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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6. 9. 12. 10:52 Category : 피플파워가 낸 책 Writer : 알 수 없는 사용자

 

 

 

제목 남강오백리 물길여행

부제 500리 남강 물길 따라 만나는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

펴낸날 2016년 9월 5일
가격 20,000원
반양장본 | 424쪽 | 152*225mm
ISBN 979-11-86351-08-6(03980) 

펴낸곳 도서출판 피플파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38(양덕동)
       055-250-0100
       www.idomin.com
지은이 권영란

 

 

 

책 소개


아버지와 함께한 물 따라 길 따라 ‘물길여행’
남강이 품은 전설과 풍경, 그리고 민중생활사를 만나다

 

<남강오백리 물길여행>은 남강을 보며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딸이 함께한 걸음이다.

지금까지 남강을 주인공으로 한 책은 없었다. 남강은 돋보이지 않고 묵묵하게만 흐르던 강이었다. 그 때문에 남강 가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도 없었다. 이 책은 최초로 남강을 터전으로 살아온 이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기도 하다.

자랑스러운 인물 이야기, 민중의 절규가 서린 역사 현장… 특히 저자는 물길 곳곳에 묻힌 이야기에 주목했다. 사람들 입을 타고 내려온 이야기를 모으고,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기록으로서의 가치도 높였다. 이 책에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여행 안내서나 여행 에세이와 거리가 멀다. 여행을 통해 발굴한 민중생활사를 담은 책이라 하는 게 더 맞다.

남강 물줄기 189km 따라 여행을 떠나 보자. 즐겁기만 한 여행은 아니다. 아름다운 풍경에는 아픈 역사가 스며있고 고된 삶을 강물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남강의 이야기는 잊혀서는 안 될 민중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소개


권영란

나이 40세에 늦깎이 기자가 됐다. 2005년~2007년 <진주신문> 편집국장을 지냈고, 2012~2015년 경남도민일보 프리랜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 인터넷언론 <단디뉴스> 대표이자 취재기자로, <한겨레> 신문에 ‘지역이 중앙에게’라는 칼럼을 쓰고 있다.
1999년 제49회 개천문학상(시 부문)을 수상했고, <하동군 문화관광스토리텔링> 등 여러 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경남의 대표 전통시장을 스토리텔링한 <시장으로 여행가자>(2014, 도서출판 피플파워)가 있다.

이메일 kyr65@daum.net 

 

 

 

 

목차

 

1. 남덕유산 골짝에서 첫 물길을 이루다
-남강 발원지 남덕유산 참샘
물길의 시작과 끝이 모두 경남이라 / 진주 남쪽 1리에 있어 남강이라 / 최장발원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 참샘을 찾아 오르다 / 다양한 식생, 살아있는 자연에서 물길 이루고 / 마침내 남강 발원지, 남덕유산 참샘 / 참샘은 산꾼이나 화전민의 식수원

 

2. 개울은 강이 되어 마을 속으로 사람 속으로
-경남 함양군 서상면 영각교에서 구평교까지
상남리 골짝 사람들은 정작 남강을 모르더라 / 마을에서는 족대로, 어항으로 고기잡이하고 / 지척에 ‘전 논개묘역(傳 論介墓域)’이 있다 / 구평들녘 수많은 시름을 담아 서하로 흘러가고

 

3. 꽃부리징(鉦) 울리며 천하절경 화림동으로
-함양군 서상면 구평교에서 서하면 서하교까지
세 갈래 물길이 만나는 곳에 징(鉦) 터가 있는 까닭 / 마을 수호신이 된 운곡리 은행나무 이야기 / 안의삼동 중 남강 본류를 낀 화림동 계곡

 

4. 농월정에서 달을 기다리다 심진동에 오르다
-함양군 서하면 서하교에서 지곡면 남효교까지
월연암에 앉아 달 뜨기를 기다릴까 / 남강 지류 지우천에 최초 물레방아가 있었다 / 남강은 안의면에 닿아 금호강이라 불린다

 

5. 위천에서 고운 최치원과 남도부 하준수를 만나다
-함양군 지곡면 남효교에서 유림면 성애교까지
처서 지나 다리 짓고 망종 때는 허물고 / 천지간의 일두(一蠹) 정여창과 남계서원 / 남강 지류 위천변에 남도부 하준수 고향 있다 / 최치원은 물길 잡아 함양 상림을 펼쳐놓았다

 

6. 강 때문에 울고 웃었던 함양·산청 사람들
-함양군 유림면 성애교에서 산청군 생초면 고읍교까지
본통재가 원래 분통(憤痛)재였던 까닭 / 임천과 남강이 만나는 강정 두물머리 / 강 때문에 먹고살고 강 때문에 운다

 

7. 람천 물길 한가운데 너럭바위가 붉은 이유는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서 인월면 풍천교까지
백두대간 골짝물들이 람천을 이루었다 / “태조 이성계의 황산대첩 승전을 기록하라” / 인월면 피바위…달을 끌어당겨 적장을 쏘다 / 람천을 건너 인월장터에 가다

 

8. 뱀사골은 여순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전북 남원시 인월면 풍천교에서 산내면 소재지까지
변강쇠전 배경은 남원 땅일까 함양 땅일까 / 산내면 귀농·귀촌인들은 ‘뭔가 다르다’ / 지리산 고봉 물길들이 만수천을 이뤄 / 뱀사골 계곡에서 여순사건은 종결됐다

 

9. 천년고찰 실상사 ‘격변의 시대’ 민중의 부처로
-전북 남원시 람천교에서 함양군 의탄교까지
실상사는 흩어진 지기(地氣)를 모으고 지켜 / 칠선계곡 물길도 임천으로 흘러들고

 

10. 용유담 아홉 마리 용들은 어디로 가고
-함양군 마천면 의탄교에서 휴천면 용유교까지
오도재는 지리산제일문이라 / 용유담에서 용들과 노닐다

 

11. 방곡에서 자혜나루를 건너 학살은 계속됐다
-함양 마천면 문정리에서 산청 생초면 상촌리 곱내들까지
지리산댐(문정댐) 예정지는 온통 가을빛 / 나루터와 줄배 이야기 / 민간인 학살 아픔 서린 4개 마을

 

12. 산청 물은 마음병까지 씻은 듯이 낫게 해
-산청군 생초면 곱내들에서 산청읍 경호교까지
생초 골짜기 물꼬싸움 이야기 / 생초면 하둔마을은 새마을금고 발상지 / 류의태 말고 명의 신연당 유이태가 있었다 / 대포서원(大浦書院)과 서계서원(西溪書院)

 

13. 경호강에 대 띄워보내 진주 남강에서 건져
-산청군 산청읍 경호교에서 신안면 신안리 명동마을까지
산청초등학교에는 ‘거북돌’이 있다 / 크고 작은 산이 흐르는 물길을 호위하고 / 새고개 임걸룡 전설과 참전기념공원 / 솔밭 잉어도 팔아먹고 대도 팔아먹고 / 도천서원(道川書院)과 삼우당 문익점 묘

 

14. 물난리 잦던 양천에는 도깨비가 보를 만들고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명동마을에서 단성면 묵곡리까지
옛 신안나루터와 ‘밀침방아’ / 적벽산과 읍청정(揖淸亭) / 원지 두물머리와 양천강 이야기 / 물길을 모아 진양호로 향하다

 

15. 푸른 무청 대평들은 붉은 딸기로 꽉 차고
-산청군 단성면 새들교에서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까지
충의공 대소헌 조종도는 누구인가? / 소남진(召南津) 이야기 / 대평리 한들이야기

 

16. 진양호, 낙동강 수계 최초의 인공호수
-진주시 대평면 대평교에서 당촌리까지
벗들은 섬이 되고 물을 건너 밭에 가다 / 귀곡동은 섬이다, 섬이 아니다? / 엄마 우리 엄마, 얼마나 배고팠으면…

 

17. 진주농민항쟁은 산청 덕산장터에서 시작됐다
-산청군 삼장면 유평골에서 사천시 곤명면까지
대원사와 가랑잎초등학교 / 옛 추억은 실타래처럼 술술 풀리고 / 이 골짜기 이 물길이 예사롭지 않다

 

18. 다목적댐 남강댐 아래 진주성이 있다
-진주시 진수대교에서 진주교까지
너우니와 굴바위를 찾아서 / 남강과 기개 높은 진주 여성들 / 남강이 키운 근대사 속 진주 인물들

 

19. 도동 모래벌은 사라졌지만 물길은 기억한다
-진주시 진주교에서 남강교까지
1980년 5월 시위대의 ‘남강도하작전’ / 1970년 도동지구 개발에 큰들은 사라지고 / 김시민대교를 지나 남강교로

 

20. 소 몰고 정권에 저항하던 역사 현장 지금은…
-진주시 남강교에서 집현면 덕오교까지
‘금산잠수교’ 그리고 1985년 소몰이 시위 / 붕덤이 부엉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21. 툭하면 물에 잠겼던 들판은 풍요의 땅으로
-진주시 집현면 덕오교에서 대곡면 대곡리까지
단목들은 비닐하우스로 꽉 차고 / 진주교도소, 1989년 대곡면으로 이전 / 이제야 돈이 되는 마 농사

 

22. 학살 아픔 감싸 안고 무심히 봄은 피는데
-진주시 진성면 월강교에서 지수면 용봉리까지
나루터 자리엔 월강교가 놓이고 / 길에서 만난 생명평화 도보순례단 / ‘솥단지 급식’ 지수초교가 있다 / 용봉 모래땅에 우엉 싹 올라오고

 

23. 장박나루는 진주·의령·함안지역 주요 뱃길
-진주시 지수면 청담리에서 의령군 화정면 상정제를 지나 장박교까지
물길은 진주 동쪽 끝 고랑마을에 닿았다 / 염창-장박나루엔 장박교가 놓이고 / 강변 제방은 ‘남강 자전거길’로 닦여

 

24. 정암진은 남강에서 가장 큰 나루터였다
-의령·진주의 경계 장박교에서 함안·의령 경계의 정암철교까지
의령·함안·진주 곁에 관란정이 있다 / 강변 뻘굼티논에 고소득 작물을 키워 / 정암진(鼎巖津)을 아십니까

 

25. 붉은 옷의 의병장 곽재우, 최초 의병 일으키다
-의령군 의령읍 정암진에서 함안군 법수면 석교천까지
곽재우(郭再祐)는 누구인가 / 지략가 홍의장군(紅衣將軍) / 강 가운데 모래톱은 어느 동네 땅?

 

26. 물길 거스르지 않은 둑…치수란 모름지기 이래야
-함안군 법수면 석교천에서 악양 둑방까지
남강 변 백산들에는 번호가 있다 / 외범이산 ‘콧등 명당’을 차지한 이는? / 악양 둑방, 남강을 고스란히 품은 길

 

27.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강 보겄네
-함안군 함안천에서 함안·의령 잇는 마지막 다리 송도교까지
바위틈 빠져나오니 푸른빛 그리고 악양루 / 건립 뒤 수시로 의혹 제기된 노래비 / 낙동강 가까워질수록 물결은 잔잔해지고

 

28. 마침내 남강 500리 끝…물빛이 다르다
-함안군 송도교에서 의령군 지정면 기강나루까지
물굼티 이어 한심이들까지 / 보덕각·쌍절각에 새겨진 의병정신 / 반구정·합강정에서 남강을 톺아보다

 

 

 

책 속으로(본문 중에서)


현재까지 공식적인 남강 발원지는 남덕유산 참샘이다. 남강 물길이 시작되는 첫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최성용(상남리 식송마을) 아재는 남덕유산은 물이 귀한 산이라 제대로 계곡을 만들지도 못하거니와 물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한다.
“물길이라고 허는 게 영각사 밑에서 제우시 보이구만. 우에는 물길 같은 건 없고, 남덕유산 골짝골짝… 절골, 상골, 은재골, 동티막골, 남령에서 물이 다 모여들어 동네 개울이 된 거제. 작은 물길들이 전부 모여가꼬 여게 상남 골짝물이 된기라. 물길이 어데 한 곳만 발원지라고 헐 수 있나. 산 전체가 발원지라 할 수 있것제.”
남덕유산 자락 함양군 상남리 조산, 신기, 식송 세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길을 두고 주민들은 ‘골짝물’ ‘산골물’이라 부르고 있다.
남강 오백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남강은 남덕유산 정상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을 쥐어짜듯이 한데 모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서 첫 물길을 이루었다. 그리고 남강 오백리 물길 여행을 시작한다. (본문 23~24쪽)

 

달궁계곡에서 산내면 소재지로 굽어 흘러내려 오면 반선교에 닿는다. 삼도봉과 토끼봉 사이 화개재 아래에서 길게 내려온 뱀사골 골짝물이 이곳에서 합류한다.
지리산 아흔아홉 골짝 어딘들 한국근현대사의 피로 얼룩지지 않은 곳이 있을까. 한국전쟁은 3년이었지만 지리산 일대 주민들은 1948년 시작해 사실상 7년이라고 말한다.
산내면 부운리 뱀사골 반선 일대에서 1949년 4월 9일 ‘여순사건’의 주모자 김지회·홍순석이 사살됐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제14연대 인사계 지창수, 김지회 등이 제주 4·3사건 진압 출동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여수 순천 일대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토벌 작전이 시작됐다. 김지회 중위의 지휘 아래 14연대는 광양의 백운산과 지리산, 산청 웅석봉 등에서 본격적인 유격 투쟁을 전개했다. 당시 김지회가 이끈 패잔병들은 1000명 정도 되었는데, 반선 전투에서 살아남은 200여 명의 패잔병은 이후 지리산유격대를 결성했다. (본문 140~141쪽)

 

함양군 휴천면 유림면과 산청군 금서면을 좌우로 낀 물길에는 나루터가 있었고 줄배가 있었다. 이 구간에서는 강폭이 너르고 수량이 제법 많다. 마을들이 서로 맞바라기를 하고 있는 곳이라면 대부분 나루가 있음직하다.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와 운서리를 잇는 동강교에서 산청군 생초면 고읍교까지는 줄잡아 서너 군데 나루터가 있었다 한다.
“금서면 자혜마을과 강 건너 함양 유림 쪽 지곡 모실마을로 가는 줄배가 있었어요. 80년대 초중반까지는 있었나 봐요. 그때 사공이 우리 마을에 아직 살아 계실 건데….”
김덕희(48·서울시) 씨는 산청군 금서면 주상마을이 고향이다.
“나루에서 좀 더 아래는 엄천강 물로 발전기를 돌려 이 일대 전기공급을 담당했던 방앗간이 있었지요. 한 달에 한 번 집집마다 돌며 전기세를 거뒀으니까요.” (본문 177쪽)

 

겨울 서너 달을 빼고는 일 년 내내 물난리를 겪어야 했던 이곳 돈지마을은 잠깐 몇 개 지명만 주억거려도 이곳 마을이 어떤 곳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돈지마을 어귀에 있는 고개가 한심이고개다. 한심하다가 아니라 근심 걱정으로 가득한 한숨, 경상도 토박이말로 ‘한심’을 뜻한다. 고개에서 보면 강변들이 제법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동쪽 낙동강 방향으로 이어지는 남강 물길이 눈에 들어온다. 물난리만 나면 주민들은 물을 피해 이곳 고개로 몰려왔다. 이곳에서 남강물이 들을 치고 들어와 논밭을 시커먼 흙탕물로 만들어놓는 것을 한숨과 눈물로 바라봐야 했던 것이다.
“농사 좀 할라하모는 장마가 들어 물이 넘치고 수확을 할라하몬 태풍이 와 또 물이 넘치고…. 집집마다 한심한숨소리가 그치질 않았어예. 걱정이 태산같으모는, 와 우리가 땅이 꺼지라 한심 쉰다안쿠요. 그거랑 같은 거지예.”
주민들은 그래서 ‘한심이고개’이고 강변들은 ‘한심이들’이라고 말한다. 늘 ‘물구디’가 되곤 했던 강변 쪽 마을 이름도 ‘한심이’다. 대대로 강 때문에 마음고생 몸고생 했던 주민들의 수난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본문 416쪽)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남강(南江), 이 물길 어디에서 왔을까
500리 물길 따라가며 만난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

 

진주 남강 가에서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고 섰다. 촉석루, 진주성을 지나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다 시선을 반대로 거슬러 돌려본다.

문득 오래된 기억 속 고향 같은 남강이 궁금해졌다. 남강 물을 마시고 남강 가에서 놀았지만 이 물이 어디서 온 것인지, 이 강의 가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남강물이 태어나는 곳부터 찾았다. 물소리는 들리지만 물이 보이지 않는 남덕유산 골짝에서 저자의 걸음은 시작된다. 산줄기를 따라 곳곳에서 모여든 연약한 물줄기는 계곡, 시내, 강, 댐을 채우는 물이 된다. 그 유유한 물길을 따라 사람들이 모인다. 더 풍부하게 듣고 담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렇게 남강오백리 물길여행은 시작된다. 어림잡아도 189km라는 남강 물길을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물길을 따라가니 가는 곳마다 당연히 물이다. 강가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도 이 남강 없이는 나눌 이야깃거리가 없다. 강은 강가 사람들의 터전 그 자체다. 남덕유산과 지리산, 두 명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물길을 다 모은 것이라는 남강은 물길여행을 하면서 이름이 요리조리 바뀐다. 강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 숲 속, 시내, 계곡, 호수, 댐을 지나는 물에게 ‘남강’이라 부르기도 조금 쑥스럽다. 그래서 ‘남강여행’이 아닌 ‘물길여행’이다.

<남강오백리 물길여행>은 한 장 한 장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책이다. 물길 따라가며 만난 전설, 역사, 사람 이야기가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홍수를 다스리기 위한 함양 상림, 곽재우와 의병들이 왜적을 몰살시킨 정암진,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진주 관기 논개… 고장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이야기라며 사람들은 지역 이름을 내세울 뿐 그 이야기에 얽힌 남강은 늘 뒷전이었다.

남강 물길은 낙동강을 향해 간다. 저자는 낙동강과 합수하는 강물을 보며 물길여행을 마쳤다. 하지만 마음이 후련하지 않다. 온전하게 흐르는 강을 끊고, 가두고, 망가뜨린 대가로 강물은 독(毒)을 품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물로 고기를 잡던 강, 강모래를 돗자리 삼아 소풍 즐기던 강… 그 강이 사라질지 모른다. 강을 지키는 것은 우리를 지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 물길여행이 남긴 기록은 더욱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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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을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
그들의 삶을 기록한 민중생활사

 

지금처럼 육로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강(江)은 지역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었고, 식수원이었으며, 끊임없이 먹거리를 만들어주는 생명의 원천이자 어른과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그래서 강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사(史)를 쓰는 일이다. 지배와 통치의 역사가 아니라 강과 더불어 살아온 이 땅 민중의 삶에 대한 역사기록이다.
그러나 낙동강이나 섬진강에 비해 유독 남강에 대한 기록물은 없었다. 그래서 <남강오백리 물길여행>은 남강을 터전으로 살아온 이 땅 사람들의 유일한 ‘민중생활사’라 할 것이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전 편집국장 



 

주제어: 남강, 덕유산, 지리산, 논개, 최치원, 하준수, 여순사건, 실상사, 진양호, 남강댐, 진주성, 곽재우, 낙동강
분류: 역사, 한국사, 한국문화, 여행, 국내여행, 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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