손 에는 꿀

형벌은 갈수록 고달프게

죄인에게도 꿀물을 내려주고

진휼에 스며든 부정을 뿌리 뽑고

개별 구휼은 장터가 안성맞춤

활쏘기 시합장도 나누는 자리로

능멸하고 깔보는 데는 단호하게

원님 코앞에서 벌어진 노름

 

 

15. 검암마을이 품은 자연과 인물

너른 들판에서 받은 상쾌한 첫인상

함안에서 처음 천렵을 누린 자리

동네가 크다 보니 인물도 나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그 선조

여간 가깝지 않았던 이용순

고려에 의리를 다한 조순도 검암에

충순당 정려각과 조순 장군비

충순당의 고조부를 기리는 동산정

 

 

16. 가뭄 속 단 비 같았던 무진정

부임하는 날 보았던 무진정

주세붕의 눈에 비친 최초 모습

오횡묵이 본 달라진 무진정

무진정에서 보낸 즐거운 한때

권학을 위한 잔치를 무진정에서

군수 떠나가는 전별연도 무진정

봇짐장수 대회도 무진정에서

무진정은 무진정 이수정은 이수정

 

17. 한강 정구 놀던 별천계곡

한강 정구와 지역 선비들의 합작품 <함주지>

한강이 놀았던 별천계곡

오횡묵이 놀았던 별천계곡

시집도 묶어내고 글자도 새기고

한강을 기리는 다른 각자들

경현대까지 더해져서

 

 

18. 사랑 독차지한 원효암·의상대

오횡묵이 치성을 들였던 자리

오횡묵의 눈에 비친 원효암·의상대

일반 백성들에게도 각별했던

함안에 하나뿐이었던 절간

원효암 주지스님은 허풍을 떨고

인연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19. 기우제는 비 올 때 까지

어느 날 보니 문득 가뭄이

몰래 쓴 무덤부터 파내고

첫 기우제는 사직단에서

나머지 기우제는 영험이 있는 데서

자이선에서는 비공식 기우제를

마지막 기우제에 비는 제대로 내리고

빌지 않아도 내리는 비

그래도 고맙게 풍년이 들어

 

 

20. 기우제 지낸 자리 지금 모습은

기우제 효력은 신통찮았고

모두 어려울 때는 고르게가 최선

금품도 주면서 관폐 줄이기도

기우제 자리는 지금 어디일까

주물진은 풍탄 나루

기록 풍부한 벽사단(와룡정)

험하고 높은 여항산

 

 

21. 습지 정경 속 제방과 보

오횡묵이 그린 습지 경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마을 쪽에만 있었던 옛날 제방

함안천에 남아 있는 옛날 제방

함안읍성을 있게 만든 가칭 금천방죽

혹시 오횡묵이 고생했던 그 제방?

술과 북어와 담배를 풀며 보() 공사도

 

 

22. 객사는 없어졌지만 향교는 남아

객사 전패에 부임 인사를 올리고

제사 지내는 제물을 살피던 자리

시나브로 없어진 파산관과 태평루

공자 알현은 부임 사흘째에

강학과 시험을 치르던 향교

한 달 두 차례 객사·향교 들러야 했던 오횡묵

여전한 은행나무 살아남은 대성전

 

 

23. 그때도 감·수박·연꽃이 명산이었을까

감은 그때도 함안 곳곳에

아래로 베풀고 위로 바치고

받을 때는 청렴을 생각하고

일제강점기에도 대단했던

함안 수박의 명성은?

함안에 연꽃이 없다고 했으나

네 가지 서양 채소도 기르고

 

 

24. 머물러 달라는 만인산

보내는 아쉬움 선정비

1만 명 이름을 수놓은 만인산

만인산 선물에 담긴 뜻은

선정비는 헤어지는 아쉬움을

오횡묵이 찾은 마지막 함안 명승

떠나는 원님인데도 군악 의장을

 

 

 

 

 

 

 

 

책 속으로

 

함안읍성은 1510년 경상도에서 삼포왜란이 터졌을 때 처음 쌓았고 1555년 전라도에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고쳐 쌓았다. 오횡묵이 함안군수를 지낸 때는 이로부터 330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읍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889421일 부임 행로에 읍성이 나온다.

“(무진정 방향에서 오면) 지과정 오른편서쪽이 읍성이다. 북문은 오래 전에 무너졌고 지과정 남쪽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동문은 절반쯤 가운데 우뚝 섰는데 파동루(巴東樓)라는 현판이 달렸다. 성 위에 남녀가 빽빽하게 서서 구경하는데 사람성(人城)이라 할 만하였다. 남문 밖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곡성(曲城)으로 들어가니 파남루(巴南樓)현판이 걸렸다.”

(본문 30)

 

 

합안읍성에서 산지는 상당한 정도로 원래 모습이 유지되고 있었다. 경관을 조금만 정비하고 관리하면 훌륭한 생태역사탐방자원으로 새로 태어날 것 같았다. 성벽과 해자 안팎을 무성하게 뒤덮은 수풀과 흙더미를 일단 걷어내는 것이다. 성산산성은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석축도 느낌이 있었지만 마른해자가 특히 색달랐다. 아무 데서나 쉽게 볼 수 없는 유적이기 때문이겠지만 그 부드럽고 유연한 모습이 왠지 좋았다. 성벽과 마른해자의 나란한 동행과 조화로움도 은근히 감흥을 일으켰다.

최헌섭 원장은 지금 성벽은 100년 넘는 세월을 지나면서 안정화되었기 때문에 수풀과 흙더미를 제거해도 무너지지 않는다이렇게만 정리해도 곧바로 130년 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거리가 1킬로미터 안팎으로 적당하고 가파른 비탈도 없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산길이다. 조금만 손질을 하면 느낌도 산뜻하고 역사유적도 누릴 수 있는 산책로 하나가 새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본문 50~51)

 

 

정월대보름에는 다른 세시풍속도 있었다. 으뜸은 예나 이제나 달맞이였다.

달맞이영월지유(迎月之遊)는 없는 마을이 없다. 계수나무 그림자(계영桂影)가 동쪽에서 나오자 늙은 농부들이 서로 축하하며 모두 금년에는 반드시 풍년이 들 징조라고 한다.”(1890. 1. 15)

조금 뒤에 얼음처럼 맑고 차가운 달이 올라왔다. 계수나무 그림자가 원만하면서 짙은 황색이었다. 모두들 근년에 정월대보름 달을 처음 보았으니 마땅히 제일 좋은 징험이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한 해 전 정원대보름은 날이 흐렸었다. 그래서 달맞이를 할 수 없었다.

액을 쫓고 복을 부른다는 명목으로 정월대보름 전후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풍물을 놀고 금품을 받는 일은 요즘에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 마을 단위 모임이 주체인데 이렇게 모은 금품은 대개 공동 경비로 사용된다.

(본문 73~74)

 

 

 

초파일 불놀이에서 등불이 먼저일까, 불꽃이 먼저일까? 그야 두말할 것도 없이 종교행사로 시작되었으니 등불이 먼저다. 그러면 불꽃은 왜 생겨났을까? 등불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서인지 아무래도 좀 밋밋하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익숙해지면 색다르고 멋진 다른 것을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등불을 뛰어넘는 재미거리로 생겨난 불꽃이 이번에는 거리를 벗어나 산으로 올라가 고도를 높임으로써 또다른 차원으로 나아갔다. 오횡묵이 적은대로 나뭇가지와 바위절벽에 내걸려 바람이 부는 데 따라 흔들리며 빛났던 것이다. 지금 되살려 시도해보아도 좋을 새로운 경관의 창출이라 할 수 있겠다.

(본문 127)

 

 

오횡묵보다 300년 가량 앞선 시기에 함안에서 군수를 지낸 한강 정구(寒岡 鄭逑 1543~1620)라는 인물이 있다.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 모두에게서 배웠고 따로 한강 학파를 이룰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다. 역대 함안군수 가운데 인품과 학문이 가장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함안 사람들은 지금도 한강 정구를 많이 기억하고 높이 받들고 있다.

정구는 <함주지咸州誌>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1586~88년 함안군수로 있으면서 지역 역량을 끌어모아 <함주지>를 편찬했던 것이다. 함안의 산천과 인물·문화·산물을 담은 <함주지>는 지금껏 남아 있는 우리나라 읍지(邑誌) 가운데 가장 오래된 보물이다.

(본문 200)

 

 

 

가뭄이 두 달 동안 지루하게 이어지니 들판과 습지가 모두 벌겋게 타버렸고 지금 농사 형편은 참혹하여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횡묵은 생각 이상으로 영리했다. 공문을 보내고 곧바로 전공(前功)이 아깝고 인사(人事)를 다하지 않았으니 내가 또 따로 제사를 지내겠다고 하였다. 아전들이 명부(冥府)가 반응이 없을 수 있다며 반대하는데도 나는 할 뿐이고 하늘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느냐며 밀어붙였다. 이런 계산이 있었지 싶다. ‘스무 날 넘게 기우제를 지냈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는 데 들인 공력이 헛수고가 되었으니 안타깝다. 달리 보면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았으니 이제 때가 되지 않았을까? 조금 더 빌면 비를 만날 수도 있겠구나. 내리지 않아도 손해는 아니지. 백성들한테 그만큼 애썼다는 인상은 심어줄 수 있으니.’

오횡묵은 이어 경건하게 정성을 들이는 예식은 사람들이 함께해야 하니 내가 홀로 삼헌(三獻)을 하는 대신 다음은 재임이 다음은 공형이 하는 식으로 하자고 하였다. 재임은 향교 임원이니 지역 양반들이고 공형은 삼반관속이므로 고을 아전들이다. 이는 제사에 세 번 술잔을 올리는 삼헌에서 초헌·아헌·종헌을 수령·양반·아전이 저마다 나누어서 하자는 얘기다. 수령 단독이 아니라 양반과 아전까지 공동으로 주관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본문 232~233)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함안총쇄록을 통해 알아본

조선시대 함안의 역사와 마을을 다스린 원님의 이야기.

 

부임지마다 기록을 남겼던 수령 오횡묵은 경남 함안군수로 재임하던 시절에도 <함안총쇄록>을 남겼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객관 정황에다 본인의 느낌까지 섞어가면서 수령의 하루하루를 기록하였다.

 

이 책은 오횡묵이 기록한 함안의 지형과 명소, 시설, 그리고 각종 모임과 행사가 이뤄진 장소를 일일이 답사하며 130년 전의 모습을 더듬었다.

 

왕조시대 이야기라 자칫 고루하지 않을까 싶지만 오히려 발랄하거나 발칙한 에피소드도 곳곳에 등장한다.

 

아메리카 인디언만 끈질기게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줄 알았는데 130년 전에는 우리도 그랬다. 군수 오횡묵은 가뭄으로 논밭이 타들어 가자 하루걸러 한 번씩 한 달 동안 15차례 하늘에 빌었다.

 

군수도 파업하고 관노도 파업을 했다. 군수는 양반과 아전이 말을 듣지 않고 묵은 조세를 제대로 내지 않자 문을 닫아걸었다. 관노는 조세를 규정대로 줄이자 자기네 콩고물이 없어진다며 일손을 놓았다.

 

누정이나 명승을 찾아 시를 짓고 노닐었지만 단순히 놀이인 것만은 아니었다. 군수의 권위를 높이고 지역사회에 질서를 세우면서 학문도 권장하는 행정 행위였다. 그렇지만 무진정이 양반 전용 놀이터는 아니었다. 봇짐장수(褓商)들이 1000명 넘게 모여 대회를 연 적도 있다.

 

선물 받은 벌꿀과 딸기를 동헌에 있던 모든 아전·사령·손님은 물론 일반 백성과 죄인까지 고루 나누었다. 형틀에서 볼기짝이 드러난 상태에서도 기쁜 기색으로 이를 우물우물 삼키는 모습에 군수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었다.

 

이렇듯 책은 조선시대 함안군수가 고을을 다스린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금 함안 곳곳을 탐방하며 숨은 역사와 과거 모습을 독자의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재구성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제어: 함안, 함안총쇄록, 경남함안, 조선시대, 조선시대군수, 함안답사

분류: 역사, 국내, 문화/역사기행, 국내여행>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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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6. 2. 28. 15:45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알 수 없는 사용자

 

 

 

제목 대한민국 악인열전

부제 교과서에선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역사

펴낸날 2016년 2월 24일
가격 13,000원
반양장본 | 228쪽 | 140*200mm
ISBN 979-11-86351-03-1(0391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임종금

 

 

 

책 소개

 

고향 사람 200명을 무참히 학살한 이협우
일제시대 고문기술 70%를 개발한 노덕술
민간인·부하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을 죽인 김종원
일본 국회의원이 된 깡패 출신 친일파 박춘금
안두희를 ‘안 의사’로 불렀던 이승만의 양자 김창룡
일제가 동상까지 세워 준 친일파 김동한
어린 학생도 고문한 악질 친일헌병 신상묵, 박종표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고, 기존 역사책에서도 거의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이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한 사람들조차 스쳐 들은 이름일 따름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던 그들의 뿌리를 캐봤다. 역시나 일제 때부터 악질 친일 반민족 행위자였다. 상상을 뛰어넘는 그들의 가공할 만한 악행을 역사의 법정에 세운다. 우리는 그들을 반드시 알아야 하고, 후세에도 전해야 한다.

 

 

 

지은이 소개

 

경남도민일보 임종금 기자

 

1981년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서 태어났다. 2001년부터 여러 인터넷 미디어에 글을 꾸준히 기고했다.
2009년 <딴지일보> 필진이 됐으며, 2011년 <경남도민일보> 기자로 입사, 현재는 미디어 팀장을 맡고 있다. 어릴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역사를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방법을 늘 생각해왔다. 특별히 어느 시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보다는 ‘악인’, ‘학살’, ‘근현대 한반도 생태’, ‘기상재해’, ‘에버그린 콘텐츠(기존 데이터 재활용)’ 등 관심 있는 주제를 설정하고 자료를 발굴하고자 애쓰는 편이다.
2014년 10월, 에버그린 콘텐츠의 일환으로 경남도민일보에 연재한 ‘지난 기사 새로쓰기’로 2014 지역신문 콘퍼런스에서 금상을 받았고, 2015년엔 경남도민일보 뉴스펀딩 기획 ‘광복 70년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로 상당한 후원을 받기도 했다.

 

 

 

 

목차

 

첫 번째
백두산 호랑이를 자칭했던 살인마 / 김종원
지옥에서 살아온 사람
김종원의 살육
‘골로 간다’는 말을 만든 사람들
“충무공 이순신 같은 사람”
김종원 연표
작은 이야기 1편-좌익과 우익은 민간인을 얼마나 죽였는가?
참고자료

 

두 번째
고향 사람을 무참히 학살한 / 이협우
우익단체 민보단장 이협우
피로 물든 내남면
벙어리 국회의원
“사형보다 더한 극형 있다면”
이협우 연표
참고자료

 

세 번째
일본 국회의원이 된 극렬 친일파 / 박춘금
조선인 학살의 수혜자
상애회의 폭력활동
일본 국회의원 박춘금
“학도병 4천이나 5천 죽어도…”
박춘금 연표
작은 이야기 2편-박춘금과 김원봉의 고향 ‘밀양’
참고자료

 

네 번째
악질 헌병의 대명사 / 신상묵·박종표
침략의 시발점 ‘헌병 보조원’
그들은 어떻게 고문했나?
어린 학생도 무자비하게 고문
처벌이 아니라 출세…3·15의거 때 김주열 시신 유기
신상묵·박종표 연표
작은 이야기 3편-일제와 맞선 일본인들
참고자료

 

다섯 번째
악질 경찰의 대명사 / 노덕술
해방 후 서울, 어느 청년의 죽음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노덕술 못지않았던 악질 친일 경찰들
조작의 달인 ‘노덕술’
“그대 같은 애국자가 있어 내가 발 뻗고 잔다”
노덕술 연표
참고자료

 

여섯 번째
음모와 공작의 달인 / 김창룡
김창룡의 죽음
일제도 놀란 ‘실력’
빨갱이 때려잡는 데 귀신
빨갱이가 없으면 만들어라
권력욕이 부른 죽음
김창룡 연표
작은 이야기 4편-이승만 권력구조의 변화
참고자료

 

일곱 번째
일제도 감복한 친일 인사 / 김동한과 후예들
일제가 세운 동상
변신의 귀재
“나는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
김동한의 후예, 간도특설대
만주의 친일파 군상들
김동한 연표
작은 이야기 5편-공산주의와 독립운동
참고자료


 

 

책 속으로


이협우 학살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온 가족을 몰살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는 훗날 보복을 우려한 행동으로, 어린아이도 철저히 죽였다.
검찰 조사에 의하면 10세 미만 어린이 35명이 피살됐으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자를 동시에 쏴 죽이기도 했다. 1949년 12월 25일 성탄절 노곡리에서 살해당한 최상화와 최동식은 불과 8살, 4살이었다. 이협우는 그들이 빨갱이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죽였다. 아무리 사람을 죽여도 ‘빨갱이를 죽였다’고 하면 넘어가던 시대였다.
(본문 48~49쪽)

 

“증거상 드러난 피고인들의 죄과에 대하여 형법상 사형보다 더한 극형이 있다면 본 검사는 서슴지 않고 그 극형을 택할 것이나 부득이 현행법상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다”
-이협우 학살 사건을 조사한 이영호 검사의 논고
(본문 58쪽)

 

“하판락이 이미경의 혈관에 주사기를 삽입했다. 그리곤 혈관을 통해 주사기 하나 가득 피를 뽑아낸 하판락은 다시 그 피를 고문 피해자인 이미경을 향해 뿌렸다. 증언을 거부하면 또 주사기로 착혈한 후 고문 피해자의 몸이나 벽에 피를 뿌리는 행위를 반복했다. (…중략…) 고문을 당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내가 고문당할 순서를 기다리는 것과 또 하나는 다른 이가 고문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본문 139쪽)

 

김창룡은 축구를 좋아했으며, 특무대(현 기무사) 축구팀에 국가대표 출신을 넣는 등 최강의 팀으로 만들었다. 1953년 10월 특무대 축구팀은 조선방직 축구팀과 전국축구대회 준결승에서 맞붙었다. 전후반과 연장을 치렀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대회규정에 따라 추첨으로 조선방직 팀이 승리했다. 화가 난 김창룡은 “저놈들 다 집어넣어!”라고 소리쳤다. 특무대 요원들이 공포탄을 쏘며 경기장에 난입했고, 주심은 경기장 담벼락을 뛰어넘어 도망쳐 버렸다. 이성을 잃은 김창룡에게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올림픽 영웅 손기정 씨가 달려와 말렸다. 그러나 김창룡은 “이놈도 끌고 가!”라고 지시했다.
(본문 181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화가 나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모든 게 상상 그 이상이다”

 

이 책은 지난 2015년 여름 누리꾼을 분노케 한 경남도민일보 뉴스펀딩 기획 ‘광복 70년 잊지 말아야 이름들’을 기초로 썼다.


한국근현대사는 살육과 배반, 참혹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시대였다.
무수한 사람이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단죄 받지 않고 넘어갔다.
그 가운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8명을 역사전공 기자가 고르고 골랐다.


이들은 그냥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어린 아이도 죽였고, 자기 부하도 죽였다. 화풀이를 하거나 장난 삼아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이들은 그냥 친일을 한 것이 아니다.
일제마저 그들의 솜씨와 노력에 눈물을 흘릴 정도였고, 조선인으로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지위와 호사를 누렸다.


이들은 그냥 출세를 한 것이 아니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 중용 돼 젊은 나이에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위에 올라 세상을 떨게 했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친일과 학살, 고문, 음모, 공작, 불의를 생생하게 목도하는 순간 당신은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주제어: 학살, 친일파, 이승만, 한국현대사, 현대사인물
분류: 역사, 한국사, 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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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5. 12. 30. 17:36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알 수 없는 사용자

 


제목 혜주

부제 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

펴낸날 2016년 1월 1일
가격 13,000원
반양장본 | 428쪽 | 140*214mm
ISBN ISBN  979-11-86351-01-7 (0398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정빈(丁彬)

 

 

책 소개

 

어린 여왕의 손에 흔들리는 조선
가족을 잃고, 권력의 행패를 보다 못한 백성들이 외친다

 

400년 전 조선왕조의 비밀을 품은 책이 마침내 열렸다.
비록(祕錄)은 놀랍게도 조선에 여왕이 있었다 한다.
아버지 광조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어린 혜주(慧主)는 활달하고 솔직하다. 국정을 처리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고 숨겨진 정인(情人)에게 애욕을 표출하기도 한다.

‘백성을 보전치 못하는 무능한 군주는 물러나라!’
혜주가 왕이 된 지 4년, 백성들은 못 살겠다 농성을 벌인다. 그런 백성들을 뒤로한 여왕의 얼굴 뒤편, 400년 전 조선을 만나보자.

 

 

지은이 소개

 

정빈(丁彬)

 

지난 30여 년간 역사 연구와 저술을 해왔다.
더 이상의 작가 소개는 원하지 않았다.

 

 

 

목차

 

1부 잊혀진 세월
지독한 가뭄
비밀상자
오 박사
중시조
돌연한 방문
무언의 다짐

 

2부 회운사의 종소리
춤추는 꽃신
두견차
여시아문
목멱산 심야모의
숭현각(崇賢閣)
야합
급보
특사
빈계토쟁
황소 뿔
육임추간격
49재
밀약
청솔가지

 

3부 애욕의 시간들
면류관
제조상궁
국사
별직
간자(間者)
대비전
3인방
일전불사
남-북파
곡차
연리목
난욕(蘭浴)
방중술
기청제(祈晴祭)
정인(情人)

 

4부 참극의 말로
두물섬
인재(人災)
연좌농성
이간책
괴벽보
단설형(斷舌刑)
정탐서(偵探署)
단골 주막집
미행, 그리고 폭로
대가뭄
장질부사
도끼상소
상가(喪家) 모의
시회(詩會)
거사, 막전막후
출생의 비밀
파멸


5부 기억과 망각

덕종(德宗) 시대
역사 말살
회한
대특종
창엽문(蒼葉門)

 

 

책 속으로


대체 서실에는 무슨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혹시 조상의 미라 같은 걸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송 선생은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대문 열쇠까지 포함해 열쇠 꾸러미의 열쇠는 총 여덟 개. 그 가운데 서실 열쇠가 제일 무뎠다. 평소 사용하지 않아 녹이 슨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열쇠를 돌려본 끝에 송 선생은 겨우 서실 문을 열었다. 창문이 없는 데다 비까지 와서 내부가 어두컴컴했다. 
(P.15)

 

마침내 묘시(卯時)를 알리는 고동이 울자 근정문에서 새 임금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 왕들과는 달리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조선왕조 첫 여왕의 등장이었다.
여왕은 아홉 개의 구슬을 꿴 줄이 매달린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이 줄들로 인해 왕의 시야가 가렸는데 이는 악을 보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면류관 양옆에 달린 작은 솜뭉치는 왕의 귀를 막아 나쁜 말을 듣지 말라는 뜻이다.
여왕은 내시와 상궁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근정전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여왕의 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른편에 자리를 잡고 있던 북파도 이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답도(踏道) 앞에 다다르자 여왕의 눈에 봉황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봉황은 용과 함께 왕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아! 이제 내가 정말 왕이 되는구나!
여왕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변이나 모반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혜명공주로서도 감회가 없지 않았다.
(P.160)

 

괴벽보에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두물섬 수몰사고를 조장했다고 했다. 그 증거로 누군가 두물섬 나룻배를 묶어뒀던 동아줄을 예리하게 자른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마을 전체에 달랑 한 척뿐인 나룻배를 그리 했다면 그건 누군가 주민들을 수장시키려고 작정한 것이나 진배없다.
그러나 의금부는 이에 대한 진상조사는커녕 이기호 도제조 이하 전 관속이 총동원 돼 범인 검거에만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보름이 지나도록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그 와중에 시월 초 또다시 괴벽보가 나붙었다.
이번에는 경복궁 코앞인 광화문 앞 육조거리였다. 신출귀몰한 범인의 행적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새로 나붙은 벽보의 내용이었다.
‘어린 여우가 중놈과 궐에서 놀아나고 있다.’
‘어린 여우’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혜주를 두고 한 것임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그리고 그 소문은 그리 오래지 않아 전국으로 퍼졌다.
궐로도 소문이 퍼지자 대궐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혜주에게 보고하지 못했다. 당사자인 무극은 물론이요, 3인방 가운데 하나인 노천조차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근래 들어 혜주는 날로 성격이 날카로워졌다. 그런 혜주에게 이런 내용을 보고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았다.
(P.298)

 

그 시각 서준기는 뭔가를 열심히 쓰더니 막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 쓴 종이를 거적때기 위에 펼쳐놓았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벌벌 떨며 가까이 가는 것조차 두려워하였다. 서준기가 종이 위에 쓴 것은 ‘주상의 실정(失政) 및 국기문란 7개 죄목(罪目)’이었다. 서준기는 이미 죽을 각오를 한 몸이었다.
一. 법적 근거도 없이 별직, 정탐서 등을 만들어 국법을 농락한 죄
二. 적법한 절차 없이 단설형을 제정하여 권한을 남용한 죄
三. 조선조의 국정방침인 숭유억불 정책을 위반한 죄
四. 두물섬 참사를 사전에 막지 못하고 사후처리를 소홀히 한 죄
五. 내수사 쌀 매점매석 의혹 사건의 재수사를 막은 죄
六. 혜민서의 역병 예방 및 사후조치를 소홀히 한 죄
七. 궐내에 정인(情人)을 끌어들여 음사(淫事)를 일삼은 죄
(P.353)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오래된 종택 제각에 잠들어있던 한 권의 비록(祕錄)
회운사 종소리와 함께 여왕이 깨어난다

 

비밀을 간직한 승려와 상궁 사이에는 은밀한 눈빛이 오가고 숙부를 몰아내 왕좌에 올랐던 광조는 병상을 지키다 세상을 떠난다. 광조와 왕후 사이에 남은 건 혜명공주 하나,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오른 그녀와 곁에 있게 된 한 승려….

<혜주>는 거침없이 읽힌다. 빠른 전개 속에서 개성을 드러내는 인물들 각자의 사연은 탄탄하게 이야기의 밑을 받친다.

소설 <혜주>는 검붉다. 목탁소리, 풍경소리가 들려야 할 절에서 남녀의 숨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의금부 앞마당에서 백성의 혀를 자르는 형이 집행되기도 한다. 순수하고 발랄했던 어린 공주가 폭군 혜주(慧主)로 변해가는 모습을 작가는 충실하게 그려나간다. 조선은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 두물섬이 수몰되는 참사가 벌어지고 역병으로 많은 백성들이 손 쓸 틈 없이 죽어나간다. 그 마지막에는 무엇이 있을지, <혜주>를 끝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주제어: 역사, 여왕, 혜주, 조선
분류: 문학, 소설, 한국소설, 한국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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